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제레미 린(Jeremy Lin) 이야기다. Linsanity(린세니티) 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는데, “Lin(제레미의 성)” 과 “Insanity(미쳤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합친 말이다.
Linsanity (Lin + Insanity)
어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뉴욕 닉스와 LA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제레미 린이 등장해 혼자 무려 38점을 내어 뉴욕 닉스를 92-85로 승리로 이끈 것이다.
전에 얼핏 친구로부터 대만계 사람이 NBA에 등장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궁금해하던 차에, 어제 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온통 제레미 린 이야기를 하기에 그의 경기 장면과 인터뷰를 보게 됐다. 그리고 감동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가 “Out of nowhere”에서 나타났다고, 즉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다고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렸을 때부터 촉망받던 선수로 계속해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UCLA에서 장학금을 못 받았고, 스탠포드 대학에 불합격한 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 일약 NBA 스타가 된 것이다. 피플(People)지에 따르면 그는 미국 NBA에서 활약하는 최초의 중국계 & 대만계 미국인 선수이고 1957년 이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NBA 선수이기도 하다. 경기 시작 전, 레이커스의 스타 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는 인터뷰에서 제레미 린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그의 팀이 패매한 후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Players don’t usually come out of nowhere, If you go back and take a look, his skill level was probably there from the beginning but no one ever noticed.” (선수들은 보통 없다가 갑자기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잘 살펴보면, 제레미의 실력은 이미 거기 있었을 겁니다. 아무도 눈치를 못 챘던 것 뿐입니다.)
“It’s a great story. It’s a testament to perseverance and hard work. I am sure he has put in a great deal of work to always have that belief in himself. Now he has the opportunity to show it.”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땀과 끈기, 그리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제레미 린은 엄청나게 노력했을 것이고, 항상 자신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걸 보여 줄 때가 왔습니다.)
사실 자신에 대한 신념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의 인터뷰 곳곳에, 그리고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잘 드러난다. 그는 훗날 자신의 꿈이 목사라고 이야기한다.
제레미 린의 페이스북 페이지
위키피디아에 있는 Jeremy Lin 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1988년에 LA에서 태어나서 팔로 알토에서 자랐다. 그의 부모는 대만에서 1970년대 중반에 이민 온 중국계였다. 팔로 알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06년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으며, 대학을 졸업한 2010년에 Golden State Warriors에서 처음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부터는 뉴욕 닉스(New York Knicks)로 옮겨 활약하고 있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의 새 주인인 조 레이콥(Joe Lacob)은 “스탠포드 대학이 그를 데려가지 않은 건 정말 어리석은(really stupid) 결정이었다. 그 아이가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스탠포드 대학은 팔로 알토에 위치해 있음)” 라고 이야기했다. Elie Seckbach과 했던 한 인터뷰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국인, 아시아인)을 대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특권이고 영광입니다. 제가 중국계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부모님이 대만에서 왔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여기에, 그가 NBA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길 닉스와 레이커스의 2월 10일 금요일 경기 장면과, 경기 후 그의 인터뷰를 잘 요약한 약 10분짜리 동영상이 있다.
저보다 더 큰 존재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레이커스와의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제레미 린 (출처: ESPN.com)
한편, 아래는 지난 2월 5일 그가 CNN과 했던 인터뷰 영상이다. “From Harvard to NBA”. 10년 후, 하버드와 NBA 중 어느 것이 더 빛날 것 같느냐는 질문에 수줍게 웃으며 NBA라고 대답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그가 출연해서 만든 비디오인데 참 재미있어 소개한다. 제목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법“.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멋있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다.
업데이트 (2/14): ‘제레미 린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 CNN과 언론에서 계속해서 제레미 린 이야기다. 오늘 아침엔 CNN에서, 제레미 린이 메디슨 스퀘어 가든 회사(Madison Square Garden, Inc. 뉴욕 닉스 경기장을 소유한 회사)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제레미 린이 등장한 이후 티켓 가격이 무려 100달러어치 상승($47 -> $142)했다고 한다. 티켓 값이 상승하고,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프렌차이즈 제품 판매가 늘면서 회사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찾아봤다.
제레미 린이 가져온 경제적 효과. 매디슨 스퀘어 가든 사 주식이 10% 이상 상승해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며칠만에 회사 가치가 약 2천 5백억원 상승한 것이다.
업데이트 (2/15):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흥분시킨 영상. 토론토 상대 경기. 마지막 쿼터, 점수는 87-87. 0.5초를 남기고 3점 슛을 성공시켜 모두 기립하게 만듬. 이렇게 짜릿한 운동경기는 정말 오랫만에 봄. 하루만에 조회수 300에서 300,000으로 올라감.
제가 너무 잘 아는 회사이고, 대표이사 정세주씨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공동창업자인 Artem을 비롯해서 다른 팀원들도 만나보았는데 모두 열정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물론 회사의 문화 역시 훌륭하구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이미 많이 퍼졌습니다만, 정세주 대표가 쓴 한국 개발자 채용 블로그를 읽어보세요. 정직원 엔지니어 및 인턴 엔지니어를 찾고 있습니다. 읽어보신 후 jobs@worksmartlabs.com 로 직접 지원하시면 됩니다.
2. 스텔스(Stealth) 스타트업 (이름 미정)
폴 김(Paul Kim)
또 하나는 제가 잘 아는 한국계 미국인인 Paul Kim이 최근 시작한 스타트업입니다. 웹 프론트엔드(front-end) 개발자 및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iPhone, Android) 개발자를 찾고 있습니다. 회사는 실리콘밸리에 있습니다.
창업자인 폴은 UCLA에서 학사, Tuck School (다트머스 대학)에서 MBA를 마쳤으며 삼성 전자의 투자 부서에 있다가 미국에서 휴대폰 결재 회사인 BillToMobile을 창업하여 벤처캐피털로부터 약 100억원을 투자받았고 약 4년 후에 (주)다날에 높은 금액에 매각했습니다. 그 후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여, 벤처캐피털로부터 약 35억원을 유치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Bay Area K Group 세미나에서 Paul 님을 초대해서 패널 토의를 한 적이 있으니 정리한 내용을 보시면 더 잘 아실 수 있습니다.
이 회사에 관심이 있다면 startupguru1000@yahoo.com 으로 이력서와 간략한 자기 소개서를 보내주세요. (영어가 좋지만 한글도 괜찮습니다.)
이전에 블로그를 통해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던 강석희 어바인 시장의 2011년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 졸업 연설. 우연한 기회에 이 분을 만났고 지금은 좋은 인연이 되어 개인적 도움을 드리고 있다. 이 졸업 연설을 보며 내가 받은 감동을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글로 번역했다. 영어 표현이 정말 좋아 잘 기억했다가 다른 영어 연설에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34 Years Ago Today (34년 전 오늘)
Chancellor Drake, Dean Jenness, faculty, staff and parents, it is, indeed, an honor and privilege to stand before you to thank you, and especially to the graduating seniors, for allowing me to spend a few minutes sharing my American Dream.
(드레이크 이사장님, 제네스 학장님, 교수님, 스태프, 그리고 학부모님들. 여러분 모두 앞에 서게 되니 영광이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저의 아메리칸 드림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시간을 내준 졸업생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I must say, only in America is a day like today possible. 34 years ago today, on June 11, 1977, I was on a plane to a country that I only knew about from history books. As a young man, restless to begin my
professional life, I didn’t have a particular goal. My wife Joanne and I arrived in Orange County from Seoul, Korea, to begin our journey in America.
(오직 미국에서만 오늘과 같은 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4년 전 바로 오늘인 1977년 6월 11일, 저는 역사책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나라로 오는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뭔가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당시 젊었던 저에겐 특별한 목표는 없었습니다. 제 아내 조앤과 저는 미국에서의 여정을 시장하기 위해 오렌지 카운티에 도착했습니다.)
As I flew to my destination that day, I asked myself: What will this country afford me? How quickly will I learn English well enough to speak my mind? But, most importantly, how will I make a difference in this new land of opportunity?
(그렇게 저의 운명을 향해 가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얼마나 빨리 영어를 배워서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어떻게 내가 이 기회의 나라에서 뭔가를 이룰 수 있을까?”)
When I arrived in the United States, I had to work hard to make a living, support my family, and master a new language. I went into business, into sales, and over the years rose to a Senior Management position.
(미국에 도착해서, 저는 가족을 부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사업을 했고, 물건을 팔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저는 관리자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But I kept asking myself, what would be next? What would be my calling?
(그러나 항상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다음은 무엇인가?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In 1992, the L.A. riots captured my attention and seared my heart. There was looting, assault and arson. People died. Wonderful businesses, burned to the ground. Hard-working merchants, watching their life’s work disappear.
(1992년에 LA 폭동 사건이 일어나 제 마음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절도, 폭력과 방화가 있었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성공적인 상점들이 타서 땅에 뭍혔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생을 바쳐 일군 사업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I felt a great injustice had occurred, and I realized I had to get involved because I could either watch and do nothing, or learn and become someone. 1992 changed my life.
(정의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으며 아무것도 안하는 대신, 뭔가를 해서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992년은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Out of the flames of destruction came my personal inspiration to build – to build coalitions; to build friendships; to bridge gaps and create trust; to focus on the strength that diversity holds if we work together, not apart.
(파괴의 불꽃을 보며, 유대와 우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다양성을 가진 우리가 서로 따로 있는 대신 같이 일할 때 더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요.)
I became deeply involved politically and in community service. In both passions, you build foundations to strengthen people and community; at the same time, you break down walls of misunderstanding and misery. As you develop a position of strength and observation, you need both a steady hand and a compassionate heart.
(정치와 지역 공동체 봉사에 더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과 공동체를 을 더 강하게 만드는 기반을 다지고, 오해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힘과 관찰력이 생길수록, 더 지속적인 손과 공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I learned that I wanted the most from both worlds. So I ran for Irvine City Council and won a seat where my vote could make a difference; subsequently, I ran for Mayor and became the first Korean American Mayor in Irvine history – a City that prides itself in being thoroughly integrated. Just look around this hall; I see the diversity of people … the diversity of cultures … and the diversity of talent. THAT is what will define our future generation of leaders and THAT is what will enrich your experience as you embark on this next phase of life.
(저는 양쪽 세상 모두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바인 시 의회에 도전했고, 하나의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 후에 시장에 도전했고, 어바인 역사상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시장이 되었습니다. (박수) 다양성이 완전히 통합되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 어바인입니다. 이 주변을 보십시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지. 바로 그것이 우리 미래의 리더들을 정의할 것이고, 바로 그것이 당신 삶의 다음 단계에서 당신의 경험을 풍부하게 할 것입니다.)
As part of my personal story, one can say: “Here is the young man who left his homeland and became the Mayor of a major U.S. city. He is symbolic of what we can do when we step into the waters of the world and emerge in another culture.”
(제 인생을 보며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을 떠나 미국 대도시의 시장이 된 사람이 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이라는 바다에 들어가서 다른 문화와 융화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4 years ago today, being Mayor was beyond my wildest dreams. But making a difference was part of my upbringing … it was a lifelong calling from my soul. So, how will you make a difference? How will you grow, change and adapt? How will you build on the foundation that this great institution has provided you?
(34년 전 바로 오늘, 시장이 된다는 것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 영혼으로부터 오는 일생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변화를 가져오겠습니까? 어떻게 자라서,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하겠습니까? 이 뛰어난 교육 기관이 제공한 발판에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쌓겠습니까?)
Here is my challenge to you: Make the most of every minute of every day. Embrace not just the rights and privileges that come with living in a great
democracy, but the obligations as well.
(여기, 제가 여러분들에게 도전합니다. 매일의 매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권리와 특권 뿐 아니라, 뒤따라오는 의무도 함께 받아들이십시오.)
If you see things that need changing, don’t wait for someone else to step up to the plate. Roll your sleeves up, and do the hard work necessary to address the challenges in your family, your community, our country and our world. America needs all of you sharing your wealth of talent.
(변화가 필요한 것을 보면, 다른 누군가가 나설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팔을 걷고, 당신의 가족, 공동체, 나라, 그리고 세계의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십시오.)
As social ecology majors, you have the opportunity to accomplish the extraordinary in your field – whether it be in law or social behavior or policy
planning. You deeply understand human behavior and the need for environmental protection; you have debated the justice system as well as social
justice.
(사회 생태학을 전공한 여러분. 여러분들은 전공 영역에서 비범한 일들을 행할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법학이든, 사회 행동학이든, 정책학이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잘 이해하고 있고, 환경 보호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회의 정의 뿐 아니라 정의 체계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You are educated – now be proactive as you realize your aspirations, listen to others, and set your goals.
(여러분들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제 더 적극적으로 여러분의 열망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목표를 정하십시오.)
Wherever you land – whether it is on an airplane to a new destination, or to a job down the street, know that you will have one distinct advantage: You will have yourself, with all the tools that you have learned at this great university and gathered in life to make career choices and life-changing decisions.
(여러분들이 어디에서 정착하든 –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든지, 여기서 일을 하게 되든지 – 여러분들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강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통해 커리어를 비롯한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While I am here on this stage, my heart is with all the parents gathered here today. As the parent of two UC graduates, I know the pride you will feel as your children cross this stage to receive their diplomas. You have invested a lot to give your children the tools to succeed.
(저는 이 단상 위에 있지만, 제 마음은 오늘 여기 모인 모든 학부모님들과 함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을 졸업한 자녀 둘을 둔 아버지로서, 저는 당신이 당신의 자녀들이 이 단상 위에서 학위를 받을 때 자랑스러워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가 성공을 위한 도구를 갖출 수 있도록 많은 투자를 해왔습니다.)
Let me ask all the students to show your appreciation by giving your parents a big round of applause. Making a personal difference is indeed a symbol of America.
(학생 여러분들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부모님들께 큰 박수를 통해 그 감사함을 표현해 주십시오. (박수) )
50 years ago, John F. Kennedy in his inaugural address spoke of a “torch that has been passed to a new generation of Americans.” I, too, challenge you, as the next generation of leaders, to take the torch from this time and this place and quickly plan for tomorrow.
(50년 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들에게 넘겨질 횟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 역시 이자리에서 다음 세대의 리더인 여러분들께 권합니다. 이 시간, 이 곳에서 그 횃불을 받아서 내일을 계획하십시오.)
Time is on your side, but the clock is ticking; the torch is passed today. As opportunity flows to you, let it flow from you.
(시간은 여러분 편에 있지만 지금 매 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횃불은 넘겨졌습니다. 기회가 오면, 바로 여러분들이 그것을 잡으십시오.)
Make the leap in your lives to the highest ground. And be the best that you can possibly be.
(가장 높은 곳으로 도약하십시오. 그리고 될 수 있는 최고가 되십시오.)
My life has taught me – whether 1 mile from where you begin, or 6,000 miles from home – that no matter where you are, there you are.
(제 인생이 제게 가르쳐준 것은, 당신이 시작한 곳에서 1마일을 떨어져 있든, 집에서 6,000마일을 떨어져 있든, 어디에 있든 간에 지금 있는 곳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There you stand – on a hilltop – as the world waits for you. Don’t let the world wait for long.
(거기 여러분들이 서 있습니다. 정상 위에. 그리고 세상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여러분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Congratulations. May god bless you. And may god bless America. Thank you.
(축하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주님이 미국을 축복하시기를. 고맙습니다.)
오늘 코스트코의 공동 창업자 제임스 시네갈(James Sinegal)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그의 나이 76세. 코스트코와 같이 경이로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76세였다는 것도 놀라웠고, 현재 회사 가치가 38조원에 가까운 ($35.4B) 회사인 코스트코를 처음 창업하던 때에 그의 나이가 47세였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약 30년만에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회사 중 하나를 만든 것이다. 다음은 인터뷰에서 몇 가지 재미있게 봤던 내용이다.
시애틀에서 처음 창업한 이유: 캘리포니아와 같은 시간대에 있었고, 캘리포니아에서 사람들을 많이 고용하고 싶었으므로. 또한 그로서리(grocery) 가격이 가장 높은 곳이었으므로. 투자자들로부터 $7.5M 정도를 받아서 시작.
마음에 드는 위치를 찾아 오픈을 준비했는데, 오픈하려던 바로 전 주에 시에서 오더니 그 건물로 들어가는 길을 18개월간 막겠다고 이야기. 말을 잘 했더니 10일을 연장해주었고 그 후 다른 문제가 생겨서 4, 5주를 추가로 연장. (만약 그 때 시에서 강제로 길을 막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코스트코가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세계에서 가장 물건이 많이 팔리는 지점은 서울 양재점. 팔리는 제품의 3분의 1이 미국 제품이라고
코스트코는 시간급 직원의 보수가 높고 복지가 좋기로 유명.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시간당 20달러를 지급. 그러면서도 제품 가격이 다른 어느 곳보다도 낮음.
그 비결은 낮은 숫자의 SKU (Stock Keeping Unit: 물품의 종류). 월마트가 14만가지의 상품을 취급하는 데 비해 코스트코는 단 4,000가지만을 취급. 그러므로 하나하나의 제품에 훨씬 잘 집중할 수 있음
남들과 반대되는 생각: 보통, 다른 장사하는 사람들은 (디지털 레코더를) 49달러에 팔면서 어떻게 하면 이걸 52달러에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반면, 우리는 그걸 40달러에 (다른 곳보다 9달러나 낮게) 팔면서 어떻게 하면 가격을 38달러로 낮출 수 있을까를 고민
시애틀의 Costco 1호점. 시애틀 축구/야구 경기장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출처: Google Maps)
아내와 나는 코스트코를 자주 이용한다. 가격이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되게 싸서이기도 하지만 상품의 품질이 너무 좋아서이다. 특히, 코스트코 연어는 품질이 너무 좋아 그냥 회로 먹기도 한다. 가격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약 20달러면 손질된 커다란 연어 한 마리를 통째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약 7~8인분). 게다가 다들 크기가 커서 자주 쇼핑하러 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나에게는 장점이다.
공동창업자인 제임스 시네갈이 누군지 궁금해져 조금 더 찾아봤다. 위키피디아에 자세한 내용이 있었다. 1936년에 출생. 어머니는 그를 키울 능력이 없어 고아원에 맡겼다가 그가 11살이 되던 해에 되찾았다 (왜 많은 뛰어난 사람들은 이런 불행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그를 다시 찾았을 때는 어머니가 재혼을 한 뒤였고 새로운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원래 성이 ‘Wright’가 되어야 했지만 새로운 아버지의 성을 따라 ‘Sinegal’이 되었다. 1954년, 리테일 사업에 관심이 생겨 FedMart에서 일을 시작했고, 1978년엔 프라이스 클럽(Price Club)의 고위 임원, EVP (Executive Vice President: 부사장급)가 되었다. 1983년에 그는 회사를 나와 코스트코를 창업했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그의 보수는 보너스와 주식 등을 합해 평균 연 30억원 정도였다.
회사에 대해서도 조금 조사해보기로 했다. 난 회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간략하게 보고 싶으면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의 기업 인사이트 센터(Company Insight Center)를 가장 즐겨 이용한다. 특히 비율(Ratio)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스트의 Ratio는 다음과 같다.
1) 먼저, 이익성(Profitability)이다.
코스트코의 이익성 지표
자산 또는 자기 자본에 대한 리턴(return)이 업계에 비해 높음을 알 수 있다. ROA가 5.67%라는 것은 순수입이 자산 전체의 5.67%라는 뜻이다.
2) 다음은 마진(Margin) 분석이다.
코스트코 마진(Margin) 분석
매상 총이익(Gross Margin)은 업계에 비해 낮은 편이다. 그만큼 물건을 싸게 팔고 이익을 별로 안남긴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9.73%에 불과한 SG&A (Selling, General, and Administrative Expense: 직원 급여, 복지 비용, 세금, 임원 보수 등)등등을 빼고 나면 EBITDA 마진(법인세와 감가 상각 등을 제외한 순 이익)이 3.64%밖에 안된다 (그래도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코스트코의 연간 순이익은 1.6조원이 넘는다). 이를 미국의 프리미엄 그로서리(Grocery) 스토어인 홀푸드와 비교하면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홀푸드(Wholefood)의 마진 분석. 매출 총 이익이 35%에 달하고, SG&A에 많은 돈을 쓰며 (29.07%), EBITDA 마진이 8.35%로 업계에 비해 매우 높다.
이렇게 마진이 낮은데 어떻게 회사가 그렇게 성공적일까? 아래를 보면 어디에 강점이 있는지 알 수 있다.
3) 자산 회전율
자산 회전율(Asset Turnover) 분석
위에서 보면, 동종 업계에 비해 모든 회전율 지표가 높게 나타난다. 특히 재고자산 회전율(Inventory Turnover)이 높은데, 11.0x라는 것은 코스트코 재고 전체가 일년에 11번 회전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33일(365일/11)만에 전 세계 코스트코 매장 안에 있는 모든 재고가 싹 사라질만큼의 금액이 팔린다는 뜻이다. 코스트코의 거대한 창고 규모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만큼의 양을 의미하는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만큼 회사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물건을 신중하게 고르고, 사람들은 그 물건들을 신뢰를 가지고 잘 사가지고 가기 때문에 매장 안에서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고 없어진다는 뜻이고, 그만큼 코스트코에 물건을 공급하는 회사들은 빨리 빨리 물건을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대신 소비자와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주는 것이 목표인 회사.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대상은 아닐 지 몰라도, 언젠가 좋은 기회가 되면 주식을 사서 오랫동안 보유하고 싶은 회사이다.
지난 5년간 코스트코 주가 추이. 57달러에서 시작해 지금은 약 87달러가 되었다. (출처: Google Finance)
이 홍보 비디오는 여기에서 볼 수 있는데, 애플의 SVP인 Eddy Cue가 등장해서 애플이 얼마나 ‘교육’ 시장을 변화시키는 데 관심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학교 선생님들이 등장해서 아이패드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교육용 출판 업계의 대부인 McGraw Hill과 Pearson의 CEO가 직접 등장해서 설명하는 것을 보며 애플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Terry McGraw 회장은 이야기한다.
교육의 디지털화는 세기의 기회(Opportunity of the century)가 될 것입니다. 아이패드용 교과서는 훨씬 크고(bigger), 넓으며(broader), 더 역동적(dynamic)입니다. 커리큘럼을 살아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McGraw-Hill의 CEO인 Terry McGraw가 등장해서 아이패드용 책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장면
애플은 어제 뉴욕에서 iBook2 발표를 했다. 애플이 어떻게 8조원짜리 교과서 시장에 혁신을 가져올 것인가를 설명했는데, 핵심은 “디지털 교과서를 만들기가 정말 쉽게 해서 더 많은 책이 디지털로 바뀌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벤트를 라이브로 기록한 스크립트를 The Verge에서 볼 수 있다. 더구나 디지털 교과서를 만드는 툴인 iBooks Author를 무료로 배포한다고 했다.
정말 쉬울까? 궁금해서 바로 다운로드해서 써봤는데, 정말로 쉽다. 기본 템플릿이 워낙 예뻐서 조금만 손을 보면 되고, 이미지를 삽입하면 자동적으로 사이즈가 맞게 들어가서 이미지에 신경쓸 필요가 없는데다, 유저 인터페이스가 내가 많이 썼던 키노트(Keynote)와 비슷해서 새로 배워야 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바로 전에 썼던 블로그,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란?“의 내용을 이용해서 책을 한 번 만들어보기로 했다.
쉽게 아이패드용 책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애플의 iBooks Author
뚝딱 뚝딱 만들고 나서 버튼 클릭 한 번이면 아이패드에서 즉시 확인해볼 수 있었다. 총 15페이지. 아래는 아이패드에서 캡쳐한 화면들이다.
내친 김에 퍼블리싱 소프트웨어인 iTunes Producer를 이용해서 iBook 스토어에 업로드했다. 하라는 대로 따라하다보면 쉽게 끝난다. 원하면 돈을 받고 팔 수도 있다는데 별 내용이 없는지라 무료 버전으로 만들었다.
제작에서 출판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2시간 남짓. 처음 하는 것이라 그렇지 이 정도 분량은 앞으로는 30분이면 될 것 같다. 디지털 책과 교과서가 가져올 변화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물론 “아이패드로 공부하는 것이 종이책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는 더 증명이 필요할 듯하다. 아무래도 책과 달리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으면 쉽게 웹 서핑으로 빠져서 헤메이기 쉬우니까. 게다가 수학이나 과학과 같이 손으로 풀고 써봐야 하는 과목은 아직은 종이책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책에 줄 긋고 동그라미 치며 공부하던 시절은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잊혀진 과거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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