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The Changes.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변한 것이 참 많다. 이제야 걸음마를 뗀 단계에 섣불리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벌써 뭔가를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지금 돌이켜서 생각하는 것들이 내 생각의 전부라고 하기도 힘들지만, 회사를 시작한 지 1년쯤 되는 이 시점에, 나에게 일어난 몇 가지 변화를 정리해볼까 한다.

첫째, 다른 회사나 제품에 대한 비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업을 시작한 단계에 가장 먼저 깨달았고, 가장 절실히 느꼈던 부분이다. 전에는 남 비판하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똑똑함과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미국 땅을 밟고 나서는 한국을 비판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취직하고 나서는 한국 회사의 문화를 쉽게 비판하곤 했다. 그런 비판들, 시간이 지나면서는 재미가 없어졌고 다른 사람이 비판하는 이야기 듣는 것도 흥미가 없어져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이걸 나만큼 예리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거야’라는 생각에 우쭐해져 누군가를 만날 때 그런 이야기를 성토하곤 했다.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겠지만 이 블로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준 글은 네이버 비판이었다. 지금도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면 결과에 실망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제는 ‘분명 그럴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얼마전 이해진 의장의 기자 간담회를 그대로 옮겨 적은 임원기 기자의 블로그를 보고 큰 감동을 느꼈다. 기자의 표현대로, 정말 이런 대답은 ‘대단한 주식이나 배경을 물려받지도 않은 채(물론 굉장히 비상한 머리와 타고난 성실함이 있었지만), 자신이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색깔이 매우 다른 북미와 아시아 시장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 네이버가 경쟁으로 느끼는 글로벌 서비스들에 대한 두려움,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은, 정말 그 일을 오랫동안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라인의 비결은. 여러가지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되게 열심히 절박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가 해외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일본에 가있는 사람들 정말 많은 고생했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도. 거기있는 친구들이 열심히 하고 그 문화에 맞춘겁니다. 컬쳐화도 시켜내고 그렇게 해내서 라인이 성공한 겁니다. – 이해진

둘째, 만드는 것의 즐거움을, 그 재미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전에 훌륭한 팀과 함께 라이너(Liner) 앱을 만들면서도 느꼈던 이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차트메트릭(Chartmetric)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베타 버전을 공개하고 난 후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이 데모를 요청하거나 유저 등록을 할 때마다 나에게 이메일이 오도록 해놨는데, 토요일 아침 6시에 이런 이메일이 날아오면 너무나 즐겁다. 바로 답장을 보내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대개 긍정적인 답변이 온다. Appear.in을 이용해서 제품을 직접 보여주고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인지 설명할 때 상대방이 끄덕끄덕하며 자기가 찾던 서비스라고 하면 짜릿한 기분마저 느낀다. 그러면 다시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진다.

셋째, 주말과 주중, 특히 휴일의 구별이 없어졌다. 물론 주말에는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 즐거운 계획을 세워놨을 때 주말이 기다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특히 주중에 끼어 있는 휴일에 대해서는 별로 감이 없고 휴일을 기다리지도 않게 되었다. 주중과 주말, 그리고 휴일들은 내 시간을 관리하기 쉽게 모으고 정리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일에 더 집중하는 주중과, 가족에 더 집중하는 주말, 그것이 다이다.

넷째, 내가 책임지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직도 부담스럽고, 가끔은 나에게 상사가 있어 무엇을 해야 할 지 명확히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에게 최종 책임이 떨어진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결국 인생은 자기 책임하게 사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한 가지 남아 있는 능력은 선택이다. 자신이 맞다고 느끼는 선택을 하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그래서 공감을 사는 것, 그것은 사업가가 지닌 중요한 자질이다. 얼마 전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쓴 “Master Plan, Part Deux(마스터 플랜, 2번째 파트)”라는 글을 읽었는데(10년 전인 2006년에 그가 쓴 Master Plan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주주가 되어야겠다는 것, 그리고 다음 차는 반드시 테슬라를 사야겠다는 것이다.

다섯째, Every win (or lose) is so personal. 뭐라고 번역해야 깔끔하게 의미 전달이 될 지 모르겠는데, 회사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안좋은 소식이 더 강하게 다가 오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에 받은 좋은 소식 하나로 하루 종일 즐거워진다.

여섯째, 하는 일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없어졌다. 내가 일하는 분야와 직접 관련이 있고, 내가 더 나은 창업가가 되도록 영감을 주는 내용은 여전히 소비하고 있지만, 그 외의 내용에 대해, 그리고 다른 분야의 회사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의 이야기에는 시간을 쓰지 않고 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온갖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남는 시간의 대부분을 무언가를 읽는데 쓰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변화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하게 되었고, 조금씩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이 내 시간의 우선 순위를 만들어내고 이를 지키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때로는 내 삶이 조금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각 단계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삶의 경험이 조금 더 풍부해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좋아지는 것이라고 믿어 본다.

p.s. 오늘 아침, Seoul Space, K-Startup의 파운더였던 Richard Min이 갑자기 전신 마비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위한 펀드레이징에 동참했다. 그 사이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대목을 읽고 그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또 그 사실을 의식 불명에서 깨어나서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의 소식을 접했고 그가 한국 스타트업을 위해 했던 일들에 대해 들었다.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그가 더 큰 사람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적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9 thoughts on “변화. The Changes.

  1. 전 제 사업을 하고 있지 않고 한 회사에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데, 왜 말씀하신 7가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ㅠㅠ

  2. 안녕하세요? 올려놓으신 글에 너무도 공감이 되어 글 남기기 위해 워드프레스까지 가입했네요. 스타트업 시작한지 반년지나가고 있는데, 하나 하나가 너무도 와닿습니다. 특히, 주중과 주말, 휴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행복한 일이 무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는 부분.. 정말 공감됩니다.

  3. 안녕하세요 대표님, 대학생 시절부터 대표님의 블로그를 방문하며 오랜 시간동안 많은 팁을 얻어가고 있는 오라클 한국지사에서 근무중인 직장인입니다. 사업으로 인해 많이 바쁘시겠지만, 커리어 관련하여 이메일로 몇가지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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