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진출한다는 것의 의미

얼마전, 한국에서 꽤 잘 알려진 한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와 만나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 진출은 거의 예외 없이 모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들이 고민하는 주제이지만, 아직까지 그렇다할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한 제품이 다른 나라에서 빛을 본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인데다, 특히 미국 시장은 한국 뿐 아니라 유럽과 대서양, 그리고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군침을 흘리는 시장이어서이기도 하다.

이 ‘원래 어려운’ 일을 나는 게임빌 시절에 혹독하게 경험했다. 게임빌의 미국 진출은 설립 초기부터 고민했던 일이었는데, 실제로 미국에서 법인을 세우고 매출 성과를 만들고, 더 나아가 수익까지 낸다는 것은 이중 삼중의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 일을 진두 지휘한 사람은 현 미국 지사장인 이규창(Kyu Lee)이었고, 나는 옆에서 개발와 안살림을 챙기는 일을 맡았었다. 한때 미국 이동통신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시절 문전 박대의 수모도 겪었고, 나는 퇴근 시간이면 10분의 기다림도 없이 집에 가버리는 어린 미국 파트너 담당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쩔쩔 매는 시간을 보냈지만, 수년의 기다림과 고통 끝에 마침내 시장이 열렸고, 이제는 게임빌 전체 매출의 59%, 컴투스 전체 매출의 85%가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아래는 엊그제 뉴욕 타임스퀘어에 걸린 서머너즈 워(Summoners War) 광고.

뉴욕 타임 스퀘어에 뜬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Summoners' War) 광고
뉴욕 타임 스퀘어에 걸린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Summoners War) 광고. 출처: instagram/kyuclee

그 때도 그랬지만,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관심 주제였고, 최근 스타트업들이 약진하기 시작하며 미국 진출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며 내가 직접 참여해서 미국 시장 진출을 돕기도 하고 관심을 가지고 같이 고민하게 되면서 이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 내 사업을 하기 시작하며 그 주제가 더 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미국 문을 두드릴 분들을 위해 그동안 내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조금 나누어보고자 한다.

1. 미국 진출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다시 게임빌의 예로 돌아가보자. ‘게임’은 그나마 ‘출처 국가’를 조금 덜 타는 컨텐츠에 속한다. 게임 자체가 재미있으면 게이머들은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뿐더러, 전통적으로 게임 시장은 일본의 강한 게임 회사들이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의 비교 우위와 경쟁 우위를 갖고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고 시간도 무척 많이 걸렸다. 2000년 창업한 해부터 미국 시장을 기웃거렸고 2004년에는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투자를 했지만 실제 성과가 나온 것은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2007년 이후였다. 처음에는 몇 달이면, 아니, 1년이면 상당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은 미국인들에게 Gamevil의 ‘G’자만 알리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고, 다수의 게임, 그리고 끈기가 합쳐진 후에야 성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2. 회사와 제품을 알리기 위한 리소스 활용을 ‘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각 주가 하나의 나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별로 관심사가 다르고 듣는 라디오 스테이션이 다르고 보는 방송이 다르다. 요즘엔 킥스타터와 같이 미국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몇 가지 플랫폼이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런 사이트들은 대중과 거리가 있다. 시장을 세그멘트(segment)해서 자신만의 시장을 찾고 그 안에서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은 마케팅의 기본이지만, 이런 세그먼트 하나도 너무 크거나, 애초에 그 세그먼트를 찾아내는 일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스타트업이 가장 활용하기 힘든 것 중 하나는 PR이다. 한국에서는 창업자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것, 또는 10년간 노점상을 한 경력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사화가 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외국인이, 그리고 외국 회사가 ‘스토리’를 만든다는 것은 훨씬 힘이 드는 (때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PR 회사를 고용해서 뉴스를 뿌리기도 하는데, 나도 이런 회사를 고용한 경험이 있지만, 제대로 된 PR을 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고, 돈을 아끼다 보면 돈만 쓰고 홍보 효과는 전혀 없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하는 일에는 관계(relationship)가 중요한 것은 전 세계 공통의 법칙이다. 중요한 사람들과 인간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돈으로 쉽게 살 수 없는 일이다. 테크크런치 기자 한 명과 친해지기 위해서도 얼마나 시간과 노력이 들겠는가.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은 예산으로 조금씩 실험을 해보면서 자신만의 시장에 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3. 미국은 (특히 실리콘밸리는) 돈이 많이 든다.

앞서 여러번 이야기했던 주제이지만, 사업을 하면서 더 절실히 깨닫는 부분이다. 일단 사람을 고용하려면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드는데, 특히 세금과 의료보험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큰 예산이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고액 연봉으로 생각하는 숫자가 미국에서는 빈곤층 미만(below poverty)에 해당하는 연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숫자로 예를 들어 보자. 회계 소프트웨어인 퀵북(Quickbooks)의 페이롤(Payroll) 서비스에 가입하면 세금 정산 후 직원이 받게 되는 돈이 얼마인지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월 5000달러, 즉 550만원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월급이다. 요즘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연봉은 12만 달러에서 시작하지만, 일단 스타트업이니까 스톡 옵션과 결합해서 5000달러를 주기로 했다고 치자. 아래 그림은 이 경우에 세금이 계산되는 방식이다. 사회 보장을 비롯한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실 수령액은 3476달러가 된다. 회사 또한 추가 세금을 내야 한다. 그 결과, 회사에게 드는 실제 비용은 약 6000달러가 된다. 여기에 의료보험을 추가하면 7000달러. 거기에 사무실 임대료 500달러를 더하면 7500달러. 미국은 가까운 곳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하고, 가끔 한국도 오가야 하기 때문에 매월 1000달러 정도 출장비가 든다고 하면 8500달러. 즉, 사람 한 명이 ‘빈곤층 이하’의 생활을 하며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는 데 월 천만원 가까운 회사 비용이 든다는 것.

연봉을 ‘조금 더 현실적인 수준’으로 올리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9000달러 월급에 실 수령액은 겨우 5718달러. 앞서도 설명했지만 회사도 세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회사의 실제 지출은 11,000 달러가 넘어간다. 당연히 연봉이 높으니 의료보험료도 올라간다. 앞에서 설명한 ‘각종 비용’을 추가하면 실 비용은 월 13000달러, 즉 사람 한 명에 월 1500만원 지출이다. 한 명을 더 채용하면 사무실을 같이 쓸 수 있겠지만 나머지 모든 비용은 똑같이 들어간다. 그러니, 사람 세 명만 뽑아도 월 4500만원이 나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참고로, 아직 변호사와 회계사 비용은 추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야심차게 ‘미국 진출’을 한다고 직원을 채용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청구서를 받고, 월 5000만원씩 6개월쯤 지나 (눈 튀어나올) 3억원을 쓰고 나면, 한국에 있는 본사 직원들은 ‘왜 미국에서 그 많은 돈을 쓰고도 성과가 없느냐. 차라리 N분의 1을 해서 나를 주면 내가 두 배로 열심히 일할텐데’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근데 문제는 미국에서의 6개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데다, 미국에서 이미 유명한 CEO가 차린 회사도 아닌데 6개월만에 성과가 나오는 일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

4. 커뮤니케이션을 조심하자.

팀이 같은 시간대도 아니고, 태평양을 건너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있으면 작은 몸짓, 이메일의 말투 하나만으로도 오해가 생기고 감정이 쌓이게 되기가 너무 쉽다. 다행히 요즘엔 화상 회의가 쉬워져서 이런 위험이 조금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에 잠깐 저녁에 잠깐씩 뿐이므로 하루 종일 서로 대화 없이 일을 진행하다보면 엇박자가 되기가 쉽고, 따라서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돈을 쓰게 되기가 쉽다. 상호 신뢰가 있어도 서로 사이가 나빠지가 쉬운 마당에, 신뢰마저 부족하면 순식간에 금이 가고 깨어지기 쉬운 관계가 된다. 이런 경우를 그동안 사실 많이 봤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들이 한국 회사의 ‘미국 지사장’을 맡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그들 중 한국의 대표 이사나 임원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재미있는 건, 한국쪽 임원들도 이들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 누가 나빠서가 아니라 서로 문화가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고 기대치가 다르니, 그런 것들이 어긋날 때마다 상대방 탓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떨어져 있게 되더라도 최대한 자주 만나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상대방을 ‘무한 신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지고 성과도 안나올 수 있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여담을 곁들이면, 게임빌이 기록한 오늘날의 성과는 당시 이 지사장에 대해 본사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뢰, 그리고 이 지사장이 다시 쌓고 얻어낸 신뢰가 아니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5. 애초에 총탄을 든든히 해두자. 아니면 Y 컴비네이터에 들어가든지.

앞서 이야기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미국 진출을 하기 전에 ‘총탄(bullet)’을 든든히 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품의 핵심 가치’만으로 한국 시장에서 순이익을 내고 있다면 분명히 도움이 된다. 사실 많은 스타트업들에게는 해당되기 힘든 상황이기는 하다.

Y 컴비네이터를 통과한 한국 스타트업이 지금까지 세 개 있다. 미미박스(Memebox), 센드버드(Sendbird), 그리고 시어스랩(Seerslab). 애초에 워낙 우수한 창업자와 팀이 모여 있었기에 Y컴비네이터에 들어간 것이지만, 앞서 Y 컴비네이터를 졸업한 미미박스와 센드버드는 미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알고 있다. Y 컴비네이터를 통과하며 12만 5천달러를 투자 받을 수 있고, 또 졸업하며 데모데이를 통해 실리콘밸리 최고의 프리미엄 벤처캐피탈들의 투자 제의를 받을 수 있게 되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힘은 홍보 효과와 ‘Y 컴비네이터 출신’이라는 자랑스러운 명함이다. 한국으로 치면 카이스트 + 넥슨/카카오 출신 창업가에 버금간다고 할까. 아무튼 Y 컴비네이터 출신 회사들은 누구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나 언론에 홍보자료를 내보낼 때 반드시 회사 뒤에 그 말을 단다. 그리고 사람들은 ‘Y Combinator’라는 말을 보면 그냥 지나칠 기사나 제품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Airbnb, Dropbox와 같은 눈부신 성공 사례(다른 말로 하면 신데렐라 스토리)를 잘 알고 있고, 폴 그래험(Paul Graham)과 샘 올트만(Sam Altman)의 안목을 믿고 있기에.

분명 쉽지 않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또한 도전하는 회사들이 있고, 좋은 성과를 내는 회사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들 모두에게 박수를..

6 thoughts on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진출한다는 것의 의미

  1. 아직 스타트업 창업에 관심만 있는 청년이지만 돈 주고 들을만한 강연을 적은 글을 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 제가 항상 궁금한 사실이 있었는데요.. 투자받을떄 12만불, 40만불 등 투자를 받는다고 하는데 이 투자금들은 직원의 월급이 불포함인가요? 위에 말씀하신것처럼 직원 월급으로만 월 $5000 씩 나간다면 서버 구입, 사무실 비용 등 이런 비용은 12만불 투자로써는 감당이 안될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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