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만들기

오랜만의 단상. 오래 전부터 사업이라는 건 눈사람 만들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눈덩어리를 뭉치려고 하면 잘 뭉쳐지지도 않고 부서져버리고, 흙이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더 뭉치기가 어렵다. 실패하고 실패하고 나서 힘들게 겨우 만들어놓고 나면 덩어리가 너무 작아서, 이걸로 언제 커다란 눈사람이 될까 싶다.

그래도 그냥 눈 위에 굴려 본다. 굴리고 굴리다 보면 조금씩 커지는데, 덩어리가 커질수록 그 다음은 훨씬 쉽다. 부피가 크니까 눈도 많이 가져오고, 크기가 크니까 허리를 구부리지 않아도 되어서 쉽다.

눈덩이가 커지면 이제 팔도 붙이고 얼굴도 만들어서 장식을 할 수 있다. 눈이 어느 정도 커야 팔을 붙였을 때 말이 되지 안그러면 팔을 끼울 수도 없고 끼운다 해도 볼품이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눈덩이가 커지면, 내가 일일이 굴리지 않아도 스스로 커지는 순간이 온다. 한 번 밀면 스스로 굴러가며 눈을 모은다. 물론 눈덩어리가 나무에 부딪치거나 물에 빠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이제는 내가 직접 굴려야만 눈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운이 좋아 다른 아이들이 그걸 보고서 재미있어서 대신 굴려줄 수도 있다. 큰 눈덩이를 만들고 나면 그보다 더 작은 눈덩이를 가져와서 합치자고 제안해서 바로 눈사람을 완성할 수도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게임빌의 창업 초기 멤버로 합류해서 회사가 성장하는 것을 보며 눈사람이 만들어지는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모래알처럼 작아서 보이지도 않던 눈이 어느 새 커져서 눈사람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그 눈사람을 보며 즐거워하고, 또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정말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비전만 있었는데, 지금은 게임빌 자체 기업 가치와 컴투스 지분 보유량 약 30% 등을 합치면 그 가치가 1조원이 넘는다.

차트메트릭은 얼마 전에 영국의 한 회사 onesheet.club 을 인수했다. 우리의 고객이었던 회사인데, 이 회사의 제품이 우리가 하려는 방향과 맞아, 이걸 우리가 직접 만드는 대신 사서 보유하기로 결정한 것인데, 링크드인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다. 워낙 작은 규모의 인수라 별로 내새울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창업 후 처음으로 다른 회사 자산을 인수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고, 기분이 좋았다.

처음 창업했을 때부터, 그리고 가끔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회사에 대해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냐고. 정확히 그렇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대부분 언제 회사를 팔 계획이냐, 또는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회사 팔 것이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언젠가 그런 행운이 찾아온다면 좋겠죠?” 라고 대답했는데, 언제부터는 회사를 파는 대신 회사를 사는 회사가 되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빌보드나 닐슨에 인수되는 대신, 빌보드나 닐슨을 살 수 있는 회사가 된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꿈같은 이야기지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고객에게 확실한 가치를 주는 제품을 더 날카롭게 가다듬으며 천천히, 꾸준히 성장하다 보면 어느새 꽤 강한 조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One thought on “눈사람 만들기

  1. 안녕하세요? 저는 남아공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는 김상완 이라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간간히 님의 글을 봐왔었는데 최근 새로운 업체를 인수 하셨다니 정말 축하드리며 회사가 커나감이 마치 제 일인양 기쁜 마음이 듭니다.
    글을 접하던중 갑자기 자동차 부품 데이터 관련 지금 하시는 일과 접목이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혹시라도 남아공에 오시거나 또는 한국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저도 출장을 빙자, 한국에서한번 뵙고 싶습니다. 의미있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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