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여객선 침몰, 그리고 세모 그룹 유병언

진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머리와 가슴 속에 두고 두고 아프게 기억될 사고가 하나 더 늘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 수백명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더 비극적이고, 더 슬픈 사건이다.

선장의 말을 듣고 끝까지 배 안에 남아 있다가 죽음을 맞은 고등학생들이 너무 불쌍하고, 5살난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구명 조끼를 준 6살 권혁규 군의 이야기를 들으니 눈물이 난다. 자신의 아들과 딸이 결국 죽어 돌아온 것을 보고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그 슬픔이 전해졌다.

처음에는 비겁한 선장을 비난했다. 과연 인간이 그럴 수 있나 싶을 만큼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가 무기 징역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했고,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자기 몸만 빠져나온 선장과 승무원들이 너무나 야속하고 얄미웠다. 사진을 보면 화가 치밀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특히 많은 언론들이 정부를 비난했다. 그런 배를 제대로 검사도 안하고 승인해주었다는 것, 사고 발생 후 신속한 대응을 못해 살릴 수 있었을 사람들을 죽게 했다는 것, 탐승자 수를 제대로 파악 못했다는 것, 일본과 미국이 도와주겠다는데 막았다는 것 등..

많은 젊은 기자들의 취재 수첩을 읽어보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 등 정부와 군대가 잘못한 부분이 있고 비난받아 마땅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점에서 관련자들은 분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선장에게 집중하는 동안, 진짜 ‘악마’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요시노 타이치로 기자가 오늘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한 “선장 한 명 탓인가, 그래서 세상은 좋아질까” 라는 제목의 글에 공감이 갔다. 일본에서 2005년에 비극적 열차 사고가 있었는데, 23세의 운전자를 욕하고 탓하는 대신, 왜 그 운전자가 그런 상황에 몰렸을까에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운전자도 사망했기 때문에 욕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선장과 정부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선장, 선원, 해운사만이 아니라 법규와 정부기관의 책임을 검증하려는 보도가 점점 나오기 시작한다. 늙은 현장 책임자 한 명을 악마로 만든 사이, 정말 나쁜 악마는 숨어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선장의 행위를 “살인 같은 행태”라 비판했다는데 선장을 화풀이 틀로만 소비하지 말고 정말 악마와 오래 시간을 걸쳐 싸워야 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에디터, 요시노 타이치로)

정부를 탓하는 것의 가장 큰 맹점은, 책임 소재와 책임자를 명확히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부’라고 부른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 항만청일까, 해군일까, 해양수산부일까, 박근혜 대통령 자신일까.. 아니면 세금으로 보상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 전체일까. 슬프고 화가 나 있는 실종자의 가족들이 ‘대한민국이 나를 위해 해준 게 뭐냐’며 화를 내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들은 누구에게 그 화를 돌릴 지 명확치 않아서 정부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에서 자라면서 정부 탓, 정부 욕하기에 참 익숙해 있었다. 한국 정권이 도덕적으로 깨끗했던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리고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일을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것에는 별 해답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관해 지금까지 본 중 가장 잘 정리해놓은 엔하위키의 글을 보면, 세월호가 중심을 잃고 쓰러진 것은 과속과 급격한 방향 선회가 1차 원인이고, 무리하게 적재한 화물이 2차 원인이다.

당초 600명 정도가 타는 배였는데 300여명 정도를 더 태우기 위해 배 뒤쪽을 개조했다는 전직 세월호 기관사의 증언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객실을 증축하면서 세월호의 무게는 퇴역하기 직전보다 239톤이 증가했다. 또한 이게 첫 개조가 아니였는데 일본에서도 이미 1994년 건조한 지 불과 한달만에 589톤이 증가했었다. 결국 맨 처음 개수했을 당시 5,997톤이였던 선박은 총합 838톤이 늘어서 사고 당시 순수 선박의 무게가 6,835톤에 달했다.

급변침 과정에서 선박이 좌현으로 기울고, 결박이 풀림과 함께 균등하게 배치되어 있던 차량과 화물이 관성에 의해 좌현 쪽으로 쏠리며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붕괴되어 배가 서서히 기울다가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직후의 시간에 완전히 균형을 잃고 전복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세월호의 차량 결박이 평소에도 허술 했다는 증언까지 나와 급변침이 원인이 되었음을 뒷받침 하고 있다.

문제는 차량과 화물만 제대로 고정시켰더라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측이 화물을 고정시키는 데에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화물을 고정시키지 않은 채 그냥 적재해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관측이 있다. 이로서 세월호 침몰은 인재(人災)가 확정된 상황이다.

이 모든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고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셈이다. 물살이 세고, 물이 혼탁한데다, 선장의 도덕성이 결여되고, 구조가 늦어지면서 모든 일이 더 악화된 것이다.

애초에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났을까. 세월호를 통해 사업하던 청해진해운과 그 소유주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해답이 있다. 청해진해운은 세모 그룹의 전 회장인 유병언씨의 두 아들이 실 소유주로 되어 있는 회사이다. 세모그룹은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성장했고, 수많은 ‘뻘짓’을 하며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2000억원에 달하는 담보 대출로 근근히 막은 것 같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된 세월호 역시 은행에 담보물로 잡혀 있었다. 유병언씨는 ‘구원파’라는 이상한 종교 집단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었고, 수많은 회사들을 세운 후 ‘재벌 회장’ 행세를 하며 회사 사장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장당 수천만원에 강제로 사게 했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종교 단체에서 200억원을 대출하고, 계열사를 만들어 126억에 작품을 사게 한 후 손실 처리했다. 그렇게 해서 유병언 회장과 두 아들, 그리고 친척들이 축적한 재산이 5600억원에 이른다. 회사는 적자에 시달리게 해 놓고, 본인들은 미국에 수백만달러짜리 부동산을 사들이며 인생을 즐긴 것이다. 게다가 회사를 부실하게 경영하면서도 20년간이나 인천-제주 운항 독점권을 보유하며 국내 최대 선박 여객 회사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보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한 것 같다.

그리고 사고가 나자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도 없고, 구조 작업에 도움이 되도록 돈을 기부하겠다는 말도 없다. 사무실과 카페 문을 모두 닫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사람들이 조직의 최상단에 있는 회사의 직원들로부터 무슨 도덕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낮은 급여를 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고, 무리하게 배를 증축한 것이 불안해 원래 배를 몰던 선장은 휴가를 내고 빠져버렸고, 그 자리를 채운 사람은 선장으로서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대타’였는데, 그가 무슨 도덕적,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문제는 한국에 이런 회사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자격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정상에 올라가버렸다. 그들은 회사라는 것이 뭔지, 주주라는 것이 뭔지, Board of Director의 역할이 뭔지에 대한 개념도 없는 것 같다. 회사를 개인 자산을 불리는 목적으로만 운영하고 있다. 그런 회사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수많은 상품 때문에, 이번과 같은 사고는 언제 또 발생할 지 모른다.

미국에 살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때로 지나칠 만큼 안전을 강조해 사회적 비용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고치러 가 보면 느끼는데, 차에 안전에 관한 문제가 하나만 있어도 수천 달러를 메기며 전체를 다 갈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번에는 바퀴에 바람이 좀 빠져 정비소에 가져갔더니 바퀴를 갈아야 한다고 했다. 타이어가 새 것이었고 내가 보기엔 정말 문제가 없어 보여 그냥 좀 고쳐서 써도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라이어빌리티(liability) 문제가 있어 날 그냥 보낼 수 없단다. 하는 수 없이 바퀴를 새 것으로 갈았다.

이들이 도덕성이 높고 진정으로 내 안전을 걱정해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회사가 져야 할 책임이 워낙 크니 애초에 조심을 하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소송이 쏟아지는 나라인지라, 뭐라도 잘못해서 책 잡히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을 해야 하니, 회사의 자산을 책임질 수 있는 직원들을 채용하고, 그들을 철저히 교육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세모 그룹 유병언 회장 및 그 일가는 정부에게 쏟아지는 비판 뒤에 숨어서,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고 선장과 공무원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음과 함께 이번 사고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순간을 기대하며 씨익 웃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업데이트(4/23): “학부모의 절규” 기사를 보니 구조를 한다고 말해놓고 실제로는 구조를 제대로 안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급박한 상황에서 남의 일 대하듯 태연했던 사람들도 있었던 듯.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너무 많군요.

업데이트(4/24): 아래 Iaridae님이 댓글에 남겨주셨는데, 구조를 제대로 안하고 있었다는 주장에 왜곡이 있다고 합니다. 해상 구조 작업에 직접 참여해본 적이 많이 있는데 이번은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던 것이며, 잠수부가 많다고 한꺼번에 투입할 수도 없는 것이라구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 안타까운 상황에, 누구인들 몸을 던져 생명 하나라도 건져내고 싶지 않았을까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이야기이니 한 번 읽어보세요.

업데이트(4/25): 구조대원들의 힘든 상황을 묘사한 국민일보 기사“초대형 태풍을 뚫고 40층 건물의 34층 화장실을 찾아가시오. 제한 시간은 20분” 이들에게 떨어지는 미션은 이것과 맞먹는다.

업데이트(4/26): 페이스북에서 본 장영준 후배의 글이 많이 공감되어서 여기에 추가: “물론 정부의 대응이나 태도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야. 그러나 이러한 인재를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본질적 문제를 찾으려는 사회 구성원들과 언론의 자세가 좀 아쉽다. 조직도 정부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을 만드는 것은 문화이고, 문화는 일반사람들이 만들지. 우리가 보기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안행부장관이나 모 공무원들이 어떤 특별한 제도아래 자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고 일반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를 배우며 또는 타협하며 휩쓸려온, 그런 우리 모두와 다를 바 없는 일반 사람들이거든. 더 책임감있고 유능한 정부를 원한다면 그 구성원들을 지배하는 집단지성과 문화를 바꾸어야 하는데, 그건 탓하고 욕한다고 나아지는 것들이 아니야. 만약 단순한 분노표출이 아닌 우리 정부를 더 나은 정부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SNS를 통해 누군가를 욕하고 탓하기 보다(물론 이런 것도 필요하지만), 이 사회의 문화를 만드는 주체인 나부터 스스로에게 “나(우리)는 한배를 탄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자세로 살고 있나? 나(우리)는 보여주기식 얼렁뚱땅으로 내 책임을 미룬적이 없나? 나(우리)는 자식들에게 리더로서의 권리보다 책임감을 먼저 철저히 가르치고 있나? 나는 책임을 다했을때 더 자랑스러운가, 경쟁에서 이겼을때 더 자랑스러운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여러사람과 공유함으로써 집단지성과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데 일조해야 한다고 봐. 그래야 더 나은 일반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일반사람들이 정치인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현 정치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것이라고 본다. 살인/절도와 같은 범죄는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것과 달리, 돈이나 권력만 쥐었다 하면 90% 이상이 타락해버리는 정치권을 보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것이 아닐까.

업데이트(4/27): 중앙일보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이 대형 선박 선장 출신 두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 중 일부: “진짜 살인범은 배 위가 아니라 육지에 숨어 있다. 인천항에서 화물을 과적하고, 만재흘수선을 눈속임하기 위해 평형수에 손을 댄 인물이다. 세월호는 규정보다 화물을 2000t 더 실어 운송비 8000만원을 추가로 챙겼다. 배는 모르면서 돈만 밝힌 인물이 진짜 살인범이다. (중략) 총리나 장관은 바다를 모른다. 현장 보고를 학습하기도 벅찰 것이다. 현장 전문가에게 사령탑을 맡겨야 한다. 9·11 테러엔 뉴욕소방서장이 현장을 장악했고, 빈 라덴 제거 작전에는 대통령·국무·국방장관을 제치고 미 합동특수전 공군준장이 상황을 지휘했다”

업데이트(4/28):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서 잘못된 리더십의 전형을 여실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박성미 다큐멘터리 감독이 쓴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되는 이유” 라는 글에 공감이 많이 되네요.

업데이트(4/28): “왜 기업은 옳은 일을 하는데 실패하는가 Why Corporations Fail to Do the Right Thing” 도 같이 읽어보세요. 이 글을 쓴 Christine Bader는 BP (British Petroleum)에서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를 11년간 담당했던 사람.

한국인의 영어 이름 사용에 대한 생각

아래는 이틀전에 했던 트윗.

오늘 했던 트윗
기억하기 무척 어렵지만 그대로 쓰는 인도 이름들

91번의 리트윗에 더해, 많은 분들이 트위터에서 의견을 주셨다. 한국 이름을 어디서나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분들도 있었고, 한국 이름을 주변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해서 어쩔 수 없이 결국 영어 이름을 선택했다는 분들도 있었다. 아래에 몇 개 인용해본다 (이해가 쉽게 약간 수정하고, 트위터 프로필을 옆에 썼음).

 (월스트리트저널 한국어판 에디터)

받침 때문이 아닐까요? 한글 이름에 저처럼 받침이 많으면 다들 발음하기 힘들어하더군요. 정.연. 대신 JY라고 묻지도 않고 부르기도 합니다^^

 (씨디네트웍스 CTO)

저걸 다 발음해 주나요? 🙂 보통 인도인도 이름이 너무 길면 줄여서 불러 줍니다만. 물론 그건 줄여서 부르는 거지 완전히 미국식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거는 아니라는 차이는 있지만요.

 (퀄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저는 (정말 외국에서 자라지 않은 이상) 이름이 설사 범석이라도 특별한 이유가 아닌 이상 한국이름 쓰는게 좋다고 봅니다. 말씀대로 인도친구들은 여기서 태어나는 아이들 조차 다 자국이름 쓰게 하더군요.

(LookAllure CEO/Founder)

개인적으로는 한국 이름을 사용하는것이 좋은것 같아 그렇게 하는데, 미국에서 자라지 않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더라구요. 최근 몇년간 보면 한국에서도 미국 이름 쓰는 사람들 많던데요. 트윗에서도 그렇고.

경험상 인도 사람들은 이름을 줄여서 많이 쓰고 줄이면 발음이 쉽죠. 우리나라 사람도 발음이 쉬운 사람들은 거의 그대로 쓰는 편이고요. 일본이나 대만, 중국도 마찬가지더라구요. 사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발음 문제가 훨씬 크다고 봅니다.

 (삼성 모바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처음엔 한국이름을 쓰다 비지니스용으론 상대에게 발음 및 내 이름을 기억시키는 것도 어렵단 결론을 얻고 영어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족합니다. 인도친구들과 일할때 그들의 긴 이름때문에 불편하더군요. 그래서 약어로 보통 부릅니다.

 (후지쯔 글로벌 비즈니스 매니저)

참고로 싱가폴과 일부 말레이시아의 중국계들은 일부는 영어이름을 일부는 그냥 중국식 이름을 부르는듯 해요. 그밖에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본래이름을 이용하고요. 필리핀은 본인이름과는 별도로 애칭을 가집니다.

동감! 영어이름보다 한국어 이름을 부르는게 더 재미있다는 외국친구들의 이야기도 있었어요! 굳이 영어 이름을 만들 필요는 없는 듯 합니더… 요즘 어린 아이들한테 영어이름을 만들어주는 풍습(?)도 생겨나고 있다던걸요.

미국에 와서 이름 문제로 고민을 정말 오래 했다. 나의 영어 이름은 ‘브라이언(Brian)’이었다. 게임빌에 있을 때 영어 강사를 불러 영어 회화 연습을 같이 하곤 했는데, 첫 시간에 각자 영어 이름을 하나 지어보라 하길래 문득 떠오른 이름이 브라이언이라 그걸로 정했다. 내 맘대로 정한 거지만 어감도 마음에 들었고, 사람들이 나를 브라이언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좋았다. 나중에 미국, 유럽 회사와 일하게 되면서 나를 브라이언이라고 소개했고, 모두들 그 이름을 불러주었다. 7년간 이 이름을 쓰자 그냥 내 원래 이름처럼 자연스러워졌다.

MBA에 입학하면서, 법적 이름 외에 닉네임(nickname)이 있느냐고 묻길래 Brian이라고 썼고, 학교에 입학했더니 네임 텐트(name tent: 수업 시간에 책상에 올려두어 교수가 이름을 바로 부를 수 있게 하는 것)를 주었는데, 한 면에는 Sungmoon Cho, 다른 면에는 Brian Cho라고 써 있었다. 나는 Brian Cho가 잘 보이게 항상 놓아두었다. 주변을 보니 보니 중국이나 대만에서 온 경우에는 80%가 영어 이름을, 한국에서 온 경우는 절반 정도가 영어 이름을 쓰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일본인 중에서는 영어 이름을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미국에서 6년 이상 살면서 지금까지, 영어 이름을 가진 일본인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도 일본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스쿨에서 쓰던 네임 텐트. 이 때는 Sungmoon  Cho가 뒷면에 있다.
비즈니스스쿨에서 쓰던 네임 텐트. 이 때는 Sungmoon Cho가 뒷면에 있었다.

학교 초기에 새로운 친구들을 엄청나게 많이 만났다. 그들 모두에게 ‘브라이언’이라고 소개했더니 즉시 알아듣고, 내 이름도 쉽게 기억해서 참 편했다. 그렇게 6개월간 ‘브라이언 조’로 지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관찰된 변화가 있었다. Rex라는 이름을 쓰던 중국에서 온 친구가 어느 날부터 Qingbai (칭빠이) 라는 중국 이름이 달린 이름판을 내걸기 시작한 것이다. 쉬는 시간에 가서 물었다.

너 렉스라는 이름을 잘 쓰고 있었잖아. 왜 칭빠이로 쓰기로 결심했어?

칭빠이가 원래 내 이름이야. 나는 그냥 이걸 쓰기로 결정했어.

‘칭빠이’라는 이름이 부르기 어렵고 기억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내 우려와는 달리, 교수와 친구들은 곧 그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콜드 콜(cold call: 수업 시간에 교수가 갑자기 질문하는 것)’ 을 적게 당하고 싶어서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이름이 칭빠이라 해서 덜 불리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나서서 대답을 많이 했다. 남들이야 어떻든 중국식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브라이언? 성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이라는 게,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참 힘든 건데, 앞으로 미국에서 살면서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할 지 생각해봐야 했다. 그러던 중 나와 가깝게 지내던 친구 마이클이 한 마디 했다.

난 ‘성문’이란 이름이 좋더라. 부르기 쉽고 어감도 좋아. 난 그냥 ‘성문’으로 부를래.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친구가 편하게 느낀다고 하니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닐까. 그래도 난 모든 사람들에게 브라이언으로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장단점을 적어 보았다.

미국식 이름 한국식 이름
장점 다른 사람들이 외우고 부르기 쉽다. 나만 가지고 있는 내 이름이다.미국에서 Sungmoon Cho라는 철자를 가진 사람은 거의 내가 유일하다.
단점 부모님이 주신 이름이 아닌데 좀 어색하다.’브라이언’은 흔한 이름이라, 나랑 같은 이름과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외우고 부르기 어렵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 딜로이트에서 주최하는 ‘비즈니스 플랜 컴퍼티션(business plan competition)’에 나갔는데, 각자 나누어 일을 한 후에, 나중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맡은 슬라이드를 발표했다. 영어로 발표한다는 것도 긴장되는데, 1등 자리를 놓고 다른 팀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팀의 다른 멤버에게 누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 긴장을 했다. 슬라이드에는 Brian Cho라고 내 이름이 선명히 적혀 있었다. 아마 미국에서 태어난 아시아인이라고 나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발표할 내용을 완벽히 외우지를 못해 결국 할 말을 메모에 적은 후, 발표 시간에 메모를 슬쩍 보면서 이야기했다. 더듬기도 했고, 할 말도 다 못했던 것 같다. 발표가 끝나고 나자 심사를 맡은 2학년 학생과 딜로이트 컨설턴트들이 우리 각자에게 피드백을 주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브라이언은.. 내용은 괜찮았는데 종이를 보고 읽는 바람에 집중도가 떨어졌네요. 다음부터는 발표할 때 내용을 다 숙지하고 대화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인 이름을 가진 미국인 ‘브라이언’은, 결국 영어로 유창하게 말을 하지도 못하고 발표할 때 말을 더듬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미국에 살면서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이야기할 일이 많을텐데, 어느 쪽이 나은걸까? ‘브라이언’이라는 미국 이름을 가지고 말을 시작했는데 듣고 보니 미국인이 아니더라는게 좋은 걸까, 아니면 ‘성문’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듣고 보니 발음이 좋더라고 생각하는게 좋은 걸까.

결론이 분명해졌다. 그래, 나는 영어보다 한국어가 익숙한, ‘성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다.

그 때부터 네임 텐트를 바꿔 달았다. Sungmoon Cho. 그리고 나를 브라이언이라고 부르던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줬다. 나는 ‘성문’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결정했다고. 다들 금방 적응했다.

가만히 보니 내 이름 Sungmoon을 Sun (해) 과 g, 그리고 Moon (달)으로 분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Sun and the Moon in the sky (하늘의 해와 달)’라고 소개하면 다들 바로 기억했다.

그 이후로 미국에서의 내 이름은 줄곧 Sungmoon Cho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시키거나 물건을 살 때는 줄여서 ‘Sung’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그리고 오라클에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일단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이름을 그대로 쓴다. 헨릭(Henrik), 니콜라스(Nicholas), 밀코(Milko) 등. 장-프랑소아(Jean-Francois) 처럼 이름이 길 경우에는 J.F. 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름을 바꾸지는 않는다. 러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세르게이(Sergei), 알렉산더(Alexander), 바딤(Vadim), 카테리나(Katerina), 올가(Olga) 등 그대로 써도 큰 무리가 없는 이름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이나 중동,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도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 무하메드(Muhammad), 자말(Jamal), 오페르(Offer) 등의 이름을 쓰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일본 사람들도 거의 일본식 이름을 쓰는 편이다.

인도의 경우가 흥미롭다. 인도 이름은 대부분 길고 발음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어 이름을 지어 쓰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스티브 바타차야라(Steve Batachayara)’ 같은 이름은 볼 수가 없다. 이름을 줄여서 쓰거나 약간 변형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MBA 때 전략 과목을 가르치던 교수님 이름이 수부라마니암 라마나라야난 (Subramaniam Ramanarayanan) 이었는데, 첫 시간에 들어와서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쓰면서, 자기보다 ‘n’자가 성과 이름에 더 많이 들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 그는 앞 세글자를 딴 후 부르기 쉽게 만든 수부(Subbu)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했다. 아무 문제 없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렀다. 이름이 자이프라카시(Jaiprakash)인 이전 동료는 앞 세글자들 따서 Jai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사람들은 제이라는 발음으로 불렀다.

여기서 예로 나라들이 다 영어 알파벳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을 제외하면,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 페니키아의 문자에서 유래된 알파벳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자신이 원래 쓰던 이름 스펠링이 1:1로 영어 알파벳으로 대응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원래 이름을 뒤로 하고 미국식 이름을 지어 쓰는 곳은 거의 세 나라로 좁혀진다. 중국, 대만, 그리고 한국이다. 특히 중국인들의 미국식 이름 사랑은 각별하다. 내가 미국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의 거의 90%가 미국식 이름을 사용한다. 남자중에서는 알렉스(Alex)가 가장 흔하고, 여자중에서는 제니퍼(Jennifer)가 흔하다. 릴리(Lily)와 같이 일반 명사를 이름으로 쓰는 독특한 경우도 봤다. 가끔 이런 재미난 일도 생긴다.

Mickey Kim 트윗. (2013년 2월 18일)
미키 김의 트윗. (2013년 2월 18일)

이들에게 영어 이름을 쓰는 이유를 물어보면, 원래 이름이 발음하고 기억하기 어려워서라고 한다. 과연 쉽지 않은 이름들을 가졌다. 펑리, 후아구오, 바오동, 웨이리아 등.. 게다가 원래 알파벳 형식으로 쓰였던 발음들이 아니기 때문에 알파벳으로 옮겨놓고 나면 한 눈에 잘 안들어오고 기억하기 어렵다.

한국 이름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발음이나 철자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희’, ‘혜’, ‘현’, ‘혁’ 과 같이 ‘ㅎ’으로 시작하는 발음이 어렵고, ‘승’ 과 같이 ‘ㅡ’ 모음이 들어가면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데 영어 이름을 굳이 쓸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를 들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기문(Ki-moon)’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마이클 반’과 같은 이름을 쓰고 있었다면 느낌이 어땠을까? 지난번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강석희 어바인 시장도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쓴다. 다만 철자가 ‘Sukhee’라서 사람들이 ‘수키’라고 부른다고 한다.

꼭 발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영어 이름을 지어서 부르면 서로 호칭을 부를 때 직함을 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영어 이름이 편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과 외국인이 섞여 있는 자리에서 외국인에게는 ‘샘’이라고 부르면서 옆에 있는 한국인에게는 ‘김부장님’이라고 부르면 불편할 것이다. 이런 때는 둘 다 샘, 제임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편하긴 하다.

또한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영어로 된 닉네임이 있으면 남들이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이름이 미국 뿐 아니라 온 나라에서 더 널리 알려지고, 그래서 다른 이들이 한국 이름을 기억하고 익숙해지면 좋겠다. 인도 이름이 그렇게 어려워도, 인도 사람들이 하도 많으니 사람들이 이제 인도 이름에 참 익숙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아 한국 사람이구나’하고 알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한편,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나중에 외국에서 이름 문제로 고민하지 않도록 ‘상민, 수민, 지아, 유나’처럼 조금 쉬운 발음으로 된 이름을 주는 것은 어떨까도 생각해 본다.


업데이트 (4/7): 몇달 전 미국에서 만난 한 일본계 미국인 가족. 그들은 자신을 ‘타’ 패밀리라고 소개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남편의 이름은 타다시, 아내의 이름은 타미카, 첫째는 타키코, 둘째는 타로. 그들은 부모님 세대에 미국에 이민왔으므로 자신은 이민 2세, 그리고 자녀는 이민 3세가 된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므로 일본어는 거의 익숙하지 않고 일본에 가본 적도 몇 번 없다. 그래도 그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3세 자녀들에게 일본 이름을 지어주고,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미국에서 즐겁게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좋아보였다.

업데이트 (4/7): 중학교 때부터 캐나다에서 자란 후 싱가폴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고 현재는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Hyuk-Tae Kwon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나도 캐나다에서 살았던 중, 고, 대학교까지는 영어이름 David으로 살아왔다. (중략) ‘한국이름이 어려워 외국인이 발음을 못할듯해서 바꿔야해!’ 라고 주입식으로 말했던 사람들에겐 이제 자신있게 말한다 1) 내 이름조차 외우려는 노력을 안하는 사람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 2) 오히려 교양이 있는 외국인들은 나의 한국이름을 더 알고 싶어한다 3) 특히 일본친구들이 “중국친구들이나 한국친구들은 왜 영어이름을 하는지 모르겠어..”할때의 기분이란… 100년 전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창씨 개명을 종용했고 우리의 조상들은 이를 거부하였지만 지금은 어른들이, 영어선생님들이 나서서 이름을 바꾸라고 하는 상황. 개인적인 거라 문제 될건없지만 한번 생각해봐야할 일.”

업데이트 (4/7): ‘에스티마’ 임정욱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가족은 모두 영어원어민에게 발음이 어려운 한국이름을 쓰는데 무슨 철학이나 사명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게을러서… 그렇다고 바꿀 생각도 없고 사회생활, 학교생활 잘 하고 있음. 다름을 존중해주는 문화이기에 우스운 이름만 아니라면 자기 본래이름을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

업데이트 (4/8): 위에서 놓친 나라가 있는데, 홍콩은 90% 이상이 영어 이름을 쓰고 있다고 많은 분들이 알려주셨습니다. 영국 식민 통치의 영향이라고 하네요.

업데이트 (4/8): 2012년에 다니엘 튜더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 ‘진짜 이름을 부르고 싶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중앙일보에 기고했었네요.’한국: 불가능한 나라‘ 책의 저자이지요. 자기가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브래드, 제니퍼 등으로 불러달라고 하는데, 자기는 그렇게 부르기 싫다고. 남들이 자기를 철수라고 부르기를 원하지 않듯, 자기도 한국 친구를 브래드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고. 진짜 이름을 부르고 싶다고.

한국의 개발자 처우 개선, 과연 개발 환경 혁신이 먼저일까?

지난번 포스팅했던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려면에 이어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해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아래는 ‘치킨집 사장과 백발의 개발자‘라는 동아 일보 뉴스룸 기사의 일부:

실리콘밸리의 개발 환경은 촉박한 시한에 쫓겨 밤낮없이 일하고 햄버거나 컵라면으로 3분 안에 끼니를 때운 뒤 믹스커피와 박카스를 페트병 용량으로 들이켜는 국내 개발 환경과 너무 달랐다. 그곳에는 개발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위해 ‘여유’가 필요하다는 이해가 있었다. 국내에서 개발자 하면 불쌍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는 창조적 자아실현이 가능한 멋진 직업으로 느껴졌다.

개발자가 다수였던 이날의 청중은 ‘어떻게 하면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수 있냐’고 앞다퉈 질문했다. 실리콘밸리 기업에 취직하는 노하우부터 체류 비자 및 영주권을 취득하는 루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얘기들이 오갔다. 한국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갈 방법을 묻는 열기(?)를 보며 복잡 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IT 개발자를 치킨집 사장으로 내모는 이 후진적 개발 환경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소프트웨어 강국 한국’이나 ‘창조경제 실현’은 모두 구호에 불과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분당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250명이 참석하고 900명이 온라인으로 시청했던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를 본 임우선 기자가 쓴 글이다. 한국의 현실을 암담하게 느껴 실리콘밸리로 가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진심어린 애정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이런 많은 글들이 ‘개발 환경 혁신’으로 결론을 짓는다. 물론 맞는 말이고 꼭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출발점일까? 그 혁신을 누가 해야 하는걸까? 정부가 ‘개발자 처우 개선법’을 만들어 규제를 강화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의 고용주들이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고 수익성을 악화시켜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각오하고 개발자들에게 높은 연봉을 주고 근무 시간을 낮추어줘야 할까?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엔지니어들에게 ‘창조적 자아 실현’까지 해준다고 하는 건 좀 지나치게 거창한 말이지만, 많은 회사들이 왜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이 사회 사업가도 아니고, 딱히 고귀한 성품을 지닌 것도 아니다.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창업가가 많기는 하지만 결국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주주의 이익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회사는 성장하기도 힘들 뿐더러 성장한 후에도 자금난을 겪게 되기 쉽다. 개발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이유는, 그렇게 좋은 대우를 해주어 훌륭한 제품을 만들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소프트웨에 회사들은 소위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다. 일본 시계가 3백 달러에 팔릴 때, 똑같이 생긴 스위스 시계가 1만 달러에 팔리듯이, ‘메이드 인 실리콘밸리’이면 똑같은 제품이라도 더 비싸게 팔 수 있고, 영어권 국가를 대상으로 하므로 더 큰 시장에 팔 수 있다. 그러려면 품질이 월등해야 한다. 결국 개발자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품질이 월등한 제품을 만들기 쉽지 않다.

둘째, 그렇게 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경쟁이 없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매일 인재 전쟁을 겪고 있다. 소위 Top 20을 제외하면 (이미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 또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 나머지 대부분의 회사들은 엔지니어 모셔오기에 안간힘을 쓴다. 연간 500달러를 내고 링크드인(LinkedIn) 프리미엄 회원에 가입해서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엔젤리스트(Angel.co)에서는 연봉에 더해 회사 지분을 주겠다며 인재들을 유혹한다.

엔젤리스트(angel.co)에 올라온 Symphony라는 회사의 채용 공고
엔젤리스트(angel.co)에 올라온 Symphony라는 회사의 개발자/디자이너 채용 공고

셋째, 자본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앞서 든 두 가지 요소와 중복되는 면이 있는데 성장성이 있는 회사라면 투자를 받을 수 있고, 투자를 받으면 잘 나가는 회사만큼은 아니지만, 꽤 괜찮게는 대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사기업 투자가 가장 활발한 곳이 실리콘밸리이고, 이렇게 많은 돈의 주 사용처는 ‘개발자 월급’이다 (아래 그래프). 근데,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것은, 돈이 몰리니까 대우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 설명하겠다. 그리고 애초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죽,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워낙 많이 다른 기업에 높은 가격에 인수되고, IPO 가서도 가치가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돈이 몰리는 것이다. 결국,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모두 가능한 일이다.

2013년, 미국 지역별 투자 금액 (출처: MoneyTree)
2013년, 미국 지역별 투자 금액 (출처: PWC/MoneyTree)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속해 있는 직군은 다음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체 경제 규모 중 차지하는 비중을 추정해 보았다.

  1. 중, 대기업 핵심 제품 개발 부서 (10%)
  2. 중, 대기업 IT 부서 (15%)
  3. 하청 업체 / 에이전시 (20%)
  4. 기업, 국가 연구소 (5%)
  5. 온라인/모바일 게임 개발사 (25%)
  6. 고성장 스타트업 (5%)
  7. 기타 (20%)

중/대기업 핵심 제품 개발 부서의 경우, 고급 인재가 많이 있는 곳이고, 근무 시간이 길 수 있지만 대우는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 생각에 ‘치킨집’ 이야기가 나오는 곳은 IT 부서와 하청 업체, 그리고 일부 게임 개발사가 아닐까 한다. 기업의 ‘IT 부서’는 핵심 부서라기보다는 기업의 전산을 책임지는 부서인 경우가 많아 예산이 충분치 않다. 또한 소위 ‘하청 업체’는 처음부터 품질보다는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시작되는 곳이므로 엔지니어 뿐 아니라 누구도 좋은 대우를 받기 쉽지 않다. 기업/국가 연구소의 경우 인재의 질이 높고, 업무 강도가 높지는 않지만 그만큼 보수가 낮을 것 같다. 온라인/모바일 게임 개발사의 경우 경력직은 좋은 대우를 받겠지만, 주니어급 (대학 졸업 후 1~3년차) 엔지니어들의 비율이 높은 많큼 평균 보수가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도 고급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대우가 좋다. 꼭 연봉 이야기가 아니라, 개발자들이 기분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이 분야에 해당하는 비트윈, 핸드 스튜디오, 노리(KnowRe), 리디북스(Ridibooks), 아이디인큐(ID Incu) 모두 사무실 방문했을 때 분위기가 참 좋았다.

실리콘밸리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2번, 3번, 그리고 5번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2, 3번 같은 IT/인프라 관리는 단가가 낮은 인도나 중국에 아웃소싱하거나 클라우드 서비를 이용한다 (대신 확장성 높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실리콘밸리에 많다). 한편, 1번과 6번에 해당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많이 발전해 있기 때문에, 대우는 좋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경제에서 분야별로 차지하는 비중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중, 대기업 핵심 제품 개발 부서 (20%)
  2. 중, 대기업 IT 부서 (5%)
  3. 하청 업체 / 에이전시 (5%)
  4. 기업, 국가 연구소 (5%)
  5. 온라인/모바일 게임 개발사 (10%)
  6. 고성장 스타트업 (35%)
  7. 기타 (20%)
한국 vs 실리콘밸리 개발자 직군 분포
한국 vs 실리콘밸리 개발자 직군 분포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개발자 대우를 잘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옮겨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것이 맞다. 정부 지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길이 있다.

  1.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프트웨어가 해결하는 문제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따라서 부가가치가 올라가는 것
  2. 고부가가치 시장만 대상으로 해도 충분히 수익이 날 수 있도록 더 넓은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파는 것

1번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경제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이고, 그러면 점차 내수 시장이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옮겨갈 것은 분명하다.

2번의 경우 항상 이야기하는 ‘해외 진출’인데, 사실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 판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왜 쉽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소프트뱅크 벤처스 문규학 대표님이 2009년에 썼던 블로그, ‘한국벤처해외진출잔혹사‘에서 아주 잘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전유물이었던 패션/화장품 분야에서 일본이 선전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분야라고 해서 못할 것은 없다고 본다. 조금씩 벽을 깨며 세상을 놀라게 하다보면 언젠가 인식이 바뀌고, 장벽이 무너지지 않을까.

미국의 활발한 기부 문화

항상 트위터페이스북,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정말 유익한 소식을 전해주시는 임정욱 센터장님. 얼마 전 그의 블로그, ‘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On The Road – 보통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는 뉴스

이 글에서 마일즈라는 9살 아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는 20달러짜리 지폐를 주차장에서 주웠으나, 식당에서 군인을 보자 자기가 갖는 대신 편지와 함께 그에게 지폐를 주었다고 한다. 그 소년의 아버지 역시 군인이었으나 이라크에서 전사했었다. 20달러를 받은 중령은 크게 감동했고 자신도 다들 사람들에게 20달러의 지폐들을 보낸다. 이를 Pay It Forward라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의 묘비를 껴안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모습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나에게 또 감동을 준 사실은, 위에서 소개한 마일즈라는 9살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 전역에서 기부금을 보냈고, 그 총액이 무려 25만 달러 (약 2억 8천만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인구가 3억 명이고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모금 운동을 벌인 것도 아닌데 기꺼이 소년을 위해 돈을 보낸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난번 ‘기부 문화, 선진국의 척도‘라는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확실히 미국인들은 자신이 가치를 느끼거나 도리를 느끼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지난 달에는 친구의 초대로 SEO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주최하는 칵테일 파티에 갔었다. SEO는 Sponsors for Educational Opportunity의 줄임말인데, 저소득 학생들을 뽑아 8년간 대학 진학에 필요한 재정적, 교육적 지원을 해주는 단체이다. 1963년에 미국 동부에서 설립되어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2011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장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의 이사회 임원 중 한 명인 Nihir가 힐스보로우(Hillsborough)라는 부유한 동네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SEO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한 후, SEO에서 후원하고 있는 학생 두 명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SEO Scholars 이벤트
SEO가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50년의 노하우가 쌓인 덕분인지 이 단체가 이룬 업적은 실로 놀랍다. 선정된 장학생들 100%가 대학에 입학하며, 100%에 가까운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다고 한다. 또한 많은 SEO 출신들의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5000달러 이상을 기부했으며, 1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도 있다. 작년에 열렸던 50주년 기념 저녁 행사에서는 무려 $6.4 million (약 70억원)의 기부금을 모금했다고 한다.

SEO Scholars
SEO 장학생으로 선정된 두 학생들과 함께. 맨 왼쪽은 학생의 어머니이다.

SEO의 이사회 임원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인데, 이 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기회가 없었을 뻔했던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것을 정말 보람있어한다.

미국에 살면서 이런 것들을 자주 보고 경험하게 된다. 소수와 약자, 장애인, 그리고 슬픔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도움. 이는 미국에 부유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사상이 바탕이 되어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들보다 자원을 적게 가졌거나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들을 ‘Underprivileged(언더프리빌리지드)’라고 하는데, 이들을 지원하는 민간 단체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활동도 활발하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도 할 수 있고, 단순히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런 활동이 워낙 활발하니 정부와 세금에 의지하는 게 줄어들고, 더 많은 혁신을 가져온다는 긍적적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덧붙임말: 온  더 로드(On The Road)에, 3분짜리 완결성 있는 뉴스로 압축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 내가 좋아했던 또 하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고등학교 코치가 농구를 사랑하지만 발달 장애가 있는 미첼이라는 학생을 막판 1분 30초를 남겨두고 교체해서 넣었다. 이 학생은 같은 팀 선수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골 넣기를 실패하다가, 결국 마지막 몇 초를 남겼을 때, 상대 팀 선수가 공을 패스하면서 골을 성공시켜 역전승을 이룬 사건이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학생들이 열광하며 축하하는 모습이 또한 감동을 주었다. 두 학생은 나중에 엘런(Ellen DeGeneres)의 쇼에 출연해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설명하는데, 미첼은 기쁨에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

역전 골을 성공시킨 미첼에게 열광하는 선수와 관중들
역전 골을 성공시킨 미첼에게 열광하는 선수와 관중들

요즘 한국 뉴스 방송을 볼 일은 거의 없지만, 가끔 보면 살인, 자살, 사기 등의 사고가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해서 채널을 돌려 버린 적이 많았다. 물론 그런 소식을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그런 소식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시청률이 올라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애써 따뜻한 소식을 더 많이 알려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항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