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즐거움

연간 반복 매출(Annual Recurring Revenue)이 어느새 3백만 달러를 넘었다. 2백만 달러를 넘은지 약 반 년만의 일. COVID-19으로 인해 잠시 껶였지만, 고객들이 하나 둘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그동안 고민하던 큰 고객들이 마음을 정한 것이 한 가지 이유이고, 전에는 콘서트와 바에서 이루어지던 활동들이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하면서 모든 것이 디지털로 이루어지다보니 우리와 같이 디지털 활동을 측정하는 제품에 사람들이 더 시간을 많이 쓰게 된 것이 또 하나의 이유이다.

차트메트릭(Chartmetric) ARR 매출 곡선

오늘 쓰려는 주제는 ‘사업의 즐거움’이다. 칙센트 미하이가 쓴 ‘몰입의 즐거움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이라는 책을 참 좋아했는데, 한글 번역 제목을 흉내내어 봤다. 사업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 사업이 주는 즐거움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만큼 오랜동안 이 느낌을 궁금하게 생각해 왔고, 또 5년간 사업을 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여러번 되새겨 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사업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공군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와 보험 영업을 하시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주변에 소위 ‘사업가’라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있었다 해도 내가 롤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업은 나에게 마냥 먼 생각으로만 느껴졌다. 경제적으로 항상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안정적으로 돈을 벌며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은 뭘까, 고등학교때는 그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고위공무원이었고, 그래서 행정학과에 지원했었다. 문과에서 공부했지만 공학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새로 만든 꿈은 변리사였다. 당시에 변리사 연봉이 한국 최고라는 신문 기사를 보고, 이거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과학자, 공학자’가 되기 위해 전기전자공학부로 전공을 바꾸었고, 이를 계기로 게임빌의 창업자 송병준 사장을 만나면서 전에는 몰랐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업이 무엇인지,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잘것 없어 보이던 작은 씨앗이 어떻게 한없이 커질 수 있는지를 보았다.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해야지’라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왕 사업을 할 거면 미국에서 하자’라고 마음먹었지만 미국에 몇 번 여행한 것이 전부인 나에게는 아주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일단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미국 학위부터 있어야 하겠고, 또 비자/영주권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MBA에 지원했고, 졸업 후에 미국 대기업에 취직했다. 몇 년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영주권까지 받았다. 이렇게 글로 쓰면 단 세 줄에 불과한 사건이지만, 이들을 이루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노력했다 (미국에서 인턴십을 구하고 취업하고, 사업을 시작하기까지의 이야기).

마침내 영주권을 받고 나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초기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책임질 것도 많지 않았고, 잃을 것도 많지 않았으니,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고 하루 하루 그냥 소프트웨어 코드를 보고, 고치고, 개선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옆에 앉은 엔지니어 한 명과 하루 종일 함께 일하며 제품이 조금씩 내 마음에 들게 바뀌는 것을 보는 것, 그게 내 삶의 큰 기쁨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고, 이제는 미국과 영국에 14명의 풀타임 직원이 생겼고, 그들 모두를 먹여살릴 수 있는 매출도 들어오고 있다. 회사가 이익을 내기 시작 한 후에 추가 투자를 받아서, 이제는 위험 요소도 많이 줄어들었다. 고객들은 정말 만족해하며 제품을 사용하고 있고, 구독 소프트웨어 서비스(Software as a Service)의 특성상, 영업을 하나도 안해도, 심지어 제품을 그대로 방치해 두어도, 돈이 자동으로 들어오고 매출이 늘어난다.

꿈만 같다. 하루 하루는 분투였지만, 그 분투가 모여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고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터전이 생겼다는 것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뿌듯한 일이다.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분명히 있었지만, 심지어 그마저도 나에게 즐거움이었던 것은,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크게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분명한 한, 과정은 아무리 힘들다 해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목표나 비전이 분명하지 않은 채로 고생하는 것, 그것이 가장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요즘 아마존에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레이스(World’s Toughest Race: Eco-Challenge Fiji)‘를 보고 있는데, 누가 봐도 극도로 힘든 시합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희망과 미소로 차 있다. 그 여정의 끝에 만날 가족들과, 우승하게 됐을 때 얻을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사업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을 몇 가지로 정리해볼까 한다.

1. 원하는 사람과 일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 일하지 않을 자유

회사에서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본인이 최고 경영자가 아닌 이상, 같이 일할 사람을 결정하는 완전한 자유를 가지기 힘들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가지게 된 첫 번째 권한은, 함께 일할 사람을 내가 직접 고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고른다’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처음 시작해서 보잘 것 없을 땐, 내가 고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골라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게 ‘거부권’이 있다는 것은 큰 권한이다. 정말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고, 그렇게 해서 그들이 나의 편이 되었고, 또 여러 사람들이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지원했을 때는 내 주관에 따라 그들 중 가장 ‘함께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사람, 일할 때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사람’을 고를 수 있었다. 여기서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초반에는 채용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1)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회사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를 분명히 알고 있고, 2) 자신의 분야에 대해 확실한 전문성이 있으며, 3) 근무 태도(work ethic)가 좋아 내가 결코 감시할 필요가 없으며, 4)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서 복잡한 상황에서도 항상 답을 찾아내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나를 행복하게 했고, 그러다보니 힘든 줄을 몰랐다.

원하는 사람과 일할 수 있는 자유 만큼이나 중요한 건 원하지 않는 사람과 일하지 않을 자유이다. 위의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채용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때, 또는 신뢰에 금이 가서 더 이상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을 때, 상대방이 나를 떠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을 내보낼 수 있는 권한이 나에게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함께 일하면 즐거운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울 수 있으니, 일하는 시간이 즐거운 것은 당연하다.

2. 무엇인가가 자라고 있다는 느낌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더 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며 얻는 큰 행복은, 그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나보다 오래 남아 내가 죽은 이후의 세상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결국, 내가 죽더라도 세상에 남아 있을 두 가지는 아이, 그리고 나보다 오래 살아 남는 ‘무엇가’이다. 그 ‘무언가’는 예술 작품일 수도 있고, 내가 심은 나무일 수도 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매우 짧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자신보다 오래 남을 그 무언가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한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나와는 분리된 독립된 개체이다. 그리고 그 개체의 성장에는 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잘 성장해서 언젠가 다른 부모의 품에 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심은 문화와 내가 만든 제품은 회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오랜동안 남을 것이다.

3. 플렉서빌리티(Flexibility)

우리 가족은 지난 주말에 한국으로 이사해 왔다. 한국도 팬데믹의 예외는 하니지만, 그래도 미국보다 훨씬 잘 대처하고 있고, 무엇보다 모든 일이 원격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 기회에 양쪽 부모님이 계신 한국에 와서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에 결정했다. 결정한 지 3주만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다. 물론 모든 직원이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그리고 런던에 있는데 나 혼자만 한국으로 와서 일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회사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나 하나만 조금 일찍 (새벽 두 시..) 일어나서 일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 못할 것이 없어보였다. 결정한 후에 직원들과 공유했고, 내가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온라인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을 지낸 지금, 충분히 할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때에, 내가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게 여겨진다. 사업을 하고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 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일하는 환경과 조건, 그리고 시간을 어느 정도 내가 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Masterclass 에서 디즈니 CEO인 밥 아이거(Bob Iger)의 강의를 들었다. 그 중 네 번째 에피소드인 ‘Taking Giant Swings: Pixar Acquisition Case Study (거대한 그네 타기: 픽사 인수 케이스 스터디)’에서는 그가 디즈니의 CEO가 된 후 픽사(PIXAR)를 인수한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야기가 정말 드라마틱하다. 어느날 늦은 오후 집 앞에 차를 주차한 후, 마음을 먹고 스티브 잡스에게 전화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잡스에게 “나한테 크레이지(crazy)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잠시 후 스티브 잡스가 “제가 들어본 중 가장 황당한 아이디어는 아닌데요?” 라고 대답했다고.

그 후 잡스와 직접 만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눈 후에, 픽사의 핵심 멤버들을 만나 카(Cars), 월리(Wall-E), 업(Up)의 초기 버전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 후에 왜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고 싶은지, 그리고 인수 후에 어떻게 두 회사의 비전을 더 크게 실현할 것인지 픽사 구성원들을 설득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2006년 디즈니는 픽사를 $7.4 billion (약 8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고,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것이 디즈니의 방향을 돌려놓은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나고 나면 그것이 당연한 결정이고, 수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밥 아이거의 설명을 들으면 당시에는 정말 손이 떨리고 식은 땀이 나고,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사업은 그래서 흥미진진한 것 같다.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 베팅을 하고, 그 결정이 좋은 결과를 낳도록 끝없이 노력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