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의 가치

내가 투자하는 일도 한다고 하면 종종 사람들이 묻는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투자를 받을 수 있나요?” 거기에 대한 대답은 ‘없다’이다. (그 전에 회사를 만들어 매각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예외이지만, 그런 사람은 굳이 나에게 와서 투자를 묻지도 않는다. 이미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을 것이므로.) 설사 아이디어만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다 해도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투자를 받는 건 투자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한 자신만 손해보는 일이다. 아이디어로 막상 팀을 모아 프로토타입을 만들게 되기까지 온갖 문제에 부딪칠텐데 잘 안되면 어떻게 하는가? 반대로 회사가 잘 되면 그것도 문제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시작한 회사의 일부를 너무 싸게 판 것이기 때문이다.

Y컴비네이터를 만든 폴 그래험(Paul Graham)은 How to Start a Startup(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방법)이라는 글에서 아이디어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An idea for a startup, however, is only a beginning. A lot of would-be startup founders think the key to the whole process is the initial idea, and from that point all you have to do is execute. Venture capitalists know better. If you go to VC firms with a brilliant idea that you’ll tell them about if they sign a nondisclosure agreement, most will tell you to get lost. That shows how much a mere idea is worth. The market price is less than the inconvenience of signing an NDA. (스타트업에게 있어 아이디어는 시작일 뿐이다.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가장 중요한 건 아이디어라고 이야기하고, 그 다음부터는 실행만 하면 된다고 한다. 투자자들은 이보다 더 잘 안다. 당신이 VC에게 찾아가, 아이디어를 들으려면 기밀 유지 협약(NDA)에 사인부터 해야 한다고 하면 그들은 당신에게 그냥 가버리라고 할 것이다. 아이디어의 가치가 그정도 뿐이다. 아이디어의 시장 가치는 NDA에 사인하는 불편함보다도 낮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감이 많이 되는 것이, 스타트업이 만든 제품이 고객의 마음을 얻고, 그 회사가 직원들을 더 뽑아 성장하고, 기존 강자를 이기고 결국 고지에 오르기까지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닌 수백가지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므로, 맨 처음 한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는 스타트업이 성공할 지 못할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아이디어를 가지고 투자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투자를 받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단계에서는 투자를 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듯,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가 블루 오션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10년 전, 페이스북과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을까? (참고로, 페이스북 설립일은 2004년 2월 4일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허접하게나마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그것을 하버드 학생들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하버드 학생 거의 대부분이 페이스북에 계정을 만들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Derek Sivers가 쓴, Ideas are just a multiplier of execution (아이디어는 실행의 배수일 뿐이다)라는 글에 등장한 아래 숫자들이 재미있어 소개한다. 이 숫자들이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Good Idea와 Good Execution이 결합하면 회사 가치는 10 * $100,000 = $1 million이라는 뜻이다.

'아이디어 X 실행'이 회사의 가치
‘아이디어 X 실행’이 회사의 가치.

그래도 아이디어가 중요하기는 하다. 이것이 시작 지점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 멤버들을 데려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크리스 딕슨 (Chris Dixon)The Idea Maze(아이디어 미로)라는 글에서 설명했듯, 아이디어는 ‘세상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면’ 좋다.

Good startup ideas are well developed, multi-year plans that contemplate many possible paths according to how the world changes.

하지만 대부분의 초기 아이디어는 큰 의미가 없다. 이것이 프로토타입이 되면 조금 쓸모가 있어진다. 프로토타입을 유저들과 고객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 회사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투자를 유치하는 이득보다 회사의 지분을 파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게 되는 시점, 바로 그 때가 투자를 받는 적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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