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듣는 팟캐스트 두 개 소개

1. Masters of Scale with Reid Hoff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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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이 끝나고 나서 시즌 2가 언제 시작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이번주 에피소드는 다름 아닌 슬랙(Slack)의 창업자인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드 호프만 씩이나 되는 바쁜 억만장자가 자기 시간을 들여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걸 일일이 편집해서 (물론 팀이 있지만) 팟캐스트를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다니, 팟캐스트가 정말 대세이긴 하다.

그가 호스트이다보니 실리콘밸리에서 그가 부를 수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정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연진이 너무나 화려하다. 에어비엔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 Walker and Co. CEO 트리스탄 워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 알파벳 의장 에릭 슈미트,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 등.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시간을 한 시간씩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도 공짜로.

이들을 인터뷰하며 호프만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스케일’. 즉, 스타트업을 처음 시작하고, 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이들 CEO들이 그 순간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파고들어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배울 점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이 팟캐스트가 독특한 점은, 단순히 질문과 답변 형식이 아니라는 것. 그들을 인터뷰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중간 중간에 리드 호프만이 끼어들어 설명한다. 왜 그들의 말이 옳은지, 왜 스케일한다는 것은 스케일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인지, 어떻게 그 자신도 링크드인을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는지를 부연 설명하는데, 너무나 친절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기분이다.

특별히 어느 에피소드가 더 재미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흥미진진하다. 에어비엔비 창업 스토리는 이미 익숙하지만, 브라이언의 입을 통해 들으니 또 들어도 재미있었고, 마크 저커버그 에피소드에서도 처음 듣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다. 특히 그가 페이스북을 만들기 전에 어린 시절(12살)때부터 만들었던 앱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페이스북 초기 시절에 내렸던 제품에 대한 고민과 결정들을 들으면서 페이스북이 결코 우연이나 운에 의해 탄생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CEO로서 그가 내린 수많은 의사 결정 중 제품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한 이야기이다. 그는 일생을 거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에 가장 관심이 있었고, 그것을 원칙으로 삼아 제품의 아주 구체적인 부분까지 의사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페이스북이다.

얼마 전에 UCLA Anderson (MBA) 출신 CEO 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 연사가 아래와 같은 질문을 했다.

“CEO로서 당신이 회사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가?”

참석자들이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대답했는데, 내가 했던 대답은 ‘제품과 관련된 의사 결정’이었다. CEO로서 회사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있고, 좋은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 것도 있고, 또 고객을 만나고 그들을 데려와야 하는 것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가 회사에 한 가장 큰 기여는 제품의 방향을 결정한 일들이었던 것 같다. 고객들이 요청하는 기능은 무척 많고, 우리가 그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 또한 매 순간 변하기 쉽다. 내 스스로가 엔지니어였었고 (지금도 엔지니어이고), 또 오라클에서 제품 관리자 역할을 해봤던 것이 이런 결정을 빨리, 그리고 맞게 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2. How I Built This (by Guy Raz)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무언가를 만든 사람들을 한 명씩 인터뷰하며 만든 팟캐스트. 비슷한 목적의 팟캐스트는 많지만 이 팟캐스트가 유난히 빛나는 이유는 진행자가 가이 라즈(Guy Raz)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가 지금까지 빌게이츠, 에미넴, 테일러 스위프트, 지미 카터, 알 고어 등을 포함해 6,000명을 넘게 인터뷰했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인터뷰어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그의 인터뷰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항상 ‘행동의 동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이미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내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Guy 앞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게 실력이다. Ted Radio Hour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이미 귀에 익었는데, 이 How I Built This 시리즈는 그의 매력을 또 다른 차원에서 발산한다.

아래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최근 에피소드들, 그리고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

  • Southwest Airlines: Herb Kelleher
    • 변호사이던 그가 텍사스에서 항공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50만달러를 투자받았으나, 당시 대형 항공사가 소송을 거는 바람에 4년동안 비행기 한 대도 띄우지 못하고 투자금을 모두 날린 사연
    • 즐겨 먹는 ‘와일드 터키(Wild Turkey)’가 그를 항상 낙천적인 사람으로 만든 사건
  • Starbucks: Howard Schultz
    • 맨하탄에서 제록스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그가 시애틀 출장갔다가 커피 향에 반해, 당시 커피 원두만을 팔던 ‘스타벅스’에 1년동안 졸라서 겨우 취직하고, 또 창업자들을 설득해 매장에서 커피를 직접 팔게 된 이야기
    • 이탈리아 출장에서 사람들이 여유 있게 커피를 즐기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제 3의 공간‘을 생각해내고, 이를 스타벅스에 적용한 이야기
    • 자기 자신의 투자자들에게 배신을 당해 스타벅스를 잃을 뻔하다가, 같이 농구하던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빌 게이츠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를 통해 구원을 받은 이야기
  • Chipotle: Steve Ells
    • 공장에서 만들어져 배급되는 맥도널드 방식의 패스트 푸드에 반기를 들고, 그 날 매장에서 썰어 그 날 파는 신선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멕시칸 레스토랑을 만들게 된 사연
    • 맥도널드의 투자를 받아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지만, 결국 철학이 맞지 않아 다시 갈라서게 된 사연
  • WeWork: Miguel McKelvey
    • 건축을 공부하고 맨하탄의 한 건축 사무실에 취직한 그가, 사무 공간을 임대하는 아이디어를 얻기까지의 과정
    • 2009년 경제 위기에 맨하탄의 빌딩들이 줄줄이 비어갈 때, 과감히 도전해서 사업을 키워가는 이야기
    • 위워크(WeWork)라는 이름을 생각해내게 된 계기
  • Five Guys: Jerry Murrell
    • 텍사스에서 가족을 위해 버거를 굽던 아버지가, 멀쩡한 직업을 그만 두고 햄버거 가게를 차린 사연
    • 아들 4명이 모두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아 일을 하고, 궁극적으로 Five Guys를 미국 전역에 퍼뜨린 이야기
    • ‘Five Guys’라는 이름이 자신과 네 명의 아들을 지칭하는 뜻이라는 것
  • Whole Foods Market: John Mackey
    •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가 사 오는 즉석 음식에만 익숙해진 그가, ‘건강’과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결국 야채가게 직원으로 취직해서 자신의 인생을 찾게 된 이야기
    • 텍사스 오스틴에서 시작한 작은 오가닉 스토어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차 유명해진 과정
    • 홍수로 인해 모든 걸 날리고 사업을 접기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
    • ‘Organic Foods’ 등 다른 이름을 제치고 ‘Whole Foods Market’이 이름으로 선정된 사연

참고로 아래 팟캐스트들은 너무나 유명해서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지만, 혹시 아직 못 들은 분을 위해 몇 가지 추가한다.

  • 시리얼(Serial)
    • 1999년, 발티모어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이해민(Hae Min Lee)이 어느날 실종되고, 인근 공원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당시 그의 남자친구였던 아드난 사이드(Adnan Syed)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다른 학교 친구의 증언으로 아드난이 감옥에 수감된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일까?
    • 진행자인 사라 쾨닉(Sarah Koenig)은 당시 사건을 기록한 수천 건의 문서를 다시 뒤지며, 어쩌면 아드난이 살해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이 사건을 되짚는다. 마침내 아드난과의 인터뷰까지 시도.
  • 스타트업(Start-Up)
    • NPR 출신인 알렉스 블룸버그(Alex Blumberg)가 안정적인 회사를 나와 팟캐스트 회사를 차리고, 동업자와 지분을 협의하고, 벤처캐피털리스트를 만나 투자를 받고, 회사를 성장시키까지의 과정을 스스로 녹음해서 생생한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 특히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크리스 사카(Chris Sacca) 앞에서 엘리베이터 피칭을 하다가 제대로 실패하고 당황하는 장면은 최고다. 당시에 미국 투자자들을 만나 내가 제대로 피칭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렉스가 버벅대는 것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
    • 시즌 1을 들어야 한다.
  • TED Radio Hour
    • 위에서 소개한 가이 라즈(Guy Raz)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TED를 보며 영감을 얻고 싶은데 일일이 볼 시간이 없다면, 라디오 형식으로 편집되고, 연사의 인터뷰까지 담은 이 팟캐스트가 매우 유용하다. 나는 운전할 때 가끔 듣는데, 들으면서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었다.

라이너(Liner) – 사파리 익스텐션

라이너에 사파리 익스텐션(Safari Extension)이 추가되었다. ‘익스텐션’은 사실 너무 어려운 말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사파리 브라우저에서도 라이너를 쓸 수 있게 됐다. 아래와 같은 예쁜 다운로드 페이지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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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사파리 익스텐션

나는 사파리 브라우저를 주로 쓰기 때문에(가장 큰 이유는 아이폰과 맥북에서 서로 연동되어 있는 키체인(keychain), 즉 로그인 암호 저장 기능이다) 그동안 하이라이팅이 필요할 때마다 크롬 브라우저를 열곤 했지만 이제는 어떤 순간에든 ‘~’ 키만 누르면 미디엄(Medium.com)에서처럼 하이라이트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하이라이트는 내 피드에 저장되고, 필요할 때는 워드 파일이나 에버노트 등으로 내보내기(export)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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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getliner.com)를 써서 미디엄(Medium)에서처럼 하이라이트할 수 있고, 메모도 남길 수 있다.

이 툴에 대해서는 전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하이라이팅 유틸리티‘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서 소개한 적이 있고, 지난 달에는 ‘미국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디지털 형광펜‘이라는 제목으로 아웃스탠딩에 소개되었는데, 정말 제품의 핵심 가치에 고도로 집중하는 너무나 훌륭한 회사이다.

항상 그렇듯, 한 가지에 집중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고, 더욱이나 그것에 오랫동안 시간을 쓰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너무 많아 보이지만, 제품을 더 다듬고 다듬을수록 어느새엔가 경쟁이 사라지고, 세상에 없는 유일한 제품을 가진 회사가 된다. 라이너의 가장 큰 경쟁자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회사 하일리(highly.com)였다. 라이너 개발 초기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회사 공동창업자들인 에릭(Eric Wuebben)과 앤드류(Andrew Courter)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일에 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1 million (약 10억원)의 초기 투자도 받았다고 했다(후에 미디엄 창엄자 에반 윌리엄스의 투자도 받았다). 하지만 라이너가 끝없이 혁신을 거듭하는 동안 하일리는 10개월 전 iOS 제품을 내놓은 뒤로 멈춰 서 있고, 지금은 크롬 스토어에서 라이너 유저(24,985)하일리 유저(16,205)보다 훨씬 많다.

옛날에 지인이 그랬다. 한 가지 제품을 10년동안 파는 사람 봤냐고. 한 가지 제품을 10년 파면, 이 세상에 그걸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이 된다고. 실제로 그 분이 아는 사람이 그렇게 10년동안 한 가지만 팠고, 전 세계 사람들이 쓰는 (나를 포함해서) 사진 편집 툴을 만들어 실제로 돈도 많이 벌었다.

10년 동안 파기. 쉽지는 않다.

 

Disclosure: 저는 라이너(Liner)를 만든 회사 아우름플래닛의 초기 멤버이자 주주입니다.

미디엄(Medium)이 새 로고를 만든 과정

블로그 미디어인 미디엄(Medium)의 로고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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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의 예전 로고

나는 사실 이 로고가 마음에 들었다. 멀리서 봐도 미디엄의 브랜드가 확실히 살았고, 미디엄의 UI를 상징하는 정갈한 폰트도 좋았다. 굳이 왜 바꾸려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 이 로고는 너무 단순했고 흔했다. 그냥 M이라는 글자 하나일 뿐이었으니 다른 로고들과 좀 혼동이 되기도 했다. 특히 미시건 대학 로고와 좀 비슷했다. 그 외에 글자 M으로 시작하는 어떤 회사가 이런 비슷한 로고를 쓴다 해도 막을 수 없다는 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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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건 대학 로고

그래서인지, 이번에 미디엄 웹과 모바일 앱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새로운 로고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는데 그 글이 참 재미있다. 나는 이렇게 뭔가를 만들면서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설명하는 글들이 좋다. 그래서 나도 제품을 만들면서 배운 것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고, 앞으로 그런 글들을 더 많이 쓰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래는 새로운 로고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미지들. 뭐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쏙 드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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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지막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거기서부터 발전시키기 시작했고, 아래와 같이 색 변화를 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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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각 글자별로 세로 크기와 기울기를 조금씩 바꾸면서 비교해본다. 어느 정도 높이가 적당한지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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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가로, 세로 길이를 변화시키며 최적의 디자인을 찾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탄생한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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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의 새 로고

이 디자인이 전보다 더 좋든 말든, 더 마음에 들고 안들고를 떠나서, 이렇게 새로운 로고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글을 읽고 나면 로고, 그리고 이 브랜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디테일한 것에 정성을 들이는 회사라면 제품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정성을 들이고 사용자의 편리함과 개인 정보 보호를 신경쓰지 않겠는가.

미디엄의 CEO인 에반 윌리엄스(Ev Williams)는 새로운 로고를 포함하여, 미디엄에 추가된 새로운 기능들을 언급하는 글을 한 편 썼는데, 이 글 또한 매우 흥미롭다. 내 눈을 사로잡은 한 대목:

I’m proud of where we are, but, as I like to say: There’s always another level. (현재의 모습도 자랑할만 하지만, 나는 항상 “그보다 더 윗단계가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미디엄의 기존 버전이 너무나 훌륭하고 디자인도 완벽해서 ‘어떻게 그보다 더 좋아질 수 있은가’라른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이번 업데이트를 보며 미디엄이 그 다음 단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웹 뿐 아니라 모바일 앱도 크게 개선되어 쓰기가 더 즐거워졌다. 이제 미디엄에 돈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Liner 앱 다음 버전 작업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폰트를 골라내느라 수시간을 소비했다. 수백가지 종류의 폰트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다음 폰트 사이즈를 조금씩 조정하고, 다른 앱과 웹사이트들이 사용한 폰트와 느낌을 비교하고, 거기에 색깔까지 조금씩 변경하며 최적의 폰트와 크기, 그리고 색깔을 찾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들일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공을 들였다. 공방과 고민 끝에 이전에 쓰던 Apple SD Gothic을 버리고 구글 Lato 폰트를 선택하기로 했다. 단순히 regular / bold type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총 다섯 가지의 두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았고 UI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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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Lato 폰트

아래는 새로운 폰트를 적용해 구성한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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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무심코 지나갈 일이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작은 점 하나를 어디에 어떤 색깔로 찍을까도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의 과정들을 설명하는 글들이 요즘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미디엄이다. 그래서 난 이 블로그 미디어가 좋다. 3년 전에 에반 윌리엄스가 새로 만들게 될 웹사이트의 설명하는 팟캐스트를 들었을 때는, ‘이미 블로그는 넘치도록 많고 디자인도 좋은데다 블로깅 툴 시장은 워드프레스가 장악했는데 뭐하러 또 새로운 걸 만들려고 하지?’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공을 들여 만든 멋진 제품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

소프트웨어에 돈을 내는 것이 좋은 이유

If you are not paying for it, you are the product being sold(돈을 내지 않으면 당신 자신이 상품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고객이 돈을 내지 않으면 회사는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대개의 경우 고객의 정보를 팔게 된다는 뜻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그리고 네이버 등이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무료이며, 당연히도 이들 회사는 고객 정보를 분석하여 이들을 광고주에게 제공하고 광고를 게시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

약 5년 전 처음 워드프레스에서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했던 고민 중 하나가 설치형으로 할 것인가 가입형으로 할 것인가였다. 설치형으로 하게 되면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서버 호스팅에 돈을 내야 하고 서버를 직접 책임져야 하며, 가입형으로 하게 되면 즉시 계정을 만들고 블로그를 시작할 수 있지만 나만의 도메인 이름을 사용하고 싶으면 매년 13달러를 내야 한다. 연 13달러는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되어 처음부터 돈을 내기 시작했고, 여기에 더해 커스텀 디자인(CSS, 폰트)를 위해 연 30달러, 그리고 광고를 없애는데 연 30를 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워드프레스에 고정적으로 연 73달러씩을 낸 지가 5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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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블로깅 플랫폼, 워드프레스 (WordPress)

처음에는 내라고 하니까 냈지만, 몇 년동안 돈을 내고 써보니 이렇게 보람 있게 돈을 쓰는 방법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5년간 워드프레스는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관리자 페이지가 강화되었고, 글쓰기 모드가 훨씬 쾌적해졌으며, 무료 테마가 계속해서 추가되었고, 그 외 다양한 새로운 기능도 추가되었다. 매년 말이 되면 1년간의 통계를 보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서버 관리를 워낙 잘 해 주어서 서버가 다운되거나 해킹되는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내가 돈을 내는 만큼 혜택을 누린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3일 전에는 워드프레스가 또 한 번 Billie라는 이름으로 업데이트되었는데, 마침 내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처럼 그동안 내가 원했던 기능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이런 긍정적은 피드백들을 계속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 계속해서 돈을 내고 싶고, 그만큼 서비스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진다.

그 외에도 내가 기꺼이 돈을 내고 쓰는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들이 많다.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판도라 라디오도 월 3.99달러를 내고 쓴 지 오래됐고, 최근엔 스포티파이(Spotify) 월 9.99달러의 유료 회원 가입을 했고, 온디맨드 코리아는 그동안 돈 안내고 버티다가 최근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기 위해 월 6.99달러를 내고 프리미엄 회원이 되었는데, 회원이 되고 나니 광고가 전혀 나오지 않아 정말 쾌적해서 진작 프리미엄 회원이 될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내가 즐겨 쓰는 프로토타이핑 툴인 발사믹 마크업(Balsamiq Mockups)은 몇년 전 89달러를 주고 사서 계속 쓰고 있고, 태크스 관리 툴은 약 60달러를 주고 Things를 사서 썼는데, 그 이후 계속해서 만족스럽게 쓰고 있다. 일기는 약 15달러를 주고 Day One을 사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만족스럽다. 코딩할 때 가장 즐겨 쓰는 툴인 Sublime 텍스트 에디터는 무료로 써도 기능상의 제약이 없지만 이런 훌륭한 제품을 만든 개발자에게 보답하고 싶어 79달러를 냈는데 뿌듯한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써온 마크업 툴, 발사믹 마크업(Balsamiq Mockups)
오랫동안 써온 마크업 툴, 발사믹 마크업(Balsamiq Mockups)

페이스북과 구글 서비스들을 제외하고, 내가 정말 잘 사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내지 않고 사용하는 대표적인 서비스 몇 가지를 꼽으라면 드롭박스(Dropbox), 에버노트(Evernote), 텔레그램(Telegram), 그리고 선라이즈 캘린더(Sunrise Calendar)이다. 선라이즈 캘린더는 무료 버전만 제공하니 어쩔 수가 없고 (얼마전 회사가 MS에 약 1천억원에 팔렸다), 드롭박스는 프로 버전이 너무 비싼데다 (연 99달러), 프로 버전의 혜택이 1TB의 저장 공간인데 나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기능이어서 돈을 못 내고 있다. 연 10달러에 30GB 정도의 저장 공간을 제공한다면 잠재 고객이 많을 듯하다. 에버노트의 경우, 지금의 무료 기능으로 충분한데다 프리미엄 버전이 제공하는 추가 저장 공간은 전혀 필요치 않아 돈을 안내고 쓰고 있는데, 역시나 그러다보니 별로 애착이 안생긴다. 그래서 심플노트(Simple Note)와 같은 다른 노트 앱을 발견하게 되면 기웃거리게 된다. 이 점이 재미있다. 무료로 쓰는 소프트웨어는 언제 서비스를 중단하더라도 이상하지 않고, 내 개인정보를 얼마만큼의 노력을 들여 보호하고 있는지 보장이 안되고, 오랜 기간동안 충성도를 가지고 쓰게 되기가 힘들다. 게다가 무료 소프트웨어들은 임의로 서비스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현존하는 가장 좋은 캘린더 앱, 선라이즈 캘린더(Sunrise Calendar)
현존하는 가장 좋은 캘린더 앱, 선라이즈 캘린더(Sunrise Calendar)

예전에 스키치(Skitch) 라는 맥용 스크릿 캡쳐 & 에디팅 앱을 무료로 썼었다. 무료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앱이었다. 그렇게 잘 쓰고 있던 차, 스키치가 에버노트에 인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제품이 만나서 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나중에 터졌다. 내가 전에 썼던 블로그에 스키치에서 편집한 후에 스키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해두고 사용한 이미지들이 많이 있는데, 이 이미지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에게 한 마디 통보도 없이 서버를 닫아버렸다. 결국 이 이미지들을 되살리느라 몇 시간을 소모해야했고,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것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내가 유료 사용자였더라도 회사에서 그런 식으로 처리했을까? 내가 스키치에 항의한다 한들 예전 파일들을 살려줄까? 돈을 안내는 고객에게는 권리가 없다.

한동안 무척 유용하게 쓰던 맥용 스크린 캡쳐 툴, 스키치(Skitch)
한동안 무척 유용하게 쓰던 맥용 스크린 캡쳐 툴, 스키치(Skitch)

좋든 싫든 소프트웨어는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는 돈이 든다. 지금 무료로 쓰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지갑을 열어 만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사랑하는 제품 슬랙 (Slack)

얼마전, 슬랙의 3조원짜리 비밀 소스 Slack’s $2.8 Billion Dollar Secret Sauce라는 글을 재미있게 읽고, 요즘 슬랙 없이 하루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트윗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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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ck

슬랙의 UI가 어떤 점에서 다른 제품과 차별화되어 있는지는 슬랙 디자인을 주도했던 Metalab의 대표인 앤드류 윌킨슨(Andrew Wilkinson)이 쓴 위 글에 잘 설명이 되어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슬랙을 좋아하는 이유를 언급했지만, 이전에 블로그를 통해 설명했던 왓츠앱(Whatsapp), 심플(Simple) 등과 함께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제품의 범주에 들어가는 제품이기에 블로그에 간략히 기록을 해두고 싶다.

슬랙은 기업용 메신저이다. 그런데 그냥 기업용 메신저가 아니라, 왓츠앱, 텔레그램, 라인, 카카오톡보다도 더 잘 만든 메신저이다. 데스트탑과 모바일 환경을 모두 부드럽게 지원하며 둘 사이에서 스위치할 때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푸시 알림 처리가 부드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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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chat

슬랙을 사용하기 전에 Hipchat을 먼저 써봤다. JIRA, Confluence로 유명한 Atlassian에서 만든 제품이기에 기대를 많이 했다. 써보고 나서는 실망했다. 설정이 복잡했고 (그만큼 기능이 세분화되어있기는 함) 속도도 느렸으며, 무엇보다 UI가 후졌다. 모바일 앱도 별로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나를 성가시게 한 건 메시지를 타이핑하고 엔터를 친 후에 내가 쓴 메시지가 대화창에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버로 전송되었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 후에야 나타나기 때문에 0.3초 정도의 딜레이가 있다. 서버에서 동기화(synchronization) 처리를 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동시에 메시지를 보냈을 때 순서를 정확히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느낌이 아주 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익숙해질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실험적으로 한 번 써본 것이었으므로 요즘 가장 핫하다는 Slack을 써보기로 했다. 결과는 대만족. 그냥 만족이 아니라 대만족이었고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Hipchat에서 나를 성가시게 했던 문제를 Slack은 아주 아름답게 해결했다. 메시지를 타이핑하고 엔터를 누르면 일단 내 대화창에 회색으로 조금 희미하게 나타난다. 서버와의 동기화가 끝나고 나면 비로소 내가 쓴 메시지가 검은 색으로 변한다. 이 UI가 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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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래 전에 했던 대화라도 바로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파일 공유도 쉽게 할 수 있으며, 원하면 이 안에서 간단하게 문서를 만들어 보낼 수 있고, URL을 공유할 경우에는 페이스북에서처럼 웹사이트의 간략한 설명과 스크린샷이 뜬다. Slack을 쓰는 것은 즐거움이다.

링크 공유
Sharing URL on Slack

알림(Notification) 기능도 부드럽게 처리했다. 보통 메신저의 경우, 데스크탑에서 쓰다가 모바일로 옮기면 이미 읽었던 글들인데 모바일폰 알림 창에 떠있기도 하고, 메시지가 왔을 때 양쪽이 동시에 울려 성가시기도 하다. 어떤 때는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그리고 푸시 알림이 같이 와서 짜증이 날 지경을 만들기도 한다. Slack에서는, 모바일 푸시 알림이 활성화되는 순간 이메일 알림은 자동으로 꺼지고, 아래 설정 화면에서 보듯 데스크탑 앱을 사용하지 않은 후 몇 분이 지나서야 모바일 알림이 시작되도록 할 수 있다.

Notification Delay
Notification Delay

또 하나 감동적인 것은 수많은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Integration). 100여개의 앱들과 연동을 시킬 수 있는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온라인 화상 회의 앱인 appear.in이 있어서 좋았다. 대화 중에 그냥 /appear라고만 치면 아래와 같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화상 회의 방이 생성된다. Hipchat은 자체 제작한 화상 회의 기능을 유료 패키지에 포함시켰는데, 그보다 내가 좋아하는 무료 앱인 appear.in을 쓰는 것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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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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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wart Butterfield

이미 Slack을 쓰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 툴의 다른 장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 안해도 될 것 같고, Slack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붙인다. Slack은 Tiny Speck이라는 게임 회사에서 만들었다. 게임을 만드는 팀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돕기 위해 만든 내부 툴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 Tiny Speck을 설립한 사람이 플리커(Flickr)를 만들어 야후에 2005년에 매각했던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라는 사실이다. Slack이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일대의 회사들에게 먼저 큰 인기를 끈 후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크게 성공하자 이 회사는 아예 게임 만들기를 중단하고 Slack을 만드는 회사로 방향을 바꾸었다.

미국은 워낙 이메일 문화가 발달해 있고, 기업용 메신저는 15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마이크로소프트 메신저를 비롯해 이미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세상에 많이 나와 있었고, 최근에는 페이스북까지 가세했지만, Slack은 경험 많은 스튜어트(1973년생)의 제품 철학과 앤드류의 디자인 철학이 합쳐서 만들어낸 걸작품이었다. 이런 걸작품을 사람들이 몰라볼 리가 없다. 이게 나오기 전에는 ‘무슨 또 새로운 메신저가 필요해?’했던 사람들은, 한 번 써보고 나서 ‘왜 진작 이런 제품이 없었을까?’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시장에서 현대적인 감각과 기술을 이용해서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는 회사들도 참 멋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