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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일

오늘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다. 지난 며칠간 매일 뉴스와 라디오에서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이슈를 다루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오늘 그 결말이 난다. 어제 아침에 운동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는 것을 봤는데, 참 깔끔하게 잘 전달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심으로 힐러리를 지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은 당이기 때문에,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지지하는 면이 더 크지 않을까.

트럼프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여성 비하 발언과 세금 문제로 온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온갖 문제들을 극복하고 힐러리 클린턴과 비등비등한 수준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렸으니 말이다.

클린턴 vs 트럼프 지지율 변화 (출처: BBC Poll Tracker)

클린턴 vs 트럼프 지지율 변화 (출처: BBC Poll Tracker)

나는 수년 전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라는 리얼리티 텔레비전 쇼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를 처음 접했다. 뉴욕 5번가의 트럼프 타워를 지은 사람이 바로 그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그리고 억만장자의 화려한 삶을 엿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또 출연자들이 ‘어프렌티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극도로 긴장된 경쟁을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리고 또 한국계 미국인 출연자가 등장해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마지막 라운드까지 간 것이 신기해서 한참을 봤었다. 그리고 매 회마다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해서 출연자들에게 예리한 질문을 한 후에 “당신은 해고야!(You are fired!)”라고 외칠 때 일종의 짜릿함을 느꼈는데, 얼핏 보기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그래서 결정하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한 사업가인 그가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모습이 참 멋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막판 토론에서 예상을 뒤엎고 능력이나 화술, 그리고 리더십이 좋은 사람보다는 자신이 왜 더 적합한 사람인가를 소리를 질러가며 주장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을 보며 그가 선호하는 ‘됨됨이’를 엿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래서인가, 지금 트럼프가 TV 출연해서 힐러리와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그 때 어프렌티스에서 자신이 보여주었던 철학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보여서, 대선 토론도 또 하나의 리얼리티 TV 쇼처럼 느껴진다. 특히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부분을 그대로 이어갈 지 이야기하는 대신 상대방에 대한 비방으로 일관하는데, 그게 은근히 또 설득력이 있다. “힐러리가 수십년을 국무 장관을 했으면서도 외교 문제를 망쳐서 미국의 적대 국가들이 강해지게 도왔고, 동시에 예산 관리를 잘 못해서 오바마와 함께 나라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힐러리는 거짓말장이’라는 것이 트럼프 진영의 주장인데, 어설프고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은근히 그의 지지자들이게는 이 주장이 잘 먹힌다. 군중 심리란 이런 것인가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일관적인 상대방 비방으로 가득찬 대통령 선거 토론은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고, 오히려 SNL에서 다룬 패러디가 훨씬 더 재미있고 내용이 알차다.

결국 두 후보 모두 부적격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오바마가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이었나 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번 그가 베어 그릴스의 쇼에 출연했던 것을 이야기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올해 할로윈에서 오바마가 멋진 농담으로 백악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대통령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매년 백악관 출입 기자들과 함께 하는 저녁 만찬에서 했던 C-SPAN 연설들은 내가 본 중 최고였다. 때로는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며,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을 유머를 통해 승화시키는 그의 말솜씨는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정치적인 결단력, 군에 대한 통솔력, 그리고 여론을 끄는 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유머 감각과, 서로 다른 의견들을 부드럽게 융합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원래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겸손함이 아닐까 한다.

우리도 언젠가 오바마와 같은 대통령을 가져보면 참 좋겠다. 한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멀지 않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