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de가 주최하는 Code Conference에 참석한 버나드 문(Bernard Moon)이 올린 트윗을 따라가 기사를 읽다가 드는 생각이 있어 간략히 정리해본다. 기사는 애플 CEO 팀 쿡(Tim Cook)이 나와서 비츠(Beats)를 인수한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코드 컨퍼런스는 란초 팔로스 베르데스(Rancho Palos Verdes)라는 LA 근처 아름다운 해변 도시의 Terranea라는 고급 리조트에서 2박 3일간 열리는 컨퍼런스인데, 참가비가 6,500 달러나 된다. 사샤가 썼던 ‘비싼 컨퍼런스에 공짜로 들어가는 법‘ 팁이 여기서도 과연 먹힐 지 궁금하다. 아무튼, 참가비가 비싸고 장소도 좋은 만큼 출연진(?)이 눈부시다. 마크 베니오프(세일즈포스), 세르게이 브린(구글), 딕 코스톨로(트위터), 토니 파델(NEST), 리드 헤이스팅스(넷플릭스), 드류 휴스턴(드롭박스), 사티야 나델라(MS), 기네스 펠트로(배우), 손정의(소프트뱅크) 등이 등장해 최근 동향과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그들의 생각을 들으려면 여기를 클릭.

어제는 애플 CEO 팀 쿡이 등장했다. 질문자의 관심은 당연히 애플이 이례적으로 Beats를 3조원이라는 거액에 인수한 사건. 애플은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중에서 유난히 기업 인수에 소극적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인터뷰 간략 요약, 그리고 내 의견이다.
피터: 정말 이례적인 딜입니다. 이유가 무엇이죠?
팀: 애플은 음악을 사랑합니다. 처음부터 맥을 뮤지션들에게 팔았습니다.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음악의 힘을 믿습니다. Beats는 음악을 정말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음악 구독 서비스는 정말 제대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큐레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잘 알았지요. 알고리즘만으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추어진 헤드폰도 만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우리가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it’s because we always are future-focused.). 게다가 즉각적인 시너지 효과도 있지요. 애플의 전 세계 유통망을 통해 그들의 사업은 가속 페달을 밟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이미 많이 공개된 내용이다. 그리고 좀 뻔한 내용이기도 하다.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는 두 회사가 합침으로서 가속할 수 있는지,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그 다음, 사회자가 중요한 질문을 한다.
피터: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애플은 2003년부터 디지털 음악을 팔아왔잖아요. 마음 먹으면 음악 구독 서비스 사업은 직접 할 수 있었을텐데요? 게다가 애플은 하드웨어도 잘 만들구요.
팀: 우리는 사실 상상할 수 있는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지요. 비츠를 인수함으로써 우리는 앞서서 출발하게 됩니다. 또한 비츠에는 엄청난 인재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창의적인 영혼이며, 하나로 뭉친 정신입니다. (We could build just about anything that you could dream of. But that’s not the question. The thing that Beats provides us is a head start. They provide us with incredible people, that don’t grow on trees. They’re creative souls, kindred spirits.)

이 대사가 바로 이 글을 쓰게 만든 이유이다. “사람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참 멋있다. 나무에서 자란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을 애플은 해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지인의 추천으로 요즘 드라마 ‘정도전’을 보기 시작했는데(정말 대단한 사극이다), 정말 정도전이나 이성계 같은 사람은 절대 나무에서 자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년 전 한국과 미국의 M&A 문화 차이라는 글을 쓰면서 구글과 삼성을 비교하며 한국 기업들이 기업 인수에 조금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는 뜻을 비춘 적이 있는데, 지금의 삼성은 노키아나 블랙베리를 인수하는 대신 갤럭시를 직접 만들어서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기업 인수가 능사인 것도 아니다. (또 다른 글에서 기업 인수의 문제점을 설명한 적도 있다.) 그런데 관점의 차이는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은 전통적으로 ‘인재 교육 및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러다보니 기업의 역할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공채를 통해 뽑아 교육시키고 갈고 닦아서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고를 하기가 쉬운 반면, 미국 기업들은 수시 채용을 통해 ‘어디선가 갈고 닦고 다듬어져 온 사람에게 그 가치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고 함께 일한다는’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태도는 인터뷰 때도 많이 드러난다. 물론 내가 경력이 있는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기도하지만, 인터뷰어에게 “들어가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는 말은 먹히지 않는다. “지금가지 이러 이러한 경험을 했고, 거기서 이러이러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저는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설명해야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는 내가 지원자를 인터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팀은 계속 설명한다.
팀: 그리고, 우리도 회사를 인수합니다. 작년에만 27개의 회사를 인수했지요. 인수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만 인수하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애플은 사실 뭐든 만들 수 있으니까요. (And by the way — we do acquire companies. I know we don’t talk about them, but we’ve acquired 27 companies between fiscal year 2013 and this year so far. So we’ve never been of the mindset that we shouldn’t acquire things.
팀: 그러니까, 각 회사가 따로 만드는 미래보다 둘이 합쳐 만드는 미래가 더 낫다는 것이지요. 데이트하다가 결혼하는 이유랑 비슷합니다. 함께 미래를 보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잖아요. (And I think that future is better than either company could create on their own. That’s the reason to go from dating to steady to marriage. It’s all about the future. It’s seeing around the next corner.)
회사 인수 사건을 결혼에 비유한 것도 재미있다. 사실, 각자 알아서 잘 살 수 있는데 결혼을 선택하는 건, 결혼을 통해 함께 만드는 미래가 더 나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에는 사랑이라는 요소가 더 중요하지만). 얼마 전,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한 사건이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네이버-한게임 합병과 유사한 것으로 비교되는데, 그만큼 앞으로의 시너지가 크게 기대되는 사건이다. 애플과 비츠, 그리고 다음과 카카오, 2년쯤 후에 그 결과가 어땠는지 이 블로그에 정리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업데이트: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 (doesn’t grow on trees)”는 영어 관용 표현이라고 윤필구(@philkooyoon)님이 지적해 주셨습니다. 말 그대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예를들어 “Money doesn’t grow on trees.”라고 하면, “돈이 땅 파면 나오는 게 아니다”라는 뜻이지요. 창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감동했는데 제가 무식했던 거였군요. 🙂 어쨌든, 글 전체의 문맥에는 큰 영향이 없어 제목과 글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기본적으로 ‘개인’ 존중에 대한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집단주의 사고 방식에서 큰 집단 (대기업, 정부) 에서 작은 집단 (스타트업, 벤처기업, 개인) 을 영입하기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설비투자 등에는 아낌없이 투자를 하면서 talent acquisition을 위한 인수가 거의 없는 이유지요. 기계는 감가상각이 발생하나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기존의 임직원의 자리를 위협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화는 공채위주의 순혈주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일 민족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단일 민족의 정의가 무엇인지 궁급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그렇게 순혈의 단일 민족일까요,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렇죠? 서구인들이 한, 중, 일 동북 아시아 삼국의 사람들에 대해 비교해 놓은 글들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한국인들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때때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실제로 이렇게 자부심이 강하고 합리적 이유로 자부심을 가진다면 매우 긍정적 일입니다먄…) 가 유지 되는 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기업 중 타 기업을 인수할 능력이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대기업들이고, 소위 말하는 오너-창업자 가족들-경영자의 의지가 있더라도, 공채 출신의 임원들이 강하게 반대하면 하기 힘들게 될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관료화된 것이 한국의 대기업집단입니다. 기존의 임원들은 철저하게 해당 기업의 문화에 특화된 사람들이고, 한국의 비탄력적 노동시장에서 해당 기업에서 밀려나면, 대부분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우수한 인력 유치를 위해 인수를 한다면, 그 인력들이 자신의 현직을 위협하거나 승진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회사의 발전이나 주주 이익에 도움이 되어도 절대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현실이 그러니 다른 행동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미국은 자본시장이 발달해서 주주가치가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 중 하나이고, 노동 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어 다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기업 경영이 주주가치만을 절대적으로 고려할 수 없을지라도, 주주와 기업가치를 고려하는 풍토가 이러한 인수와 우수 인력에 대한 우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본시장의 발달은 한국경제에 현 시점에서는 순 기능이 더 많을 것입니다. 기업의 채용 문화도 지금과 같은 대규모 공채보다 상시 채용과 외부 우수 인력을 받아 들이는 방향으로 가야지 앞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평소 트위터와 블로그에 쓰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 (doesn’t grow on trees)”라는 표현에 관해서, 본인이 알게된 오류(사실 오류까지는 아니지만)를 쿨하게 인정하면서 그대로 원문을 남겨두고 업데이트로 보충설명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우리같은 소인배들은 남의 말을 잘 안듣거나 아니면 슬그머니 원문을 수정했을텐데, 선생님의 넓은 오픈마인드가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좋은 생각 계속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그렇게 보였나요? 사실 좀 민망했는데, 그래도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변함이 없어서 그대로 뒀거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