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루프(Hyperloop)

오늘 테슬라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친구와 엘론(실제 발음은 ‘일론’에 가깝다) 머스크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아래는 어제 올라온 ‘일론’의 흥분한 트윗. 테크니들에 재은님이 요약해서 올려주셨다.

아래는 CNBC가 방송한, 하이퍼루프의 첫 시험 주행을 보여주는 장면. 로켓처럼 빵 튀어나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현재는 수 초만에 300mph에 도달하는데, 이는 시속 482km/h에 해당한다. 목표는 700mph, 즉, 시속 1,200km/h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비행기(약 시속 1,000km/h)보다 높은 속도이다. 계속해서 발전한다면 비행기보다 훨씬 빨라지는 것도 가능할 지 모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30분만에 도달할 수 있을 지도 (비행기로 1시간 20분 가량 걸린다).

감동적이다. 근데 나에게 그보다 더 감동을 준 건 하이퍼루프 웹사이트에 있는 아래 사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팀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 있고, 행복해 보인다. 한계에 도전하고 그 한계를 현실로 만드는 데서 오는 자부심이 담겨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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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루프 팀

수년 전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이런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PandoDaily와의 인터뷰에서 꺼내놨던 아이디어인데, 이제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혼자 하면 꿈이지만 함께 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참 멋있다. 이제 나에겐 잡스(Jobs)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다.

사업의 시작

요즘 많이 바쁘다. 내 글을 쓰기는 커녕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시간도 없다. 아니, 이제 그런 내용에 이전에 비해 관심이 덜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한때는 할 일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요즘엔 이 많은 일들에 내 시간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가 더 고민이다.

약 1년 반 전, 5년 반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떠나기 2주 전쯤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인수 인계를 마치고 여유 있는 며칠을 보낸 후, 2014년 11월의 금요일 오후 따듯한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눈부시던 날에 짐을 정리해서 회사 건물을 나왔다. 한때는 럭셔리한 회사 건물과 드넒은 호수, 그리고 그 호수를 내려다보던 내 사무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마침내 몇 년간 기다리던 영주권을 받고, 나만의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떠날 때는 그렇게 홀가분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함박 웃음을 짓고 매니저와 악수했다. 그는, 언제든 원하면 돌아오라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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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 쇼어즈(Redwood Shores)의 오라클 본사. 내 사무실은 왼쪽에서 세 번째 빌딩 3층에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큰 회사에서 내 자리 하나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음 고생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MBA 졸업 즈음인 2009년 여름은 정말 쉽지 않은 시기였다. 2007년 입학할 당시에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골드만 삭스, 맥킨지 등에서 활발히 선배들을 채용해갔는데, 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건이 터졌다 (영화 ‘빅 쇼트‘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그 때는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일시적으로 경기가 안좋은 것이겠거니 했다. 산타모니카(Santa Monica)에서 출발해서 웨스트우드(Westwood)에 위치한 학교에 가는 약 15분 동안 라디오를 듣고는 했는데, 2008년 겨울이 되자 매일 ‘오늘 주가가 바닥을 쳤습니다’, ‘실업률이 오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라는 이야기뿐이었다.

MBA 입학한 2007년 여름(왼쪽 끝)부터 2009년 여름(오른쪽 끝)사이의 S&P 500 지수 변화 (출처: Google Finance)

해외 취업 비자 소지자들이 줄줄이 해고되고 있는 마당에 외국인 학생으로서 인턴십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자&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 덕분에 인터뷰 기회는 종종 얻었지만, 긴장하고 준비하던 인터뷰마다 때로는 실력 부족으로, 때로는 영어 부족으로, 때로는 핏(fit)이 맞지 않아 번번이 떨어졌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을 마이크로소프트 자체 스튜디오에서 더 많이 개발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외부 개발사와 협력하는 것이 더 좋은가’라는 질문에 쩔쩔 매고 부족한 영어로 더듬더듬하며 바보 같은 대답을 하고 나왔을 때는 정말이지 내 자신이 싫었다. 보통 MBA 1학년이 절반이 지나는 시점부터 인턴십을 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첫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때 즈음에는 90% 이상의 학생들이 인턴 오퍼(offer)를 받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오퍼가 없었다. 한국에서 그 고생을 해서 G-MAT 시험을 보고, 에세이를 쓰고, 겨우 합격을 받아서 와서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는데 인턴십을 구하지 못했다. 간간이 오는 인터뷰 요청이 내가 희망의 한줄기를 잡고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오는 거절 메일은 나를 낮아지게 했다.

결국 1학년 수업을 모두 마치고, 모두가 인턴십을 위해 각 도시로, 각 나라로 떠난 6월 말, 나는 레주메를 고치며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인튜잇(Intuit)과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 두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나는 극적으로 썬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수락했다. 시간당 임금과 연봉이 적혀 있던 그 편지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월급 700만원이 넘는, 내 가난한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히 좋은 조건이었다.

여름 인턴십 오퍼 레터

여름 인턴십 오퍼 레터

인턴십을 풀타임으로 바꾸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당시 매니저인 파람(Param)이 나를 좋게 봤고, 또 그 위 VP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은 덕에 인턴십을 마치고 다시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고, 결국 풀타임 오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오라클과의 합병이 발표되고난 후 채용이 전면 금지되어서, 파람은 내 이력서를 들고 EVP(Executive Vice President)까지 찾아가서 설득해야 했다고 한다. EVP라고 하면 당시 3만명의 직원 중 상위 10명 정도에 불과한 직급이었다. 2008년 여름 인턴십 오리엔테이션 때는 20여명 정도 사람이 있었는데 2009년 여름, 학교를 졸업하고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 갔을 때는 풀타임은 나 한 명이었고, 인턴십을 시작하는 한 명이 있었다. 당시 인사 담당자는 ‘당신이 어쩌면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가 마지막으로 채용한 직원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I think you are the last person to be hired at Sun)’라고 웃으며 서류를 건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의 정식 직원이 되었다.

Sun Microsystems (현 오라클) 본사 캠퍼스

언제나 깔끔하게 손질된 잔디와 높은 야자수가 아름다웠던 Sun Microsystems (현 오라클) 본사 캠퍼스

James Gosling! The father of Java Language. I was in the same meeting with him. Unbelievable!

자바(Java) 언어 창시자인 제임스 고슬링(James Gosling)의 옆자리에 앉아 회의를 하던 날은 내 삶에서 가장 신기한 순간 중 하나였다.

그렇게 우여 곡절 끝에 얻은 기회였지만 떠날 때는 미련이 없었다. 회사 다니는 동안 조금씩 엔젤 투자를 하며, 그리고 너무나 멋지게 세상을 디스럽트(disrupt)하는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을 보며, 사업이라는 것이 쉬워 보였고, 원칙에 충실하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나도 얼마든 멋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회사를 떠난지 세달 후인 2015년 봄, 나는 우울증 증세를 경험했다. 세상에 흥미로운 일은 하나도 없었고, 무엇보다, 세상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었다. 내가 1년동안 품고 있던 아이디어는 내가 가장 큰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관련 지식이나 경험 또한 참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쉽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 하나 다 어렵게 느껴졌다. 작은 결정 하나를 위해 오래간 고민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고민하거나 불필요하게 쓰는 시간들이 이제는 모두 급여에 해당하는 기회비용으로 환산된다는 것이었다. 하루를 별 소득 없이 보내면 몇 백달러어치의 돈이 날아간 셈이었고, 1주일을 진전 없이 보내면 몇 천 달러를 날린 셈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차 한대를 살 돈이 날아갔다. 내 시간의 비용이 정말로 크게 느껴졌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실리콘밸리의 살인적인 물가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첫 아이는 2살을 갓 넘겼고, 태어난 지 1개월이 된 둘째는 나와 아내의 보살핌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라이너(Liner)라는 모바일 웹페이지 하이라이팅 앱을 만든 아우름플래닛 창업자들을 만났고, 산호세의 한 아파트 거실에 앉아(서울에서 만났을 때는 곱창을 먹으며) 끝내주는 제품을 만드는 재미를 누렸다. 그렇게 몇 달을 함께 일한 후 우리는 앱을 프로덕트헌트(Product Hunt)에 런칭했고, 총 512표를 받아 당일 2등으로 마감했다. 흡사 승마 경기를 보는 듯 흥분되는 하루였다.

L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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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Alive라는 모바일 비디오 에디팅 앱을 만든 뛰어난 팀, 매버릭(Maverick)과도 함께 일했는데, 긴 호흡을 가지고 진지하게 사업에 임하고, 밤낮 없이 일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오주현 대표를 비롯, 공동창업자들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작년 여름, 서울에 방문하는 동안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스파크랩스 5기 데모 데이를 구경했다. 스파크랩스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멘토중 한 명으로서 그간의 과정을 지켜봤고, 그와 함께 스파크랩스를 지켜간 많은 회사들 또한 지켜봤기 때문에 그 날의 데모 데이는 그 전부터 봐왔던 것이고, 이전보다 좀 더 커지고 화려해졌다는 것 말고는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달랐다. 데모데이가 진행될수록, 그 스테이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 만든 프로토타입과 함께 스파크랩스 6기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6기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네달 후, 내가 그 스테이지에 섰다. 그리고 팀원들과 함께 3개월동안 공들여 만든 제품을 발표했다. 제품의 이름은 차트메트릭(Chartmetric) – 음악과 데이터의 결합.

데모데이를 마친 후 고맙게도 좋은 분들이 회사에 투자도 해 주셨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제 걸음마고 시작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조금씩 내 경험과 배움을 나누고, 그런 경험들이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고, 그들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고, 또 그에 보답하고 싶다.


공지: 이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분들과 조금 더 캐주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슬랙 채널을 하나 만들어볼까 합니다. 주제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엔젤 투자 등입니다. 물론 가끔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할 수도 있겠지요. 관심 있는 분은 여기에서 간략히 정보를 입력해주세요.

영어로 된 글들의 품질이 유난히 좋은 이유

연말 휴일동안 조금 느리게 살면서 그동안 바빠서 못읽었던 글들을 읽었다. 프레드 윌슨(Fred Wilson)의 글들을 몰아서 읽고 (뉴욕의 유명한 벤처캐피털리스트인데 자신의 블로그에 몇 년째 하루도 빠짐 없이 통찰력있는 글들을 올린다. 대단하다.), 마크 서스터(Mark Suster)의 Both sides of the table 중 최근 글들을 읽고, 그간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웃긴 말들을 했는지 찾아보고, 미디엄(Medium)에서 트렌드가 되는 글들을 읽었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글들이 참 무한하다는 생각을 했다. 운전하면서는 그동안 놓친 팟캐스트, 스타트업(Startup)을 들었는데 (이번에 300억원 기업 가치로 50억원 투자를 받았다고) 그 내용 또한 참 좋았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트윗.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시했기에 여기 조금 더 써본다. 팟캐스트를 만드는 Gimlet Media가 3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그들에게 청취자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 청취자들에게 광고하는 광고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광고주들은 편당 5천달러 이상을 내는데, 그만큼을 지급하는 이유는 5천달러어치의 광고 효과가 있기 때문이고, 그 효과가 있는 이유는 청취자들이 광고를 듣고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그 중 일정 비율 이상이 유료 사용자로 전환(convert)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팟캐스트의 수준이 높은 이유는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청취자들이 돈을 많이 내기 때문인 것이다. 단순한 자본의 논리.

이전에 한 한국 3대 신문사의 편집장을 만났을 때 내가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왜 기술을 다루는 기사들의 깊이가 뉴욕타임즈의 technology 섹션에 못미치는가. 그랬더니 그 분이 반문했다. “뉴욕타임즈에서 테크 섹션을 다루는 기자들이 몇 명인지 아세요?” 한국의 3대 일간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신문사에서는 담당 기자가 불과 몇 명뿐이지만, 아마 뉴욕타임즈에는 그보다 몇 배 많은 기자들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더 이상 물어볼 말은 없었다.

이전 블로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돈을 내는 만큼 서비스는 좋아진다. 어떤 서비스가 너무나 마음에 들고, 그만큼 더 서비스가 좋아지길 원하는데 서비스가 무료라면, 회사 계좌 번호를 알아내어 무통장 입금을 하는 방법도 있다. 아마 대표이사로부터 고맙다고 전화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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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머무르기 (Staying Current)

Basecamp (37 Signals)의 창업자이자 리워크(Rework)의 저자 제이슨 프리드(Jason Fried)가 며칠 전에 쓴 글, “Giving less advice“의 일부.

Advice, like fruit, is best when it’s fresh. But advice quickly decays, and 16 year-old advice is bound to be radioactive. Sharing a life experience is one thing (grandparents are great at this — listen to them!), but advice is another thing. Don’t give advice about things you used to know. Just because you did something a long time ago doesn’t mean you’re qualified to talk about it today. (조언은 과일과 같아서 신선할 때 가장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금방 썩는다. 삶을 나누는 것과 조언을 하는 것은 다르다. 한때 알았던 일로 조언을 하지는 말 것. 이전에 무언가 했다는 사실만으로 오늘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자격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조금 과격한 표현일 수 있지만 공감이 되어서 옮겨봤다. 나 또한 그렇게 느꼈기에. 게임빌이라는 성공적인 기업의 창업 멤버로, 그리고 미국 MBA 졸업 후 현지 취업에 성공한 사람으로, 그리고 또 엔젤 투자자로서 멘토 역할을 하고 조언을 해주는 것에 한때 재미를 느꼈었다. 처음에는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곧 느낀 건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는가.’였다. 그래도 누군가의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정성을 다했고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내가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의심도 됐고, 조언을 하면서도 이게 과연 공감이 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가수 박진영을 존경하는 것은, 그가 ‘현재에 머물러(staying current)’ 있기 때문이다. JYP라는 대형 기획사를 만들고, 수많은 가수들을 키워낸 그쯤 되면 이제 곡을 쓰거나 노래를 하는 일은 그만 하고 뒷전에 앉아 사람들 관리하고, 심사위원하고 조언하면서 지낼 수도 있지만 (그 일로도 이미 충분히 바쁠테니), 그러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만의 곡을 쓰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있다. 얼마전 K팝스타 시즌 5를 봤는데, 옆에서 양현석이 ‘박진영이 국내 저작권 수입 1위’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박진영이 “나는 평소 생활에서 끝없이 영감을 얻고 곡을 쓴다”고 대답했는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올해 4월에 발표한 ‘어머님이 누구니’는 자신이 작사, 작곡, 그리고 편곡에 모두 관여했고, 유투브에서 현재 무려 24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삶을 통해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내가 K-Pop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거의 성공에 기대어 살기보다는 항상 현재에 머무르고, 그런 삶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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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폰 생각 – Part 2

며칠전 그루폰(Groupon)의 창업자인 앤드류 메이슨 (Andrew Mason)이 ‘왜 그루폰을 지지하는가(Why Root for Groupon)‘라는 글을 썼다. 그루폰의 새 CEO가 된 지 2주가 된 리치(Rich)가 그루폰 홈페이지에 올린 ‘왜 우리는 로컬 마켓에서 성공할 것인가(Why We’ll Win Local)‘ 라는 블로그 글을 읽고 즉시 들었던 생각을 쓴 것인데, 자신은 이미 그루폰을 떠났지만 당시 자신이 만든 제품이 분명히 가치를 생성했고, 그 덕에 많은 소상인들이 이익을 얻었고 소비자들에게도 잉여가 돌아갔기 때문에, 그리고 마케팅이라는게 뭔지도 모르는 소상인들에게는 그루폰이 쉬운 마케팅 채널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그루폰이 잘 되게 지지해달라는 내용이다. 거기까지는 뭐 따뜻한 이야기이고 좋은 게 좋은거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읽으면서 웬지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이전에도 한 번 블로그에서 언급했지만 그루폰이 만들어낸 가치가 과대평가되어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서는 티켓몬스터 등이 시도했다가 일찌감치 그만두고 달아난게 ‘로컬 딜’ 서비스인데 왜 갑자기 로컬 타령인지 싶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169달러짜리 경비행기 여행 등 몇 가지 매력적인 로컬 딜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읽은 것만으로는 굳이 블로그를 쓰겠다는 생각은 안했겠지만, 한 때 그루폰을 이용했던 상인의 글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한다.

We run a spa in 5 star hotel, so our prices are bit higher than average. Groupon brought to us thousands of clients who would usually never come, it was out of their price range. But what we noticed after few months is that numbers of complaints have risen significantly. They were complaining about so many silly things, and our conclusion was, the less you pay, the less you appreciate, let’s stick with higher end market. (우리는 5성급 호텔의 스파를 운영한다. 그래서 가격이 좀 높은 편이다. 그루폰 딜을 해보니 수천명의 새로운 고객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불평 불만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말이 안되는 것들로 트집을 잡았다. 돈을 적게 내는 사람들은 그만큼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그래서 우리는 고급 시장에 머물기로 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독일의 5성급 호텔쯤 되니 할 수 있는 불평에 불과할까. 질 좋은 고객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그 아래 한 마디 더 읽어보자.

My conclusion is that those who are lazy or have no marketing knowhow, they stick to Groupon to bring them foot traffic. Which is fine I guess, but lazy solution is never a good solution. (내 결론은, 게으른 사람들이나 마케팅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루폰이 고객을 데려다줄 수도 있겠지만, 게으른 해결책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루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30세 미만 창업자’라는 팔기 좋은 문구를 씌워서 그루폰을 마치 세기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도 되는 것처럼 소개했던 미디어들, 그리고 그 미디어들을 현혹했던 앤드류와 그루폰 팀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근본적인 기술 혁신이 아닌, UI의 혁신이었던 제품에게 기술 혁신과 동급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모두의 잘못이 아니었는지. 결국 그루폰은 쿠폰을 조금 더 예쁘게 포장해서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소상인들을 대신에 쿠폰을 만들어주는 서비스 정도에 불과한 것인데 말이다.

요즘 ‘회사의 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IPO 당시 24달러도 비싸다고 여겨졌던 페이스북의 현재 주가는 100달러가 넘어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300B, 즉 330조원에 달한다. 물론 여기에 브랜드 가치도 포함되어 있지만, 냉정하게는 이 회사가 전 인류를 위해 창조해낸, 그리고 앞으로 만들게될 가치의 총 합이 그정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과연 페이스북이 이룩한 업적이 이정도로 큰 것일까? 그 가치는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100년, 또는 1000년 후, 박물관에는 어떤 물건들이 전시되게 될까? 구글과 페이스북 홈페이지? 구글과 페이스북이 사용했던 서버? 그리고 중국이 만든 드론? 우리가 지금 만드는 모든 것들 중 1000년 후에도 기억되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