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take it from here (여기서부터는 제가 할게요)

2009년, MBA를 마치고 오라클에 정식 입사해서 제품 관리자(Product Manager)로 일하게 되면서 미국에서의 첫 보스를 만났다. 이름은 플로리안(Florian). 프랑스 출신인 그는 밝은 성격과 푸근한 인상을 가졌고, 어떤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유머를 찾았다. 미국에서 인턴십 경험이 전부였던 나에게, 그리고 회사에서 해고되기라도 하면 미국을 떠나야 하는 불안정한 ‘외국인 노동자 (H-1B 비자)’ 신분이었던 나에게, 어쩌면 딱 맞는 보스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자주 썼던 말이 있다.

I will take it from here (여기서부터는 제가 할게요).

무슨 말이냐 하면, 나에게 뭔가 일을 시키고 난 후, 내가 며칠간 고심해서 일을 해서 갖다 주면, 그는 살펴보고 나서 “I will take it from here” 라는 말을 자주 썼다. 물론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차이가 크거나, 그 다음 단계에 더 해야할 일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 지시를 내리기도 했지만,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왔다 싶으면 거기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크게 안도하고 마음을 깨끗이 비운 후 그 다음 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들을 모두 자신의 일로 포장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가 시간을 내어 내가 만든 문서를 일일이 수정해서 보고한 후, 그 모든 걸 내가 다 했다는 듯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처음에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서, 진짜 이래도 되나, 내가 보기에도 부족한 걸 자꾸 갖다 주면 어느 날 짜증내는 것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곤 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이는 그 사람의 일하는 태도였다. 1년여쯤 지나서, 그는 나를 승진시키고 싶다며 내 승진 케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웃으며 내가 편안히 일할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나는 내가 더 잘하는 일, 분석과 기술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당시엔 챗GPT가 없었기에 서투른 영어 표현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누군가가 그걸 보고 오해하거나 비웃을까 걱정이 많았고, 그것에 낭비하는 에너지가 무척 컸기에, 영어 문법에 신경을 덜 쓰고 내용의 핵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모든 상사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상사는 일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그는 주로 피드백 주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일을 해서 가져가면, 주로 지적을 했다. 이걸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 저렇게 고치면 좋겠다 등. 문제는 그 표현이 좀 애매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노트에 적고 단어 한 마디라도 놓칠까 하여 생겨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들을 때는 다 이해가 되는 것 같았고 방향이 보였는데,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수정하려고 하면 그 개념이 한없이 두루뭉실해지고 갈피를 못 잡겠는거다. 이건 분명 내 실력이 부족해서, 특히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일 것 라고 생각해며 들었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고, 내가 필기했던 것을 한참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명확하게 개념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머리를 끙끙 싸매고 작업을 해서 다음날, 또는 그 다음날 가져가면 수고했다면서 또 피드백을 왕창 주었다. 그 두 번째 피드백을 받으며 내가 한 생각은 두 가지.

  1. 나는 바보다. 분명 첫 번째 피드백에 이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내가 놓쳤었구나. 귀한 상사의 시간을 빼앗았으니 나는 분명 안좋은 평가를 받게 되거나, 이것이 반복되면 해고될지도 모른다.
  2. 방향이 바뀌었다. 지난번에는 언급한 적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추가됐다. 또 재작업이구나. 재작업해서 가져가면 또 새로운 피드백을 주겠지. 대체 이 프로젝트는 언제 끝이 날까.

그 사람은 분명 똑똑한 사람이었고, 말도 잘했고 아이디어도 많았고 회사에서 지위도 높았기에, 나는 그 사람의 방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든 그의 맘에 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자꾸 좌절감이 들 때가 많았고, 내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러던 와중, 제대로 좌절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나에게 어떤 주제에 대해 슬라이드 덱을 만들라고 시켜서(알고 보니 내 상사의 상사에게 발표하는 내용이었다), 그 주제에 대해 열심히 조사해서 만들었는데, 회의 시간에 그 슬라이드를 화면에 공유하라고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슬라이드를 한 장 한 장 넘기자 매 페이지마다 일일이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글자 크기를 줄여라, 여기 표현이 좀 이상하니 다시 써봐라, 여기 이 슬라이드를 추가하면 어떠냐 등등등.. 높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 전에 팀 모두가 힘을 합쳐 완성도를 높이자는 취지였지만, 그 슬라이드의 글자 크기, 디자인 등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는 내용들을 사람들 앞에서 고치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어질어질한 상태로 돌아와 회의 시간에 들었던 피드백을 하나씩 반영했는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먹이 사슬의 하위로 들어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나 싶어서 정말 좌절했다.

2015년, 내 회사를 창업했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의례 그래야 하지만, 그래도 내가 더 애써서 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마무리를 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뽑은 첫 엔지니어가 ‘워렌 Warren’이었는데, 그 옆에 앉아 내가 주로 했던 일은 그가 일을 80%까지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귀한 엔지니어였기에 그가 일하다가 내가 예전에 느꼈던 그 좌절감을 느끼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주 썼던 말은 “I’ll take it from here (여기부턴 내가 책임질게).” 였다. 워렌은 신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가져왔고, 이를 제품에 적용했다. 고객들에게 바로 전달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라면 최대한 내가 커버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그는 엔지니어로서 더 재미있는, 그리고 더 도전적인 일들을 맡을 수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최대한 뒤치닥거리를 하며, 그리고 제품의 마감질을 담당하며 창업자로서 굉장한 보람을 느꼈다. 일도 재미있었고 진행도 빨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창업 초기에 어떻게 돈을 많이 안쓰고도 제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느냐 묻는데, 나는 그것이 비결이었다고 생각한다. 워렌은 공동창업자가 아니었기에, 하는 일이 재미 없으면 언제든 다른 회사로 이직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내가 그를 붙잡아두고 함께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수년이 지나 이제 차트메트릭은 50여명이 함께 일하는 회사가 되었고, 워렌은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투자를 받은 자신만의 회사를 창업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원칙은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즉, 차트메트릭의 중간관리자들은 아래 사람들에게 끝없이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코드 리뷰(code review)도 하고, 일을 맡긴 후에 몇 가지 피드백을 주어서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들은 물론 있지만, 피드백이 너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거나, 피드백 주고 받고 할 시간에 이미 일이 끝났겠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그 관리자에게 한 마디를 던지곤 한다. “How about you take it over and fix it yourself? (그냥 일을 넘겨 받아서 직접 고치면 어때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잘 주고, 개개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리더십도 물론 필요하지만, 피드백 루프가 길어진다 싶고 그 과정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일을 가져와서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리더를 나는 더 훌륭히 평가한다. 그런 리더들이 많은 회사의 장점은,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나도 CEO로서 한없이 일을 가져와서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 이런 일까지 대표가 처리하나 싶은 일도 직접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다 보니 내 일정이 너무 가득 차서, 그리고 위임을 잘 해야 앞으로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위임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지양하는 것은 너무 디테일한 피드백이다. 나도 어떨 때는 내 생각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마법처럼 내 머리 속에 들어와 내 의향을 모두 파악해서 실행하길 기대하겠는가. 그런 피드백을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 “여기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예전에 블로그에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 하나를 정리해서 큰 공감을 얻었던 적이 있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스스로를 관리합니다“라는 제목이었는데, 그가 인터뷰에서 했던 마지막 말을 다시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They knew how to manage, but they didn’t know how to do anything! And so, if you are a great person, why do you wanna work for someone who can’t learn from it? You know who the best managers are? They are the great individual contributors who never ever want to be a manager. But decided they have to be a manager, because no one else is gonna be able to do as good a job as them.

그들은 사람들을 관리할 줄만 알았지,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면, 배울 게 없는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겠습니까? (깨달았다는 듯이) 누가 가장 뛰어난 매니저인 줄 알아요? 절대 매니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전문가입니다. 본인이 가장 일을 잘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만큼 일을 잘해낼 수 없기 때문에 관리자가 됩니다.

위 표현은 좀 극단적이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가 왜 이렇게 극단적인 입장까지 취하면서 열변을 토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고, 그들이 가장 빛이 날 수 있는 일을 주고, 그들이 일을 통해 가장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일의 결과가 자신의 맘에 쏙 들 때까지 끝없이 피드백을 주며 다시 해오라고 시키는 리더는 그 아래 사람들을 ChatGPT 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리더십. “이게 최선입니까?” (물론 현빈은 좋아합니다)

자, 오늘부터 시도해 보자. “I will take it from here.”

경쟁의 의미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꽤 인기 있는 말이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블루 오션을 찾고 싶어한다. 물론, 이 전략은 의미가 있다. 남들이 다 경쟁하고 있는 레드 오션 Red Ocean으로 들어가 죽어버리지 말고 자신만의 블루 오션을 찾아서 거기서 승리하라는 것이다. 블루 오션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카페를 창업하려고 하는데 특정 상권에 북카페가 없다면? 블루 오션. 만약 북카페가 있다 해도, 모두 옛날 만화방 스타일이고 간식도 없고 넷플릭스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도 블루 오션.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떤 상권에 북카페가 없는 이유가 누구도 이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혹시, 누군가가 창업했다가 보기 좋게 망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그 누가 분석해도 그 상권은 수요가 충분하지 못해 하나의 사업을 받침해줄만한 매출을 낼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업을 시작할 때, 레드 오션에 진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시장에는 수요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있기 때문. 또 한가지 장점은, 고객을 가르치는데 비용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고객들이 ‘북카페’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시간당 이용료가 얼마인지, 사용하기 위해 어떤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사업하는 입장에서 훨씬 수월할 것이고, 비용을 절감하고 매출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겨울, 처음 차트메트릭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건 이 분야에 이미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Music data analytics (음악 데이터 분석)’ 같은 키워드로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먼저 뜨는 회사들을 살펴보고, 그 회사들이 언제 시작했는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제품이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또 하나 알아보면 좋을 것이, 그 분야에 과거에 도전했던 회사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회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이다. ‘죽은 자들의 무덤‘은 다소 우울한 용어이지만, 그 죽은 자들(dead bodies)이 얼마나 되는지, 왜 죽었는지를 알면 적어도 내가 그 길은 피할 수 있거나, 아니면 애초에 도전을 안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성공적으로(?) 상장하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엑싯(exit)을 한 회사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분야에서 회사를 만들었을 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는지, 잘 됐을 때 나와 투자자들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을 지 알고 시작하면 좋기 때문이다.

그 때 눈에 띄었던 회사들이 몇 있다. 하나는 뮤직메트릭 MusicMetric 이었고, 또 하나는 빅샴페인 BigChampagne,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가 넥스트빅사운드 NextBigSound 였다. 뮤직메트릭은 가디언지 기사에 따르면 2008년에 시작했고 2013년에 40억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애플에 인수되었다. 약 $50M, 즉 650억원 정도의 금액으로. 그러니까 창업부터 엑싯까지 8년이 걸린 셈이다.

또 하나의 회사는 넥스트 빅 사운드 NextBigSound였다. 이 회사는 2009년에 시작했고 판도라 라디오에 2015년에 인수되었는데,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40M~$50M 정도의 금액이 아니었을까 추산된다. 빌보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인수 전까지 약 $8M(약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com) 제품 화면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이름은 사운드차트(Soundcharts.com). 유니버설 뮤직 그룹에서 인턴을 했던 데이빗 와이즈펠드(David Weiszfeld)라는 사람이 창업했다고 했다. 2015년에 제품을 세상에 알렸는데, 이미 음악 업계에서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며 유명세를 알려나가고 있었다.

사운드차트 (Soundcharts.com) 제품 화면

이 제품들을 당시에 살펴봤고, 각자 어떤 면에서 장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나서 차트메트릭을 만들기 시작했다. 넥스트빅사운드는 이미 6년을 운영해왔기에 꽤 인지도가 있고 발전해 있었고, 사운드차트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품의 완성도가 높았다.

솔직히 좀 두려웠다. 이미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해서 발전해 있는 제품들이 있는데,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까? 과연 우리가 ‘비교적 경쟁 우위 Competitive Advantage’를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이 안 가진 것, 그들이 못 하는 것을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늦게야 시장에 진입한 회사에 다른 제품의 고객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까?

그 때 내가 생각한 건 한 가지였다. 경쟁자보다 조금 더 싸게, 조금 더 좋게 만들자. 투자자들을 만날 때 흔히 질문하는, ‘당신 제품의 차별점이 무엇인가요?’ 에 대해서는 나중에 걱정하자. 지금은 차별화에 집중할 필요 없다. 일단 작동하는 제품을 만들고, 경쟁자들에게 크게 뒤지지는 않는 제품을 만들고, 거기에 아주 작은 차이를 불어넣자.

그렇게 해서, 소박한 시제품과 함께 시작했다. “차별점이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나는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차별화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기능부터 시작했다. 디자이너도 없었기에 모든 디자인 결정은 내가 했고, 버튼의 모양과 색깔도 내가 골랐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제품 개발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내 월급은 첫 1년은 $0이었고, 투자를 받은 후부터는 $3,000으로 정했다. 내 인건비가 낮아지면 회사의 비용 또한 낮아질 수 있기 때문. 그러니까, 내 전략은 ‘그 어떤 경쟁자보다도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기’였다. 다른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다면 적어도 가격 하나만은 낮게 책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자체만으로 경쟁 우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차트메트릭 초기 버전 (2017년)
차트메트릭 현재 버전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느리지만 지속적이면 경기에서 우승한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다. 거북이가 달리기에서 토끼를 이겼듯, 느리더라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 토끼를 이기고 다른 동물들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 전략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살아남았고, 다른 경쟁자들보다 저렴한 비용 구조로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객들의 도움으로 더 뛰어난 직원들을 채용했고, 경쟁자보다 더 높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품을 더 고도화시키고 있다.

2015년에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를 이야기했다. 심지어 큰 레이블에서 높은 위치에 있었던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넥스트빅사운드가 있는데 너희 회사에 기회가 돌아가겠느냐?” 라고 하기도 했다.

시간이 8년 지나, 이제 우리는 4000개 이상의 회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고, 연 반복 매출은 $8.4M, 즉 110억원에 달한다. 25명의 풀타임 직원들을 포함한 35명의 사람들이 매일, 제품을 개선하고 브랜드를 더 널리 알리고 있다. ‘차트메트릭 블로그’로 시작했던 웹사이트는 이제 ‘How Music Charts‘라는 이름으로, 흡사 빌보드를 연상시키는 매거진 사이트로 성장했다.

차트메트릭 월 반복 매출(MRR) 증가 추이.
‘How Music Charts’, 차트메트릭의 퍼블리케이션

한편, 당시에 사람들이 언급했던 넥스트빅사운드는, 2022년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리고, 그 웹사이트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써 있다.

If you loved using Next Big Sound for social media data, we recommend Chartmetric
넥스트빅사운드의 소셜 미디어 데이터 분석 기능을 좋아했다면, 차트메트릭을 추천합니다.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 홈페이지에 차트메트릭을 언급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올해와 내년에 나를 흥분시키는 아주 멋진 프로젝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음에 감사하고 기쁘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아버지 리더십 Fatherhood Leadership

얼마전에 비행기에서 영화 ‘아바타 2’를 다시 봤다. 그리고 아래 대사에서 눈이 멈췄다.

Jake Sully from Avatar 2

A father protects. It’s what gives him meaning.

아버지는 보호한다. 그것이 아버지 존재의 의미다.

Jake Sully from “Avatar 2”

갑자기 웬 가부장적 발언?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 것이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더 확장된 의미의 ‘부족’을 하늘 사람들(Sky people)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어떤 큰 희생을 치르게 되었는지. 그 내용을 알기에 두 번째 영화를 보며 이 대사가 나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대사를 외우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한 직원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일하면서 나가게 되는 경비 중 하나를 앞으로는 법인 카드로 처리해도 좋다고 말한 직후이다):

Wow wonderful!! Thanks for offering it. Always loved the benefits at Chartmetric. Can’t imagine working anywhere else honestly. 🙂

우와 끝내주네요! 고마워요. 언제나 차트메트릭에서 제공하는 복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다른 어떤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어요. 🙂

한 시니어 직원

이 직원이 차트메트릭 아니면 갈 곳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아니 사실 정 반대다. 차트메트릭의 시니어 직원이고, 높은 학력에 더해 실리콘밸리 유수의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할 다른 회사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직원이 이렇게 말을 했기에 나에게 더 뜻깊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마법같은 일이 있었기에 이 사람이 어쩌면 나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 리더십 (Fatherhood Leadership)

어쩌면 그것이 아니었을까? 안전과 활동 공간, 그리고 자원이 보장된 환경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것은 뭘까?

남녀 역할 성차별을 하거나, 어머니 리더십은 회사에서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여성 리더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가 ‘아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회사의 CEO 또는 리더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것과 꽤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1. 폭력과 위험이 있을 지 모르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는 공간 제공 (집이든, 또 다른 어떤 것이든)
  2. 언젠가 내가 원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적 지원
  3.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나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 엄격함
  4.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의 바탕이 되는 사랑

위와 같은 환경이 갖춰지만, 적어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본 터전은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반대의 상황은 아래와 같고, 이런 환경에서 창의력과 실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아이가 자라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 오늘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지만.

  1. 항상 신변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환경
  2. 생존을 염려할 정도로 부족한 경제적 자원
  3. 엉뚱한 방향으로 가도 결코 받지 못하는 피드백
  4. 엄격함, 충격, 폭행만이 룰이 되는 공간

강연을 하거나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리더십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럴 때 진부하게 “리더십이란 비전을 가지고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능력이다”, “리더십이란 종이 되어 봉사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기 싫어 내가 직접 경험한 나만의 정의가 무엇일까 고민하고는 한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리더십이란, 그 리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면서 동시에 회사의 공동 목표에도 기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아래 간단한 도표를 보자.

왼쪽은 사실 꿈같은 상황이다. 창업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개인의 목표와 회사의 목표가 일치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지만, 위 두 서클이 되도록 가까우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면 일하는 시간이 돈을 위해 자신을 내다 파는 시간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곳에 더 가까워지도록 돕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결국 자신의 원하는 곳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면접을 볼 때, 그리고 이미 채용을 결정한 이후라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항상 관찰하고 질문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목표와 꿈이, 지금 하는 일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지금의 일을 통해 자신의 꿈에 더 가까이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일치하면 동기부여는 자연스럽게 되지만, 이게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리 보상을 높여도, 아무리 좋은 일을 맡겨도, 일시적 동기부여는 되지만 장기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느낌‘은 가지게 되기 어렵다.

정확히 내가 경험한 것이다. 예전에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동안 정말 즐거웠고 많은 것을 배웠지만, 결국 내 꿈은 미국에서 유학한 후 정착하고 사업하는 것이라서, 아무리 내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려고 해도, 아무리 상사가 그것을 도와주려고 해도 두 목적을 일치시키기가 힘들었다. 한때는 스스로 합리화하여 머무르기로 하고 일시적으로 두 가지 목표를 일치시키기도 했지만, 외부 자극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또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의 어린 시절의 꿈과 목표가 가슴 속에서 살아나 나를 괴롭히고는 했다.

오라클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할 때도, 첫 1년은 정말 동기부여가 잘 되었고 일치가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걸 잃고 방황했다. 회사에서 적지 않은 급여가 꼬박 꼬박 나오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았다. 주식 보상과 보너스 등으로 보수가 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고민이 해결된 건, 사업을 시작한 후부터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조금씩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며, 나는 진정으로 나의 관심과 회사의 관심이 일치하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괴로워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만든 이 회사가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결국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터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정말 이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뽑았다. 처음 인터뷰 때 생각했던 것과 실제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서 이게 맞지 않는다 생각되면 서로 잘 이야기해서 일치시킬 방향을 찾거나, 그마저도 어려우면 다른 길을 찾아 떠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다른 옵션도 있지만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위주가 되었다.

우리 회사에서 ‘무제한 휴가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연차를 계산하지 않고, 휴가 제한을 걸지도 않는다. 매니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풀타임 직원 전체에게 적용된다. 사용하는 절차도 간단하다. 불과 일주일 전이라도 자신의 매니저에게 이메일을 보내 승인을 받기만 하면 된다. 그 유명한 ‘넷플릭스의 문화’에서 따온 것인데, 이 무제한 휴가제도는 ‘개인의 목표와 회사의 목표가 일치하도록’ 돕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라는 것이 기본 취지이지만, 더 나아가 ‘내가 언제 쉴 지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자유가, 내가 사업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복지 중의 하나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복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시간대에서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최근 한 엔지니어는 아이슬란드에서 2주간 여행하며 하루 4시간씩 일을 했다. 또 다른 직원은 뉴욕에서 채용했지만 가족이 있는 네덜란드로 이사하고 싶어해서 네덜란드로 이사한 후 거기에서 이어서 일하고 있다.

얼마전, 한국 회사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친구와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야기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가 유연하지 못하고 해고가 어려워서 이 둘을 일치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양쪽 모두 박탈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채용한 사람이, 회사의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도 쉽게 해고할 수 없고 (잘 알듯이 5인 이상 조직에서는 해고가 아예 불법이다 – 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나는 반대다), 해고 당한 입장에서도, 쉽게 다른 회사를 찾을 수 없어 해고를 무척 두려워한다. 특히 가장 보상과 복지가 좋은 대기업들이 ‘공채’ 위주로 사람들을 채용하기에, 경력직으로 경쟁사 또는 다른 분야의 다른 회사에서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결과는? ‘일은 일이고 개인은 개인이다’ 라는 철학이 중요해진다. 회사가 아무리 거지 같아도, 일하는 환경이나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월급 통장에 꼬박 꼬박 돈만 들어오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워라벨(work life balance)‘ 주의가 생겨난다. 어떻게든 ‘워크(work)는 줄이고 라이프(life)는 늘리자‘라는 생각. 일은 일일 뿐이라며 일을 통해 버는 돈을 취미 활동에 올인하는 사람도 있다.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 활동이 안좋다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한때는 돈을 위해 일했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이 내 꿈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또한, 일과 놀이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삶도 중요하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한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의 꿈을 이루는 날이 자꾸 미뤄지고, 어떤 불행한 경우엔 너무 늦을 때까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전에도 언급했지만, 유재석 또는 신동엽 같은 방송인을 보다보면, 그들은 적어도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이들도 행복하게 하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들도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방송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들의 제약도 많아서 일상 생활에 불편함도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무고로 상처를 입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은, 눈을 감는 순간 ‘다른 인생을 살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하지 않을까?

10년의 시간

어제, 하이데어(hithere.co) 플랫폼을 통해 중, 고등학교 학생들 몇 명과 온라인으로 멘토링 세션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정말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그 중 한 질문이 “어떻게 창업 아이템을 선정하시게 되었나요?” 였다.

사실 꽤 자주 받는 질문인데, 수많은 시간동안 고민했던 주제인 만큼 간단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한 가지 제일 중요했던 요소를 꼽자면, “내가 이 일을 10년 동안 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인가?” 였다. 이전에 EO 인터뷰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던 이야기이고, 지금도 자주 생각하는 주제인데, 이 세상에 한 가지 일을 10년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게다가 10년간 별로 소득이나 발전이 없어보이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누군가가 위대해지고, 유명해지고, 뛰어난 실력을 가질 때가 되어서야 그 사람들을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그 사람들은 원래 재능이 뛰어나서 그렇게 유명해졌거나,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어제는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뉴진스의 예를 들었는데, 이제 겨우 15세에서 19세의 나이로 구성된 밴드가 데뷔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한국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 그리고 이제 세계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하는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는 사실만을 들으면, 마치 1~2년만에 그 정도의 재능이 만들어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기 쉽다. 하지만 방시혁, 소성진, 민희진 대표가 이런 걸 그룹을 구상하며 ‘플러스 글로벌 오디션’을 2019년 말에 16개 도시에서 개최하며 재능 있는 탤런트들을 발굴한 것이 2019년 말의 일임을 생각하면, 데뷔 전 준비에만 3년이 걸렸다는 뜻이고, 다섯 명의 멤버들은 그 오디션에서 합격하기 전에 이미 최소한 7년은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니엘은 7살 때부터 이미 레인보우 유치원에 출연했고, 가장 막내인 혜인도 2017년에 이미 키즈플래닛 등에 출연하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회사나 브랜드들 – 쿠팡(2010년 설립), 배민(2010년 설립), 야놀자(2007년 설립) – 등도 10년이 훌쩍 넘은 회사들이고, 내가 몸담았던 게임빌 (컴투스)는 이제 설립된 지 만 22년이 넘었다. 그 모든 회사들의 첫 10년은 다소 지루한 듯한 시기였고, 아마도 설립하고 10년이 지나서야 ‘국민 브랜드’ 자리잡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가 초기 투자자로서 너무 잘 알고 있는 회사 눔(Noom)도, 지금은 직원들이 3000명이 넘는 회사가 되었지만, 첫 7년간 매출이 0이었고, 만 10년 정도가 되어서야 눈부신 곡선을 그리며 성장했다.

그래서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 ’10년의 시간’을 염두에 두었다. ‘음악 인더스트리’와 ‘데이터 분석’이라는 두 가지 주제, 이 두 주제만 놓고 10년동안 집중해도 여전히 그 일이 재미있고, 도전이 되고, 흥미로울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고, 그 대답은 예스(Yes)였다. 그랬기에 옆을 돌아보지 않고 지난 7년 반을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차트메트릭은 이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직원 35명이 연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내는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아직 ’10년’의 타이머가 돌아가고 있다. 아직 2년 반이 남았고, 그 시간이 지나야 나는 회사가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이제야 세상에 작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어떤 병이 발전하는 데에도 10년의 시간이 걸리지 않나 싶다. 내과전문의 닥터 케이라는 유투브 채널을 알게 되어 몇 가지 비디오를 봤는데, 당뇨 또는 당뇨 전 단계로 진행해서 치료를 시작한 사람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6개월에서 1년 꾸준히 식단을 바꾸고 운동을 했는데도 혈당이 떨어지지 않아 고민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의사의 대답은 이렇다, “당뇨 또는 고지혈증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게 아닙니다. 현재 혈당 수치가 높다는 것은 이미 그 전에 10년간 안좋은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 쌓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패턴을 바꾸고 나서 5년은 기다려야 의미 있는 변화를 볼 수 있겠죠?

아래는 행사가 끝나고 나서 하이데어(hithere.co)에 한 학생이 올린 후기:

11학년 학생입니다. 오늘 멘토님과 대화하면서 많은 걸 얻어가는것 같은데 그중 가장 와닿았던건 창업 혹은 직업을 고를때 내가 이일을 10년이상 흥미롭게 할수 있을까? 라는 질문 덕분에 앞으로 직업을 고르거나 창업을 준비할때 정말 유용할것같습니다! 오늘 대화에서 얻어가는게 너무 많았고 조성문 멘토님 정말 최고입니다!!!

북극점 True North

영어에 True North 라는 표현이 있다. 고등학교 지구 과학 시간에 ‘진북’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했던 것 같은데, 자석 콤파스가 가리키는 북쪽 방향이 아닌, 지구 자전축을 기준으로 정 가운데에서 북쪽으로 이었을 때 닿는 곳을 말한다. 또한 이곳에 있는 별을 ‘북극성’이라고 한다.

요즘 ‘True North’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고 있다. 사업이 승승장구 잘 나가기만 할 것 같았는데, 지난주 월요일에 중대한 위기 상황이 있었다. 하늘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매출이 반쪽이 되며 고객들이 환불을 요구하는 것을 상상했다.

팀원들과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대안을 검토하고 나니, 생각보다 큰 일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객들에게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고, 불편을 겪는 고객들에게는 전액 또는 일부 환불해줬다. 그들은 우리의 대처 방법을 좋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직 세 명만이 떨어져 나갔다.

아직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퍼즐을 풀어나가듯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또한 재미있는 도전임을 알게 되었다.

오늘, 내가 아는 한 사업가에게 이런 메시지가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Business goes up and down, and we always wonder if we are doing it right or wrong. However, as long as there’s true north, we don’t have to worry. Hurricanes and storms come our way, but as long as we are heading to true north, we will somehow figure things out. Though we would never actually ‘arrive’ at the true north during our short life span.
We are heading toward the true north as long as we are ethical, treat people fairly, and have two ears open for criticism as well as compliments.

사업에는 부침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우리가 맞는 의사 결정을 하는지 잘못된 결정을 하는지 의심하곤 한다. 하지만, ‘진북’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허리케인과 폭품이 오겠지만, 우리가 진북을 향해 가는 한, 뭔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짧은 생애에서 실제로 그 북극점에 도달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가 도덕적인 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한, 그리고 칭찬 뿐 아니라 비판에 대해서도 두 귀가 항상 열려있는 한, 우리는 북극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업을 하는 것의 장점 중 또 한가지는, ‘나만의 북극점’을 스스로 정하고, 신념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것이다. 큰 회사의 위에 있는 누군가가 정한 북극점에 나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향을 정하고 나를 믿고 가면 된다. 내가 정한 북극점이 과연 옳은가 의심이 될 때도 많지만, 도덕적(ethical)이고 정직하게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주변 사람들이 내가 옳은 길을 찾도록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 하루 하루, 한 걸음씩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