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룸살롱 급상승 검색어 사건과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문제점

처음 이 블로그를 만들었을 때는 제목이 그냥 Sungmoon’s Blog였고, 내가 느끼는 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쓰곤 했다. 그러나 블로그 이름을 ‘실리콘밸리 이야기’로 바꾸고 나서부터는 실리콘밸리와 별 상관 없는 이야기를 쓰기가 웬지 부담스러워졌고, 그런 내용은 구글 플러스에 짧게 공유하거나 정말 길게 할 말이 있을 때만 이 블로그에 쓰게 되었다. 하지만, ValleyInside와는 달리 이건 내 개인 블로그가 아닌가. “실리콘밸리에 사는 조성문의 이야기”. 그거면 제목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담없이 써봐야겠다. 이 글은 ‘실리콘밸리와 상관 없는 이야기’이다. 앞으로도 실리콘밸리나 IT와 별로 상관 없지만 공유하고 싶은 생각들을 여기에 써보려고 한다. 결국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때 진심이 나오는 것이고, 그럴 때 글도 술술 잘 써지는 것이니까.

때아닌 여름 감기로 고생하다가 며칠만에 TechCrunchTechNeedle, 트위터를 확인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소식을 쭉 접할 때면 트위터 타임라인을 살펴보는 것이 효율적이고, 내 타임라인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임정욱(에스티마)님의 트윗을 살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미국에 사는 덕분에 따로 몇 번 뵈었고, 얼마 전에도 점심 식사를 같이 했는데, 바쁜 와중에도 거의 매일 수많은 기사와 트윗들을 읽고 유용한 정보를 필터링하여 제공해주시는 것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탠포드의 스타트업 액셀러에이터인 StarX가 Kauffman으로부터 무려 80만 달러의 그랜트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Kauffman과 같이 훌륭한 비전을 가진 단체에 계속해서 돈이 지원되고, 그런 돈으로 이런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WhatsApp 하루 메시지 전송 건수가 10 billion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만 WhatsApp을 열심히 쓰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또, 페이스북이 iOS 전용 앱을 아예 다시 만들어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가워 바로 업데이트했다. iPhone 4에서 그동안 페이스북 앱을 쓰려니 너무 느려서 속이 터졌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HTML로 만들어졌고 겉만 껍데기를 씌운 형태였다. 많은 사람들이 HTML이 모바일 앱의 미래라고들 하는데, 나는 HTML(+JavaScript)로 만들어진 모바일 앱을 써 보면 영 느리고 불편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에 관해서는 예전에 앱과 웹에 대해 조사해보고 내 생각을 정리한 적이 있다. 한편, 트윗이 너무 재미있어 얼마 전부터 팔로우하기 시작한 김정은의 패러디 계정이 팔로워 170만명을 돌파했다는 트윗도 있었다. 가끔씩 트위터 보면서 웃고 싶다면 한 번 팔로우 해보시길.

그 외에도 눈길을 끄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은 단연 안철수 룸살롱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사건삼성-애플 소송에서 애플이 압승한 소식이었다.

안철수 룸살롱 사건은 사실 구체적으로 다 살펴본 것은 아니고, 안철수가 출연했다는 무릎팍 도사를 본 것도 아니어서 사건의 전말을 다 알지는 못하고, 이게 왜 그렇게 화제가 될 만한 내용인지도 이해가 안되지만, 이로 인해 네이버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검색 결과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네이버 직원이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콘돔’이 언급되었고, 이로 인해 사건이 더 커지는 바람에 결국 네이버 김상헌 대표가 직접 해명하는 글을 올렸다는 내용을 보았다. 해명의 내용을 보니 어떤 알고리즘으로 운영하고 있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가 되었지만, 한 가지 갸우뚱하게 만든  단락이 있었다.

오늘 일을 계기로, 관련 부서와 다각도로 정책을 검토한 결과, 청유어의 검색에 대한 성인 인증은 현행과 같이 계속 유지하되, 관련된 ‘뉴스 기사’는 성인 인증과 상관없이 검색 결과로 노출되도록 개편을 하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뉴스 자체를 청유물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뉴스는 취재와 데스킹이 있는, 가장 기본적으로 신뢰할 만한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김상헌 대표의 글. 출처: 네이버 다이어리)

과연 그런가? ‘뉴스가 가장 신뢰할만한 콘텐츠’인가? 물론 내가 좋아하는 매일 경제, 머니투데이 등을 비롯해서 주요 일간지의 많은 기사들에는 신뢰할 수 있는 좋은 기사가 많다. 하지만 네이버가 검색해서 보여주고, 첫 화면에 ‘뉴스’로 띄우는 기사들이 모두 정말 신뢰할만한 콘텐츠인지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신뢰성이나 사실성보다는 ‘클릭수’에 초점을 맞춘 제목과 기사들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방금 캡쳐한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톱 뉴스’ 섹션이다. 여기에 인용된 데일리안, OSEN, 마이데일리, 스포탈 코리아.. 이들은 네이버가 인정한 ‘신뢰할만한 컨텐츠를 제공하는 언론’이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난 사실 이 ‘언론사’들에 대해 대해 잘 모르고 그 설립 배경도 모르지만, 기사를 클릭해서 들어가보면 도저히 그런 신뢰할만한 곳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네이버 뉴스캐스트를 통해 들어간 OSEN의 초기 화면. 광고 대행사인지 언론사인지 알 수가 없다.
‘마이데일리’의 초기 화면. 신뢰할만한 컨텐츠? 그나저나, 오른쪽 ‘개기름과 피지’ 광고는 정말 혐오스럽다.

이러한 뉴스캐스트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머니투데이 윤미경 부장기자가 2011년 초에 한 마디 한 적이 있다 (아래)

이는 뉴스캐스트 선정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선정기준이 수시로 바뀌는데다 평가항목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어떤 언론사에는 가입조건이 ‘설립 5년 이상’이라고 했다가 어떤 언론사에는 ‘설립 1년 이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설립 1년도 안된 언론사가 뉴스캐스트에 포함되는 사례가 발생하자 언론사들은 네이버 뉴스캐스트 선정기준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NHN은 “뉴스캐스트는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선정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식으로 심사위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네이버 뉴스캐스트는 올 2월 또다시 개편됐다. 뉴스캐스트에서 노출되는 기사수가 6개에서 9개로 늘어나면서 네이버 초기화면에는 선정적인 제목의 뉴스가 더 넘쳐난다. 이런 기사가 ‘오픈캐스트’ ‘테마캐스트’로 또다시 포장돼 유통되고 있으니 말초적 기사는 비단 뉴스캐스트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이것이 하루 17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네이버의 현재 모습이다.

내가 네이버를 쓰기 싫어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이 뉴스캐스트이다. 도무지 읽을 가치가 없는 엉뚱한 기사들로 내 시간을 낭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신문사 하나를 정해 놓고 들어가면 대부분 주요 소식은 다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신문사들간의 편집 방향의 차이도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신문사 둘은 Wall Street Journal과 The New York Times이다. 이 두 신문사는 색깔이 분명이 다르고, 기사의 품질도 다르다. 그런데 네이버 뉴스캐스트처럼 이렇게 조각 기사만 화면에 보여주면, 언론사간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자극적 제목만 남게 된다. 주요 일간지의 기자가 되는 것과 신변 잡기 언론사의 기자가 되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고, 따라서 그런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쓰는 기사의 품질에도 차이가 있는데, 네이버 뉴스캐스트 때문에 그 모든 신문사들이 같은 선상에 놓이고 말았다. 기사의 품질보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얼마나 잘 다느냐에 기자의 경쟁력이 달려 있으니 이 얼마나 개탄할 상황인가.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주요 언론사의 기자가 된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얼마나 답답해하고 있을까 싶다.

이야기가 뉴스캐스트쪽으로 샜는데, 이왕 샌 김에 네이버에서 검색 결과를 카테고리별로 보여주는 유저 인터페이스에 대해서도 하나 지적해보고 싶다. 이런 카테고리방식 결과가 예전에는 참 편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참 안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내 블로그에서 ‘내가 영어공부한 방법‘이 지속적으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에 ‘영어 공부’라는 키워드로 한 번 검색해봤다. ‘영어 공부’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뭘까? 영어 공부를 도와주는 사이트를 알고 싶거나, 영어 공부를 잘 하는 노하우를 알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는 카테고리별로 보여준다. 프리미엄 링크, 파워 링크, 비즈사이트, 지식iN, 뉴스, 동영상, 책, 이미지, 전문 정보, 웹문서, 뉴스 라이브러리, 지식쇼핑, 지식백과, 지도 순서이다. 소위 ‘백화점식 나열’인데, 과연 이러한 유저 인터페이스가 사용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싶다. 첫째, 이 중 절반이 광고이다 – 프리미엄 링크, 파워 링크, 비즈사이트, 책, 전문 정보, 지식 쇼핑. 이런 광고를 클릭하면 네이버가 돈을 번다. 둘째, 거의 관련이 없더라도 ‘카테고리’이기 때문에 검색 결과에 나오는 것들이 많다. 이제,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섹션. 이건 모두 광고다. 학원에 등록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그냥 넘어가자.
둘째 섹션. 이것도 광고다. 파워 링크와 비즈사이트의 차이는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다.
세 번째 섹션은 지식iN이다. 광고보다는 좀 더 관련이 있어보여 좋다. 그러나 이게 영어 공부와 관련된 과연 가장 좋은 정보일까? 조회수가 6밖에 안되는 글이 14분 전에 올라왔다는 이유만으로 첫 번째 결과로 떴다. 네 번째 글은 클릭해서 확인해보니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올린 질문이다. 답글은 다른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달아놓았다.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정보일까?
넷째 섹션은 뉴스 검색 화면이다. 김아중이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화제다. 과연 이게 내가 알고 싶었던 정보일까? 그리고, 검색 결과에서 네 번째 섹션에 놓을 만큼 중요한 정보일까? 김아중 소식이 궁금했으면 ‘김아중’ 또는 ‘김아중 미국’으로 검색하지 않았을까?
다섯 번째 섹션은 동영상이다. 약간 관련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유독 ‘네이버 블로그와 네이버 tvcast’만 검색 결과에 보인다.
여섯 번째 섹션은 책 검색 결과인데, 내가 보기엔 그냥 광고다. 100% 네이버 사이트로 링크가 걸려 있다. 책을 사고 싶었다면 애초에 yes24나 알라딘 사이트에 갔을 것이다.
일곱 번째 섹션은 이미지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검색 키워드와 관련이 없다. 세 번째에 있는 ‘기성용 &quot’는 왜 검색 결과에 나온 것일까?
여덟 번째 섹션. 이것도 그냥 광고다. 과연 누가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이런 리포트나 독후감을 돈 주고 살까 싶다.
아홉 번째. 책 본문 검색인데, 2006년에 출간된 책이 보이고, 세 번째 결과인 ‘죽이는 한마디’는 영어 공부와 무슨 관련이 있는 책인지 모르겠다.
열번째. ‘마침내!’ 웹사이트가 검색 결과에 떴다. 그러나… 다섯 개 결과 중 네 개가 cafe24.com에서 왔다. 웹에는 cafe24밖에 없나? 들어가보면 내용도 참 시시하다. 두 번째 결과인 ‘신채호 선생 기념관’은 웬 건지 모르겠다. ‘검색 사이트’가 보여주는 결과라고 하기에는 너무 처참하다.
열 한번째. 1955년, 1973년의 기사가 왜 검색 결과에 뜨는지 알 수가 없다. 클릭해보면 모두 네이버 자체 서비스로 연결되는데, 페이지 뷰를 늘리기 위한 것일까?
열 두번째. 다시 광고가 떴다. ‘토이컴퍼니’, ‘버블팝’, ‘G마켓’에서 파는 몇 천원짜리 시시한 물건들이 영어 공부에 관련 있는 상품으로 나와 있다.
열 세번째는 지식 백과인데, 역시 관련성이 거의 없다.
마지막 섹션은 지도이다. 관련이 있는가? 영어 학원을 찾고 싶었다면 ‘영어 공부’가 아니라 ‘영어 학원’을 검색하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총 12개의 섹션. 긴 페이지의 맨 끝까지 내려왔지만 그다지 쓸모 있는 정보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블로그’는 카테고리에서 빠져 있다. 원래 검색 결과 상단에 거의 항상 뜨는 것이 네이버 블로그인데,  ‘영어 공부’라는 키워드에는 블로그가 별로 유용한 내용을 제공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카테고리별로 보여주는 이러한 검색 결과, 과연 최선인가? 이것이 과연 사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유저 인터페이스인가, 아니면 네이버의 수익을 극대화해주는 유저 인터페이스인가 좀 의구심이 든다. 한편, Naver SE에서는 좀 더 효율적으로 보여주나 싶어서 거기서 찾아봤는데, 검색 결과에 유용한 정보가 없었다.

구글에서 ‘영어 공부’로 검색해봤다(Google.co.kr이 아닌 google.com을 이용했다. Google.co.kr의 검색 결과도 비슷하게 나오지만, 내가 보기엔 한글 검색도 Google.com을 이용하는 것이 검색 품질이 높다). 아래는 그 결과이다.

구글의 검색 결과 – 첫 번째 섹션. 광고가 하나 나오고,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웹사이트들이 그 다음으로 나온다.

첫 두 개의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가봤다. ‘영어 공부 추천사이트 20선‘. 들어가서 확인해보면 왜 이 사이트가 검색 결과 첫 번째에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영어 공부에 도움되는 사이트들을 정말 잘 정리해 놓았다. 두 번째 검색 결과는 유명한 고수민씨의 블로그이다. 들어가서 보면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는 데’ 도움될만한 팁들이 정말 많이 있다.

두 번째 섹션은 이미지 검색 결과이다. 내가 찾는 정보와 별 관련은 없지만 영어 공부라는 검색어와는 관련이 많이 있어 보인다.
세 번째 섹션. 유투브 비디오가 두 개 있다.
네 번째 섹션. 아주 유용하게 보이는 정보가 많이 있다. 무료 podcast 목록이나 TED 활용도 그렇고, 뿌와쨔쨔의 사이트도 그렇고, 땡전 한푼.. 도 그렇다. 들어가보면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잘 정리해 놓았다.
마지막 섹션. 여기도 김아중 이야기가 나와 있다. 하지만 유용한 정보를 모두 위에서 보여준 이후이다.

여기까지 해서 구글 검색 결과의 첫 페이지가 끝이 난다. 검색 결과는 훨씬 짧지만 훨씬 더 유용하다. 왜 더 유용할까? ‘영어 공부’라는 키워드 위주로 검색해서 잡동사니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어 공부’와 관련해서 정보를 가장 잘 정리해 둔 사이트를 우선해서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글이 사용하고 있는 PageRank라는 검색 알고리즘 때문인데, 작은 것 같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만든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두 검색 결과를 보며, 검색 회사가 가져야 할 원칙과 철학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다. 난 네이버라는 회사에 대해 개인적 감정을 가질 이유도 없고, 아는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에서 일하고 있거나 한때 거기서 일했었기에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조심스럽지만,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절약해주기보다는 불필요하게 낭비하도록 하는 뉴스캐스트와 카테고리별 검색 결과를 통해 네이버가 돈을 벌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이 글을 써봤다.

안철수 교수의 실리콘 밸리 강연 요약

내가 존경하는 분, 안철수 교수. 그가 만든 바이러스 백신을 처음 사용하던 때가 기억난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큰 맘먹고 사오신 XT 컴퓨터를 그 때까지 쓰고 있었는데, 친구로부터 게임을 카피해 오거나 PC 판매점에서 1,000원을 주고 게임을 카피해오면 항상 제일 먼저 했던 것은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도 어느 새인가 또 바이러스가 옮겨붙어 골치를 썩이곤 했다. 요즘에는 애초에 이메일에서 바이러스를 차단하는데다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팔 때 백신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나오기 때문에 예전처럼 골치거리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예전 한때 유행하던 컴퓨터 잡지, 마이컴 (출처: http://poem23.com/279)

당시 바이러스를 검사할 때는 꼭 백신(Vaccine)이라는 MS-DOS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곤 했다 (참고: V3의 변천사를 정리한 블로그 글). 미국에서 들어온 노턴 안티 바이러스라는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면 한국에서는 별로 발견되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검사하느라 몇 배의 시간을 소비하는데다, 치료 성능 면에서 그다지 더 좋지도 않기에, 소위 ‘한국형 바이러스’라는 안철수가 만든 백신을 사용하곤 했다. 그 때부터였다. 내 머리 속에 ‘안철수’라는 이름이 각인된 것은. 당시 유행하던 ‘마이컴’이라는 컴퓨터 잡지에서 그를 인터뷰한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서울의대 출신 의사에서 프로그래머로의 전향”. 낮에는 환자를 보고 밤에는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베이직 언어를 배웠고, 중학교 때는 학원에서 포트란 언어를 배우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남들보다 컴퓨터에 관한 한 앞서 있고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고, 게다가 ‘피씨툴즈(PC Tools)‘라는 소프트웨어도 자유로이 사용하며 파일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컴퓨터 바이러스란 나에게 정말 어려운 세계였다. 코드를 바꿔가며 침투하는 그런 코드를 어떻게 ‘백신’이라는 것이 잡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백신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지 나에겐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 신기한 소프트웨어를 만든 사람이 ‘의사 안철수’였다.

그 당시 마이컴에서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이름은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그러나 하나의 이름은 살아남아 계속 내 주변에 있었다. 안철수. 그는 바이러스 백신 소프트웨어를 V3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계속 읽고, 책을 계속 써냈다. 그의 글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퍼졌다. 나도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중 몇 개의 글은 나의 성장과정에서 내게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책이었다.

중요한 순간에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책,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책의 첫 장의 제목이 ‘어떤 일을 선택할 때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내용이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무려 14년동안 잠 못자고 공부했고, 마침내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되었으나 그러한 과거의 ‘업적’과 화려한 경력을 포기하고 동업자 둘과 함께 서초동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회사를 시작하는 결정을 내릴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당시 가진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 이 글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결단을 내렸다.

얼마 전 블로그에서 안철수 박사를 인용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이라는 글인데, 그가 강연중에 했던 말이 크게 공감이 되어 글을 썼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192회 리트윗, 373회 라이크). 그렇게 그 분을 흠모하던 도중,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 마침 이 곳 실리콘 밸리에 올 계획이고, 실리콘밸리의 한인 모임인 Bay Area K Group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2011년 5월 23일, Sunnyvale 셰라톤 호텔의 행사장에서 그 분을 처음 만났다. 강연 시작 전, 테이블로 가서 내 소개를 하고 인사를 드렸을 때 내가 받은 첫 인상은 겸손함, 온유함, 그리고 평온함이었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기대가 많이 됩니다.” 했더니 즉시 “도움이 되었다니 제가 더 감사하지요. 오늘 오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제가 더 고마울 것 같습니다.” 라고 하셨다.

아래에, 강연 내용을 정리해서 싣는다. Bay Area K Group 블로그에 기고했던 글이다.


2007년이 기술 진보의 변곡점이었습니다.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모바일 혁명이 일어났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났지요. 지금은 2차 IT 혁명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차때는 허상들이 많아 거품이 금방 꺼졌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다릅니다. 무엇보다, 많은 회사들이 매출/영업이익이 많이 내고 있기 때문에 쉽게 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의 경우 아직 시도되지 않은 분야에 포텐셜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의 세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Three Keywords (세 개의 키워드)
2. Prospect and Stability (미래 전망과 안정성)
3. Know Your True Self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Bay Area K Group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중인 안철수 교수
Bay Area K Group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중인 안철수 교수

세 개의 키워드 (Three Keywords)

저는 21세기의 키워드를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키워드를 통해서 세상의 일들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키워드를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첫째, Hyper-speed(초고속)입니다. 요즘 테크크런치(TechCrunch) 일주일 안보면 줄거리 연결이 안될 정도이죠. 마치 연속극 보다가 하나 빼먹으면 연결이 안되듯이. 그만큼 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둘째, 탈권위주의(Anti-authoritarism)입니다. 즉,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의 가치관이 더 소중한 시대입니다. “웰컴 투 동막골”이란 영화를 800만명이 보았다고 합니다. ‘반공’이라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의 틀을 깨는 내용인데 무척 인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컨텐츠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가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가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인기있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지요. 개인의 가치관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조직은 이제 관심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이집트의 자유화 운동도 소셜 네트워크가 불러온 탈권위주의에서 생긴 것입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의 흐름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기술이 선택되고 살아남아서 사회의 흐름을 가속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세기까지는 포털이 인기있었고 전문가들이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었으나, 21세기, 즉 Web 2.0 시대에는 Wikipedia 등이 더 인기가 있습니다. 즉, 일반 대중들이 가진 가치 있는 정보를 합한 것이 더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포드 자동차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교외로 나간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그렇게 바뀐 사람들이 다시 기술을 개발하여 사람의 생활을 바꿉니다.

셋째, 컨버전스와 세계화(Convergence & Globalization)입니다.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신 자유주의의 옹호자이고,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많이 알려진 사람은 장하준 교수입니다. 토마스 프리드먼은 World is Flat (부제: 21세기 역사책)이란 책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길래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입니다. 이로 인해 공산주의의 패퇴했지요. 당시엔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도 장벽이 많았는데, 베를린 장벽 철폐를 계기로 나라간의 장벽들이 허물어졌습니다. 90년대에는 PC가 본격적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개인이 가지는 정보의 양에 한계가 사라졌습니다. 둘째인터넷의 보급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워크플로우 소프트웨어(Work flow software)의 발전. 즉 PC가 서로 연결되면서 전세계 누구와도 같이 일할 수 있게 되었지요. 컨버전스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로, 다음과 같은 collaboration(공동 협력)이 일어나고 있지요: Uploading, Outsourcing, Offshoring, Supply-Chain Innovation, Insourcing, In-forming. Dell이 컴퓨터 수리라는 핵심 경쟁력을 UPS에 넘겨준 것은 인소싱(Insourcing)의 좋은 예입니다.

미래 전망과 안정성(Prospect and Stability)

미래 전망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전에는 소위 ‘기댈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칸막이가 사라져 버렸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전망’에 귀를 더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1986년 서울의대 졸업하던 때를 생각하면 피부과가 가장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떤지 보세요. 가장 인기있는 전공이 되었지요. 2008년 와튼스쿨 졸업하던 때, 친구들의 절반이 고액 연봉을 주는 월가로 진출했습니다. 저만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며 월스트리트가 무너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간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일 수가 있습니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선택하지 못하고 ‘지금’ 잘 나가는 걸 선택하면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죠.

세미나에 참석한 K그룹 회원들
세미나에 참석한 K그룹 회원들

안정성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생명에 관심이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생명’이라는 건 ‘안정성’의 반대말입니다. (Life is the antonym of stability.)

세포막의 구조 (출처: http://library.thinkquest.org/C004535/cell_membranes.html)
세포막의 구조 (출처: http://library.thinkquest.org/C004535/cell_membranes.html)

무슨 말이냐 하면, 세포가 살아있는 이유는 불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면, 모든 세포는 세포 내의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소금을 자꾸 바깥으로 퍼냅니다. 생명이 있는 한, 세포가 살아있는 한, 세포는 끊임없이 소금을 퍼내는 일을 합니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은 불안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럼 안정은 언제 오나요? 간단하죠. 세포막이 파괴되어 안과 밖의 농도가 같아지면, 즉 세포가 죽으면 안정이 오면서 평온한 상태가 됩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본질, 즉 인생의 본질은 불안정이 아닌가요?

또 한가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업할 때,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생기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데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내가 제어하는 경우는 많이 봐야 3분의 2 정도입니다.

진정한 자신을 알기(Know Your True Self)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세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 Creeping determinism (사후 판단 편향)
미국이 중국과 국교 단절된 상황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정상회담하러가는데 이번에는 수교가 성공하겠느냐고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80%의 전문가가 실패할 거라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정상회담이 열렸고, 중국과 국교 수립이 되었습니다. 회담이 끝나고 그 전문가들을 다시 불러 그 전에 대답했던 대로 다시 대답해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80% 전문가가 성공할거라고 했습니다. 사후에 판단하면 의견이 달라지는거죠.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에 능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렇게 바꿔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2. In-class game (자기 그룹 내의 게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맞다는 증거를 먼저 수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KAIST 교수 시절,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실험입니다. 간단한 산수 문제를 내주고, 3분 후에 객관식으로 보기를 든 후 자신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가서 모이라고 했습니다. 1번 그룹, 2번 그룹, 3번 그룹, 4번 그룹.. 그 다음에 다시 3분의 시간을 주면서 주변 사람들과 의논해보고 다시 답을 결정해보라고 했습니다. 예외 없이 같은 그룹 사람들과 토의를 합니다. 자신의 답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결론내리는 것에 더 익숙합니다.

3. Wrong way of reading (잘못된 독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책만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주변에 벽돌을 쌓아 자신을 가둬놓고 벽돌 사이의 작은 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Y 컴비네이터를 만든 폴 그래함(Paul Graham)은 “I may be wrong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 이라고 말하는 사람만 뽑는다고 합니다. 자신이 틀렸을 지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맞는 길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할 거고,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치열한 고민 끝에 무엇을 선택하는 순간, 그 때 알 수 있습니다. 한 대학생이 있습니다. 자기는 모험적인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항상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졸업하고 실제로 두 개의 기회가 왔습니다. 안정적인 기회와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기회. 이 대학생은 결국 안정적인 선택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결국 나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구나, 라구요.

트위터에서 리트윗이 가장 많이 된 제 말이 있습니다. “말과 생각이 그 사람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말은 들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즉시 나오니까요.

어려운 선택들을 내리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깨닫게 됩니다. 한국인 최초로 동경대 교수가 된 강상중 교수가 이야기했습니다. “고민은 축복이고 행복의 열쇠“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고민하는 사람은 괴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져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언뜻 답이 안나와도, 고민을 치열하게 하다보면 답이 나옵니다.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선택하십시오.

멘토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자신의 멘토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31%는 고민의 순간에 답을 주길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업할 당시 고민이 있어 멘토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멘토의 말을 듣고 했다가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고수라 해도 항상 정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멘토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했는데 잘 됐다 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은 자기가 고민해서 선택하고, 실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고민 없이 선택하면, 실패하더라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건 비용 효율적인 학습(cost-effective learning)입니다. 처음 생각했던 사업 아이디어가 그대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수할 확률이 100%인데 최소한의 피를 흘리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지요. 이를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배우고 빠르게 방향을 바꾸느냐는 스타트업의 성공 여부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Q&A

1. KAIST를 떠나서 왜 서울대 합류했는지?
KAIST 교수로 만 3년동안 일했습니다. 그 때문에 대전으로 집도 옮겼었습니다. 그러나 1년에 학생 100명 가르치면서 편안하게 지낼거냐, 아니면 작업복 입고 흙먼지 묻히면서 일할거냐? 의 문제에서 저는 흙먼지 묻히면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또 카이스트에서 시작했던 MOT 과정이 경쟁률 5:1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었습니다.

2. 한국의 환경과 실리콘밸리의 환경을 비교한다면?
기업의 성과는 making(제품의 품질) 곱하기 selling(판매력)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품이 좋아도 판매력이 꽝이면 성과는 0이고, 판매를 잘해도 품질이 안좋으면 또 성과가 0이 됩니다. 실리콘밸리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잘 갖춘 곳입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엑싯(exit)이 없으므로 척박한 환경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균형때문입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중소기업, 즉 납품업체들을 최대한 이용해서 이윤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굳이 중소기업을 인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엑싯이 잘되면 모든게 선순환으로 바뀔 겁니다.

3. 지금 돌이켜봤을 때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세가지를 꼽으라면?
전에는 리더에게 리더로서의 권한이 주어지고 이를 발휘하면 되었습니다. 많은 책들이 이미 리더의 자리에 올라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중으로부터 리더십이 나와, 그 권한을 부여받아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시대입니다. 즉, “대중이 리더로부터 무엇을 갈구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다음 세 가지를 들겠습니다.

1) Stability(일관성): 사람들이 리더의 결정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내린 결정과 내일 내린 결정이 다르고 결정이 즉흥적이면 사람들이 믿을 수 없습니다.
2) Hope(희망): 전문성에 기반한 비전으로 미래를 제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을 따르면 잘 될거야”라는 느낌을 받을 때 그를 따릅니다.
3) Compassion(공감력):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레벨로 내려와서 공감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따릅니다.

4. 실리콘밸리에 있는 우리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세상에서 큰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나타나는 시기와 장소를 분석해 보면 시간적, 공간적으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람(프런티어)이 롤 모델이 되어 주변 사람들과 후배들에게 엄청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의 예가 박세리 선수입니다. 우리 나라에 여성 골퍼가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일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런데 박세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박세리는 롤 모델이 없이도 성공한 매우 희귀한 케이스죠. 박세리가 우승하는 모습을 감격스럽게 지켜봤던 수많은 사람중에 한국의 어린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박세리 선수는 그들의 롤모델이 된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 나와 관계 없는 사람, 또는 나보다 훨씬 우월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큰 동기 부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이 한국에서 자라 한국에서 교육 받은 ‘한국 사람’ 박세리가 미국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 많은 한국의 소녀들은 ‘박세리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지요. 그 때부터 소위 ‘10,000 시간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 인용)’의 훈련을 시작했고, 1만 시간이 차기 시작하자 한국에서 프로페셔널 여성 골퍼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 본인과, 그리고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여기 계신 여러분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연 내내 숨죽이며 들었다. 그리고 큰 감동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자신이 한 말과 자신의 글에 충실하게 인생을 살았던 사람. CEO로 화려하게 잘 나가던 시절, CEO 자리를 넘겨주고 홀연히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돌아와 KAIST 교수가 되어 3년 후 안정이 되었을 시절, 또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떤 결정을 내릴까? 무엇이 되든, 그가 ‘과거의 업적’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 추구해야 할 목표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