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머리와 가슴 속에 두고 두고 아프게 기억될 사고가 하나 더 늘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 수백명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더 비극적이고, 더 슬픈 사건이다.
선장의 말을 듣고 끝까지 배 안에 남아 있다가 죽음을 맞은 고등학생들이 너무 불쌍하고, 5살난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구명 조끼를 준 6살 권혁규 군의 이야기를 들으니 눈물이 난다. 자신의 아들과 딸이 결국 죽어 돌아온 것을 보고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그 슬픔이 전해졌다.
처음에는 비겁한 선장을 비난했다. 과연 인간이 그럴 수 있나 싶을 만큼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가 무기 징역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했고,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자기 몸만 빠져나온 선장과 승무원들이 너무나 야속하고 얄미웠다. 사진을 보면 화가 치밀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특히 많은 언론들이 정부를 비난했다. 그런 배를 제대로 검사도 안하고 승인해주었다는 것, 사고 발생 후 신속한 대응을 못해 살릴 수 있었을 사람들을 죽게 했다는 것, 탐승자 수를 제대로 파악 못했다는 것, 일본과 미국이 도와주겠다는데 막았다는 것 등..
많은 젊은 기자들의 취재 수첩을 읽어보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 등 정부와 군대가 잘못한 부분이 있고 비난받아 마땅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점에서 관련자들은 분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선장에게 집중하는 동안, 진짜 ‘악마’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요시노 타이치로 기자가 오늘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한 “선장 한 명 탓인가, 그래서 세상은 좋아질까” 라는 제목의 글에 공감이 갔다. 일본에서 2005년에 비극적 열차 사고가 있었는데, 23세의 운전자를 욕하고 탓하는 대신, 왜 그 운전자가 그런 상황에 몰렸을까에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운전자도 사망했기 때문에 욕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선장과 정부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선장, 선원, 해운사만이 아니라 법규와 정부기관의 책임을 검증하려는 보도가 점점 나오기 시작한다. 늙은 현장 책임자 한 명을 악마로 만든 사이, 정말 나쁜 악마는 숨어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선장의 행위를 “살인 같은 행태”라 비판했다는데 선장을 화풀이 틀로만 소비하지 말고 정말 악마와 오래 시간을 걸쳐 싸워야 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에디터, 요시노 타이치로)
정부를 탓하는 것의 가장 큰 맹점은, 책임 소재와 책임자를 명확히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부’라고 부른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 항만청일까, 해군일까, 해양수산부일까, 박근혜 대통령 자신일까.. 아니면 세금으로 보상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 전체일까. 슬프고 화가 나 있는 실종자의 가족들이 ‘대한민국이 나를 위해 해준 게 뭐냐’며 화를 내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들은 누구에게 그 화를 돌릴 지 명확치 않아서 정부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에서 자라면서 정부 탓, 정부 욕하기에 참 익숙해 있었다. 한국 정권이 도덕적으로 깨끗했던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리고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일을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것에는 별 해답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관해 지금까지 본 중 가장 잘 정리해놓은 엔하위키의 글을 보면, 세월호가 중심을 잃고 쓰러진 것은 과속과 급격한 방향 선회가 1차 원인이고, 무리하게 적재한 화물이 2차 원인이다.
당초 600명 정도가 타는 배였는데 300여명 정도를 더 태우기 위해 배 뒤쪽을 개조했다는 전직 세월호 기관사의 증언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객실을 증축하면서 세월호의 무게는 퇴역하기 직전보다 239톤이 증가했다. 또한 이게 첫 개조가 아니였는데 일본에서도 이미 1994년 건조한 지 불과 한달만에 589톤이 증가했었다. 결국 맨 처음 개수했을 당시 5,997톤이였던 선박은 총합 838톤이 늘어서 사고 당시 순수 선박의 무게가 6,835톤에 달했다.
급변침 과정에서 선박이 좌현으로 기울고, 결박이 풀림과 함께 균등하게 배치되어 있던 차량과 화물이 관성에 의해 좌현 쪽으로 쏠리며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붕괴되어 배가 서서히 기울다가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직후의 시간에 완전히 균형을 잃고 전복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세월호의 차량 결박이 평소에도 허술 했다는 증언까지 나와 급변침이 원인이 되었음을 뒷받침 하고 있다.
문제는 차량과 화물만 제대로 고정시켰더라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측이 화물을 고정시키는 데에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화물을 고정시키지 않은 채 그냥 적재해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관측이 있다. 이로서 세월호 침몰은 인재(人災)가 확정된 상황이다.
이 모든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고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셈이다. 물살이 세고, 물이 혼탁한데다, 선장의 도덕성이 결여되고, 구조가 늦어지면서 모든 일이 더 악화된 것이다.
애초에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났을까. 세월호를 통해 사업하던 청해진해운과 그 소유주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해답이 있다. 청해진해운은 세모 그룹의 전 회장인 유병언씨의 두 아들이 실 소유주로 되어 있는 회사이다. 세모그룹은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성장했고, 수많은 ‘뻘짓’을 하며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2000억원에 달하는 담보 대출로 근근히 막은 것 같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된 세월호 역시 은행에 담보물로 잡혀 있었다. 유병언씨는 ‘구원파’라는 이상한 종교 집단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었고, 수많은 회사들을 세운 후 ‘재벌 회장’ 행세를 하며 회사 사장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장당 수천만원에 강제로 사게 했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종교 단체에서 200억원을 대출하고, 계열사를 만들어 126억에 작품을 사게 한 후 손실 처리했다. 그렇게 해서 유병언 회장과 두 아들, 그리고 친척들이 축적한 재산이 5600억원에 이른다. 회사는 적자에 시달리게 해 놓고, 본인들은 미국에 수백만달러짜리 부동산을 사들이며 인생을 즐긴 것이다. 게다가 회사를 부실하게 경영하면서도 20년간이나 인천-제주 운항 독점권을 보유하며 국내 최대 선박 여객 회사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보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한 것 같다.
그리고 사고가 나자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도 없고, 구조 작업에 도움이 되도록 돈을 기부하겠다는 말도 없다. 사무실과 카페 문을 모두 닫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사람들이 조직의 최상단에 있는 회사의 직원들로부터 무슨 도덕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낮은 급여를 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고, 무리하게 배를 증축한 것이 불안해 원래 배를 몰던 선장은 휴가를 내고 빠져버렸고, 그 자리를 채운 사람은 선장으로서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대타’였는데, 그가 무슨 도덕적,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문제는 한국에 이런 회사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자격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정상에 올라가버렸다. 그들은 회사라는 것이 뭔지, 주주라는 것이 뭔지, Board of Director의 역할이 뭔지에 대한 개념도 없는 것 같다. 회사를 개인 자산을 불리는 목적으로만 운영하고 있다. 그런 회사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수많은 상품 때문에, 이번과 같은 사고는 언제 또 발생할 지 모른다.
미국에 살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때로 지나칠 만큼 안전을 강조해 사회적 비용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고치러 가 보면 느끼는데, 차에 안전에 관한 문제가 하나만 있어도 수천 달러를 메기며 전체를 다 갈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번에는 바퀴에 바람이 좀 빠져 정비소에 가져갔더니 바퀴를 갈아야 한다고 했다. 타이어가 새 것이었고 내가 보기엔 정말 문제가 없어 보여 그냥 좀 고쳐서 써도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라이어빌리티(liability) 문제가 있어 날 그냥 보낼 수 없단다. 하는 수 없이 바퀴를 새 것으로 갈았다.
이들이 도덕성이 높고 진정으로 내 안전을 걱정해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회사가 져야 할 책임이 워낙 크니 애초에 조심을 하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소송이 쏟아지는 나라인지라, 뭐라도 잘못해서 책 잡히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을 해야 하니, 회사의 자산을 책임질 수 있는 직원들을 채용하고, 그들을 철저히 교육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세모 그룹 유병언 회장 및 그 일가는 정부에게 쏟아지는 비판 뒤에 숨어서,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고 선장과 공무원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음과 함께 이번 사고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순간을 기대하며 씨익 웃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업데이트(4/23): “학부모의 절규” 기사를 보니 구조를 한다고 말해놓고 실제로는 구조를 제대로 안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급박한 상황에서 남의 일 대하듯 태연했던 사람들도 있었던 듯.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너무 많군요.
업데이트(4/24): 아래 Iaridae님이 댓글에 남겨주셨는데, 구조를 제대로 안하고 있었다는 주장에 왜곡이 있다고 합니다. 해상 구조 작업에 직접 참여해본 적이 많이 있는데 이번은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던 것이며, 잠수부가 많다고 한꺼번에 투입할 수도 없는 것이라구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 안타까운 상황에, 누구인들 몸을 던져 생명 하나라도 건져내고 싶지 않았을까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이야기이니 한 번 읽어보세요.
업데이트(4/25): 구조대원들의 힘든 상황을 묘사한 국민일보 기사: “초대형 태풍을 뚫고 40층 건물의 34층 화장실을 찾아가시오. 제한 시간은 20분” 이들에게 떨어지는 미션은 이것과 맞먹는다.
업데이트(4/26): 페이스북에서 본 장영준 후배의 글이 많이 공감되어서 여기에 추가: “물론 정부의 대응이나 태도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야. 그러나 이러한 인재를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본질적 문제를 찾으려는 사회 구성원들과 언론의 자세가 좀 아쉽다. 조직도 정부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을 만드는 것은 문화이고, 문화는 일반사람들이 만들지. 우리가 보기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안행부장관이나 모 공무원들이 어떤 특별한 제도아래 자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고 일반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를 배우며 또는 타협하며 휩쓸려온, 그런 우리 모두와 다를 바 없는 일반 사람들이거든. 더 책임감있고 유능한 정부를 원한다면 그 구성원들을 지배하는 집단지성과 문화를 바꾸어야 하는데, 그건 탓하고 욕한다고 나아지는 것들이 아니야. 만약 단순한 분노표출이 아닌 우리 정부를 더 나은 정부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SNS를 통해 누군가를 욕하고 탓하기 보다(물론 이런 것도 필요하지만), 이 사회의 문화를 만드는 주체인 나부터 스스로에게 “나(우리)는 한배를 탄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자세로 살고 있나? 나(우리)는 보여주기식 얼렁뚱땅으로 내 책임을 미룬적이 없나? 나(우리)는 자식들에게 리더로서의 권리보다 책임감을 먼저 철저히 가르치고 있나? 나는 책임을 다했을때 더 자랑스러운가, 경쟁에서 이겼을때 더 자랑스러운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여러사람과 공유함으로써 집단지성과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데 일조해야 한다고 봐. 그래야 더 나은 일반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일반사람들이 정치인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현 정치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것이라고 본다. 살인/절도와 같은 범죄는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것과 달리, 돈이나 권력만 쥐었다 하면 90% 이상이 타락해버리는 정치권을 보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것이 아닐까.“
업데이트(4/27): 중앙일보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이 대형 선박 선장 출신 두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 중 일부: “진짜 살인범은 배 위가 아니라 육지에 숨어 있다. 인천항에서 화물을 과적하고, 만재흘수선을 눈속임하기 위해 평형수에 손을 댄 인물이다. 세월호는 규정보다 화물을 2000t 더 실어 운송비 8000만원을 추가로 챙겼다. 배는 모르면서 돈만 밝힌 인물이 진짜 살인범이다. (중략) 총리나 장관은 바다를 모른다. 현장 보고를 학습하기도 벅찰 것이다. 현장 전문가에게 사령탑을 맡겨야 한다. 9·11 테러엔 뉴욕소방서장이 현장을 장악했고, 빈 라덴 제거 작전에는 대통령·국무·국방장관을 제치고 미 합동특수전 공군준장이 상황을 지휘했다”
업데이트(4/28):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서 잘못된 리더십의 전형을 여실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박성미 다큐멘터리 감독이 쓴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되는 이유” 라는 글에 공감이 많이 되네요.
업데이트(4/28): “왜 기업은 옳은 일을 하는데 실패하는가 Why Corporations Fail to Do the Right Thing” 도 같이 읽어보세요. 이 글을 쓴 Christine Bader는 BP (British Petroleum)에서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를 11년간 담당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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