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싱어와 전현무 아나운서

오늘은 실리콘밸리나 스타트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

늦게서야 히든 싱어 김광석 편을 봤다(미국에서는 OnDemandKorea.com을 통해 광고와 함께 무료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볼 수 있다). 김광석 노래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좋아했었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 어느 하나 빼놓기 힘들 만큼 명곡들이다. 정말 가슴을 울리는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음색.

그의 명곡들이 그를 그리워해서 그를 닮고 싶어하는 누군가에 의해 불린다고 하니 참 기대가 되었고, 디지털 음원을 따로 뽑아내어서 한 소절씩 부른다니 그것도 참 신기했다.

당시에 시청률 6.347%로, 같은 시간대의 지상파 방송까지 제쳤다고 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본 것 같다. 그럴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이 깔끔하게 잘 만들어졌고, 들으면서 구별하기 힘들만큼 모창자들이 잘 했고, 무엇보다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참에 히든 싱어2 다른 편들도 보게 됐다. 왕중왕전까지. 참가자들과 같이 기뻐하고, 같이 놀라고, 그리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의 목소리, 외모, 그리고 표정까지 흉내내고 싶어한다는 것, 정말 감동적인 일이다. 출연한 가수들이 모두 거기에 큰 감동을 느낀 것 같다. 주현미씨가 모창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안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김범수씨가 모창자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표현한 것도 신선했다. 정말 어떤 느낌일까 그런 건..

사실, 히든 싱어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전현무 아나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히든 싱어를 보면서 모창자 실력 못지 않게 나를 감탄하게 한 것은 전현무 아나운서의 실력이었다. 방송의 흐름이 엉뚱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잘 주도하는 것 뿐 아니라 어떤 순간에 어떤 사람에게 무슨 질문을 해야 재미가 더해지는지를 파악하고 질문을 참 잘 한다. 한 번은 방송 중 현미 씨가 전현무 아나운서가 진행을 깔끔하게 잘 한다며 다 같이 박수를 쳐 주자고 하기도 했다.

좋은 질문이 실력이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진행할 만한 실력 있는 아나운서들이 한국에 또 누가 있을까. 한국 방송을 본 지가 오래 되어 잘 모르지만, 잘은 모르겠다. 그냥 ‘진행’을 할 만한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감탄할 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호동과 유재석, 그리고 신동엽. 소위 ‘국민 MC’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10년 전에도 인기 있었던 세 명인데 지금도 그렇게 인기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실력이 좋으면 그렇게 장수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다른 사람들을 망가뜨려 웃기는 것 말고, 정말 감탄할 만한 실력으로 프로그램을 이끄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한때 무한 도전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참 많이 웃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냥 유치하고 개그맨들이 안쓰러울 뿐이어서 더 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리얼리티 쇼를 참 좋아한다. 드라마에는 웬지 ‘작가’의 머리 속에 담긴 단편적인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긴박감이 들지 않는다. 리얼리티 쇼는 참가자들에 의해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 누구도 어떤 결말이 나올 지 알 수 없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순간 순간 주인공들이 갈등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며 마치 내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빠져 든다.

미국 방송에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참 많다. 이전에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샤크 탱크언더커버 보스, 그리고 서바이버 모두 리얼리티 쇼에 해당한다. 한때는 “You’re fired!”로 유명한 도날트 트럼프의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에 푹 빠져 있었다. 넷 모두 아주 인기가 많은 쇼들인데, 재미있는 것은 샤크탱크, 서바이버, 그리고 어프렌티스 모두 ‘한 사람’이 제작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마크 버넷(Mark Burnett)이며 그가 내니(nanny)로 시작해 티셔츠 장사를 통해 전설적인 TV 프로듀서가 되게 된 스토리는 이전 블로그에서 설명했으니 참고.

Jeff
‘서바이버’ 진행자 제프 프롭스트(Jeff Probst)

이런 리얼리티 쇼에서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사회자’이다. 특히 서바이버와 같은 쇼에서는 그 역할이 막중하다. 매일 한 사람씩 투표를 통해 제거되는 과정에서, 사회자가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질문하는데, 그 질문이 너무나 예리해서 어떤 질문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을 정도이다. 때로는 그의 질문으로 인해 투표되는 탈락자가 바뀌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제프 프롭스트(Jeff Probst)이며, 서바이버를 통해 대 스타가 되었다. 그의 역할 덕분인지는 몰라도, 2008년부터 에미 상(Emmy Award)에 ‘리얼리티 쇼 최고의 진행자 Outstanding Host for a Reality or Reality-Competition Program’라는 상이 추가되었고, 4년간 그가 1등을 독차지했다.

여기서 한 마디 추가. 사실 전현무 아나운서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명덕외고 영어과.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 아이들을 웃기는 것을 참 잘했다. 그 친구가 지금과 같은 MC가 될 줄은 상상을 못했던 것.

어쨌건, 한국에 실력 있는 예능 MC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6 thoughts on “히든 싱어와 전현무 아나운서

  1.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reply를 쓰는 이유는..글 내용에서 저의 고등학교 1년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서 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합니다~

  2. 프리랜서로 전향하기 이전부터 전현무 아나운서의 남다른 “센스”에 감복하던 한 사람으로써 반가운 공감이고, 글입니다. 🙂

  3. 솔직히 저는 방송을 봐도 어떤게 엄청나게 진행을 잘하는건지는 못 느끼겠는데, 나중에 히든싱어 한번봐야겠네요.ㅎㅎ

  4. 저보다는 ,집사람이 좋아하는 엠씨네요. 저도 좋은 이미지를 가진 편이라는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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