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 초기 투자했던 시콰이어 캐피털이 공개한 문서 요약

며칠 전 아래와 같은 트윗을 했었다. 15번의 리트윗에 비해 Favorite 등록이 100건인 것을 보니 많은 분들이 나중에 보려고 저장해둔 것 같다. 사실 41페이지나 되는 빡빡한 문서라 일일이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5월 6일에 했던 트윗
5월 6일에 했던 트윗

그래서 블로그 독자들을 위해 재미있게 본 부분만 몇 개 발췌해서 옮겨볼까 한다. 시콰이어 캐피털이 보관하고 있던 이 문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유는 소송 때문이다. 2007년에 미디어 자이언트인 Viacom이 자신의 컨텐트가 유투브를 통해 유통된 것을 유투브에서 막기는 커녕 오히려 도왔다며 구글-유투브를 상대로 $1B (약 1조원)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고, 이 소송은 재심, 항고 등을 거치며 2013년까지 끌다가 둘이 합이하면서 끝이 났다. 어쨌든, 그 덕에 이런 재미난 사실이 알려졌으니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Roelef Botha
Roelef Botha

이 글을 쓴 사람은 Roelef Botha로, 벤처 업계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인데, 현재는 시콰이어 캐피털의 벤처 캐피털리스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매킨지 요하네스버그 사무실을 거쳐 스탠포드 MBA를 졸업한 후, 2001년에 페이팔에 조인했고, 곧 CFO가 되었는데 이든 해에 회사가 상장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28세였다고 하니 무지하게 운이 좋다(물론 뛰어난 인재여서 잡은 기회이지만). 2003년에 페이팔이 이베이에 $1.5B 에 매각된 후 그는 회사를 떠나 시콰이어 캐피털에 합류했으며 그 이후 좋은 회사들에 많이 투자했다. 유투브는 그가 2007년에 발굴한 대박 회사이며, 그 후 에버노트, 인스타그램, 몽고DB, 스퀘어 등에도 투자했다. 그가 지금까지 투자한 포트폴리오 회사들의 총 가치가 $12B (약 12조원)나 된다고 한다. 이 문서를 보면, 그가 당시에 시장을 어떻게 봤는지, 회사에 투자할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을 엿볼 수 있다. 아래 요약. 2~8페이지는 2005년에 유투브를 처음 알게 되어 세 명의 창업자들을 만나고 투자를 결심하기로 된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유투브 창업자들이 그들의 비전을 뭐라고 설명했는지도. “사람들이 직접 만든 비디오를 인터넷에서 공유하는 가장 주된 장소가 되고 싶다는 것”. 그리고 “비디오를 찍는 기기들의 값이 싸지면서 사람들이 비디오를 더 많이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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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콰이어 캐피털의 Roelef가 쓴 문서. 유투브 창업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유투브가 저작권이 있는 컨텐트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의식적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설명한다. 즉, 비아콤이 주장하는대로 유투브가 그런 활동을 도왔다는 증거는 없다는 점과, 유투브가 그런 컨텐트로부터 돈을 벌 의도도 없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다음엔, 유투브 창업자들의 처음 보여줬던 문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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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를 만들 당시 관찰했던 비디오 공유의 문제점들: 1. 비디오 파일의 크기가 너무 크고, 2. 비디오 파일 형식도 다 다르고, 3. 연관된 비디오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없다는 것.

당시의 경쟁자들은 구글 비디오와 24 hour laundry, 그리고 DailyMotion과 Vimeo. 난 Vimeo가 유투브를 보고 따라 만든 건줄 알았는데 유투브보다 먼저 만들어진 사이트라는 점에 놀랐다. 당시에는 기술이 별로 안좋았다고 설명. 그리고 Google Video는 개인 비디오가 아닌 할리우드 비디오를 신경쓰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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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쟁자들. 물론 구글 비디오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사업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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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설명된 네 가지 모두 훗날 유투브의 가장 주된 수익원이 되었다는 점이 놀랍다. 1. 플레이되고 있는 비디오와 연관성 있는 광고 비디오를 옆에 보여줌. 2. 비디오 상영중에 광고를 오버레이로 보여줌. 3. 비디오 시작전에 짧은 비디오를 보여줌.

그리고 유투브 초기 성장 곡선이 나오는데, 투자자라면 군침을 흘릴 법한 그래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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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초기 성장 곡선

그 아래에는 Botha가 직접 작성한 문서가 나온다.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시콰이어 캐피털 내부의 다른 파트너들, 그리고 외부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쓴 것 같다. 시콰이어가 투자하고 싶었던 액수는 $1M + $4M. 그래서 회사의 30%를 소유. 만약 이대로 계약했다고 하면, $5M 투자해서 1년만에 495M를 벌었으니 연 10,000% 수익률인 셈이다. 초대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당시에는 엑싯 가능성이나 액수에 대해 그렇게 크게 보지 않고 있었던 듯. 유투브와 비슷한 회사들이 별로 크지 않은 금액에 매각되었다고 설명함. 예로 든 회사들은 $70M, $50M 정도에 매각. 트립어드바이저는 같은 부류는 아닌데 $100M에 엑싯했다고 설명 (사실 당시엔 이것도 상당히 큰 엑싯으로 생각했을듯). 그 다음엔 비용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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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운영 비용 추정. 비디오 한 개의 평균 크기를 7MB 로 낮게 잡았다. 컴퓨터 한 대당 하드디스크 크기는 320기가로 가정.

마지막엔 유투브 창업자들이 발표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슬라이드 중 하나. 1년 후 1조 7천억에 팔리게 될 회사의 발표 자료 치고는 참 소박하다는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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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가 시콰이어 캐피털의 투자를 받기 위해 발표할 때 사용했던 슬라이드

여기까지다. 전문을 보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드롭박스가 Y컴비네이터에 처음 도전할 때 질문에 답변했던 내용도 참 흥미로웠는데, 이 문서를 보니 유투브 초기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재미있어서 공유해본다.

실리콘밸리의 파워 그룹,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

2012년 5월 22일.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또 한 번 미국 역사에 기록될 업적을 남겼다. 최근 보급형 모델인 Model X를 출시한, 혁신적인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Tesla)의 창업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돈을 무려 $100M(약 1,100억원) 투자해서 SpaceX라는 민간 우주선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 회사에서 만든 우주선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우주 기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많은 미국인들의 트위터와 방송을 통해, 그의 꿈이 실현되는 장면을 감격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는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이었다.

SpaceX의 Falcon 9/Dragon 발사 장면. SpaceX는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선 회사이다 (출처: Flickr)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 이미 언론과 책에서 여러 번 다루어졌고, 너무나 유명해진 이야기이지만, 그동안 내가 모은 정보를 직접 한 번 정리해보고 싶어 이 글을 시작한다. 그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고,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때 이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용어와 그들의 스토리는 2007년에 포춘지에서 페이팔 출신 투자자, 창업가들의 사진과 함께 그들의 성공을 다루는 기사를 실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포춘지에 처음 실렸던 ‘페이팔 마피아’들. 샌프란시스코 토스카 카페에서. 갱단 복장을 하고 있다. 맨 앞의 두 사람이 피터 씨엘과 맥스 래브친이다.

페이팔 마피아가 탄생한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처음 그들이 만나게 된 과정이다. 그 이야기는 페이팔 창업자인 맥스 래브친(Max Levchin)이 일리노이 공대를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이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Founders at Work“이라는 책에 실린 그와의 인터뷰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안(security)’ 기술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교에 있을 때 이미 세 번 창업을 했다. 1998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그는 또 다른 창업을 위해 스탠포드 옆 팔로 알토(Palo Alto)의 친구 집으로 이사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며, 그리고 그의 창업에 도움을 줄 사람이 누구일까 찾기 위한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이다. 스탠포드대에서 이런 저런 강의를 들어보던 중 그는 피터 씨엘(Peter Thiel)을 만난다. 당시 헷지펀드 매니저였던 피터는 스탠포드에서 여름 학기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수업은 별로 인기가 없어서 수강생이 겨우 6명 뿐이었다. 이 수업이 훗날 페이팔을 만든 두 공동창업자가 만나게 된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내가 즐겨 듣는 스탠포드의 Entrepreneurial Thought Leaders 강연에서 피터와 맥스가 함께 나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비디오]. 이에 따르면, 당시 피터는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하고 있는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 물결 속에 자신을 위한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시카고에서 교육받은 똑똑하고 예리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업을 위해 실리콘밸리에 이사 온 맥스 레브친이 그에게는 흥미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맥스는 피터와 몇 번 따로 만나 자신이 가진 두 개의 사업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오늘날 페이팔의 성공을 만든, 이메일을 이용해서 돈을 보내는 아이디어와는 사실 거리가 멀었다. 그는 기업용 보안 기술에 관한 두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피터에게 이야기하자 피터는 그 중 하나의 아이디어가 더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헷지 펀드를 통해 맥스의 회사에 몇 십만 달러 정도를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맥스는 용기를 얻어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CEO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피터에게 돌아가서 이야기했다.

“This investment is a great thing, but I have no one to run the company. I’m just going to write the code and recruit the coders.” And he said, “Maybe I could be your CEO.” Jessica Livingston. Founders at Work: Stories of Startups’ Early Days (Kindle Locations 121-122). Kindle Edition.

“당신이 투자해 준다니 고마운데, 이 회사를 운영할 사람이 없어요. 저는 코드를 만들고 코딩할 사람을 찾는 일만 하고 싶거든요.” 그러자 피터가 이야기했다. “내가 당신 회사의 CEO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출처: Founders at Work, Kindle Edition)

그렇게 해서 피터는, 훗날 이베이(eBay)에 무려 $1.5 billion (약 1.8조원)에 매각된 회사 ‘페이팔’의 CEO가 되었다. (설립 당시 그들의 회사 이름은 컨피니티 Confinity 였다. 훗날 엘론 머스크가 만든 인터넷 은행 X.com과 합병하면서 이름이 페이팔로 바뀌었다.)

여기서, 피터 씨엘의 백그라운드를 보면 재미있다. 소위 ‘실리콘밸리스러운 이력’은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에서 트레이더로 일했고, 스탠포드 법대를 졸업한 후에는 변호사로 일했으며, 전 교육부 장관 윌리엄 버넷의 강연 라이터(Speech Writer)로 일하기도 했다. 아마존에서 1996년에 그가 공동 저작한 책을 발견했는데, 제목이 “The Diversity Myth: Multiculturalism and the Politics of Intolerance at Stanford(다양성의 미신: 스탠포드의 다문화주의와 무관용의 정치학)”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추구했던 ‘다문화주의’가 가져 온 문제점들을 비판한 내용이었는데, 1쇄만 출판되고 만 데다 독자 리뷰가 전혀 없는 것을 봐서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었던 책인 것 같다. 그가 맥스 래브친을 만난 때는 이 책을 출판하고 2년이 지난 후였다. 똑똑하고 야심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맥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훌륭한 창업가를 만나서 기회를 얻었을 테지만, 그 순간에 맥스를 만난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둘이 공동 창업한 회사의 첫 제품은 16Mhz밖에 안되는 프로세서를 가진 팜 파일럿(Palm Pilot)에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였다. 그들은 팜 파일럿과 같은 모바일 기기가 곧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소프트웨어가 기업의 민감한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데 쓰이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들이 모바일 기기 도입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바꾸고, 또 바꾸었다. 기업 대신 소비자들이 암호나 신용 카드 번호와 같은 중요한 정보를 팜 파일럿에 저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그러자 ‘돈’을 저장할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다다랐다. “돈을 안전하게 저장하고 전송하기”. 그들의 미래를 바꾼 중대한 전환(Pivot)이었다.

그 뒤는 역사이다. 그들은 이 아이디어를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에게 설명했고, 팜 파일럿을 이용해서 돈을 주고 받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투자자들은 실제로 그들의 팜 파일럿에서 맥스와 피터의 팜 파일럿으로 $4.5 million (약 50억원)을 보냈다. 흥미롭게도, 아이폰과 페이팔 앱을 이용해서 쉽게 돈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지금에도, 이렇게 돈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어쨌든, 당시 그들은 이 돈을 이용해서 자신의 인맥 가운데 있는 똑똑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훗날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될 ‘페이팔 마피아’ 멤버들은 이렇게 해서 모였다. 특정 회사 출신들이 나와서 창업하고, 투자하고, 성공하는 케이스들은 참 많지만(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야후 출신들도 많이 나와 창업했다), 페이팔 출신 중에 유난히 눈에 띄게 성공한 사람이 많은데다, 그 성공 뒤에 페이팔 출신들끼리의 밀접한 관계가 이어졌기 때문에 이들의 스토리가 더 유명해졌다.

아래에서는 페이팔 마피아의 주요 멤버들에 대해 소개하겠다.

1. 피터 씨엘(Peter Thiel)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씨엘(Peter Thiel)

위에서 설명했듯이, 그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였다. 페이팔이 이베이에 매각되던 시점에 $68 million (약 800억원) 정도를 벌었다(이 자체는 아주 큰 액수는 아니다). 그가 한 중요한 역할 덕분에 그는 마피아의 ‘대부’라 불리기도 한다.

2004년 8월, 마크 저커버그가 투자를 받기 위해 찾아왔을 때 50만 달러를 투자해서 당시 10%의 지분을 확보했고(이 장면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도 등장한다: 유투브 비디오), 그 주식은 현재 시가로 2조원어치가 넘는다[]. 또한 파운더 펀드 The Founders Fund 라는 스타트업 투자 회사를 만들어 이 회사를 통해 Quantcast, Yelp, Slide, LinkedIn, Palantir 등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성공적인 회사에 투자했다. 지금은 또한 자산 규모가 2.2조원에 달하는 헷지 펀드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20 under 20″라는 씨엘 펠로우십 Thiel Fellowship 프로젝트이다[참고: 비즈니스 인사이더]. 대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 선정되면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하는 조건으로 무려 10만 달러(1억원)를 투자받는다. 2011년에 1기, 2012년에 2기 24명이 선정되었는데, 엊그제는 1기 중 한 명이 만든 회사가 성공적으로 엑싯(exit)했다는 기사가 테크크런치에 실렸다.

씨엘 펠로우십 2012년 최종 선정자들. 이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조건으로 각자 10만 달러를 받게 된다.

2. 맥스 레브친(Max Levchin)

맥스 레브친

페이팔의 핵심 기술을 만든 천재 엔지니어이다. 일리노이 공대 출신의, 현재 36살의 그는, 페이팔 매각 후 회사를 나와 Slide.com을 만들었고, 이를 구글에 $182 million (약 2000억원)에 매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구글의 실패한 인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옐프(Yelp)에 무려 $1 million (약 11억원)을 투자했는데, 훗날 옐프가 상장하면서 큰 이익을 거두었다. 그 외에도 핀터레스트(Pinterest), 유누들(YouNoodle), 위페이(WePay) 등 10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했다. 현재는 Kaggle이라는 대용량 데이터 분석 회사의 Chairman이다[].

3. 엘론 머스크(Elon Musk)

엘론 머스크(Elon Musk)

엘론 머스크만큼 자신의 꿈에 ‘무식할 만큼’ 매진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실 그는 페이팔에서 밀려났던 사람이다. 자신이 세웠던 인터넷 은행 X.com과 피터 씨엘과 맥스 레브친이 세운 회사 컨피니티 Confinity 가 합쳐져 새로 만들어진 회사 페이팔의 CEO가 된 이후, 페이팔이 윈도우즈 시스템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맥스와 큰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 맥스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이후 페이팔을 떠났다. 맥스 또한 그 갈등 때문에 회사를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고 회상한다(주: Founders at Work).

페이팔을 떠난 후 그가 세운 회사는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이다. 디자인이 너무나 멋진 10만 달러짜리 전기 자동차 테슬라. 누구나 그 차를 보면 군침을 흘리지만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 가격도 차 가격이지만, 전기 충전소가 많지 않아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 테슬라는 보다 저렴한 (6만 달러) 모델인 Model X를 내놓았고, 지금은 전기 충전 스테이션을 여기 저기서 흔히 찾을 수 있으며(샌프란시스코 시내 전역과 주차장에서 무료 충전 스테이션을 찾을 수 있다), 닛산에서 만든 전기 자동차, LEAF도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 자동차, Model X

경기 하강과 함께 엄청난 적자가 나는 것을 보고, 저러다 회사 망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실제로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다임러 Daimler 의 투자, 주식 상장과 미국 정부의 대출 덕분에 살아났다고 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지금 전기자동차의 대명사가 되었고, 미국 주요 도시에서 전시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된 것은 SpaceX라는 거대한 민간 우주선 프로젝트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후, 그의 프로젝트는 멋지게 성공했고, 미국 우주선 개발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한때 전 인류에게 꿈을 안겨 주었던 NASA는 이제 한 물 갔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는 트위터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 설정해 놓았는데, 마치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의미하는 듯하다.

엘론 머스크의 트위터 계정 (@elonmusk).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 놓았다.

4. 스티브 챈(Steve Chen)과 채드 헐리(Chad Hurley)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두 사람이다. 페이팔의 엔지니어였던 그들은 회사를 나가 유투브를 만들었으며, 이를 구글에 $1.6 billion에 매각했다. 페이스북 초기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페이스북 이펙트”에 따르면, 스티브 챈은 유투브를 창업하기 직전 페이스북의 엔지니어로 일했었다. 요즘은 무얼 하는지 조용한데,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나온 뉴스를 보니 딜리셔스 회생시키려 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회사를 구글에 매각한 직후 스스로 찍었던 짧은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라가 있다. 행복함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표정이다.

5. 리드 호프만 (Reid Hoffman)

리드 호프만 (Reid Hoffman)

이 사람을 빼놓고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종종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넓고 깊은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으로 인용되는데, 링크트인 창업자이기 이전에 페이팔의 고위 임원(EVP)이었고 투자가였다. 그가 지금까지 투자한 50개 이상의 회사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참고: CrunchBase 프로필). 피터 씨엘과 함께 매우 초기에 페이스북에 투자하면서 페이스북 성공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많이 했었다.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성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존경을 받는 것 같다. 최근 그가 쓴 책, ‘The Startup of You(당신이라는 스타트업)‘을 읽었는데, 거기서 자신의 네트워킹 스토리와 함께 페이스북에 투자했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2004년 당시 마크 핑커스(Mark Pincus)와 친하게 지냈었는데, 페이스북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아마 페이스북에 이미 투자했던 피터로부터 소개받았던 듯하다) 자신에게 할당된 지분의 절반을 마크에게 떼어주었다. 그래서 그와 마크가 각각 5만 달러를 투자했고, 그 가치는 현재 수천억원에 이른다(주: Who Owns Facebook). 2007년, 마크 핑커스가 징가(Zynga)를 설립하자 즉시 그 회사에 투자했고, 나중에 Zynga가 나스닥에 상장하며 또 큰 돈을 번다.

6. 제레미 스토플만(Jeremy Stoppleman)

그는 페이팔의 엔지니어였는데, 페이팔을 나와 옐프(Yelp)를 창업했고, 앞서 블로그에서 소개했듯(주), 옐프는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옐프와 제레미 스토플만에 대해서는 밸리인사이드의 글, “옐프, 미국 최대의 지역 리뷰 사이트“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7. 데이브 맥클루어(Dave McClure)

페이팔의 마케팅 디렉터였던 그는, 현재 500 Startup이라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CEO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창원님의 글 “500 스타트업 이야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의 사례

‘한국의 페이팔 마피아’로 불릴 만한 사례는 테터앤컴퍼니이다. 노정석 대표가 창업한 이 회사는, 2008년에 구글에 인수된 이후 김보경, 한영, 차경묵, 정윤호 대표 등 5명의 창업자를 배출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김창원 대표가 구글에서 나와 타파스미디어를 설립했다.

내가 있었던 게임빌에서도 창업자들이 많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당시 상황이 페이팔 초기와 비슷했다. 페이팔은 1999년 1월 1일에 만들어졌고, 게임빌은 2000년 1월 11일에 만들어졌다. 게임빌이 2000년 4월 첫 게임을 출시한 후, ‘서울대 벤처 동아리’출신 송병준 대표가 만든 회사라는 소식이 수많은 신문에 인용되었고, 서울 공대 및 경영대에 포스터를 붙인 후에 서울대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게임빌 문을 두드렸었다. 그렇게 해서 게임빌에 합류한 사람 중 몇몇은 게임빌에 남아 회사를 성장시켰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게임빌을 거쳐 다른 회사에 가거나 창업을 했다.

1) 정성은, 최영수

게임빌에서 오랜 시간 일했던 이 둘은 2009년에 위버스마인드라는 영어 교육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의 첫 작품은 워드스케치(Word Sketch)인데 그림을 이용해서 단어를 외우면 더 쉽게,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단어 하나 하나마다 그림을 그려 단어 암기용 단말기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에는 뇌새김 토크를 출시했다.

2) 문성훈

게임빌에서 초기에 모바일 마케팅을 담당했던 그는 모바일 게임 회사 엔소니를 창업한 후, 이를 보라넷에 매각했다. 엔소니는 모바일 RPG 게임 장르에서 확고한 인지도를 구축했고, 최근 스카이레이크에서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였다.

3) 박정우, 송일규

이 둘 역시 게임빌에서 기획자, 개발자로 일하다가 에버플이라는 모바일 게임 회사를 만들었는데, 최근 게임빌을 통해 퍼블리싱한 데스티니아는 출시 첫 날 앱스토어 RPG 장르 1위를 차지하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게임빌의 개발자였던 정주영씨는 훗날 로티플의 창업 멤버가 되었고, 이 회사는 2011년 말에 카카오톡에 인수되었다.

제 2, 제 3의 페이팔 마피아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비젼이 있는 사람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이 모여 역사에 남을 회사를 만든 후, 나가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는 사례는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다.

참고 링크:

내가 좋아한 유투브 비디오 7개

블로그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Sungmoon’s Blog”였는데, 한글 제목으로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뭐라고 달까 며칠 고민하다가 마땅한 제목이 안떠올라 그냥 제가 좋아하는 블로그,’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를 본따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라고 붙여봤습니다. 꼭 실리콘밸리 이야기만 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조성문의 블로그’ 이러기도 뭐하고 해서..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동안 트윗했던 내용 중 정보성 글들을 모아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최근에 봤던 제가 좋아한 유투브 비디오를 몇 개 공유해봅니다.

1. “할렐루야”. 크리스마스에 푸드코트에서

오래 전에 봤던건데, 다시 봐도 참 감동적입니다. 2010년 11월 13일. 푸드코트에서 갑자기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대학교 때 성가대에서 이 노래를 부른 적도 있고, 어쩌다가 드럼을 쳤던 기억이 있어서 이 곡은 저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전화기를 한 손에 들고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와 할아버지가 인상적입니다. 다들 다채로운 복장을 하고 있어서 아주 재미있네요.

2. 춤의 진화 (Evolution of Dance)

몇 달 전에 친구를 통해 처음 봤는데, 정말 한참을 웃었습니다. Judson이라는 이 사람 대단합니다. 70, 80년대 곡부터 알만한 곡들을 골라 춤으로 보여줍니다.

좀 어색해보이는 복장과 절묘한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부드럽게 춤을 출 정도로 하려면 연습을 정말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한국 가요에 나왔던 춤들을 모아 (소방차의 ‘그녀에게 전해주오’쯤부터 시작해서, 박남정 춤이라든지 김건모 춤이라든지…) 누가 이런 춤을 추어 보면 대 히트를 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비디오로 유명해진건지 원래 유명했던건지 모르지만, http://www.mightaswelldance.com/ 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책과 비디오를 만들어서 팔고 있네요. 일단 사람들을 모으면 돈이 된다는 것, 우리나라 약장사들이 가르쳐준 원칙이지요.

3. 일본 몰래카메라 (Japanese Prank)

민망한 비디오지만, 누군가를 배터지게 웃게 하고 싶을 때 보여줍니다. 그냥 생각 없이 웃으면 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대박입니다.

4. Harley Davidson 광고

당시 유행하던 ChatRoulette(챗 룰렛)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할리 데이빗슨 마케팅을 했던 내용입니다. 돈을 한 푼 안들이고 이렇게 효과적인 광고를 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투브에 이런 광고가 많이 있지요. 잘 이용하는 사람은 큰 돈 안들이고도 돈을 법니다.

5. Dear Sophie (소피에게: 구글 크롬 광고)

딸이 태어난 날부터 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장면, 뭉클합니다. 저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태어나는 날부터 편지를 쓰는 거지요. 나중에 아이가 이메일을 열면 어떤 기분일까요?

6.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사

이미 너무나 유명한 연설이죠.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보다, 저에겐 이 연설이 더 큰 감동을 줍니다. 미국에 유학 오기 전에 오디오를 따로 MP3 플레이어에 넣어놓고 차가 막힐 때마다 듣곤 했습니다. 듣고, 또 들어도 감동은 여전합니다. 얼마 전에 생각나서 또 한 번 봤었어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돕니다.

7. 감동적인 프로포즈

극장에서 프로포즈한다기에 그냥 영화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 앞에 나가서 프로포즈하는건가보다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감동적으로 잘 만들었습니다. 비디오 조회수가 거의 천만에 이릅니다. 천만 번의 클릭이라니, 경이롭습니다. 둘의 홈페이지, MattandGinni.com도 확인해보세요. 자기들의 간략한 소개와 함께 광고가 달려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광고로 얼마만큼의 돈이 들어오는지 궁금하네요. 매달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만큼의 돈은 나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