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간 사람들을 채용하고, 관리하고, 해고하고, 그리고 지금은 스타트업을 하며 직접 부딪치면서 더 크게 공감하게 되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담긴 비디오. 그가 말하는 불변의 진리를 여기에 번역해서 올린다.
The greatest people are self-managed – they don’t need to be managed. Once they know what to do, they’ll go figure out how to do it – they don’t need to be managed at all! What they need is a common vision – and that’s what leadership is. What leadership is, is having a vision, being able to articulate that, so that people around you can understand it – and getting a consensus on a common vision.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스스로를 관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관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알면, 그들은 가서 그 일을 해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통의 비전이고, 그것이 바로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이란,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한 후에, 그것에 사람들이 동의하게 하는 것입니다.
We wanted people that were insanely great at what they did, but were not necessarily those seasoned professionals, but who had at the tips of their fingers and in their passion the latest understanding of where technology was, and what we could do with that technology, and we wanted to bring that to lots of people.
우리는 너무나 완벽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필요했지, 경험 많은 프로들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최신 기술을 아주 잘 이해하고, 그 기술을 어떻게 적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져다줄까를 매일 고민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
So the neatest thing that happens is when you get a core group of, you know, ten great people, it becomes self-policing as to who they let into that group. So I consider the most important job of someone like myself is recruiting.
아주 신기한 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두면, 그들이 다른 어떤 사람들을 그 그룹에 들여보낼 지 스스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사람이 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은 사람들을 찾는 일입니다.
We went through that stage in Apple where we went out and thought oh, we’re gonna be a big company, let’s hire professional management. We went out and hired a bunch of professional management. It didn’t work at all. Most of them were bozos.
우리도 그런 시기를 거쳤습니다. “이제 큰 회사가 될 거니까 전문 관리자들을 고용하자”. 그래서 잔뜩 뽑아봤습니다. (한숨을 쉬며)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멍청이들(bozos)이었습니다.
They knew how to manage, but they didn’t know how to do anything! And so, if you are a great person, why do you wanna work for someone who can’t learn from it? You know who the best managers are? They are the great individual contributors who never ever want to be a manager. But decided they have to be a manager, because no one else is gonna be able to do as good a job as them.
그들은 사람들을 관리할 줄만 알았지,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면, 배울 게 없는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겠습니까? (깨달았다는 듯이) 누가 가장 뛰어난 매니저인 줄 알아요? 절대 매니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전문가입니다. 본인이 가장 일을 잘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만큼 일을 잘해낼 수 없기 때문에 관리자가 됩니다.
격하게 공감하는 한 마디 한 마디 말들. 우리 회사에는 중간관리자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하는 이런 회사를 보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이 전문가들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정말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런 모습을 갖췄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스타트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 아닐까.
시즌 1이 끝나고 나서 시즌 2가 언제 시작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이번주 에피소드는 다름 아닌 슬랙(Slack)의 창업자인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드 호프만 씩이나 되는 바쁜 억만장자가 자기 시간을 들여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걸 일일이 편집해서 (물론 팀이 있지만) 팟캐스트를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다니, 팟캐스트가 정말 대세이긴 하다.
그가 호스트이다보니 실리콘밸리에서 그가 부를 수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정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연진이 너무나 화려하다. 에어비엔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 Walker and Co. CEO 트리스탄 워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 알파벳 의장 에릭 슈미트,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 등.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시간을 한 시간씩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도 공짜로.
이들을 인터뷰하며 호프만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스케일’. 즉, 스타트업을 처음 시작하고, 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이들 CEO들이 그 순간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파고들어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배울 점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이 팟캐스트가 독특한 점은, 단순히 질문과 답변 형식이 아니라는 것. 그들을 인터뷰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중간 중간에 리드 호프만이 끼어들어 설명한다. 왜 그들의 말이 옳은지, 왜 스케일한다는 것은 스케일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인지, 어떻게 그 자신도 링크드인을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는지를 부연 설명하는데, 너무나 친절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기분이다.
특별히 어느 에피소드가 더 재미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흥미진진하다. 에어비엔비 창업 스토리는 이미 익숙하지만, 브라이언의 입을 통해 들으니 또 들어도 재미있었고, 마크 저커버그 에피소드에서도 처음 듣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다. 특히 그가 페이스북을 만들기 전에 어린 시절(12살)때부터 만들었던 앱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페이스북 초기 시절에 내렸던 제품에 대한 고민과 결정들을 들으면서 페이스북이 결코 우연이나 운에 의해 탄생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CEO로서 그가 내린 수많은 의사 결정 중 제품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한 이야기이다. 그는 일생을 거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에 가장 관심이 있었고, 그것을 원칙으로 삼아 제품의 아주 구체적인 부분까지 의사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페이스북이다.
얼마 전에 UCLA Anderson (MBA) 출신 CEO 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 연사가 아래와 같은 질문을 했다.
“CEO로서 당신이 회사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가?”
참석자들이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대답했는데, 내가 했던 대답은 ‘제품과 관련된 의사 결정’이었다. CEO로서 회사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있고, 좋은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 것도 있고, 또 고객을 만나고 그들을 데려와야 하는 것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가 회사에 한 가장 큰 기여는 제품의 방향을 결정한 일들이었던 것 같다. 고객들이 요청하는 기능은 무척 많고, 우리가 그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 또한 매 순간 변하기 쉽다. 내 스스로가 엔지니어였었고 (지금도 엔지니어이고), 또 오라클에서 제품 관리자 역할을 해봤던 것이 이런 결정을 빨리, 그리고 맞게 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무언가를 만든 사람들을 한 명씩 인터뷰하며 만든 팟캐스트. 비슷한 목적의 팟캐스트는 많지만 이 팟캐스트가 유난히 빛나는 이유는 진행자가 가이 라즈(Guy Raz)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가 지금까지 빌게이츠, 에미넴, 테일러 스위프트, 지미 카터, 알 고어 등을 포함해 6,000명을 넘게 인터뷰했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인터뷰어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그의 인터뷰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항상 ‘행동의 동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이미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내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Guy 앞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게 실력이다. Ted Radio Hour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이미 귀에 익었는데, 이 How I Built This 시리즈는 그의 매력을 또 다른 차원에서 발산한다.
아래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최근 에피소드들, 그리고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
Southwest Airlines: Herb Kelleher
변호사이던 그가 텍사스에서 항공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50만달러를 투자받았으나, 당시 대형 항공사가 소송을 거는 바람에 4년동안 비행기 한 대도 띄우지 못하고 투자금을 모두 날린 사연
즐겨 먹는 ‘와일드 터키(Wild Turkey)’가 그를 항상 낙천적인 사람으로 만든 사건
Starbucks: Howard Schultz
맨하탄에서 제록스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그가 시애틀 출장갔다가 커피 향에 반해, 당시 커피 원두만을 팔던 ‘스타벅스’에 1년동안 졸라서 겨우 취직하고, 또 창업자들을 설득해 매장에서 커피를 직접 팔게 된 이야기
이탈리아 출장에서 사람들이 여유 있게 커피를 즐기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제 3의 공간‘을 생각해내고, 이를 스타벅스에 적용한 이야기
자기 자신의 투자자들에게 배신을 당해 스타벅스를 잃을 뻔하다가, 같이 농구하던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빌 게이츠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를 통해 구원을 받은 이야기
Chipotle: Steve Ells
공장에서 만들어져 배급되는 맥도널드 방식의 패스트 푸드에 반기를 들고, 그 날 매장에서 썰어 그 날 파는 신선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멕시칸 레스토랑을 만들게 된 사연
맥도널드의 투자를 받아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지만, 결국 철학이 맞지 않아 다시 갈라서게 된 사연
WeWork: Miguel McKelvey
건축을 공부하고 맨하탄의 한 건축 사무실에 취직한 그가, 사무 공간을 임대하는 아이디어를 얻기까지의 과정
2009년 경제 위기에 맨하탄의 빌딩들이 줄줄이 비어갈 때, 과감히 도전해서 사업을 키워가는 이야기
위워크(WeWork)라는 이름을 생각해내게 된 계기
Five Guys: Jerry Murrell
텍사스에서 가족을 위해 버거를 굽던 아버지가, 멀쩡한 직업을 그만 두고 햄버거 가게를 차린 사연
아들 4명이 모두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아 일을 하고, 궁극적으로 Five Guys를 미국 전역에 퍼뜨린 이야기
‘Five Guys’라는 이름이 자신과 네 명의 아들을 지칭하는 뜻이라는 것
Whole Foods Market: John Mackey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가 사 오는 즉석 음식에만 익숙해진 그가, ‘건강’과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결국 야채가게 직원으로 취직해서 자신의 인생을 찾게 된 이야기
텍사스 오스틴에서 시작한 작은 오가닉 스토어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차 유명해진 과정
홍수로 인해 모든 걸 날리고 사업을 접기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
‘Organic Foods’ 등 다른 이름을 제치고 ‘Whole Foods Market’이 이름으로 선정된 사연
참고로 아래 팟캐스트들은 너무나 유명해서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지만, 혹시 아직 못 들은 분을 위해 몇 가지 추가한다.
1999년, 발티모어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이해민(Hae Min Lee)이 어느날 실종되고, 인근 공원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당시 그의 남자친구였던 아드난 사이드(Adnan Syed)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다른 학교 친구의 증언으로 아드난이 감옥에 수감된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일까?
진행자인 사라 쾨닉(Sarah Koenig)은 당시 사건을 기록한 수천 건의 문서를 다시 뒤지며, 어쩌면 아드난이 살해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이 사건을 되짚는다. 마침내 아드난과의 인터뷰까지 시도.
NPR 출신인 알렉스 블룸버그(Alex Blumberg)가 안정적인 회사를 나와 팟캐스트 회사를 차리고, 동업자와 지분을 협의하고, 벤처캐피털리스트를 만나 투자를 받고, 회사를 성장시키까지의 과정을 스스로 녹음해서 생생한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크리스 사카(Chris Sacca) 앞에서 엘리베이터 피칭을 하다가 제대로 실패하고 당황하는 장면은 최고다. 당시에 미국 투자자들을 만나 내가 제대로 피칭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렉스가 버벅대는 것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
위에서 소개한 가이 라즈(Guy Raz)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TED를 보며 영감을 얻고 싶은데 일일이 볼 시간이 없다면, 라디오 형식으로 편집되고, 연사의 인터뷰까지 담은 이 팟캐스트가 매우 유용하다. 나는 운전할 때 가끔 듣는데, 들으면서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었다.
얼마전 조선비즈 박원익 기자와 했던 인터뷰가 기사로 나왔다. 사업을 시작한 후 지난 2년동안 했던 고민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두 시간동안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내 삶을, 그리고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긴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예비 창업가에게 조언해 준다면?”이었다. 아래는 한참을 고민한 후 했던 대답.
창업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같은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창업한 후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얻는 게 있다. 일이 잘되면 진짜 좋은 것이고.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 같은 사람 보면 행복해 보이더라. 산업혁명 이전의 수렵채집인처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스스로 개척해서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예비 창업자에 대한 조언이라고는 하지만, 그 누구에게든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무척 궁금했던 것이기도 하고. 창업하면 어떨까? 내 사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이 내 인생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줄까, 아니면 더 힘들고 비참하게 만들까.. 이런 질문들. 창업을 꺼려하게 만드는 두려움들.
지난 5년간 많은 책을 읽었던 건 아니지만, 그 5년 동안, 아니 어쩌면 지난 10년 동안 읽었던 책 중 가장 큰 감동을 주었고,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될 정도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 하나 있다면 나이키(Nike) 창업자 필 나이트(Phil Knight)의 자서전인 슈 독(Shoe Dog)이었다.
필 나이트(Phil Knight)의 슈 독(Shoe Dog)
사실 읽었다기보다는 엄밀히 말하면 오더블(Audible)에서 오디오 북을 다운로드해서 출근 길 차 안에서 들었다. 매일의 출근길이 기대될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었다 (게다가 그는 글을 참 잘 쓴다). 나이키(Nike)라는 이름을 짓게 된 배경, 그리고 일본의 신발 회사 ‘아식스’에서 신발을 들여와 미국에 팔기 위해 만든 회사가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였고, 그 회사가 나중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선택한 계기, 신발을 너무 사랑하는 세일즈맨을 만나 도움을 받은 이야기, 또 미국 국세청(IRS)에서 엄청난 세금을 메겨 회사가 파산하기 직전에 이른 이야기 등은 웬만한 소설이나 영화를 능가할 정도로 숨막히게 했지만, 책을 덮은 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구절은 흥미롭게도 첫머리와 끝머리였다. 즉, 프롤로그에서 설명한, 창업을 하게 된 배경과 에필로그에서 설명한, ‘세계 브랜드 가치 1위 회사‘를 만들고 난 후에 그가 한 생각들은 두고 두고 남을 영감을 주었다.
그 중 시작 부분을 대략 설명하면 이렇다. 오레곤 대학(University of Oregon)을 졸업한 후 스탠포드 MBA를 마치고, 남들 같으면 억대 연봉을 받고 뉴욕의 은행이나 컨설팅 회사에 취직할 시기에, 그는 포틀랜드에 있는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왔다. 1962년, 24살의 나이에 그가 한 일은 숲길을 뛰는 것. 그는 달리기 선수가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로 뛰는 것을 좋아했는데, 뛰고 또 뛰며 그가 세운 인생의 한 가지 방향성은 아래와 같았다.
Work like play, play like work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놀기”. 내가 해석한 건 그렇다. 책의 서문에 있는 몇 가지 문장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I wanted to leave a mark on the world. I wanted to win. No, that’s not right. I simply didn’t want to lose. And then it happened. As my young heart began to thump, as my pink lungs expanded like the wings of a bird, as the trees turned to greenish blurs, I saw it all before me, exactly what I wanted my life to be. Play.
Yes, I thought, that’s it. That’s the word. The secret of happiness, I’d always suspected, the essence of beauty or truth, or all we ever need to know of either, lay somewhere in that moment when the ball is in midair, when both boxers sense the approach of the bell, when the runners near the finish line and the crowd rises as one. There’s a kind of exuberant clarity in that pulsing half second before winning and losing are decided. I wanted that, whatever that was, to be my life, my daily life.
Knight, Phil (2016-04-25T23:58:59). Shoe Dog: A Memoir by the Creator of Nike (Kindle Locations 67-74). Scribner. Kindle Edition.
나는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이기고 싶었다. 아니, 정말 지고 싶지 않았다. 나의 젊은 심장이 고동치고, 나의 분홍빛 허파가 새의 날개처럼 펼쳐지고, 나무가 흐리흐리한 파란색으로 변하는 순간, 나는 그것을 보았다. 내가 삶에서 무엇을 원했는지를.
플레이(Play).
바로 그거다. 바로 그 단어다. 행복의 비결. 방망이로 친 공이 하늘 높이 떴을 때, 그리고 권투 중 벨이 울리기 전, 달리기 선수가 최종 선에 가까이 가며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 – 이기고 지는 것이 결정되기 바로 그 전 0.5초 동안의 느낌. 그게 뭐였든 간에, 나는 그것을 원했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는 것처럼 일한다는 것, 정말 꿈 같은 이야기이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보면, 진정 노는 것처럼 일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거나, 돈이 안되는데도 일하거나, 아니면 그냥 놀기만 하거나. 그렇지만, 적어도 이 사람은, 24살부터 지금 79세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의 전 인생을, 노는 것만큼이나 재미있게 살면서도 직원 6만 5천명이 일하는, 기업 가치 100조원짜리 회사를 만들었고, 개인 재산이 27조원에 이른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내 기준으로 정리해보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또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선택하게 되는 진로는 아래와 같은 네 가지 분면 중 하나에 이르는 것 같다. 각 숫자는 ‘사분면’을 의미한다.
물론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한 가지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거기에 머무는 것은 아니고, 인생의 과정에서 1, 2, 3, 4 사분면 중 하나를 거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대략 설명을 위해 이렇게 갈림길을 나눠보았다.
사업한다는 것이 무조건 큰 위험이라거나, 회사에 취직한다는 것이 무조건 작은 위험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사업을 하는 것은 취직하는 것에 비해 위험도가 조금 더 높은 일이다. 각각의 길에는 항상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결과가 존재한다. 여기에서, 더 큰 위험을 부담할수록 성공했을 때의 보상이 더 크고, 반대로 실패했을 때의 손실이 더 큰 것은 물리적 법칙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놓고 한 번 생각해보자. 필 나이트는 분명 사업을 한 사람이고, 중간에 실패할 뻔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성공을 이루었고, 그래서 결국 위 도표에서 ‘1사분면’의 정점에 이르렀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러한 화려한 성공 뒤에는 90%의 실패가 존재하고, 그들의 경우 큰 위험을 감수하고 큰 실패를 한 후 우울증에 빠지거나 심하면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취직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위험을 선택한 경우, 성공을 하면 분명 안락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며, 또한 일과 개인적 삶을 구별한 인생을 살게 된다. 아무리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만든 회사가 아닌 이상은 결국 ‘남의 것’이고, 남의 것이 성장하는 것을 돕는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을 ‘노는 것’처럼 즐기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내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그랬다. 게임빌의 첫 엔지니어로 회사의 눈부신 성장을 경험했고, 또한 오라클이라는 실리콘밸리 대기업에서 일하며 높은 연봉과 명예, 그리고 안락한 삶을 누려보기도 했지만, 결국 일을 노는 것처럼 할 수는 없었다.
사업의 길은 반면, 실패하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떠안게 되기도 하지만, 성공할 경우 ‘놀듯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나는 주변의 행복한 창업가들을 보고(그 중 몇몇 회사에 투자하기도 했다), 또 필 나이트의 책을 읽고 나서 그 느낌이 참 궁금했다. 노는 것처럼 일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긴 할까?
흥미로운 것은 모든 영웅 스토리가 그렇듯, 사업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단번에 1사분면으로 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필 나이트도 그렇고, 리차드 브랜슨도 그렇고, 또 우리가 잘 아는 스티브 잡스도 그렇고, 대부분 사업 초기 또는 중기에 4사분면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4사분면에서 2사분면이나 3사분면으로 옮겨가는 사람도 있고, 4사분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4사분면에서 1사분면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기억한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 아니 가장 즐기는 것 중 하나는, 분명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있지만, 결국 나는 ‘놀듯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업이 아직 초기인지라 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난 2년간 나는 필 나이트가 말한 그 느낌을 궁금해하며 그것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 답을 찾았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과장하면, 내 인생에서 일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이 없다. 하루 하루가 흥분되는 날들이고, 이기고(winning) 지는(losing) 것을 매 순간 경험할 때마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작은 의사 결정들이 모여 ‘회사’라는, 일종의 나의 분신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이건 일이 아니라 노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지는 것은 쓰라린 일이지만, 그 뒤에 아주 작은 승리라도 따라오기만 한다면 버틸 수 있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승리들은 너무나 달콤하다.
1. I wish I’d had the courage to live a life true to myself, not the life others expected of me.
“This was the most common regret of all. When people realise that their life is almost over and look back clearly on it, it is easy to see how many dreams have gone unfulfilled. Most people had not honoured even a half of their dreams and had to die knowing that it was due to choices they had made, or not made. Health brings a freedom very few realise, until they no longer have it.”
1. 나 자신에게 더 충실한 삶을 살았으면 좋았을 걸.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이것은 죽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입니다. 그들의 인생이 거의 끝났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인생을 돌이켜보면 너무나 많은 꿈들을 이루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꿈들 중 절반도 이루지 못하고 죽는데, 그것이 자신이 내리거나, 또는 내리지 않은 결정 때문이라는 겁니다. 건강은 무언가를 이룰 자유를 가져다주는데, 그 건강을 잃기 전에는 그 자유를 깨닫지 못합니다.
나는 이것이 도전, 즉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이라고 해석했다. 죽는 순간에 하는 후회 중 가장 큰 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도전을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내가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물론 도전을 할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또 가진 것도 없는데 무턱대고 도전하는 것이 정답인 것도 결코 아니다. 나는 이런 기회를 가질 여건이나 형편은 안되었지만, 다행히 게임빌과 오라클을 통해 한 번 도전을 해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고, 내 인생을 정당화하자면 나는 그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필 나이트 자서전 서문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So that morning in 1962 I told myself: Let everyone else call your idea crazy . . . just keep going. Don’t stop. Don’t even think about stopping until you get there, and don’t give much thought to where “there” is. Whatever comes, just don’t stop. That’s the precocious, prescient, urgent advice I managed to give myself, out of the blue, and somehow managed to take. Half a century later, I believe it’s the best advice—maybe the only advice—any of us should ever give.
Knight, Phil (2016-04-25T23:58:59). Shoe Dog: A Memoir by the Creator of Nike (Kindle Locations 104-108). Scribner. Kindle Edition.
1962년 그 아침,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 생각을 미쳤다고 한다고 해도, 계속 앞으로 가자. 멈추지 말자. 목적지에 도다르기 전에는 멈출 생각도 하지 말자. 그리고 그 목적지가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말자. 무엇이 오든, 멈추지 말자. 그것은 당시 나 자신에게 주었던, 내 앞날의 성공을 비춘 시급한 조언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는 그 조언을 따랐다. 50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나는 그것이 누군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변한 것이 참 많다. 이제야 걸음마를 뗀 단계에 섣불리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벌써 뭔가를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지금 돌이켜서 생각하는 것들이 내 생각의 전부라고 하기도 힘들지만, 회사를 시작한 지 1년쯤 되는 이 시점에, 나에게 일어난 몇 가지 변화를 정리해볼까 한다.
첫째, 다른 회사나 제품에 대한 비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업을 시작한 단계에 가장 먼저 깨달았고, 가장 절실히 느꼈던 부분이다. 전에는 남 비판하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똑똑함과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미국 땅을 밟고 나서는 한국을 비판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취직하고 나서는 한국 회사의 문화를 쉽게 비판하곤 했다. 그런 비판들, 시간이 지나면서는 재미가 없어졌고 다른 사람이 비판하는 이야기 듣는 것도 흥미가 없어져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이걸 나만큼 예리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거야’라는 생각에 우쭐해져 누군가를 만날 때 그런 이야기를 성토하곤 했다.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겠지만 이 블로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준 글은 네이버 비판이었다. 지금도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면 결과에 실망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제는 ‘분명 그럴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얼마전 이해진 의장의 기자 간담회를 그대로 옮겨 적은 임원기 기자의 블로그를 보고 큰 감동을 느꼈다. 기자의 표현대로, 정말 이런 대답은 ‘대단한 주식이나 배경을 물려받지도 않은 채(물론 굉장히 비상한 머리와 타고난 성실함이 있었지만), 자신이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색깔이 매우 다른 북미와 아시아 시장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 네이버가 경쟁으로 느끼는 글로벌 서비스들에 대한 두려움,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은, 정말 그 일을 오랫동안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라인의 비결은. 여러가지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되게 열심히 절박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가 해외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일본에 가있는 사람들 정말 많은 고생했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도. 거기있는 친구들이 열심히 하고 그 문화에 맞춘겁니다. 컬쳐화도 시켜내고 그렇게 해내서 라인이 성공한 겁니다. – 이해진
둘째, 만드는 것의 즐거움을, 그 재미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전에 훌륭한 팀과 함께 라이너(Liner) 앱을 만들면서도 느꼈던 이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차트메트릭(Chartmetric)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베타 버전을 공개하고 난 후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이 데모를 요청하거나 유저 등록을 할 때마다 나에게 이메일이 오도록 해놨는데, 토요일 아침 6시에 이런 이메일이 날아오면 너무나 즐겁다. 바로 답장을 보내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대개 긍정적인 답변이 온다. Appear.in을 이용해서 제품을 직접 보여주고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인지 설명할 때 상대방이 끄덕끄덕하며 자기가 찾던 서비스라고 하면 짜릿한 기분마저 느낀다. 그러면 다시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진다.
셋째, 주말과 주중, 특히 휴일의 구별이 없어졌다. 물론 주말에는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 즐거운 계획을 세워놨을 때 주말이 기다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특히 주중에 끼어 있는 휴일에 대해서는 별로 감이 없고 휴일을 기다리지도 않게 되었다. 주중과 주말, 그리고 휴일들은 내 시간을 관리하기 쉽게 모으고 정리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일에 더 집중하는 주중과, 가족에 더 집중하는 주말, 그것이 다이다.
넷째, 내가 책임지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직도 부담스럽고, 가끔은 나에게 상사가 있어 무엇을 해야 할 지 명확히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에게 최종 책임이 떨어진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결국 인생은 자기 책임하게 사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한 가지 남아 있는 능력은 선택이다. 자신이 맞다고 느끼는 선택을 하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그래서 공감을 사는 것, 그것은 사업가가 지닌 중요한 자질이다. 얼마 전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쓴 “Master Plan, Part Deux(마스터 플랜, 2번째 파트)”라는 글을 읽었는데(10년 전인 2006년에 그가 쓴 Master Plan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주주가 되어야겠다는 것, 그리고 다음 차는 반드시 테슬라를 사야겠다는 것이다.
다섯째, Every win (or lose) is so personal. 뭐라고 번역해야 깔끔하게 의미 전달이 될 지 모르겠는데, 회사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안좋은 소식이 더 강하게 다가 오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에 받은 좋은 소식 하나로 하루 종일 즐거워진다.
여섯째, 하는 일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없어졌다. 내가 일하는 분야와 직접 관련이 있고, 내가 더 나은 창업가가 되도록 영감을 주는 내용은 여전히 소비하고 있지만, 그 외의 내용에 대해, 그리고 다른 분야의 회사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의 이야기에는 시간을 쓰지 않고 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온갖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남는 시간의 대부분을 무언가를 읽는데 쓰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변화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하게 되었고, 조금씩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이 내 시간의 우선 순위를 만들어내고 이를 지키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때로는 내 삶이 조금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각 단계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삶의 경험이 조금 더 풍부해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좋아지는 것이라고 믿어 본다.
p.s. 오늘 아침, Seoul Space, K-Startup의 파운더였던 Richard Min이 갑자기 전신 마비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위한 펀드레이징에 동참했다. 그 사이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대목을 읽고 그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또 그 사실을 의식 불명에서 깨어나서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의 소식을 접했고 그가 한국 스타트업을 위해 했던 일들에 대해 들었다.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그가 더 큰 사람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적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요즘 많이 바쁘다. 내 글을 쓰기는 커녕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시간도 없다. 아니, 이제 그런 내용에 이전에 비해 관심이 덜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한때는 할 일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요즘엔 이 많은 일들에 내 시간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가 더 고민이다.
약 1년 반 전, 5년 반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떠나기 2주 전쯤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인수 인계를 마치고 여유 있는 며칠을 보낸 후, 2014년 11월의 금요일 오후 따듯한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눈부시던 날에 짐을 정리해서 회사 건물을 나왔다. 한때는 럭셔리한 회사 건물과 드넒은 호수, 그리고 그 호수를 내려다보던 내 사무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마침내 몇 년간 기다리던 영주권을 받고, 나만의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떠날 때는 그렇게 홀가분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함박 웃음을 짓고 매니저와 악수했다. 그는, 언제든 원하면 돌아오라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레드우드 쇼어즈(Redwood Shores)의 오라클 본사. 내 사무실은 왼쪽에서 세 번째 빌딩 3층에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큰 회사에서 내 자리 하나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음 고생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MBA 졸업 즈음인 2009년 여름은 정말 쉽지 않은 시기였다. 2007년 입학할 당시에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골드만 삭스, 맥킨지 등에서 활발히 선배들을 채용해갔는데, 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건이 터졌다 (영화 ‘빅 쇼트‘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그 때는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일시적으로 경기가 안좋은 것이겠거니 했다. 산타모니카(Santa Monica)에서 출발해서 웨스트우드(Westwood)에 위치한 학교에 가는 약 15분 동안 라디오를 듣고는 했는데, 2008년 겨울이 되자 매일 ‘오늘 주가가 바닥을 쳤습니다’, ‘실업률이 오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라는 이야기뿐이었다.
MBA 입학한 2007년 여름(왼쪽 끝)부터 2009년 여름(오른쪽 끝)사이의 S&P 500 지수 변화 (출처: Google Finance)
해외 취업 비자 소지자들이 줄줄이 해고되고 있는 마당에 외국인 학생으로서 인턴십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자&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 덕분에 인터뷰 기회는 종종 얻었지만, 긴장하고 준비하던 인터뷰마다 때로는 실력 부족으로, 때로는 영어 부족으로, 때로는 핏(fit)이 맞지 않아 번번이 떨어졌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을 마이크로소프트 자체 스튜디오에서 더 많이 개발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외부 개발사와 협력하는 것이 더 좋은가’라는 질문에 쩔쩔 매고 부족한 영어로 더듬더듬하며 바보 같은 대답을 하고 나왔을 때는 정말이지 내 자신이 싫었다. 보통 MBA 1학년이 절반이 지나는 시점부터 인턴십을 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첫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때 즈음에는 90% 이상의 학생들이 인턴 오퍼(offer)를 받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오퍼가 없었다. 한국에서 그 고생을 해서 G-MAT 시험을 보고, 에세이를 쓰고, 겨우 합격을 받아서 와서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는데 인턴십을 구하지 못했다. 간간이 오는 인터뷰 요청이 내가 희망의 한줄기를 잡고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오는 거절 메일은 나를 낮아지게 했다.
결국 1학년 수업을 모두 마치고, 모두가 인턴십을 위해 각 도시로, 각 나라로 떠난 6월 말, 나는 레주메를 고치며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인튜잇(Intuit)과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 두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나는 극적으로 썬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수락했다. 시간당 임금과 연봉이 적혀 있던 그 편지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월급 700만원이 넘는, 내 가난한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히 좋은 조건이었다.
여름 인턴십 오퍼 레터
인턴십을 풀타임으로 바꾸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당시 매니저인 파람(Param)이 나를 좋게 봤고, 또 그 위 VP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은 덕에 인턴십을 마치고 다시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고, 결국 풀타임 오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오라클과의 합병이 발표되고난 후 채용이 전면 금지되어서, 파람은 내 이력서를 들고 EVP(Executive Vice President)까지 찾아가서 설득해야 했다고 한다. EVP라고 하면 당시 3만명의 직원 중 상위 10명 정도에 불과한 직급이었다. 2008년 여름 인턴십 오리엔테이션 때는 20여명 정도 사람이 있었는데 2009년 여름, 학교를 졸업하고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 갔을 때는 풀타임은 나 한 명이었고, 인턴십을 시작하는 한 명이 있었다. 당시 인사 담당자는 ‘당신이 어쩌면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가 마지막으로 채용한 직원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I think you are the last person to be hired at Sun)’라고 웃으며 서류를 건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의 정식 직원이 되었다.
언제나 깔끔하게 손질된 잔디와 높은 야자수가 아름다웠던 Sun Microsystems (현 오라클) 본사 캠퍼스자바(Java) 언어 창시자인 제임스 고슬링(James Gosling)의 옆자리에 앉아 회의를 하던 날은 내 삶에서 가장 신기한 순간 중 하나였다.
그렇게 우여 곡절 끝에 얻은 기회였지만 떠날 때는 미련이 없었다. 회사 다니는 동안 조금씩 엔젤 투자를 하며, 그리고 너무나 멋지게 세상을 디스럽트(disrupt)하는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을 보며, 사업이라는 것이 쉬워 보였고, 원칙에 충실하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나도 얼마든 멋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회사를 떠난지 세달 후인 2015년 봄, 나는 우울증 증세를 경험했다. 세상에 흥미로운 일은 하나도 없었고, 무엇보다, 세상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었다. 내가 1년동안 품고 있던 아이디어는 내가 가장 큰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관련 지식이나 경험 또한 참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쉽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 하나 다 어렵게 느껴졌다. 작은 결정 하나를 위해 오래간 고민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고민하거나 불필요하게 쓰는 시간들이 이제는 모두 급여에 해당하는 기회비용으로 환산된다는 것이었다. 하루를 별 소득 없이 보내면 몇 백달러어치의 돈이 날아간 셈이었고, 1주일을 진전 없이 보내면 몇 천 달러를 날린 셈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차 한대를 살 돈이 날아갔다. 내 시간의 비용이 정말로 크게 느껴졌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실리콘밸리의 살인적인 물가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첫 아이는 2살을 갓 넘겼고, 태어난 지 1개월이 된 둘째는 나와 아내의 보살핌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한편 Alive라는 모바일 비디오 에디팅 앱을 만든 뛰어난 팀, 매버릭(Maverick)과도 함께 일했는데, 긴 호흡을 가지고 진지하게 사업에 임하고, 밤낮 없이 일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오주현 대표를 비롯, 공동창업자들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작년 여름, 서울에 방문하는 동안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스파크랩스 5기 데모 데이를 구경했다. 스파크랩스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멘토중 한 명으로서 그간의 과정을 지켜봤고, 그와 함께 스파크랩스를 지켜간 많은 회사들 또한 지켜봤기 때문에 그 날의 데모 데이는 그 전부터 봐왔던 것이고, 이전보다 좀 더 커지고 화려해졌다는 것 말고는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달랐다. 데모데이가 진행될수록, 그 스테이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 만든 프로토타입과 함께 스파크랩스 6기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6기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네달 후, 내가 그 스테이지에 섰다. 그리고 팀원들과 함께 3개월동안 공들여 만든 제품을 발표했다. 제품의 이름은 차트메트릭(Chartmetric) – 음악과 데이터의 결합.
데모데이를 마친 후 고맙게도 좋은 분들이 회사에 투자도 해 주셨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제 걸음마고 시작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조금씩 내 경험과 배움을 나누고, 그런 경험들이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고, 그들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고, 또 그에 보답하고 싶다.
공지: 이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분들과 조금 더 캐주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슬랙 채널을 하나 만들어볼까 합니다. 주제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엔젤 투자 등입니다. 물론 가끔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할 수도 있겠지요. 관심 있는 분은 여기에서 간략히 정보를 입력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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