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배워야만 하는 것들

유니온 스퀘어 벤처스의 프레드 윌슨의 글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But at some point, you have to learn things yourself. You can talk to peers until you are blue in your face about how to hire a great VP Engineering or CFO. But making a bad hire or two in these roles will teach you a lot more about it than talking to others. At some point, you are going to have to figure things out by yourself. There is no substitute for direct personal and painful experience. That’s just how life works.

그렇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직접 배워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임원을 뽑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결정을 몇 번 하고 나면 훨씬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결국 이런 것들은 스스로 알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직접 겪는 개인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원래 삶이 그런 것이다.

정말 정말 공감되는 말. 나는 글을 읽는 것을 항상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고, 그래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예를 든대로, ‘누구를 채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힘들더라도 스스로 배워야만 하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제품/마켓 핏(Product/Market Fit) 또한 스스로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크 안드리센의 말에 따르면 제품/마켓 핏은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가지고 ‘좋은 시장’ 안에 들어있는 것”을 의미한다 (“Product/market fit means being in a good market with a product that can satisfy that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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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마켓 핏 (Product/Market Fit)

제품/마켓 핏과 관련한 스타트업의 고민은 대개 둘 중의 하나로 좁혀진다.

  1. 좋은 시장을 찾으면 경쟁자들이 너무 강력해서 제품을 만들 엄두가 안나서 고민 (돈이 너무 많이 들기에)
  2. 틈새를 찾아 제품을 만들면, 그 시장이 너무 틈새이거나 제품이 인기가 없어서 고민.

둘 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결국 이에 대해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1. 좋은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비슷한 – 이왕이면 훨씬 뛰어난 – 성능의 제품을 만들거나
  2. 그 ‘틈새’가 조만간 커지기를 기대하면서, 틈새 시장에서 당분간 머물러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오래 갈 준비가 되어 있거나(그러려면 투자를 충분히 받거나, 아니면 비용이 매우 낮아야 한다).

남이 만든 것을 보고 베껴서 만들었든, 이 세상 그 누구도 만들지 않은 것을 만들었든, 어쨌든 ‘제품’이라는 것은 색깔이 다르든 브랜드가 다르든, 뭔가는 다르다는 이야기이고, 그렇다면 그 제품만을 위한 시장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어쨌건 승부를 해볼 가치는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그 시장이 결국 의미 있는 크기가 될 것인가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 있는 크기’란, 단순히 유저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수에 1인당 생애 가치(Lifetime Value) 를 곱한 값의 합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만한 서비스라 해도 그들이 돈을 내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 실컷 고생하고 남 좋은 일만 해주게 될 가능성이 있다. 안타깝게도 좀 과장한다면 에버노트가 그런 운명에 빠진 것 같다(이제 수익이 나고 있다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나는 에버노트에는 돈을 한 번도 안냈지만(대신 CTO에게 와인병을 선물했다), 경쟁 제품인 Bear는 쓰기 시작한 지 한 달만에 연 $14.99달러를 내기 시작했다(그리고 앞으로 몇 년간은 돈을 내게 될 것 같다). 아주 운이 좋다면 (그리고 창업자가 스탠포드 출신이면서 회사와 팀이 미국이나 서유럽에 있다면) 선라이즈 캘린더(Sunrise Calendar)의 사례와 같이 돈을 벌려는 시도도 하기 전에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이 와서 회사를 사가겠지만, 그런 확률은 지극히 낮으니 기대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을 듯.

글을 써놓고 보니 ‘제품/마켓 핏’이라는 건 어찌 보면 별 의미도 없는데 듣기 좋으라고 만든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제품이 후졌거나 시장이 별로 필요로 하지 않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제품/마켓 핏이 맞지 않다’라고 포장하면 좀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사실 나도 많이 사용했던 말임을 고백. 또한 지금도 제품/마켓 핏을 찾아가는 중.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그리고 이더리움이 가져오는 거대한 변화

최근 몇달 사이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현재 기준으로 1 비트코인의 가격은 이제 2,116달러에 달한다. 그래서 좀 마음이 아프다. 항상 그렇지만, 투자라는 건 처음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는게 중요한데, 시세 500달러 정도일 때 사뒀던 비트코인을 너무 일찍 팔아버렸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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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격 변동 추이. 현재 가격은 무려 $2,116 달러이다. (출처: https://www.worldcoinindex.com/coin/bitcoin)

가격이 오르고 통화량이 늘어난 결과, 이들 가상 화폐가 시장에서 가지는 총 가치(Market Capitalization)는 이제 $70 billion (약 77조원)에 달한다. 77조원이면 무척 크게 느껴지지만, 전 세계 통화량에 비하면 여전히 새발의 피다. 놀라운 건, 불과 한달 전에 시장 총 가치는 이의 절반인 $35 billion이었다는 것. 2013년부터 2017년 초까지 느릿 느릿 올라가던 것이, 지난 두 달 만에 수 배가 뛴 것이다. 이는 위에서 본 최근의 비트코인 가격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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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화폐의 총 시장 가치 (출처: http://coinmarketcap.com/charts/)

비트코인 뿐 아니라 이더리움(Ethereum), 라이트코인(Litecoin) 등 블록체인 기반의 다른 가상 통화량이 크게 늘면서 비트코인의 점유율이 낮아졌다는 것이 또한 큰 변화. 이제 비트코인의 점유율은 50% 미만으로 떨어졌고, 특히 이더리움이 대 약진을 해서 전체 통화량의 2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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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이전에 쓴 글, 비트코인 경제학을 참고하세요. 한마디로 다시 설명한다면, 블록체인은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정보의 진실성’을 여러 대의 컴퓨터에 나누어 저장해둠으로써 그 정보가 해킹을 당할 우려를 원천 봉쇄합니다. 예를 들어 조성문이 현재 100만원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국민은행 서버에 저장하는 대신, ‘블록체인’이라는 형태로 저장하게 되면, 국민은행 서버가 아닌 전 세계에 있는 수천대의 서버에 나누어둘 수 있고, 이 서버들이 모여 조성문이 100만원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줄 수 있습니다.)

이더리움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 하도 많이 나오길래 홈페이지에서 좀 살펴보고,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터린(Vitalik Buterin)이 데브콘(Devcon)에서 발표한 강의를 봤는데, 너무나 흥미로웠다.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데, 이전의 기술이 카시오 계산기 수준이었다면, 이더리움은 스마트폰 같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더리움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컨셉 중 하나는 계약(Contract)이다. 우리가 사는 일상 생활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가장 위험의 소지가 높은 것이 바로 계약이다. 집을 사고 팔고, 돈을 투자하고, 또 빌려주고 갚고. 이런 모든 일들은 계약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더리움은 바로 이 계약을 블록체인 형태로 보관하기 쉽게 해 준다(단 몇 줄의 코드로). 이더리움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유지하는데는 약간의 수수료가 (기존보다는 훨씬 싼!) 드는데, 이것은 이더리움 화폐(ether)로만 결제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더리움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날수록 이더리움 화폐의 가치는 올라간다. 아래는 이더리움 기반으로 새로운 계약(Contract)를 만드는 코드이다 (출처: http://ethdocs.org/en/latest/contracts-and-transactions/contracts.html).

contract HelloWorld {
        event Print(string out);
        function() { Print("Hello, World!"); }
}

오늘 미디엄(Medium)에서 Thoughts on Tokens라는 흥미로운 글을 하나 발견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는 ‘희소하고 안전하며 식별될 수 있는 자원’인 토큰(Token)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며(비트코인, 라이트코인 등등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 모두를 통틀어 토큰이라 부른다), 토큰의 특성을 15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하는데, 정말 한 번 읽어볼만하다. 블록체인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리고 이 글이 좀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그리고 컴퓨터 공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두 세번 읽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 중 내가 생각하기에 이해하기 쉬우며 핵심적인 내용은 3번 항목인데, 즉 ‘토큰’을 산다는 것은 결국 프라이빗 키(private key)를 산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프라이빗 키는 컴퓨터 과학의 보안 영역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데, 쉽게 설명하면 금고 주인만 갖고 있는 열쇠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공개 키 암호 방식‘ 글 참고.)

You can think of a private key as being similar to a password. Just like your private password grants you access to the email stored on a centralized cloud database like Gmail, your private key grants you access to the digital token stored on a decentralized blockchain database like Ethereum or Bitcoin.

There is one major difference, however: unlike a password, neither you nor anyone else can reset your private key if you lose it. If you have the private key, you have possession of your tokens. If you do not, you have lost access.

프라이빗 키는 암호와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메일 암호가 있어야 지메일과 같이 메인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듯, 프라이빗 키가 있어야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과 같이 분산된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다.

한 가지 주된 차이점은, 암호와 달리 프라이빗 키는 잃어버린 경우에 리셋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프라이빗 키를 잃으면, 당신이 가진 토큰에 접근할 방법이 사라지고,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분산 저장이라는 것은 원래 우리 뇌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수천 수만년의 인류 역사 동안, 정보는 한 곳에 저장되고, 모든 사람들이 이 ‘한 곳’을 통해 동일한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어 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등기소처럼.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사는 다음 세대는, 중앙 집권식 정보 저장 자체를 부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P.S.: 블록체인에 대한 설명은 아래, ‘2분만에 블록체인 이해하기’ 비디오를 참고.

P.S. 2: 아래는 ‘이더리움 25분만에 이해하기’ 강의. 기술적이고 어려운 내용이지만, 한 번 봐둘만하다.

P.S. 3: 비트코인(블록체인)에 관한 다른(부정적인) 시각

 

라이너(Liner) – 사파리 익스텐션

라이너에 사파리 익스텐션(Safari Extension)이 추가되었다. ‘익스텐션’은 사실 너무 어려운 말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사파리 브라우저에서도 라이너를 쓸 수 있게 됐다. 아래와 같은 예쁜 다운로드 페이지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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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사파리 익스텐션

나는 사파리 브라우저를 주로 쓰기 때문에(가장 큰 이유는 아이폰과 맥북에서 서로 연동되어 있는 키체인(keychain), 즉 로그인 암호 저장 기능이다) 그동안 하이라이팅이 필요할 때마다 크롬 브라우저를 열곤 했지만 이제는 어떤 순간에든 ‘~’ 키만 누르면 미디엄(Medium.com)에서처럼 하이라이트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하이라이트는 내 피드에 저장되고, 필요할 때는 워드 파일이나 에버노트 등으로 내보내기(export)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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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getliner.com)를 써서 미디엄(Medium)에서처럼 하이라이트할 수 있고, 메모도 남길 수 있다.

이 툴에 대해서는 전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하이라이팅 유틸리티‘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서 소개한 적이 있고, 지난 달에는 ‘미국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디지털 형광펜‘이라는 제목으로 아웃스탠딩에 소개되었는데, 정말 제품의 핵심 가치에 고도로 집중하는 너무나 훌륭한 회사이다.

항상 그렇듯, 한 가지에 집중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고, 더욱이나 그것에 오랫동안 시간을 쓰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너무 많아 보이지만, 제품을 더 다듬고 다듬을수록 어느새엔가 경쟁이 사라지고, 세상에 없는 유일한 제품을 가진 회사가 된다. 라이너의 가장 큰 경쟁자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회사 하일리(highly.com)였다. 라이너 개발 초기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회사 공동창업자들인 에릭(Eric Wuebben)과 앤드류(Andrew Courter)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일에 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1 million (약 10억원)의 초기 투자도 받았다고 했다(후에 미디엄 창엄자 에반 윌리엄스의 투자도 받았다). 하지만 라이너가 끝없이 혁신을 거듭하는 동안 하일리는 10개월 전 iOS 제품을 내놓은 뒤로 멈춰 서 있고, 지금은 크롬 스토어에서 라이너 유저(24,985)하일리 유저(16,205)보다 훨씬 많다.

옛날에 지인이 그랬다. 한 가지 제품을 10년동안 파는 사람 봤냐고. 한 가지 제품을 10년 파면, 이 세상에 그걸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이 된다고. 실제로 그 분이 아는 사람이 그렇게 10년동안 한 가지만 팠고, 전 세계 사람들이 쓰는 (나를 포함해서) 사진 편집 툴을 만들어 실제로 돈도 많이 벌었다.

10년 동안 파기. 쉽지는 않다.

 

Disclosure: 저는 라이너(Liner)를 만든 회사 아우름플래닛의 초기 멤버이자 주주입니다.

결국은 제품이다

한밤중에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끄적끄적. 나중에 내가 성공해서 내 돈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이 된다고 하면 절대 투자하지 않을 회사는 제품은 그저 그런데 수상 실적이 많고 CEO의 말발이 좋은 회사이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고, TechCrunch Disrupt, SXSW 같은 행사에 나가서 투자자들에게 피치하고 수상을 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회사의 주된 경력이 그런 것들이라면 정말 경계해야된다.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주의 제품을 만들다보면 실제 고객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 자꾸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된다. 유행에 따르고, 투자자들이 좋아할만한 기능들만 자꾸 추가된다. 더 위험한 건, 수상 경력과 상금 때문에 마치 회사가 돈이 많고 잘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싸이월드가 먼저 개척했기 때문에, 한국의 환경이 좋았더라면, 그리고 정부와 투자자들의 뒷받침이 있었더라면 오늘의 페이스북 자리를 싸이월드가 꿰차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전혀 공감할 수가 없다. 당시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초기 버전은 제품의 질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창업자 분께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클릭할 때마다 새로운 팝업이 뜨고, 사진은 항상 작은 크기로밖에 볼 수 없는 제품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전 세계 유저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모두 카리스마를 지닌 CEO들이며, 애플과 테슬라, 그리고 SpaceX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보유한 위대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아이폰을 샀는데 6개월만에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면? 테슬라 차를 샀는데 3개월만에 손잡이가 녹슬기 시작한다면? 수백조원의 기업 가치를 지녔다 할지라도 제품에 문제가 자꾸 나타나면 그 수백조원이 증발해 버리는 건 하루 아침의 일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얼마나 일론 머스크가 제품에 집착했는가이다. SpaceX에서도 그렇고 테슬라에서도 그렇고, 비정상적이리만큼 제품의 디테일에 신경썼다. 테슬라의 알루미늄 바디, 17인치 LCD, 자동으로 나오는 문 손잡이, Telsa X의 위로 열리는 문, 우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로켓 등. 엔지니어들은 안된다고, 싫다고 한 일을 그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제품의 그런 특징들이 소비자들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CEO의 소셜 네트워크 팔로워 숫자, 카리스마와 자금 조달 능력, 그리고 네트워크 등등은 모두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좋은 제품’만큼 길게, 그리고 넓게 갈 수는 없다. 사람의 말은 겨우 100미터밖에 못가지만 글은 10,000km를 여행하고, 또 1,000년 이상을 살아있을 수 있는 것처럼.

사업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사업하니 어떻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자신도 언젠가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데 이미 시작해서 실행하고 있으니 부럽다는 이야기도 가끔 듣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드는 생각이 참 많다.

오래 전부터 나만의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특히 미국에서 미국과 유럽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를 나와 회사를 만들고 투자를 받은 이후에도 내가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고, 포기하고 다시 취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범위가 늘어나고, 또 비용이 함께 늘어가는 것을 보며 두려운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2016년은 그런 면에서 나에게 암흑기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떠나는 아픔도 있었고, 우리가 하는 일이 과연 사회에 어떤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제품에 사람들이 돈을 내게 될 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가정과 회사에서 들어오는 돈에 비해 나가는 돈이 많아 계속 마이너스가 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거의 줄이고, 오직 일에만 몰두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특히 2016년 말,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사람들이 연말 연초 휴가를 즐기고 있을때, 우리는 상관하지 않고 일만 했다. 2017년 초부터는 유료화를 시작해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돈을 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으므로 다른 옵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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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메트릭 (http://chartmetric.io)

고객들에게 우리는 베타 서비스를 졸업하고 곧 정식 서비스를 출시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2월부터는 무료 사용자들의 접근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월 사용료를 얼마로 할까 엄청나게 고민했는데, 일단은 비즈니스 모델을 입증한 후에 가격을 올려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프리미엄 멤버십을 월 95달러로 정했다. 처음으로 매출 950달러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말도 안돼! 도대체 누가 950달러를 낸다는 말이야? 혹시 실수한 것 아닐까?” 하며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만세를 외치며 웃었다. 그 고객에게 즉시 감사하다고 이메일을 보냈고, 다음날 전화 통화를 했다. 다행히도 실수가 아니었다. 그동안 차트메트릭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유료화 후에도 지속적으로 써야 해서 1년치를 한꺼번에 샀다고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웹사이트를 찾아왔고, 이전 고객들이 되돌아와서 계속해서 사용했고,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프(Stripe)라는 서비스를 통해 신용카드 프로세싱을 하고, 결제가 될 때마다 나한테 푸시 알림이 오도록 해두었는데, 그 푸시 알림은 내가 받는 가장 달콤한 소식이 되었다. 우리와 같은 SaaS (Software as a Service)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는 Monthly Recurring Revenue (MRR) 인데, 이 숫자가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돈을 낼 가치’가 있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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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유료화 이후의 Monthly Recurring Revenue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새로운 고객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고, 기존 고객들의 이탈은 없다시피한 상황이라 이대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 200만명의 가수 중 60만명의 정보를 수집해서 정리하고 있고,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 1백만개를 트래킹하고 있으며, 음악 큐레이터 30만명의 활동을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은 자동화되어 있으며, 우리가 서버 비용(AWS)에 쓰는 돈은 월 140달러에 불과하다. 아래는 가수 Ed Sheeran(에드 시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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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반의 사업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이 참 많지만, 그 중 최근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제품에 기여할 수 있는 내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사업을 할 때는, 남들이 이미 만들고 개척해놓은 시장에서 그저 그런 복제품 정도를 내놓게 될까 두려웠다. ‘세상에 없는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기 어려운데다, 또 너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면 고객이 없을 것이기 때문.

1년여동안 공들여 제품을 다듬어온 지금, 차트메트릭에 대해 고객들이 주로 주는 피드백은 한눈에 트렌드가 파악된다는 것, 그리고 사용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그동안 제품의 세세한 부분 하나까지 고민해서 결정했던 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정말 기쁘다. 게임빌에서 게임을 개발하면서 게임 성공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 두 가지는 유저가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는 자연스러운 디자인과 반응성이었다. 그 중 반응성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스토리, 게임성, 중독성, 그래픽 중 뭐 하나라도 빠지면 어색해지는 것이 게임이긴 하지만, 특히 반응성이 떨어지면 나머지 모든 것이 훌륭해도 인기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차트메트릭을 만들며 이 부분을 특히 신경썼다. 어떤 페이지이든, 클릭하면 바로 떠야 한다는 것. 수많은 데이터베이스 테이블에 있는 정보를 하나로 모아서 보여준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또 어떤 페이지에서는 수천개의 숫자를 정리하고 그래프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성능의 문제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더 하나씩 신경 써서 최적화했고, 이제는 대부분의 페이지가 클릭한 후 즉시 뜬다.

데이터는 많다. 사실, 너무 많아서 탈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업데이트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빠르게 가공하고 그 안에서 ‘실행 가능한’ 인사이트를 끌어내느냐이다. 차트메트릭이 음악 업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되면 좋겠다.

사업을 해서 좋은 점은, 주변을 기웃거릴 필요 없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나만의 전쟁터가 있다는 것이고, 사업을 해서 힘든 점은, 그렇게 내 모든 것을 부었는데도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래도, 지금은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