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 –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의 호주 여행

미국에 살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면, “어떻게 유학을 오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왜 졸업하고 미국에 남기로 했는가?”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을 한다. 한국에 있으면서 이런 저런 일로 캘리포니아를 방문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 곳이 좋아져서라고 대답할 때도 있고, 교통 체증을 매우 싫어하는데, 여긴 차가 막히지 않아 스트레스가 적어서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좀 더 길게 설명할 시간이 되면 더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 시절, 방학때 종로 파고다 학원을 오가다가 종로 서적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에게 정말 큰 영향을 끼친 책, ‘시작 – 세계를 향한 문을 열면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조금 더 과거로 가 보면, 내가 한국을 나와 언젠가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건 스무 살 나의 첫 해외 배낭 여행, 호주 여행이다.

호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단순했다. 1학년 여름 방학을 과외 하면서 보낸 이후, 겨울 방학엔 뭔가 나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갑자기 배낭여행이 유행이 되어서 많은 친구들이 여름에 유럽에 다녀 온 이야기를 했다. 겨울에 배낭 여행을 가자니 옵션이 많지 않았다. 춥지 않은 곳으로 알아보니 호주/뉴질랜드, 아프리카, 남미 등이 옵션이었다. 마침 친구가 호주로 배낭여행을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같이 가자길래 알아보기 시작했다. 호주는 사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유럽처럼 문화가 깃든 곳도 아니고 말이다. 나중에 나이 들어 휴양지로 가면 모를까 대학 1학년 배낭여행으로 가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다른 옵션이 대단히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마침 호주행 비행기가 싸게 나온 게 있어서 호주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호주 동북쪽 해안도시인 케언즈(Cairns)로 들어가서 시드니(Sydney)로 나오는 여정이었다. 패키지 여행은 하기 싫어 여행사를 통해 항공권과 유스호스텔 숙박권, 그리고 그레이하운드 버스 티켓만 사서, 1월 4일. 콴타스 항공편으로 호주로 날아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는 비행기였다.

비행기에 타기 전에는 한겨울 날씨였는데, 케언즈에 도착하자 갑자기 한여름으로 바뀌었다. 참 신기하면서 이상한 기분이었다. “Days”를 “다이즈”라고 발음하는 호주 사람들의 억양도 한없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케언즈에서 래프팅을 하고 나자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호주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화창할 날씨와 파란 하늘, 친절한 사람들, 수영장이 있는 호스텔.. 20년을 서울에서만 살았던 내게는 모든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얀 모래로 뒤덮인 프레이저 섬(Fraser Island) 투어, 산호초와 아름다운 열대어가 가득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에서의 스노클링, 절벽 해안도로가 끝없이 펼쳐진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에서의 캠핑 등도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호주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작은 해안 마을, 누사(Noos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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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오션 로드 (Great Ocean Road)

누사(Noosa)는 케언즈에서 시드니에 이르는 여정의 중반쯤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사실 원래는 들를 생각이 없었다. 그보다 유명한 도시인 브리즈번(Brisabane)에 들렀다가 아래로 더 내려가볼 생각이었다. 근데 타려고 했던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일정을 조정하게 되면서 대신 누사를 들러보기로 했다. 들고 다니던 여행 책에 나온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백팩커 하우스를 찾았다. 저렴하고 괜찮아 보여 선택한 곳은 누사 백패커스(Noosa Backpackers)라는 곳이었다. 배낭만 방에 놓고 다시 나와 자전거를 빌려 마을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동화 속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그 날이 금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장한 남자들이 어깨에 다들 서핑 보드를 하나씩 지고 바다로 나가고 있었고, 평화로운 누사 해변은 그 어떤 걱정거리라도 잊게 해줄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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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사 해변

밤에는 다운타운을 둘러보았다.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 경비를 최대한 아끼던 우리에게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서의 식사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였다. 항상 수퍼마켓에서 식빵과 상추, 참치 등을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먹곤 했었다. 그러나 그 날은 특별 대우를 하기로 했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먹기로 한 것이다! 거리에서 기념품을 팔던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나: 실례지만, 맥도널드가 어디죠?
상인: 여기서 쭉 가신담에 저기서 왼쪽으로, 그다음 좀 더 가다가 다시 오른쪽… 그리고 왼쪽…
나: “…”

내가 제대로 못알아듣는 걸 눈치챘나보다. 감을 못잡고 있으니까 갑자기 자기가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나섰다. 팔던 물건들을 다른 사람에게 봐달라고 부탁한 후에 우리더러 따라오라고 했다.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학생이란다. 이름은 다니엘(Daniel), 나이는 17살. 이제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된 거다. 우리나라 고3이면 공부하느라 바쁜건데 어떻게 이런 데 나와서 기념품을 팔고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하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궁금하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치한 질문들이다. 상가들을 가리키면서 저건 비디오를 빌리는 곳이냐, 저기가 식당이냐, 여기는 뭐하는 데냐.. 뭐 이런 질문들이었다.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나서길래 난 맥도널드가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줄 알았다. 세상에.. 무려 15분을 함께 걸었다. 너무 미안했다. 장사라는 건 시간이 곧 돈일텐데 이렇게 큰 친절을 배풀다니… 살면서 낯선 사람에게 그런 친절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우리는 크게 감격했다.

맥도널드에서 오랜만에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나왔다. 아까 받은 친절에 뭔가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니엘을 다시 찾아갔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뭔가 사줄 게 없을까 하고 둘러보았는데 사실 마땅한 건 없었다. 다시 말을 걸었다.

나: 이게 뭐죠?
다니엘: 우리 동네에서 나는 불가사리에요. 말린 거죠. 예쁘지 않나요?
나: 이건요?
다니엘: 휴대폰용 액세서리에요. 어디서 오셨지요?
나: 한국에서 왔어요. 배낭여행중이지요.
다니엘: 멋진데요? 전 한국에는 가본 적 없어요.
나: 아름다운 나라에요. 언젠가 가보세요.
다니엘: 물론이죠. 그러고 싶어요. 근데… 우리집에 놀러가지 않을래요? 초대하고 싶은데.. 어쩄든, 오늘 장사는 이정도로 됐어요.
나: 집에 초대한다구요? 멋진 일인데, 정말요?

친구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다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다니엘은 집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랑 통화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로 했다.

3분쯤 지났을까.. 다니엘의 아버지가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하더니 트럭에 타란다. 집에 초대하겠다고. 어안이 벙벙했지만, 지상 낙원처럼 평화로운 누사에서 별 일이 있겠나 싶어 따라가기로 했다.

트럭을 타고 다운타운을 벗어나 깔끔하게 정돈된 주거지역에 도착했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었고, 풀받에서 귀뚜라미가 청명한 소리로 울고 있었다. 앞마당에 잔디가 있는 아담하고 예쁜 집이었다. 차에서 내려 다니엘과 그 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집 마당 잔디를 거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은 벗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자 데이빗의 어머니가 컵 케익 두 개를 들고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자기가 직접 만든거란다. 스무살 겨울의 배낭여행 중 일어난 일. 우리 앞에 놓인 모험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었다.

다니엘, 다니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친구와 나는 마루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가보다. 한국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몇 명이 살고 있는지, 서울은 어떤 곳인지, 북한과 남한은 왜 나위어 대치하고 있는지 등등에 대해 질문을 했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대답했다.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호주 배낭여행중에 만난 이 가족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뿌듯했다. 그래도 영어 공부한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앨범을 가져오더니 작년에 호주 서부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다윈, 퍼스 등등.. 같은 나라지만 무척 다른 풍경을 가진 곳들이었다. 야생 앨리게이터라며 보여주었는데, 처음엔 앨리게이터가 뭔가 했다. 악어를 호주에서는 앨리게이터라고 부르는구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다니엘이 음악을 좋아해서 기타도 잘 치고, 운동을 좋아해서 서핑도 잘 하고, 다방면에 소질이 있다며 자랑을 했다. 좀 신기했다. 고등학교 때 하루 15시간씩 공부하느라 다른 곳에 쓸 시간이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고등학생이 어떻게 그렇게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까 의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농담삼아 물어보았다.

나: “우와 소질이 많네요.. 공부 빼고는 다 잘하는 것 같은데요? :)”
엄마: “하하하.. 우리 다니엘은 공부보다는 사업을 하고 싶어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거랍니다. 이 나라에서는 뭐든지 한 가지만 잘 하면 잘 살 수 있는 길이 아주 다양하게 있어요.”

그 엄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진정으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고, 다니엘이 재능 있는 아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그 표정 말이다. 한국에서만 자란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 잘하는 게 전부고, 그래야 어머니들이 자랑스러워하지 않는가? 공부 잘하는 것이 나중에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자원이 풍부하고 관광 수입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호주라서 그 기준이 다른 것일까?

2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같이 기념 사진도 찍고, 이메일 주소와 집 주소도 받아서 집을 나왔다. 나중에 꼭 다시 방문할테니 그 때까지 다른 곳에 이사가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아쉽게도 배낭여행하고 돌아오는 동안 주소를 적은 쪽지를 잃어버려 다시 연락할 길은 없어졌지만, 스무살 배낭여행 때 만났던 누사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와 우리에게 환대를 베풀었던 다니엘과 다니엘의 가족, 그리고 그 대화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은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리고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 한 번 살아보자.’

그렇게 해서 시작된 해외 여행. 그 후 기회만 되면 밖으로 나갔다. 중국, 일본,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아르헨티나, 미국 등을 방문하면서 항상 생각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무엇으로 돈을 버나? 생활 환경은 어떤가? 거기서 살려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영어 말하기/듣기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는 공부할 대상으로만 생각했는데, 여행하고 돌아와보니 영어는 그냥 도구(Tool)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와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과 대화하는 도구. 영어를 할 줄 모르면 내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4천만명으로 제한되지만, 영어를 할 줄 안다면 적어도 10억명의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하루 빨리 이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랜 시간을 영어 공부에 투자한 후,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내었다. 캘리포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