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고객을 만든 방법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미국 진출을 고려중인 창업가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특히 B2B 사업을 하는 분들이 더 많이 물어보는 질문.

“첫 고객을 어떻게 만들었나요?”

2015년 겨울, 스파크랩스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데모데이에서 발표를 하고, 가족과 엔젤 투자자들로부터 20만달러의 첫 투자를 받으며 회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업계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다. 음악 업계를 위해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돈을 내고 쓰게 될까 막막했다. 이미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회사들이 있었고 인수된 회사들도 있었지만, 그 회사가 수년간 노력을 들여 만든 아름다운 제품을 보니 기가 죽었다.

그래도 기존에 채워지지 않은 틈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변 인맥을 동원해서 업계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링크드인에 돈을 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뿌리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연락이 오면 전화로 15분만 시간 내 달라고 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에 응해 주었다. 그들과 통화하면 주로 했던 질문은, 지금 하는 일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이미 어떤 툴들을 사용하고 있는지와, 그 툴을 쓰면서 아직도 아쉽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점이 무엇인가였다. 이를 통해 정말 귀한 인사이트를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사람들이 가려움을 느끼는 부분을 조금씩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미팅을 통해 얻은 하나의 키워드가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분석(spotify playlist analytics)‘이었다. 이 키워드를 무작정 차트메트릭 웹사이트 여기 저기에 집어 넣었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의외로 구글 검색을 통해 이 구체적인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고, 몇몇은 베타 테스트 유저로 가입했다. 광고비를 내지 않아도, 아직 사이트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도, 아주 구체적인 의도(intent)로 검색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구글의 가장 강력하고도 신비로운 능력 중의 하나이다 (땡큐, 구글!). 처음에 무료 고객으로 시작해서 차트메트릭의 고객 지원팀을 5년 이상 이끈 마이크 워너(Mike Warner), 그리고 현재 최고 매출 책임자(Chief Revenue Officer)로 있는 채즈 젠킨스(Chaz Jenkins) 등 소위 ‘귀인’들이 이 때 많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차트메트릭 초기 시절 캘린더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2016년 5월에 참가했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컨퍼런스였다. 전에는 어렵게 한 명씩 경우 만나던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멘토링 세션이었는데, 소위 업계에서 ‘멘토’로 불릴 만한 사람들과 10분씩의 스피드 데이팅이었다. 4시간동안 문 앞에 서서 누군가 예약했다가 취소된 자리로 내가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최소한 50명은 만났던 것 같다. 랩탑에 데모를 띄워 놓고, 걸어들어가며 ‘엘리베이터 스피치’를 했는데, 하도 많이 했더니 나중에는 30초만에 피칭을 하고 30초만에 기본적인 데모를 보여줄 수 있었고, 나머지 9분을 질문에 답하고 더 많은 정보를 얻는데 썼다. 이 때의 경험, 그리고 나중에 내가 ‘멘토’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써서 몇달 전 링크드인에 올렸고,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셨다.

이 과정을 통해 조금씩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바로 바로 반영해서 제품을 개선하고, 또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기능들을 추가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었다. 아래는 당시 7월에 썼던 글, ‘변화’.

2016년 말, 그러니까 스파크랩 데모 데이로부터 1년여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20만달러라는 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썼지만, 1년 넘는 시간이 지나자 회사 통장이 바닥났다. 매달 내 돈을 법인 통장으로 보내며 버티고 있었지만, 추가 투자는 받지 않았다. 내가 만든 제품이 실제로 돈을 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야 떳떳하게 투자자를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나에게도 중요했다. 만약 돈을 낼 가치가 없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면, 더 이상 헛된 꿈을 꾸지 말고 피봇하거나,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유료화’를 하기에는 시기 상조였던 것이, 당시 베타 유저가 100여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그 중 20여명은 나의 지인들이 그냥 가입해본 것이었고, 나머지 20명은 테스트하느라 만든 유저였다. 내가 정말 모르는 유저는 60여명밖에 안되었던 것. 유료화를 했을 때 3%가 전환한다고 가정하면, 1.8명이다. 과연 한 명이라도 결제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쨌든, 한 푼이라도 벌어보자는 심정으로 스트라이프(Stripe) 서비스를 써서 신용카드 결제 기능을 붙이고, 몇 가지 기능은 유료 고객이 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게 막아두었다. 한 달 95달러, 그리고 1년 950달러. 그리고, 100여명밖에 안되는 고객들에게 ‘오늘부터 유료화 시작합니다’라고 이메일을 보낸 후에 두근두근하며 기다렸다. 누군가 유료 고객이 되거나 신용 카드 결제가 일어나면 푸시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 둔 채.

2017년 1월 26일 목요일 아침. 알림이 왔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했다. Rene Mclean (르네 맥클린), $950 결제. 세상에, 한 달 결제만 해줘도 고마운 판에, 1년치 선결제라니! 혹시 1달만 결제하려고 하다가 뒤에 0이 더 달린 것을 못 보고 실수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궁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고마워서,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유료 전환해 주어서 고맙다고, 그리고 잠깐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그래서 곧 전화를 했다.

알고 보니, 뉴욕에서 자신만의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1년치 선결제를 한 것이 맞느냐고. 그랬더니 맞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왜요?” 그 대답이 나를 감동하게 했다.

“차트메트릭을 지난 몇 달간 지켜봤어요. 빠른 속도로 제품이 개선되는 게 보이더라구요. 이미 몇 가지 기능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이렇게 계속 좋아진다면 나중에 더 좋은 제품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유료 결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업을 초기에는 현금이 가장 귀하더라구요. 그래서 도움이 될까 싶어서 1년치 비용을 냈습니다.”

르네 맥클린(Rene Mclean)

그 말이 너무나, 너무나 고마웠다. 당시에는 그 950불은 며칠을 더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돈을 낼 가치가 있다는 검증이 된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고객이 1년치를 결제했으니,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한 고객을 위해 1년간 서비스를 개선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고객은 1년 동안 제품이 더 좋아지고, 그래서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서 1년치를 미리 낸 것이니 말이다.

당시 그 결제는 우리 스트라이프 데이터 베이스에 기록된 첫 번째 데이터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르네 맥클린의 결제 내역. 2017년 1월 26일.

다음 달이 되자 조금씩 더 유료 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6월이 되자, 이제는 푸시 알람이 하루에 너무 많이 울려 계속 켜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때의 월간 반복 매출(MRR)은 1월달에서 24배가 증가한 $5,533. 아래는 유료화 후 첫 6개월의 매출 기록이다.

차트메트릭 유료화 이후 첫 6개월의 기록

그로부터 5년 반이 지난 지금, 미국, 유럽, 호주, 남미, 아시아에서 3500개 이상의 회사가 유료로 차트메트릭을 사용하고 있고, 실리콘밸리와 뉴욕에서 약 30명의 정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차트메트릭 고객사들 중 일부

이 모든 것이 첫 고객이 우리에게 준 신뢰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는 6년째 차트메트릭의 유료 고객으로 남아 있다. 이번 연말, 그에게 선물을 하나 보내야겠다.

50,000 Dollars

또 다른 큰 마일스톤. 작년 5월에 2000달러를 기록했던 월 정액 매출이, 9개월 후 2만달러, 그로부터 7개월 후인 지금 5만 달러가 됐다. SaaS (Software as a service) 사업은 정말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용카드를 통해 자동 결제 되는 금액이 하나씩 모여서 매출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 하나 하나에 감사하며 일한다. 마케팅 또는 영업에 쓰는 돈은 거의 없고, 블로그를 통해 우리가 알아낸 것들을 공유하고, 어드바이저를 통해 의사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기존 고객들이 주변에 알리는 방식으로 고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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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우리가 고객이라고 부를 수 있는 회사들도 늘어났다. 좋은 점은, 한 두개의 회사가 우리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은, 한 두 고객이 우리더러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품의 의사 결정을 내린다.

함께 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어제 랜딩 페이지를 손보며, 팀원들 프로필 사진을 하나씩 찍어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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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하면서 Celina Lee가 진행하는 Give One Dream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Kobre & Kim이라는 글로벌 로펌 공동 창업자이자 공동 대표인 Michael Kim과의 인터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15년전에 부엌에서 갓난아기를 돌보며 창업한 회사를, 이제 10개 오피스에서 300명을 고용하는 대형 로펌으로 성장시켰는데, 그런 그에게 ‘성공의 기준’ 또는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그가 했던 대답이 재미있었고 공감이 됐다.

“Being able to do what I want to do without anyone messing with me”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유”

회사를 창업할 때의 목표가 그것이었고, 15년이 지난 지금,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의 대답 역시 이것이었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마음 먹으면 갈 수 있고, 본인이 집중해서 하고 싶은 일을 골라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내가 스타트업을 해야겠다고 했던 이유도, 돌이켜보면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창업자라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일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은 일에서 얻는 행복에 큰 영향을 주었다. MBA를 마쳤지만 나는 여전히 코딩하는 게 재미있고, 그래서 한때는 다른 건 아무 것도 안하고 하루 종일 코딩만 한 적도 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미루거나 그 일을 잘 하는 사람을 찾아서 맡긴 후에, 내가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거나, 내가 꼭 해야만 하거나, 아니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에 집중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툴들이 몇 개 있어서 소개한다.

업워크(Upwork)

프리랜서를 찾는 플랫폼이다. 시간 단위로 돈이 지급되고, 리뷰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좋은 사람들을 찾아낼 가능성이 높다. 손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은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셜린이 바로 바로 처리해주고, 수동으로 인보이스 보내는 작업은 플로리다에 사는 애쉴리가, 그리고 정기적인 QA는 러시아에 있는 드미트리가 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전문성에 따라 시간당 비용은 5달러에서 80달러 사이로 다양한데, 그 다양한 범위를 모두 커버한다는 것이 이 플랫폼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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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워크(Upwork)에서 내가 채용한 사람들

 

벤치(bench.co)

회계와 관련된 일은 모두 퀵북(Quickbooks)으로 처리하고, 현금 사용은 전혀 없어서 모두 자동 기록이 되기는 하지만, 장부를 정리하는 건 여전히 귀찮은 일이라 자꾸 미루게 된다. 몰아서 한꺼번에 정리하는 것을 몇 번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지난 달부터 이 서비스를 쓰기 시작했다. 한 달에 250달러 정도 내면 장부 정리를 알아서 해 주고, 항목별 매출과 비용 현황을 예쁘게 그려 준다. 아직은 써본 지 얼마 안되어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직원들이 너무나 친절해서 지금까지는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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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bench.co)

 

베어메트릭스(baremetrics)

SaaS 회사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들인 월 정액 매출(monthly recurring revenue), 고객 유지 비율(retention rate), 고객 생애 가치(customer lifetime value) 등을 손 하나 안대고 볼 수 있게 해준다. 결제 시스템인 스트라이프(Stripe)와 연동해두면, 신규 유료 고객이 생기거나, 그 고객이 업그레이드하거나, 떠나는 사건 등이 미치는 영향을 바로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홈페이지에서 라이브 데모(live demo)를 클릭했을 때 보이는 데모가 바로 이 회사의 대시보드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가입했을 때 월 5만 달러 남짓 하던 매출이 지금은 월 10만 달러가 됐는데 내 일처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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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메트릭스(baremetrics)

오늘의 일기

오늘은 그냥 일기 쓰는 기분으로 끄적끄적. 다음주 참가할 Collision 컨퍼런스 준비도 할 겸 오랜만에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서 남은 일들을 처리했다. 사업은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월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제법 브랜드가 있는 큰 고객들도 하나씩 들어오고 있다. 제품은 더 빨라지고 강력해졌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직접 쓰기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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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메트릭(Chartmetric.io)

우리처럼 월 구독(monthly subscription)을 해서 쓰는 웹/모바일 기반 소프트웨어를 SaaS (Software as a Service)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처럼 기업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B2B SaaS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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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메트릭 가격표. 매월, 또는 매년 돈을 내며 쓰도록 되어 있다.

B2B SaaS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주말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이다. 딸 둘의 아빠인 나로서는 이보다 큰 축복이 없다. 고객의 대부분이 미국 동부와 유럽에 있기에, 금요일 점심이 되면 거의 모든 이메일과 요청이 제로가 된다. 주말 동안 무슨 일이 생길 우려도 거의 없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네 가족과 함께 Mount Madonna County Park에서 캠핑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아이들과 여유롭게 보낼 주말이 무척 기대가 된다.

B2B SaaS 스타트업의 또 다른 장점은 안정적인 매출이다. 넷플릭스나 아마존처럼 소비자들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돈을 내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또는 회사에서 일하는 개인들이 ‘일을 하는데 필요해서’ 돈을 내고 쓴다. 즉, 법인 카드로 결제가 되거나 회사 CEO의 카드로 결제를 한다. 일단 쓰기로 결정하면, 일하는 과정에서 점차 우리가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하게 되고, 그래서 쉽게 중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한 이변이 없는 한, 특별한 마케팅이나 영업 활동이 없더라도 이번달에 들어온 매출은 99%의 확률로 다음달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B2B SaaS 분야에 눈을 뜬 건 오라클에서 일할 때이다. 당시 클라우드 CRM 제품을 맡았는데, 경쟁사인 세일즈포스(Salesforce.com)의 제품과 전략을 보며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는 이러한 종류의 서비스에 월간 일정액을 내고 쓰는 회사들이 정말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사업을 하게 되면 반드시 B2B SaaS 스타트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때 영감을 주었던 회사들이 결국 내가 이 방향으로 오도록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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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S 스타트업들 – Angelist에서 검색한 결과
전에는 내가 이 순간에 시간을 어디다 어떻게 써야 가장 효율적일까, 가장 보람이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며 살았는데,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은 각 순간에 내 시간을 어디에 써야 맞는지를 쉽게 알 수 있어서 마음이 참 편하다. 그리고 나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그 누구도 가지 않은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사업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사업하니 어떻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자신도 언젠가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데 이미 시작해서 실행하고 있으니 부럽다는 이야기도 가끔 듣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드는 생각이 참 많다.

오래 전부터 나만의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특히 미국에서 미국과 유럽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를 나와 회사를 만들고 투자를 받은 이후에도 내가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고, 포기하고 다시 취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범위가 늘어나고, 또 비용이 함께 늘어가는 것을 보며 두려운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2016년은 그런 면에서 나에게 암흑기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떠나는 아픔도 있었고, 우리가 하는 일이 과연 사회에 어떤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제품에 사람들이 돈을 내게 될 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가정과 회사에서 들어오는 돈에 비해 나가는 돈이 많아 계속 마이너스가 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거의 줄이고, 오직 일에만 몰두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특히 2016년 말,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사람들이 연말 연초 휴가를 즐기고 있을때, 우리는 상관하지 않고 일만 했다. 2017년 초부터는 유료화를 시작해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돈을 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으므로 다른 옵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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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메트릭 (http://chartmetric.io)

고객들에게 우리는 베타 서비스를 졸업하고 곧 정식 서비스를 출시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2월부터는 무료 사용자들의 접근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월 사용료를 얼마로 할까 엄청나게 고민했는데, 일단은 비즈니스 모델을 입증한 후에 가격을 올려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프리미엄 멤버십을 월 95달러로 정했다. 처음으로 매출 950달러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말도 안돼! 도대체 누가 950달러를 낸다는 말이야? 혹시 실수한 것 아닐까?” 하며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만세를 외치며 웃었다. 그 고객에게 즉시 감사하다고 이메일을 보냈고, 다음날 전화 통화를 했다. 다행히도 실수가 아니었다. 그동안 차트메트릭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유료화 후에도 지속적으로 써야 해서 1년치를 한꺼번에 샀다고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웹사이트를 찾아왔고, 이전 고객들이 되돌아와서 계속해서 사용했고,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프(Stripe)라는 서비스를 통해 신용카드 프로세싱을 하고, 결제가 될 때마다 나한테 푸시 알림이 오도록 해두었는데, 그 푸시 알림은 내가 받는 가장 달콤한 소식이 되었다. 우리와 같은 SaaS (Software as a Service)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는 Monthly Recurring Revenue (MRR) 인데, 이 숫자가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돈을 낼 가치’가 있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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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유료화 이후의 Monthly Recurring Revenue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새로운 고객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고, 기존 고객들의 이탈은 없다시피한 상황이라 이대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 200만명의 가수 중 60만명의 정보를 수집해서 정리하고 있고,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 1백만개를 트래킹하고 있으며, 음악 큐레이터 30만명의 활동을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은 자동화되어 있으며, 우리가 서버 비용(AWS)에 쓰는 돈은 월 140달러에 불과하다. 아래는 가수 Ed Sheeran(에드 시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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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반의 사업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이 참 많지만, 그 중 최근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제품에 기여할 수 있는 내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사업을 할 때는, 남들이 이미 만들고 개척해놓은 시장에서 그저 그런 복제품 정도를 내놓게 될까 두려웠다. ‘세상에 없는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기 어려운데다, 또 너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면 고객이 없을 것이기 때문.

1년여동안 공들여 제품을 다듬어온 지금, 차트메트릭에 대해 고객들이 주로 주는 피드백은 한눈에 트렌드가 파악된다는 것, 그리고 사용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그동안 제품의 세세한 부분 하나까지 고민해서 결정했던 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정말 기쁘다. 게임빌에서 게임을 개발하면서 게임 성공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 두 가지는 유저가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는 자연스러운 디자인과 반응성이었다. 그 중 반응성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스토리, 게임성, 중독성, 그래픽 중 뭐 하나라도 빠지면 어색해지는 것이 게임이긴 하지만, 특히 반응성이 떨어지면 나머지 모든 것이 훌륭해도 인기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차트메트릭을 만들며 이 부분을 특히 신경썼다. 어떤 페이지이든, 클릭하면 바로 떠야 한다는 것. 수많은 데이터베이스 테이블에 있는 정보를 하나로 모아서 보여준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또 어떤 페이지에서는 수천개의 숫자를 정리하고 그래프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성능의 문제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더 하나씩 신경 써서 최적화했고, 이제는 대부분의 페이지가 클릭한 후 즉시 뜬다.

데이터는 많다. 사실, 너무 많아서 탈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업데이트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빠르게 가공하고 그 안에서 ‘실행 가능한’ 인사이트를 끌어내느냐이다. 차트메트릭이 음악 업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되면 좋겠다.

사업을 해서 좋은 점은, 주변을 기웃거릴 필요 없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나만의 전쟁터가 있다는 것이고, 사업을 해서 힘든 점은, 그렇게 내 모든 것을 부었는데도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래도, 지금은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