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투자했던 한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점심을 먹으며 회사 운영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사의 한쪽이 제대로 안돌아가고 있었는데, 그걸 너무 늦게서야 알게 되었고, 돌이켜보면 그게 자신의 실수였다고 했다. 그동안 ‘하이레벨’에서만 지켜보면서, 신사업에 신경쓰고 있었는데, 주된 사업의 한 구석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경험했던 것, 실수한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요즘 내가 어디에 어떻게 시간을 쓰고 있는지를 공유했다.
나는 ‘하이레벨’에 머물러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디테일이 궁금하고 디테일이 재미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부서장들에게 보고받는 시간이 아니라, 각 엔지니어, 디자이너, 또는 마케팅 담당자들과 나란히 앉아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다. 함께 모여 앉아 이야기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다같이 그걸 실행하고 나면 너무나 훌륭한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2023년,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구글로 돌아왔다. 순다 피차이 (Sundar Pichai)라는 대단히 능력 있고 믿음직스러운 CEO를 회사에 심어두고 오랜동안 회사를 떠나 있었는데, 그가 5년 만에 다시 예전 일터로 돌아온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AI인데, Open AI나 메타에 비해 구글이 AI 전쟁에서 뒤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창업자이긴 하지만, 이미 오랜동안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고, 이미 모든 주된 일들을 위임한 상태였는데, 그가 돌아온다고 해서 뭐가 그리 달라질까? 어차피 그가 AI / LLM 전문가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가 차세대 AI 엔진 코드를 직접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가 창업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회사의 리소스를 움직이는 일이다. 상장사 CEO가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수는 있지만, 결국은 단기적 성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을 만족시키는 분기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지고, 결국 자신의 보상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이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구글의 10년, 20년 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긴 호흡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무엇보다 회사에 좋은 인재들을 데리고 오거나, 기존의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내리는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실제로 그가 구글에 돌아온 후 구글의 AI 기술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구글의 AI 엔진인 제미나이 (Gemini) 기술은 2023년 3월 21일에 바드(Bard) 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얼마 전 10월 9일에는 이미젠 3(Imagen 3)을 발표했는데 이로써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 주는 모델 중에서는 오픈 AI 의 달리 3(DALL-E 3)을 따라잡은 것 같다. 2024년 5월부터는 구글 검색 결과에서 AI 오버뷰(AI Overview)를 가장 상단에서 먼저 보여주고 있다. 가장 상단은 광고 단가가 가장 높은 공간인데, 이를 AI에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구글의 AI에게 검색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절실한 시도이며, 또한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매우 큰 베팅을 했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창업자 중 최정상에 있는 사람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잘 하고 있는 사람은) 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이다. 시가 총액이 20조원이 넘는다고 알려진 이 회사에서 그가 가진 지분율은 무려 100%이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 정리한 적이 있는데, 그가 How I Built This 팟캐스트에서 했던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있다.
Guy: 당신이 어떻게 사업을 운영하는지 궁금하네요. 당신은 발명가이고 디자이너이고, 회사 장부를 살펴보고 수많은 미팅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것을 어떻게 처리하나요?
Dyson: 처음엔 그런 것을 해야 했었죠. 하지만 회사가 성장할수록 엔지니어링에 시간을 더 많이 썼어요. 지금은 제 시간의 95%를 그런 일에 씁니다. 다른 일을 하면 그렇게 행복하지가 않아요. 엔지니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즐거워요.. 그리고 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회사를 100%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제 삶은 아주 심플하죠.
최근 그의 자서전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과 회사의 첫 시작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하지만, 첫 모델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청소기를 개선하면서 어떤 챌린지가 있었는지, 이를 위해 어떤 혁신을 만들어내야 했는지에 대해 그 기술 하나 하나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청소기를 만들다가 헤어 드라이어 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이유도 이야기하는데 정말 흥미롭다. 특히 인상깊었던 내용은, 2006년에 첫 번째 핸드헬드(한 손으로 잡고 움직일 수 있는) 무선 청소기인 ‘DC 16‘을 만들어낸 과정이었다. 요즘엔 이렇게 한 손으로 잡고 움직일 수 있는 무선 청소기 모양이 대세이지만, 옛날에는 청소기들이 다들 유선이었고, 무겁고, 컸다. 강력한 파워를 가지면서도 손으로 잡고 움직이기에 너무 무겁지 않은 청소기는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무선 청소기가 오래 작동하려면 그만큼 배터리가 커야 하고, 배터리가 커지만 그만큼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터와 배터리는 당연히 함께, 그리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디자인하면 무게 중심이 아래쪽으로 가서 한 손으로 잡고 움직일 때 더 무겁게 느껴지니까, 어떻게 하면 무게 중심을 위로 올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한 디자이너/엔지니어가 가져 온 아이디어가, 무거운 모터를 핸들 위로 올리고, 배터리를 핸들 아래에 배치하는, 당시로서는 다소 희안한 디자인이었다. 다이슨은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고, 그 이후로 이 디자인은 ‘무선 청소기’를 재정의한,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며 수많은 복제품을 만들어낸 다이슨 청소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 역시 회사를 그렇게 운영하려고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회의는, 구성원들이 오직 나만을 위해 모인 회의이다. 예를 들어, 자신들끼리는 이미 모든 정보를 공유했는데, 나한테 그냥 보고하기 위해 잡은 회의가 그렇다. 이런 자리에 열 명이 모여 앉아 있으면 나는 너무나 불편하다. 그게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얼마나 큰 시간낭비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매니저들이 애초에 그런 회의를 계획하지도 않지만, 만약 실수로 그런 회의가 잡혀서, 내가 그런 분위기를 읽게 되면 회의를 중단하고 물어본다. “Are you guys in here just report to me, or are you also getting new information and getting benefits from this?” 만약 그게 나만을 위한 회의 자리라고 하면, 극단적인 경우엔 그 회의를 중단시키고, 나중에 담당자와 따로 미팅을 잡자고 한다.
상사만을 위해 만들어진 회의 – 오라클에 다닐 때 그런 회의가 많았더란다. 나는 수많은 많은 PM 중의 한 명이었고, 아주 가끔 내가 관여하거나 발표할 일이 있었지만, 주로는 그 위의 VP에게 내 상사가 보고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아니면 내 동료들이 내 상사 한 명에게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것을 보는 시간이었다. 나의 업무와도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기에 그것을 ‘정보 공유의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게 극도로 비효율적인 정보 공유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정보는 그냥 다른 방식으로도 쉽게 얻을 수 있고, 굳이 30분을 멍하니 앉아서 불필요하게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에는 이렇게 ‘전체 공유’하는 회의가 한 달에 딱 한 번 있다. 그것을 ‘All Hands (올핸즈)’라고 부르는데, 각 부서별로 한 달동안 있었던 성과를 약 10분씩 ‘서로에게’ 자랑하고 발표하는 자리이다. 이 회의를 통해 내가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하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고, 또 매니저가 설명한 이후에 내가 추가로 그 프로젝트가 가지는 장기적인 임팩트, 의미에 대해 설명하니까 회사 구성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물론, 이 회의에서 매달 회사의 현재 매출과 고객 수를 공유하고, 1년에 한 번은 우리가 돈을 얼마나 어디에 썼는지를 공유하기도 한다.

얼마전, 중간 관리자로 잘 성장하고 있는 한 직원이, “당신은 어떻게 어떤 일을 위임하고, 어떤 일을 위임하지 않을지 결정합니까?”라고 묻길래, “내가 재미있는 건 남기고, 재미없는 건 전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려고 한다” 고 대답했더니 깔깔 웃었다. 나에게 재미없는 일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없는 건 아니다. 한때는 나에게도 재미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나, 해야 할 일이지만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이 아니거나, 아니면 원래 재미있었는데 여러번 반복하다보니 이제 재미가 없어진 일들. 이런 일들을 위임한다. 이렇게 항상 노력한 덕분에,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다. 디자이너, 엔지니어들과 고객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고, 앞으로 한 걸음 더 앞서 나가는 것이 재미있다. 창업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다.
항상 좋은글 잘 보고 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약 7년전에 $50 후원했다고 DM을 받은적이 있네요. 차트메트릭은 정말 활기있는 회사라고 인지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Niche 마켓이지만, 그 시장을 공고히하고 확장해가는 모습은 멋지기도 합니다.
저도 이제 갓 시작하는 창업자의 모습으로, 성문님의 글이 힘이되고, 나침반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이지만 이렇게 공유해주시는 글이 저와같은 독자에게는 좋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오늘도 hang tight!
감사합니다. 갓 시작하는 창업자가 되셨군요! 긴 여정의 시작.. 응원합니다.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