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

게임빌(현 컴투스홀딩스)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약 20여명 남짓 되는 크기의 회사에서 나의 역할은 개발실장이었다.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즈음, 새로운 사람이 한 명 회사에 들어왔다. 그의 직책은 ‘마케팅실장’. 무척 똑똑해보이는 인상을 가졌고, 실제로 똑똑했다.

하지만 나를 감탄하게 한 건 그의 똑똑함이 아니었다. 그의 기억력이었다. 그는 숫자를 참 잘 기억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숫자를 꽤 정확하게 떠올리는 능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랬다. “유저 증가율이 이번달에 20%라고 하는데, 지난달에는 24% 아니었던가요? 4%정도 감소한 원인이 뭐죠?” 또는 이랬다. “마케팅팀에서 2400만원 예산 집행을 해서 15%의 유저 증가가 있었구요, 지난번 1800만원을 집행했을 때에 비해 두 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나를 감탄하게 한 일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렇게 기억력이 높은 사람 아래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얼마나 긴장을 하게 될까 생각했다. 실제로 마케팅실은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 ‘똑똑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고, 회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다. 특히 회의 진행이 효율적이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회의 시간에 누가 뭔가를 질문하면, “아, 그건 지금 제가 기억이 안나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참 많다. 사실 그 중 절반은 말만 하고 실제 보고하지도 않고, 또 절반은 질문을 한 사람이 질문한 사실을 잊어버려서 그냥 지나가버리기가 일쑤다. 그렇지만 그가 있는 회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즉시 숫자를 대답했고, 바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즉시 그 숫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서 대답하고는 했다. 의사 결정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전형적인 이과 성향이었던 나는, 학창 시절에 항상 원리를 바탕으로 한 수학과 과학은 자신이 있었지만, 역사, 지리, 사회, 도덕 등의 ‘암기’를 기반으로 한 과목에는 약했다. 그래서 나에게 ‘기억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암기력이 좀 부족해도 논리가 강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케팅실장의 기억력은 나를 감탄케 했고, 그 또한 나와 같은 전공인 ‘이과’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과이기 때문에’ 라는 핑계거리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때부터 연습하기 시작했다. 숫자를 외우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내가 지시한 일들을 기억하는 연습을 했다. 기억력과 암기력이 원래 나쁘다고 생각했던 나이지만, 계속 훈련을 하다보니, 그리고 그 훈련을 20년 이상 해오다보니, 이제 구체적인 내용을 꽤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회사 인수 금액 등 중요한 숫자들을 꽤나 정확하게 기억해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떠올려서 언급할 수 있게 되면 뿌듯함을 느낀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연습해온 ‘기억하는 능력’ 덕에 시간을 아끼고, 일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면서, 좋은 기억력이 모든 리더에게 꼭 필요한, 그리고 필요함을 넘어서 매우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상사가 하는 최악의 행동 중 하나는, 직원에게 일을 시켜놓고, 조사를 시켜놓고 자기가 잊어버리는 것이다. 처음엔 직원이 열심히 그 일을 한다. 그래서 결과를 보고한다. 그 사이에 상사가 이내 지시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면 힘이 다 빠진다. 그 다음에 상사가 또 일을 시킨다. 이번엔 대충 한다. 어차피 시간 조금 지나면 잊어버릴 것이므로. 어떤 경우엔 아예 일을 하지도 않고 시간이 좀 지나 상사가 지시한 내용을 잊어버리기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런 회사에서 중요한 일들이 착착 진행될 수 있을까?

이렇게 기억력이 나쁜 (또는 기억을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 상사가 하는 또 하나의 행동이 있다. 바로 부하직원 또는 비서에게 ‘메모’를 시키는 것이다. 직원은 그러면 필기 로봇이 된다. 비참한 일이다. 필기는 하지만 권한은 없다. 그가 하는 일은 필기한 내용을 상사에게 보내거나 (그러면 기억력이 나쁜 상사는 또 대충 읽고 넘긴다), 필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회의록을 정리해서 다른 부서와 공유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렇게 어떤 직원이 보낸 회의록을 진지하게 대한 경험이 있는지. 상사가 직접 정리해서 공유한 내용이 아니면, 또는 상사가 그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적어도 다음 2주 동안에) 기억하지 않는다면, 회의록에 있는 내용의 90%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잊혀지고, 장시간 회의에 소모한 시간은 점차 무의미해져가고 만다. 그리고 나서 다음 회의에 또 똑같은 내용을 다룬다. 그리고 그 내용의 90%는 다시 잊혀져간다.

지금부터 연습해보자. 기억력은 선천적인 능력이라 어느 정도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긴 하지만, 얼마든 훈련에 의해, 그리고 도구의 도움을 받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연습하면, 언젠가 자신의 기억력에 감탄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사실 자신이 있는 영역은 아니다. 매우 외향적인 성격 탓에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몇년 전에 만났던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너무 죄송하고 민망한 일이지만 – 이것도 좀 더 훈련을 통해 향상시켜보려 하고 있다.)

참고로, 그 당시 나를 감탄하게 했던 사람은 송재준이고, 1500명의 직원을 가진 (주) 컴투스의 대표이사역을 약 2년간 맡으며 코인원, 위지윅스튜디오 등 굵직한 투자들을 결정해 큰 성과를 낸 후 2023년 3월에는 ‘글로벌 최고 투자 책임자’ 역할로 전향했다. 또한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사인 크릿벤처스의 설립자이자 대표이기도 하다. 아래 인터뷰 글에서 그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CEO&STORY] 송재준 컴투스 대표 “콘텐츠와 블록체인 투자 연계…’컴투버스’의 가치는 무한대” – 서울경제

2023년을 돌아보며

2023년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정리.

뉴욕 사무실 확장

뉴욕 맨하탄 사무실

뉴욕에 있는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사무실을 확장 이전했다. 맨하탄의 월스트리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199 Water St.에 있는 위워크 사무실인데, 34층에 위치한데다 브룩클린 브릿지를 내려다보는 뷰를 가지고 있어 누구라도 방문하면 감탄하게 된다. 뉴욕에 있는 수많은 위워크 건물 중 어디에 사무실을 얻을까 고민하다가 구글 맵을 보니 여기가 뷰가 가장 좋을 것 같아서 가봤는데 감히 뉴욕 최고의 뷰라 할 만했다. 큰 망설임 없이 여기로 골랐다. 이 사무실을 방문하는 게 기분 좋아 분기에 한 번 정도 뉴욕을 방문하고 있다.

공격적 직원 채용

차트메트릭 직원들과 함께

창업한 지 8년차. 내가 직접 하던 일을 점차 줄이고 나를 대신할 사람들을 채용하면서, 풀타임 직원이 40명 정도로 늘어났다. 특히 2023년은 우리에게 채용 운이 좋은 한 해였는데, 그 이유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대형 테크 회사들이 신규 채용을 중단하거나, 더 나아가 대규모 감원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기회가 되었다. 전 같으면 채용하기 어려울 법한 인재들이 많이 지원했고, 이를 활용해서 좋은 사람들을 채용할 수 있었다.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켈로그 Kellogg 에서 MBA를 마치고,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위워크 등에서 경험을 쌓고 합류한 Akash, UCLA 학사, 하버드 대학 석사를 마치고 디자이너로 합류한 Mike,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7개의 인턴 경험을 쌓고 졸업하자마자 마케팅 담당 직원으로 합류한 Sarah, 뉴욕 NYU 대학을 졸업하고 음악 업계에서 수년의 경험을 쌓고 합류해서 차트메트릭 고객들의 모든 질문과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는 Dom, ‘데이터 시각화및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가지고 수년간 인턴 등의 경험을 쌓고 합류해서 차트메트릭 블로그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Nicki,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나를 감동시킨 커버 레터를 써서 지원했던 Nate, 버클리 대학 석사 과정 중 우리 회사에서 인턴십을 마치고 졸업 후 데이터 엔지니어 풀타임으로 합류한 Kashin, 그리고 100명이 넘는 지원자들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내어 우리가 데이터 애널리스트로 채용한 Melina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그 어떤 사람도 따로이 ‘관리’가 필요하지 않은 인재들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고, 상사의 관리를 받아 일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직접 관리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그들을 관리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고 그들이 기여한 일을 인정하고 칭찬하는데 시간을 쓴다.

연 구독 매출 $8.5MM (약 110억원) 달성

차트메트릭 매출 그래프 (2022년~2023년)

1년동안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여 $8.5MM을 달성했다. 연초에 계획했던 $9MM에는 조금 못 미치는 수치이지만, 올해 SaaS 시장이 전체적으로 얼었고, 경쟁자가 가격을 크게 인하하는 등 경쟁이 극심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고 생각한다.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이 새로이 고객이 되었고, 기존 고객이었던 유니버설 뮤직 그룹, 소니, 워너 등도 소비를 늘렸다. 아티스트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맞춘 제품도 순조로이 성장하고 있다. 내년에 매출을 더욱 견인할 흥분되는 프로젝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회사는 2020년 이래 4년째 흑자를 내고 있고, 올해에 최대 액수의 보너스를 집행했다.

크루즈 여행

캐리비안 크루즈 (16층 짐에서)

태어나서 처음 해 본 크루즈 여행 – 나이 든 사람들만 하는 건줄 알았는데, 사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이 하기에 정말 좋은 여행 방법이다. 실제로 어린 아이를 둔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배 안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공간은 16층에 위치한 짐(Gym). 망망대해와 멀리 있는 섬을 바라보며 트레드밀에서 뛰는 기분은 최고다. 4월에 했던 1주일의 캐리비안 크루즈 여행(플로리다 – 케이만 제도 – 자메이카 – 바하마스 – 코코 아일랜드)의 경험이 좋아서 11월에 또 지중해 크루즈에 다녀왔다.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서 마르세이유 – 제노아 – 로마 – 팔레르모 – 말타 – 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일정. 배에서 자고 먹는 것이 모두 해결되고 키즈 클럽도 잘 되어 있어 아이들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배 안의 극장에서 매일 밤 하는 공연들도 볼 만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방법으로 여행하게 될 것 같다.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사외이사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명함과 사원증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마지않던 회사로부터 갑자기 사외이사 제안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란, 그 기분이란. 올해 초, 에스엠이 큰 변화를 겪으면서 사외 이사 의석을 늘렸는데, 그 과정에서 추천을 받았다. 김규식 변호사/의장을 비롯해 이승민 파트너 변호사, 김태희 대표 변호사, 문정빈 고려대 교수와 함께 이사회에 합류했다. 매달 있는 이사회에 참석하며 케이팝 제작 과정에 대해 많이 배웠고, 시가총액 2조원이 넘는 큰 회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웠다. 형식적인 거수기가 아니라 긴 토론을 거쳐서 결론을 내리는 정식 이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고, 그렇기에 이 일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숙명여대 객원교수 임명

숙명여대 겸임교수 임명식 – 장윤금 총장과 함께

2022년에 숙명여대 장윤금 총장님을 만났는데 그것으로부터 인연이 되어 숙명여대 겸임교수 임명을 받았다. 수업을 맡은 건 아니고, 한국 방문할 때 특강하고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일이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학생들 100여명을 대상으로 ‘데이터로 돈을 만드는 일’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건강 지표 개선

건강 검진 결과 (2022년 vs 2023년)

원래 꾸준히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건강한 패턴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말에 했던 건강검진 지표가 맘에 안들어 식사와 생활 패턴을 확 바꾸었다. 탄수화물을 극적으로 줄이며 밥/빵/떡/면을 거의 안먹고(원래 바지락 칼국수를 그렇게 좋아했었더라는), 소고기 및 돼지고기도 특별한 식사가 아니라면 잘 먹지 않는다. 아침은 삶은 계란과 사과, 그리고 그릭 요거트, 점심은 참치 샐러드, 저녁은 다양한 종류의 한식을 먹는다. 매번 식사 후에는 운동하거나 걷고, 저녁에 펠로톤 자전거로(펠로톤 예찬 글 참고) 30분 정도의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강한 근력운동을 했다. 그 결과, 10개월만에 거의 지방만으로 8kg이 빠졌고, 혈압도 낮아졌으며, 중성지방 및 간 수치가 크게 낮아졌다. 심뇌혈관 나이는 내 나이보다 7살이 더 낮게 나왔다.

멕시코 리트릿

멕시코 리트릿 영상

차트메트릭 풀타임 직원들을 멕시코 카보(Los Cabos)로 초대해 리트릿을 했다. 워크샵이라고 부르지 않고 리트릿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일이 아닌 놀이 일정이기 때문이다. 3박 4일동안 고급 빌라에서 셰프가 차려주는 요리를 먹고,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마시며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는 각자 할 일을 하고, 오후는 ATV, 해변 산책, 테니스, 수영 등 운동하고 노는 일정으로 잡았다. 든든한 COO인 안드레아스(Andreas)가 모든 구체적인 일정을 꼼꼼히 확인하고 챙겨줘서 나도 손님인 것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데이빗 포스터와의 만남

라스베가스 윈(Wynn) 호텔의 백스테이지에서, 데이빗 포스터와 그의 아내 캐서린 맥피와 함께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는 미국의 팝 업계를 주름잡는 대단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다. 전설적인 팝 가수 셀린 디온(Celine Dion)이 19살 때 그를 발견하고 함께 일해 지금의 위대한 인물로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안드리아 보첼리, 조쉬 그로반, 마이클 부블레 등이 불러 유명해진 수많은 노래들을 그가 만들었다. 영화 ‘보디가드’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불러 유명해진 “I will always love you“를 그가 편곡했고, “I have nothing” 또한 그가 공동 작곡한 작품이다. 라스베가스의 윈(Wynn) 호텔에서 공연할 때 그와 그의 아내를 백스테이지에서 만나 30분간 이야기를 나눴는데, 차트메트릭에 관심을 보이고 농담도 주고 받으며 기억에 남는 시간을 가졌다. 8년 전, 음악 업계에서 사업을 하기로 했던 결정을 했던 것이 자랑스러웠던 경험이다.

일론 머스크 Elon Musk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 전기. 나온 지 얼마 안되어 사서 단숨에 다 읽었다. 688페이지의 긴 책이지만, 그래도 쉽게 읽혔다. 솔직히 마지막 100페이지는 거의 트위터 인수에 관한 이야기라서 대충만 봤다. 전에도 일론 머스크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수년 전인데 애슐리 반스(Ashlee Vance) 가 쓴, 2015년에 출간한 Elon Musk: Tesla, SpaceX, and the Quest for a Fantastic Future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이라는 책이었다. 그러니까 일론이 지금보다 8년 더 젊었을 때 일이고, 내가 사업을 시작한 것과 같은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 나이트의 ‘슈 독(Shoe Dog)‘과 더불어, 나에게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역할을 해준 책이다.

솔직히 나는 애슐리가 쓴 버전이 더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월터 아이작슨은 물론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고 대단한 전기 작가이긴 하지만, 자신의 해석과 경험을 넣지 않아 책이 좀 드라이한 경향이 있다. 그 전에 썼던 스티브 잡스 책도 그랬고.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고증을 통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리고 찬양이나 칭찬 없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괴짜에 미치광이에 참을성 없고 신경질적인) 묘사하는 것은 좋은 점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를 매우 가까이 대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아쉬움이 있다. 인간적인 면을 묘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인간적이어서 우리가 그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직접 대면하게 만든다는 점은 좀 불편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꾸며진 모습’이 더 익숙한 우리에게 많이 어색하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일론 머스크 전기에서도 분명 배울 점이 많아 이곳 저곳에 줄을 쳤는데, 기록을 남길 겸 북마크했던 대목들을 여기에 공유한다. 리디북스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리디북스의 ‘이미지로 멋지게 공유하기’ 기능은 정말 훌륭하다!


많이 공감했던 대목. 나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사 주신 IBM PC/XT 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기에. 아버지는 컴퓨터에 대해 잘 몰랐지만, 당시에 오락실 게임에 중독되어 있던 내가, 아마도 컴퓨터를 가지면 오락실로부터 관심을 옮길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결국은 오락실 게임 대신 훨씬 정교하고 규모가 큰 PC 게임에 중독되어 훨씬 더 큰 시간을 쓰고 말았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해본 경험들이 있고, 그 중 무척 훌륭한 리더들도 많았지만, 결국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비슷한 면이 있어 공감.

이 대목도 공감. 나 역시 게임을 사랑하고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보내는, 그리고 내가 자아 실현을 이루는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게임 업계를 떠나는 결정을 했고, 지금은 대신 음악 업계에 있다. 음악 업계 역시 유일한 길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대단히 재미있고, 만족한다.

머스크가 직접 한 말. 나 역시 한 때 ‘박사 학위’를 고려했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존경할 일이지만, 박사 학위 자체가 목적인 경우에는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박사 과정을 밟지 않은 것은 다행이고 잘 한 결정이었다.

내가 차트메트릭 조직을 짜고 운영하는 철학과 유사한 면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많은 큰 회사가 그러하듯 ‘기획 -> 디자인 -> 개발 -> QA’로 짜여진 제품 개발 과정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제품이 없이 QA를 한다는 건 말이 안되고, 기획이나 디자인 없이 개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이 절차를 완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엔지니어링’이 분리되지 않고 기획 또는 디자인과 융합되는 것을 항상 선호한다. 다시 말하면, 어떨 때는 (특히 회사 초기에는 더욱) 기획이나 디자인 없이 엔지니어링이 먼저 시작하도록 한다. 비록 ‘못생긴 제품’이 나올지라도 상관 없다. 나중에 얼마든지 개선할 기회가 있으니까. 기획과 디자인에 시간을 많이 쓴 후 개발에 들어가면, 가장 큰 문제가 기획과 디자인에 얽혀서 혁신을 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누구냐에 따라 달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기획자’가 혁신을 드라이브하기보다는 팀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혁신을 드라이브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꽤 엔지니어가 팀에서 가장 똑똑한 경우가 꽤 많다.

이건 좀 재미있어서 북마크. 나도 일론 머스크의 이런 면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몇 번 놀란 적이 있는데, 그 큰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디테일에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여 깜짤 놀란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으로 남고 싶어하기에 이게 더 와닿은 것 같다.

바보 지수(idiot index)라는 말을 사실 처음 듣는데 정말 말이 된다. 어떤 산업 분야든 이게 존재하고, 이것이 존재하는 한 사업 기회가 있다. 바보 지수가 높을수록 이를 파괴했을 때 얻게 되는 기업 가치는 클 것이다. 나 역시 일종의 ‘바보 지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우리가 또다시 그 ‘바보 지수’의 예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게… 스페이스X 가 몇 번 우주선을 터뜨리고 나서도 어떻게 사재를 부어가며 버티고 결국 성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 그게 가장 중요했구나.

너무 재미있어서 저장. 우주선 발사 직전에, 발사대에 문제가 생겼다. 밑단 한 곳에서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도 엔지니어들은 발사를 미루고 몇 주에 걸쳐 수리하자고 했는데 일론이 제시한 방법이 재미있다. 균열이 발생한 아래 부분을 죽 둘러 잘라내자는 것. 결과는? 실제로 그렇게 했고, 발사에 성공했다.


이렇게 인용하면서 내 느낌을 달고 나니 내가 흡사 일론 머스크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비슷한 면을 많이 발견한 것도 사실. ㅎㅎ 자라면서 아버지의 존재감이 크지 않아 거기서 결핍을 느낀 부분도 닮은 면이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그의 모습을 한 두가지 정도는 공감하지 않을까?

이 책을 좋아했다면, 위에서 소개한 애슐리 반스의 책을 추천한다.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 있다. 나는 이 버전이 더 극적이고 재밌었다.

펠로톤 Peloton 예찬

주변 사람들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1,000달러 이상의 높은 가격때문에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유산소 운동량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장점을 생각해서 몇 달 전 펠로톤 바이크를 샀다. 약 3달간 사용해봤는데 결과는 대만족!

펠로톤 수업 화면

원래 나는 자전거를 타던 사람은 아니었다. 유산소 운동을 한다고 하면 주로 트레드밀에서 뛰거나, 수영을 하거나, 아니면 그룹 레슨에 참여하곤 했다. 스핀 클래스도 몇 번 들어봤지만 별로 땡기지 않았다. 하지만 펠로톤을 시작하고 나서 자전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재미있으면서도 운동 효과가 정말 좋다. 아래는 첫 한 달간의 운동 기록이다.

내가 애플이나 테슬라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느 하나만으로는 의미가 없도록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어서인데, 펠로톤도 그런 면에서 애플 제품을 연상시킨다. 이런 아름다운 제품을 사용하다보면 그 제품을 만든 사람들의 노력과 철학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계속 자전거 안장 위에 앉고 싶도록,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요소가 세 가지 있는데, 천재적인 디자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첫째, 대시보드. 자전거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속도(cadence / rpm)와 저항성(resistance)이다. 그 두 가지의 결합으로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이 정해진다. 당연히 펠로톤 대시보드에는 이 두 가지가 항상 표시되어 있는데, 수업을 하는 동안 강사가 목표 케이던스와 저항성 범위를 준다. 내가 그 목표 안에 들어가면 노란색으로 바뀌고, 벗어나면 흰 색으로 바뀐다. 이게 아주 미세한 건데, 양쪽을 같이 노란색 범위 안에 들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든다. 내가 범위 안에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강사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펠로톤 멤버들이 보는 것도 아닌데도 이 안에 들도록 노력하게 만든다는 것.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기가 막힌 디자인이다.

화면 아래에 속도(cadence)와 저항성(resistance)이 항상 표시된다.

둘째, 리더보드. 케이던스(회전 속도)와 리지스턴스(저항)의 조합으로 출력값(output)이 달라지는데, 이 수치가 얼마나 빨리 올라가느냐에 따라 내 순위가 정해진다. 실시간 수업을 참여하면 동시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비교가 되고, 녹화 수업을 참여하면 그동안 그 수업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과 비교가 되며 순위를 보여준다. 이게 정말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이다. 내 바로 앞에서 가는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고, 내가 따라잡으면 그 사람은 다시 힘을 줘서 나를 앞지르고.. 그 사람에게 하이파이브를 보내고 또 받는다. 친구 맺기를 할 수도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미세한 디자인이 들어 있는데, 자전거를 타다가 일시 정지를 하는 시간이 1분 이상이 되면 내 순위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 않는다. 그럼 좀 억울한 생각이 드니 결국 끝까지 하게 된다. 일단 시작하면 물 마실 틈도 없이 끝까지 하게 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운동 효과가 있을까.

셋재, 최고 수준의 강사들. 수십 명의 강사들이 있는데 다들 정말 실력이 출중하다. 이런 저런 수업을 듣다 보니 가장 맘에 드는 강사들이 둘 생겼는데 리앤 하인스비 Leanne Hainsby벤 앨디스 Ben Aldis이다. 일단 외모가 출중하고, 수업도 깔끔하게 잘 하고, 영국식 액센트가 매력적이고, 동기부여가 되는 말을 쉼 없이 잘 한다. 이 글을 쓰다가 처음 알았는데, 공교롭게도 둘이 커플이다!

벤 앨디스(Ben Aldis) 펠로톤 스튜디오 수업 장면

펠로톤을 시작하면서 이제 시간이 없다든지 날씨가 안좋다든지 하는 핑계는 댈 수가 없게 됐다. 새벽 5시에 할 때도, 밤 11시에 할 때도 있는데, 에어팟을 꼽고 30분간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운동하고 나서 찬 물로 샤워하고 나면 기분이 최상이다. 아, 또 자전거를 타고 싶어졌다.

감동적인 이메일

작년 여름, MBA 인턴을 뽑기 위해 나의 모교인 UCLA 앤더슨에 연락했다. 30명이 넘는 학생들로부터 이력서를 받았고, 그 중 5명 정도와 통화한 후에 최종 1명을 인턴으로 뽑았다. 인터뷰했던 다른 지원자들도 참 괜찮았는데 다 채용할 수 없어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일에 대해 잊고 있던 중, 갑자기 엊그제 이메일을 받았다. 정말 감동했다. 자신을 채용하지 않은 회사에 1년이 지나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어쩌면 인턴을 했을 때보다도 더 큰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허락을 얻어 여기에 포스팅한다. ChatGPT 번역문 (너무 공손한 문체로 나왔다는), 그리고 그 아래 원문.

성문님께

혹시 기억하실까 하는데 저번 해 이맘때쯤 연락드렸던 것 같습니다. 여름 인턴십을 찾고 있을 때, Chartmetric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연락한 거예요. 당신께서는 친절하게도 시간을 내주시고, 저와 이야기하신 뒤에 안드레아스와 연결해 주셨는데, 당신처럼 그는 제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냥 간단한 소식과 동시에 연락해 드리기 위해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어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연결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제가 이야기했던 걸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음악은 항상 제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기억하는 한, 음악은 감정을 처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며 불편한 상황에서 위안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는 음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텐데요, 음악이 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스포츠에 매달리고 야구에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쏟게 되었고, 결국 대학에서도 야구를 했습니다.

야구를 그만둔 이후로 열정을 찾고 추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처음에 앤더슨에 왔던 이유 중 하나가 채워줄 만한 흥미로운 직업 경로를 찾기가 어려워서였습니다.

당신과 대화하기 전까지 음악 산업에서 일하려는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무섭고 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일반적으로 음악가나 음악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제되는 배타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진심, 아티스트를 존경하고 다른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제가 느꼈던 것과 같은 이점을 누리길 바라는 열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큰지 들으셨다는 말은 잊지 못할 거예요. 단지 그 열정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던 것, 그 말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분명히 지난 여름에 Chartmetric에서 일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저는 제 친구와 함께 작은 음악 관리 회사/독립 음반 레이블을 시작했고, 함께 일하고 발전시킬 아티스트를 계약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음악을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산업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침내 인생에서 옳은 길을 찾은 것 같아요.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나는 산업 내에서 어떻게 성장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난 매일매일 굉장히 충만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고, 졸업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가장 진심으로 감사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연락드린 거예요.

다시 한 번 성문님께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얼마나 크게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성공과 행운을 빕니다.

에런


Sung –

Hopefully you remember me, we connected last year around this time when I was looking for a summer internship and wanted to learn more about Chartmetric. You graciously took the time to chat and connected me with Andreas, who, like you, was far more generous with his time and far more helpful than I could have possibly expected.

I just wanted to follow up with you to give you a quick life update, and more importantly to tell you how grateful I am that we connected.

Maybe you remember me telling you this, but music has alway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my life. For as long as I can remember, music has helped me process emotions, connect with others, and find solace in uncomfortable situations. In a different world, I would have committed more time to playing music as a kid because of how important it is to me, but I instead pursued sports and devoted most of my time and effort to baseball, which I ultimately played in college.

I had a difficult time finding and pursuing a passion since I stopped playing ball, and part of the reason I came to Anderson in the first place was that I was struggling to find a fulfilling career path that I’d feel excited to pursue.

Until I spoke with you, I did not have the confidence to try to work in the music industry. I was intimidated by it, did not think I could offer value, and generally thought it was an exclusive space created and controlled by musicians and those with robust musical knowledge. I did not think it was enough to just really care about music, to admire artists, and to want to have a hand in helping others benefit from music in the same ways that I had.

I’ll never forget how you said to me that you could hear how passionate I was about music, and that passion alone was valuable. Obviously, I didn’t wind up with Chartmetric last summer, but I just wanted to tell you that since our conversation, I started a small music management company/independent record label with one of my best friends, and we signed an artist that we work very well with and are excited about helping to develop. Over the past year or so, I’ve had some amazing experiences with music, met incredible people, and learned a ton about the industry. Most importantly though, I finally feel like I’m on the right path in life. I don’t know where the company will go, or how I will grow within the industry, but it’s largely irrelevant to me because I feel extremely fulfilled throughout my day to day, and I just wanted to reach out as I near graduation to express my sincerest gratitude and appreciation for you.

Thank you again for everything Sung, I cannot tell you how much I appreciate it. I wish you good luck and continued success with the company.

Aa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