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듣는 팟캐스트 두 개 소개

1. Masters of Scale with Reid Hoff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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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이 끝나고 나서 시즌 2가 언제 시작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이번주 에피소드는 다름 아닌 슬랙(Slack)의 창업자인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드 호프만 씩이나 되는 바쁜 억만장자가 자기 시간을 들여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걸 일일이 편집해서 (물론 팀이 있지만) 팟캐스트를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다니, 팟캐스트가 정말 대세이긴 하다.

그가 호스트이다보니 실리콘밸리에서 그가 부를 수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정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연진이 너무나 화려하다. 에어비엔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 Walker and Co. CEO 트리스탄 워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 알파벳 의장 에릭 슈미트,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 등.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시간을 한 시간씩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도 공짜로.

이들을 인터뷰하며 호프만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스케일’. 즉, 스타트업을 처음 시작하고, 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이들 CEO들이 그 순간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파고들어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배울 점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이 팟캐스트가 독특한 점은, 단순히 질문과 답변 형식이 아니라는 것. 그들을 인터뷰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중간 중간에 리드 호프만이 끼어들어 설명한다. 왜 그들의 말이 옳은지, 왜 스케일한다는 것은 스케일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인지, 어떻게 그 자신도 링크드인을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는지를 부연 설명하는데, 너무나 친절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기분이다.

특별히 어느 에피소드가 더 재미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흥미진진하다. 에어비엔비 창업 스토리는 이미 익숙하지만, 브라이언의 입을 통해 들으니 또 들어도 재미있었고, 마크 저커버그 에피소드에서도 처음 듣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다. 특히 그가 페이스북을 만들기 전에 어린 시절(12살)때부터 만들었던 앱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페이스북 초기 시절에 내렸던 제품에 대한 고민과 결정들을 들으면서 페이스북이 결코 우연이나 운에 의해 탄생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CEO로서 그가 내린 수많은 의사 결정 중 제품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한 이야기이다. 그는 일생을 거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에 가장 관심이 있었고, 그것을 원칙으로 삼아 제품의 아주 구체적인 부분까지 의사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페이스북이다.

얼마 전에 UCLA Anderson (MBA) 출신 CEO 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 연사가 아래와 같은 질문을 했다.

“CEO로서 당신이 회사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가?”

참석자들이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대답했는데, 내가 했던 대답은 ‘제품과 관련된 의사 결정’이었다. CEO로서 회사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있고, 좋은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 것도 있고, 또 고객을 만나고 그들을 데려와야 하는 것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가 회사에 한 가장 큰 기여는 제품의 방향을 결정한 일들이었던 것 같다. 고객들이 요청하는 기능은 무척 많고, 우리가 그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 또한 매 순간 변하기 쉽다. 내 스스로가 엔지니어였었고 (지금도 엔지니어이고), 또 오라클에서 제품 관리자 역할을 해봤던 것이 이런 결정을 빨리, 그리고 맞게 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2. How I Built This (by Guy Raz)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무언가를 만든 사람들을 한 명씩 인터뷰하며 만든 팟캐스트. 비슷한 목적의 팟캐스트는 많지만 이 팟캐스트가 유난히 빛나는 이유는 진행자가 가이 라즈(Guy Raz)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가 지금까지 빌게이츠, 에미넴, 테일러 스위프트, 지미 카터, 알 고어 등을 포함해 6,000명을 넘게 인터뷰했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인터뷰어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그의 인터뷰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항상 ‘행동의 동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이미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내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Guy 앞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게 실력이다. Ted Radio Hour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이미 귀에 익었는데, 이 How I Built This 시리즈는 그의 매력을 또 다른 차원에서 발산한다.

아래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최근 에피소드들, 그리고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

  • Southwest Airlines: Herb Kelleher
    • 변호사이던 그가 텍사스에서 항공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50만달러를 투자받았으나, 당시 대형 항공사가 소송을 거는 바람에 4년동안 비행기 한 대도 띄우지 못하고 투자금을 모두 날린 사연
    • 즐겨 먹는 ‘와일드 터키(Wild Turkey)’가 그를 항상 낙천적인 사람으로 만든 사건
  • Starbucks: Howard Schultz
    • 맨하탄에서 제록스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그가 시애틀 출장갔다가 커피 향에 반해, 당시 커피 원두만을 팔던 ‘스타벅스’에 1년동안 졸라서 겨우 취직하고, 또 창업자들을 설득해 매장에서 커피를 직접 팔게 된 이야기
    • 이탈리아 출장에서 사람들이 여유 있게 커피를 즐기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제 3의 공간‘을 생각해내고, 이를 스타벅스에 적용한 이야기
    • 자기 자신의 투자자들에게 배신을 당해 스타벅스를 잃을 뻔하다가, 같이 농구하던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빌 게이츠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를 통해 구원을 받은 이야기
  • Chipotle: Steve Ells
    • 공장에서 만들어져 배급되는 맥도널드 방식의 패스트 푸드에 반기를 들고, 그 날 매장에서 썰어 그 날 파는 신선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멕시칸 레스토랑을 만들게 된 사연
    • 맥도널드의 투자를 받아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지만, 결국 철학이 맞지 않아 다시 갈라서게 된 사연
  • WeWork: Miguel McKelvey
    • 건축을 공부하고 맨하탄의 한 건축 사무실에 취직한 그가, 사무 공간을 임대하는 아이디어를 얻기까지의 과정
    • 2009년 경제 위기에 맨하탄의 빌딩들이 줄줄이 비어갈 때, 과감히 도전해서 사업을 키워가는 이야기
    • 위워크(WeWork)라는 이름을 생각해내게 된 계기
  • Five Guys: Jerry Murrell
    • 텍사스에서 가족을 위해 버거를 굽던 아버지가, 멀쩡한 직업을 그만 두고 햄버거 가게를 차린 사연
    • 아들 4명이 모두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아 일을 하고, 궁극적으로 Five Guys를 미국 전역에 퍼뜨린 이야기
    • ‘Five Guys’라는 이름이 자신과 네 명의 아들을 지칭하는 뜻이라는 것
  • Whole Foods Market: John Mackey
    •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가 사 오는 즉석 음식에만 익숙해진 그가, ‘건강’과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결국 야채가게 직원으로 취직해서 자신의 인생을 찾게 된 이야기
    • 텍사스 오스틴에서 시작한 작은 오가닉 스토어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차 유명해진 과정
    • 홍수로 인해 모든 걸 날리고 사업을 접기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
    • ‘Organic Foods’ 등 다른 이름을 제치고 ‘Whole Foods Market’이 이름으로 선정된 사연

참고로 아래 팟캐스트들은 너무나 유명해서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지만, 혹시 아직 못 들은 분을 위해 몇 가지 추가한다.

  • 시리얼(Serial)
    • 1999년, 발티모어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이해민(Hae Min Lee)이 어느날 실종되고, 인근 공원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당시 그의 남자친구였던 아드난 사이드(Adnan Syed)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다른 학교 친구의 증언으로 아드난이 감옥에 수감된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일까?
    • 진행자인 사라 쾨닉(Sarah Koenig)은 당시 사건을 기록한 수천 건의 문서를 다시 뒤지며, 어쩌면 아드난이 살해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이 사건을 되짚는다. 마침내 아드난과의 인터뷰까지 시도.
  • 스타트업(Start-Up)
    • NPR 출신인 알렉스 블룸버그(Alex Blumberg)가 안정적인 회사를 나와 팟캐스트 회사를 차리고, 동업자와 지분을 협의하고, 벤처캐피털리스트를 만나 투자를 받고, 회사를 성장시키까지의 과정을 스스로 녹음해서 생생한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 특히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크리스 사카(Chris Sacca) 앞에서 엘리베이터 피칭을 하다가 제대로 실패하고 당황하는 장면은 최고다. 당시에 미국 투자자들을 만나 내가 제대로 피칭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렉스가 버벅대는 것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
    • 시즌 1을 들어야 한다.
  • TED Radio Hour
    • 위에서 소개한 가이 라즈(Guy Raz)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TED를 보며 영감을 얻고 싶은데 일일이 볼 시간이 없다면, 라디오 형식으로 편집되고, 연사의 인터뷰까지 담은 이 팟캐스트가 매우 유용하다. 나는 운전할 때 가끔 듣는데, 들으면서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었다.

결국은 제품이다

한밤중에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끄적끄적. 나중에 내가 성공해서 내 돈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이 된다고 하면 절대 투자하지 않을 회사는 제품은 그저 그런데 수상 실적이 많고 CEO의 말발이 좋은 회사이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고, TechCrunch Disrupt, SXSW 같은 행사에 나가서 투자자들에게 피치하고 수상을 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회사의 주된 경력이 그런 것들이라면 정말 경계해야된다.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주의 제품을 만들다보면 실제 고객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 자꾸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된다. 유행에 따르고, 투자자들이 좋아할만한 기능들만 자꾸 추가된다. 더 위험한 건, 수상 경력과 상금 때문에 마치 회사가 돈이 많고 잘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싸이월드가 먼저 개척했기 때문에, 한국의 환경이 좋았더라면, 그리고 정부와 투자자들의 뒷받침이 있었더라면 오늘의 페이스북 자리를 싸이월드가 꿰차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전혀 공감할 수가 없다. 당시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초기 버전은 제품의 질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창업자 분께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클릭할 때마다 새로운 팝업이 뜨고, 사진은 항상 작은 크기로밖에 볼 수 없는 제품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전 세계 유저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모두 카리스마를 지닌 CEO들이며, 애플과 테슬라, 그리고 SpaceX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보유한 위대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아이폰을 샀는데 6개월만에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면? 테슬라 차를 샀는데 3개월만에 손잡이가 녹슬기 시작한다면? 수백조원의 기업 가치를 지녔다 할지라도 제품에 문제가 자꾸 나타나면 그 수백조원이 증발해 버리는 건 하루 아침의 일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얼마나 일론 머스크가 제품에 집착했는가이다. SpaceX에서도 그렇고 테슬라에서도 그렇고, 비정상적이리만큼 제품의 디테일에 신경썼다. 테슬라의 알루미늄 바디, 17인치 LCD, 자동으로 나오는 문 손잡이, Telsa X의 위로 열리는 문, 우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로켓 등. 엔지니어들은 안된다고, 싫다고 한 일을 그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제품의 그런 특징들이 소비자들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CEO의 소셜 네트워크 팔로워 숫자, 카리스마와 자금 조달 능력, 그리고 네트워크 등등은 모두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좋은 제품’만큼 길게, 그리고 넓게 갈 수는 없다. 사람의 말은 겨우 100미터밖에 못가지만 글은 10,000km를 여행하고, 또 1,000년 이상을 살아있을 수 있는 것처럼.

넥스트 빅 씽(The Next Big Thing)

3일 전, 인터넷을 뜨게 달궜던 글 하나 소개. 에어비엔비(Airbnb)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가 쓴 7번의 거절(7 Rejections)이라는 짧은 글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회사 초기 시절이었던 2008년, 친구의 소개로 7개의 벤처캐피털과 연락이 닿아 이메일을 보냈는데, 5개 회사가 거절 이메일을 보냈고 나머지 두 개는 답장을 안했다고 한다. 당시 제시했던 조건은 $150k(약 1억 7천만원)에 회사 지분의 10%를 파는 것이었는데, 만약 그 때 이 지분을 샀다면 그 후 희석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가치가 수조원에 달한다 (Airbnb의 현재 회사 가치는 $24B, 약 27조원). 100배, 1000배도 아니고 무려 10,000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일생 일대의 기회를 놓친 것.

그리고 아래와 같이 그 때 받았던 이메일들을 공개하며,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했을 때 아래 이메일들을 기억하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다음과 같다.

답장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게에 좋은 투자 기회는 아닌 것 같아요. 잠재 시장이 크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크지가 않네요.
다시 연락줘서 고마워요. 목요일까지 자리를 비울 계획이라 오늘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네요. 지금까지 잘 해온 것 같네요. 그렇지만 투자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떤 기분이 드는지? ‘에구 멍충이들… Airbnb같은 좋은 투자 기회를 놓치다니. 게다가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다고? 이런 바보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고 투자자들을 무시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당신이라면 그 당시 Airbnb를 보고 투자하는 기회를 잡았을까?

최근 읽었던 중에 나에게 참 와닿았던 글이 있다. 현재 안드리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의 제네럴 파트너(General Partner)로 있는 크리스 딕슨(Chris Dixon)이 2010년 초에 썼던 ‘미래의 큰 물건은 처음에는 장난감처럼 보일 것이다(The next big thing will start looking like a toy)‘라는 글이다. 클레이 크리스텐슨(Clay Christensen)의 ‘파괴적 기술’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Disruptive technologies are dismissed as toys because when they are first launched they “undershoot” user needs. The first telephone could only carry voices a mile or two. The leading telco of the time, Western Union, passed on acquiring the phone because they didn’t see how it could possibly be useful to businesses and railroads – their primary customers. What they failed to anticipate was how rapidly telephone technology and infrastructure would improve (technology adoption is usually non-linear due to so-called complementary network effects). (파괴적 기술은 처음엔 장난감처럼 보일 겁니다. 이는 그런 기술들이 사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죠. 처음 나온 전화는 2~3km 정보밖에 신호를 송신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가장 컸던 회사 웨스턴 유니언은 전화 사업을 패스했죠. 어떻게 그게 쓸모가 있을지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그들이 한 가지 놓친 건 얼마나 빨리 전화 기술이 발전하고 인프라가 개선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장난감처럼 보인다고 다 미래의 ‘대박(the next big thing)’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장남감과 진짜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보아야(look at products as process)  한다고. 이 말의 의미는, 제품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을 둘러싼 주변 기술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고 의미가 있는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빌이 그랬다. 처음 내가 만들었던 모바일 게임은 스네이크(Snake)였는데, 그야말로 장난감이에 불과했다. 뱀이 하나 등장하고, 먹이를 먹으면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다. 만드는 데 일주일도 안걸렸던 것 같다. 압축한 게임 용량은 20KB쯤? (MB를 잘못쓴 것이 아니다)

내가 처음 만들었던 모바일 게임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내가 처음 만들었던 모바일 게임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그 다음에 세 명짜리 팀을 꾸려서 만든 게임인 커넥트 포(Connect 4)도 그냥 장난감 수준이었다. 그 다음에 공을 들여 ‘라스트 워리어(Last Warrior)’라는 야심작 롤플레잉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젤다의 전설’에 비하면 여전히 장난감. 다행히 그런 장난감을 사람들이 5000원씩 주고 샀고, 우리는 월 1,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리고 그 돈은 더 많은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변 기술이 끝없이 발전했다. 64KB에 불과했던 메모리와 24KB에 불과했던 저장 공간은 1년만에 10배로 커졌으며, 2년 후에는 칼라 폰이 나왔다(우리가 처음 게임을 만들 때 모바일 폰들은 모두 흑백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스피커에서 나오던 삐삐삐 하던 후진 소리도 조금 그럴듯한 소리로 바뀌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경쟁적으로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고, 거기에 따라 우리는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었고 사람들은 더 많은 게임을 즐겼다. 그 후는 역사이다. 게임빌은 시가총액 7000억원의 회사가 되었고, 한편 ‘서머너즈 워‘로 유명한 컴투스는 1조 4천억원의 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두 회사는 기존 일본의 강호들을 이길 정도의 파워를 가지게 됐다. 그야말로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이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LG전자 아이북 폰에 출시한 스네이크 게임에서 시작되었음을 생각하면 좀 웃음이 나온다.

처음으로 게임 다운로드가 가능했던 휴대폰, LG 아이북
처음으로 게임 다운로드가 가능했던 휴대폰, LG 아이북

물론, 오늘날의 게임빌 게임들은 용량이 수백 메가바이트에 달하며, 3D 그래픽과 각종 특수 효과가 화면을 가득 메운, 큰 스케일과 멋진 영상을 자랑한다.

게임빌이 최근 출시한 게임 중 하나, 'MLB 퍼펙트 이닝 15'
게임빌이 최근 출시한 게임 중 하나인 ‘MLB 퍼펙트 이닝 15’

좋은 제품을 못 알아봤던 투자자들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2008년 당시의 에어비엔비(Airbnb)도 사람들에겐 당연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절대 큰 물건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장난감. 위험 요소가 너무 많고 커진다 해도 여전히 별 게 아닐 것처럼 보이는 물건. 장난감처럼 보이는 물건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대개 창업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이다. 오랫동안 창업자들을 지켜보았고, 창업자들이 만든 물건이 지금은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뭔가 분명히 큰 일을 낼 것이라 믿는 사람들. 내가 했던 엔젤 투자들도 모두 그랬다. 물건은 장난 같았지만 창업자들의 눈빛 속에서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을 보았기 때문.

아이디어의 가치

내가 투자하는 일도 한다고 하면 종종 사람들이 묻는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투자를 받을 수 있나요?” 거기에 대한 대답은 ‘없다’이다. (그 전에 회사를 만들어 매각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예외이지만, 그런 사람은 굳이 나에게 와서 투자를 묻지도 않는다. 이미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을 것이므로.) 설사 아이디어만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다 해도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투자를 받는 건 투자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한 자신만 손해보는 일이다. 아이디어로 막상 팀을 모아 프로토타입을 만들게 되기까지 온갖 문제에 부딪칠텐데 잘 안되면 어떻게 하는가? 반대로 회사가 잘 되면 그것도 문제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시작한 회사의 일부를 너무 싸게 판 것이기 때문이다.

Y컴비네이터를 만든 폴 그래험(Paul Graham)은 How to Start a Startup(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방법)이라는 글에서 아이디어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An idea for a startup, however, is only a beginning. A lot of would-be startup founders think the key to the whole process is the initial idea, and from that point all you have to do is execute. Venture capitalists know better. If you go to VC firms with a brilliant idea that you’ll tell them about if they sign a nondisclosure agreement, most will tell you to get lost. That shows how much a mere idea is worth. The market price is less than the inconvenience of signing an NDA. (스타트업에게 있어 아이디어는 시작일 뿐이다.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가장 중요한 건 아이디어라고 이야기하고, 그 다음부터는 실행만 하면 된다고 한다. 투자자들은 이보다 더 잘 안다. 당신이 VC에게 찾아가, 아이디어를 들으려면 기밀 유지 협약(NDA)에 사인부터 해야 한다고 하면 그들은 당신에게 그냥 가버리라고 할 것이다. 아이디어의 가치가 그정도 뿐이다. 아이디어의 시장 가치는 NDA에 사인하는 불편함보다도 낮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감이 많이 되는 것이, 스타트업이 만든 제품이 고객의 마음을 얻고, 그 회사가 직원들을 더 뽑아 성장하고, 기존 강자를 이기고 결국 고지에 오르기까지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닌 수백가지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므로, 맨 처음 한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는 스타트업이 성공할 지 못할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아이디어를 가지고 투자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투자를 받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단계에서는 투자를 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듯,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가 블루 오션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10년 전, 페이스북과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을까? (참고로, 페이스북 설립일은 2004년 2월 4일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허접하게나마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그것을 하버드 학생들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하버드 학생 거의 대부분이 페이스북에 계정을 만들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Derek Sivers가 쓴, Ideas are just a multiplier of execution (아이디어는 실행의 배수일 뿐이다)라는 글에 등장한 아래 숫자들이 재미있어 소개한다. 이 숫자들이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Good Idea와 Good Execution이 결합하면 회사 가치는 10 * $100,000 = $1 million이라는 뜻이다.

'아이디어 X 실행'이 회사의 가치
‘아이디어 X 실행’이 회사의 가치.

그래도 아이디어가 중요하기는 하다. 이것이 시작 지점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 멤버들을 데려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크리스 딕슨 (Chris Dixon)The Idea Maze(아이디어 미로)라는 글에서 설명했듯, 아이디어는 ‘세상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면’ 좋다.

Good startup ideas are well developed, multi-year plans that contemplate many possible paths according to how the world changes.

하지만 대부분의 초기 아이디어는 큰 의미가 없다. 이것이 프로토타입이 되면 조금 쓸모가 있어진다. 프로토타입을 유저들과 고객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 회사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투자를 유치하는 이득보다 회사의 지분을 파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게 되는 시점, 바로 그 때가 투자를 받는 적기가 아닐까.

블루 오션은 없다

한때 ‘블루 오션(Blue Ocean)’이라는 단어가 전국을 휩쓴 적이 있다. 2004년에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가 블루 오션 전략 (Blue Ocean Strategy)이라는, 세계에서 35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의 한국어판을 내놓으면서 유행했던 용어이다. 요즘 투자를 하며, 강연을 하며,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며 그 말의 의미를 많이 생각해보고 있다. 사실상 일반적인 의미의 블루 오션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란, ‘누군가가 이미 깃발을 꽂아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빈 땅으로 보이는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를 말한다. 너무나 경쟁자가 많아서 핏빛으로 보이까지 하는 레드 오션(Red Ocean)과 정반대되는 느낌의 멋진 장소.

그 때 책에서 설명했던 블루 오션 전략의 정의를 다시 찾아봤다. 이렇게 쓰여 있다.

가치혁신을 통해 경쟁이 치열한 기존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블루오션)을 창출하는 전략

반면 레드 오션 전략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기존의 한정된 수요시장(레드오션)을 대상으로 차별화나 비용절감 등의 경쟁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통적 경쟁전략

두 교수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블루 오션이라는 건 어떤 존재하는 장소나 시장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단어는 ‘새로운 시장’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가치 혁신을 통해’라는 단어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과학자들이 말하는 최초의 인간은 무려 280만년 전에 존재했다 (성경을 근거로 한 조사에 따르면 아담은 12만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그 오랜 시간동안 태어나고 죽은 수백억, 어쩌면 수천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왔는데 세상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시장이 있다고 믿는 것도 어쩌면 무모한 일이다.

몇달 전, 좋은 제품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엔젤리스트(Angelist)를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다. 이 사이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는 커녕, 이 세상에 누군가가 이미 하고 있지 않은 아이디어는 없다는 것을 느끼고 좌절하게 된다. 엔젤리스트에서 지역을 ‘실리콘밸리’로 좁혀 스타트업을 검색하면 무려 18,365개의 회사가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스타트업으로만 좁혀도 10,110개이다. 그 리스트 안에 핀터레스트(Pinterest), 우버(Uber), 에어비엔비(Airbnb) 같은 회사의 프로필이 포함되어 있다. 엔젤리스트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사이트이고, 여기에 프로필을 가진 스타트업은 적어도 어느 정도 걸러진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 중 절반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곳이라고 가정해도 실리콘밸리 지역에 1만 개의 가까운 스타트업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 스타트업의 상당수는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포드, MIT, 버클리 등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명문 회사’에서 좋은 경험을 한 경력이 있는 창업자들이 만들었고, 그 중 많은 수가 안드리센 호로위츠, SV Angels같은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엔젤리스트에서 정리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리스트
엔젤리스트에서 정리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리스트

이 1만 8천개의 스타트업들은 정말 ‘끼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구석 구석에 모두 포진해 있다. 최근 도어대시(DoorDash), EAT24 와 같은 음식 배달 서비스들이 인기를 끌면서 푸드 테크(Food Tech)라는 단어가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소위 푸드 테크에 어떤 스타트업들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검색을 했다가 아래와 같은 도표를 발견했다. 음식 배달 뿐 아니라 음식점 리뷰, 레시피 정리, 쿠폰 딜, 온라인 그로서리 등 음식과 관련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있다. 정말이지 빈틈이 있을까 싶다.

푸드 & 미디어 산업에 속한 스타트업들
푸드 & 미디어 산업에 속한 스타트업들 (http://www.foodtechconnect.com)

가끔 ‘세상을 바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며 투자를 요청하는 창업자의 이메일을 받는다.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으므로 빨리 만들어야 하며, 아이디어가 실현에 옮겨졌을 경우 잠재 시장은 1조원이 넘는다는 식이다.

만약 나에게 어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엔젤리스트같은 사이트에 찾아보니 없다면? ‘세계 최초’를 만든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겠다거나, 이미 누군가가 수없이 시도했는데 모두가 실패했던 분야에 발을 담그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할 일이다.

이보다 더 맞는 사고 방식은 피터 틸(Peter Thiel)이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정리했듯, 자신이 끼어들 수 있는 아주 작은 영역을 만들고, 그 안에 진을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들어가면 자신만의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야 한다. 브랜드 아니면 기술을 이용해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피가 튀는 전쟁터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수많은 전사자들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전사자 위에 거대한 거인들이 버티고 있고, 그 거인들의 그늘 밑에서 난장이들이 자신만의 땅을 차지하려고 뛰어다니는 모습. 그런 전쟁터에 들어가자면 먼저 칼과 창이 하나 있어야 하고, 방패를 들고 갑옷을 입고 들어가야 하고, 일단 들어가면 버텨야 한다. 이왕이면 자신과 좀 다른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 팀을 만들어서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한 명은 전사, 한 명은 마법사, 한 명은 궁사 이렇게. 물론, 팀이 클수록 몬스터를 죽이고 나서 자기가 차지할 수 있는 아이템 수가 줄어들므로 가장 적은 수로 가장 큰 몬스터를 죽일수 있다면 좋을 것이고.

온라인 게임 길드워 2(Guild Wars 2)의 한 장면.
온라인 게임 길드워 2(Guild Wars 2)의 한 장면.

블루 오션은 없다. 블루 오션을 만들어내는 전략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