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콜 문화

우리 회사는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고객의 대부분은 이 근처가 아닌 미국 동부 또는 유럽에 있다. 뉴욕, 런던, 그리고 LA가 음악 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불편하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이 이메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멀리 있는 고객을 위해 굳이 지사를 두거나 내가 그 곳으로 가야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콜 문화’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이 가까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리고 미국 땅 자체가 커서인지는 몰라도, 미국은 정말 전화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내 캘린더의 오전 시간은 이런 짧은 전화 통화 약속들로 차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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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주의 내 캘린더

오라클에서 일할 때, 내 상사가 Senior Director (부장급)였는데, 그 사람의 달력을 볼 때마다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30분 또는 한 시간짜리 전화 약속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사무실에서는 항상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난 이 사람이 뭐 이렇게 전화를 많이 하나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자신의 상사와, 직원들과, 고객들과, 그리고 파트너들과의 의사 결정 대부분을 전화로 하다 보니 그렇게 전화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일과가 전화 통화로 차 있다보니, 스타트업의 CEO로서 좋은 점은 그들의 시간을 얻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루 평균 10개의 30분짜리 콜을 한다고 하면 금요일을 제외하고라도 일주일에 40명과 대화를 할 수 있고, 한달에는 160명이다. 그러다보니 정말 큰 회사의 임원이라 할 지라도 2~3주만 기다리면 전화 약속이 잡히고, 약속이 잡히면 그 사람과 반드시 직접 전화 연결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직급이 낮거나 의사 결정 권한이 없는 사람과 서로 시간 낭비를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 회사의 직원과 연결이 되더라도, 30분의 전화 후에는 그 사람이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을 찾아 바로 연결을 해 주거나, 전화할 때 그 사람을 회의에 초대한다. 그래서 계단을 밟고 올라가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하면서 올라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나를 연결해줄 때도, 상대 회사에서 정확하게 우리 회사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사람과 연결을 해 주는 것이 관행이고 일반적이다. 아래는 얼마 전에 누군가가 나를 다른 회사의 임원과 연결해주면서 보낸 이메일이다.

***,
Long time! Hope all is well. Wanted to introduce you to Sung over at Chartmetric. Not sure if you have been following them but they are doing some amazing things with the Spotify data and API and I thought the two of you should meet. They have pretty much become the gold standard when it comes to Spotify Playlist analytics. In the past, I enjoyed our conversations on everything Spotify and Playlisting and was hoping you could point Sung in the right direction when it comes to doing something more strategic with you guys (hopefully you already use their tools)….

Sung,
*** is the Vice President, Streaming & Playlisting Strategy at *** Records. She is a brilliant mind who saw all this coming while she was still at Sony. We worked together on some of the first Pre-save campaigns we did and was always impressed by her knowledge and insight and just her ability to get things done at Sony. Hopefully the two of you can connect and do something meaningful.

내가 답장을 보낸 후 바로 그 사람에게서 답장이 왔고, 서로에게 맞는 시간을 찾기 위해 자신의 비서를 이메일에 추가했다. 그가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 할 지라도 1~2주 후에 반드시 전화 약속이 잡힐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경우에 30분의 전화 통화면 중요한 이야기를 다 나눌 수 있다. 처음 5분은 각자 소개에 쓰고, 다음 15분동안 제품 소개를 하며 우리가 왜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이야기하고, 다음 10분은 그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하면 될 지를 이야기한다. 굳이 내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거나, 저녁을 먹고 술을 먹으며 2~3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 친구 사이로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아래는 지금 읽고 있는 리처드 브랜슨의 자서전, ‘Losing My Virginity‘의 한 대목인데, 전화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영국과 미국 기업 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Nervously, I picked up the telephone, called Boeing and asked to speak to the CEO, Phil Conduit. I asked him whether, if we bought ten new Boeing 747-400s, he would throw in the individual seat-back videos in economy class. Phil was amazed that anyone was thinking of buying planes during that recession, and he readily agreed. I then called Jean Pierson at Airbus, and asked him the same question about the new Airbus. He agreed. After a few further enquiries, we discovered that it was easier to get £4 billion credit to buy eighteen new aircraft than it was to get £10 million credit for the seat-back video sets. As a result, Virgin Atlantic suddenly had a brand-new fleet of planes, the youngest and most modern fleet in the industry, at the cheapest price we’ve ever been able to acquire planes before or since.

– Richard Branson, “Losing My Virginity”, p399.

초초해하며 나는 전화기를 들어 보잉에 전화해서 CEO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보잉 747 10대를 살테니 이코노미 클래스 의자에 스크린을 설치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경기 불황 중에 비행기를 사겠다는 것을 놀라하며 즉시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곧 에어버스(Airbus)의 CEO에게도 전화했다. 그도 역시 해주겠다고 했다. 몇 번 더 전화 끝에, £4B (약 6조원)의 융자를 받았고, 우리는 업계에서 가장 최신형의 비행기를 가장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무려 6조원을 빌려서 비행기 수십 대를 산 과정이 전화 몇 통화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겨우 몇 시간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진 않았겠지만, 몇 시간만에 일어났다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리처드 브랜슨도  그렇고, 전화 통화를 한 상대방 역시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CEO들이었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조원의 기업가치를 지닌 회사의 CEO가 다른 스태프들에게 물어보거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사업을 하면서 다른 회사의 CEO들과 직접 통화를 할 일이 많았는데, 그들이 얼마나 자세한 부분까지 깊이 알고 있는지를 보며 놀란 적이 많다. 그래서 나 역시 그들이 궁금해할만한 매우 자세하고 기술적인 내용까지도 항상 기억하게 된다. 몇달 전 큰 이슈가 되었던 페이스북의 개인 정보 사건과 관련해서 지난 4월 마크 저커버그가 미국 의회 앞에서 소위 ‘청문회(Senate hearing)’를 했었는데, 이를 들어보면 얼마나 그가 페이스북의 정책과 기술에 대해 얼마나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래는 나를 가장 감동시킨 마크 저커버그의 답변 (비디오 보기):

It’s clear now that we didn’t do enough to prevent these tools from being used for harm as well. That goes for fake news, foreign interference in elections, and hate speech, as well as developers and data privacy. We didn’t take a broad enough view of our responsibility, and that was a big mistake. It was my mistake, and I’m sorry. I started Facebook, I run it, and I’m responsible for what happens here.

우리가 이 도구들이 나쁜 목적 – 가짜 뉴스, 외국인의 선거 개입, 비방, 개인 정보 침해 등 – 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충분한 조취를 취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에 대해 충분히 넓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것은 실수입니다. 그것은 제 실수이고, 그래서 사과합니다. 제가 페이스북을 시작했고, 지금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국회 앞이고, 청문회를 시작하기 전에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을 할 때 마크의 표정을 보면 정말 진지하고,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실제로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의사 결정에 모두 관여하지 않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미국과 서양의 기업 문화에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이렇게 위로 올라갈수록 디테일에 강하고 의사 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러한 상사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다. 불필요하게 외부 미팅에 끌려다니며 수행원 행세를 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가장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전문적인 일을 하는 데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전문성을 오랫동안 쌓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값이 높아지고, 다른 회사에서 곧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이런 현상이 극대화되어 모든 직원들이 소위 ‘전문직’의 품위와 보상을 누리는 곳, 그 곳이 실리콘밸리가 아닐까 한다.

[1] 구글에서 ‘콜 문화’로 검색해보니 에스티마(임정욱)님이 2016년에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을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갑에게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되고, 전화로 대부분의 논의를 하는 것이 처음에 신기했다는 내용. https://estimastory.com/2016/01/24/conference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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