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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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희 어바인(Irvine) 시장의 UC 어바인 대학 졸업식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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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블로그를 통해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던 강석희 어바인 시장의 2011년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 졸업 연설. 우연한 기회에 이 분을 만났고 지금은 좋은 인연이 되어 개인적 도움을 드리고 있다. 이 졸업 연설을 보며 내가 받은 감동을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글로 번역했다. 영어 표현이 정말 좋아 잘 기억했다가 다른 영어 연설에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34 Years Ago Today (34년 전 오늘)

Chancellor Drake, Dean Jenness, faculty, staff and parents, it is, indeed, an honor and privilege to stand before you to thank you, and especially to the graduating seniors, for allowing me to spend a few minutes sharing my American Dream.

(드레이크 이사장님, 제네스 학장님, 교수님, 스태프, 그리고 학부모님들. 여러분 모두 앞에 서게 되니 영광이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저의 아메리칸 드림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시간을 내준 졸업생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I must say, only in America is a day like today possible. 34 years ago today, on June 11, 1977, I was on a plane to a country that I only knew about from history books. As a young man, restless to begin my
professional life, I didn’t have a particular goal. My wife Joanne and I arrived in Orange County from Seoul, Korea, to begin our journey in America.

(오직 미국에서만 오늘과 같은 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4년 전 바로 오늘인 1977년 6월 11일, 저는 역사책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나라로 오는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뭔가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당시 젊었던 저에겐 특별한 목표는 없었습니다. 제 아내 조앤과 저는 미국에서의 여정을 시장하기 위해 오렌지 카운티에 도착했습니다.)

As I flew to my destination that day, I asked myself: What will this country afford me? How quickly will I learn English well enough to speak my mind? But, most importantly, how will I make a difference in this new land of opportunity?

(그렇게 저의 운명을 향해 가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얼마나 빨리 영어를 배워서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어떻게 내가 이 기회의 나라에서 뭔가를 이룰 수 있을까?”)

When I arrived in the United States, I had to work hard to make a living, support my family, and master a new language. I went into business, into sales, and over the years rose to a Senior Management position.

(미국에 도착해서, 저는 가족을 부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사업을 했고, 물건을 팔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저는 관리자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But I kept asking myself, what would be next? What would be my calling?

(그러나 항상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다음은 무엇인가?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In 1992, the L.A. riots captured my attention and seared my heart. There was looting, assault and arson. People died. Wonderful businesses, burned to the ground. Hard-working merchants, watching their life’s work disappear.

(1992년에 LA 폭동 사건이 일어나 제 마음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절도, 폭력과 방화가 있었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성공적인 상점들이 타서 땅에 뭍혔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생을 바쳐 일군 사업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I felt a great injustice had occurred, and I realized I had to get involved because I could either watch and do nothing, or learn and become someone. 1992 changed my life.

(정의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으며 아무것도 안하는 대신, 뭔가를 해서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992년은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Out of the flames of destruction came my personal inspiration to build – to build coalitions; to build friendships; to bridge gaps and create trust; to focus on the strength that diversity holds if we work together, not apart.

(파괴의 불꽃을 보며, 유대와 우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다양성을 가진 우리가 서로 따로 있는 대신 같이 일할 때  더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요.)

I became deeply involved politically and in community service. In both passions, you build foundations to strengthen people and community; at the same time, you break down walls of misunderstanding and misery. As you develop a position of strength and observation, you need both a steady hand and a compassionate heart.

(정치와 지역 공동체 봉사에 더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과 공동체를 을 더 강하게 만드는 기반을 다지고, 오해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힘과 관찰력이 생길수록, 더 지속적인 손과 공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I learned that I wanted the most from both worlds. So I ran for Irvine City Council and won a seat where my vote could make a difference; subsequently, I ran for Mayor and became the first Korean American Mayor in Irvine history – a City that prides itself in being thoroughly integrated. Just look around this hall; I see the diversity of people … the diversity of cultures … and the diversity of talent. THAT is what will define our future generation of leaders and THAT is what will enrich your experience as you embark on this next phase of life.

(저는 양쪽 세상 모두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바인 시 의회에 도전했고, 하나의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 후에 시장에 도전했고, 어바인 역사상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시장이 되었습니다. (박수) 다양성이 완전히 통합되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 어바인입니다. 이 주변을 보십시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지. 바로 그것이 우리 미래의 리더들을 정의할 것이고, 바로 그것이 당신 삶의 다음 단계에서 당신의 경험을 풍부하게 할 것입니다.)

As part of my personal story, one can say: “Here is the young man who left his homeland and became the Mayor of a major U.S. city. He is symbolic of what we can do when we step into the waters of the world and emerge in another culture.”

(제 인생을 보며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을 떠나 미국 대도시의 시장이 된 사람이 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이라는 바다에 들어가서 다른 문화와 융화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4 years ago today, being Mayor was beyond my wildest dreams. But making a difference was part of my upbringing … it was a lifelong calling from my soul. So, how will you make a difference? How will you grow, change and adapt? How will you build on the foundation that this great institution has provided you?

(34년 전 바로 오늘, 시장이 된다는 것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 영혼으로부터 오는 일생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변화를 가져오겠습니까? 어떻게 자라서,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하겠습니까? 이 뛰어난 교육 기관이 제공한 발판에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쌓겠습니까?)

Here is my challenge to you: Make the most of every minute of every day. Embrace not just the rights and privileges that come with living in a great
democracy, but the obligations as well.

(여기, 제가 여러분들에게 도전합니다. 매일의 매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권리와 특권 뿐 아니라, 뒤따라오는 의무도 함께 받아들이십시오.)

If you see things that need changing, don’t wait for someone else to step up to the plate. Roll your sleeves up, and do the hard work necessary to address the challenges in your family, your community, our country and our world. America needs all of you sharing your wealth of talent.

(변화가 필요한 것을 보면, 다른 누군가가 나설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팔을 걷고, 당신의 가족, 공동체, 나라, 그리고 세계의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십시오.)

As social ecology majors, you have the opportunity to accomplish the extraordinary in your field – whether it be in law or social behavior or policy
planning. You deeply understand human behavior and the need for environmental protection; you have debated the justice system as well as social
justice.

(사회 생태학을 전공한 여러분. 여러분들은 전공 영역에서 비범한 일들을 행할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법학이든, 사회 행동학이든, 정책학이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잘 이해하고 있고, 환경 보호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회의 정의 뿐 아니라 정의 체계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You are educated – now be proactive as you realize your aspirations, listen to others, and set your goals.

(여러분들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제 더 적극적으로 여러분의 열망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목표를 정하십시오.)

Wherever you land – whether it is on an airplane to a new destination, or to a job down the street, know that you will have one distinct advantage: You will have yourself, with all the tools that you have learned at this great university and gathered in life to make career choices and life-changing decisions.

(여러분들이 어디에서 정착하든 –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든지, 여기서 일을 하게 되든지 – 여러분들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강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통해 커리어를 비롯한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While I am here on this stage, my heart is with all the parents gathered here today. As the parent of two UC graduates, I know the pride you will feel as your children cross this stage to receive their diplomas. You have invested a lot to give your children the tools to succeed.

(저는 이 단상 위에 있지만, 제 마음은 오늘 여기 모인 모든 학부모님들과 함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을 졸업한 자녀 둘을 둔 아버지로서, 저는 당신이 당신의 자녀들이 이 단상 위에서 학위를 받을 때 자랑스러워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가 성공을 위한 도구를 갖출 수 있도록 많은 투자를 해왔습니다.)

Let me ask all the students to show your appreciation by giving your parents a big round of applause. Making a personal difference is indeed a symbol of America.

(학생 여러분들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부모님들께 큰 박수를 통해 그 감사함을 표현해 주십시오. (박수) )

50 years ago, John F. Kennedy in his inaugural address spoke of a “torch that has been passed to a new generation of Americans.” I, too, challenge you, as the next generation of leaders, to take the torch from this time and this place and quickly plan for tomorrow.

(50년 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들에게 넘겨질 횟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 역시 이자리에서 다음 세대의 리더인 여러분들께 권합니다. 이 시간, 이 곳에서 그 횃불을 받아서 내일을 계획하십시오.)

Time is on your side, but the clock is ticking; the torch is passed today. As opportunity flows to you, let it flow from you.

(시간은 여러분 편에 있지만 지금 매 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횃불은 넘겨졌습니다. 기회가 오면, 바로 여러분들이 그것을 잡으십시오.)

Make the leap in your lives to the highest ground. And be the best that you can possibly be.

(가장 높은 곳으로 도약하십시오. 그리고 될 수 있는 최고가 되십시오.)

My life has taught me – whether 1 mile from where you begin, or 6,000 miles from home – that no matter where you are, there you are.

(제 인생이 제게 가르쳐준 것은, 당신이 시작한 곳에서 1마일을 떨어져 있든, 집에서 6,000마일을 떨어져 있든, 어디에 있든 간에 지금 있는 곳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There you stand – on a hilltop – as the world waits for you. Don’t let the world wait for long.

(거기 여러분들이 서 있습니다. 정상 위에. 그리고 세상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여러분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Congratulations. May god bless you. And may god bless America. Thank you.

(축하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주님이 미국을 축복하시기를. 고맙습니다.)

Written by Sungmoon

January 22, 2012 at 7:28 pm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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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에서 나의 직함은 Principal Product Manager이다. 내가 하는 일은 자바 개발자들을 위해 우리가 만든 각종 소프트웨어에 추가할 기능을 정의하는 것이다. 회사에 있으면서 “오라클의 프로덕트 매니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와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그래서 여기서 간략하게 하는 일과 자격 조건 등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 PM)는 무슨 일을 하는가?

PM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품 전략’을 관리하는 것이다. 아주 간략하게 도식화하면, 상품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간략한 상품 개발 프로세스.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아이디어가 정교화되어 제품이 되고, 출시된 후 피드백을 받아 업그레이드하고, 출시된 제품을 통해 고객의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프로덕트 매니저(PM)는 ‘상품 전략’을 세우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디어는 누구에게서든 나올 수 있다. PM은 이 아이디어가 시장의 필요에 맞는지, 그 시장의 마켓이 충분히 큰지, 경쟁 제품과 비교해서 우위가 있는지 등을 먼저 생각해봐야 하고, 그 결과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제품(product)은 기능(feature)의 집합이다. 예를 들어 얼핏 보기엔 간단하게 보이는 아이폰 하나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기능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앱 실행중에 ‘홈’ 버튼은 한 번 누르면 메뉴 화면으로 나가지만, 메뉴 화면에서 홈 버튼을 누르면 검색 화면으로 간다. ‘최근 통화 목록’에서 오른쪽 화살표를 눌렀을 때, 이미 연락처에 들어있는 번호라면 연락처를 보여주지만, 모르는 번호라면 ‘새로운 연락처 등록’이라는 메뉴가 뜬다. ‘어떤 화면에서 어떤 버튼을 눌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는 사실 UX 디자이너(User Experience Designer)가 정의하지만, 그 안에 어떤 기능이 들어가야 할 지 정의하는 것은 PM의 몫이다. 각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우선 순위를 정하고, 이 기능들을 개발자 및 다른 조직과 공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제품 요구 조건 문서 (Product Requirements Document, PRD)이다. PRD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정의된다.

  1. Requirement (요구 조건)
  2. Problem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점)
  3. Use Case (사용 예)
  4. Background (배경 이유)
  5. Dependencies (다른 요구 조건과의 연관성)
  6. Priority (우선 순위)
  7. Release Version Number (제품 버전)

문서는 파워포인트, 워드, 또는 엑셀로 만들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자주 업데이트하는 문서이다보니 전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Accompa, Access 360, Borland의 CaliberRM등 많은 소프트웨어가 나와 있다.

Accompa 실행 화면 (출처: Accompa.com)

요구 조건은 어떻게 찾아내는가?

요구 조건을 찾아내는 경로는 매우 다양한데, 대략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고객 피드백

가장 중요한 경로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 이를 잘 잡아내고, 잡음을 제거하고, 그 중 중요한 것을 추려내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프로덕트 매니저의 몫이다. ‘고객의 목소리를 어떻게 듣는가?’는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2. 경쟁 제품 분석

경쟁 제품을 보고 분석하는 것도 물론 당연히 중요한 절차이다. 경쟁 제품의 장점을 보고 따라할 수도 있고, 단점을 개선하여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그대로 베껴서는 안되지만, ‘창조적 모방’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틱톡은 카카오톡과 비슷하게 생겼고, 기능도 비슷하지만, 사람들이 더 빠른 속도를 원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개발했고,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카카오톡을 따라잡고 있다.

카카오톡 실행 화면

틱톡 실행 화면

3. 조직 내부 제안

제안은 어디서든 올 수 있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그 제안이 오는 경우가 사실 많이 있다. 제품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들과, 품질을 테스트하는 QA 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제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좋은 제안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모으고, 명확히 정의하고, 구체화하는 것은 PM의 일 중 하나이다.

4. 직관

PM은 대개 그 제품의 전문가이다. 따라서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어떤 기능이 추가되면 좋을지 직관적으로 알 가능성이 높다. “It’s really hard to design products by focus groups. A lot of times, people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you show it to them. (포커스 그룹을 통해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들은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 Businessweek, 1998″ 라고 했던 스티브잡스는, 직관이 가장 훌륭했던 PM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객의 목소리는 어떻게 듣는가?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이를 분석하는 것이다. 잡다하게 흩어져있는 정보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데다, 편견을 주기 쉽다. 보통 목소리는 ‘매우 만족스럽다’와 ‘매우 불만족스럽다’의 양 극단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불만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 내가 사용했던 툴이나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제안 및 투표 시스템, UserVoice

UserVoice를 이용하면 고객들이 그들이 원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다른 사람이 이미 비슷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면 그것에 투표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가격은 월 $15부터 시작한다.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원하는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오는데다, 그 아이디어에 내가 커멘트를 할 수 있고, 제안한 사람들에게 그 기능이 구현되었다는 것을 알리기도 쉽게 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유저보이스(Uservoice)의 화면. 출처:Crunchbase.com

2. 설문 조사 (SurveyMonkey)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약 20,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효과적인 설문조사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선 생략하겠다. 온라인 설문조사 툴은 Vovici, Survey Methods, QuestionPro, LimeSurvey, Zoomerang, Qualtrics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것 저것 써보고, 가격 비교를 해본 후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SurveyMonkey였다. 간단한 설문이라면 무료 계정으로도 충분히 쓸 만하고, 아니면 월 $17를 내면 된다. 설문조사가 끝난 후, SurveyMonkey가 제공해주는 분석 툴을 이용해도 되고, 결과를 엑셀로 export해서 직접 분석해도 된다. 설문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패널의 질이다. 즉, 의도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설문 조사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어느 한 지역, 어느 한 언어, 어느 한 나이대, 또는 어느 한 전문 분야로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 전체가 쓸모없게 될 수가 있다.

SurveyMonkey 화면

주관식 답변을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어려운 일 중 하나인데, 이런 경우는 Wordle과 같은 Word Cloud 툴을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결과를 전달할 수 있다. Wordle은, 많이 등장하는 단어를 더 크게 보이게 해 준다.

Wordle을 써서 만든 결과

3. 웹 로그, 다운로드 및 Usage 분석

모든 웹 서버는 로그를 기록한다. 이 로그에는 누가, 몇 시에 들어왔고, 무엇을 요청했고, 무엇을 받아갔는지에 대한 정보가 있다. 이 웹 로그를 분석하면 아주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직접 분석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툴을 이용하면 편한데, 이 분야의 독보적 1위 회사는 지금은 어도비(Adobe)에 인수된 Omniture이다. Omniture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고객 인사이트를 많이 얻을 수 있다. 한편,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구글 웹 분석툴(Google Analytics)도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Google Analytics 화면

제품 사용(Usage) 분석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어떤 기능을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데, 중요하거나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기능이 의외로 거의 사용되지 않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넣은 기능이 알고 보니 별로 쓸모가 없다든지 하는 것 등을 알 수 있다. 웹 사이트 분석할 때 히트맵(Heatmap)을 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눈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를 클릭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CrazyEgg라는 툴이 유용하다. 월 $9부터 시작한다.

히트맵의 예. 출처: crazyegg.com

4. 직접 관찰 (Follow Me Home)

사람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는 것 만큼 많이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를 적극적으로 잘 활용한 회사로는 회계 및 세금 소프트웨어 회사인 인튜잇(Intuit)이 유명하다. 창업자인 스캇 쿡(Scott Cook)은 스토어에서 사람들이 회사 제품을 사기를 기다렸다가 누군가가 제품을 사면 그 사람 집에 따라가서 제품을 설치하고 사용하는 것을 관찰했다고 한다. 하버드 MBA를 졸업하고, P&G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던 그는, 제품의 포장을 뜯고 설치하는 과정에서 고객이 혼란을 느끼면 그것은 고객 책임이 아니라 회사 책임이고, 제품의 문제점이라고 믿었다.(주: Inc.com: Scott Cook, Intuit) 이런 관찰을 통해 제품을 끝없이 개선했고, 그 결과 현재 업계 1위가 되었으며 회사 가치는 무려 17조원이 넘는다. 난 연말 세금 보고를 할 때마다 Intuit의 Turbotax 온라인 버전을 사용하는데, 쓰기가 너무 편해서 복잡한 세금 보고는 나에게 전혀 골치거리가 아니다. Intuit의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고객의 집 또는 사무실에 찾아가서 그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곤 한다고 한다. (주: What is a “Follow Me Home?”, Intuit 블로그)

5. 컨조인트 분석 (Conjoint Analysis)

사람들이 설문 조사에서 진실을 이야기할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서, 이런 질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제품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1) 20달러     2) 10달러     3) 5달러     4) 무료

또는,

저희 제품이 클라우드 자동 백업 기능을 추가한다면 얼마를 더 낼 의향이 있습니까?
1) 20달러     2) 10달러     3) 5달러     4) 추가 지불 의향 없음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대부분 5달러 또는 무료라고 할 것이다. 그 마음은 진실이다. 그러나 이를 듣고 제품 전략에 그대로 반영해서 가격 책정을 한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이런 질문으로는 정확한 ‘지불 의사(Willingness to pay)‘를 찾아낼 수 없다. 실제로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끊임없이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한다. 비싼 게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성능과 가격을 끊임없이 재 보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소의 비용으로 가장 좋은 성능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들은 지갑을 연다. 아래 예를 보자.

1) 삼성 HDTV, 46인치, LED, 240Hz, 테두리 없는 TV: $1500 at Amazon

VS.

2) 비지오 HDTV, 55인치, LED-backlit LCD, 240Hz: $1560 at Amazon

당신은 어떤 제품을 택할 것인가?  값은 60달러 더 비싸지만 화면이 더 큰 Vizio? 아니면 브랜드와 디자인을 생각해서 크기가 작더라도 삼성? 답은 사람들마다, 그 때의 필요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화면 크기가 더 중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 이런 때에 아주 유용한 것이 컨조인트 분석이다. 파라미터를 약간씩 바꾸면서 위와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고 나면 사람들이 어떤 기능 또는 어떤 브랜드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불하기 원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분석이 끝나면, 시뮬레이션도 할 수 있고,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도 할 수 있다.

컨조인트(Conjoint) 분석으로 알아낼 수 있는 Part-worth 그래프. 각 기능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유용도(Utility) 함수를 찾아낼 수 있다. 출처: http://www.sawtoothsoftware.com/

그 이후의 절차는 무엇인가?

PRD가 1차적으로 완성되면 PM은 엔지니어 팀과 함께 항목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불분명한 내용은 없는지 보고, 구현가능 여부도 함께 검토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요구 조건을 동결(freeze)시킨다. 이 과정이 끝나면 이 문서는 PM과 엔지니어 사이의 일종의 ‘계약서’가 된다. 이제 이를 구현하는 것은 엔지니어의 몫이다. 이제부터는 PM의 역할은 줄어든다.

제품이 완성될 즈음에는 출시를 준비해야 한다. 이는 주로 마케팅 부서가 담당하지만, PM은 그 제품을 애초에 기획하고 정의했던 사람이므로, 전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PM의 몫이다.

어떤 사람들이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는가?

내가 주변에서 관찰하는 가장 일반적인 프로필은 “컴퓨터과학(Computer Science) 학사+MBA” 이다. 실제로, LinkedIn에서 ‘product manager’로 검색해 보면 그런 프로필을 가진 사람들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구글의 Product Manager로 일하는 한 MBA 동기의 프로필. 버클리에서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을, UCLA에서 MBA를 전공했다.

한편, Job Requirement를 보면 대부분 MBA가 요구되거나(required) 선호된다고(preferred)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도비(Adobe)의 product manager 포지션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 Proven track record of defining product requirements on schedule and shipping successful products.
  • MBA required.
  • Leadership experience in Business Intelligence or Customer Intelligence a plus.
  • Excellent verbal and written communication skills.

내가 일을 해 보니 MBA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포지션에 지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MBA를 마쳤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쪽이 유리하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가와 제품을 만드는 일 자체가 재미있는가이다.

그 외 필요한 스킬은?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중요하다. 세상에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겠지만, PM에게는 특히나 더 중요한 것 같다. 엔지니어 조직이 독립적으로 있고, 그 조직에 직접 명령하는 방식이 아닌 영향(influence)을 주는 방식으로 일하려면, 똑똑한 그들이 이해할 수 있고 설득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경우라면 기술적 배경지식(technical background)이 중요하다. 꼭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공학의 기본적인 내용,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본적인 내용을 아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담당하는 제품이 개발툴이라서, 실제로 개발툴을 사용하는 방법은 코딩을 해보는 것이 최고인지라 가끔 코딩을 한다. 최근엔 iOS 개발툴인 Xcode를 이해하기 위해 아이폰으로 간단한 개발을 해보기도 했다.

첨언

PM의 정의는 회사마다 다르다. 어떤 회사에서는 PM을 아웃바운드 프로덕트 매니저(Outbound Product Manager) 및 인바운드 프로덕트 매니저(Inbound Product Manager)의 두 가지로 구별하기도 한다. 한편, 프로덕트 마케팅 매니저(Product Marketing Manager, PMM)의 역할은 마케팅에 보다 집중한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어떤 회사에서는 PM이 손익 (Profit and Loss, P&L)을 관리하기도 한다.

한편, 애자일(Agile) 프로세스가 요구되는 스타트업에서는 위에서 설명했던 것 같은 절차대로 하지는 않는다.  기능을 정의하는 즉시 구현을 시작하고, 구현된 결과를 보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기존 기능을 변경한다.

참고 자료

Written by Sungmoon

January 16, 2012 at 11:07 pm

미국에서 스마트폰이 먼저 성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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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 개의 트윗을 날렸다.

예전부터 항상 궁금했었다. 휴대폰 기술이 그렇게 발달한 한국에서 몇 번을 시도해도 스마트폰이 먹히지 않았는데, 왜 기술 도입이 느리고 뒤떨어지던 미국에서 스마트폰이 먼저 성공했을까? 아이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첫 번째 제대로 된 스마트폰인 블랙베리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먼저 성공했다.

‘스마트폰’은, 사실 10년이 넘은 개념이다. 2005년쯤이었던가, 삼성에서 풀 키보드가 있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스마트폰을 만들었으나, 시장에서 인기가 없어 곧 사라졌다. 그 이후엔 PDA가 떴다. 팜 파일럿(Palm Pilot)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성공에 힘입어 몇 개 회사들이 다시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그러나 또 다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런 시장 동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다가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은, “스마트폰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조금 스마트하자고 그 거대하고 못생긴 휴대폰을 들고 다니겠는가”였다. 소위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비싸고, 타이핑하기 불편하고, 펜을 잃어버리면 쓸모없어지고 마는 기기에 불과했다. 정말로 스마트폰 같은 것이 필요한 사람은 랩탑을 들고 다니면 그만이었다. 랩탑이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지고 있었으므로 전화기는 오직 통화 용도로 쓰고, 이메일이나 웹 서핑은 랩탑으로 하면 되겠니 그 둘 사이의 시장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간단한 문자는 물론 휴대폰에서 보낼 수 있고, 건당 겨우 30원밖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휴대폰을 보지도 않고 초고속으로 타이핑할 수 있는 삼성의 천지인 키보드는 내가 보기엔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였다.

삼성 천지인 휴대폰. 이 타이핑에 익숙해졌던 나는 결코 다른 브랜드를 쓸 수 없었다.

한국 사람의 99%가 피쳐폰을 쓰고 있던 2007년, UCLA에서 MBA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왔다. 휴대폰은 뭘 사야 할까 고민하다, 학교 친구들 중 90% 이상이 블랙베리, HTC 등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을 보고 (당시는 아이폰이 탄생하기 전이었다), 나도 이메일 확인을 바로 할 수 있어야 하겠다 싶어서 HTC에서 나온 윈도우즈 기반의 스마트폰을 샀다. 이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든 생각은, “스마트폰 안 샀으면 큰일날 뻔 했다“였다. 미국 친구들은 이메일을 마치 문자 보내듯이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룹 약속 장소를 모임 30분 전에 갑자기 바꾸기도 하는데, 문자가 아니라 이메일로 이를 알렸다. 따라서 이메일을 확인할 전화기가 없으면 혼자 왕따 되는 수가 생긴다. 친구들은 이메일을 보내면서 상대방이 30분 이내에 확인할 것을 기대했다. 따라서 몇 시간이나 지나서 답장을 보내면 (조금 과장해서) 구석기 시대 사람 취급을 받았다. 또한, 학교 생활하는 동안에 하루에 100개가 넘는 이메일을 받는 것도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였다. 잠깐 잠깐 짬날때 이메일 확인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집에 가서는 숙제해야 하는데 100개의 이메일을 처리하다보면 시간이 다 가버리기 쉽다. 게다가 집에 가서 이메일을 확인했다가는 이미 내가 끼어들기 전에 친구들끼리 토론이 다 끝나 나는 그냥 통보만 받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첫 스마트폰, HTC Wing

HTC 폰을 몇 달 쓰다가 블랙베리로 바꿨다. 그리고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 HTC 윈도우즈 모바일 폰은 와이파이가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었고, 타이핑도 불편했는데, 블랙베리를 쓰니 이메일이 실시간으로 (심지어 컴퓨터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빨리) 도착했고, 타이핑하기가 너무 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피처폰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다. 블랙베리에 반해있던 나에게는 당시 첫 아이폰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 “내가 아이폰보다 블랙베리를 좋아하는 일곱 가지 이유“라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지금은 물론 아이폰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굳이 여기서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국에 살 때 문자가 싸고 대중적이라서 친구들과 주로 문자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도 주변 친구들에게 간단하게 할 말이 있을 때마다 문자를 많이 보냈는데, 한 가까운 미국 친구가 심각한 얼굴로 와서 하는 말이, 자기에겐 문자 전송 플랜이 없어 받을 때마다 돈을 내야하니 제발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는 전화를 받는 사람, 문자를 받는 사람도 돈을 내는데다 플랜이 없으면 문자 하나 받을 때마다 무려 30센트, 즉, 300원에 해당하는 돈이 나가기 때문에 문자 10개 받으면 3천원이나간다. 학생이라 돈이 넉넉치 않은데 자꾸 문자를 보내는 나에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올 만도 하다. 그런 생각을 못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친구는 블랙베리를 쓰고 있었고, 데이터 무제한 정액제에 가입해 있었던 데다, 이메일을 문자처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이메일로 의사소통하기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생각했다. 혹시 이것이 미국에서 스마트폰 문화가 발달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전화를 받는 사람도 돈을 내고, 문자를 받는 사람도 돈을 내는데, 이메일로 의사소통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없으므로 이메일을 선호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자판이다. 천지인 덕분에 엄청나게 쉽게 타이핑할 수 있었던 한글과 달리, 영어는 도무지 쉬운 방법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글이 우수한 이유가 그것이다. 한글에서는 천(.), 지(_), 인(|), 세 가지의 조합으로 모든 모음을 만들 수 있지만, 영어는 a, e, i, o, u 모두 완전히 독립적인 단어여서 조합 등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영어 타이핑을 쉽게 해주고, 몇 개의 글자만 치면 단어를 예측해서 제시해주는 다양한 방법들이 탄생했지만, 여전히 한 문장을 문자로 보내려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풀 키보드 자판이 달린 블랙베리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캐나다와 미국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모른다. 풀 키보드가 아니어도 좋다. 블랙베리 펄처럼, 기존보다 두 배만 키가 많아도 타이핑이 훨씬 쉬워진다.

처음에 미국에서 인기있었던 노키아 폰. 이것으로는 어떻게 해도 영어 타이핑하기가 무척 힘들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스마트폰, 블랙베리 펄(Pearl)

세계에서 가장 모바일 기기가 앞서 있었던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서 먼저 스마트폰이 발전하고 성공했는가를 따지자면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이 나름대로 내가 생각했던 이유이다. 그냥 랜덤하게 든 생각을 글로 옮겨 봤다.

Written by Sungmoon

November 3, 2011 at 11:0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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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를 준비하는 분들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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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A 지원 시즌이다. 지난 주에는 구글에서 열린 UCLA 앤더슨 스쿨 인포메이션 세션이(information session) 있어 동문 자격으로 참석했다.

2007년에 내 지원서를 보고 나를 뽑아주었던 사람, 지금 입학심사를 담당하는 Craig Hubbell이 학교에 관심있는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먼저 설명을 했고, 나를 비롯한 6명의 동문들은 그의 설명이 끝난 후에 참석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졸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행사에 동문으로서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 MBA 지원을 준비하며 이 학교 저 학교 인포메이션 세션에 참석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 때 나는 무엇을 알고 있었고, MBA에 대해 무엇을 기대했던가. 졸업한 후 2년이 지난 지금, 난 2년의 MBA 학교 생활을 통해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남겼는가?

인포메이션 세션에서 받았던 주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정리를 해볼까 한다. 지금 MBA 지원을 준비하고 있거나, 언젠가 미국에서 MBA를 하려고 계획하는 분들을 위한 글이다.

MBA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너무 많아서 한 가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예전에 블로그에서, 난 MBA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미국인들만큼 영어를 잘 하진 못하지만, 그들만큼 미국 문화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리더가 되어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일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둘째는,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눈이 바뀐 것이다. MBA 수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케이스 스터디이다. 하버드에서 만든 MBA 케이스는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

1987년 10월, Donner 회사의 사장인 Edward Plummer는 1988년의 기업 운영 계획을 짜기 위해 현재 회사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 후 케이스는 회사의 간략한 역사, 회사의 주요 제품, 경쟁사, 재무 제표 등을 설명한다. 거의 대부분의 케이스가, ‘내가 CEO라면 이 정보를 이용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다른 친구들의 생각과 비교해본다. 이런 훈련을 계속 하다보니, 어떤 사업이든 자연스럽게 경영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셋째, 다양한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에는 병원, 스포츠 용품 회사, 수도 계측기 회사, 자동차 부품 공급 업체, 패션 의류 디자인 회사 등에 아는 바도 없었을 뿐더러, 큰 관심도 없었다. MBA 케이스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이런 회사에 대해 배워야 하고, 그러다보니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케이스를 수백 개 다루다보면, 어느덧 어떤 비즈니스를 보아도 결국은 공통의 맥이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비즈니스란 인풋(input)을 가공(operate)해서 아웃풋(output)으로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 아닌가.

넷째, 미국 학교생활의 일면을 맛볼 수 있었다. MBA가 일반적인 석사와 색깔이 아주 다른 점인데, MBA에 진학한 학생들에겐 대개 학문의 연구가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공부 이외의 많은 활동들을 한다. 오리엔테이션, 파티, 소셜 이벤트, 클럽 활동, 학생회, 펀드레이징 활동 등을 통해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미국 대학 생활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다섯째, 마케팅에 필요한 실질적인 기술을 배웠고, 데이터 분석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마케팅 전략’, ’1:1 마케팅’ 등의 advanced marketing 수업을 가장 재미있게 들었는데, K-means clustering, Conjoint 분석, 다변수 회귀 분석, 크리스탈 볼, MarkStrat 게임 등을 직접 해보면서,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적용해서 마케팅 효과를 높이고 구매율을 높일 수 있는지 등, 전에는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생각하던 것들을 훨씬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리젠테이션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수업하다보면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일이 자주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학생들의 프리젠테이션을 볼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수업 도중,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장면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인포메이션 세션에서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다. 기회 비용을 제외하고 대강 계산한다면 다음과 같다.

일단 학비가 든다. 학비는 매년 상승하고 있으므로 지금은 1년에 5만불 정도 계산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2년이니 학비만 약 10만불이다.

여기에 책값, 케이스 구매 비용 등이 포함된다. 1년에 5천불 해서, 2년에 1만불 정도 잡으면 될 것 같다.

MBA 왔는데 공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친구들이랑 식사도 해야 하고, 가끔 맥주도 한 잔 해야한다. 클럽에서 각종 소셜 이벤트를 여는데 대개 행사마다 10~20달러 정도 든다. 이게 2년동안 1만불 정도 된다고 가정하자.

생활비는 동네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LA의 경우 월 방세가 1000달러 정도 든다. 그 외 식비, 기름값, 보험료 등을 포함한 생활비가 월 1000불 정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20개월 (2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약 20개월이다)에 $2,000*20 = 4만불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MBA 과정 동안 쓰게 되는 돈은 최소한 16만 달러 든다고 봐야 한다. 기회 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그 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가? 자기가 MBA를 하는 목적을 달성한다면 yes, 그렇지 않다면 no이다. 내 경우엔 물론 그 정도의 가치가, 아니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고, 평생동안 내가 얻게 될 것을 생각하면 절대로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UCLA MBA 좋은 점은 무엇인가? 왜 UCLA를 택했는가?

UCLA 및 앤더슨 스쿨 캠퍼스

보통 여러 학교를 지원하고 그 중 랭킹이 높은 학교를 택한다. 나는 UCLA 말고도 워튼 스쿨, 미시건, 카네기 멜론, 그리고 버클리에 지원했었다. 미국 동부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 동부 학교는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몇 개 학교는 탈락 메일을 보냈고 몇 개 학교는 웨이팅 리스트(waiting list)에 올라갔다고 통지가 오던 중 UCLA에서 축하한다며 합격 메일을 보냈기에 주저없이 UCLA를 선택했다. 2년간 학교를 다녀보니 만족스러운 점도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 2년이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전혀 후회는 없다. 일단 LA에 산다는 것이 좋았다. LA 하면 한인타운을 떠올리지만 UCLA는 사실 한인 타운보다는 산타모니카 또는 베벌리 힐즈에 가까운 곳이다. 부유한 아름다운 마을 한 가운데에 학교가 있었고, 원하면 언제든지 20분만에 한인타운에 갈 수 있었고, 태평양 바다를 보고 싶으면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게다가 일년 내내 온화하고 쾌적한 기후는 LA에서의 삶을 한층 더 즐겁게 해주었다.

통계에 의하면 UCLA 졸업생의 60% 이상이 캘리포니아에 취직한다. 내가 보기엔 캘리포니아 회사에서 UCLA 졸업생들을 더 많이 뽑아준다기보단, 학생들이 LA에서 2년 살고 나면 캘리포니아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졸업하고 당장 취직을 안하더라도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보다는 LA에 남아있으면서 기회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LA 생활의 좋은 점은?

LA에는 헐리우드 등 유명한 관광지가 많지만, 실제 살아보면 그런 곳은 갈 일이 없다. 그보다 훨씬 좋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산타모니카에 살면 매일매일 리조트에 사는 기분마저 든다. 화창한 주말 아침, 집 밖을 나와 아름다운 동네를 산책하고 조깅하던 때의 상쾌함과, 12월 한겨울에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때를 잊을 수 없다.

학교에 다닐 때 살았던 동네, LA 서부 산타모니카

학교 다니면서 1년에 한 번씩은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한국 가기에 편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도 장점이다.

LA의 코리아타운은 전설적이다. 서울만큼 세련되진 않았지만, 음식 맛으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무제한 바베큐가 인기인데, 19 달러만 내면 차돌박이와 갈비 등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데, 고기 품질이 괜찮고 친구들이 좋아해서 많이 가곤 했다.

지원서에서 주의할 부분은?

GMAT

점수가 700점을 넘어야 하는가, 아니어도 괜찮은가? 여러 번 시험 보면 불리한가? 이에 대한 대답은 없다. 결국 뽑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어느 학교나 평균 GMAT 점수를 공개하고, 이것이 학교 랭킹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GMAT에 높은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합격하고 나서 친구들에게 슬쩍 물어보니 미국인의 경우엔 GMAT 점수가 700이 안되는 경우가 좀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 분 학부 성적이나 GMAT 점수가 아주 좋았다. 대부분 비즈니스스쿨은 내국인:외국인 비율을 70:30, 또는 60:40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하고 싶어한다. 결국 외국에서 지원하는 사람들은 ’40′이라는 외국인 비율 안에서 경쟁하는 것이므로, GMAT 점수는 일단 700점을 넘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에세이

에세이를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답은 역시 없다. 돌이켜보니,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형식을 택하는 것이 좋다. 입학 전에는 너무 튀는 에세이를 쓰면 위험할까봐 많은 사람들이 피드백을 받고 어느 정도 정해진 틀에 독창적인 내용을 넣으려고 했는데, 입학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장점들이 다양한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남이 시켜서 무슨 일을 했는데 잘했다, 이런 것보다는 자신이 어떤 문제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데 어떻게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이 좋다. 이를 STAR 글쓰기라고도 한다. 즉, Situation (상황) – Task (과제) – Action (행동) – Result (결과) 순서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내가 가진 장점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주욱 나열한 후에 (Initiative, Goal-oriented, Optimistic, Passionate, …) 이 각각의 특징이 에세이, 추천서, 이력서 등등에 골고루 반영되는지 확인해서 ‘조성문’이 어떤 사람인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하는 패키지를 만들었다.

지금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돌이켜봤을 때 얻은 것은?

네트워킹 스킬

원래 학교 가기 전부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비즈니스스쿨에 있으면서는 정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모르는 사람들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훈련을 많이 한다. 학교에서 입학 때부터 워낙 강조를 하는데다, 친구들이 모두 네트워킹에 열심이라 2년이 지나고 나서 미국에서 취업할 때 즈음이 되면 어느 정도 도사가 된다. 이에 관해서는 에피소드가 셀 수도 없이 많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내 소개를 하고 전화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들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 MBA 인턴십을 풀타임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도 네트워킹의 힘이었다. 당시 인턴으로 회사 생활하는 동안 앤더슨 선배 및 디렉터, VP 등과 잠깐씩 만나고 싶다고 요청을 많이 했고 모두들 재미있어하며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보다는 짜릿할 만큼 흥미로운 일이 된다.

마케팅 지식

나는 마케팅 수업을 가장 재미있게 들었는데, 실질적으로 일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귀중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 Bass Difusion Model, Customer Lifetime Value, Customer Segmentation, Conjoint Analysis, Multivariate Regression, One-to-One marketing 등은 실제로 지금 하는 일(product manager)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학기 마지막에 네 명이 팀을 짜서 LA에 위치한 Wiredrive라는 회사의 CEO와 CFO를 정기적으로 만나며 컨설팅을 하기도 했는데, 학교 수업에서 배웠던 것을 실제로 적용해보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또 컨설팅 과정에서 CEO와 CFO의 신뢰를 얻으며 자신감도 향상되어서 나에게 잊지 못할 많은 교훈을 남겼다. 지금도 종종 그 회사 어떻게 되고 있는지 CEO에게 이메일을 보내 물어보곤 한다.

전략

비즈니스 플랜 (Business Plan) 수업 또는 마케팅 전략 수업도 잊을 수 없다. 비즈니스 플랜 수업은 10주동안 팀을 짜서 비즈니스 플랜을 만들고 발표한 후에 교수와 VC 등으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수업이다. 마케팅 전략 수업에서는 MarkStrat이라는 게임을 10주간 했는데, 회사를 만들고, 신상품을 출시하고, 광고, 유통 채널, 리서치 등에 할당할 예산을 수립하며 다른 팀과 경쟁하는 게임이다. 데이터가 워낙 상세하게 나오고, 실제 상황과 유사하게 잘 만들어 놓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정말 재미있었고, 큰 도움이 되었다.

MBA 수업 중 많이 사용되는, 가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다른 팀과 경쟁하는 게임, Markstrat. 출처: http://teamamarkstrat.blogspot.com/

졸업 후 진로는?

MBA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되는가? 한국 사람의 경우 아래와 같은 패턴이 보인다.

한국에 돌아가는 경우

  • 전략 컨설팅 (맥킨지, BCG, Bain & Company, …)
  • 투자 은행 (메릴린치, 골드만 삭스, HSBC, 삼성 증권…)
  • 대기업의 전략 또는 신사업 부서 (삼성전자, SK Telecom, …)
  • 대기업의 사내 컨설팅 부서 (두산 Tri-C)
  • 스타트업

미국에 남는 경우

  • 전략 컨설팅
  • 투자 은행
  • 대기업의 프로덕트 매니저 또는 사업개발 매니저

졸업 후 미국에 남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이 필수적이다. 오라클에 입사한 후 몇 번 면접을 해 보기도 했는데, 영어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래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지나고 나서 아쉬운 것?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참 열심히 2년간 살았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한 두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영어

한국에 있을 때 나름대로 영어 잘 한다고 자부했는데, 학교에 와 보니 크게 부족했다. 지금 하는 만큼 영어를 잘 하는 상태에서 학교를 다녔더라면 학교 생활이 몇 배 즐거웠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의견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먼저 심장이 쿵닥쿵닥하며 말할 내용을 정리하느라 머리가 빙빙 돌고, 막상 준비가 되었을 때 즈음에는 주제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놓친 적이 많았다. 그 때 훨씬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내 의견을 더 많이 펼쳤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생활이 영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어 실력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창업 경험

MBA 스쿨은 대개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해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는다. UCLA Anderson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참 많았는데, 당장 눈 앞에 닥친 취직 걱정에 학교에 있는 동안에 창업을 시도해보고 그런 기회들을 활용해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지막 조언

마지막으로, MBA 입학하기 전에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년간의 MBA 과정은 마라톤이라기보다는 100미터 경주에 가깝다. 심지어 수업 시작하기 전부터 모든 것이 정신 없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막상 학교에 입학한 후 진로를 정하겠다고 생각했다가는 친구들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을 보다가 갈피를 못잡고 헤메게 되기 쉽다. 그것이 모든 학교가 MBA 졸업 후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에세이 질문으로 채택하는 이유이다.

관련 블로그

마지막으로, 아래는 내가 MBA를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학교 생활할 때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블로그들이다.

1. Baenefit.com

‘스타트업 바이블’의 저자 배기홍씨가 만든 블로그이다. 와튼 스쿨에 입학하기 전의 마음가짐, 학교 생활에서 느낀 점 등 많은 이야기가 매우 진솔하게 담겨 있다. 특히 2007년 4월부터 2007년 12월까지의 글이 MBA 생활에 관한 것이므로 도움이 많이 된다.

2. Polylogue의 방

하버드 MBA를 졸업하고 지금은 헬스케어(healthcare) 분야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분의 블로그이다. 마찬가지로 고뇌와 고찰이 매우 솔직하게 담겨 있다. ‘MBA를 꿈꾸는 대학생들께 – 1. 적극적인 삶‘, ‘MBA를 꿈꾸는 대학생들께 – 2. 무엇을 할 것인가?‘, ‘MBA를 꿈꾸는 대학생들께 – 3. 계획하기‘ 등의 글이 도움이 많이 된다. MBA 관련 더 많은 글은 이 카테고리에 있다.

3. 호미유끌로델님의 스탠포드 MBA 합격 수기

Viki.com의 창업자로 유명한 호창성씨의 MBA 합격 수기이다. 내가 MBA 준비할 때 이 글을 읽었고, 또 운좋게 이 분을 직접 만나게 되어 지금은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지원 배경, 에세이 주제, GMAT 시험 수기 등이 매우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4. 미키 김

삼성을 거쳐 버클리 MBA를 졸업하고 현재 구글 TV 사업제휴팀장으로 일하는 미키 김 님의 블로그이다. ‘버클리 도착!‘이라는 글에는 처음 미국 도착 했을 때의 감흥이 잘 담겨 있다. ‘MBA 지원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라는 글을 추천한다.

5. R2 Extravagenza

삼성을 거쳐 미시건 MBA를 졸업하고 현재 CISCO 본사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는 노범준님의 블로그이다. 특히, ‘MBA@Michagan‘ 카테고리에 MBA 생활과 관련한 글들이 많이 있다.

6. San’s Playground

2011년 올해 스탠포드 MBA에 합격한 백산씨의 블로그이다. 특히 ‘MBA 지원기‘에 MBA 지원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주옥같은 조언이 많이 담겨 있다. ‘Typical한 하루‘라는 글은 정말 바쁜 그의 일상을 보여준다. 현재 MBA 1학년이므로, 앞으로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이 블로그에 많이 담길 것 같다.

Written by Sungmoon

October 19, 2011 at 10: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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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leyInside(밸리인사이드)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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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블로그를 시작한 지 거의 2년이 되어갑니다. 2009년 11월 22일, ‘내가 느끼는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블로그의 첫 번째 글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제 개인 홈페이지에 10년간 끄적끄적 글을 남겼었고, 텍스트 큐브를 이용해서 이따금씩 블로그를 쓰기는 했지만, 워드 프레스로 옮긴 후 도메인을 구입하며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건 그 때부터입니다.

그동안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올린 글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며 의견을 주시는데, 더 많이 배운 쪽은 오히려 저입니다. 블로그를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아는 것이 늘어났고, 블로그 올린 후 댓글을 통해 제가 생각하지 못한 면들을 알게 되었고, 블로그를 알리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보면서 사이트 트래픽을 늘리는 방법을 깨달았고, 그리고 방문 기록 통계를 보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글은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들했고, 어떤 글은 별 기대 없이 1시간만에 뚝딱 썼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다보니 이제 예측력이 생기더군요. 이번 글은 아마 천 명 정도가 볼 것 같다. 이번 글은 만 명에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요. 신기하게도 이제 거의 예측이 들어맞습니다.

이 블로그의 전환점이 된 사건은 2010년 3월에 일어났습니다. 그 날이 사실 제 생일이었습니다. 웬일인지 아무 할 일이 없더군요. 혼자 조용히 방에 있다가 적적해서 그동안 마음에 담아왔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검색 엔진 시장의 7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지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단순 비난으로 끝나면 안되겠기에 그 전부터 모아왔던 증거를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 인터넷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그 이름은 네이버‘라는 글을 포스팅하고, 트윗하고 나서 새벽 2시까지 잠을 못잤습니다. 리트윗과 코멘트가 끝없이 올라왔기 때문이지요. 그 정도로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순식간에 방문자가 늘더니 하루만에 만 명이 넘게 방문했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NHN의 김상헌 대표가 ‘비판을 경청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미투데이에서 이 글에 대한 의견을 올렸습니다(자세한 내용을 후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자 오늘의 유머 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판 또는 회사 사내게시판 등에 글이 실리기 시작하면서 방문자가 더 늘어났습니다. 3일만에 무려 800명이 넘는 사람이 트윗을 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람들이 방문해서 이 글을 읽고 있습니다.

블로그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내가 좋은 정보를 접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또는 그런 것들을 통해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면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서비스인 민트 이야기도 쓰고, 넷플릭스 기업 문화 이야기도 쓰고, 아마존의 유저 인터페이스에 대해 느낀 점도  쓰고, ZipCar 이야기도 썼습니다. 제가 얻은 깨달음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며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사실, 가끔 블로깅에 소홀해지고 다른 곳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따금 댓글을 올려주시는 분들을 통해 다시 힘을 얻고, 새로운 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또 글을 써서 올리곤 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감동을 주고, 힘을 주었던 댓글이 있습니다. 오늘 나를 웃게 만든 글과 울게 만든 글이라는 글 아래에 누군가 붙여주신 글입니다.

아침 사무실에 와 어제 디자인하는 친구가 알려준 네이버 잘못 끼워진 단추… 편을 다시 읽어 보다 이 포스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펑펑울었습니다.
왜 우는 지도 모르면서 울었습니다.
료마도 만화책으로만 알고, 손정의도 대단한 기업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내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제가 감동을 받아서 공유한 것인데, 이렇게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감동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새벽에 일어나고, 아니면 남들보다 늦게 자면서라도 계속 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이지요.

아래는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가장 인기 있었던 10개의 글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방문 수가 38만입니다.


Home page 119,091
한국 인터넷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그 이름은 네이버 (NAVER) 47,786
넷플릭스 (Netflix) 성공의 비결은 우수한 기업 문화 16,020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려면 12,770
무엇이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가? (Harvard Business Review) 11,706
내가 영어 공부한 방법 9,580
안철수 교수의 실리콘 밸리 강연 8,537
Who Am I? 8,488
페이스북(Facebook) 창업자 마크, 그에게서 배우는 교훈 7,343
아마존(Amazon) 성공의 비결은 소비자 경험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6,795

이런 통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 블로그의 제목도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지난 5월의 일입니다. 제가 즐겨 가는 레드락 카페에서 아내와 마주 앉아 안철수 교수님의 강연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손가락이 춤을 추는 듯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손가락에서 나오는 글자 하나하나를 통해, 제가 안철수 교수님에게 받았던 감동과 가르침을 보다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신이 났습니다. 5월에 포스팅한 후 지금까지 만 명이 넘는 분들이 이 글을 봤습니다. 그 때 안철수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 계속해서 되새겼던 것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둘 때면 아래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고 했습니다.

  • 의미 있는 일인가?
  •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가?
  •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봤습니다. 나에게 그런 일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떠올랐는데, 그 중 가장 위에 올라온 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글을 통해 다른 분들께 감동을 전달하니 의미가 있었고, 쓰면서 스스로도 신나고 재미있었고, 또 오랫 동안 해왔던 일이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소식을 전해주는 미디어를 만드는 것입니다. 미디어라고 말하니 거창하지만, 어쨌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블로그보다 조금 더 확장하고 집중해서 실리콘밸리에 특화된 사이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하워드님에게 연락했습니다. 하워드님은 야후에서 비디오 프로덕션 전문가로 계신 분입니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엄마들를 위한 ‘베이마미‘라는 잡지도 창간해서 운영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 하워드님은 디자인과 영상을 담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했더니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며 즉시 수락했습니다.

이름도 정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어감,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인사이트 등을 모두 담는 이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닷컴 도메인도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ValleyStory, SiliconValley, InsideSiliconValley, ValleyInsider 등등 이것 저것 해봤는데 남는 도메인이 없더군요. 그러다가 찾은 이름이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 도메인 등록이 안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재빨리 .com과 .net 도메인을 구입했습니다. 트위터 계정과 유투브 계정 등도 만들었습니다. 밸리인사이드가 미국인에게 문법적으로 딱 들어맞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ValleyInsider 또는 InsideValley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디시인사이드(DCInside)에 익숙한 한국 분들에게는 듣자 마자 감이 오고 외우기도 쉬울 것이라는 생각에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현재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제 개인 블로그도 그대로 유지할 것이고, 소중한 아내와도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기 때문에 업데이트를 자주 하지는 못하겠지만, 좋은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잊지 않고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참여하실 분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믿구요.

새로운 블로그에 두 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하나는 ‘애플 스토어 성공의 비결‘입니다. 애플 스토어에 들어갈 때마다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으로 옮겨가고, 대부분의 전자 제품을 아마존에서 사는 시대에, 왜 애플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해서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는 것일까. 패션 아이템도 아닌데 오프라인 매장을 넓혀가는 경우는 드물고, 그렇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기대하기 힘든데, 왜 유독 애플 스토어에만 가면 항상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크리스마스 시즌 같은 경우는 오히려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곳의 애플 스토어를 들러 보고, 가서 사용해보고, 지니어스 바(Genius Bar)도 이용해 보고, 또 매장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2년동안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페이스북 마케팅 전략팀장, 조용범‘이라는 글입니다. 실리콘밸리에 살아보니 주변에 참 대단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첫 인터뷰 대상으로 저와 가까이 지내는 조용범(Benjamin Joe)을 선정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의 영향이 커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 온 인생을 통해 제가 많이 배웠고, 다른 분들에게도 그 배움을 전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밸리인사이드에 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문을 닫느냐구요? 아닙니다. 여긴 보다 더 개인적인 제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제 생각 위주의 글은 여기에 계속 올릴 것이고, 밸리인사이드는 인터뷰 위주의 블로그가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실리콘밸리 문화 이야기, 그리고 이 근처의 제가 가 본 중 좋았던 숨은 여행지 등에 대한 이야기도 올릴 것입니다. 지금만큼 자주 이 곳에 업데이트를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블로그는 제가 평생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은 곳이니 제 삶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담기게 되겠지요.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2011년 10월 16일

조성문 드림

Written by Sungmoon

October 16, 2011 at 6:08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