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50년 미래 예측

얼마전 애플 스토어에 들렀다가 아이패드에 담긴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뭔가 놀라운 것을 만들어라 Make Something Wonderful’인데, 스티브 잡스가 썼던 메모와 그가 했던 연설, 그리고 인터뷰 등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2023년에 나온 책인데 어쩌다가 이제야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투와 언어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그가 아직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Make Something Wonderful”

아래는 그 책에서 발견한, 내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대목이다. 1983년 6월 15일, 그러니까 애플이 리사 컴퓨터를 발표한 지 5개월째되는 날, 스티브 잡스가 애스펜에서 열린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했던, “컴퓨터와 사회의 첫 데이트 Computer and society are out on a first date“라는 연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When I was going to school, I had a few great teachers and a lot of mediocre teachers. And the thing that probably kept me out of jail was the books. I could go and read what Aristotle or Plato wrote without an intermediary in the way. And a book was a phenomenal thing. It got right from the source to the destination without anything in the middle.

The problem was, you can’t ask Aristotle a question. And I think, as we look towards the next fifty to one hundred years, if we really can come up with these machines that can capture an underlying spirit, or an underlying set of principles, or an underlying way of looking at the world, then, when the next Aristotle comes around, maybe if he carries around one of these machines with him his whole life—his or her whole life—and types in all this stuff, then maybe someday, after this person’s dead and gone, we can ask this machine, “Hey, what would Aristotle have said? What about this?” And maybe we won’t get the right answer, but maybe we will. And that’s really exciting to me. And that’s one of the reasons I’m doing what I’m doing.

So, what do you want to talk about?

제가 학교 다닐 때, 정말 뛰어난 선생님 몇 분이 있었고, 나머지는 평범한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엇나가지 않은 건 아마 책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이 쓴 걸 중간에 누가 끼어들지 않고 직접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책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쓴 사람에게서 저에게 바로 전달되는 거예요, 아무 방해 없이.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한테 질문을 못한다는 겁니다. 만약 앞으로 50년, 100년 후에, 우리가 진짜 근본적인 정신이나 원칙,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담아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다음 아리스토텔레스가 나타났을 때—남자든 여자든—그 사람이 평생 이 기계를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다 입력한다고 칩시다. 그러다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우리가 그 기계한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야,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거에 뭐라고 했을까?” 정답이 안 나올 수도 있죠. 하지만 어쩌면 제대로 답해줄지도 모릅니다. 그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일을 하는 겁니다.

자,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신가요?

언젠가 컴퓨터가 발전해서, 어떤 사람의 생각을 송두리째 담고,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날. 그는 그 날이 50년에서 100년 후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사 컴퓨터의 사양이 겨우 1MB 의 메모리와 720×364 해상도의 흑백 모니터였음을 생각하면, 사실 100년 후를 예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플이 1983년 1월에 발표한 첫 퍼스널 컴퓨터, 리사(Lisa). 오늘날 가격으로 무려 $31,600 즉 4000만원이 넘었다.

하지만 ChatGPT는 이 연설을 한 지 40년이 채 되지 않아, 2022년에 발표되었다. 물론 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즉 범용 인공 지능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수십년이 더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현재 인공지능 수준이 그가 꿈꿨던 정도에는 이미 이르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그런 기계가 나올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어서, 그것이 그가 그 일을 하는 이유라고 했는데, 이 기술의 탄생을 보지 못하고 2011년에 세상을 떠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만약 그가 10년만 더 살아서 ChatGPT의 등장을 봤다면 어땠을까. 마침내 자신이 컴퓨터를 만드는 진정한 목적이 달성되었다며 좋아했을까, 아니면 그 영광을 오픈 AI에 빼앗긴 것에 원통해하며 싫어했을까. 또는 아니면, 그 회사의 투자자와 후원자가 되어 ChatGPT가 더 인간적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도왔을까.

스티즈 잡스의 어록, “Make Something Wonderful”은 여기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최대 산소 섭취량 (Vo2 Max)

최근 뭐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달리기’라는 대답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요즘엔 그 어느때보다도 달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달리고 있다.

원래 나는 달리기에 정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지루한 걸 무엇하러 하나’. 농구, 테니스, 수영, 골프 등 그보다 더 폼나고 재미도 있는 운동이 많은데, 달리기란 정말이지 고독하고 지루하기만할 뿐인 운동이라고만 생각했다. 게다가 도구도 사용하지 않는데다 운동 시설도 따로 사용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다른 운동을 할 줄 모르거나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을 때만 하는 운동이랄까.

그러다가 갑자기 달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한 후배 덕분이었다. 구글에 다니다가 나와서 자신의 스타트업을 하는 후배였는데, 그 때문에 종종 만나서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안부를 물어보곤 했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한다길래 같이 샌프란시스코 아쿠아틱 파크에서 만나 바다 수영도 하고, 다음엔 또 무슨 운동을 같이 하면 좋을까 이야기하며 지냈는데, 후배가 어느날 제안을 했다. 11월에 몬터레이에서 열리는 하프 마라톤에 같이 나가자는 것.

하프 마라톤은 정말 오래 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여한 이후 완전 잊고 지냈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어서 고민하다 막판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꾸준히 운동을 했는데 체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목표가 생기면 그동안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마라톤까지 남은 시간은 3주 남짓. 각자 샌프란시스코, 팔로 알토에서 살고 있어서 주말 오전에 한 번씩 만나 트레이닝을 하기로 했다. 중간 지점인 Sawyer Trail 이 적당해 보였다. 실리콘밸리에서 하프문 베이로 가는 관문에 있는 거대한 호수 옆길에 난 달리기 코스였는데, 10월의 일요일 아침 7시 반이라 꽤 추웠지만, 막상 달리기 시작하면 그 차가운 공기를 스치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가볍게 5마일만 뛰자 했는데, 뛰고 나서 보니 8km 가까운 거리였고, 둘이 함께 뛰니 5.14/km로 속도도 꽤 빨랐다. 이렇게 몇 번 더 훈련하면 할만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프 마라톤 트레이닝의 첫 시작

1주일 후, 그리고 마라톤 1주일 전에 한 번 더 만나서 뛰었고, 이번엔 14.5km를 달렸다. 5:46/km 의 페이스였는데, 마지막 1~2 킬로미터는 확실히 힘들었다. 함께 훈련한 후배가 워낙 잘 뛰어서 겨우 따라갔지, 혼자였으면 이 중간에 벌써 포기했을 거다.

하프 마라톤 두 번째 훈련

15km 가까운 거리를 쉬지 않고 뛸 수 있다니 스스로에게 놀랐는데, 그래도 21km를 달려야 하는 하프 마라톤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도 일단 질렀으니 도전해볼 수밖에.

드디어 마라톤. 하루 전날 2시간 정도 운전해서 몬터레이에 가서 빕(Bip) 등을 받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근처 호텔에서 잤다. 마라톤 당일은 새벽 4시~5시쯤 일어난 것 같다. 긴장한 마음으로 대회 장소에 가니 추운 새벽임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나중에 보니 이날 무려 7000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몬터레이 시 전체가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몬터레이 해변도로를 함께 달리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몬터레이 하프 마라톤 코스 (출처: https://www.runningusa.org)

하프 마라톤을 2시간 이내에 달리면 괜찮은 기록이라길래 2시간을 목표로 했는데, 마지막 1마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힘을 내었고, 단 한번도 걷지 않고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다. 정말 아쉽게도 2시간을 살짝 넘긴 2시간 2분의 기록이었다.

몬터레이 하프 마라톤 결과

서론이 많이 길었는데, 원래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이 달리기의 결과로 높일 수 있게 된 중요한 지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지표는 바로 ‘최대 산소 섭취량 (Vo2 Max)‘. 말 그대로 단위 시간당 몸이 얼마나 많은 산소를 섭취할 수 있느냐는 지표인데, 아래는 그록(Grok)의 설명이다.


Vo2 Max는 단위 시간당 신체가 흡수할 수 있는 산소의 최대량을 의미하며, 보통 밀리리터(ml) 단위로 몸무게(kg)와 시간(분)을 기준으로 측정된다. 예를 들어, “ml/kg/min”로 표현된다. 이는 주로 심폐 지구력(심혈관계 건강)과 유산소 운동 능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지표이다.

  • V는 “Volume(부피)”을 뜻하고,
  • O2는 “Oxygen(산소)”를 의미하며,
  • Max는 “Maximum(최대)”를 나타낸다.

쉽게 말해, Vo2 Max 수치가 높을수록 산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고, 이는 운동선수나 건강한 사람에게 중요한 체력 요소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엘리트 마라톤 선수의 Vo2 Max는 보통 70-85 ml/kg/min 정도이고, 일반인의 경우 30-50 ml/kg/min 수준일 수 있다.

측정은 보통 러닝머신이나 자전거 같은 기구를 사용해 최대 운동 강도에서 호흡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수치가 높으면 뭐가 좋은 걸까? 일단, 전반적으로 몸이 가뿐하다고 느끼고 덜 지친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가빠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담배를 피우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흡연자가 아닌데도 쉽게 숨이 가쁨을 느낀다면 아마도 이 수치가 낮을 것이다. 이 수치가 높으면 소위 ‘헉헉거림’이 확 줄게 된다. 숨이 쉽게 가빠지지 않으니 일상 생활에서 가뿐함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체력이 필요하거나 지구력이 필요한 활동에서 숨이 쉽게 가빠지지 않아 훨씬 편안하게 오래 지속할 수 있다. 달리기 등의 운동을 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지표에 대해 처음 알게된 건 눔 정세주 대표를 통해서였다. 약 2년 전에 함께 멕시코에서 열리는 창업자 리트릿에 갔었는데, 딱 한가지만 젠다고 하면 이 지표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야기해준 것이 최대 산소 섭취량이었다. 애플 와치 등 스마트 와치를 차고 있으면 자동으로 측정이 되는데, 당시에 이 지표를 보니 ‘평균 이하’라고 나와서 무척 실망을 했었다. 알고 보니 다이어트하고 운동을 많이 한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심장 박동수를 최대로 높이는, 즉 숨이 턱까지 올라오는 격렬한 운동을 해야 높아지는 수치라고 했다. 그 때부터 이 지표를 종종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뭘 해도 잘 안올라가는 걸 보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지표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35 정로도 ‘평균 이하’에 머무르던 수치가 마라톤 훈련을 계기로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그 후 단기간에 상승하여 44.6까지 올라간 것이다 (최근 좀 게으름을 피웠더니 살짝 떨어졌지만). 아이폰 사용자라면 ‘건강(Health)’ 앱에서 이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

최대 산소 섭취량 (Vo2 Max)의 1년간 수치 변화.

좀 더 정확하게 측정하고 싶어서 전문 측정 기관에 가서 산소 마스크 같은 것을 쓰고 트레드밀 위에 올라가서 측정을 해봤고, 여기서 얻은 수치는 49였다.

전문 측정 기관에서 측정한 결과

연령대별 이상적인 최대 산소 섭취량 수치는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자 기준).

출처: https://www.bicycling.com/health-nutrition/a61914330/vo2-max-by-age/

아래는 이 수치가 가지는 의미, 과학, 그리고 왜 ‘무병장수’와 깊은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수치를 높일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한 영상.

요즘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앱을 열어 이 지표를 보여주고 즐겨찾기에 등록해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표를 알게 되고,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지능보다는 주도성

OpenAI 의 초기 멤버이자, 테슬라에서 AI 팀을 이끌었던 안드레이 카르파시(Andrej Karpathy)어제 트위터에 올린 글이 하루만에 백만 뷰를 넘기며 화제가 되고 있는데, 공감이 많이 되어 여기에 옮겨 본다. (ChatGPT 번역)

나는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직관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지능(Intelligence)에 대한 찬양, 각종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의 영향, IQ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도성(Agency)은 훨씬 더 강력하고, 훨씬 더 희소한 특질이다.

당신은 채용할 때 주도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우리는 교육을 통해 주도성을 키우고 있는가? 당신은 마치 10배 더 강한 주도성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가?

Grok(일론 머스크가 만든 AI 툴)의 설명이 꽤 근접한데, 다음과 같다:

“*주도성(Agency)*이란 성격적 특성으로서, 개인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결정을 내리며, 자신의 삶과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태도를 뜻한다. 주도성이 높은 사람은 삶이 자신에게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직접 만들어 간다. 이는 자기 효능감, 결단력,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결합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주도성이 강한 사람은 목표를 세우고, 장애물이 있어도 자신감을 갖고 밀고 나간다. 이들은 ‘어떻게든 해결할 거야’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결해낸다. 반면, 주도성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을 쥐기보다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며, 운이나 타인, 외부 환경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도성은 단순한 자기 주장(assertiveness)이나 야망(ambition)과는 다르지만,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내면적인 특성으로, ‘내가 행동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실제로 행동하는 의지’가 결합된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 위치(locus of control)’ 개념과 연관 짓기도 한다. 주도성이 높은 사람은 내적 통제감을 가지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고 느낀다. 반면, 주도성이 낮은 사람은 외부 통제적인 경향을 보이며, 삶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지능보다는 주도성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인데, 와이 컴비네이터의 CEO인 게리 탄(Garry Tan)트위터에서 언급하며 화제가 되었었다.

Intelligence is on tap now so agency is even more important
“이제 지능은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므로, 주도성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즉, 이제 AI 가 모든 자료 조사를 대신해줄 수 있고, 심지어 창의적인 일들도 하고, 이제는 말로 설명만 웬만한 코딩까지 다 해내는 시대에 인간이 가지는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정말 주도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주도성마저도 AI가 더 큰 능력을 발휘할 날도 오래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대체하기 더 어려운 자질이 아닐까.

그동안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채용하면서, 물론 지능과 가진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주도성’이 있는 사람인가를 항상 주의 깊게 보곤 했다. 그 덕분인지, 회사의 주요 임원, 그리고 중간 관리자들은 엄청나게 강한 주도성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고 있고, 주니어 직원들도 자기 삶에서 주도성을 가지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을 자주 본다. 덕분에 나는 ‘관리’에 시간을 훨씬 적게 쓰고 훨씬 덜 걱정할 수 있다.

이 주도성은 배워서 터득한다기보다는 어떤 사람이 가진 보다 본질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주도성을 발휘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아무리 주도성이 강한 사람이라도 일이 성향에 맞지 않거나, 동기 부여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주도성을 발휘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채용할 때, 항상 그 사람의 동기(motive)를 본다. 회사에 왜 지원하는지, 그 일이 왜 재미있는지는 당연하지만,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봤을 때 (어떤 학교를 다녔고,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것을 재미있어하는지 등)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어하는지를 유추해 본다.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방향이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과 일치하거나, 비슷하게 맞출 수 있다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 주도성을 발휘할 것이지만 이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항상 억지로 일을 하고 억지로 사람을 끌어야 해서 서로가 힘들어지고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주도성을 이미 보유하고 있으며,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나 그 주도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면 최고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회사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기를.

$10,000,000 ARR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 차트메트릭의 연간 구독 매출(ARR)이 $10M을 넘었다. 2018년 말에 처음 $1MM 을 넘었다고 포스팅했는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의 일이다.

예전에, 사업을 한다는 것이 눈사람 만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여전히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처음엔 잘 안뭉쳐지고, 눈덩이도 잘 안뭉쳐져서 이렇게 해서 언제 눈사람 되나 싶지만, 꾸준히 계속 굴리다보면 어느새 덩어리가 되고, 딱딱한 덩어리가 되면 눈이 붙기 시작한다는 말. 그래서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그 다음엔 조금만 굴려도 눈이 와서 붙는다는 말. 이제, 그 눈덩이를 내가 일일이 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분 좋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이 눈덩이는 세상 어딘가에서 굴러가고 있고, 이제는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굴리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얼마전 링크드인에 ‘The Art of Delegation 위임의 기술‘이라는 글을 써서 올린 적이 있는데, 위임은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이지만, 터득하면 가장 강력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3월, 리처드 브랜슨의 섬에 다녀온 이후 가장 초점을 맞췄던 것은 위임이었다. 어떻게 하면 권한을 주고, 위임을 하고, 그 위임한 결과가 좋게 만들까에 가장 집중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 정말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회사에서 많이 있고,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 창업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지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 보니, 내가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부서에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때가 종종 있는데, 우리 회사의 블로그 사이트가 그렇다. 최근 여기에 ‘제품-마켓 핏’의 개념을 음악과 그 청취자의 개념에 적용해서 쓴 글이 올라왔는데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담당자와 즐거운 대화를 주고 받았다. 얼마 전에 “직원들에게 칭찬을 자주 하는 것이 좋은가요, 말을 아끼는 것이 좋은가요? 칭찬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진심으로 감동했을 때 칭찬하고, 단순히 “잘했다” 고 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는지, 그리고 일을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자원을 더 지원해주는 것을 언급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그 때 주고 받았던 대화를 여기에 붙인다.

회사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 마음에 들어 담당자와 주고 받았던 메시지

해당 부서는 블로그와 더불에 요즘 인스타그램도 잘 관리하고 있는데, 최근에 올렸던 한 포스팅은 40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년 내내 Top 10에 안보였던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레이디 가가의 Die With a Smile, 그리고 로제의 APT에 피쳐링 되면서 단숨에 상승하는 것이 재미있다. 예전에는 음악 업계 종사자들만 관심을 가지고 팔로우하던 계정이었는데, 이제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점점 많이 차트메트릭의 이름을 알게 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는 칸쿤으로 회사 리트릿을 다녀왔다. 바닷가 빌라를 두 채 빌리고 셰프와 바텐더를 따로 고용했는데 셰프가 너무 훌륭한 멕시코 음식들을 만들어줘서 내내 행복했다. 아침엔 요가, 그 다음엔 정글 (세노떼) 탐험, 배구, 테니스, 저녁 식사 후엔 수영장에 모여 일몰을 보며 수다.

아래는 지난 마일스톤 때 썼던 글들:

창업자만이 할 수 있는 것

어제 내가 투자했던 한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점심을 먹으며 회사 운영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사의 한쪽이 제대로 안돌아가고 있었는데, 그걸 너무 늦게서야 알게 되었고, 돌이켜보면 그게 자신의 실수였다고 했다. 그동안 ‘하이레벨’에서만 지켜보면서, 신사업에 신경쓰고 있었는데, 주된 사업의 한 구석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경험했던 것, 실수한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요즘 내가 어디에 어떻게 시간을 쓰고 있는지를 공유했다.

나는 ‘하이레벨’에 머물러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디테일이 궁금하고 디테일이 재미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부서장들에게 보고받는 시간이 아니라, 각 엔지니어, 디자이너, 또는 마케팅 담당자들과 나란히 앉아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다. 함께 모여 앉아 이야기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다같이 그걸 실행하고 나면 너무나 훌륭한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2023년,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구글로 돌아왔다. 순다 피차이 (Sundar Pichai)라는 대단히 능력 있고 믿음직스러운 CEO를 회사에 심어두고 오랜동안 회사를 떠나 있었는데, 그가 5년 만에 다시 예전 일터로 돌아온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AI인데, Open AI나 메타에 비해 구글이 AI 전쟁에서 뒤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창업자이긴 하지만, 이미 오랜동안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고, 이미 모든 주된 일들을 위임한 상태였는데, 그가 돌아온다고 해서 뭐가 그리 달라질까? 어차피 그가 AI / LLM 전문가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가 차세대 AI 엔진 코드를 직접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가 창업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회사의 리소스를 움직이는 일이다. 상장사 CEO가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수는 있지만, 결국은 단기적 성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을 만족시키는 분기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지고, 결국 자신의 보상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이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구글의 10년, 20년 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긴 호흡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무엇보다 회사에 좋은 인재들을 데리고 오거나, 기존의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내리는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실제로 그가 구글에 돌아온 후 구글의 AI 기술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구글의 AI 엔진인 제미나이 (Gemini) 기술은 2023년 3월 21일에 바드(Bard) 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얼마 전 10월 9일에는 이미젠 3(Imagen 3)을 발표했는데 이로써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 주는 모델 중에서는 오픈 AI 의 달리 3(DALL-E 3)을 따라잡은 것 같다. 2024년 5월부터는 구글 검색 결과에서 AI 오버뷰(AI Overview)를 가장 상단에서 먼저 보여주고 있다. 가장 상단은 광고 단가가 가장 높은 공간인데, 이를 AI에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구글의 AI에게 검색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절실한 시도이며, 또한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매우 큰 베팅을 했다는 뜻이다.

2024년 5월부터는 구글 검색을 할 때 AI 로 생성된 결과가 최상단에 뜬다.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대답이 들어 있어 유용함을 많이 느낀다.

내가 보기에 창업자 중 최정상에 있는 사람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잘 하고 있는 사람은) 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이다. 시가 총액이 20조원이 넘는다고 알려진 이 회사에서 그가 가진 지분율은 무려 100%이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 정리한 적이 있는데, 그가 How I Built This 팟캐스트에서 했던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있다.

Guy: 당신이 어떻게 사업을 운영하는지 궁금하네요. 당신은 발명가이고 디자이너이고, 회사 장부를 살펴보고 수많은 미팅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것을 어떻게 처리하나요?

Dyson: 처음엔 그런 것을 해야 했었죠. 하지만 회사가 성장할수록 엔지니어링에 시간을 더 많이 썼어요. 지금은 제 시간의 95%를 그런 일에 씁니다. 다른 일을 하면 그렇게 행복하지가 않아요. 엔지니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즐거워요.. 그리고 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회사를 100%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제 삶은 아주 심플하죠.

최근 그의 자서전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과 회사의 첫 시작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하지만, 첫 모델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청소기를 개선하면서 어떤 챌린지가 있었는지, 이를 위해 어떤 혁신을 만들어내야 했는지에 대해 그 기술 하나 하나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청소기를 만들다가 헤어 드라이어 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이유도 이야기하는데 정말 흥미롭다. 특히 인상깊었던 내용은, 2006년에 첫 번째 핸드헬드(한 손으로 잡고 움직일 수 있는) 무선 청소기인 ‘DC 16‘을 만들어낸 과정이었다. 요즘엔 이렇게 한 손으로 잡고 움직일 수 있는 무선 청소기 모양이 대세이지만, 옛날에는 청소기들이 다들 유선이었고, 무겁고, 컸다. 강력한 파워를 가지면서도 손으로 잡고 움직이기에 너무 무겁지 않은 청소기는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무선 청소기가 오래 작동하려면 그만큼 배터리가 커야 하고, 배터리가 커지만 그만큼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터와 배터리는 당연히 함께, 그리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디자인하면 무게 중심이 아래쪽으로 가서 한 손으로 잡고 움직일 때 더 무겁게 느껴지니까, 어떻게 하면 무게 중심을 위로 올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한 디자이너/엔지니어가 가져 온 아이디어가, 무거운 모터를 핸들 위로 올리고, 배터리를 핸들 아래에 배치하는, 당시로서는 다소 희안한 디자인이었다. 다이슨은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고, 그 이후로 이 디자인은 ‘무선 청소기’를 재정의한,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며 수많은 복제품을 만들어낸 다이슨 청소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다이슨의 첫 번째 핸드헬드 무선 청소기, DC 16

나 역시 회사를 그렇게 운영하려고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회의는, 구성원들이 오직 나만을 위해 모인 회의이다. 예를 들어, 자신들끼리는 이미 모든 정보를 공유했는데, 나한테 그냥 보고하기 위해 잡은 회의가 그렇다. 이런 자리에 열 명이 모여 앉아 있으면 나는 너무나 불편하다. 그게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얼마나 큰 시간낭비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매니저들이 애초에 그런 회의를 계획하지도 않지만, 만약 실수로 그런 회의가 잡혀서, 내가 그런 분위기를 읽게 되면 회의를 중단하고 물어본다. “Are you guys in here just report to me, or are you also getting new information and getting benefits from this?” 만약 그게 나만을 위한 회의 자리라고 하면, 극단적인 경우엔 그 회의를 중단시키고, 나중에 담당자와 따로 미팅을 잡자고 한다.

상사만을 위해 만들어진 회의 – 오라클에 다닐 때 그런 회의가 많았더란다. 나는 수많은 많은 PM 중의 한 명이었고, 아주 가끔 내가 관여하거나 발표할 일이 있었지만, 주로는 그 위의 VP에게 내 상사가 보고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아니면 내 동료들이 내 상사 한 명에게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것을 보는 시간이었다. 나의 업무와도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기에 그것을 ‘정보 공유의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게 극도로 비효율적인 정보 공유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정보는 그냥 다른 방식으로도 쉽게 얻을 수 있고, 굳이 30분을 멍하니 앉아서 불필요하게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에는 이렇게 ‘전체 공유’하는 회의가 한 달에 딱 한 번 있다. 그것을 ‘All Hands (올핸즈)’라고 부르는데, 각 부서별로 한 달동안 있었던 성과를 약 10분씩 ‘서로에게’ 자랑하고 발표하는 자리이다. 이 회의를 통해 내가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하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고, 또 매니저가 설명한 이후에 내가 추가로 그 프로젝트가 가지는 장기적인 임팩트, 의미에 대해 설명하니까 회사 구성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물론, 이 회의에서 매달 회사의 현재 매출과 고객 수를 공유하고, 1년에 한 번은 우리가 돈을 얼마나 어디에 썼는지를 공유하기도 한다.

차트메트릭 전체 미팅 중에

얼마전, 중간 관리자로 잘 성장하고 있는 한 직원이, “당신은 어떻게 어떤 일을 위임하고, 어떤 일을 위임하지 않을지 결정합니까?”라고 묻길래, “내가 재미있는 건 남기고, 재미없는 건 전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려고 한다” 고 대답했더니 깔깔 웃었다. 나에게 재미없는 일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없는 건 아니다. 한때는 나에게도 재미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나, 해야 할 일이지만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이 아니거나, 아니면 원래 재미있었는데 여러번 반복하다보니 이제 재미가 없어진 일들. 이런 일들을 위임한다. 이렇게 항상 노력한 덕분에,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다. 디자이너, 엔지니어들과 고객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고, 앞으로 한 걸음 더 앞서 나가는 것이 재미있다. 창업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