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성공을 꿈꾸던 엔지니어, ‘자유’를 찾아 미국에서 창업가가 되다

아래는 숙명여대 ‘실리콘밸리 탐방’ 프로그램으로 찾아왔던 네 명의 학생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그들이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것인데 최근에 하는 생각들이 잘 정리된 것 같아 여기에 그대로 옮깁니다. [원본 링크]

#About

  • 10년간 모은 유학 자금으로 미국행,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현실로
  • 게임빌 창업자를 보며 처음 발견한 ‘나도 사업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 음악 데이터에서 기회를 발견해 아티스트 데이터 비즈니스 창업
  • AI 시대의 경쟁력은 자신만의 ‘Unfair Advantage’를 가진 Builder

#PROLOGUE. 사업은 나와 가장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음악 산업 데이터 분석 회사인 Chartmetric CEO, 성문님은 어릴 때부터 뚜렷하게 하나의 직업만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대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커리어에는 관심이 많았다.

자격증을 따고 좋은 회사에 입사해 승진하고, 연봉이 높아지는 삶. 학교에 맥킨지나 BCG 같은 컨설팅 회사 사람들이 설명회를 오면 멋있어 보였고, 교수들의 권위 있는 모습을 보면 교수가 되고 싶었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을 발표하는 것을 볼 때면 대기업 엔지니어의 삶에도 마음이 갔다.

한때는 신문에서 평균 연봉이 높다는 이야기를 보고 변리사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보다 더 오래 가지고 있던 꿈이 하나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계속 있었어요. 사업이 됐든 교수 자리든, 언젠가는 미국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었죠.”

반면 사업은 자신의 선택지에조차 들어 있지 않았다.

그가 생각했던 사업가는 돈이 많고, 목소리가 크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사람들을 강하게 이끄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봐온 사업의 모습도 좋지 않았다. 집안에서 사업을 했던 사람들이 실패하며 돈과 건강을 잃는 모습을 보면서 사업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부정적으로 굳어졌다.

“사업을 하면 사람이 다 저렇게 힘들어지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정말 착실하게 공부해서 교수나 전문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에게 사업은 오랫동안 ‘나와 가장 맞지 않는 길’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한 것은 거창한 창업 교육이나 성공한 CEO의 책이 아니었다.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한 선배가 실제로 사업을 해내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PART 1.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업가를 보며 처음 발견한 가능성

진로가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게임빌 창업자인 송병준 대표를 만나면서였다.

당시 그는 “코딩을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면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서 실제 창업자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업가에 대한 선입견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가 생각했던 사업가는 목소리도 크고 리더십도 엄청 강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분도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거든요. 조금 소심하기도 한데, 하나씩 착착 해내는 게 신기했어요.”

두 학번 위의 선배였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천재도 아니었고, 엄청난 배경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이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사업을 해나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바로 자유였다.

그에게 사업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니었다.

“사업하는 사람을 보면서 제일 부러웠던 건 자유였어요.”

직장인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결국 조직 안에서 누군가가 정한 방향을 따라야 한다. 교수 역시 연구비를 확보해야 하고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움직인다.

반면 자신의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의 삶과 시간에 대한 결정권을 조금씩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원하는 게 결국 자유로운 거잖아요. 새처럼 훨훨 날고 싶은 것. 시간의 자유, 그리고 잘되면 경제적인 자유까지요.”

물론 창업한다고 곧바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달랐다.

사업은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위험한 선택’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데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PART 2. 두려움이 없어져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시작했다

창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결국 책임이다.

사업이 실패하면 돈을 잃는다. 투자받은 돈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자본을 잃게 된다는 부담이 남는다. 직원이 생기면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책임도 생긴다.

그 역시 처음부터 그런 책임을 가볍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하는 순간에는 실패할 가능성 50%, 성공할 가능성 50%인 동전 던지기처럼 느껴지잖아요. 저도 당연히 실패가 두려웠어요.”

그는 오히려 대학생 때부터 아무 두려움 없이 창업하는 사람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감을 가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도 다녀보고, 여러 사람과 일해보고, 무언가를 직접 해내보면서 ‘이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경험이 쌓여야 책임의 무게 역시 조금씩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역시 송병준 대표가 사업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사업할 용기를 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 또 있었다.

뉴욕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눔을 창업한 정세주 대표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직원 수천 명 규모의 회사를 만들어낸 그의 이야기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은 성공의 규모가 아니었다.

“그 친구가 사업이 정말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받는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항상 마지막에는 ‘근데 재밌어요’라고 끝내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어차피 어떤 일을 선택하더라도 힘들다.

회사에 들어가도 스트레스를 받고, 사업을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어려움을 선택하고 싶었다.

“인생이 어차피 힘들다면, 재미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창업에 뛰어든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보다 ‘언젠가는 될 것 같다’는 가능성과 ‘이 일이 재미있겠다’는 마음이 조금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PART 3. 좋은 아이디어보다 중요한 것은, 알아볼 수 있는 경험이다

현재의 아티스트 데이터 사업 아이템도 처음부터 오랜 시간 고민해서 발굴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디어는 오히려 우연히 찾아왔다.

한국에서 스파크랩스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당시 음악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한 어드바이저를 소개받았다.

그는 유튜브,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의 음악 데이터를 다루면서 업계에 수작업이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 데이터를 자동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그분이 주셨어요.”

엔지니어였던 그의 눈에는 해결 방법이 비교적 명확하게 보였다.

파이썬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차트 API를 연결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면 상당 부분 자동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데서 사업이 시작됐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창업 아이디어를 반드시 창업자 자신이 처음부터 발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이것이 될 것인지 알아볼 수 있는가’**였다.

그 감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미국 기업에서 근무하고, MBA를 하고, 오라클에서 일했던 경험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만들어졌다.

“그동안의 경험이 있으니까 ‘이거는 될 수도 있겠다’는 감이 훨씬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보다도 그에게 더 중요한 기준이 하나 있었다.

“되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재미있겠다는 거예요.”

그는 숫자와 데이터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일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MBA 과정에서 진행했던 컨설팅 프로젝트에서도 하루 종일 회사의 데이터를 분석하며 중요한 고객이 누구인지, 가격 정책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일이 유독 재미있었다.

지금의 음악 데이터 사업 역시 그 관심의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개인적인 관심까지 겹쳤다.

“제가 아이유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 일을 하면 언젠가 아이유를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사심도 있죠.”

창업 아이템을 찾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남들이 지나치는 기회를 알아보고,

‘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가, 그리고 이 문제를 푸는 과정이 나에게 재미있는가’를 판단하는 힘을 키우는 것.

그것 역시 창업가에게 필요한 중요한 능력이다.


EPILOGUE. AI 시대에는 ‘Unfair Advantage’를 가진 Builder가 되어라

만약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가장 열심히 준비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좋아하는 표현 하나를 이야기했다.

“Unfair Advantage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해 조금 더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만 가지고 있는 경험, 기술, 관계, 콘텐츠, 전문성처럼 다른 사람이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누군가는 그것을 좋은 환경에서 물려받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Unfair Advantage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에게는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점, 코딩을 할 수 있다는 점, MBA를 했다는 점이 하나씩 경쟁력이 됐다.

오랫동안 운영한 블로그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자산이 됐다.

음악 산업과 데이터를 분석한 글을 꾸준히 쓰면서 업계 사람들에게 ‘이 회사는 음악 데이터를 잘 다룬다’는 신뢰가 생겼고, 블로그를 통해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투자자가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냥 글을 썼는데, 그게 나중에는 다 Unfair Advantage 역할을 했어요.”

그가 사람을 채용할 때 중요하게 보는 기준 역시 비슷하다.

좋은 학벌이나 자격증보다 스스로 동기부여되는 사람, 누군가 시키기 전에 필요한 일을 발견하고 직접 움직이는 사람을 선호한다.

“일을 시켜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재미있어서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좋아요.”

그가 최근 주목하는 인재를 표현하는 단어도 Builder다.

단순히 주어진 코드를 잘 작성하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만들고, 결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경영학과 출신도 Builder가 될 수 있고, 디자이너나 음악 전공자도 Builder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특히 컴퓨터공학을 이해하는 Builder의 경쟁력이 커질 것이라고 본다.

AI가 코드를 대신 작성한다고 해서 엔지니어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가 일을 너무 잘하기 때문에, AI에게 무엇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가 훨씬 중요해진다.

“엔지니어가 AI한테 일을 시키는 것과 비전공자가 시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회사에서 AI 코딩 도구를 사용하면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같은 결과를 만들어도 AI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시하는 사람은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결과를 낼 수 있다.

결국 앞으로의 경쟁력은 단순히 ‘코딩을 얼마나 잘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고,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무기를 하나씩 쌓아가는 것.

그것이 그가 이야기하는 AI 시대의 Builder다.

그리고 자신만의 Unfair Advantage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10년 동안 모은 돈이 미국 유학의 기회가 되고,

직장 경험이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감각이 되고,

오랫동안 써온 블로그가 투자자를 만나게 하고,

엔지니어로서 쌓은 기술이 AI를 더 잘 활용하는 경쟁력이 된다.

당장은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경험도 결국 연결된다.

남들에게 없는 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경험을 하나씩 쌓아 나만의 Unfair Advantage로 만드는 것.

그것이 불확실한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임하고, 무엇을 내가 할 것인가

얼마 전 링크드인에 쓴 글에 이런 질문이 달렸다.

“회사가 커지면서 어떤 제품 관련 의사결정은 창업자가 계속 직접 해야 하고, 어떤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지 어떻게 판단하시나요?”

좋은 질문이다. 이때 나름대로 사용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그 일이 누군가의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더 큰 동기를 느낀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큰 책임을 맡고, 자신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가 앞으로의 커리어와 보상으로 이어지는 일이다. 반대로 별로 배우는 것도 없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할 수도 없고, 그 일을 잘한다고 해서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 일이라면, 그런 일에 진심을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회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엔지니어 한 명과 둘이서 일했다. 엔지니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많았지만, 그중에는 그에게 별로 재미있지 않은 일도 있었다. HTML/CSS 조금 고치는 일, Python 스크립트의 자잘한 버그를 수정하는 일, 별로 어렵지도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울 것도 없는 일들이다. 그런 일은 내가 했다. 오히려 그런 일을 내가 가져오는 것이 좋았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데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좀 더 어렵고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를 키우면서 생각해보니 이것이 단순히 “내가 일을 많이 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임이라는 것은 내 일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일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일을 위임할 때는 “내가 이걸 할 수 있나?”보다 “이 일을 이 사람이 하는 것이 이 사람에게도 좋은가?”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또 다른 경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경우다. 제품을 만들다 보면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낸다.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대로 이유가 있고,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대로 이유가 있고, 세일즈나 고객지원팀도 각자의 이유가 있다. 각각의 의견이 모두 맞을 때도 많다. 문제는 그렇게 하나하나 듣다 보면 결정 하나 내리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그럴 때 내가 관여한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완벽한 결정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계속 논의해서 내리는 완벽한 결정과 오늘 내리는 80점짜리 결정 중에서는 후자가 훨씬 나을 때가 많다. 이것이 창업자가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계속 의사결정의 병목이 되면 안 된다. 한 번 결정하고 나면 다시 그 팀이 자기 일을 하도록 놔두는 것이다.

어떤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내가 하는 것이 회사에 더 좋을 수 있고, 어떤 일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어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그 사람과 회사 모두에게 더 좋을 수 있다. 아직도 그 경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어렵다. 무엇을 위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만큼, 왜 그것을 위임하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창업자가 위임하지 말아야 할 것

창업자 또는 CEO가 가진 가장 큰 특권은, 내 일을 원하는 만큼 팀원들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가장 큰 위험은, 위임하지 말아야 할 일을 위임해서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내가 직접 챙겨야 가장 효율적인 일을 위임하는 바람에 그 사람의 시간뿐 아니라 내 시간도 낭비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직접 챙겨야 할 일’의 정의는 따로 없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는다. 오로지 내가 결정할 일이고, 또한 시간에 따라, 회사의 단계에 따라 위임해야 할 일의 종류는 계속 바뀐다. 회사가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을 위임할 수 있고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낸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전적으로 위임하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제품 리더십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품 리더십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제품 매니저와 디자이너, 그리고 엔지니어 모두가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함께 일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서 나보다 출중한 실력을 지녔다. 하지만, 디테일. 정말 미세한 디테일은 창업자가 아니면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이건 실력의 문제도 아니고 관찰력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신기하게도, 창업자에게만 보이는 디테일들이 있다.

내가 가장 즐겨듣는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에는 이러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다이슨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청소기의 디자인과 무게, 그리고 기능성에 하나 하나 관여했던 이야기, 카인드(KIND) 에너지 바 창업자 다니엘 러벳츠키가 땅콩과 아몬드가 생산 과정에서 절반으로 잘리지 않도록 신경썼던 이야기, 그리고 스크럽 대디(Scrub Daddy)의 창업자가 뜨거우면 부드러워지고 차가우면 딱딱하게 굳는 특이한 스폰지를 들고 만져보면서 주방용으로 쓰기 위해 네모가 아닌 원형으로 디자인하고 싶었던 이유, 그리고 그 안에 눈과 입 모양으로 잘라내어서 숟가락이나 주걱 등의 앞 뒷면을 동시에 닦아낼 수 있게 디자인한 과정 등.

룰루레몬(Lululemon)의 엄청난 성공 뒤에도, 창업자 칩 윌슨(Chip Wilson)의 집념과 디테일이 숨어 있다. 몇년 전 그가 쓴 자서전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여성들이 요가할 때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고 그에 맞는 재질을 찾느라 얼마나 뛰어다니고 노력하고 고생했는지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결과가 룰루레몬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린 바지이다. 그는 여성들의 엉덩이와 다리 몸매가 가장 멋지게 보이도록, 그러면서도 캐멀 토(여성 성기가 바지 윤곽에 드러나 보이는 것)를 방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를 설명한다.

회사가 커질수록 이렇게 세세히 관여하는 건 점차 어려워진다. 또한 창업자는 제품이 아닌 다른 일들로 점차 분주해진다 – 투자를 유치하는 일, 컨퍼런스에 스피커로 초대되어 발표하는 일, 임원들과 회사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일, 그리고 기존 투자자들과의 관계 또는 이사회를 관리하는 일 등. 하지만, 정말 오랜 시간동안 위대한 제품을 만들고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들은, 창업자가 정말 오랜 시간동안 관여해서 이를 갈고 닦은 결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일은, 많은 경우 오직 창업자만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창업자가 회사를 매각하거나, 또는 사망한 후에 회사가 제품 리더십을 서서히 잃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애플(Apple)처럼 정말 커진 회사들은 예외지만, 위에 언급한 룰루레몬은, 창업자가 떠난 후에 점차 빛을 바래고 있다. 혁신이 거의 없고 이전에 했던 성공 방식대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그 결과, 새로이 등장한 알로(Alo) 도는 뷰오리(Vuori)에 성장세가 밀리고 있다. 알로가 새로 나온 브랜드이고, 유명인들과 캠페인을 많이 하고, 원단이 뛰어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룰루레몬 창업자인 칩 윌슨이 10여년 전인 2015년 회사를 떠난 것이 알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지난 5년간 룰루레몬 주가 추이. 경쟁을 의식해서인지, 그의 발언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끼쳤다는 이유로 이사회와 갈등을 빚고 사임했던 그를

사우스웨스트 항공도 창업자인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가 사망한 이후로 조금씩 예전의 차별성을 잃어가고 있다. 한 때는 가장 쿨한 항공사, 승무원들이 가장 재미있고 친절한 항공사였지만, 지금은 그냥 미국에서 운영을 잘 하고 수익을 내고 있는 많은 항공사 중 하나이다. 허브 켈러허가 그토록 강하게 고집했던 자율 좌석제, 그리고 이코노미석 한 등급으로만 운영하는 제도 등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물론 고객의 요구가 진화하면서 이에 반응하여 만든 변화이기는 하지만, 한편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다른 항공사들과 차별되는 ‘신섬함’을 잃게 만드는 변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오랜 기간동안 그 초기 정신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제품을 혁신해가는 회사들을 보면, 특히 그 회사의 창업자가 이를 끝없이 드라이브하는 경우를 보면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존경해 마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아래는 칩 윌슨이 2025년 10월에 월스트리트 저널 전면 광고로 했던 캠페인데, 창업자가 본인이 창업한 회사의 이사회를 상대로 회사의 현재 경영 전략을 전면 비판하는 내용을 홍보한 것이 무척 흥미롭다. 그가 떠난 후 룰루레몬이 엄청난 매출 성장을 하고 크게 순이익을 남기긴 했지만, 회사의 정체성이 많이 흐려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아래는 위 캠페인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그는 창업자가 떠난 뒤 이사회가 제품과 브랜드를 이해하는 사람보다 재무와 운영 중심의 인사들로 채워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회사가 장기적인 제품 혁신보다 분기별 실적과 마진, 매장 수 같은 숫자를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디자인과 창의성이 약해지고, 과거 룰루레몬의 경쟁력이었던 뛰어난 제품을 만들던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남은 조직은 과거에 잘 팔렸던 제품을 반복하는 데 집중하고, 혁신은 줄어든다. Wilson은 이를 **“GAP-ivization”**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브랜드가 평범해지고,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힘도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Mirror 인수에 약 10억 달러를 쓴 것, Disney와의 협업, 매장과 소재의 원가 절감 등을 대표적인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꼽는다. 겉으로는 매출과 이익이 좋아 보이는 동안에도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조금씩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좋은 브랜드는 숫자를 잘 관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제품과 강한 문화, 그리고 고객에 대한 집요한 이해에서 만들어진다.

매출과 이익이 당장 성장하고 있더라도 제품의 혁신성과 브랜드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성장이 아닐 수 있다.

SM 엔터테인먼트 사외이사 회고

SM 엔터테인먼트 3년의 임기를 무사히 잘 마쳤다. 3년여 전, 이사회 후보로 나를 추천하고 싶다고 회사측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는 창업자 이수만씨와 SM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 파트너스가 에스엠의 주식을 확보하고 지배주주 구조 개선을 시작하면서 일어난 일이었고, 이 때 얼라인 파트너스의 이창환 대표가 엄청난 활약을 했다. 그 후 하이브가 매수자로 나서면서 7~8만원이던 주가가 15만원대로 급등했고, 최종적으로 카카오가 제 3의 인수자가 되면서 회사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18%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이수만 창업자가 5000억원 가량에 주식을 매각하면서 떠났고, 이 과정에서 회사는 주주를 위해 일하는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를 발표했다. 그 결과 추가 사외 이사를 선임하기로 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연결이 되었다. 참으로 드라마같은, 극적인 상황 끝에 에스엠의 사회 이사가 되었다. 많은 주주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언론에도 많이 회자되었던 만큼 더 큰 책임 의식을 가지고 출발한 이사회였다. 이렇게 해서 나를 비롯해서 총 5명의 사외 이사가 선임되었다: 김태희 변호사, 이승민 변호사, 문정빈 교수, 그리고 김규식 대표.

SM 엔터테인먼트 이사회 구성 (2022년)
SM 엔터테인먼트 주요 임원진과 이사회 멤버

한국 상장 기업의 사외 이사 역할을 맡은 건 처음이라 처음엔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사회가 차츰 진행되면서 주주를 대표하는 ‘독립 이사’의 역할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한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주요한 의사 결정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점차 알게 되었다. 처음 명함과 뱃지를 받았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아래는 3년의 임기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다.

  • 30주년 기념 SM타운 콘서트 참석 (서울, 도쿄)
  • 에스파의 아마겟돈, 수퍼노바가 출시되기 전에 음악을 먼저 들어보고 뮤직 비디오를 볼 수 있었던 것. 솔직히 이 노래들 처음 들었을 때는 감이 안왔다. 나중에 그렇게 큰 인기를 끌게될 줄은 정말 몰랐다.
  • 라이즈(RIIZE), 하츠투하츠(H2H)의 데뷔
  • 아이들과 함께참석한 NCT DREAM, 에스파 샌프란시코 공연
  • 총 150건의 이사회 안건 처리. 30여회 이상의 이사회 참석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 있었던 것은 보상위원회 위원장 역할이었다. 주식회사의 대표가 스스로의 보상을 결정할 수는 없기에 대표이사 및 주요 임원의 보상 체계를 만들고 이를 승인하는 것은 사외 이사, 특히 그 중에서도 보상위원회의 역할이다. 한국의 많은 상장사들은 소위 ‘오너’의 지배를 받기에 오너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주들’이 주인이 된 에스엠에서는 이사회, 특히 사외 이사들이 이를 전담하게 된다. 그래서 보상위원회에 속한 사외 이사들, 그리고 회사의 인사팀과 함께 이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매년 있는 임원들의 단기 성과급 결정에 참여했고, 동시에 대표이사 및 주요 임원들의 보상이 주식과 연동될 수 있도록 하는 장기 보상 체제를 만드는 데 시간을 썼다. 임기 만료 대주주의 동의를 얻고 이사회의 승인도 얻어서 구현하고 마친 점은 참 보람있는 일이었다.

3년간 SM 생각을 하며, 회사에서 명절 때마다 보내준 와인과 기념품들을 집에 쌓아가다 보니 어느새 핑크블러드가 내 안에 자리잡았다. SM 과 함께하는, 또 함께 하게 될 가수들이 모두 글로벌 무대에서 큰 활약을 하기를, 그리고 더 나아가 K팝 산업이 더 크게 자라서 전 세계에 더 많은 팬들을 사로잡게 되기를 바라본다.

스티브 잡스의 50년 미래 예측

얼마전 애플 스토어에 들렀다가 아이패드에 담긴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뭔가 놀라운 것을 만들어라 Make Something Wonderful’인데, 스티브 잡스가 썼던 메모와 그가 했던 연설, 그리고 인터뷰 등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2023년에 나온 책인데 어쩌다가 이제야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투와 언어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그가 아직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Make Something Wonderful”

아래는 그 책에서 발견한, 내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대목이다. 1983년 6월 15일, 그러니까 애플이 리사 컴퓨터를 발표한 지 5개월째되는 날, 스티브 잡스가 애스펜에서 열린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했던, “컴퓨터와 사회의 첫 데이트 Computer and society are out on a first date“라는 연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When I was going to school, I had a few great teachers and a lot of mediocre teachers. And the thing that probably kept me out of jail was the books. I could go and read what Aristotle or Plato wrote without an intermediary in the way. And a book was a phenomenal thing. It got right from the source to the destination without anything in the middle.

The problem was, you can’t ask Aristotle a question. And I think, as we look towards the next fifty to one hundred years, if we really can come up with these machines that can capture an underlying spirit, or an underlying set of principles, or an underlying way of looking at the world, then, when the next Aristotle comes around, maybe if he carries around one of these machines with him his whole life—his or her whole life—and types in all this stuff, then maybe someday, after this person’s dead and gone, we can ask this machine, “Hey, what would Aristotle have said? What about this?” And maybe we won’t get the right answer, but maybe we will. And that’s really exciting to me. And that’s one of the reasons I’m doing what I’m doing.

So, what do you want to talk about?

제가 학교 다닐 때, 정말 뛰어난 선생님 몇 분이 있었고, 나머지는 평범한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엇나가지 않은 건 아마 책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이 쓴 걸 중간에 누가 끼어들지 않고 직접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책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쓴 사람에게서 저에게 바로 전달되는 거예요, 아무 방해 없이.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한테 질문을 못한다는 겁니다. 만약 앞으로 50년, 100년 후에, 우리가 진짜 근본적인 정신이나 원칙,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담아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다음 아리스토텔레스가 나타났을 때—남자든 여자든—그 사람이 평생 이 기계를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다 입력한다고 칩시다. 그러다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우리가 그 기계한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야,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거에 뭐라고 했을까?” 정답이 안 나올 수도 있죠. 하지만 어쩌면 제대로 답해줄지도 모릅니다. 그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일을 하는 겁니다.

자,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신가요?

언젠가 컴퓨터가 발전해서, 어떤 사람의 생각을 송두리째 담고,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날. 그는 그 날이 50년에서 100년 후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사 컴퓨터의 사양이 겨우 1MB 의 메모리와 720×364 해상도의 흑백 모니터였음을 생각하면, 사실 100년 후를 예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플이 1983년 1월에 발표한 첫 퍼스널 컴퓨터, 리사(Lisa). 오늘날 가격으로 무려 $31,600 즉 4000만원이 넘었다.

하지만 ChatGPT는 이 연설을 한 지 40년이 채 되지 않아, 2022년에 발표되었다. 물론 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즉 범용 인공 지능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수십년이 더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현재 인공지능 수준이 그가 꿈꿨던 정도에는 이미 이르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그런 기계가 나올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어서, 그것이 그가 그 일을 하는 이유라고 했는데, 이 기술의 탄생을 보지 못하고 2011년에 세상을 떠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만약 그가 10년만 더 살아서 ChatGPT의 등장을 봤다면 어땠을까. 마침내 자신이 컴퓨터를 만드는 진정한 목적이 달성되었다며 좋아했을까, 아니면 그 영광을 오픈 AI에 빼앗긴 것에 원통해하며 싫어했을까. 또는 아니면, 그 회사의 투자자와 후원자가 되어 ChatGPT가 더 인간적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도왔을까.

스티즈 잡스의 어록, “Make Something Wonderful”은 여기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