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vs Wild는 내가 한때 꽤 좋아했던 TV 쇼이다. 주인공 베어 그릴스(Bear Grylls)는 영국인 탐험가인데, 이 쇼에서 굉장한 위험을 감수하고 상상도 못할 음식을 먹어 매번 놀랄만한 사건을 제공한다. 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다큐멘터리와 리얼리티 쇼를 좋아하는 편인데, Man vs Wild를 보고 있으면, 야생에서 ‘진짜 모험’을 하는 기분도 들고, 베어가 하는 ‘생존 기술’이 재미있기도 해서 (과연 써먹을 일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열심히 봤었다. 한편, 사막, 늪지대, 빙하 등 그가 때로는 ‘자신의 오줌을 마셔야 하는’ 극한 상황을 겪는 것을 보며, 먹을 음식이 냉장고에 있고 따뜻한 잠자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에 1년 전 버락 오바마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상대가 미국의 대통령이어서인지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강도는 약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 등장해 베어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이 재미있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빙하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헬리콥터를 타고 알래스카 빙하지대에 내려 베어와 함께 빙하로 걸어 올라가, 곰이 먹다 버린 연어를 함께 구워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말도 유머로 받아치는 그의 대화 기술이 인상깊었다.
굳이 블로그에 이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우선 다음 대화 내용 때문.
그릴스: 대통령에 당선되어 백악관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일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함께 했나요?
오바마: 알아요? 사실 재미있는 건, 대통령이 되고부터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왜냐면 우리 가족이 제 집무실 바로 위층에 살았거든요. 그래서 6시 30분이 되면 위층에 올라가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고, 필요하면 다시 내려와서 일합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비해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더 즐기게 되었지요.
그릴스: 우와 그거 정말 대단합니다 (Wow, that’s incredible). 가족이 우선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표현이네요 (That’s such a statement for family first).
오바마: 사실은 가족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었고 제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my joy, my pleasure). 하루가 말도 안되는 일(nonsense)로 가득차 있는 날이 있죠. 그 때 집에 돌아가 내 딸들이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gives me a whole new perspective), 정신이 새로워집니다 (it renews me).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그가 진행해야 하는 회의와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을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래는 두 번째 레슨.
그릴스: 당신은 당신이 믿는 일을 정말 많이 실현해냈어요. 비결이 뭐였나요?
오바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끈기(persistence)입니다. 저는 그 힘을 정말 믿어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 중에 살아남고, 더 나아가 멋진 인생을 사는 (survive and thrive) 아이는 제일 똑똑하거나 가장 힘이 센 아이가 아니라 가장 잘 버티는 (resilient) 아이입니다. 그건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경우,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결심을 굳게 가지고 (stay determined), 일을 진행시키면 일이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너무 높은 기대를, 너무 낮은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스타트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아직 뚜렷하게 내세울 것 없이 묵묵히 이 길을 가고 있지만, 끈기(persistence)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생의 축약판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 과정에서 흥분되는 일도 일어나고 마음처럼 안되고 속상한 일들도 있지만, 끈기를 가지고 하루 하루 조금씩 진전을 이루다 보면 한가지씩 일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기대하는 것 역시 그 점이 아닐까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멋진 스타트업을 만들어 어웨어(Awair)라는 제품을 세상에 내놓은 노범준 대표와 얼마전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직원을 채용하기 위한 면접을 볼 때 그들이 CEO로부터 기대하는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 항상 묻는다고 했다. 여기에서 거의 일관적으로 나오는 대답이 “persistence”였다고 한다. 즉, CEO가 얼마나 똑똑한지, 말을 잘 하는지, 또는 카리스마가 있는지 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지, 얼마나 혼란스러운 정보들을 잘 소화하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는지를 본다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이해진 의장의 모습 또한 그런 것이 아니었나 한다.
블로그에서 언급한 첫 번째 대화는 25:20 지점부터, 두 번째 대화는 29:10 지점부터 나온다.
뭔가 인상깊네요. 저 역시 즐겨보던 man vs wild에 오바마가 나오다니. 더구나 저런 허물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신선하고, 비록 각본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말 한마디가 지금의 저에게 어떤 울림을 줍니다. 끈기라니… 끈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