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인터넷이 느리기로 유명하다. 부유한 나라이지만 이런 데서는 뒤쳐져있다. 한국에서 “광랜” 같은 빠른 인터넷을 즐기다가 미국에 도착하면 오면 처음엔 기술 후진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역시 한국이 최고구나, 미국은 선진국이라 뻐기지만 이런 데서는 한참 뒤져 있구나’ 하며 으쓱해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이점도 있다. 예를 들면 Gmail에서 쓰기 시작해서 유명해진 Ajax (Asynchronous Javascript and XML) 기술은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이 빨랐다면 굳이 연구에 연구를 해서 탄생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아직도 우리나라 웹사이트 중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즉, ‘환경의 제약’이 ‘기술의 혁신’을 불러 온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해 보겠다.)
구글이 약 한달 전 (2월 10일) 재미난 (그리고 조금은 생뚱맞은) 계획을 발표했었다. 즉, 인터넷 망 속도가 전체적으로 느린 미국에서 기존보다 100배 빠른 광통신을 깔아보겠다는 것이다. 기존 경쟁자와 비슷한 가격으로, 50,000명 정도에게 먼저 제공을 해보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얼핏 보면 구글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업이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인터넷 망 사업에 진출하겠다니 생뚱맞지 않은가? 이런 일을 왜 하려고 할까? 그들이 밝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Next generation apps: We want to see what developers and users can do with ultra high-speeds, whether it’s creating new bandwidth-intensive “killer apps” and services, or other uses we can’t yet imagine.
* New deployment techniques: We’ll test new ways to build fiber networks, and to help inform and support deployments elsewhere, we’ll share key lessons learned with the world.
* Openness and choice: We’ll operate an “open access” network, giving users the choice of multiple service providers. And consistent with our past advocacy, we’ll manage our network in an open, non-discriminatory and transparent way.
간략히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차세대 application을 개발하기 위한 기반 제공
* 광통신을 설치하는 새로운 기법 연구
* Open access: 현재 미국 인터넷 케이블망은 지역별로 할당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곳에서는 Comcast에서 제공하는 케이블 망과 AT&T에서 제공하는 ADSL 망이 유일한 두 가지 인터넷 연결 채널이라 가격이나 품질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구글이 이걸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구글이 다음 세대 킬러 앱(killer app)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인지, 앞으로 그런 게 탄생하려면 빠른 인터넷 속도가 도움이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걸 한 번 해보겠다고 하면서 관심 있는 지역 사회, 지역 정부 등은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났다. 어제 (3월 26일)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600개의 지역 사회가 지원을 한 것을 비롯해서 총 190,000건의 요청이 들어왔다. 아래 도표는 어디서 응답이 왔는지 보여준다. 작은 원은 지역 정부의 요청이 들어온 곳을 표시하고, 큰 원은 1,000명 이상의 주민이 설치해 달라고 요청한 곳을 표시한다.

Google 광케이블을 자기 지역에 유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심지어 비디오를 만들어 Youtube에 올린 곳도 있는데, 너무 재미있으니 한 번 보시기 바란다. 노래까지 만들었는데 멜로디가 상당히 좋다.
위 동영상에서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Because of you there is no limit to all the things that i can do. Now that I find you thank you, Google fiber.” (당신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이 없어요. 이제 당신이 고맙다는 걸 알겠어요. 고마워요, 구글 파이버)
또다른 Youtube 비디오가 있다. 이번엔 조금 우스꽝스러운데, 그래도 묘한 매력이 있다.
참 재미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듯이, 회사가 사람들에게 수천, 수억원의 광고비와 영업비를 써 사며 “우리 제품을 써주세요. 자, 우리 제품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이러이러한 기능을 갖추었으며 경쟁사 제품보다 값은 더 저렴할 뿐더러 브랜드 인지도도 높으며…”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잠재 고객이 “우리한테 와주세요. 플리즈. 우리는 더 재미있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더 간절히 원하고 있으니 우리 동네에 설치해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식이니 말이다.
구글의 이번 성공을 요약하며 쓴 블로그에서 나는 다음 문장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Of course, we’re not going to be able to build in every interested community — our plan is to reach a total of at least 50,000 and potentially up to 500,000 people with this experiment. Wherever we decide to build, we hope to learn lessons that will help improve Internet access everywhere.
물론, 우리 계획에 관심을 보이는 모든 커뮤니티에 설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은 적어도 50,000개의 커뮤니티에 설치해서 최대 500,000명에게 서비스를 해보는 것입니다. 어디다 짓게 되든지, 거기서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고, 그것이 미국 전역의 인터넷 접속 품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곳 저곳에 일단 지은 후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여 고객을 늘려나가겠다는 접근법이 아니다. 실험적으로 몇 지역을 선정하여 설치하고 난 후, 거기서 교훈을 배운 후에 더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구글이 가진 돈이라면 (구글이 가진 현금성 자산은 2009년 9월 30일 기준으로 $22 billion, 약 25조였다. [주]), 먼저 거액의 돈을 들여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고 여러가지 리서치를 통해 위치를 선정하고, 그 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수백억을 써서 TV광고를 하며 가입자를 늘려나가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게 대부분의 회사가 쓰는 방법이고 오랫동안 검증이 되어 온 방법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 블로그를 통해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취지를 설명한 후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고객이 아닌, 관객을 모았다. 보통의 방법이라면 수십, 수백억이 들었을 일을 돈 한 푼 안들이고 이뤄낸 것이다. 들인 돈이라고는 블로그에 글 한 편 쓰기 위해 들인 시간 비용이 다라고 할 정도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구글’이라는 추상적인 회사가 아니다. 구글에 입사해서 일하고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하게 일을 하는가이다. 그 중 한 명이 Google의 Product Manager인 James Kelly인데, 그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이렇게 쉽게 프로필을 찾을 수 있어서 나는 LinkedIn을 자주 이용한다), 구글에 입사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구글의 짧은 역사를 생각하면 이정도도 나름대로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LinkedIn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Product manager, engineer and technologist experienced in optical, broadband, and internet technologies, access, core and cloud networks. A 14 year career in high tech spanning a global Telco carrier (BT), a start-up service provider (Adevia), international and domestic business at a silicon valley technology vendor (Terawave) and global internet service and search (Google).
즉, British Telecom이라는 글로벌 텔레콤회사, Adevia라는 벤처, Terawave라는 벤더에서 일하면서 이 분야에 14년 경력을 쌓아 온 후 Google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앞으로 이 사람이 이 제품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이끌어나갈 지 기대가 된다.
많은 회사들이 고객에 초점을 맞추며 어떻게 하면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모을까 고민하면서 오늘도 마케팅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고객을 ‘고객’이 아닌 ‘관객’으로 보는 사고의 전환이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제품을 끼워 팔고, 제품을 한 번 사면 2년간 묶어 두고… 이것은 고객을 모으는 행위이다. 연주자 또는 성악가가 관객을 모을 때는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감동시키고, 그들에게 감성적 가치를 제공해야 관객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을 유지하기 위해서 연주자는 다음 공연을 정성으로 준비하면서 한편으로 방송 등에 출연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알릴 것이다. 또한 그들과 1:1로 소통하기 위하여 순회 공연을 하고 팬 사인회 등을 할 것이다. 공연에 감동한 관객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기 친구들, 가족들에게 자신이 받은 감동을 나눈다. 그러면 또 새로운 관객이 생겨난다. 마치 트위터에서 RT를 받으면 그만큼 follower 수가 늘어나듯이 말이다.
고객(Customer)이 아닌 관객(Audience)을 모으는 것, 그것이 진짜 마케팅이다.
예전에 구글의 위와 같은 계획으로 인해서 캔자스주의 Topeka라는 시는
시장이 3월 한달간 시 이름을 구글시로 개정한다고 까지 하는 기사를 봤었습니다만 (http://goo.gl/Kwb2)
[실제로 구글맵에서 Google,KS로 검색됨]
구글의 그러한 계획을 마케팅 시각에서 재미있게 풀어주셨네요 🙂
그 기사는 못 봤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재미있네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멋진 글입니다. 고객이 아닌 관객! 그것이 진정한 마케팅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으로 고객을 감동시키고, 대접해주는 기업만이 앞으로 살아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좋은 글입니다. IT technology 분야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응용하고 싶습니다. 의료에서야 말로 진정한 환자를 진정한 관객으로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까 반성하게 됩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공감백배!
두가지 사례를 한번 상상해봤습니다. ㅎㅎ
1) 아직 아이폰 도입 되기전.. SKT가 말하는겁니다. 특정 기업,학교,단체에만 시범적으로 아이폰을 먼저 개통해주겠다. 프로포즈를 해달라.. 아이폰 신도들이 우르르 몰려 일어나고.. 그런게 이슈화되고 인지가 넓어지고..
2) 평판이 좋은 동네 정육점. 정육점 주인은 자신에게는 발품만 들고 힘든 일인데.. 초초초특급 한우를 어딘가에서 소량 공수해와 단골고객들에게 제공하기로.. 소문이 퍼져, 마을사람들은 정육점 주인한테 잘 보이려고..
아하! 멋진 예를 들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언제나 좋은 글.. 퍼갑니다
회사 사내 게시판에 링크가 걸려서 들어와봤더니.. 웬걸!!
통찰력 넘치는 글이 가득하구만~ 재미나게 잘 읽었어~^^
오옷.. 채석이형! 정말 반가워요. 제 블로그를 누가 게시판에 올렸나봐요? 정말 글의 전달 속도와 범위는 놀랍군요. 언제 한 번 캘리포니아 놀러오세요.
역시 명확하게 구글의 마케팅전략을 풀어내신 것 같네요.
“고객을 고객이 아닌 관객으로 보는 사고의 전환”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혁신적인 회사’로 고객들이 인정하는 구글과 다르게 고객들이 인정하지 않는 회사들은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전략이겠죠. 몇 년동안 지속적으로 구글이 해왔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나가는 모습에서 고객들이 공연이 200% 감동적일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관객이 되어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고객을 관객으로 만들고 감동시키는 것은 ‘지속적인 혁신’의 모습이 수반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런 Principle은 회사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가능하겠죠. : )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천하기엔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속한 회사에서도, 실제로 어떻게 실천할까 생각해보면 절대 간단하지 않지요. 말씀하신대로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고객들이 확신을 가지고 되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시 형의 주옥 같은 글 정말 잘 봤습니다. 요새 마케팅이라는 function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구글이라는 기업은 정말 보면 볼수록 대단하네요. 이러한 일들을 보란듯이 해내고 있으니… 이런 파괴적 혁신을 보여주는 기업이 한국에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이런 파괴적 혁신을 보여주는 기업을 Value Creators 팀이 만들거라 믿어! 🙂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blogged this on 생각과 이미지를 기술(記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