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오션은 없다

한때 ‘블루 오션(Blue Ocean)’이라는 단어가 전국을 휩쓴 적이 있다. 2004년에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가 블루 오션 전략 (Blue Ocean Strategy)이라는, 세계에서 35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의 한국어판을 내놓으면서 유행했던 용어이다. 요즘 투자를 하며, 강연을 하며,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며 그 말의 의미를 많이 생각해보고 있다. 사실상 일반적인 의미의 블루 오션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란, ‘누군가가 이미 깃발을 꽂아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빈 땅으로 보이는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를 말한다. 너무나 경쟁자가 많아서 핏빛으로 보이까지 하는 레드 오션(Red Ocean)과 정반대되는 느낌의 멋진 장소.

그 때 책에서 설명했던 블루 오션 전략의 정의를 다시 찾아봤다. 이렇게 쓰여 있다.

가치혁신을 통해 경쟁이 치열한 기존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블루오션)을 창출하는 전략

반면 레드 오션 전략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기존의 한정된 수요시장(레드오션)을 대상으로 차별화나 비용절감 등의 경쟁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통적 경쟁전략

두 교수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블루 오션이라는 건 어떤 존재하는 장소나 시장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단어는 ‘새로운 시장’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가치 혁신을 통해’라는 단어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과학자들이 말하는 최초의 인간은 무려 280만년 전에 존재했다 (성경을 근거로 한 조사에 따르면 아담은 12만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그 오랜 시간동안 태어나고 죽은 수백억, 어쩌면 수천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왔는데 세상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시장이 있다고 믿는 것도 어쩌면 무모한 일이다.

몇달 전, 좋은 제품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엔젤리스트(Angelist)를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다. 이 사이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는 커녕, 이 세상에 누군가가 이미 하고 있지 않은 아이디어는 없다는 것을 느끼고 좌절하게 된다. 엔젤리스트에서 지역을 ‘실리콘밸리’로 좁혀 스타트업을 검색하면 무려 18,365개의 회사가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스타트업으로만 좁혀도 10,110개이다. 그 리스트 안에 핀터레스트(Pinterest), 우버(Uber), 에어비엔비(Airbnb) 같은 회사의 프로필이 포함되어 있다. 엔젤리스트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사이트이고, 여기에 프로필을 가진 스타트업은 적어도 어느 정도 걸러진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 중 절반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곳이라고 가정해도 실리콘밸리 지역에 1만 개의 가까운 스타트업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 스타트업의 상당수는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포드, MIT, 버클리 등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명문 회사’에서 좋은 경험을 한 경력이 있는 창업자들이 만들었고, 그 중 많은 수가 안드리센 호로위츠, SV Angels같은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엔젤리스트에서 정리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리스트
엔젤리스트에서 정리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리스트

이 1만 8천개의 스타트업들은 정말 ‘끼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구석 구석에 모두 포진해 있다. 최근 도어대시(DoorDash), EAT24 와 같은 음식 배달 서비스들이 인기를 끌면서 푸드 테크(Food Tech)라는 단어가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소위 푸드 테크에 어떤 스타트업들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검색을 했다가 아래와 같은 도표를 발견했다. 음식 배달 뿐 아니라 음식점 리뷰, 레시피 정리, 쿠폰 딜, 온라인 그로서리 등 음식과 관련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있다. 정말이지 빈틈이 있을까 싶다.

푸드 & 미디어 산업에 속한 스타트업들
푸드 & 미디어 산업에 속한 스타트업들 (http://www.foodtechconnect.com)

가끔 ‘세상을 바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며 투자를 요청하는 창업자의 이메일을 받는다.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으므로 빨리 만들어야 하며, 아이디어가 실현에 옮겨졌을 경우 잠재 시장은 1조원이 넘는다는 식이다.

만약 나에게 어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엔젤리스트같은 사이트에 찾아보니 없다면? ‘세계 최초’를 만든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겠다거나, 이미 누군가가 수없이 시도했는데 모두가 실패했던 분야에 발을 담그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할 일이다.

이보다 더 맞는 사고 방식은 피터 틸(Peter Thiel)이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정리했듯, 자신이 끼어들 수 있는 아주 작은 영역을 만들고, 그 안에 진을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들어가면 자신만의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야 한다. 브랜드 아니면 기술을 이용해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피가 튀는 전쟁터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수많은 전사자들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전사자 위에 거대한 거인들이 버티고 있고, 그 거인들의 그늘 밑에서 난장이들이 자신만의 땅을 차지하려고 뛰어다니는 모습. 그런 전쟁터에 들어가자면 먼저 칼과 창이 하나 있어야 하고, 방패를 들고 갑옷을 입고 들어가야 하고, 일단 들어가면 버텨야 한다. 이왕이면 자신과 좀 다른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 팀을 만들어서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한 명은 전사, 한 명은 마법사, 한 명은 궁사 이렇게. 물론, 팀이 클수록 몬스터를 죽이고 나서 자기가 차지할 수 있는 아이템 수가 줄어들므로 가장 적은 수로 가장 큰 몬스터를 죽일수 있다면 좋을 것이고.

온라인 게임 길드워 2(Guild Wars 2)의 한 장면.
온라인 게임 길드워 2(Guild Wars 2)의 한 장면.

블루 오션은 없다. 블루 오션을 만들어내는 전략이 있을 뿐이다.

 

One thought on “블루 오션은 없다

  1. Thank you!!! 요즘들어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작은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는 사실을…
    조선생님의 글도 간결하면서 임팩트가 있어서 좋습니다.
    끝까지 세상 풍파에 꺽기지 말고, 앞으로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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