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깨서 계속 일했다. 전에 회사 다닐 때에는 참 잠을 많이도 잤었는데, 요즘에는 잠이 많이 줄었다. 특히 꿀맛같았던 아침잠이 없어진 게 가장 큰 변화. 대략 생각해보니 지난 6개월은 알람 시계 없이 살았던 것 같다. 희안하게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별로 잠이 오지도 않는다. 내가 자는 사이 유럽에서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를 알게 되어 가입하지 않았을까, 오늘은 누가 유료 고객이 되었을까, 그리고 오늘은 어떤 기능을 새로 구현하고 누구에게 연락할까 고민하다보면 잠이 싹 달아나고 만다.
그래서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서울에 살 때는 매일 아침 수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삶의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미국에 오니 수영이 젊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닌지라 수영 대신 gym에서 운동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전히 혼자 운동하는 것에는 큰 재미를 못느껴서 되도록이면 group exercise에 시간 맞추어 가서 운동하는데, 몇 달 전에 사무실이 근처에서 마음에 드는 gym을 찾았다. 팔로 알토 다운타운에 한가운데 있어서 사무실에서 걷는 거리인데다, 환하게 뚫린 창 밖으로 200년은 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과, 여유롭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운동할 수 있어서 좋다. CNN에서 도널트 트럼프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좀 지겹기는 하지만.
폼 피트니스(Form Fitness)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아침에 사람들과 함께 숨이 가빠 하늘이 빙글빙글 돌기까지 1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나면,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가슴 깊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이런 패턴을 어느 정도 반복하고 나니 이제는 아침에 귀찮은 것보다 운동 후의 기대감이 더 커서 운동을 빼먹으면 훨씬 몸이 피곤하고 기분이 가라앉기에 이르렀다.
사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얼마전 친구가 물었는데, 나의 경우에는 아침 운동이 그 답인 것 같다. 이제 뛰러 나가야겠다.
얼마전 MIT 테크놀러지 리뷰에 실린 Technology and Inequality (기술과 불평등) 이라는 글을 읽었다. 유럽에 비해 미국에서 빈부 격차가 심해졌다는 것이 논의의 시작인데, 글이 진행되면서 이것이 기술 발전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인 팔로 알토에 거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예로 들며, 실리콘밸리에 부가 축적되는 것과는 별개로 시간당 16달러 미만을 버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실리콘밸리 남부 주민의 19퍼센트가 가난한 층에 속한다고 한다. 더불어, 미국의 소득 중위값이 53,000달러인 것에 비해 실리콘밸리의 소득 중위값은 94,000달러에 달한다는 것도 예로 든다.
Median income in Silicon Valley reached $94,000 in 2013, far above the national median of around $53,000. Yet an estimated 31 percent of jobs pay $16 per hour or less, below what is needed to support a family in an area with notoriously expensive housing. The poverty rate in Santa Clara County, the heart of Silicon Valley, is around 19 percent, according to calculations that factor in the high cost of living.
이런 자료도 있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상위 1%가 전체 부의 34%를, 0.1%가 15%를 소유하고 있으며, 금융 위기 후인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늘어난 소득의 95%를 상위 1%가 가져갔다고 한다(이 대목을 읽고 깜짝 놀랐다).
The gap between the wealthy and everyone else is largest in the United States. In 2010, the richest 1 percent of the population had 34 percent of the accumulated wealth; the top 0.1 percent had some 15 percent. And the inequality has only gotten worse since the last recession ended: the top 1 percent captured 95 percent of income growth from 2009 to 2012, if capital gains are included.
2009년부터 2010년 사이의 재산 증가분. (출처: Technology Review)
그리고 나서, Erik Brynjolfsson이라는 한 MIT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런 소득 격차의 원인이 기술 발전에 있다고 주장한다.
“My reading of the data is that technology is the main driver of the recent increases in inequality. It’s the biggest factor,” says Erik Brynjolfsson, a professor of management at MIT’s Sloan School
내용은 이렇다.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일들이 자동화되고 있고, 그 결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운도 좋은 소수의 사람들이 새로 창출되는 부를 독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Brynjolfsson lists several ways that technological changes can contribute to inequality: robots and automation, for example, are eliminating some routine jobs while requiring new skills in others (see “How Technology is Destroying Jobs”). But the biggest factor, he says, is that the technology-driven economy greatly favors a small group of successful individuals by amplifying their talent and luck, and dramatically increasing their rewards.
기술 발전으로 파이의 크기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실리콘밸리의 사례로 넘어간다. 한 조인트 벤처 대표의 말을 인용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중간층은 이제 사라졌어요. 아주 부자이거나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 남았지요.”
In his quiet suite in a large office building in downtown San Jose, Joint Venture president Russell Hancock seems impatient when asked about inequality in the region. “I have more questions than answers. I can’t explain it. I can’t tell you how to fix it,” he begins abruptly. “We used to be a classic middle-class economy. But that’s all gone. There’s no longer a middle class. The economy is bifurcated and there’s nothing in the middle.”
그리고 몇 가지 사례를 더 든다. 실리콘밸리에 사는 사람 중 20~25퍼센트가 하이테크 영역에 종사하고 있고, 부는 그들에게 집중된다. 이들이 집값, 교통비를 비롯한 모든 생활비를 증가시키고, 소매점이나 레스토랑에서 일하거나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급여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The situation in Silicon Valley helps explain why. About 20 to 25 percent of the population works in the high-tech sector, and the wealth is concentrated among them. This relatively small but prosperous group is driving up the cost of housing, transportation, and other living expenses. At the same time, much of the employment growth in the area is happening in retail, restaurant, and manual jobs, where wages are stagnant or even declining. It’s a simple formula for income inequality and poverty.
U.C. Davis 교수인 Chris Benner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소수의 사람들이 조단위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뿐이지, 1998년 이래 실리콘밸리에서 일자리의 수는 늘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According to Chris Benner, a regional economist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there has been no net increase in jobs in Silicon Valley since 1998; digital technologies inevitably mean you can generate billions of dollars from a low employment base.
그리고 나서 글은, ‘하이테크 영역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게 돌아가도록 교육의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넘어가며, 기술이 더 발전할수록 미국의 미래가 점차 실리콘밸리의 모습을 닮아갈 것인지, 그렇다면 소수만 부자가 되는 시스템이 창의력과 생산성을 저하시키지 않을지 묻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과연, 실리콘밸리는 미국 내에서 소득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그만큼 비용 또한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날씨가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데 드는 프리미엄을’ 빗대어 기후세(Climate Tax) 또는 날씨세(Weather Tax)라고도 표현하는데, 정말 내 소득의 30%를 좋은 기후에 사는 대가로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곳의 물가가 높다. 안그래도 높았는데 지난 3년간 계속 증가해서 지금은 더 높아진 것 같다. 거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집값의 상승이고, 더불어 기름값, 음식값 등등도 같이 올라서 지금은 뉴욕 맨하탄보다 샌프란시스코가 더 살기 비싸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도대체 여기서 숨쉬고 살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걸까? 한 번 정리를 해봤다.
1. 집값: 월 2000 ~ 4000달러
가장 큰 항목은 집세이다. 부모에게 집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면 아파트에서 살거나 집을 사야 한다. 이 곳에서 ‘한 가족이 웬만큼 살만한 집’은 60만달러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학군이 괜찮고 주변 환경이 괜찮으며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기 원한다면 집값은 100만 달러이상으로 올라간다. 미국에서는 ‘매월 임대료를 내고, 관리 사무실이 따로 있는 곳’을 아파트라고 부르는데 (한국의 아파트는 condominum이라고 한다), 방 두 개 있는 30평 남짓 아파트 가격은 최소 3000달러이며, 좀 좋은 곳은 5000달러 정도 한다 (물론 더 비싼 곳도 있다)
마운틴뷰 기차역 근처에 신축한 Madera 아파트 가격. (출처: Zillow. 1000 스퀘어 피트는 약 30평)샌프란시스코 SoMa 지역의 고급 아파트, Two Tower 가격 (출처: Zillow)마운틴뷰의 ‘학군이 그다지 좋지 않은 지역의’ 방 2개짜리 콘도 가격샌프란시스코 SoMa 지역의 방 2개 콘도 가격 (출처: Zillow)
결국, 아파트에 살든 모기지(담보 대출)을 끼고 집을 사든, 방 2개가 있는 웬만한 집에서 살고 싶다면 보통 3500달러는 든다고 생각.
2. 관리비: 200달러
아파트에 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전기, 가스, 수도, 쓰레기 등을 처리하는 비용도 꽤 비싸서 이런 데 나가는 돈을 합치면 월 200달러 정도.
3. 차량 유지비: 500달러
일단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것이 아니면 사람 한 명당 차 한 대가 필요하다. 자동차 등록비도 꽤 비싸서 차 한대당 1년에 100~200달러. 그리고 보험료도 높아서 차 한 대당 월 50~100달러. 그리고 감가상각으로 월 100~500달러. 차량 수리비도 비싸서, 간단한 수리라도 1000달러 이상 드는 경우가 많다. 설상가상으로 살인적으로 높은 교통 위반 벌금이 더해진다. 주차 위반은 50달러, 카메라에 찍혀서 걸리면 500달러.
교통 위반 고지서. 벌금 490달러.
캘리포니아가 서울에 비해 저렴하기는 하지만 (리터당 1200원 가량?), 대신 먼 거리를 운전할 일이 많으므로 그만큼 연류 소모량이 많다. 기릅값은 차 한대당 월 50~150달러 정도.
4. 건강 보험: 300달러
회사에 따라 건강 보험을 80%정도 커버해주는 곳도 있고 100% 커버해주는 곳도 있는데, 100% 커버가 아니면 가족당 월 보험료 300달러 정도. 회사에서 커버가 안되면 월 보험료 1000~1500달러. 그리고도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날 때마다 Co-Pay로 매번 25달러씩 내야 한다.
Kaiser Permanente 병원 그룹 3인 가족 월 보험료. 이건 일반 의료 보험만이고, 치과 보험과 안과 보험은 다른 회사에서 따로 가입해야 한다. (출처: kaiserpermanente.org)
참고로, 미국에서 의료 보험 없이 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 의료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간혹, 병원이 보험 회사에 청구하는 고지서를 볼 때가 있는데 정말 깜짝 놀란다. 작년에 아이가 태어날 때 산부인과를 이용했는데, 자연 분만을 했는데도 불과하고 이틀 병실 입원료까지 합쳐 병원에 청구된 금액이 2만 달러였다.
산부인과 병원비 고지서. 조정 후 4400달러. 이건 출산과 관련한 병원비만이고, 2박 3일 입원비는 따로 15,000달러가 나왔다.
보험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사고가 나서 응급실을 이용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들어갔다 바로 나오기만 해도 200달러 정도 들고, 앰뷸런스를 불렀다면 400~1200달러. 들어가서 수술이라도 하면 2만달러. 며칠 입원하면 1만달러 추가. (출처: CostHelper.com)
이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외식을 얼마나 하는지 등에 달려 있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든데, 3인 가족의 경우 최소 1000달러 정도 들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경우 세금과 팁을 포함해서 한 끼에 15달러 정도. 조금 좋은 곳에서 식사할 경우 한 끼에 30달러.
6. 쇼핑 등: 500달러
그냥 살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 사는 데 드는 비용.
7. 여행: 300달러
가끔 있는 여행을 위한 비축.
8. 데이 케어(놀이방): 1200달러
어린 아이가 있고, 부모가 둘 다 일을 할 경우에는 데이케어 센터에 아이를 보내야 한다. 정부 보조 이런 거 전혀 없고 100% 자기 부담이다. 주 5일 맡길 경우 아이 한 명당 1200달러정도 된다.
위에 나열한 것만 합치면 8000달러. 일단 생각나는 항목들만 적어본 것이고, 여기에 생각지 못하게 빠져나가는 온갖 비용들이 추가된다. 주변에 좀 물어보니 3인 가족의 경우 생활비가 최소한 월 8000달러는 드는 것 같다. 평균은 잘 모르겠지만 1만 달러 정도 되지 않을까? 여기에 어린 아이 하나당 월 1500달러 추가. 아이를 사립 학교에 보낼 경우 아이 한 명당 월 3000달러 추가.
월 1만 달러를 소비하려면 연봉이 얼마여야 할까? 세금 후 1만달러를 받으려면 세금 전 수입이 월 13,500달러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연봉으로 환산하면 16만달러이다.
도대체 이 지역의 월 소득이 얼마이길래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서 좀 찾아봤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주요 도시의 가구 소득 중위값이 13만~16만달러정도 사이에 있다. 제일 위에 위치한 Atherton과 Hillsborough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동네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대도시이다보니 빈민층 통계가 같이 잡힌 것 같다.
이 글에서 마일즈라는 9살 아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는 20달러짜리 지폐를 주차장에서 주웠으나, 식당에서 군인을 보자 자기가 갖는 대신 편지와 함께 그에게 지폐를 주었다고 한다. 그 소년의 아버지 역시 군인이었으나 이라크에서 전사했었다. 20달러를 받은 중령은 크게 감동했고 자신도 다들 사람들에게 20달러의 지폐들을 보낸다. 이를 Pay It Forward라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의 묘비를 껴안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모습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지난 달에는 친구의 초대로 SEO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주최하는 칵테일 파티에 갔었다. SEO는 Sponsors for Educational Opportunity의 줄임말인데, 저소득 학생들을 뽑아 8년간 대학 진학에 필요한 재정적, 교육적 지원을 해주는 단체이다. 1963년에 미국 동부에서 설립되어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2011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장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의 이사회 임원 중 한 명인 Nihir가 힐스보로우(Hillsborough)라는 부유한 동네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SEO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한 후, SEO에서 후원하고 있는 학생 두 명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SEO의 이사회 임원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인데, 이 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기회가 없었을 뻔했던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것을 정말 보람있어한다.
미국에 살면서 이런 것들을 자주 보고 경험하게 된다. 소수와 약자, 장애인, 그리고 슬픔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도움. 이는 미국에 부유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사상이 바탕이 되어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들보다 자원을 적게 가졌거나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들을 ‘Underprivileged(언더프리빌리지드)’라고 하는데, 이들을 지원하는 민간 단체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활동도 활발하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도 할 수 있고, 단순히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런 활동이 워낙 활발하니 정부와 세금에 의지하는 게 줄어들고, 더 많은 혁신을 가져온다는 긍적적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덧붙임말: 온 더 로드(On The Road)에, 3분짜리 완결성 있는 뉴스로 압축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 내가 좋아했던 또 하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고등학교 코치가 농구를 사랑하지만 발달 장애가 있는 미첼이라는 학생을 막판 1분 30초를 남겨두고 교체해서 넣었다. 이 학생은 같은 팀 선수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골 넣기를 실패하다가, 결국 마지막 몇 초를 남겼을 때, 상대 팀 선수가 공을 패스하면서 골을 성공시켜 역전승을 이룬 사건이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학생들이 열광하며 축하하는 모습이 또한 감동을 주었다. 두 학생은 나중에 엘런(Ellen DeGeneres)의 쇼에 출연해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설명하는데, 미첼은 기쁨에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
역전 골을 성공시킨 미첼에게 열광하는 선수와 관중들
요즘 한국 뉴스 방송을 볼 일은 거의 없지만, 가끔 보면 살인, 자살, 사기 등의 사고가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해서 채널을 돌려 버린 적이 많았다. 물론 그런 소식을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그런 소식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시청률이 올라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애써 따뜻한 소식을 더 많이 알려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항상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세 가지 옵션이 있다. 하나는 케이블 망을 이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화선을 이용하는 것이며, 또 한가지 옵션은 광케이블이다. 케이블 망은 컴캐스트가 독점하다시피하고 있고, 전화선을 이용한 DSL은 AT&T가 제공하고 있다. 광케이블은 AT&T에서는 U-Verse라는 브랜드로, 버라이즌(Verizon)에서는 FiOS라는 브랜드로 서비스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광케이블이 깔리지 않은 곳이 많아 전에 살던 집도 그렇고 지금 사는 곳도 그렇고 광케이블 서비스는 이용할 수가 없다. 결국 옵션은 컴케스트 케이블 아니면 AT&T DSL인데, 2013년을 살면서 6mbps 정도밖에 안나오는 느린 DSL은 도저히 쓸 수가 없어 25mps정도 되는 컴캐스트 인터넷을 월 60달러씩 내며 쓰고 있다.
최근에 집을 하나 샀다. 거기에도 컴캐스트 망을 설치하려고 알아보니 컴캐스트 서비스가 되는 곳이라고 하기에 바로 신청했다. 기사가 와서 설치하는 옵션은 수십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 하기에 직접 설치하겠다고 했더니 케이블 TV용 기기가 왔다. 매뉴얼을 꼼꼼히 읽고 그대로 따라서 전원을 꼽고 케이블을 연결했으나 신호가 안잡혔다. 껐다 켜기를 몇 번 반복하고, 인터넷 뒤져서 알아보고, ‘내 힘으로 꼭 해결하리라’는 생각으로 몇 시간을 보냈는데 결국 해결을 못했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보니 누군가와 통화하는데 10분, 그리고 리셋해보라는 말을 듣기까지 20분.. 시간을 한참 낭비했다.
결국, 기사(technician)를 불렀다. 이틀 후에 도착한 그는, 집에 들어와서 이것 저것 조사해보고 신호를 측정하더니 한 마디 했다.
집에 설치되어있는 케이블이 컴캐스트용이 아니네요. Dish나 DirecTV같은 위성 TV용 케이블이에요. 일단 컴캐스트용 케이블로 바꾸고 나서 다시 시도해보세요.
컴캐스트가 지원이 안된다면 진작 이야기를 했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동안 낭비했던 시간, 특히 기술 지원을 받겠다고 전화 붙잡고 기다렸던 시간이 정말 아까웠다. 그동안 낭비한 시간으로도 충분하니 앞으로 컴캐스트와는 상종하지 말자는 생각 뿐이었다. 그 길로 컴캐스트에 전화해서 해제하고 Dish에 전화해서 서비스를 신청했다. 가격도 더 저렴했고, 훨씬 친절하고 일처리가 빨랐다. 기사가 와서 무료로 설치해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 웹사이트도 훨씬 편리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며칠 뒤, 컴캐스트에서 받았던 케이블 TV 셋탑박스를 반납하도록 빈 상자가 하나 도착했다. ’드디어 컴캐스트와 마지막 거래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또 한 번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빈 상자가 너무 작아 셋탑박스를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한테 애초에 보냈던 모델이 뭔지도 몰랐나보다.
다행히 크기가 맞는 빈 상자가 하나 있어 거기에 넣어서 반납했다. ‘보내준 상자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기 반납을 거절하지 않기를 바라며.
일주일 뒤, 컴캐스트에서 전화가 왔다. 컴캐스트 서비스를 정지했지만 기기가 도착하지 않았다며, 기기를 빨리 반납하지 않으면 수백달러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컴캐스트에 전화해서 항의했다. 분명히 기기를 반납했는데 무슨 이야기냐. 그랬더니 운송장 번호를 달라고 한다. 운송장 번호는 따로 기록해두지 않아 모르겠다고 하며 왜 그걸 확인을 못하냐고 물었더니, 기기 반납을 처리하는 부서는 따로 있고 서로 연결이 안되어 있다고 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시스템끼리 서로 정보 교환이 안되고 있다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인터넷과 TV 설치하려면 전화 한 통이면 간단하게 되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쉽게 해결이 되는데, 컴캐스트는 왜 이렇게 고객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걸까.
For a total of 10 months I tried to get Comcast techs to come to my house and look at my incoming lines. All but one tech flat out refused to go outside the house. The one that did go outside told me my neighborhoods overhead lines needed to be repaired and they’d put a call in. Nothing was ever fixed. (10개월동안 컴캐스트 기사더러 와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는데 제대로 보지도 않고 거절하거나, 이웃집이 문제라고만 했죠. 결국 해결이 안됐어요.)
I had received a TV for Christmas from my in-laws. I was on my way out the door to buy a TV with a better picture the day a directv rep came to my house. We decided to make the switch. Two days later they did the hookups. Turns out my TV is a fairly nice TV it just had a crappy signal from Comcast. (크리스마스 선물로 TV를 받았는데, 화질이 안좋길래 다른 TV를 사려고 하려는 차에 DirecTV에서 왔어요. 이 참에 서비스를 바꿔보기로 했죠. 이틀만에 설치가 끝났어요. 제가 가졌던 TV는 알고 보니 문제가 없었더군요. 컴캐스트 서비스가 문제였죠.)
In one situation my bill went from $100 directly to $180. After having battled many times with Comcast over the phone, I finally started shutting down services to get my bill down to a manageable level. Since I bought a house, I was able to dump Comcast as my internet service provider and switch to Verizon FIOS. I haven’t looked back since. (어느날 갑자기 가격을 100달러에서 180달러로 올렸어요. 전화해서 얼마나 항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서비스들을 해제해야 했죠. 집을 사고 나서는 컴캐스트를 중지하고 버라이즌 FiOS로 바꿨습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서비스 품질이 이렇게 안좋은데 왜 회사가 망하기는 커녕 왜 해마다 매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독점에 있다.
Where I currently live, they are the ONLY TV service available They have made it difficult for other cable companies to be additional options.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TV를 보려면 컴캐스트가 유일한 옵션이에요. 그들이 다른 케이블 회사들은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죠.)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에게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광케이블은 연결이 안되어 있고, 케이블 인터넷 사업자는 타임 워너(Time Warner)와 컴캐스트(Comcast) 둘 뿐이며, 두 회사가 각각 다른 지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어, 지역별로는 독점이 될 수밖에 없다. 2013년 8월 23일자 Los Angeles Times 기사 중 일부이다.
“Cable has won; it’s a monopoly now,” she told me last week. “People are just waking up to that fact.” More than 80% of new subscribers to high-speed Internet service are going with their local cable providers. It’s not because they think those providers are just grand; it’s because in most of the country there’s no choice. Local cable service is a monopoly almost everywhere; fiber companies such as Verizon and AT&T, which have the technology to bring you higher speeds, won’t spend the money to compete. (케이블쪽이 이겼어요. 이제 독점이죠. 고속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 중 80%가 케이블 회사를 쓰고 있어요. 그들이 잘 해서가 아니에요.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죠. 버라이즌이나 AT&T같은 광케이블 회사들은 이미 경쟁을 포기했어요.)
미국에서 부유한 지역인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케이블을 쓸 수 없으며,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울며 겨자먹기로 한 달에 60달러나 내면서도 서비스가 안좋은 케이블 인터넷을 쓸 수밖에 없다. 서비스 업그레이드 하나 하는데 30분의 통화가 필요한 그런 회사랑 거래하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격만 비싸고 품질은 안좋은 케이블을 끊는다(cut the cable)며 점차 넷플릭스와 훌루, 그리고 아이튠스를 통해 TV를 시청하기 시작했지만, 그러한 서비스들을 이용하려면 결국 인터넷 망이 필요하고, 컴캐스트와 타임워너 두 케이블 회사가 인터넷 망을 독점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케이블 TV를 끊는 만큼 인터넷 접속 요금을 올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이 두 회사는 무서울 것이 없다.
MBA 수업에서 시어즈(Sears) 백화점을 다룬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J.C. Penny로 대변되는 저가형 백화점과 Nordstrom으로 대변되는 고급 백화점 사이에 끼어서 포지셔닝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는 시어즈가 뭔지도 몰랐기에 그냥 그런 백화점이 있나보다 했다.
시어즈는 1893년에 세워진 역사가 긴 백화점이다. 1950~1960년대에 큰 성장을 했고, 그 눈부신 성장을 상징하는 108층의 시어즈 타워(Sears Tower)는 1973년에 시카고에 세워져 1998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자리를 차지했다(2009년에 윌리스 타워(Willis Tower)로 이름이 바뀌었다).
시어즈 백화점의 성공을 상징하는 시카고 시어즈 타워 (지금은 윌리스 타워로 이름이 바뀌었다)
최근 시어즈를 통해 세탁기를 하나 구매하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왜 그 회사가 애매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지를. 새 집에 넣을 세탁기와 건조기를 찾으려고 알아보던 중, 시어즈가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시어즈 아웃렛(Sears Outlet)을 이용하면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12일 후에 배송해달라고 하고 신용카드로 배송비 120달러와 함께 결제했다.
12일이 지났다. 세탁기는 제 때 도착했다. 하지만 건조기는 배송이 지연되었다고 했다. 아침 8시에 전화가 와서 배송이 지연되었으니 시어즈로 전화 달라는 자동 응답 메시지를 들었다. 전화를 안했더니 10분 후에 또 전화가 왔다. 귀찮아서 배송 담당 부서에 전화했더니 미안하다며 곧 배송해주겠다고 했다.
며칠이 지났다. 건조기가 빨리 필요했는데 도착하지를 않았다. 오전 8시에 배송이 지연되었다는 전화만 또 왔다. 지난번에 이미 통화했고, 배송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왜 또 귀찮게 하나 싶었는데, 다시 전화해보니 자기는 모르고 해당 아웃렛 스토어와 통화를 하란다. 거기 전화했더니, 이번에는 건조기 재고가 더 이상 없단다. 미안하다며, 환불해주겠다고. 근데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세탁기를 배송할 때 두 개의 배송료를 이미 다 차감했다는 것이다. 60달러만 돌려주기 쉽지 않게 되었다며 알아보겠다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기다렸다. 또 며칠이 지났다. 그 와중에 세탁기에 문제가 생겼다. 처음 설치해서 테스트했을 때는 잘 되더니, 다시 해보니까 이상한 소리가 나고 돌아가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시어즈에 다시 전화했다. 미안하다며 기사를 보내주겠단다. 급하다고 언제 되냐고 했더니 12일 후에 가능하다고 했다. 새 제품이 작동이 안되는데 12일을 기다리라고? 그냥 교환해주든지 반품하고 환불해달라고 했더니 그건 자기는 못하고 다른 데다 전화해서 다시 설명하란다. 시어즈에 전화해서 설명을 다시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교환이 되었다.
환불해주겠다던 건조기 가격과 배송료 60달러는 환불이 되지 않고 있었다. 시어즈에 다시 전화했다. 일단 배송료는 환불을 해주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 건조기는 아직도 환불이 되지 않았다. 그 후로 두 번을 더 연락했는데, 처리하겠다고만 하고 소식이 없다. 이러다 시어즈가 망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다.
“They are a zombie retailer,” said Mr. Sozzi, who has a sell recommendation on Sears stock. “And with today’s announcement, they are dismembering their body.” (시어즈 주식을 매각하라고 조언하는 한 애널리스트가 말했다. “시어즈는 좀비 소매점이죠. 이제 몸통을 하나씩 해체하고 있어요)
사람 없이 한산한 시어즈 백화점 (출처: 뉴욕 타임즈)
가진 자산과 브랜드가 워낙 많다보니 해체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1년만에 턴어라운드(turnaround)에 성공해 주가가 무려 4배나 성장한 베스트 바이(Best Buy)와 달리, 브랜드의 빛을 잃고 소비자 신뢰도 잃은 시어즈(Sears)는 이제 회생이 어려워 보인다.
오직 순수한 기부액으로만 이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데, 재미있었던 것은 이 기부 캠페인을 다섯 개의 영어권 나라 – 미국,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 에서만 벌였다는 것이다. 285개의 언어로 쓰여져 있고, 매달 세계 4억 7천 5백만명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인데, 왜 위 다섯 개의 나라에서만 캠페인을 했을까? 위키피디아에서 영어로 된 정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이 다섯개 영미권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기부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번 캠페인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작년 캠페인에 참여해서 1년동안 매달 일정액을 기부했었다. 사실 위키피디아가 나에게 주는 가치를 생각하면 너무 미미한 액수였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바뀐 것 중 하나가, 이렇게 무형의 가치에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뭔가 내가 쓰는 것에 대해 가치를 느끼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하고 싶어진다. 예전에 크리스마스에 에버노트에 찾아가서 와인을 선물했던 일처럼. 전에는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구해서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드라마나 영화도 그런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서 무료로 보곤 했는데, 지금은 넷플릭스와 훌루, 그리고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를 이용하고 있고, 이 셋 모두 월정액이나 건당 요금을 내며 쓰고 있다. 지금도 마음 먹으면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음악을 공짜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쓰고 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첫째, 주변 사람들이 다들 돈을 내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있을 때나 회사에서 일할 때나, 항상 듣는 말은 어떤 소프트웨어를 얼마에 샀다든지, 음악을 사서 듣고 있다든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아이튠스에서 구입했거나 넷플릭스에서 보고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이다.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서 쓰고 있거나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팁 문화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 처음 와서 참 귀찮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팁 문화이다 (미국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고 난 후 계산할 때, 발레 파킹을 하고 나서 차 문을 열어줄 때, 세차 하고 나서 키를 넘겨 받을 때,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시켰을 때, 아니면 심지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깍고 나서도 항상 팁을 더해 준다. 안줘도 상관은 없지만, 상대방이 기대한다는 것을 알면서 무시하면 웬지 꺼림직하고 ‘깍쟁이 아시안’ 소리를 들을까봐 팁을 항상 챙기는 편이다. 이제 익숙해지고 나니, 괜찮은 관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음식값을 다 내고 굳이 왜 또 팁을 얹어 줘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식당에서는 그 팁을 포함해야만 수익이 나기 때문에 사실은 음식 값의 일부이다. 하지만 이렇게 ‘음식값 + 세금 + 팁’으로 가격을 나누어 놓음으로서, 고객 입장에서 항상 세금을 별도로 생각하게 되고, ‘팁 = 서비스’ 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히고, 어떤 식으로든 서비스를 받으면 거기에 대해 ‘팁’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닐까?
셋째, 돈을 지불했을 때 그 대가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2012년 블로그 결산‘에서 워드프레스 이야기를 잠깐 했었다. 내가 쓰는 블로그 엔진인 워드프레스는 사실 무료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일년에 100달러 이상씩 돈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내가 돈을 내기 시작한 이후로 워드프레스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 원래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블로깅 엔진이었지만, 나처럼 돈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니 제품에 투자를 해서 품질을 크게 개선한 것이다. 이런 사이클을 경험하고 나니 내가 내는 돈이 아깝지가 않다.
넷째, PayPal 등 쉬운 결재 방식 덕분에 지불 과정에 마찰(friction)이 없다. 물건을 사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달리, 기부는 대개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결정이다. 기부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서 버튼을 눌렀는데 엑티브 엑스 깔고, 공인인증서 암호 입력하고,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하고, 휴대폰 인증 하다보면 ‘그냥 안하고 말지’하고 중간에 그만둘 수가 있는데, 페이팔을 이용하면 그런 모든 과정이 없다. 기부 액수를 정한 후 페이팔 아이디와 암호만 입력하면 즉시 지불이 된다. 아래는 위키미디어 파운데이션의 기부 페이지의 일부분이다.
위키피디아의 기부 페이지. 신용카드를 이용하거나 페이팔을 이용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한국과 미국의 M&A 문화 차이라는 글에서, 표절을 엄단하고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인정하는 문화 때문에 미국에서 M&A가 활발한 것 같다는 주장을 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점에 있어서는 생각이 다르지 않다. M&A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M&A가 가진 긍정적 파급 효과가 매우 큰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 이러한 M&A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무형의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해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국민 소득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기부 문화가 선진국의 척도를 가늠하는 것이 아닐까?
업데이트 (1/17/2013): 보통 ‘기부’라고 하면 사회보장과 관련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든지 사회 약자를 돕는다든지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글에서의 ‘기부’는 그런 쪽의 의미는 아니고, 위키피디아와 같이 사람들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품에 대해 기꺼이 지갑을 열어 돈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을 안 내도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전혀 불편함이나 제약은 없지만, ‘자신이 그 서비스로 인해 가치를 얻었다고 생각되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마음’,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진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신이 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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