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2주동안 생활하며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오늘은 운전을 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은 지하철을 이용할 것인가” 이다. 때로는 차가 빠르고 때로는 전철이 빠르다. 가끔 차를 운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면 운전을 했다. 그리고 곧 후회한다. 정체가 너무 심해 시간 낭비가 심한 데다, 화가 난 듯 운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까지 성격이 안좋아질 정도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혹자는 “빨리빨리” 민족성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신사적으로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은 아무래도 더 여유가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번 국경을 넘어 맥시코로 나갔다가 미국으로 들어오는 길에 차가 심하게 막히니까 다들 짜증내고 절대 끼어들기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고, 역시 사람은 다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의 교통 체증 문제에는 해답이 없다. 혁신적인 것이 있었으면 벌써 뭔가 나왔을 거다. 지하철 노선 확충과 버스전용차로 등이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들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차가 막히는 것은 여전하다. 운전할 때 짜증나는 것도 여전하다. 이것의 문제는 사람들이 이미 익숙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high tolerance). 막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신호등과 도로가 이상하게 꼬인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파란불을 보고 교차로를 건넜는데 즉시 빨간 불에 막히는 경우) 서울시에서 개선 노력이 더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전에 서울에서 생활할 때 교통 체증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뭔가 해결책이 없을까 운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미국에서 2년 반동안 지내며 편하게 느낀 것들이 있어 예전에 “미국에서 운전하면 좋은 점 6가지“이라는 주제로 블로그를 쓴 적이 있다. 미국은 참 합리적으로 도로를 잘 설계해놓고 규율을 깔끔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서울에서 운전하면서 느낀 서울에서 도입할만한 몇 가지를 소개해 볼까 한다.
1) STOP Sign
Stop sign은, 미국에서 매우 흔히 사용되는 도로 표지판 중 하나인데, 교차로에서 “일단 정지 후 출발”을 하라는 sign이다. 먼저 교차로에 도달한 차가 우선권을 가진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서울에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골목마다 신호등을 설치해 놓는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는데 멍하니 신호등 보고 기다리게 되는 때가 많았다. 또 신호등이 없는 경우 속도를 내서 운전하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짜증내며 급정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곳에는 stop sign 하나 달아놓으면 훨씬 유용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 와서 처음에는 stop sign이 하도 많이 달려 있어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서울과 비교해보니 오히려 stop sign을 많이 이용하면 소통이 더 원활하고 도로도 더 안전할 것 같다.
2) 비보호 좌회전
서울에 비보호 좌회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익숙해지고 나면 그다지 위험하지도 많다. 물론 서울에서는 교통량이 더 많으니 비보호 좌회전으로 했다가는 좌회전을 원하는 차가 오랫 동안 좌회전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자세히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좌회전 신호가 사라지기 때문에 사거리에서 직진 신호가 더 자주 오고, 그래서 차량 소통이 원활해지고, 결국 좌회전할 틈이 더 많이 생긴다. 실제로 어디보다도 차가 많이 다는 San Francisco, New York 등에서도 거의 모든 교차로는 비보호 좌회전을 사용하고 있다. 좌회전이 정 힘들면 P턴 (세 번의 우회전으로 좌회전 효과를 가지는 것)을 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길이 바둑판으로 생겼을 때 얘기지만). 아주 붐비는 곳이나 차로가 넓은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어 서울에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는 힘들겠지만, 단계적으로 비보호 좌회전이 안전한 곳부터 차례대로 도입한다면 짜증나는 서울 교통 체증을 약간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 차량 감지식 신호등
이전 블로그에도 설명했는데, 차량 유무 및 교통량을 감지하여 작동하는 신호등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어디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운전할 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빨간 불 상태이다가도 내가 접근하면 3초 후에 파란 불로 바뀌는 경험을 많이 한다. 또 교차로에서 특정 방향으로 차가 긴 줄로 서 있으면 그 쪽 신호등은 다소 오래 켜지는 것 같기도 하다. 서초동에서 운전하다가 카메라를 이용해서 교차로 통행량에 따라 신호등을 조절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는 한데, 카메라보다는 미국에서처럼 교차로의 바닥에다 설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4) 고속도로 진입 신호등
차가 많은 출퇴근시에만 작동하는 고속도로 진입로의 신호등이다. 이 신호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고속도로로 유입되는 차의 frequency를 조절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정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진입로에서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차들이다. 이 차들 때문에 직진 차들의 속도가 갑자기 낮아지고, 그 때문에 그 뒤에 또 차들이 막히기 시작한다. 새로 진입한 차들에게도 별 이점은 없다. 전체적으로 흐름이 느려져 있기 때문이다. 진입되는 차들의 frequency를 줄이면 그만큼 진입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신 일단 진입하면 빠르게 갈 수 있으니 전체적으로는 이득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진입되는 차의 길이를 보고 고속도로를 탈 것인지 국도로 우회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므로 전체적으로 traffic 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이건 한국의 교통량에 따라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몇 군데서 시범 운행을 해 보고 도입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5) 갑자기 좌회전 차선으로 바뀌는 1차선 제거
좁은 도로를 감안한 어쩔 수 없는 설계라고는 보이지만, 이거 정말로 고쳐야 한다. 미국에서 운전할 때 1차선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게 좌회전 차선으로 바뀌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사실 처음에는 크게 못 느꼈다. 1차선이니까 계속 운전할 수 있겠지 싶었다. 서울에 있을 때도 이게 그렇게 불편하다고는 생각 안했고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운전해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1차선으로 가다가 갑자기 막혀 버려서 우회해야 하는 것도 소통량에 영향을 주지만, 그보다 더 큰 피해는 옆 차선에 있다. 1차선의 차가 갑자기 2차선으로 옮기면 2차선에서 정상 속도로 가던 차가 속도를 줄여야만 한다. 이것이 민감한 문제인 이유는, 이런 일이 주로 교차로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나게 1차선으로 가다가 파란불을 보고 속도를 내려 하는데 앞 차가 갑자기 좌회전 신호를 켜고 깜빡깜빡 거려서 갑자기 정지해야 하거나 아슬아슬하게 2차선으로 옮겨야 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6) 색깔로 구별되는 주차 허용 여부 표시
이건 정말 절실하게 느낀 거다. 서울에서 불법 주차한 차들 때문에 짜증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물론 그 차들이 갈 곳이 없어서(또는 유료주차 요금을 내기 싫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차를 좀 안쪽으로 치울 수 있는데도 단속을 안 하니까 버젓이 도로 가에 차를 세워 다른 차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쓰는 방법은 각 도로가마다 색을 칠해놓는 것인데, 예를 들어 빨간 색을 칠한 곳에서는 잠시라도 정차를 하면 안된다. 걸리면 대부분의 경우 10만원이 넘는 벌금을 낸다 (장애인 주차 구역 위반은 25만원 이상). 색으로 확연히 구별이 되니까 애매한 점이 없어 더 잘 지키게 되는 것 같다. 빨간색 보도블럭 옆에 차를 세워 두면 다른 사람들도 지나가며 다 보게 되니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까… 미국에서는 차가 우회전하는 코너마다 빨간색으로 칠해 두어 코너에 차가 서 있어서 흐름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서울에서 우회전하려 하다가 거기 서 있는 택시들 때문에 짜증을 내며 우회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되면 뒤에서 오는 직진 차량의 흐름을 방해하게 되어 소통을 심각하게 저해하게 된다. 특히 소통이 가장 원활해야 할 교차로에서 말이다.
이 이외에도 서울에서 도입하면 좋은 아이디어는 많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서울에서 도입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모든 걸 새로 짓는 세종시에서는 새로운 도로 및 신호등 체계를 디자인해보면 어떨까? 물론 도로교통법을 고치는 데 시간이 많이 들고 우리나라 수천만 운전자들을 재교육하는 것에 드는 부담은 있겠지만, 좋은 것은 하나씩 도입해서 개선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얼마전 서울시에서 불법주차 차량을 100% 견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더군요. 맨해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바로 시도때도없이 견인되는 차량들이었습니다. 견인만 잘 해가도 불법주차가 많이 줄어들고, 도로 흐름도 좋아지죠. 결국 스톱사인도 단속의 문제고, 불법주차도 단속의 문제란 생각입니다. 한국은 규제는 엄격하고 다량 존재하는데, 그 규제를 어겼을 때의 처벌이 느슨하고 잘 이뤄지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반대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의견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불법주차 차량을 100% 견인한다니 반가운 소식이네요. 정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고, 주차 타워를 많이 만들어서 도로에 늘어서 있는 차들을 안으로 넣어야 합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정말 심하게 하는 불법주차 단속때문에 괴로웠는데 (거리 청소하는 날 세워났다가 55불, 우체국 앞에 10분 세워놨다가 45불, 학교 주차장에서 주차태그 안달았다가 40불 등등…), 그 덕에 도로 흐름이 원활해서 결국 훨씬 좋다는 걸 알았습니다. 교육비를 낸 셈이지요. 갑자기 단속을 시작하면 민원이 많아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미국에서 운전하는 것과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의 큰 차이이고 한국에 도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입니다.
이야.. 좀전에 댓글 남겼는데 바로 방문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30년간 살면서 도대체 교통 체증을 개선할 아이디어는 없을까 항상 고민했습니다. 미국 와서 보니 몇 가지 도입하면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어서 글로 정리해 봤습니다. 언젠가 서울시 공무원, 아니 서울 시장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종시는 새로 만드는 거니까 세종시에 일부라도 도입되면 좋겠네요..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정리가 아주 잘되어 있네요.
저는 어찌하다가 교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외국에 비해 정말 낙후되있는 한국 교통체계때문이었습니다.
high tolerance 정말 가슴에 와닿는 단어 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의 교통체계가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줄 착각합니다.
제가 보아온 한국의 교통문제들입니다.
보행자사망자수 1위
지옥같은 정체
동시신호 4현시 신호등
최악의 교차로효율
불법주정차
아무도 건너지 않는 횡단보도
추월차선을 지키지 않는 현상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진입 금지
한때는 공무원이 되어 교통문제를 개선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아니면 교통 문제를 개선해주는 컨설팅 회사를 만들어서 서울시와 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열거하신 문제 중에서 ‘교차로효율’문제가 와닿는군요. 불법 주정차한 차와 택시 때문에 안그래도 좁은 도로에 병목이 생겨서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지는 걸 보고 있자면 짜증이 머리 위로 올라오곤 했지요…
아침 출근 시간 뉴욕 59가 퀸스 브릿지 쪽에서 맨하탄으로 진입 하는 곳에 매일 흑인 대 여섯명이 나와서 흑인 특유의 제스쳐로 신호등을 무시하고 수 신호로 교통 정리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매일 그자리에서 일을 하니까 교통의 흐름을 빠삭하게 알아서 여러명이 손 발이 착착 맞게 교통을 정리를 잘 합니다. 운전자들도 그 사람들이 시키는데로 잘 따르구요. 우리나라도 출 퇴근 시간대에 병목 현상이 심한 곳에 신호등 보다는 사람들이 나와서 정리 하는것을 좀더 확대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것이 좀더 인간적이지 않나 싶네요…
아 그렇군요. 재미있네요. 손발 착착 맞게 교통정리하는 것 한 번 보고 싶네요. 한국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정리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더 효율적이지요. 아무튼 서울에서 운전하기 참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