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제품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It’s very easy to build a complicate software. Building something simple takes years.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심플한 무언가를 만드는 데는 수년이 걸립니다.

Paul English, Co-founder of Kayak.com (폴 잉글리시, 카약 공동 창업자): ‘How I Built This’ 의 KAYAK 에피소드 중에서

팟캐스트를 듣다가 너무나 공감이 되어 이 말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단순한 제품이 더 만들기 쉬울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말일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항공권 검색 엔진 카약(Kayak)은 2004년에 만들어졌고, 그로부터 8년밖에 지나지 않은 2012년, 프라이스라인(Priceline)에 $1.8 billion (약 2조원)에 매각되었다. 10년 전의 일이니 지금이라면 거의 4조원에 달하는 가치이다. 8년만에 이렇게 큰 가치를 만들어낸 비결과 핵심이 뭘까? 물론 당시 시장이 원하던 제품을, 좋은 시기에 만들었기 때문이지만, 인터뷰를 들으며 그 가치의 상당 부분이 공동창업자 폴의 ‘단순한 제품에 대한 집착’에서 나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카약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하는데, 심플한 유저 인터페이스와 빠른 속도는 그동안 익스피디아 등의 항공권 검색 사이트 등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도 한 때는 카약만 사용할 만큼 팬이었다.

그렇게 보면, 폴이 한 말은 속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겉은 단순한 제품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카약은 사실 굉장히 복잡한 제품이다. 전 세계 항공권을 한 군데 모았고, 이 항공권들의 가격은 매 초마다 변한다. 그리고 제품을 사용하는 유저들의 취향도 가지가지다. 어떤 사람은 무조건 싼 가격의 항공권을 찾고, 어떤 사람은 최단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항공권을 찾는다. 차라리 이건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비싸지 않은면서, 너무 오래 걸리지 않는, 그리고 출발 도착 시간이나 출도착 공항이 너무 이상하지 않은, 그리고 적당히 서비스가 좋은 항공사’의 항공권을 찾는다. 그리고 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옵션은 무제한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검색하니 총 2299개의 결과가 나왔다).

카약 Kayak 첫 화면 – 매우 심플하게 보인다. 어디서 어디로, 언제 비행할 것인가.
항공권 검색 결과. 가장 싼 옵션이나 가장 빠른 옵션이 아닌 ‘베스트 Best’ 옵션을 먼저 보여준다.

차트메트릭 서비스를 만들면서, 카약의 UI를 종종 생각한다. 7년간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족시키려 하다 보니, 고객의 요구는 점차 고도화되고, 더 다양해지고 있다. 슬랙의 ‘고객 요청 사항 Customer Request’ 채널에는 이런 아이디어들이 날로 쌓여 가고 있다. 하지만 제품을 자꾸 심플하게 바꾸지 않으면 끝이 없이 복잡해지고, 결국은 ‘프랑켄슈타인’이 되고 만다. 이 때 중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노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에서 내가 그 역할을 많이 담당하게 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고객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그걸 미루거나 거절해야 하니까.

‘스타벅스 매장’ 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새로운 제품을 끝없이 출시하고 이를 선전해서 신선한 느낌이 들지만,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항상 단순하다. 말도 안되게 복잡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지만, 메뉴는 항상 간단하다. 그렇기에 나처럼 ‘커피에 진심이 아닌’ 사람들도 겁먹지 않고 주문할 수 있게 되는 것.

스타벅스 매장의 메뉴판 (출처: cpfoodblog.com)
한 스타벅스 고객의 매우 복잡한 주문 (출처: Vice.com)

그렇게 보면 주변의 위대한 제품들은 다들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테슬라에 올라탈 때마다 즐거운데, UI가 너무나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이다. 따로 키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내 전화가 곧 자동차 키라서 그냥 차에 접근하면 잠금이 해제되고, 차에 들어가는 순간 내 몸에 맞게 의자가 조절된다 (당연히 여러 사람의 프로필을 저장할 수 있다). 접근하는 때에 이미 자동차가 켜지기 때문에 시동 거는 과정도 따로 없다. 파킹 브레이크 해제도 없다.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순간 차가 출발한다. 아침엔 집에서 회사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내비게이션은 이미 회사를 목적지로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조금 운전해서 프리웨이(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자율 주행이 시작되고, 운전 과정에서 내가 할 일은 거의 없다.

테슬라 모델 3 인테리어 (출처: Business Insider)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면서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제품’은 사람이다. 대학교 때 ‘분자생물학’ 강의를 들으며,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는 과정, 먹은 것을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 그리고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메카니즘이 너무 복잡해서, 신이 아니면 설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눈 먼 시계공이 오랜 시간을 거쳐 설계했다고 믿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구조와 감정을 가진 경이로운 세계.

인간 세포 하나의 구조가 이렇게 복잡하다. 한 인간은 이런 세포 60조개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123rf.com)

그 내부는 온 우주를 담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외부 인터페이스는 눈, 코, 입, 귀와 손발, 그리고 생식기 정도이다. 그리고 수천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이 유저 인터페이스는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이것으로 800미터가 넘는 건물을 짓고, 사람의 일부 기능을 본딴 기계와 로봇을 만들고, 우주선을 만들어 화성의 흙을 채취하고, 무한한 세대에 걸쳐서 역사를 이어간다.

8 thoughts on “단순한 제품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1. 한국의 은행앱들을 보면 글에서 말씀하시는것의 정반대의 길을 아주 골라서 가고 있어서 아주아주 답답합니다..
    제가 쓰는 현대카드도 분명 몇년전까진 굉장히 깔끔한 인터페이스였는데, 언젠가부터 덕지덕지….
    한편, 제가 생물학도는 아니지만, 관련분야 직종으로서 느낀 점은 생물은 오히려 프랑켄슈타인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내부 작동 메커니즘은 물론이고 겉으로 보이는 부분도 오랜기간 잘 다듬어진 프랑켄슈타인일 뿐인 것 같아요

    1.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에겐 토스가 있잖아요. 🙂 저는 미국에서 Chase와 Wells Fargo 은행 앱을 쓰고 있는데, 끊임 없이 단순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기특해요. 원래 사실 단순하게 만들기 진짜 어려운게 금융 앱이거든요.

      생물 겉보이는 부분도 프랑켄슈타인인가요? 적어도 사람은 겉이 심플한 것 같은데.. 예를 더 들어주시면 감사~

  2. 이번 글 너무 마음에 와 닿는군요. 디자인도 단순할수록 공이 많이 드는데, 주의를 다른데로 돌려줄 수 있는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에누리 없이 본질이 더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이죠. 저도 디자인을 공부하며 최고의 디자이너는 조물주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생각을 접하고 반가워 댓글 남깁니다.

  3. 기초적인 상호작용을 위해서 수년간의 성장이 필요하고, 적절한 상호작용을 위해 십수년간 학교를 다녀야 되는걸 생각하면 인간은 꽤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것 같아요.

  4. 팀(Team)이 고민하고 고민할수록, 유저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주에 새로 오신 리더님과 회사 서비스 핵심 기능과 로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메인 로직일수록 단순해야해요. 그래야 유저에게 전달할 메세지가 명확해지죠.” 말씀하셔서, 반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예외 처리는 복잡하고, 섬세하게 다루라고도…)

    그리고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고 쉽지 않다는 게 이 문장에서 느껴지네요, 언제나 응원드립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노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에서 내가 그 역할을 많이 담당하게 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고객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그걸 미루거나 거절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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