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Elon Musk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 전기. 나온 지 얼마 안되어 사서 단숨에 다 읽었다. 688페이지의 긴 책이지만, 그래도 쉽게 읽혔다. 솔직히 마지막 100페이지는 거의 트위터 인수에 관한 이야기라서 대충만 봤다. 전에도 일론 머스크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수년 전인데 애슐리 반스(Ashlee Vance) 가 쓴, 2015년에 출간한 Elon Musk: Tesla, SpaceX, and the Quest for a Fantastic Future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이라는 책이었다. 그러니까 일론이 지금보다 8년 더 젊었을 때 일이고, 내가 사업을 시작한 것과 같은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 나이트의 ‘슈 독(Shoe Dog)‘과 더불어, 나에게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역할을 해준 책이다.

솔직히 나는 애슐리가 쓴 버전이 더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월터 아이작슨은 물론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고 대단한 전기 작가이긴 하지만, 자신의 해석과 경험을 넣지 않아 책이 좀 드라이한 경향이 있다. 그 전에 썼던 스티브 잡스 책도 그랬고.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고증을 통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리고 찬양이나 칭찬 없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괴짜에 미치광이에 참을성 없고 신경질적인) 묘사하는 것은 좋은 점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를 매우 가까이 대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아쉬움이 있다. 인간적인 면을 묘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인간적이어서 우리가 그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직접 대면하게 만든다는 점은 좀 불편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꾸며진 모습’이 더 익숙한 우리에게 많이 어색하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일론 머스크 전기에서도 분명 배울 점이 많아 이곳 저곳에 줄을 쳤는데, 기록을 남길 겸 북마크했던 대목들을 여기에 공유한다. 리디북스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리디북스의 ‘이미지로 멋지게 공유하기’ 기능은 정말 훌륭하다!


많이 공감했던 대목. 나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사 주신 IBM PC/XT 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기에. 아버지는 컴퓨터에 대해 잘 몰랐지만, 당시에 오락실 게임에 중독되어 있던 내가, 아마도 컴퓨터를 가지면 오락실로부터 관심을 옮길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결국은 오락실 게임 대신 훨씬 정교하고 규모가 큰 PC 게임에 중독되어 훨씬 더 큰 시간을 쓰고 말았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해본 경험들이 있고, 그 중 무척 훌륭한 리더들도 많았지만, 결국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비슷한 면이 있어 공감.

이 대목도 공감. 나 역시 게임을 사랑하고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보내는, 그리고 내가 자아 실현을 이루는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게임 업계를 떠나는 결정을 했고, 지금은 대신 음악 업계에 있다. 음악 업계 역시 유일한 길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대단히 재미있고, 만족한다.

머스크가 직접 한 말. 나 역시 한 때 ‘박사 학위’를 고려했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존경할 일이지만, 박사 학위 자체가 목적인 경우에는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박사 과정을 밟지 않은 것은 다행이고 잘 한 결정이었다.

내가 차트메트릭 조직을 짜고 운영하는 철학과 유사한 면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많은 큰 회사가 그러하듯 ‘기획 -> 디자인 -> 개발 -> QA’로 짜여진 제품 개발 과정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제품이 없이 QA를 한다는 건 말이 안되고, 기획이나 디자인 없이 개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이 절차를 완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엔지니어링’이 분리되지 않고 기획 또는 디자인과 융합되는 것을 항상 선호한다. 다시 말하면, 어떨 때는 (특히 회사 초기에는 더욱) 기획이나 디자인 없이 엔지니어링이 먼저 시작하도록 한다. 비록 ‘못생긴 제품’이 나올지라도 상관 없다. 나중에 얼마든지 개선할 기회가 있으니까. 기획과 디자인에 시간을 많이 쓴 후 개발에 들어가면, 가장 큰 문제가 기획과 디자인에 얽혀서 혁신을 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누구냐에 따라 달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기획자’가 혁신을 드라이브하기보다는 팀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혁신을 드라이브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꽤 엔지니어가 팀에서 가장 똑똑한 경우가 꽤 많다.

이건 좀 재미있어서 북마크. 나도 일론 머스크의 이런 면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몇 번 놀란 적이 있는데, 그 큰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디테일에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여 깜짤 놀란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으로 남고 싶어하기에 이게 더 와닿은 것 같다.

바보 지수(idiot index)라는 말을 사실 처음 듣는데 정말 말이 된다. 어떤 산업 분야든 이게 존재하고, 이것이 존재하는 한 사업 기회가 있다. 바보 지수가 높을수록 이를 파괴했을 때 얻게 되는 기업 가치는 클 것이다. 나 역시 일종의 ‘바보 지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우리가 또다시 그 ‘바보 지수’의 예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게… 스페이스X 가 몇 번 우주선을 터뜨리고 나서도 어떻게 사재를 부어가며 버티고 결국 성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 그게 가장 중요했구나.

너무 재미있어서 저장. 우주선 발사 직전에, 발사대에 문제가 생겼다. 밑단 한 곳에서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도 엔지니어들은 발사를 미루고 몇 주에 걸쳐 수리하자고 했는데 일론이 제시한 방법이 재미있다. 균열이 발생한 아래 부분을 죽 둘러 잘라내자는 것. 결과는? 실제로 그렇게 했고, 발사에 성공했다.


이렇게 인용하면서 내 느낌을 달고 나니 내가 흡사 일론 머스크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비슷한 면을 많이 발견한 것도 사실. ㅎㅎ 자라면서 아버지의 존재감이 크지 않아 거기서 결핍을 느낀 부분도 닮은 면이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그의 모습을 한 두가지 정도는 공감하지 않을까?

이 책을 좋아했다면, 위에서 소개한 애슐리 반스의 책을 추천한다.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 있다. 나는 이 버전이 더 극적이고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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