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돈 많고,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혁신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하고 투자받는 스타트업들을 보고 있다 보면, ‘젊고, 돈 많으면서,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최근 이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서비스들이다.

1. 구글 쇼핑 익스프레스 Google shopping express

내가 정말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서비스이고, 주변에 이거 안쓰는 사람이 없다 할 만큼 잘 되고 있다. 컨셉은 간단하다. 웹사이트에 가거나 모바일 앱을 이용해서 원하는 물건을 클릭한 후 결재하면 당일 또는 다음날 아침에 현관 앞에 물건이 배달된다. 신선 제품은 배달이 안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코스트코(Costco)와 타켓(Target)을 커버하고 있어서 많이 쓰게 된다. 특히 캘리포니아처럼 뭐 간단한 거 하나 사려 해도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 경우에 이 서비스를 쓰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생수병처럼 들고 이동하기 무거운 건 일부러 여기서 주문하기도 한다. 처음 가입하면 6개월간 배송이 무료이다. 이 곳의 인건비를 생각하면 생각하기 힘든 일인데, 구글의 지갑이 참 두둑하긴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보다 먼저 이베이(eBay)가 동일한 컨셉으로 이베이 나우(eBay Now)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가게 하나당 5달러의 배송비가 들어 이제는 이용자가 거의 없어진 듯하다.

구글 쇼핑 익스프레스
구글 쇼핑 익스프레스

2. 태스크 래빗 TaskRabbit

역시 내가 상당히 자주 이용하는 서비스. 2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집 청소, 가구 조립, 가구 이동, 간단한 사무 작업 등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싶을 때 이용한다. 일의 종류에 따라 인건비는 시간당 20~50달러 정도 하고, 이 중 20%를 태스크래빗이 수수료로 가져간다. 이 회사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비슷한 다른 시도가 많이 있었는데 대부분 실패했다. 낯선 사람에게 믿고 일을 맡기거나 집에 들어오게 한다는 게 간단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IBM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여성 창업자 리아 버스키(Leah Busque)는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한 비디오를 보면, 보스턴에서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개 먹이가 떨어졌는데, “누군가가 먹이를 좀 사다주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생각을 해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전에 그녀가 스탠포드에서 했던 강연을 들었는데, 시작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말을 참 설득력있고 공감 가게 잘하는데, 바로 그것이 이 어려운 사업 모델을 성공하게 만든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사업 초기에 ‘래빗(rabbit)’들의 이미지를 잘 심으려 노력을 많이 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주 친절해 보이는 여성들을 모델로 썼고, 태스크를 맡을 사람들의 범죄 기록등을 일일이 체크하고 인터뷰도 일일이 한다고 설명해서 신뢰를 살 수 있었다. 여기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태스크 래빗
태스크 래빗 이용 화면
태스크 래빗 웹사이트
태스크 래빗 웹사이트. 초기부터 항상 이렇게 친절해보이는 여성을 내세워 ‘신뢰’를 강조했다.

3. 인스타 카트 Instacart

구글 쇼핑 익스프레스의 편리함에 밀려 나는 쓰지 않는 서비스인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상당히 인기다. 구글 또는 여타 서비스와의 차이점은 신선 제품을 배달해준다는 것. 대신 직접 가서 사는 것보다 가격이 좀 비싸고 배달료가 추가된다. 사실 이런 신선 제품은 조금만 나가면 찾을 수 있는 것이라 과연 잘 될까 의구심도 들지만 사용자가 꽤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입에도 많이 오르내린다. 2012년에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안드리센 호로위츠, 코슬라 벤처스 등으로부터 54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인스타카트
인스타카트 (Instacart)

4. 유어 미케닉 Your Mechanic

1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없으면 못 사는 서비스가 되었다. 자동차 관련해서 문제가 있으면 난 일단 여기를 가본다.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하고 나서 시간을 예약하면 그 시간에 정비공이 집이나 회사로 와서 주차되어있는 차를 고쳐준다. 엔진 오일 교체도 가능하고, 브레이크 패드, 워터 펌프 등 웬만한 수리도 다 가능하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수리를 맡기기 전에 가격을 쉽게 뽑아볼 수 있다는 것 (아래 사진). 전에 백미러가 깨져서 딜러샵에 가서 물어봤더니 1200달러 수리비가 나왔는데, 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300달러에 막았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수리하는 사람들이 부품을 직접 구입하지 않고, 회사에서 부품을 구입해서 정비공에게 택배로 보내준다. 그래서 내 앞에서 택배로 온 상자를 개봉해서 수리하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질 좋은 부품을 구입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유명한 실리콘밸리 엑셀러레이터인 와이 컴비네이터 (Y Combinator) 출신의 회사이며 12억원의 초기 투자를 받았다.

유어 미케닉 Your Mechanic
유어 미케닉 Your Mechanic
브레이크 패드 네 개 가는 비용은 655달러. 이렇게 미리 가격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

5. 커브 사이드 Curbside

2013년 9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서비스. 얼마 전 8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테크크런치 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다. 웹사이트에 있는 비디오를 보면 바로 감이 온다. 모바일 앱으로 동네 샵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결재가 되고 주문이 모두 처리되었을 때 노티피케이션(Notification)이 온다. 퇴근하는 길에 지정된 장소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면, 직원이 나와서 자동차 트렁크에 물건을 넣어준다. 트렁크를 닫고 그대로 집으로 가면 끝이다. 이보다 더 쇼핑이 쉬울 수 있을까. 뭐 하나 사려면 운전해서 가는데 시간이 걸리고 주차가 불편한 샌프란시스코 산다면 당연히 이용할 것 같은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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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브사이드 Curbside

6. 써몬 Summon

우버(Uber) 또는 리프트(Lyft)와 비슷한 컨셉인데, 이번에 출퇴근자를 위해 써몬 어헤드(Summon Ahead)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놨다. 차가 필요한 시간과 장소를 미리 입력해두면 그 시간에 차가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다. 스케줄을 미리 해야 하는 대신 가격도 더 저렴해진다. 20분 거리에 12.5달러.

써몬 (Summon)
써몬 (Summon)

지금까지 언급한 서비스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했고, 주요 고객들도 이 지역에 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이런 서비스들이 살아남아 투자받고 성장할 수 있으려면 초기 고객들의 지원이 무척 중요한데, 이런 서비스에 기꺼이 돈을 내고자 하는 고객들이 이 곳에 많이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누구일까? 테크 회사에서 일하고, 젊고, 돈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적인 생산 활동과 무관한 일에 시간을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가끔 쇼핑도 하면서 머리 식히는 것도 필요할 법한데 왜일까? 구글과 페이스북같이 엔지니어들이 만든 회사들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엔지니어들은 특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싶어한다. 그 일만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뭘 먹을지, 뭘 입을지 고민하는 걸 싫어하고, 쇼핑하거나 이발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그래서 회사 캠퍼스를 가 보면 생산 활동 이외에 쓰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위에서 나열한 서비스들에 기꺼이 돈을 내고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것이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주는 편리함이 결재의 용이성 없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편리하게 만든다 해도, 결재할 때마다 비밀번호 입력해야 하고 공인인증서 꺼내고 보안 카드 꺼내야 한다면 과연 서비스가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위 모든 서비스들은 예외 없이 신용카드 정보를 서버에 저장해둘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쇼핑 카트에 물건을 담거나 서비스를 신청하고, 아래와 같이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면 바로 결재가 된다.

구글 쇼핑 익스프레스 주문 화면. 미리 입력해둔 신용카드 중 하나를 선택하고 ‘주문하기 (Submit Order)’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젊고, 돈 많고, 게으른(?)’ 사용자들을 위한 서비스는 앞으로도 더 많아질 전망이다. 이 곳에서 성공을 거두면 미국 각 도시로 퍼져나가고, 곧 캐나다와 영국, 그리고 호주로 건너간다. 다른 지역에서 이런 서비스들을 선점하기 힘든 이유는,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아이디어에 돈을 지불할 고객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 질 높은 고객의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