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브랜딩

블로그 제목을 바꿨다.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대신 ‘조성문의 블로그’로. 전에는 실리콘밸리의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리콘밸리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관심사였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이제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졌다. 실리콘밸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무엇보다도, 겉으로 보면서 느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피상적인 결론 도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한동안 이 공간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와 관련 없는 내용을 굳이 써야 할까. 고민 끝에 블로그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뭔가 수식어를 붙일까 하다가, 그냥 ‘조성문의 블로그’라는 제목으로 가기로 했다. 결국 여기에는 다른 무엇도 아닌 조성문의 생각, 조성문의 이야기가 담기게 될테니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그냥 공개적인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요즘 느끼는 것, 보는 것, 듣는 것들에 대해 가끔씩 써볼까 한다. 로버트 켈리 교수의 방송 사고같은 재미있는 비디오를 발견하면 기록 삼아 여기에 포스팅하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요즘 새로 나온 다큐멘터리 하나 소개. BBC에서 ‘Planet Earth II‘가 새로 나왔다. 그 전편인 Planet Earth는 무려 10년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가 본 수많은 다큐멘터리 중에서 가장 걸작으로 생각하는 작품인데, 그 속편이 나왔다기에 너무 반가워서 아마존에서 바로 구매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추가되고 있는데, 이렇게 시즌 패스를 미리 구매해서 에피소드가 나오기를 기다려보기는 처음이다. 또 어떤 지구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까. 결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하고 혹독한 환경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만의 생태계 안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인간이 만든 오염과 재해의 영향을 받지 않고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아래는 공식 트레일러.

진짜 이런 장면을 촬영한 카메라 기술과 영상을 만들어낸 팀에 박수를 보낸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진정한 혜택.

또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장면과 너무 잘 맞는 음악에 감동하게 되는데, 그 전편과 이번 편의 모든 음악을 한스 짐머(Hans Zimmer)가 만들었다. 정말 위대하다는 것 이상의 어떤 표현을 붙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음악의 거장. 글라디에이터,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사운드트랙 작곡을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한데, 이렇게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바쳐 그 분야의 최고가 된 사람들을 보면 감동적이다. 그가 마스터클래스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노하우를 공개한다고 하니 바빠도 꼭 챙겨볼 계획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일

오늘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다. 지난 며칠간 매일 뉴스와 라디오에서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이슈를 다루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오늘 그 결말이 난다. 어제 아침에 운동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는 것을 봤는데, 참 깔끔하게 잘 전달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심으로 힐러리를 지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은 당이기 때문에,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지지하는 면이 더 크지 않을까.

트럼프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여성 비하 발언과 세금 문제로 온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온갖 문제들을 극복하고 힐러리 클린턴과 비등비등한 수준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렸으니 말이다.

클린턴 vs 트럼프 지지율 변화 (출처: BBC Poll Tracker)
클린턴 vs 트럼프 지지율 변화 (출처: BBC Poll Tracker)

나는 수년 전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라는 리얼리티 텔레비전 쇼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를 처음 접했다. 뉴욕 5번가의 트럼프 타워를 지은 사람이 바로 그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그리고 억만장자의 화려한 삶을 엿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또 출연자들이 ‘어프렌티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극도로 긴장된 경쟁을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리고 또 한국계 미국인 출연자가 등장해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마지막 라운드까지 간 것이 신기해서 한참을 봤었다. 그리고 매 회마다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해서 출연자들에게 예리한 질문을 한 후에 “당신은 해고야!(You are fired!)”라고 외칠 때 일종의 짜릿함을 느꼈는데, 얼핏 보기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그래서 결정하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한 사업가인 그가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모습이 참 멋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막판 토론에서 예상을 뒤엎고 능력이나 화술, 그리고 리더십이 좋은 사람보다는 자신이 왜 더 적합한 사람인가를 소리를 질러가며 주장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을 보며 그가 선호하는 ‘됨됨이’를 엿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래서인가, 지금 트럼프가 TV 출연해서 힐러리와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그 때 어프렌티스에서 자신이 보여주었던 철학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보여서, 대선 토론도 또 하나의 리얼리티 TV 쇼처럼 느껴진다. 특히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부분을 그대로 이어갈 지 이야기하는 대신 상대방에 대한 비방으로 일관하는데, 그게 은근히 또 설득력이 있다. “힐러리가 수십년을 국무 장관을 했으면서도 외교 문제를 망쳐서 미국의 적대 국가들이 강해지게 도왔고, 동시에 예산 관리를 잘 못해서 오바마와 함께 나라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힐러리는 거짓말장이’라는 것이 트럼프 진영의 주장인데, 어설프고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은근히 그의 지지자들이게는 이 주장이 잘 먹힌다. 군중 심리란 이런 것인가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일관적인 상대방 비방으로 가득찬 대통령 선거 토론은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고, 오히려 SNL에서 다룬 패러디가 훨씬 더 재미있고 내용이 알차다.

결국 두 후보 모두 부적격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오바마가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이었나 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번 그가 베어 그릴스의 쇼에 출연했던 것을 이야기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올해 할로윈에서 오바마가 멋진 농담으로 백악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대통령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매년 백악관 출입 기자들과 함께 하는 저녁 만찬에서 했던 C-SPAN 연설들은 내가 본 중 최고였다. 때로는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며,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을 유머를 통해 승화시키는 그의 말솜씨는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정치적인 결단력, 군에 대한 통솔력, 그리고 여론을 끄는 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유머 감각과, 서로 다른 의견들을 부드럽게 융합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원래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겸손함이 아닐까 한다.

우리도 언젠가 오바마와 같은 대통령을 가져보면 참 좋겠다. 한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멀지 않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진출한다는 것의 의미

얼마전, 한국에서 꽤 잘 알려진 한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와 만나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 진출은 거의 예외 없이 모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들이 고민하는 주제이지만, 아직까지 그렇다할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한 제품이 다른 나라에서 빛을 본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인데다, 특히 미국 시장은 한국 뿐 아니라 유럽과 대서양, 그리고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군침을 흘리는 시장이어서이기도 하다.

이 ‘원래 어려운’ 일을 나는 게임빌 시절에 혹독하게 경험했다. 게임빌의 미국 진출은 설립 초기부터 고민했던 일이었는데, 실제로 미국에서 법인을 세우고 매출 성과를 만들고, 더 나아가 수익까지 낸다는 것은 이중 삼중의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 일을 진두 지휘한 사람은 현 미국 지사장인 이규창(Kyu Lee)이었고, 나는 옆에서 개발와 안살림을 챙기는 일을 맡았었다. 한때 미국 이동통신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시절 문전 박대의 수모도 겪었고, 나는 퇴근 시간이면 10분의 기다림도 없이 집에 가버리는 어린 미국 파트너 담당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쩔쩔 매는 시간을 보냈지만, 수년의 기다림과 고통 끝에 마침내 시장이 열렸고, 이제는 게임빌 전체 매출의 59%, 컴투스 전체 매출의 85%가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아래는 엊그제 뉴욕 타임스퀘어에 걸린 서머너즈 워(Summoners War) 광고.

뉴욕 타임 스퀘어에 뜬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Summoners' War) 광고
뉴욕 타임 스퀘어에 걸린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Summoners War) 광고. 출처: instagram/kyuclee

그 때도 그랬지만,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관심 주제였고, 최근 스타트업들이 약진하기 시작하며 미국 진출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며 내가 직접 참여해서 미국 시장 진출을 돕기도 하고 관심을 가지고 같이 고민하게 되면서 이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 내 사업을 하기 시작하며 그 주제가 더 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미국 문을 두드릴 분들을 위해 그동안 내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조금 나누어보고자 한다.

1. 미국 진출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다시 게임빌의 예로 돌아가보자. ‘게임’은 그나마 ‘출처 국가’를 조금 덜 타는 컨텐츠에 속한다. 게임 자체가 재미있으면 게이머들은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뿐더러, 전통적으로 게임 시장은 일본의 강한 게임 회사들이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의 비교 우위와 경쟁 우위를 갖고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고 시간도 무척 많이 걸렸다. 2000년 창업한 해부터 미국 시장을 기웃거렸고 2004년에는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투자를 했지만 실제 성과가 나온 것은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2007년 이후였다. 처음에는 몇 달이면, 아니, 1년이면 상당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은 미국인들에게 Gamevil의 ‘G’자만 알리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고, 다수의 게임, 그리고 끈기가 합쳐진 후에야 성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2. 회사와 제품을 알리기 위한 리소스 활용을 ‘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각 주가 하나의 나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별로 관심사가 다르고 듣는 라디오 스테이션이 다르고 보는 방송이 다르다. 요즘엔 킥스타터와 같이 미국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몇 가지 플랫폼이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런 사이트들은 대중과 거리가 있다. 시장을 세그멘트(segment)해서 자신만의 시장을 찾고 그 안에서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은 마케팅의 기본이지만, 이런 세그먼트 하나도 너무 크거나, 애초에 그 세그먼트를 찾아내는 일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스타트업이 가장 활용하기 힘든 것 중 하나는 PR이다. 한국에서는 창업자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것, 또는 10년간 노점상을 한 경력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사화가 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외국인이, 그리고 외국 회사가 ‘스토리’를 만든다는 것은 훨씬 힘이 드는 (때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PR 회사를 고용해서 뉴스를 뿌리기도 하는데, 나도 이런 회사를 고용한 경험이 있지만, 제대로 된 PR을 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고, 돈을 아끼다 보면 돈만 쓰고 홍보 효과는 전혀 없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하는 일에는 관계(relationship)가 중요한 것은 전 세계 공통의 법칙이다. 중요한 사람들과 인간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돈으로 쉽게 살 수 없는 일이다. 테크크런치 기자 한 명과 친해지기 위해서도 얼마나 시간과 노력이 들겠는가.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은 예산으로 조금씩 실험을 해보면서 자신만의 시장에 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3. 미국은 (특히 실리콘밸리는) 돈이 많이 든다.

앞서 여러번 이야기했던 주제이지만, 사업을 하면서 더 절실히 깨닫는 부분이다. 일단 사람을 고용하려면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드는데, 특히 세금과 의료보험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큰 예산이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고액 연봉으로 생각하는 숫자가 미국에서는 빈곤층 미만(below poverty)에 해당하는 연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숫자로 예를 들어 보자. 회계 소프트웨어인 퀵북(Quickbooks)의 페이롤(Payroll) 서비스에 가입하면 세금 정산 후 직원이 받게 되는 돈이 얼마인지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월 5000달러, 즉 550만원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월급이다. 요즘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연봉은 12만 달러에서 시작하지만, 일단 스타트업이니까 스톡 옵션과 결합해서 5000달러를 주기로 했다고 치자. 아래 그림은 이 경우에 세금이 계산되는 방식이다. 사회 보장을 비롯한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실 수령액은 3476달러가 된다. 회사 또한 추가 세금을 내야 한다. 그 결과, 회사에게 드는 실제 비용은 약 6000달러가 된다. 여기에 의료보험을 추가하면 7000달러. 거기에 사무실 임대료 500달러를 더하면 7500달러. 미국은 가까운 곳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하고, 가끔 한국도 오가야 하기 때문에 매월 1000달러 정도 출장비가 든다고 하면 8500달러. 즉, 사람 한 명이 ‘빈곤층 이하’의 생활을 하며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는 데 월 천만원 가까운 회사 비용이 든다는 것.

연봉을 ‘조금 더 현실적인 수준’으로 올리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9000달러 월급에 실 수령액은 겨우 5718달러. 앞서도 설명했지만 회사도 세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회사의 실제 지출은 11,000 달러가 넘어간다. 당연히 연봉이 높으니 의료보험료도 올라간다. 앞에서 설명한 ‘각종 비용’을 추가하면 실 비용은 월 13000달러, 즉 사람 한 명에 월 1500만원 지출이다. 한 명을 더 채용하면 사무실을 같이 쓸 수 있겠지만 나머지 모든 비용은 똑같이 들어간다. 그러니, 사람 세 명만 뽑아도 월 4500만원이 나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참고로, 아직 변호사와 회계사 비용은 추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야심차게 ‘미국 진출’을 한다고 직원을 채용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청구서를 받고, 월 5000만원씩 6개월쯤 지나 (눈 튀어나올) 3억원을 쓰고 나면, 한국에 있는 본사 직원들은 ‘왜 미국에서 그 많은 돈을 쓰고도 성과가 없느냐. 차라리 N분의 1을 해서 나를 주면 내가 두 배로 열심히 일할텐데’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근데 문제는 미국에서의 6개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데다, 미국에서 이미 유명한 CEO가 차린 회사도 아닌데 6개월만에 성과가 나오는 일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

4. 커뮤니케이션을 조심하자.

팀이 같은 시간대도 아니고, 태평양을 건너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있으면 작은 몸짓, 이메일의 말투 하나만으로도 오해가 생기고 감정이 쌓이게 되기가 너무 쉽다. 다행히 요즘엔 화상 회의가 쉬워져서 이런 위험이 조금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에 잠깐 저녁에 잠깐씩 뿐이므로 하루 종일 서로 대화 없이 일을 진행하다보면 엇박자가 되기가 쉽고, 따라서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돈을 쓰게 되기가 쉽다. 상호 신뢰가 있어도 서로 사이가 나빠지가 쉬운 마당에, 신뢰마저 부족하면 순식간에 금이 가고 깨어지기 쉬운 관계가 된다. 이런 경우를 그동안 사실 많이 봤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들이 한국 회사의 ‘미국 지사장’을 맡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그들 중 한국의 대표 이사나 임원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재미있는 건, 한국쪽 임원들도 이들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 누가 나빠서가 아니라 서로 문화가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고 기대치가 다르니, 그런 것들이 어긋날 때마다 상대방 탓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떨어져 있게 되더라도 최대한 자주 만나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상대방을 ‘무한 신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지고 성과도 안나올 수 있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여담을 곁들이면, 게임빌이 기록한 오늘날의 성과는 당시 이 지사장에 대해 본사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뢰, 그리고 이 지사장이 다시 쌓고 얻어낸 신뢰가 아니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5. 애초에 총탄을 든든히 해두자. 아니면 Y 컴비네이터에 들어가든지.

앞서 이야기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미국 진출을 하기 전에 ‘총탄(bullet)’을 든든히 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품의 핵심 가치’만으로 한국 시장에서 순이익을 내고 있다면 분명히 도움이 된다. 사실 많은 스타트업들에게는 해당되기 힘든 상황이기는 하다.

Y 컴비네이터를 통과한 한국 스타트업이 지금까지 세 개 있다. 미미박스(Memebox), 센드버드(Sendbird), 그리고 시어스랩(Seerslab). 애초에 워낙 우수한 창업자와 팀이 모여 있었기에 Y컴비네이터에 들어간 것이지만, 앞서 Y 컴비네이터를 졸업한 미미박스와 센드버드는 미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알고 있다. Y 컴비네이터를 통과하며 12만 5천달러를 투자 받을 수 있고, 또 졸업하며 데모데이를 통해 실리콘밸리 최고의 프리미엄 벤처캐피탈들의 투자 제의를 받을 수 있게 되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힘은 홍보 효과와 ‘Y 컴비네이터 출신’이라는 자랑스러운 명함이다. 한국으로 치면 카이스트 + 넥슨/카카오 출신 창업가에 버금간다고 할까. 아무튼 Y 컴비네이터 출신 회사들은 누구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나 언론에 홍보자료를 내보낼 때 반드시 회사 뒤에 그 말을 단다. 그리고 사람들은 ‘Y Combinator’라는 말을 보면 그냥 지나칠 기사나 제품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Airbnb, Dropbox와 같은 눈부신 성공 사례(다른 말로 하면 신데렐라 스토리)를 잘 알고 있고, 폴 그래험(Paul Graham)과 샘 올트만(Sam Altman)의 안목을 믿고 있기에.

분명 쉽지 않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또한 도전하는 회사들이 있고, 좋은 성과를 내는 회사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들 모두에게 박수를..

삶은 짧다. Life is short.

얼마전 폴 그래험의 Life is Short이라는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서 쓴 글인데 한마디 한마디 공감이 되었고, 글의 마지막 세 문단이 특히 오래 동안 기억에 남았다.

It is possible to slow time somewhat. I’ve gotten better at it. Kids help. When you have small children, there are a lot of moments so perfect that you can’t help noticing.

때로는 시간을 늦추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도움이 된다. 어린 아이들이 있으면,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수많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늦게 가는 기분이 든다).

It does help too to feel that you’ve squeezed everything out of some experience. The reason I’m sad about my mother is not just that I miss her but that I think of all the things we could have done that we didn’t. My oldest son will be 7 soon. And while I miss the 3 year old version of him, I at least don’t have any regrets over what might have been. We had the best time a daddy and a 3 year old ever had.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픈 이유는 그를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내 첫 아들은 곧 7살이 된다. 그 아이가 세살 때의 모습이 때로 그립기는 하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는 없다. 우리는 세 살 아이와 아버지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누렸다.

Relentlessly prune bullshit, don’t wait to do things that matter, and savor the time you have. That’s what you do when life is short.

끊임없이 삶에서 쓸데 없는 것들(bullshit)을 잘라내라.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가지고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 그게 바로 삶이 짧을 때 하는 일이다.

나의 부모님, 그리고 장인장모님은 아직 건강하시지만, 그분들도 이제 일흔을 향해 가고 있다. 건강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약해지게 될 것이다. 폴의 말대로, 만약 그 분들이 안계실 때 ‘같이 했으면 좋았을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 일들을 바로 지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첫 아이는 지금 세 살. 그리고 우리는 요즘 아빠와 딸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시간과 주말들을 보내고 있다. 나중에 내 아이가 일곱살이 되었을 때, ‘다시 세 살이 된다면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이 생각나지 않으면 좋겠다. 마침 부모님이 미국 방문중이라 지난 몇 주간은 최선을 다해 주말을 계획하고, 또 즐겁게 보내고 있다. 힘들었던 순간에는 하루가 참 길었고 하루를 뭐하고 보낼까,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때울까 걱정했는데, 요즘엔 내 달력에 일할 계획과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들이 하나씩 차 가며 시간이 부족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삶이 짧게 느껴진다.

라이너(Liner),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하이라이팅 앱

실리콘밸리나 실리콘밸리 제품 이야기는 아니지만, 너무나 잘 만든 앱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라이너(Liner)라는 모바일/웹 하이라이팅 앱이다.

라이너 - 모바일 앱
라이너 – 모바일 앱

미디엄(Medium)에서 글을 읽을 때 아주 유용한 기능 중 하나가 하이라이팅이다. 글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거나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으면 즉시 마우스로 드래그하고 하이라이트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하이라이트한 문구는 자동으로 표시가 되어 글을 읽다가 그 부분을 더 자세히 보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선택된 문장에 코멘트(comment)도 남길 수 있어 특정 부분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다.

미디엄에서 하이라이팅하는 장면
미디엄에서 하이라이팅하는 장면

바로 이러한 기능을 미디엄의 글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웹페이지 – 심지어 PDF 파일까지 – 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앱이 라이너이다. 모바일에서 라이너 앱을 실행하거나, 또는 크롬 브라우저에서 단축키를 누르기만 하면 바로 하이라이팅할 수 있는 모드가 된다. 특히 브라우저에서 매우 편한데, 모드가 켜진 상태에서 마우스로 긁기만 하면 즉시 하이라이팅이 된다.

라이너 - 데스크탑 버전
라이너 – 데스크탑 버전

웹과 모바일(iOS) 두 가지 버전을 제공하며, 물론 서로 자연스럽게 동기화가 된다. 웹에서 빠르게 하이라이팅해두고 모바일 폰에서 검색하고 확인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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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모바일 앱

이 제품을 만든 팀, 아우름플래닛의 김진우, 우찬민 공동창업자는 연세대 창업 동아리에서 만났다. 그리고 내가 지인을 통해 소개받아 이 두 사람을 만난 건 2015년 봄의 일이다. 창업을 한 후 무작정 실리콘밸리를 경험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필즈 커피에서 만나 커피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이야기할수록 두 사람의 눈빛이 정말 강렬했고 그 속의 강한 에너지가 느껴져 빨려들어갔다. 김진우는 정말로 ‘코딩을 잘하는’ 실력 있는 개발자인데다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득 담고 있었고, 우찬민은 사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제품 기획과 홍보를 꼼꼼히 챙기고 있었다. 두 달만에 만들었다는 아이폰 앱을 보며, 이 정도 실력이면 뭐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함께 일하자는 제안에 고맙게도 흔쾌히 응해주었고, 그 후 한달 반동안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모바일 앱과 크롬 브라우저용 앱을 꼼꼼이 개선한 후에 프로덕트헌트(Product Hunt)에 올렸고, 총 512표를 받아 2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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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전, 미국에서 함께 일할 때 – 우찬민(COO), 김진우(CEO)

그 후 회사는 김상범, 정장환 두 분으로부터 엔젤 투자를 받은 후 인크(Inc) 크라우드 펀딩, 그리고 마젤란 기술투자로부터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고, 제품은 말그대로 매일 좋아지고 있다. 이제 하루 1300명 이상이 라이너를 통해 하이라이팅을 하고 있으며, 그 중 90%가 해외 사용자이고, Apple, Bank of America, Evernote, Microsoft, Cisco 등의 직원과 Harvard, Stanford, Duke, NYU 등의 학교 학생들이 Liner를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크롬 브라우저용 익스텐션(Chrome Extension)을 설치한 사람들 중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사용하는 비율이 60%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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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름플래닛, 현재 팀 멤버들

처음에 좋은 느낌으로 만나 계속해서 연을 맺게 된 회사, 그 미래가 기대된다. 이 회사의 주주라는 사실이 항상 뿌듯하다 (그리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