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고객을 만든 방법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미국 진출을 고려중인 창업가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특히 B2B 사업을 하는 분들이 더 많이 물어보는 질문.

“첫 고객을 어떻게 만들었나요?”

2015년 겨울, 스파크랩스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데모데이에서 발표를 하고, 가족과 엔젤 투자자들로부터 20만달러의 첫 투자를 받으며 회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업계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다. 음악 업계를 위해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돈을 내고 쓰게 될까 막막했다. 이미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회사들이 있었고 인수된 회사들도 있었지만, 그 회사가 수년간 노력을 들여 만든 아름다운 제품을 보니 기가 죽었다.

그래도 기존에 채워지지 않은 틈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변 인맥을 동원해서 업계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링크드인에 돈을 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뿌리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연락이 오면 전화로 15분만 시간 내 달라고 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에 응해 주었다. 그들과 통화하면 주로 했던 질문은, 지금 하는 일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이미 어떤 툴들을 사용하고 있는지와, 그 툴을 쓰면서 아직도 아쉽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점이 무엇인가였다. 이를 통해 정말 귀한 인사이트를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사람들이 가려움을 느끼는 부분을 조금씩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미팅을 통해 얻은 하나의 키워드가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분석(spotify playlist analytics)‘이었다. 이 키워드를 무작정 차트메트릭 웹사이트 여기 저기에 집어 넣었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의외로 구글 검색을 통해 이 구체적인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고, 몇몇은 베타 테스트 유저로 가입했다. 광고비를 내지 않아도, 아직 사이트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도, 아주 구체적인 의도(intent)로 검색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구글의 가장 강력하고도 신비로운 능력 중의 하나이다 (땡큐, 구글!). 처음에 무료 고객으로 시작해서 차트메트릭의 고객 지원팀을 5년 이상 이끈 마이크 워너(Mike Warner), 그리고 현재 최고 매출 책임자(Chief Revenue Officer)로 있는 채즈 젠킨스(Chaz Jenkins) 등 소위 ‘귀인’들이 이 때 많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차트메트릭 초기 시절 캘린더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2016년 5월에 참가했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컨퍼런스였다. 전에는 어렵게 한 명씩 경우 만나던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멘토링 세션이었는데, 소위 업계에서 ‘멘토’로 불릴 만한 사람들과 10분씩의 스피드 데이팅이었다. 4시간동안 문 앞에 서서 누군가 예약했다가 취소된 자리로 내가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최소한 50명은 만났던 것 같다. 랩탑에 데모를 띄워 놓고, 걸어들어가며 ‘엘리베이터 스피치’를 했는데, 하도 많이 했더니 나중에는 30초만에 피칭을 하고 30초만에 기본적인 데모를 보여줄 수 있었고, 나머지 9분을 질문에 답하고 더 많은 정보를 얻는데 썼다. 이 때의 경험, 그리고 나중에 내가 ‘멘토’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써서 몇달 전 링크드인에 올렸고,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셨다.

이 과정을 통해 조금씩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바로 바로 반영해서 제품을 개선하고, 또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기능들을 추가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었다. 아래는 당시 7월에 썼던 글, ‘변화’.

2016년 말, 그러니까 스파크랩 데모 데이로부터 1년여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20만달러라는 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썼지만, 1년 넘는 시간이 지나자 회사 통장이 바닥났다. 매달 내 돈을 법인 통장으로 보내며 버티고 있었지만, 추가 투자는 받지 않았다. 내가 만든 제품이 실제로 돈을 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야 떳떳하게 투자자를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나에게도 중요했다. 만약 돈을 낼 가치가 없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면, 더 이상 헛된 꿈을 꾸지 말고 피봇하거나,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유료화’를 하기에는 시기 상조였던 것이, 당시 베타 유저가 100여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그 중 20여명은 나의 지인들이 그냥 가입해본 것이었고, 나머지 20명은 테스트하느라 만든 유저였다. 내가 정말 모르는 유저는 60여명밖에 안되었던 것. 유료화를 했을 때 3%가 전환한다고 가정하면, 1.8명이다. 과연 한 명이라도 결제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쨌든, 한 푼이라도 벌어보자는 심정으로 스트라이프(Stripe) 서비스를 써서 신용카드 결제 기능을 붙이고, 몇 가지 기능은 유료 고객이 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게 막아두었다. 한 달 95달러, 그리고 1년 950달러. 그리고, 100여명밖에 안되는 고객들에게 ‘오늘부터 유료화 시작합니다’라고 이메일을 보낸 후에 두근두근하며 기다렸다. 누군가 유료 고객이 되거나 신용 카드 결제가 일어나면 푸시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 둔 채.

2017년 1월 26일 목요일 아침. 알림이 왔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했다. Rene Mclean (르네 맥클린), $950 결제. 세상에, 한 달 결제만 해줘도 고마운 판에, 1년치 선결제라니! 혹시 1달만 결제하려고 하다가 뒤에 0이 더 달린 것을 못 보고 실수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궁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고마워서,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유료 전환해 주어서 고맙다고, 그리고 잠깐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그래서 곧 전화를 했다.

알고 보니, 뉴욕에서 자신만의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1년치 선결제를 한 것이 맞느냐고. 그랬더니 맞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왜요?” 그 대답이 나를 감동하게 했다.

“차트메트릭을 지난 몇 달간 지켜봤어요. 빠른 속도로 제품이 개선되는 게 보이더라구요. 이미 몇 가지 기능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이렇게 계속 좋아진다면 나중에 더 좋은 제품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유료 결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업을 초기에는 현금이 가장 귀하더라구요. 그래서 도움이 될까 싶어서 1년치 비용을 냈습니다.”

르네 맥클린(Rene Mclean)

그 말이 너무나, 너무나 고마웠다. 당시에는 그 950불은 며칠을 더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돈을 낼 가치가 있다는 검증이 된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고객이 1년치를 결제했으니,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한 고객을 위해 1년간 서비스를 개선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고객은 1년 동안 제품이 더 좋아지고, 그래서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서 1년치를 미리 낸 것이니 말이다.

당시 그 결제는 우리 스트라이프 데이터 베이스에 기록된 첫 번째 데이터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르네 맥클린의 결제 내역. 2017년 1월 26일.

다음 달이 되자 조금씩 더 유료 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6월이 되자, 이제는 푸시 알람이 하루에 너무 많이 울려 계속 켜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때의 월간 반복 매출(MRR)은 1월달에서 24배가 증가한 $5,533. 아래는 유료화 후 첫 6개월의 매출 기록이다.

차트메트릭 유료화 이후 첫 6개월의 기록

그로부터 5년 반이 지난 지금, 미국, 유럽, 호주, 남미, 아시아에서 3500개 이상의 회사가 유료로 차트메트릭을 사용하고 있고, 실리콘밸리와 뉴욕에서 약 30명의 정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차트메트릭 고객사들 중 일부

이 모든 것이 첫 고객이 우리에게 준 신뢰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는 6년째 차트메트릭의 유료 고객으로 남아 있다. 이번 연말, 그에게 선물을 하나 보내야겠다.

4 thoughts on “첫 고객을 만든 방법

  1. 안녕하세요. 몇 년 전, 조성문님의 CLV 글을 지인에게 공유 받은 후부터 레터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육아를 하면서 경력 단절 아빠로 살았는데 올해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나이 40에 다시 일을 시작했네요. 스타트업에 있다 보니 오늘 내용은 정보 전달보다 감동이 더 많았던터라 글을 남기게 됐습니다. 르네 맥클린은 1년 결제는 한겨울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지네요. 고객에게 목마른 시기를 지나고 있다보니 그때 그 날의 느낌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게 됩니다. 유료화 첫 발자국을 공유해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사무실에서 읽다가 울컥 했네요… 조직원과 리더의 마음, 스타트업 정신, 제 몫을 한다는 것 등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대표님 글 읽을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다음 n년 뒤 뵐 때에 재미있고 자랑스로운 이야기 꾸러미 가득 준비해서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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