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take it from here (여기서부터는 제가 할게요)

2009년, MBA를 마치고 오라클에 정식 입사해서 제품 관리자(Product Manager)로 일하게 되면서 미국에서의 첫 보스를 만났다. 이름은 플로리안(Florian). 프랑스 출신인 그는 밝은 성격과 푸근한 인상을 가졌고, 어떤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유머를 찾았다. 미국에서 인턴십 경험이 전부였던 나에게, 그리고 회사에서 해고되기라도 하면 미국을 떠나야 하는 불안정한 ‘외국인 노동자 (H-1B 비자)’ 신분이었던 나에게, 어쩌면 딱 맞는 보스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자주 썼던 말이 있다.

I will take it from here (여기서부터는 제가 할게요).

무슨 말이냐 하면, 나에게 뭔가 일을 시키고 난 후, 내가 며칠간 고심해서 일을 해서 갖다 주면, 그는 살펴보고 나서 “I will take it from here” 라는 말을 자주 썼다. 물론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차이가 크거나, 그 다음 단계에 더 해야할 일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 지시를 내리기도 했지만,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왔다 싶으면 거기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크게 안도하고 마음을 깨끗이 비운 후 그 다음 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들을 모두 자신의 일로 포장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가 시간을 내어 내가 만든 문서를 일일이 수정해서 보고한 후, 그 모든 걸 내가 다 했다는 듯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처음에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서, 진짜 이래도 되나, 내가 보기에도 부족한 걸 자꾸 갖다 주면 어느 날 짜증내는 것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곤 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이는 그 사람의 일하는 태도였다. 1년여쯤 지나서, 그는 나를 승진시키고 싶다며 내 승진 케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웃으며 내가 편안히 일할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나는 내가 더 잘하는 일, 분석과 기술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당시엔 챗GPT가 없었기에 서투른 영어 표현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누군가가 그걸 보고 오해하거나 비웃을까 걱정이 많았고, 그것에 낭비하는 에너지가 무척 컸기에, 영어 문법에 신경을 덜 쓰고 내용의 핵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모든 상사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상사는 일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그는 주로 피드백 주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일을 해서 가져가면, 주로 지적을 했다. 이걸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 저렇게 고치면 좋겠다 등. 문제는 그 표현이 좀 애매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노트에 적고 단어 한 마디라도 놓칠까 하여 생겨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들을 때는 다 이해가 되는 것 같았고 방향이 보였는데,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수정하려고 하면 그 개념이 한없이 두루뭉실해지고 갈피를 못 잡겠는거다. 이건 분명 내 실력이 부족해서, 특히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일 것 라고 생각해며 들었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고, 내가 필기했던 것을 한참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명확하게 개념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머리를 끙끙 싸매고 작업을 해서 다음날, 또는 그 다음날 가져가면 수고했다면서 또 피드백을 왕창 주었다. 그 두 번째 피드백을 받으며 내가 한 생각은 두 가지.

  1. 나는 바보다. 분명 첫 번째 피드백에 이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내가 놓쳤었구나. 귀한 상사의 시간을 빼앗았으니 나는 분명 안좋은 평가를 받게 되거나, 이것이 반복되면 해고될지도 모른다.
  2. 방향이 바뀌었다. 지난번에는 언급한 적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추가됐다. 또 재작업이구나. 재작업해서 가져가면 또 새로운 피드백을 주겠지. 대체 이 프로젝트는 언제 끝이 날까.

그 사람은 분명 똑똑한 사람이었고, 말도 잘했고 아이디어도 많았고 회사에서 지위도 높았기에, 나는 그 사람의 방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든 그의 맘에 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자꾸 좌절감이 들 때가 많았고, 내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러던 와중, 제대로 좌절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나에게 어떤 주제에 대해 슬라이드 덱을 만들라고 시켜서(알고 보니 내 상사의 상사에게 발표하는 내용이었다), 그 주제에 대해 열심히 조사해서 만들었는데, 회의 시간에 그 슬라이드를 화면에 공유하라고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슬라이드를 한 장 한 장 넘기자 매 페이지마다 일일이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글자 크기를 줄여라, 여기 표현이 좀 이상하니 다시 써봐라, 여기 이 슬라이드를 추가하면 어떠냐 등등등.. 높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 전에 팀 모두가 힘을 합쳐 완성도를 높이자는 취지였지만, 그 슬라이드의 글자 크기, 디자인 등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는 내용들을 사람들 앞에서 고치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어질어질한 상태로 돌아와 회의 시간에 들었던 피드백을 하나씩 반영했는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먹이 사슬의 하위로 들어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나 싶어서 정말 좌절했다.

2015년, 내 회사를 창업했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의례 그래야 하지만, 그래도 내가 더 애써서 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마무리를 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뽑은 첫 엔지니어가 ‘워렌 Warren’이었는데, 그 옆에 앉아 내가 주로 했던 일은 그가 일을 80%까지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귀한 엔지니어였기에 그가 일하다가 내가 예전에 느꼈던 그 좌절감을 느끼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주 썼던 말은 “I’ll take it from here (여기부턴 내가 책임질게).” 였다. 워렌은 신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가져왔고, 이를 제품에 적용했다. 고객들에게 바로 전달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라면 최대한 내가 커버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그는 엔지니어로서 더 재미있는, 그리고 더 도전적인 일들을 맡을 수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최대한 뒤치닥거리를 하며, 그리고 제품의 마감질을 담당하며 창업자로서 굉장한 보람을 느꼈다. 일도 재미있었고 진행도 빨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창업 초기에 어떻게 돈을 많이 안쓰고도 제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느냐 묻는데, 나는 그것이 비결이었다고 생각한다. 워렌은 공동창업자가 아니었기에, 하는 일이 재미 없으면 언제든 다른 회사로 이직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내가 그를 붙잡아두고 함께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수년이 지나 이제 차트메트릭은 50여명이 함께 일하는 회사가 되었고, 워렌은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투자를 받은 자신만의 회사를 창업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원칙은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즉, 차트메트릭의 중간관리자들은 아래 사람들에게 끝없이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코드 리뷰(code review)도 하고, 일을 맡긴 후에 몇 가지 피드백을 주어서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들은 물론 있지만, 피드백이 너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거나, 피드백 주고 받고 할 시간에 이미 일이 끝났겠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그 관리자에게 한 마디를 던지곤 한다. “How about you take it over and fix it yourself? (그냥 일을 넘겨 받아서 직접 고치면 어때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잘 주고, 개개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리더십도 물론 필요하지만, 피드백 루프가 길어진다 싶고 그 과정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일을 가져와서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리더를 나는 더 훌륭히 평가한다. 그런 리더들이 많은 회사의 장점은,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나도 CEO로서 한없이 일을 가져와서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 이런 일까지 대표가 처리하나 싶은 일도 직접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다 보니 내 일정이 너무 가득 차서, 그리고 위임을 잘 해야 앞으로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위임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지양하는 것은 너무 디테일한 피드백이다. 나도 어떨 때는 내 생각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마법처럼 내 머리 속에 들어와 내 의향을 모두 파악해서 실행하길 기대하겠는가. 그런 피드백을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 “여기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예전에 블로그에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 하나를 정리해서 큰 공감을 얻었던 적이 있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스스로를 관리합니다“라는 제목이었는데, 그가 인터뷰에서 했던 마지막 말을 다시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They knew how to manage, but they didn’t know how to do anything! And so, if you are a great person, why do you wanna work for someone who can’t learn from it? You know who the best managers are? They are the great individual contributors who never ever want to be a manager. But decided they have to be a manager, because no one else is gonna be able to do as good a job as them.

그들은 사람들을 관리할 줄만 알았지,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면, 배울 게 없는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겠습니까? (깨달았다는 듯이) 누가 가장 뛰어난 매니저인 줄 알아요? 절대 매니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전문가입니다. 본인이 가장 일을 잘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만큼 일을 잘해낼 수 없기 때문에 관리자가 됩니다.

위 표현은 좀 극단적이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가 왜 이렇게 극단적인 입장까지 취하면서 열변을 토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고, 그들이 가장 빛이 날 수 있는 일을 주고, 그들이 일을 통해 가장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일의 결과가 자신의 맘에 쏙 들 때까지 끝없이 피드백을 주며 다시 해오라고 시키는 리더는 그 아래 사람들을 ChatGPT 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리더십. “이게 최선입니까?” (물론 현빈은 좋아합니다)

자, 오늘부터 시도해 보자. “I will take it from here.”

기억력,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

게임빌(현 컴투스홀딩스)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약 20여명 남짓 되는 크기의 회사에서 나의 역할은 개발실장이었다.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즈음, 새로운 사람이 한 명 회사에 들어왔다. 그의 직책은 ‘마케팅실장’. 무척 똑똑해보이는 인상을 가졌고, 실제로 똑똑했다.

하지만 나를 감탄하게 한 건 그의 똑똑함이 아니었다. 그의 기억력이었다. 그는 숫자를 참 잘 기억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숫자를 꽤 정확하게 떠올리는 능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랬다. “유저 증가율이 이번달에 20%라고 하는데, 지난달에는 24% 아니었던가요? 4%정도 감소한 원인이 뭐죠?” 또는 이랬다. “마케팅팀에서 2400만원 예산 집행을 해서 15%의 유저 증가가 있었구요, 지난번 1800만원을 집행했을 때에 비해 두 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나를 감탄하게 한 일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렇게 기억력이 높은 사람 아래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얼마나 긴장을 하게 될까 생각했다. 실제로 마케팅실은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 ‘똑똑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고, 회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다. 특히 회의 진행이 효율적이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회의 시간에 누가 뭔가를 질문하면, “아, 그건 지금 제가 기억이 안나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참 많다. 사실 그 중 절반은 말만 하고 실제 보고하지도 않고, 또 절반은 질문을 한 사람이 질문한 사실을 잊어버려서 그냥 지나가버리기가 일쑤다. 그렇지만 그가 있는 회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즉시 숫자를 대답했고, 바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즉시 그 숫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서 대답하고는 했다. 의사 결정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전형적인 이과 성향이었던 나는, 학창 시절에 항상 원리를 바탕으로 한 수학과 과학은 자신이 있었지만, 역사, 지리, 사회, 도덕 등의 ‘암기’를 기반으로 한 과목에는 약했다. 그래서 나에게 ‘기억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암기력이 좀 부족해도 논리가 강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케팅실장의 기억력은 나를 감탄케 했고, 그 또한 나와 같은 전공인 ‘이과’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과이기 때문에’ 라는 핑계거리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때부터 연습하기 시작했다. 숫자를 외우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내가 지시한 일들을 기억하는 연습을 했다. 기억력과 암기력이 원래 나쁘다고 생각했던 나이지만, 계속 훈련을 하다보니, 그리고 그 훈련을 20년 이상 해오다보니, 이제 구체적인 내용을 꽤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회사 인수 금액 등 중요한 숫자들을 꽤나 정확하게 기억해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떠올려서 언급할 수 있게 되면 뿌듯함을 느낀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연습해온 ‘기억하는 능력’ 덕에 시간을 아끼고, 일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면서, 좋은 기억력이 모든 리더에게 꼭 필요한, 그리고 필요함을 넘어서 매우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상사가 하는 최악의 행동 중 하나는, 직원에게 일을 시켜놓고, 조사를 시켜놓고 자기가 잊어버리는 것이다. 처음엔 직원이 열심히 그 일을 한다. 그래서 결과를 보고한다. 그 사이에 상사가 이내 지시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면 힘이 다 빠진다. 그 다음에 상사가 또 일을 시킨다. 이번엔 대충 한다. 어차피 시간 조금 지나면 잊어버릴 것이므로. 어떤 경우엔 아예 일을 하지도 않고 시간이 좀 지나 상사가 지시한 내용을 잊어버리기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런 회사에서 중요한 일들이 착착 진행될 수 있을까?

이렇게 기억력이 나쁜 (또는 기억을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 상사가 하는 또 하나의 행동이 있다. 바로 부하직원 또는 비서에게 ‘메모’를 시키는 것이다. 직원은 그러면 필기 로봇이 된다. 비참한 일이다. 필기는 하지만 권한은 없다. 그가 하는 일은 필기한 내용을 상사에게 보내거나 (그러면 기억력이 나쁜 상사는 또 대충 읽고 넘긴다), 필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회의록을 정리해서 다른 부서와 공유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렇게 어떤 직원이 보낸 회의록을 진지하게 대한 경험이 있는지. 상사가 직접 정리해서 공유한 내용이 아니면, 또는 상사가 그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적어도 다음 2주 동안에) 기억하지 않는다면, 회의록에 있는 내용의 90%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잊혀지고, 장시간 회의에 소모한 시간은 점차 무의미해져가고 만다. 그리고 나서 다음 회의에 또 똑같은 내용을 다룬다. 그리고 그 내용의 90%는 다시 잊혀져간다.

지금부터 연습해보자. 기억력은 선천적인 능력이라 어느 정도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긴 하지만, 얼마든 훈련에 의해, 그리고 도구의 도움을 받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연습하면, 언젠가 자신의 기억력에 감탄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사실 자신이 있는 영역은 아니다. 매우 외향적인 성격 탓에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몇년 전에 만났던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너무 죄송하고 민망한 일이지만 – 이것도 좀 더 훈련을 통해 향상시켜보려 하고 있다.)

참고로, 그 당시 나를 감탄하게 했던 사람은 송재준이고, 1500명의 직원을 가진 (주) 컴투스의 대표이사역을 약 2년간 맡으며 코인원, 위지윅스튜디오 등 굵직한 투자들을 결정해 큰 성과를 낸 후 2023년 3월에는 ‘글로벌 최고 투자 책임자’ 역할로 전향했다. 또한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사인 크릿벤처스의 설립자이자 대표이기도 하다. 아래 인터뷰 글에서 그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CEO&STORY] 송재준 컴투스 대표 “콘텐츠와 블록체인 투자 연계…’컴투버스’의 가치는 무한대” – 서울경제

2023년을 돌아보며

2023년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정리.

뉴욕 사무실 확장

뉴욕 맨하탄 사무실

뉴욕에 있는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사무실을 확장 이전했다. 맨하탄의 월스트리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199 Water St.에 있는 위워크 사무실인데, 34층에 위치한데다 브룩클린 브릿지를 내려다보는 뷰를 가지고 있어 누구라도 방문하면 감탄하게 된다. 뉴욕에 있는 수많은 위워크 건물 중 어디에 사무실을 얻을까 고민하다가 구글 맵을 보니 여기가 뷰가 가장 좋을 것 같아서 가봤는데 감히 뉴욕 최고의 뷰라 할 만했다. 큰 망설임 없이 여기로 골랐다. 이 사무실을 방문하는 게 기분 좋아 분기에 한 번 정도 뉴욕을 방문하고 있다.

공격적 직원 채용

차트메트릭 직원들과 함께

창업한 지 8년차. 내가 직접 하던 일을 점차 줄이고 나를 대신할 사람들을 채용하면서, 풀타임 직원이 40명 정도로 늘어났다. 특히 2023년은 우리에게 채용 운이 좋은 한 해였는데, 그 이유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대형 테크 회사들이 신규 채용을 중단하거나, 더 나아가 대규모 감원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기회가 되었다. 전 같으면 채용하기 어려울 법한 인재들이 많이 지원했고, 이를 활용해서 좋은 사람들을 채용할 수 있었다.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켈로그 Kellogg 에서 MBA를 마치고,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위워크 등에서 경험을 쌓고 합류한 Akash, UCLA 학사, 하버드 대학 석사를 마치고 디자이너로 합류한 Mike,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7개의 인턴 경험을 쌓고 졸업하자마자 마케팅 담당 직원으로 합류한 Sarah, 뉴욕 NYU 대학을 졸업하고 음악 업계에서 수년의 경험을 쌓고 합류해서 차트메트릭 고객들의 모든 질문과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는 Dom, ‘데이터 시각화및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가지고 수년간 인턴 등의 경험을 쌓고 합류해서 차트메트릭 블로그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Nicki,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나를 감동시킨 커버 레터를 써서 지원했던 Nate, 버클리 대학 석사 과정 중 우리 회사에서 인턴십을 마치고 졸업 후 데이터 엔지니어 풀타임으로 합류한 Kashin, 그리고 100명이 넘는 지원자들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내어 우리가 데이터 애널리스트로 채용한 Melina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그 어떤 사람도 따로이 ‘관리’가 필요하지 않은 인재들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고, 상사의 관리를 받아 일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직접 관리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그들을 관리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고 그들이 기여한 일을 인정하고 칭찬하는데 시간을 쓴다.

연 구독 매출 $8.5MM (약 110억원) 달성

차트메트릭 매출 그래프 (2022년~2023년)

1년동안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여 $8.5MM을 달성했다. 연초에 계획했던 $9MM에는 조금 못 미치는 수치이지만, 올해 SaaS 시장이 전체적으로 얼었고, 경쟁자가 가격을 크게 인하하는 등 경쟁이 극심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고 생각한다.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이 새로이 고객이 되었고, 기존 고객이었던 유니버설 뮤직 그룹, 소니, 워너 등도 소비를 늘렸다. 아티스트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맞춘 제품도 순조로이 성장하고 있다. 내년에 매출을 더욱 견인할 흥분되는 프로젝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회사는 2020년 이래 4년째 흑자를 내고 있고, 올해에 최대 액수의 보너스를 집행했다.

크루즈 여행

캐리비안 크루즈 (16층 짐에서)

태어나서 처음 해 본 크루즈 여행 – 나이 든 사람들만 하는 건줄 알았는데, 사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이 하기에 정말 좋은 여행 방법이다. 실제로 어린 아이를 둔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배 안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공간은 16층에 위치한 짐(Gym). 망망대해와 멀리 있는 섬을 바라보며 트레드밀에서 뛰는 기분은 최고다. 4월에 했던 1주일의 캐리비안 크루즈 여행(플로리다 – 케이만 제도 – 자메이카 – 바하마스 – 코코 아일랜드)의 경험이 좋아서 11월에 또 지중해 크루즈에 다녀왔다.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서 마르세이유 – 제노아 – 로마 – 팔레르모 – 말타 – 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일정. 배에서 자고 먹는 것이 모두 해결되고 키즈 클럽도 잘 되어 있어 아이들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배 안의 극장에서 매일 밤 하는 공연들도 볼 만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방법으로 여행하게 될 것 같다.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사외이사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명함과 사원증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마지않던 회사로부터 갑자기 사외이사 제안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란, 그 기분이란. 올해 초, 에스엠이 큰 변화를 겪으면서 사외 이사 의석을 늘렸는데, 그 과정에서 추천을 받았다. 김규식 변호사/의장을 비롯해 이승민 파트너 변호사, 김태희 대표 변호사, 문정빈 고려대 교수와 함께 이사회에 합류했다. 매달 있는 이사회에 참석하며 케이팝 제작 과정에 대해 많이 배웠고, 시가총액 2조원이 넘는 큰 회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웠다. 형식적인 거수기가 아니라 긴 토론을 거쳐서 결론을 내리는 정식 이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고, 그렇기에 이 일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숙명여대 객원교수 임명

숙명여대 겸임교수 임명식 – 장윤금 총장과 함께

2022년에 숙명여대 장윤금 총장님을 만났는데 그것으로부터 인연이 되어 숙명여대 겸임교수 임명을 받았다. 수업을 맡은 건 아니고, 한국 방문할 때 특강하고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일이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학생들 100여명을 대상으로 ‘데이터로 돈을 만드는 일’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건강 지표 개선

건강 검진 결과 (2022년 vs 2023년)

원래 꾸준히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건강한 패턴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말에 했던 건강검진 지표가 맘에 안들어 식사와 생활 패턴을 확 바꾸었다. 탄수화물을 극적으로 줄이며 밥/빵/떡/면을 거의 안먹고(원래 바지락 칼국수를 그렇게 좋아했었더라는), 소고기 및 돼지고기도 특별한 식사가 아니라면 잘 먹지 않는다. 아침은 삶은 계란과 사과, 그리고 그릭 요거트, 점심은 참치 샐러드, 저녁은 다양한 종류의 한식을 먹는다. 매번 식사 후에는 운동하거나 걷고, 저녁에 펠로톤 자전거로(펠로톤 예찬 글 참고) 30분 정도의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강한 근력운동을 했다. 그 결과, 10개월만에 거의 지방만으로 8kg이 빠졌고, 혈압도 낮아졌으며, 중성지방 및 간 수치가 크게 낮아졌다. 심뇌혈관 나이는 내 나이보다 7살이 더 낮게 나왔다.

멕시코 리트릿

멕시코 리트릿 영상

차트메트릭 풀타임 직원들을 멕시코 카보(Los Cabos)로 초대해 리트릿을 했다. 워크샵이라고 부르지 않고 리트릿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일이 아닌 놀이 일정이기 때문이다. 3박 4일동안 고급 빌라에서 셰프가 차려주는 요리를 먹고,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마시며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는 각자 할 일을 하고, 오후는 ATV, 해변 산책, 테니스, 수영 등 운동하고 노는 일정으로 잡았다. 든든한 COO인 안드레아스(Andreas)가 모든 구체적인 일정을 꼼꼼히 확인하고 챙겨줘서 나도 손님인 것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데이빗 포스터와의 만남

라스베가스 윈(Wynn) 호텔의 백스테이지에서, 데이빗 포스터와 그의 아내 캐서린 맥피와 함께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는 미국의 팝 업계를 주름잡는 대단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다. 전설적인 팝 가수 셀린 디온(Celine Dion)이 19살 때 그를 발견하고 함께 일해 지금의 위대한 인물로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안드리아 보첼리, 조쉬 그로반, 마이클 부블레 등이 불러 유명해진 수많은 노래들을 그가 만들었다. 영화 ‘보디가드’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불러 유명해진 “I will always love you“를 그가 편곡했고, “I have nothing” 또한 그가 공동 작곡한 작품이다. 라스베가스의 윈(Wynn) 호텔에서 공연할 때 그와 그의 아내를 백스테이지에서 만나 30분간 이야기를 나눴는데, 차트메트릭에 관심을 보이고 농담도 주고 받으며 기억에 남는 시간을 가졌다. 8년 전, 음악 업계에서 사업을 하기로 했던 결정을 했던 것이 자랑스러웠던 경험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

또 하나의 독서 후기. When Breath Becomes Air.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스탠포드대를 졸업한 신경외과 의사. 3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폐암 판정을 받고, 불과 2년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가, 마지막 힘을 모아서 쓴 책. 원래 영문학을 전공했기에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그래서인지 정말로 글을 잘 쓴다. 고전 문학에서 따온 인용구를 섞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너무나 훌륭한 단어와 문장으로 담았다. 영어 버전으로 읽었는데 하나하나의 표현들이 주옥 같아서 일일이 다 외우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담담하게 어린 시절을 묘사할 때, 자신의 아버지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갑자기 바뀌게 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는 재미있는 수필 정도로 읽었다. 의사로서, 특히 뇌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신경외과 의사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아왔기에, 막상 자신이 폐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놀랍도록 담담하게 맞이했다. 특정 변이의 폐암이기에 약을 먹는 것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했을 때는 함께 기뻐했고, 그 약을 먹은 지 몇 달이 지나 암이 축소되었다고 했을 때 같이 기뻐했다.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How Long Have I Got Left?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나요?” 가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 순간, 암이 호전되었을 때 쓴 글이다. 명문중의 명문이니 꼭 읽어보면 좋다. 아래는 그 글의 일부.

CT 스캔이 완료되자마자 저는 이미지를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단은 즉각적이었습니다: 폐를 덮치고 척추를 변형시키는 종괴. 암입니다. 나는 신경외과 수련 때 다른 의사들을 위해 수백 번의 스캔을 검토했지만, 수술로 어떤 희망도 제공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어 차트에 "넓게 전이성 질환 - 수술할 여지 없음"이라고 낙서하고 지나갔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스캔은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제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
이제 제가 진단 받은 후 거의 정확히 8개월이 지났습니다. 힘을 상당히 회복한 상태입니다. 치료 과정에서 암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일상 업무로 돌아왔습니다. 과학 논문의 먼지를 털고 있습니다.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5시 30분에 알람이 울리면 죽은 듯한 몸이 깨어납니다. 옆에서 아내는 잠들어 있습니다. 다시 스스로에게 생각합니다: "더 이상은 갈 수 없어." 그리고 1분 후에 제가 수술복을 입고 있고, 수술실로 향하고 있습니다. 살아있습니다: "난 계속 갈 거야."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서 종일 열심히 일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은 동안 암은 다시 진전되었고, 이번에는 더 큰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새로운 암 덩어리를 봤을 때 그의 심정이란..

결국 항암요법을 시작하면서 병세는 다시 크게 악화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아래 문구는 그가 쓴 글의 마지막 문단. 읽고 또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무려 2만 명이 넘게 하이라이트한 대목.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지 불과 몇 개월이 된 딸을 보며, 그 아이가 적어도 자신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는 자신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 간절한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얼마나 바랐을까, 1년만 더 살 수 있게 되기를. 안타깝게도 이 대목까지 쓰고 나서 상태가 갑자기 안좋아진 것 같다. 몇 달 후, 딸이 8개월 되었을 때,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단다: 인생에서 자신에 대한 설명을 해야하는 많은 순간 중 하나에 왔을 때, 너가 무엇이었고, 무엇을 했으며 세상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한 장부를 기록해봐. 나는 기도한다. 너는 죽어 가는 한 남자의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채웠다는 것을 무시하지 말기를. 내가 그 전에 한 번도 알 수 없었던 기쁨. 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 만족을 주는 기쁨.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것은 엄청난 일이야.
폴이 쓴 글의 마지막 문단

원서를 직접 읽는 것을 강력 추천하지만, 한글 번역본은 교보 등에서 구할 수 있다.

경쟁의 의미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꽤 인기 있는 말이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블루 오션을 찾고 싶어한다. 물론, 이 전략은 의미가 있다. 남들이 다 경쟁하고 있는 레드 오션 Red Ocean으로 들어가 죽어버리지 말고 자신만의 블루 오션을 찾아서 거기서 승리하라는 것이다. 블루 오션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카페를 창업하려고 하는데 특정 상권에 북카페가 없다면? 블루 오션. 만약 북카페가 있다 해도, 모두 옛날 만화방 스타일이고 간식도 없고 넷플릭스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도 블루 오션.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떤 상권에 북카페가 없는 이유가 누구도 이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혹시, 누군가가 창업했다가 보기 좋게 망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그 누가 분석해도 그 상권은 수요가 충분하지 못해 하나의 사업을 받침해줄만한 매출을 낼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업을 시작할 때, 레드 오션에 진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시장에는 수요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있기 때문. 또 한가지 장점은, 고객을 가르치는데 비용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고객들이 ‘북카페’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시간당 이용료가 얼마인지, 사용하기 위해 어떤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사업하는 입장에서 훨씬 수월할 것이고, 비용을 절감하고 매출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겨울, 처음 차트메트릭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건 이 분야에 이미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Music data analytics (음악 데이터 분석)’ 같은 키워드로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먼저 뜨는 회사들을 살펴보고, 그 회사들이 언제 시작했는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제품이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또 하나 알아보면 좋을 것이, 그 분야에 과거에 도전했던 회사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회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이다. ‘죽은 자들의 무덤‘은 다소 우울한 용어이지만, 그 죽은 자들(dead bodies)이 얼마나 되는지, 왜 죽었는지를 알면 적어도 내가 그 길은 피할 수 있거나, 아니면 애초에 도전을 안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성공적으로(?) 상장하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엑싯(exit)을 한 회사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분야에서 회사를 만들었을 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는지, 잘 됐을 때 나와 투자자들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을 지 알고 시작하면 좋기 때문이다.

그 때 눈에 띄었던 회사들이 몇 있다. 하나는 뮤직메트릭 MusicMetric 이었고, 또 하나는 빅샴페인 BigChampagne,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가 넥스트빅사운드 NextBigSound 였다. 뮤직메트릭은 가디언지 기사에 따르면 2008년에 시작했고 2013년에 40억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애플에 인수되었다. 약 $50M, 즉 650억원 정도의 금액으로. 그러니까 창업부터 엑싯까지 8년이 걸린 셈이다.

또 하나의 회사는 넥스트 빅 사운드 NextBigSound였다. 이 회사는 2009년에 시작했고 판도라 라디오에 2015년에 인수되었는데,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40M~$50M 정도의 금액이 아니었을까 추산된다. 빌보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인수 전까지 약 $8M(약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com) 제품 화면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이름은 사운드차트(Soundcharts.com). 유니버설 뮤직 그룹에서 인턴을 했던 데이빗 와이즈펠드(David Weiszfeld)라는 사람이 창업했다고 했다. 2015년에 제품을 세상에 알렸는데, 이미 음악 업계에서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며 유명세를 알려나가고 있었다.

사운드차트 (Soundcharts.com) 제품 화면

이 제품들을 당시에 살펴봤고, 각자 어떤 면에서 장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나서 차트메트릭을 만들기 시작했다. 넥스트빅사운드는 이미 6년을 운영해왔기에 꽤 인지도가 있고 발전해 있었고, 사운드차트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품의 완성도가 높았다.

솔직히 좀 두려웠다. 이미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해서 발전해 있는 제품들이 있는데,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까? 과연 우리가 ‘비교적 경쟁 우위 Competitive Advantage’를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이 안 가진 것, 그들이 못 하는 것을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늦게야 시장에 진입한 회사에 다른 제품의 고객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까?

그 때 내가 생각한 건 한 가지였다. 경쟁자보다 조금 더 싸게, 조금 더 좋게 만들자. 투자자들을 만날 때 흔히 질문하는, ‘당신 제품의 차별점이 무엇인가요?’ 에 대해서는 나중에 걱정하자. 지금은 차별화에 집중할 필요 없다. 일단 작동하는 제품을 만들고, 경쟁자들에게 크게 뒤지지는 않는 제품을 만들고, 거기에 아주 작은 차이를 불어넣자.

그렇게 해서, 소박한 시제품과 함께 시작했다. “차별점이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나는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차별화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기능부터 시작했다. 디자이너도 없었기에 모든 디자인 결정은 내가 했고, 버튼의 모양과 색깔도 내가 골랐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제품 개발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내 월급은 첫 1년은 $0이었고, 투자를 받은 후부터는 $3,000으로 정했다. 내 인건비가 낮아지면 회사의 비용 또한 낮아질 수 있기 때문. 그러니까, 내 전략은 ‘그 어떤 경쟁자보다도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기’였다. 다른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다면 적어도 가격 하나만은 낮게 책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자체만으로 경쟁 우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차트메트릭 초기 버전 (2017년)
차트메트릭 현재 버전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느리지만 지속적이면 경기에서 우승한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다. 거북이가 달리기에서 토끼를 이겼듯, 느리더라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 토끼를 이기고 다른 동물들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 전략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살아남았고, 다른 경쟁자들보다 저렴한 비용 구조로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객들의 도움으로 더 뛰어난 직원들을 채용했고, 경쟁자보다 더 높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품을 더 고도화시키고 있다.

2015년에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를 이야기했다. 심지어 큰 레이블에서 높은 위치에 있었던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넥스트빅사운드가 있는데 너희 회사에 기회가 돌아가겠느냐?” 라고 하기도 했다.

시간이 8년 지나, 이제 우리는 4000개 이상의 회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고, 연 반복 매출은 $8.4M, 즉 110억원에 달한다. 25명의 풀타임 직원들을 포함한 35명의 사람들이 매일, 제품을 개선하고 브랜드를 더 널리 알리고 있다. ‘차트메트릭 블로그’로 시작했던 웹사이트는 이제 ‘How Music Charts‘라는 이름으로, 흡사 빌보드를 연상시키는 매거진 사이트로 성장했다.

차트메트릭 월 반복 매출(MRR) 증가 추이.
‘How Music Charts’, 차트메트릭의 퍼블리케이션

한편, 당시에 사람들이 언급했던 넥스트빅사운드는, 2022년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리고, 그 웹사이트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써 있다.

If you loved using Next Big Sound for social media data, we recommend Chartmetric
넥스트빅사운드의 소셜 미디어 데이터 분석 기능을 좋아했다면, 차트메트릭을 추천합니다.

넥스트빅사운드(NextBigSound) 홈페이지에 차트메트릭을 언급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올해와 내년에 나를 흥분시키는 아주 멋진 프로젝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음에 감사하고 기쁘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