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가 위임하지 말아야 할 것

창업자 또는 CEO가 가진 가장 큰 특권은, 내 일을 원하는 만큼 팀원들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가장 큰 위험은, 위임하지 말아야 할 일을 위임해서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내가 직접 챙겨야 가장 효율적인 일을 위임하는 바람에 그 사람의 시간뿐 아니라 내 시간도 낭비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직접 챙겨야 할 일’의 정의는 따로 없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는다. 오로지 내가 결정할 일이고, 또한 시간에 따라, 회사의 단계에 따라 위임해야 할 일의 종류는 계속 바뀐다. 회사가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을 위임할 수 있고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낸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전적으로 위임하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제품 리더십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품 리더십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제품 매니저와 디자이너, 그리고 엔지니어 모두가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함께 일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서 나보다 출중한 실력을 지녔다. 하지만, 디테일. 정말 미세한 디테일은 창업자가 아니면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이건 실력의 문제도 아니고 관찰력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신기하게도, 창업자에게만 보이는 디테일들이 있다.

내가 가장 즐겨듣는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에는 이러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다이슨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청소기의 디자인과 무게, 그리고 기능성에 하나 하나 관여했던 이야기, 카인드(KIND) 에너지 바 창업자 다니엘 러벳츠키가 땅콩과 아몬드가 생산 과정에서 절반으로 잘리지 않도록 신경썼던 이야기, 그리고 스크럽 대디(Scrub Daddy)의 창업자가 뜨거우면 부드러워지고 차가우면 딱딱하게 굳는 특이한 스폰지를 들고 만져보면서 주방용으로 쓰기 위해 네모가 아닌 원형으로 디자인하고 싶었던 이유, 그리고 그 안에 눈과 입 모양으로 잘라내어서 숟가락이나 주걱 등의 앞 뒷면을 동시에 닦아낼 수 있게 디자인한 과정 등.

룰루레몬(Lululemon)의 엄청난 성공 뒤에도, 창업자 칩 윌슨(Chip Wilson)의 집념과 디테일이 숨어 있다. 몇년 전 그가 쓴 자서전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여성들이 요가할 때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고 그에 맞는 재질을 찾느라 얼마나 뛰어다니고 노력하고 고생했는지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결과가 룰루레몬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린 바지이다. 그는 여성들의 엉덩이와 다리 몸매가 가장 멋지게 보이도록, 그러면서도 캐멀 토(여성 성기가 바지 윤곽에 드러나 보이는 것)를 방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를 설명한다.

회사가 커질수록 이렇게 세세히 관여하는 건 점차 어려워진다. 또한 창업자는 제품이 아닌 다른 일들로 점차 분주해진다 – 투자를 유치하는 일, 컨퍼런스에 스피커로 초대되어 발표하는 일, 임원들과 회사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일, 그리고 기존 투자자들과의 관계 또는 이사회를 관리하는 일 등. 하지만, 정말 오랜 시간동안 위대한 제품을 만들고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들은, 창업자가 정말 오랜 시간동안 관여해서 이를 갈고 닦은 결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일은, 많은 경우 오직 창업자만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창업자가 회사를 매각하거나, 또는 사망한 후에 회사가 제품 리더십을 서서히 잃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애플(Apple)처럼 정말 커진 회사들은 예외지만, 위에 언급한 룰루레몬은, 창업자가 떠난 후에 점차 빛을 바래고 있다. 혁신이 거의 없고 이전에 했던 성공 방식대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그 결과, 새로이 등장한 알로(Alo) 도는 뷰오리(Vuori)에 성장세가 밀리고 있다. 알로가 새로 나온 브랜드이고, 유명인들과 캠페인을 많이 하고, 원단이 뛰어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룰루레몬 창업자인 칩 윌슨이 10여년 전인 2015년 회사를 떠난 것이 알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지난 5년간 룰루레몬 주가 추이. 경쟁을 의식해서인지, 그의 발언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끼쳤다는 이유로 이사회와 갈등을 빚고 사임했던 그를

사우스웨스트 항공도 창업자인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가 사망한 이후로 조금씩 예전의 차별성을 잃어가고 있다. 한 때는 가장 쿨한 항공사, 승무원들이 가장 재미있고 친절한 항공사였지만, 지금은 그냥 미국에서 운영을 잘 하고 수익을 내고 있는 많은 항공사 중 하나이다. 허브 켈러허가 그토록 강하게 고집했던 자율 좌석제, 그리고 이코노미석 한 등급으로만 운영하는 제도 등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물론 고객의 요구가 진화하면서 이에 반응하여 만든 변화이기는 하지만, 한편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다른 항공사들과 차별되는 ‘신섬함’을 잃게 만드는 변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오랜 기간동안 그 초기 정신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제품을 혁신해가는 회사들을 보면, 특히 그 회사의 창업자가 이를 끝없이 드라이브하는 경우를 보면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존경해 마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아래는 칩 윌슨이 2025년 10월에 월스트리트 저널 전면 광고로 했던 캠페인데, 창업자가 본인이 창업한 회사의 이사회를 상대로 회사의 현재 경영 전략을 전면 비판하는 내용을 홍보한 것이 무척 흥미롭다. 그가 떠난 후 룰루레몬이 엄청난 매출 성장을 하고 크게 순이익을 남기긴 했지만, 회사의 정체성이 많이 흐려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아래는 위 캠페인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그는 창업자가 떠난 뒤 이사회가 제품과 브랜드를 이해하는 사람보다 재무와 운영 중심의 인사들로 채워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회사가 장기적인 제품 혁신보다 분기별 실적과 마진, 매장 수 같은 숫자를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디자인과 창의성이 약해지고, 과거 룰루레몬의 경쟁력이었던 뛰어난 제품을 만들던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남은 조직은 과거에 잘 팔렸던 제품을 반복하는 데 집중하고, 혁신은 줄어든다. Wilson은 이를 **“GAP-ivization”**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브랜드가 평범해지고,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힘도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Mirror 인수에 약 10억 달러를 쓴 것, Disney와의 협업, 매장과 소재의 원가 절감 등을 대표적인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꼽는다. 겉으로는 매출과 이익이 좋아 보이는 동안에도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조금씩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좋은 브랜드는 숫자를 잘 관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제품과 강한 문화, 그리고 고객에 대한 집요한 이해에서 만들어진다.

매출과 이익이 당장 성장하고 있더라도 제품의 혁신성과 브랜드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성장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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