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키 (Clerky), 변호사 없이 미국 주식 회사 만들기

정말 유용한 서비스 하나 소개. 미국에서 처음 주식회사(C Corporation)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필요하다고 여긴 건 변호사였다. 정관도 만들어야 하고, 주식 발행도 해야 하고, 이를 델라웨어 주에 보고도 해야 하고, 임원 등기도 해야 하는 등 만들어야 할 서류가 많은데 하나 하나 서식을 찾아서 만들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는 사람을 통해 변호사를 소개받는 것이었다.

문제는 변호사가 시간당으로 돈을 청구하는 데 이게 비용이 꽤 높다는 것. 업카운셀(https://www.upcounsel.com)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내 프로젝트를 올려 놓으면 변호사들이 달려 들어 가격(quote)을 보내는데, 법인 설립 수수료가 300달러에서 1500달러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몇몇 변호사들과 통화를 하면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지금 단계에서 나에게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뭐든 원리를 파악하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이걸 그냥 내가 할 수 없을까 생각하던 중,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로부터 클러키(Clerky.com)라는 서비스를 소개받았다. 깔끔한 UI에 명확한 설명까지.. 사이트 디자인만 봐도 딱 내 스타일이었다.

클러키(Clerky) 웹사이트

사인업을 하고 들어가면 회사 설립에 필요한 몇 가지 정보들(회사 이름, 주식 수 등)을 물어보는데 친절한 설명과 예제를 보면서 입력한 후, 전사 서명을 하고 나면 끝이 난다. 99달러의 비용에 더해 델라웨어 주 및 대리인들에게 내는 수수료 407달러를 내고 나면 끝. 이미 회사 이름을 알고 있다면 정말 5분이면 끝나는 일. 그리고 나서 일주일쯤 기다리면 델라웨어에 회사 등록이 되었다는 이메일이 날아온다. 그걸 가지고 미국 은행에 가져가면 법인 통장을 만들 수 있다.

법인 설립 절차

그 후에 Post-Incorporation이라는 걸 하는데, 대표 이사 및 등기 이사의 이름과 지분율, 그리고 주식 가격 등을 입력하고 나면 Clerky가 자동으로 모든 필요한 법적 문서들을 만들어준다. 299달러.

법인 설립 후 서류 작업

스타트업 설립 후 초기 투자는 보통 전환사채(Convertible Loan)라는 형태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 양식도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 위해 Y Combinator의 SAFE 등 다양항 서류를 검토했는데, Clerky에서 제공하는 양식이 가장 일반화되어있고 깔끔해서 이것으로 처리했다. 무엇보다도 편리한 건, 계약서를 인쇄해서 우편으로 보내고 사인하고 다시 또 우편으로 보내는 등의 절차 없이, 모든 것을 Clerky 에서 전자 서명으로 할 수 있다는 것. 투자자는 이메일을 한 통 받는데, 여기에서 링크를 클릭하고 전자 서명을 하고 나면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서가 만들어진다.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주식 수와 주당 가격은 정말 임의로 정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 Clerky 는 총 승인(authorized) 주식 10,000,000 주와 $0.00001을 제시하는데, 이를 그냥 따르면 된다. 이렇게 한 후 1,000,000개의 주식을 발행하고 나면 회사 초기 가치는 둘을 곱한 100달러가 된다. 이 값만 일정하게 유지하면 된다. 시작할 때부터 회사 가치를 100만 달러로 하지는 않을테니, 곱해서 100달러가 되도록 하면 적당하다. 처음에 주식을 얼마나 발행해야 하나를 놓고도 고민을 했는데, 이것도 승인 주식 수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예를 들어 4,000,000개를 발행해서 이를 모두 나에게 주면 내가 100% 소유한 회사가 되는 것이고, 4,000,000개를 발행해서 공동 창업자와 반씩 나눠 가지면 각각 지분 50%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한 번 거쳐서 만들어진 문서들을 살펴보니 일종의 ‘코딩’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 이름과 대표자 이름, 주식 수 등이 변수명이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서류들은 숫자가 서류 일치해야 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말들이 ‘버그 없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도 여러가지인데, 자기 마음에 드는 알고리즘을 선택하면 된다.

혹시 미국에 법인 만드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소개해봤다. 얼핏 알기 어렵고 귀찮은 절차를 너무나 쉽고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이런 스타트업이 마음에 든다.

(Disclaimer: 필자는 Clerky 회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페이지만 노자드(Pajman Nozad), 이색적인 실리콘밸리 엔젤 투자자

오늘 읽은 감동적인 (그리고 교훈적인) 글 짤막하게 소개. 앤디 루빈, 드롭박스, 렌딩 클럽, 사운드하운드, 도어대시 등에 초기 투자한, 실리콘밸리에서 너무나 유명한데 나만 모르고 있던 사람인데 오늘 아는 분이 소개를 해주어서 프로필을 살펴보다가 그가 LinkeIn에 포스팅한 글을 보게 됐다. 그동안 좋은 글을 참 많이 읽었지만, 이 글은 특히 공감이 되고 감동이 되어 여기 기록해본다.

Tech’s Most Unlikely Venture Capitalist (테크 산업에서 가장 의아한 벤처 투자자)

글은 아래와 같은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In 1992 I was homeless in Silicon Valley. (1992년에, 나는 실리콘밸리의 홈리스였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요거트 숍에서 먹고 자며 살았는지, 그 다음에 양탄자 파는 곳에서 1년에 80억원어치를 팔 수 있었는지, 그러던 중 어떻게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앤디 루빈의 안드로이드에 초기 투자할 기회를 가졌는지, 그것이 발단이 되어 그 후 투자한 회사들이 모두 합쳐 지금은 시가 총액이 20조원에 달한다는 것 등.

이렇게 읽다보면 신데렐라 스토리다. 그 후에 자기가 투자를 하면서 발견한 위대한 창업가들의 공통점에 대해 자신만의 이야기와 함께 나열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

GREAT ENTREPRENEURS DON’T CHASE BIG IDEAS, THEY SOLVE REAL PROBLEMS

이런 글들은 전에도 많이 봤지만, 이 사람의 글은 묘하게 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싶게 만든 너무나 훌륭한 끝맺음.

For me, it all started in that attic above the yogurt shop.

I did not have much money then, but I had hope. Hope that if I could survive living there, I could survive anything. Hope that with enough sacrifice and enough hard work, I could make something of myself. Hope that this was just the beginning.

And remember the girl? The one I spent all my money calling? We celebrated our 22nd wedding anniversary in June with our two lovely children. Yet another reason why it pays to never, ever give up.

성공하며 글을 잘 쓰게 되었는지 글을 잘 써서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과 스토리텔링 실력이 이렇게 같이 곁들어지면 정말 파워풀하다. 오늘의 Inspiration.

블로그 리브랜딩

블로그 제목을 바꿨다.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대신 ‘조성문의 블로그’로. 전에는 실리콘밸리의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리콘밸리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관심사였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이제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졌다. 실리콘밸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무엇보다도, 겉으로 보면서 느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피상적인 결론 도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한동안 이 공간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와 관련 없는 내용을 굳이 써야 할까. 고민 끝에 블로그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뭔가 수식어를 붙일까 하다가, 그냥 ‘조성문의 블로그’라는 제목으로 가기로 했다. 결국 여기에는 다른 무엇도 아닌 조성문의 생각, 조성문의 이야기가 담기게 될테니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그냥 공개적인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요즘 느끼는 것, 보는 것, 듣는 것들에 대해 가끔씩 써볼까 한다. 로버트 켈리 교수의 방송 사고같은 재미있는 비디오를 발견하면 기록 삼아 여기에 포스팅하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요즘 새로 나온 다큐멘터리 하나 소개. BBC에서 ‘Planet Earth II‘가 새로 나왔다. 그 전편인 Planet Earth는 무려 10년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가 본 수많은 다큐멘터리 중에서 가장 걸작으로 생각하는 작품인데, 그 속편이 나왔다기에 너무 반가워서 아마존에서 바로 구매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추가되고 있는데, 이렇게 시즌 패스를 미리 구매해서 에피소드가 나오기를 기다려보기는 처음이다. 또 어떤 지구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까. 결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하고 혹독한 환경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만의 생태계 안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인간이 만든 오염과 재해의 영향을 받지 않고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아래는 공식 트레일러.

진짜 이런 장면을 촬영한 카메라 기술과 영상을 만들어낸 팀에 박수를 보낸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진정한 혜택.

또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장면과 너무 잘 맞는 음악에 감동하게 되는데, 그 전편과 이번 편의 모든 음악을 한스 짐머(Hans Zimmer)가 만들었다. 정말 위대하다는 것 이상의 어떤 표현을 붙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음악의 거장. 글라디에이터,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사운드트랙 작곡을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한데, 이렇게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바쳐 그 분야의 최고가 된 사람들을 보면 감동적이다. 그가 마스터클래스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노하우를 공개한다고 하니 바빠도 꼭 챙겨볼 계획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일

오늘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다. 지난 며칠간 매일 뉴스와 라디오에서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이슈를 다루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오늘 그 결말이 난다. 어제 아침에 운동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는 것을 봤는데, 참 깔끔하게 잘 전달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심으로 힐러리를 지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은 당이기 때문에,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지지하는 면이 더 크지 않을까.

트럼프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여성 비하 발언과 세금 문제로 온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온갖 문제들을 극복하고 힐러리 클린턴과 비등비등한 수준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렸으니 말이다.

클린턴 vs 트럼프 지지율 변화 (출처: BBC Poll Tracker)
클린턴 vs 트럼프 지지율 변화 (출처: BBC Poll Tracker)

나는 수년 전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라는 리얼리티 텔레비전 쇼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를 처음 접했다. 뉴욕 5번가의 트럼프 타워를 지은 사람이 바로 그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그리고 억만장자의 화려한 삶을 엿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또 출연자들이 ‘어프렌티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극도로 긴장된 경쟁을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리고 또 한국계 미국인 출연자가 등장해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마지막 라운드까지 간 것이 신기해서 한참을 봤었다. 그리고 매 회마다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해서 출연자들에게 예리한 질문을 한 후에 “당신은 해고야!(You are fired!)”라고 외칠 때 일종의 짜릿함을 느꼈는데, 얼핏 보기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그래서 결정하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한 사업가인 그가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모습이 참 멋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막판 토론에서 예상을 뒤엎고 능력이나 화술, 그리고 리더십이 좋은 사람보다는 자신이 왜 더 적합한 사람인가를 소리를 질러가며 주장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을 보며 그가 선호하는 ‘됨됨이’를 엿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래서인가, 지금 트럼프가 TV 출연해서 힐러리와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그 때 어프렌티스에서 자신이 보여주었던 철학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보여서, 대선 토론도 또 하나의 리얼리티 TV 쇼처럼 느껴진다. 특히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부분을 그대로 이어갈 지 이야기하는 대신 상대방에 대한 비방으로 일관하는데, 그게 은근히 또 설득력이 있다. “힐러리가 수십년을 국무 장관을 했으면서도 외교 문제를 망쳐서 미국의 적대 국가들이 강해지게 도왔고, 동시에 예산 관리를 잘 못해서 오바마와 함께 나라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힐러리는 거짓말장이’라는 것이 트럼프 진영의 주장인데, 어설프고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은근히 그의 지지자들이게는 이 주장이 잘 먹힌다. 군중 심리란 이런 것인가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일관적인 상대방 비방으로 가득찬 대통령 선거 토론은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고, 오히려 SNL에서 다룬 패러디가 훨씬 더 재미있고 내용이 알차다.

결국 두 후보 모두 부적격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오바마가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이었나 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번 그가 베어 그릴스의 쇼에 출연했던 것을 이야기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올해 할로윈에서 오바마가 멋진 농담으로 백악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대통령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매년 백악관 출입 기자들과 함께 하는 저녁 만찬에서 했던 C-SPAN 연설들은 내가 본 중 최고였다. 때로는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며,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을 유머를 통해 승화시키는 그의 말솜씨는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정치적인 결단력, 군에 대한 통솔력, 그리고 여론을 끄는 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유머 감각과, 서로 다른 의견들을 부드럽게 융합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원래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겸손함이 아닐까 한다.

우리도 언젠가 오바마와 같은 대통령을 가져보면 참 좋겠다. 한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멀지 않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호창성 대표 무죄 판결

호창성 대표에 대해 법원이 어제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한마디 한마디 공감이 되는 이번 판결문의 일부.

팁스 총괄 운영지침에 따르면 운용사에게는 창업팀이 팁스 지원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추천하고 멘토링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호씨 등이 창업팀들에 반드시 팁스에 선정될 것을 약속했다거나 선정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다는 증거가 없으니 이는 직무 범위 내에서 적법한 것. 초기 기업은 정당한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고, 자본금 외 유무형의 지원 서비스 등 다양한 요소가 투자계약 체결에서 고려된다. 이 때문에 해당 벤처 가치를 더 낮게 잡고 적은 액수의 투자금으로 더 많은 지분을 인정받고자 하는 투자자와도 계약체결이 가능하며 팁스 운용지침에도 운용사가 창업팀에 지원하게 될 보육서비스를 고려해 투자 지분을 획득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사건 창업팀들이 대등하게 투자 지분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피고인들에게 협상이 유리했다 하더라도 이는 민간 투자주도형 기술투자를 효율적으로 하려는 팁스의 목적을 위해 제도적으로 허용되는 인센티브를 이용한 것이니 허위 계약서를 토대로 중소기업청을 기망했다고 볼 수 없다. 투자계약서상에 피고인들이 제공한 서비스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지 않은 것은 맞으나 관계자들이 당연히 아는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려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 창업팀 또한 법정에서 피고인들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고 있고 만족한다고 밝혔다. 피고인들을 통해 지급받을 자격이 없는 창업팀이 지원 범위를 초과한 보조금을 지급받은 근거도 없다.

판사는 맞는 말을 했지만, 이를 보도한 연합신문과 한국일보의 기사에 쓰인 표현들은 여전히 불만이다. 처음 이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국일보가 쓴 ‘엔젤 탈을 쓴 늑대’와 같은 부정적 표현도 너무 황당했는데, 분명 법원에서 모든 증거를 확인한 후에 고심 끝에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도 기사에는 왜 여전히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의 귀한 재산을 사용해서 성공할 지 실패할 지도 모르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두 회사의 합의 하에 합당한 지분을 획득하는 것은 당연한 법적 권리인데다, 이미 판사가 무죄 선언을 한 후인데도 ‘지분을 받아 챙긴’다든지, ‘받아내다’라는 이상한 표현을 굳이 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언론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

호씨 등은 2014년 5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팁스(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지원사업) 보조금을 받아주겠다며, 5개 스타트업으로부터 29억원 상당의 회사 지분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자신이 투자한 만큼의 지분만을 챙겨야 하지만, 팁스로부터 받을 보조금을 자신의 투자금액에 포함해 지분을 과다하게 챙긴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호씨 등이 이를 토대로 허위 투자계약서를 중소기업청에 제출해 팁스 지원금 총 22억7천183만원을 받아낸 부분도 중소기업청을 기망한 것으로 봤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호창성 대표에게 7년 징역과 29억원의 추징금을 구형했지만, 판사는 그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무죄 판결이 난 후에 중앙일보는 이번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사설을 올렸다 (다행히 여기에는 ‘받아 챙기다’는 등의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유죄를 자신했던 검찰은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했을 때 벤처업계와 학계에서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스타트업계의 현실을 도외시한 막무가내식 법 적용”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엔젤투자협회와 대학교수들까지 나서 호 대표에 대한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청의 주도로 만들어진 팁스(TIPS)를 홍보하고 활성화하려는 명분으로 호 대표를 끌어들였다가 봉변만 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래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이 법원에 제출했던 탄원서의 일부. 감동적인 글이다.

TIPS 는 성공한 창업가 등 우수한 투자자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선진국형 창업 선순환 생태계를 부흥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호창성 대표에게 투자를 받은 피투자사의 대표들은 하나같이 호창성 대표의 도움에 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사건에는 피해자가 없습니다. 오히려, 피해자가 없는 이 사건에서 호대표가 처벌 받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수한 선배들을 창업 생태계에 끌어들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우수한 민간 자원의 창업 생태계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해야 하는 대한민국 정부, 즉 국가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내가 호창성 선배를 처음 알게 된 건 2006년 여름, MBA 준비를 할 때였다. 대학 동문 선배가 마침 스탠포드 MBA에 막 합격한 직후에 학원에서 특강을 한다길래 찾아갔고, 그 때 이메일 주소를 받아 연락했다. 당시 나는 서울대 글로벌 MBA 프로그램에 합격한 상태였는데, 내가 원하는 진로를 고려했을 때 그걸 포기하고 미국 대학 MBA를 가는 것이 좋을 지를 하는지를 물었다. 호선배는 입학 준비로 중에도 이메일로, 그리고 시간을 내어 만나서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만약 졸업 후 미국에서 일할 생각이라면 미국 대학 MBA를 가는 것을 추천한다”는 것. 그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GMAT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초 UCLA에서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 가을 추수감사절(Thanksgiving) 연휴에, 실리콘밸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템은 전 세계 사람들이 짧은 동영상을 언어의 장벽 없이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였다. 남들은 월에 천만원 이상을 받고 인턴십을 할 시간에 하버드대학 석사 과정 재학중이던 아내 지원씨와 함께 학교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2009년,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두 부부를 다시 만났을 때는, 제품이 어느 정도 사람들로부터 반응을 얻고 있었지만 아직 방송사와 정식 계약을 맺기 이전이었고, 수익 모델 또한 확실하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요즘 무슨 일을 하며 지내냐는 내 질문에, ‘번역가들이 보내는 질문에 대답하며, 그리고 그들의 불만 사항에 대해 해명하느라 하루 종일 이메일을 쓰고 있다’고 대답했다. 스탠포드 MBA, 하버드 석사를 졸업하면 즉시 억대 연봉을 받고 취직할 수 있는데, 자신의 옳다고 생각되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어려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

수년의 고생 끝에, 라쿠텐으로부터 2000억원이라는 높은 가치를 인정 받고 회사를 매각함으로써 이 회사를 초기부터 믿고 투자한 엔젤 투자자들, 그리고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줬다. 또한 직원들에게는 재정적 보상에 더해 ‘성공적으로 엑싯한 스타트업’이라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남겨주었다. (MBA 친구 중 한 명이 이 회사에 초기에 입사했었는데, 지금은 회사를 옮겨 상해에서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 더 이상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또 원하는 곳은 어디에 가서든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은 한국을 택했다. 빙글(Vingle)이라는 서비스를 새로이 만들었고, 또한 더 벤처스(The Ventures)라는 투자 회사를 설립해서 뛰어난 후배 스타트업들을 도와주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TIPS 는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연계 투자 프로그램이다.

TIPS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처음 생길 때부터 알고 있었고 주변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정 지원을 받은 훌륭한 스타트업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내가 아는 TIPS 운영사들은 모두 정직하고 실력 있는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정부가 했던 창업 지원 사업 중에 가장 의미 있고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TIPS를 통해 지원 받은 회사 중에는 내가 함께 투자한 회사도 있었기에 양쪽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는데, 호창성 대표를 구속하게 된 사유인 “허위 계약서를 작성하여 실제 투자액보다 더 많은 지분을 취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주 한국에서 두 사람을 잠깐 만났다. 법원에 갔다가 갑자기 내린 구속 영장 발부로 인해 구치소에 들어갔다가 110일 후에야 나온 호창성 대표, 그리고 남편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사업적,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감당하며 마음 졸이는 생활을 해온 문지원 대표.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고, 들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아무 죄가 없다는 사실이 판결을 통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한국 경제가 지난 60년간 빠르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힘 없고 선량한 사람들로부터 이익을 취해 자기 배를 불린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검찰이 기득권 눈치를 보기보다는 소신 있는 수사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재산을 편취한 사람들이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해서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고소를 한 것도 아닌데다 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가를 갑자기 잡아서 구치소에 넣고 재산을 가압류한 후 110일 동안이나 가둬놓은 것은 정말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영문도 모르고 100여일간 아빠를 잃어버린 어린 아들에게는 또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을까. 그리고 무죄 판결이 나기까지 그 가족이 감내한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고통은 어떤 형태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작년에 어머니가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잘못된 의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 심한 마음 고생을 하고 계셨다. 그쪽에서 어머니에게 거래 과정에 죄가 있다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법대로 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을 들은 후에, 판사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물어봤더니 그런 것은 죄로 성립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니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더니 즉시 꼬리를 내렸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법’의 이름을 등에 업고 마음 약한 사람을 상대로 재정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최근 법학대학원을 통해 변호사의 숫자가 늘어나고, 또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젊은 변호사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법률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금액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소신 있게 처벌할 수 있고, 또 언론에서 이런 문제점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 못지 않게 죄가 없는 사람들의 권리 또한 잘 보호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지금의 한국의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다음 세대를 위해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청년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 모두가 알고 공감하게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