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의미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꽤 인기 있는 말이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블루 오션을 찾고 싶어한다. 물론, 이 전략은 의미가 있다. 남들이 다 경쟁하고 있는 레드 오션 Red Ocean으로 들어가 죽어버리지 말고 자신만의 블루 오션을 찾아서 거기서 승리하라는 것이다. 블루 오션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카페를 창업하려고 하는데 특정 상권에 북카페가 없다면? 블루 오션. 만약 북카페가 있다 해도, 모두 옛날 만화방 스타일이고 간식도 없고 넷플릭스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도 블루 오션.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떤 상권에 북카페가 없는 이유가 누구도 이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혹시, 누군가가 창업했다가 보기 좋게 망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그 누가 분석해도 그 상권은 수요가 충분하지 못해 하나의 사업을 받침해줄만한 매출을 낼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업을 시작할 때, 레드 오션에 진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시장에는 수요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있기 때문. 또 한가지 장점은, 고객을 가르치는데 비용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고객들이 ‘북카페’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시간당 이용료가 얼마인지, 사용하기 위해 어떤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사업하는 입장에서 훨씬 수월할 것이고, 비용을 절감하고 매출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겨울, 처음 차트메트릭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건 이 분야에 이미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Music data analytics (음악 데이터 분석)’ 같은 키워드로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먼저 뜨는 회사들을 살펴보고, 그 회사들이 언제 시작했는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제품이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또 하나 알아보면 좋을 것이, 그 분야에 과거에 도전했던 회사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회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이다. ‘죽은 자들의 무덤‘은 다소 우울한 용어이지만, 그 죽은 자들(dead bodies)이 얼마나 되는지, 왜 죽었는지를 알면 적어도 내가 그 길은 피할 수 있거나, 아니면 애초에 도전을 안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성공적으로(?) 상장하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엑싯(exit)을 한 회사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분야에서 회사를 만들었을 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는지, 잘 됐을 때 나와 투자자들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을 지 알고 시작하면 좋기 때문이다.

그 때 눈에 띄었던 회사들이 몇 있다. 하나는 뮤직메트릭 MusicMetric 이었고, 또 하나는 빅샴페인 BigChampagne,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가 넥스트빅사운드 NextBigSound 였다. 뮤직메트릭은 가디언지 기사에 따르면 2008년에 시작했고 2013년에 40억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애플에 인수되었다. 약 $50M, 즉 650억원 정도의 금액으로. 그러니까 창업부터 엑싯까지 8년이 걸린 셈이다.

또 하나의 회사는 넥스트 빅 사운드 NextBigSound였다. 이 회사는 2009년에 시작했고 판도라 라디오에 2015년에 인수되었는데,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40M~$50M 정도의 금액이 아니었을까 추산된다. 빌보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인수 전까지 약 $8M(약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com) 제품 화면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이름은 사운드차트(Soundcharts.com). 유니버설 뮤직 그룹에서 인턴을 했던 데이빗 와이즈펠드(David Weiszfeld)라는 사람이 창업했다고 했다. 2015년에 제품을 세상에 알렸는데, 이미 음악 업계에서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며 유명세를 알려나가고 있었다.

사운드차트 (Soundcharts.com) 제품 화면

이 제품들을 당시에 살펴봤고, 각자 어떤 면에서 장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나서 차트메트릭을 만들기 시작했다. 넥스트빅사운드는 이미 6년을 운영해왔기에 꽤 인지도가 있고 발전해 있었고, 사운드차트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품의 완성도가 높았다.

솔직히 좀 두려웠다. 이미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해서 발전해 있는 제품들이 있는데,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까? 과연 우리가 ‘비교적 경쟁 우위 Competitive Advantage’를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이 안 가진 것, 그들이 못 하는 것을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늦게야 시장에 진입한 회사에 다른 제품의 고객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까?

그 때 내가 생각한 건 한 가지였다. 경쟁자보다 조금 더 싸게, 조금 더 좋게 만들자. 투자자들을 만날 때 흔히 질문하는, ‘당신 제품의 차별점이 무엇인가요?’ 에 대해서는 나중에 걱정하자. 지금은 차별화에 집중할 필요 없다. 일단 작동하는 제품을 만들고, 경쟁자들에게 크게 뒤지지는 않는 제품을 만들고, 거기에 아주 작은 차이를 불어넣자.

그렇게 해서, 소박한 시제품과 함께 시작했다. “차별점이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나는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차별화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기능부터 시작했다. 디자이너도 없었기에 모든 디자인 결정은 내가 했고, 버튼의 모양과 색깔도 내가 골랐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제품 개발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내 월급은 첫 1년은 $0이었고, 투자를 받은 후부터는 $3,000으로 정했다. 내 인건비가 낮아지면 회사의 비용 또한 낮아질 수 있기 때문. 그러니까, 내 전략은 ‘그 어떤 경쟁자보다도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기’였다. 다른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다면 적어도 가격 하나만은 낮게 책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자체만으로 경쟁 우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차트메트릭 초기 버전 (2017년)
차트메트릭 현재 버전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느리지만 지속적이면 경기에서 우승한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다. 거북이가 달리기에서 토끼를 이겼듯, 느리더라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 토끼를 이기고 다른 동물들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 전략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살아남았고, 다른 경쟁자들보다 저렴한 비용 구조로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객들의 도움으로 더 뛰어난 직원들을 채용했고, 경쟁자보다 더 높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품을 더 고도화시키고 있다.

2015년에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를 이야기했다. 심지어 큰 레이블에서 높은 위치에 있었던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넥스트빅사운드가 있는데 너희 회사에 기회가 돌아가겠느냐?” 라고 하기도 했다.

시간이 8년 지나, 이제 우리는 4000개 이상의 회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고, 연 반복 매출은 $8.4M, 즉 110억원에 달한다. 25명의 풀타임 직원들을 포함한 35명의 사람들이 매일, 제품을 개선하고 브랜드를 더 널리 알리고 있다. ‘차트메트릭 블로그’로 시작했던 웹사이트는 이제 ‘How Music Charts‘라는 이름으로, 흡사 빌보드를 연상시키는 매거진 사이트로 성장했다.

차트메트릭 월 반복 매출(MRR) 증가 추이.
‘How Music Charts’, 차트메트릭의 퍼블리케이션

한편, 당시에 사람들이 언급했던 넥스트빅사운드는, 2022년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리고, 그 웹사이트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써 있다.

If you loved using Next Big Sound for social media data, we recommend Chartmetric
넥스트빅사운드의 소셜 미디어 데이터 분석 기능을 좋아했다면, 차트메트릭을 추천합니다.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 홈페이지에 차트메트릭을 언급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올해와 내년에 나를 흥분시키는 아주 멋진 프로젝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음에 감사하고 기쁘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5 thoughts on “경쟁의 의미

  1. 멋집니다.
    사람은 변하지만 소비의 본질은 변하질 않네요.
    좋은 제품을 경쟁자보다 저렴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2. 성문님, 이번 글도 감사히 보았습니다.
    우선 축하드리고 다음으로 앞으로도 멀리서나마 이 여정을 지켜볼 수 있음 자체로 감사합니다 🙂
    회사의 성장에 꼭 ‘감사한 고객’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시는 부분도 매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요.

    회사에서 출시 1년도 안된 신규 서비스가 프리징모드로 들어가서 (배경과 이유가 있지만, 있겠지만), 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 이번 글을 읽으며 ‘내가 해당 의사결정을 할 담당자가 된다면?’ 생각해보며, 미래에 어떤 의사결정자가 될 것인가? 레슨런을 적어보고 있습니다.

    1. 고마워요! ‘감사한 고객’은 평생 잊을 수 없죠. 지금 하는 경험들이 하나 하나 나중에 귀한 자원이 될거에요! 돈 받으며 하는 배움.. 그렇지만 직접 해봐야 진짜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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