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의 미국 진출에 대하여

LA에서 2년의 MBA를 마치고 실리콘밸리에 와서 정착한 지 만 4년이 되어간다. 블로그를 쓰기 시작하면서 덕분에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난번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에서 언급했던,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이 받았던 질문이 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창원씨도 전에 ‘벤처의 해외 진출 – 마르지 않는 주제‘라는 글에서 언급했듯, 해외 진출, 특히 미국 진출 계획이 없는 회사는 거의 없다. 전에 내가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거대한 시장의 크기가 주는 매력도 있지만, ‘미국에서 성공했다’는 것이 큰 뉴스거리가 될 만큼 고무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예전부터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서는 항상 뚝심과 인내로 미국 시장을 뚫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했고, 나도 그런 것을 보고 감동을 받으며 자랐다. 게다가, 미국에서 성공하면 그것을 발판 삼아 다른 시장에 진출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동안 엔젤핵(Angelhack)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 해커와 파운더(Hackers & Founders) 등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벤트에 참여하며, 또는 중고 메트리스를 사려다가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어드바이저 역할을 하기도 하며 많은 스타트업이 시작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동시에, 미국 진출을 시도한 많은 한국 회사들도 관찰할 수 있었다. 어떤 회사들은 이 곳에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들을 뽑았고, 어떤 회사들은 영어 웹페이지와 영어 버전을 만들어 홍보를 시작했고, 어떤 회사들은 ‘현지인’ 한 명을 뽑아 그 사람을 통해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또 어떤 회사들은 미국 진출을 처음부터 고려했으나 몇 번의 고민 끝에 결국 중단하고 한국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아직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미국에서 장기적, 지속적 성공을 이룬 한국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많지 않다. 다만, 게임 쪽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회사들이 있다. 엔씨소프트, 넥슨 등 1세대 3D 온라인 게임 회사들을 비롯해서 게임빌과 컴투스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작년에 GREE에 인수된 파프리카랩 역시 ‘히어로 시티(Hero city)’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기술 기반 회사의 진출 성공 사례도 있다. 차상균 교수 실험실에서 만든 티아이시스템은 2001년에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글로벌 기업인 SAP에 매각된 후 HANA라는 인-메모리 기술을 공동 개발해 2011년 6월 출시 이후 18개월동안 $700M의 매출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웹 서비스 또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미국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회사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참 어렵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문지원씨와 함께 미국에서 Viki.com을 공동창업해서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투자자들로부터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세계 수천만의 유저가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든 후, 지금은 서울에서 Vingle.net을 공동창업 후 운영중인 호창성씨는 2011년 말에 Bay Area K Group을 대상으로 했던 세미나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미신(myth)입니다. 즉, 한국에서 먼저 성공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전략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품(Product)의 경우엔 한 지역에서 성공한 후 다른 나라로 진출할 수 있지만 서비스(Service)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 많으므로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분히 공감이 되는 말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심지어 한국어 버전도 만들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영어로 만들어 시작하는 회사들도 꽤 있다. 하지만 여전히, Vingle을 제외하고는 영어권 국가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회사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한편, 정부에서는 전에도 그랬듯이 ‘해외 수출’을 위해 끝없이 투자하고 있다. 게임빌에 있던 시절, ‘정부 과제’를 따내기 위해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그리고 ‘수출 가능성’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한 듯하다. 박정희 시대부터 있었던 ‘수출 대국’의 사명이 지금은 소프트웨어 수출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지원 자금을 통해 많은 벤처 기업들이 실리콘밸리 문을 두드린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인상을 받고 돌아가지만, 혹 의미 없이 세금이 쓰이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미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나라는 한국 뿐이 아니다.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도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끝없는 도전을 한다. 숫자 자체가 많아서인지 미국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한국보다는 많이 있는 듯하다. 인도 회사인 Infosys가 미국 산업계에서 차지하는 영향은 상당하다. 1999년에 미국 증시에 상장한 이후, 얼마 전에는 런던 증시에서도 거래를 시작했다. 원래 외국에 있던 회사가 진출한 사례는 아니지만, 중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이 만든 마벨 테크놀러지(Marvell Technology)의 성공 신화도 유명하다. 현재 회사 가치가 $5.5B (약 6조원)에 이르는 이 회사는, 세핫 수타르자(Sehat Sutardja)와 그의 아내 웨일리 다이(Weili Dai), 그리고 세핫의 형제인 판타스 수타르자 (Pantas Sutardja) 세 명에 의해 1995년에 만들어졌다. 세핫 수타르자는 인도네이사 자카르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버클리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웨일리 다이 역시 상해 출신으로 버클리 대학에서 학부를 마쳤다.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이 회사는 고속도로 237번 바로 옆에 있어 그 쪽을 지나갈 때마다 항상 보게 된다.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마벨 테크놀러지(Marvell Technology) 본사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마벨 테크놀러지(Marvell Technology) 본사

지금은 애플과 구글이 만들어준 생태계 덕분에 전 세계 시장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파는 것이 쉬워지기는 했다. 앱스토어에 올리고 영어 버전을 만들기만 하면 누군가가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를 널리 알리고 그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여전히,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은 어렵다. 왜 어려울까 생각을 해봤다.

첫째, 한국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게임빌의 미국 진출을 경험하며 뼈저리게 느꼈던 부분이고, 미국에 살면서 더 크게 느끼는 부분이다. 자동차와 전자 제품 등 몇 가지를 빼면, 한국에 비해 여기에서는 뭐든지 비싸다. 가장 비싼 것이 인건비이다. 다음은 민트(Mint.com)의 창업자인 애런 팻저(Aaron Patzer)가 했던 강연에서 본 것이다. 그가 초기에 서비스를 만드는데 들었던 비용을 설명한 슬라이드이다. 직원이 5~6명인 팀을 구성한 후 1년에 얼마가 들었는 지를 계산한 것인데, 연간 약 $600k (6.6억원) 정도였다. 비싼 건강 보험료에 돈이 꽤 들어가고, 1년에 5만달러나 소요된 변호사 비용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한편, 미국에서 특허 출원 및 등록을 하려면 건당 2만 달러 정도 든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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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t.com 초기 소요 비용. 팀원들 연봉으로 일인당 5만달러에서 9만달러 사이가 들었고, 사무실 및 복지 등에 연간 10만 달러, 그리고 변호사 비용이 1년에 5만 달러. 그래서 합해서 총 60만 달러가 들었다.

이건 순수하게 엔지니어 및 디자이너를 고용하기 위해서만 드는 비용이고, 홍보에 비용을 쓰겠다고 하면 즉시 큰 비용이 추가된다. 웬만한 홍보용 비디오 제작 비용이 1만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사무실 임대 비용 등이 있다. 만약 캘리포니아에서 살겠다고 생각하면, 아파트 렌트와 생활비 등으로 최소한 월 3천달러 정도를 잡아야 한다. 방 한 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2000달러 정도 하는데, 일년이면 2만 4천달러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월세 3000달러가 쉽게 넘는다.

둘째, 친구와 가족(Friends & Family)이 적다. 물론 만들면 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양성이 부족하기 쉽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있고, 친구들이 주변에서 많이 응원해주면 큰 도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사업을 할 때는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이 유리하다. 내 MBA 동기인 쟈니 오닐(Johnny O’neal)은 카드 게임을 만든 후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21만 5천달러를 모금했는데, 하루만에 12,000달러의 모금액을 채운 후 “Some of the pledges here are from friends and family members (이 중 일부는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모금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케이스에는 예외가 많이 있다. 뒤에서 더 설명하겠다.

셋째, 사람들 입에 회자될만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썼던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에서도 다룬 바 있다. 한국에서는 스토리를 퍼뜨려줄 수 있는 기자와 블로거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2000년 당시 게임빌을 처음 시작했을 때 14개 신문에 소식이 나갔다. 당시 ‘서울대 벤처 동아리’ 출신들이 게임 회사를 만들었다는 것이 뉴스거리였다. 또한, 책 ‘티몬이 간다’에 따르면,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는 처음 티몬을 알리기 위해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활용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한국 신문은 화제로 삼지만, 미국에서는 공감할만한 화제거리가 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타파스틱(Tapastic) 창업자 김창원씨의 홍보 방법은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PR 회사를 쓰는 동시에 자신이 직접 ‘강남 스타일’을 빗댄 글을 하나 써서 500 Startup 페이지에 올렸다. 이 과정은 ‘실리콘밸리 언론소개 팁 공유’라는 블로그 글에 아주 잘 설명이 되어 있다.

넷째, 어색한 영어 표현들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번역 자체가 엉성하게 된 경우도 있고, 번역을 하긴 했는데 표현이 너무 ‘한국적’이라 영어로 읽으면 어색한 경우가 있다. 고객에게 바싹 다가가서 감동을 줘도 모자란 판에, 표현이 어색하면 깊은 인상을 남기기가 힘들다. 나는 카카오톡을 영어 버전으로 쓰고 있는데, 군데 군데에서 그러한 어색함이 발견된다. 이에 대해 전에 트윗을 했던 적도 있는데, 아래에 그 스크린샷이 있다. 첫 번째는, 카카오톡에서 내 연락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떴던 메시지이고, 두 번째는 친구 추천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친구 찾기’ 탭을 눌렀더니 떴던 메시지이다. Are you really sure?라는 강한 표현으로 시작한 것, grant access라는 기술적인 표현을 쓴 것, ‘utilize contacts list’ 에서 utilize라는 단어를 쓴 것도 어색한데, ‘disallow the transfer’라는 표현은 정말로 이상하다. 그리고 오른쪽은 아마 ‘당신은 친구 추천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를 영어로 번역한 것 같은데 ‘Do not use friends recommendation function (친구 추천 기능을 사용하지 마십시오)’라고 명령어로 엉뚱하게 번역되어 있다(지금 확인해보니 이 표현은 수정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능의 경우 ‘feature’라고 해야 자연스러운데, ‘기능’을 그대로 영어로 직역해 ‘function’이라고 한 것도 이상하다. function은 수학에서 ‘함수’를 뜻하거나, 소프트웨어에서 서브루틴을 가리킬 때 자주 쓰는 단어이다. 카카오톡 하나를 예로 들기는 했지만 이런 어색한 번역은 다양한 소프트웨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카카오톡 영어 버전
카카오톡 영어 버전의 어색한 표현들

이는 마치 우리가 영어 웹사이트를 그대로 한글로 번역해 놓은 웹사이트를 보면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클라우드 기반 CRM 솔루션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회사인 세일즈포스닷컴의 한국어 사이트를 예로 들어보겠다. ‘소셜 마케팅 선두 어플리케이션으로 고객에게 다가가서 대화 참여’, ‘소셜 HR 업무수행관리 어플리케이션’ 등 이해하기 어려운 어색한 표현들이 한 두개가 아니다. 또, 페이지 제일 아래에는 ‘세일즈포스 3백만 기업 고객의 성공 스토리와 그 이상‘이라는 어색한 표현이 있는데, 원래 표현이 뭐였는지 찾아보니 ‘3 million success stories and counting‘ 이라는, 영어로는 매우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그보다는 ‘3백만개의 성공 사례가 있고,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라고 번역하면 조금 더 자연스러운데, 여전히 입에 ‘착 감기지는’ 않는다.

세일즈포스 코리아 한국어 페이지
세일즈포스 코리아 한국어 웹사이트. 표현들이 어색하고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제품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를 많이 따진다. 스타벅스는 시애틀에서 시작되었고, 애플, 구글과 페이스북은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졌다. 오래 전부터 애플 제품에서 흥미롭게 보았던 것이 하나 있는데, 모든 애플 제품은 중국에서 제조, 조립되지만, 항상 제품 뒷면에는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애플 본사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중국, 인도 출신 엔지니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품의 상당 부분이 중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애플을 생각할 때 캘리포니아를 떠올린다.

Designed By
아이폰 5 뒷면.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소프트웨어 제품의 경우 이 경향이 더 명확하다. 미국에서 인기를 누리는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대부분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LinkedIn, Pandora Radio, Evernote, Yelp, OpenTable, Flixster, Instagram, Netflix, Shazam, Zillow 등등. 사람들이 이런 소프트웨어들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일일이 따지면서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만든 제품에 자연스럽게 더 끌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국 제품은 제품 이름, 로고,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 등 구석 구석에서 티가 난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만든 제품들도 그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그 색깔을 살려야 더 성공할 수 있는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미국에서 만든 제품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미국 진출 실패 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싸이월드(Cyworld)는 그런 면에서 너무 이질적이지 않았나 싶다. ‘싸이버 월드’를 줄인 ‘싸이월드’라는 이름이 어색하게 들리는데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라는 느낌이 안들고, 디자인이나 유저 인터페이스가 당시 미국에서 인기 있었던 소셜 네트워크였던 마이스페이스와 비교하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미니미’, 또는 ‘미니미 방’을 꾸미는 일도 미국 대중에게 어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이스페이스 vs. 싸이월드
사진과 글을 강조하는 마이스페이스(좌)와 미니홈을 강조한 싸이월드의 웹사이트 디자인(우)

반면에 미국과 북유럽, 서유럽, 그리고 호주/뉴질랜드 등은 색깔이 비슷한 면이 있어서 심리적 장벽이 조금 낮은 것 같다. 미국에서 성공한 많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들이이 유럽에서도 크게 인기를 끄는 것은 물론이고,유럽에서 만든 제품이 미국에서 성공한 사례도 많이 있다. 할 일 목록 관리 프로그램인 Things는 사실 독일에서 만들어졌다(그렇지만 홈페이지에 가 보면 꼭 미국 회사같은 느낌이 든다). 스카이프(Skype) 역시 스웨덴 출신인 니클라스 젠스트롬(Niklas Zennstrom)과 덴마크 출신인 야누스 프리스(Janus Friis)에 의해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들은 2005년에 $2.6B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회사를 이베이(eBay)에 팔았고, 2009년에 실버 레이크 파트너스(Silver Lake Partners)라는 회사를 통해 스카이프를 이베이로부터 다시 사들였다가 2년 후에 $8.5B(9조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 팔았다. 국제 전화를 쉽게 걸 수 있게 해주는 회사 Rebtel 역시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한 스웨덴 회사이다. 김창원씨가 블로그에서 ‘미국 진출시 창업자가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이 중요함’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했던 또 다른 스웨덴 회사 Spotify의 사례도 있다. 특이하고 재미있게도, 이스라엘은 색깔이 분명히 다르지만 종종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사는 네비게이션 앱을 만든 웨이즈(Waze)이다. 웨이즈는 처음 이스라엘에서 시작했고, 직원들 대부분이 이스라엘에 있으며, 팔로 알토에 작은 사무실을 두고 있다. 얼마 전에 사용자 수가 1,75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한 바이버(Viber)도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졌다 (다만, CEO인 탈만 마르코(Talman Marco)는 이스라엘계 미국인이다).

웨이즈(Waze)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이스라엘의 네비게이션 앱, 웨이즈(Waze)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서비스가 아닌 물건의 경우엔 위에서 언급한 것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내 아이폰에 장착된 링케(Ringke)라는 아이폰 케이스는 리어스(Rearth)라는 한국 회사에서 제조했는데, 아마존에서 ‘iPhone 5 case’라고 검색하면 1등으로 뜰 정도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도 몇 달간 사용하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주변에 추천할 만큼 품질이 좋다.

미국 사람들이 국산을 회피하는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독일차가 시장을 장악한 지 이미 오래이고, 최근에는 한국 차들이 선전하고 있다. 얼마 전 수퍼볼 광고를 보다가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광고 마지막이 “Imported From Detroit (디트로이트에서 수입되었음)“로 끝나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미국 사람들이 오죽 수입차를 선호하면 ‘디트로이트’에서 수입했다는 것이 광고 카피일까.

Imported from Detroit, Chrysler.
크라이슬러 광고 카피, “Imported from Detroit”

지금까지 손에 만져지는 제품과 달리 서비스와 소프트웨어의 경우 미국 시장 진출이 쉽지 않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성공 사례는 분명히 있고 계속해서 도전할 가치가 있다.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경험에 비추어 먼저 이야기를 해보면, CEO의 의지, 뛰어난 인재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게임빌이 해외 시장 개척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 건 2000년 창업때부터였다. 2002년에는 게임쇼에 게임을 가져가서 유럽의 퍼블리셔와 계약을 하기도 했고, 2003년, 2004년에는 중국, 일본, 미국 회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게임을 공급했다. 게임빌이 게임 개발을 맡고 현지 퍼블리셔가 테스트, 홍보, 이통사 계약 등을 담당하는 형식이다. 가장 처음 미국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내었던 것이 야구 게임이었다. CBS Sportsline이라는 회사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미국에 수출했는데, 억단위 매출이 나왔던 것이다. 원래 우리가 가진 게임은 2002 프로야구라고, 일본의 야구 게임을 본따 이등신 캐릭터를 써서 만들었던 것인데, 미국에서는 ‘실사 이미지’가 더 잘 먹힐 것이라는 판단 하에 선수 이미지를 모두 8등신 형태로 바꾸느라 좀 고생을 했다.

게임빌 2002 프로야구(좌)와, 디자인을 바꿔 만든 CBS SportsLine Baseball (우)

이 게임이 어느 정도 성공한 후 다음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2등신 캐릭터를 그대로 써보기로 했다. 우리 게임의 컨셉과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것이 미국시장에서 먹힐 지 실험해보자는 취지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출시 각종 게임 잡지의 리뷰를 살펴보았는데 다들 2등신 캐릭터가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그 이후로 게임빌 야구는 한국에서는 20xx 프로야구, 해외에서는 Baseball Superstars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디자인과 컨셉으로 출시되고 있으며, 게임빌의 해외 매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게임은 좀 독특한 것 같다. 좀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게임이 재미있으면 문화와 국경의 장벽을 상대적으로 쉽게 넘는 것 같다. 특히 액션이나 스포츠 게임처럼 스토리가 게임의 핵심을 차지하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마켓 모두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빌의 야구 게임, Baseball Superstars
전 세계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마켓 모두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빌의 야구 게임, Baseball Superstars

이렇게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2006년부터는 토렌스에 미국 지사를 설립해서 이통사와의 직접 계약을 통한 게임 공급을 시도했다. 처음 한동안 미국 지사에 적자가 누적되었다. 흑자로 전환되기까지 수년이 걸렸고, 그 기간을 버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의견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게임빌이 오늘날의 성공을 볼 수 있게 된 데에는 현재 게임빌의 미국 법인인 ‘Gamevil USA’를 담당하는 이규창 지사장(Kyu Lee)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는 내가 아주 존경하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6년의 어린 시절을 보낸 덕에 영어는 잘했지만 미국에 친구나 인맥이 많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게임 업계에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었던 일을 그는 ‘인내와 끈기’로 해냈다. 미국의 파트너들에게 항상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뚝심을 가지고 조용히 쌓아올렸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던 ‘Gamevil’이라는 이름이 언론을 통해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팬들이 생겨났다 (현재 게임빌 페이스북 팬페이지의 ‘Like’ 수는 35만 8천에 달한다). 그 결과, 2012년에는 총 매출 702억원 중 270억원이 해외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전체 매출의 무려 39%에 해당한다. 현재 모습만 보면 하루 아침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려 10년의 ‘끈기’가 담긴 결과물이다.

미국 법인을 따로 설립해서 기술만 옮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날이 이 방법을 채택했다. 휴대폰 결재 사업 모델로 미국에 진출할 때, 직접 사람을 파견해 미국 사업을 하는 대신 폴 김(Paul Kim)이라는 사람을 찾았다. 그는 Tuck Business School을 졸업하고 삼성 벤처 캐피털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다날의 기술을 가져와 BillToMobile이라는 미국 회사를 따로 설립한 후 독자적으로 $9.5 million (약 100억원)의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했다. 약 3년 후, 이 회사는 미국 4대 이통사(AT&T, 버라이즌, 스프린트, T-Mobile)와 계약을 모두 끝냈고, 나중에 모회사인 다날이 이 회사 지분을 인수하며 미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2013년 1월에는 U.S. 셀룰러(U.S. Cellular)와도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전체 휴대폰 사용자의 90%를 커버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미국 법인을 세워 진출하기보다는 파트너 회사를 통해 먼저 서비스를 해 보거나 고객을 확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게임빌 미국 지사를 세우기 전에 퍼블리셔와 일하면서 참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샌디에고에 위치한 엠포마(Mforma)와 일하면서 미국에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필요한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제품 테스트를 하는지를 알 수 있었고, 디즈니(Disney)와 함께 일하면서 ‘현지화(localization)’의 중요성, 그리고 현지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비록 파트너 회사와 일하기 위해 수익을 분배해야 했고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 덕분에 후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경우 현지화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많이 있지만, 기업용 솔루션이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딱 맞는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력하면 분명히 서로에게 도움 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많은 분들에게 대답했던 내용을 하나로 정리하려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미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참고로, ‘미국에서 창업하기‘는 다른 차원의 주제이므로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눔(Noom) 다이어트 코치 한국 진출, 그리고 정세주 대표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인 2009년 11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픈 모바일 서밋(Open Mobile Summit)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스마트폰 혁명이 시작된 시기였고, 아이폰 앱스토어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앞으로의 이통사와 제조사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우리 회사에서 스폰서를 한 덕분에 티켓이 생겨 이 행사에 참석했다. AT&T, 스프린트 등의 이통사에서 임원들이 나와 향후 전략을 이야기했고, 한국에서는 LG 전자를 대표해 최진성 현 SKT 기술전략실장이 스피커로 참석했었다. 앞으로 위치 정보를 비롯한 고객 정보를 이동통신사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등을 이야기하는 한 세션에 참석했는데, 세션이 끝날 즈음 뒤에 앉은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자신을 전에 구글에 일했던 엔지니어라고 소개하며, 현재 건강에 관련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세션이 끝나고 나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앱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좀 보여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아직은 완성이 안 되었지만 기능은 대부분 갖추었다며 보여주었다. 당시엔 아직 인기가 많지 않았던 안드로이드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손에 받아 이것 저것 눌러보며 살펴보았다. ‘카디오 트레이너‘. 조깅할 때 이 앱을 켜고 달리면 GPS로 위치를 추척해서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어 동기부여가 되도록 하는 앱이었다. 게임빌에서 있을 때 7년간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본 터라, 보자마자 관심이 갔다. 아주 괜찮아 보였다. 조금 더 이야기하고, 명함을 주고 받았다.

Artem Petakov (아텀 페타코프)
CTO/Founder
Worksmart Labs, Inc (주식회사 워크스마트랩)

워크스마트랩이라, 더 똑똑하게 일하는 법을 연구하는 회사? 재미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기업 연구소도 아닌데 회사 이름을 왜 ‘Lab’이라고 지었을까?

집에 도착해서 컨퍼런스 때 받았던 명함을 쭉 정리하다가 Artem의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Worksmart Labs. 더 알고 싶어져 회사 웹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About Us‘ 페이지를 살펴보았다. 제일 첫 줄에 CEO로 소개된 Saeju Jeong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어랏, 한국 사람이네? 프로필을 읽어보니 홍익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고 되어 있었다.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Artem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정세주씨를 소개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서 링크드인(LinkedIn)에서 정세주씨 프로필을 찾아보았다. 간략한 내 소개를 하며 연결을 요청했다.

불과 몇 시간만에 그로부터 답장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조성문님

먼저 찾아주시고 또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Artem과 WorkSmart를 공동 창업한 “정세주”라고 합니다. Artem이 내일 뉴욕으로 돌아오면 더 자세한 소식을 듣겠습니다만 반가운 인연입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창업을 했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혹시 뉴욕이나 동부에 오실 일정이 있으시면 저희 연구소를 들려주세요, 요리사가 준비해주시는 음식이 제법 맛있습니다. 게임빌의 성공사례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더 넓은 길을 향해 가시는 조성문님을 더욱 알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 연구소에서는 멋진 연구원들을 리쿠르팅 하고 있습니다. 혹시 추천 해주실만한 분이 계시면 말씀 주십시오.
우리 연구소에서는 건강관련(피트니스, 웰니스, 무선 헬스정보망)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 편히 주십시오. 모든 인연을 감사히 여기며 인재에 정성을 기울이려 노력합니다. 아래는 제 연락처 정보 입니다.
말씀 주셔서 감사하며 또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뉴욕에서 정세주 올림
WorkSmart Labs, Inc.

그리고 나서 몇 번 더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마침 뉴욕에서 장기 출장중이던 김현유(미키김)씨와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소개를 했고, 또 투자를 유치중이라면 아는 투자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그리고 나도 투자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곧 다시 답장이 왔다.

실례가 안된다면 전화상으로 제 소개를 함은 어떨런지요, 많이 바쁘신 분이라 제가 괜히 부담이 되는 질문을 하나 싶습니다만 저희의 순수한 열정을 보신 것 같아 저 또한 조성문님을 가까이 알고 지내고 싶습니다. 제 핸드폰은 000-000-0000 입니다. 이번 Open Mobile Summit 에서 Artem이 꽤나 즐거운 일들을 만든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 제가 픽업을 하고나면 더 자세한 소식을 듣겠습니다만 잘하면 실리콘 벨리쪽에 있는 회사와도 연계 업무가 가능해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화로 처음 만났다. 1시간 정도 통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국 서부와 동부에 떨어져 있기에 만날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꼭 만나 이야기를 하자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약 한 달 뒤인 12월, 서울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난 휴가를 내어 서울의 가족을 방문하러 갔고, 그도 마침 출장으로 서울에 있을 때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다. 상대방의 말에 최대한 집중하고, 그 시간에 최선을 다 하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달이 다시 지난 2010년 2월 말, 샌프란시스코의 투자자를 만나러 출장 온 그를 다시 만났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 근처를 걷고, 샌프란시스코 서쪽의 Cliff House에서 만나 식사를 하며 와인과 함께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욕에 가서 사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출발한 이야기는 신문 기사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와의 추억을 자세히 듣게 된 것은 이 때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지혜를 작은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해주셨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와닿았다.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감상에 젖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지난 1월 11일, 강연 100도씨에 출연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던 그는 또 다시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세 달이 지난 2010년 5월, 이번에는 뉴욕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할렘가에 있는 한 아파트를 개조해서 쓰고 있는 사무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Artem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고, Vera, Charlie, Mark, Ketill을 만나 인사를 했다. 모두 정세주를 마음 깊이 좋아하고 신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뉴욕에서
뉴욕 워크스마트랩 사무실에서, Mark, Charlie, Saeju, & Vera. 제일 왼쪽의 마크는 장애로 인해 손발을 잘 움직이지 못하지만, 로봇 축구 챔피언십을 두 번 우승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그 해 10월, 그는 나에게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나는 당연히 참여했다. 그 후, 카디오 트레이너(Cardio Trainer) Pro 버전($9.99)이 출시되며 매출이 크게 성장했고, 제품이 포브스(Forbes) 지에 언급되었고, 2010년 말에는 뉴욕타임즈에서 Top 10 안드로이드 앱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고, Google Health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뉴욕 첼시(Chelsea)로 사무실을 옮겼다.

2011년 4월에는 클라너 퍼킨스(KPBC)에서 투자를 받았고, 5월에는 눔 다이어트 코치(Noom Weight Loss)를 출시했으며, 출시 한 달만에 백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SBS 스페셜에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취재한 방송이 나갔다. 그리고 그 해 11월, 회사 이름을 WorkSmartLabs에서 Noom으로 바꾸었다.

2012년에는  눔 다이어트 코치가 크게 개선되었으며, 한국 본격 진출을 위해 모든 컨텐트의 한글화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퀄컴 벤처스, 하버 퍼시픽 캐피털 등으로부터 3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2013년 1월에는 눔(Noom) 다이어트 코치 한글 버전이 출시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리뷰를 보니 순조로운 출발로 보인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행운을 얻었다.

눔(Noom) 다이어트 코치 안드로이드 스토어 사용자 평점
눔(Noom) 다이어트 코치 안드로이드 스토어 사용자 평점

아쉽게도 아직 아이폰 버전이 없어 나는 자주 사용하고 있지는 못하지만(이것 때문에 안드로이드 폰을 하나 사기는 했다), 그동안 내가 써본 트래킹 앱 중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카카오톡이나 모바일게임과 같이 바이럴한 제품도, 1분 후에 점수가 나오는 것처럼 결과를 빨리 볼 수 있는 제품도 아닙니다. 애플리케이션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참으로, 눔 다이어트 코치와 카디오 트레이너를 써보면 세심함과 완성도에 감탄하게 된다. 청년 사업가 정세주, 그리고 그의 회사 눔(Noom)이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가 기대된다.

참고 기사

기부 문화, 선진국의 척도

wikimedia_logo얼마 전에 테크크런치에서 읽었던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있다. 전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신뢰하는 정보의 원천인 위키피디아를 만든 회사 위키미디어 파운데이션(Wikimedia Foundation)이 단 9일만에 120만명으로부터 무려 $25 million (약 280억원)의 기부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2011년에는 $20 million을 모으는 데 46일이 걸렸다고 하니,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오직 순수한 기부액으로만 이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데, 재미있었던 것은 이 기부 캠페인을 다섯 개의 영어권 나라 – 미국,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 에서만 벌였다는 것이다. 285개의 언어로 쓰여져 있고, 매달 세계 4억 7천 5백만명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인데, 왜 위 다섯 개의 나라에서만 캠페인을 했을까? 위키피디아에서 영어로 된 정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이 다섯개 영미권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기부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번 캠페인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작년 캠페인에 참여해서 1년동안 매달 일정액을 기부했었다. 사실 위키피디아가 나에게 주는 가치를 생각하면 너무 미미한 액수였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바뀐 것 중 하나가, 이렇게 무형의 가치에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뭔가 내가 쓰는 것에 대해 가치를 느끼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하고 싶어진다. 예전에 크리스마스에 에버노트에 찾아가서 와인을 선물했던 일처럼. 전에는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구해서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드라마나 영화도 그런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서 무료로 보곤 했는데, 지금은 넷플릭스와 훌루, 그리고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를 이용하고 있고, 이 셋 모두 월정액이나 건당 요금을 내며 쓰고 있다. 지금도 마음 먹으면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음악을 공짜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쓰고 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첫째, 주변 사람들이 다들 돈을 내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있을 때나 회사에서 일할 때나, 항상 듣는 말은 어떤 소프트웨어를 얼마에 샀다든지, 음악을 사서 듣고 있다든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아이튠스에서 구입했거나 넷플릭스에서 보고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이다.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서 쓰고 있거나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팁 문화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 처음 와서 참 귀찮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팁 문화이다 (미국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고 난 후 계산할 때, 발레 파킹을 하고 나서 차 문을 열어줄 때, 세차 하고 나서 키를 넘겨 받을 때,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시켰을 때, 아니면 심지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깍고 나서도 항상 팁을 더해 준다. 안줘도 상관은 없지만, 상대방이 기대한다는 것을 알면서 무시하면 웬지 꺼림직하고 ‘깍쟁이 아시안’ 소리를 들을까봐 팁을 항상 챙기는 편이다. 이제 익숙해지고 나니, 괜찮은 관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음식값을 다 내고 굳이 왜 또 팁을 얹어 줘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식당에서는 그 팁을 포함해야만 수익이 나기 때문에 사실은 음식 값의 일부이다. 하지만 이렇게 ‘음식값 + 세금 + 팁’으로 가격을 나누어 놓음으로서, 고객 입장에서 항상 세금을 별도로 생각하게 되고, ‘팁 = 서비스’ 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히고, 어떤 식으로든 서비스를 받으면 거기에 대해 ‘팁’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닐까?

셋째, 돈을 지불했을 때 그 대가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2012년 블로그 결산‘에서 워드프레스 이야기를 잠깐 했었다. 내가 쓰는 블로그 엔진인 워드프레스는 사실 무료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일년에 100달러 이상씩 돈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내가 돈을 내기 시작한 이후로 워드프레스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 원래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블로깅 엔진이었지만, 나처럼 돈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니 제품에 투자를 해서 품질을 크게 개선한 것이다. 이런 사이클을 경험하고 나니 내가 내는 돈이 아깝지가 않다.

넷째, PayPal 등 쉬운 결재 방식 덕분에 지불 과정에 마찰(friction)이 없다. 물건을 사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달리, 기부는 대개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결정이다. 기부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서 버튼을 눌렀는데 엑티브 엑스 깔고, 공인인증서 암호 입력하고,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하고, 휴대폰 인증 하다보면 ‘그냥 안하고 말지’하고 중간에 그만둘 수가 있는데, 페이팔을 이용하면 그런 모든 과정이 없다. 기부 액수를 정한 후 페이팔 아이디와 암호만 입력하면 즉시 지불이 된다. 아래는 위키미디어 파운데이션의 기부 페이지의 일부분이다.

위키피디아의 기부 페이지. 신용카드를 이용하거나 페이팔을 이용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의 기부 페이지. 신용카드를 이용하거나 페이팔을 이용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한국과 미국의 M&A 문화 차이라는 글에서, 표절을 엄단하고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인정하는 문화 때문에 미국에서 M&A가 활발한 것 같다는 주장을 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점에 있어서는 생각이 다르지 않다. M&A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M&A가 가진 긍정적 파급 효과가 매우 큰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 이러한 M&A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무형의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해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국민 소득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기부 문화가 선진국의 척도를 가늠하는 것이 아닐까?


업데이트 (1/17/2013): 보통 ‘기부’라고 하면 사회보장과 관련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든지 사회 약자를 돕는다든지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글에서의 ‘기부’는 그런 쪽의 의미는 아니고, 위키피디아와 같이 사람들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품에 대해 기꺼이 지갑을 열어 돈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을 안 내도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전혀 불편함이나 제약은 없지만, ‘자신이 그 서비스로 인해 가치를 얻었다고 생각되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마음’,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진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신이 나겠지요.

존 가드너의 한 단어 격언 (One-word Maxim)

백산씨의 블로그를 통해 존 가드너(John Gardner)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사서 지난 주말에 읽어보았다. 블로그에서 번역해서 소개했던 Personal Renewal이란 글은 내용이 너무 좋아 몇몇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원문을 보냈고, How To Tell You’ve Grown Up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 번역) 역시 내용이 참 좋았는데, 책을 읽은 지 일주일이 지나 계속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 The Fourth Maxim(네 번째 격언)이라는 짧은 글이었다.

교육가로, 그리고 정부 고위 공무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존 가드너는 많은  글과 책을 남겼고 강연도 무척 많이 했는데, 오랜 기간동안 격언(proverbs)를 많이 모았다고 한다. 아마 글을 쓸 때나 연설할 때 많이 인용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어느 날, 짧은 격언들이 주는 매력에 매료되어 네 단어, 세 단어짜리 격언들을 모아봤다고 한다. 아래에 인용한다.

네 단어 격언은 주로 대조법을 사용한다.

  • Soon ripe, soon rotton (빨리 익으면 쉽게 썩는다)
  • Easy come, easy go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
  • Young saint, old sinner (나이가 들면 죄가 많아진다?)

세 단어 격언은 별로 없지만 아주 오래된 것들이 많다.

  • Misery loves company (불행한 사람들은 남도 불행해지길 바란다)
  • Love is blind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
  • Make haste slowly (급할수록 꼼꼼히)
  • Que sera, sera (될대로 되라?)

두 단어 격언도 있다.

  • Power corrupts (권력은 부패한다)
  • Tempus fugit (Time flies. 시간은 날아간다)
  • Know thyself (자신을 알라)

한 단어 격언은 없을까? 그 때부터 가드너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Health(건강), Fortune(부), Honor(영예), Veritas(진리)와 같은 좋은 단어들이 있기는 하지만 격언으로서의 가치는 없다. 단어 하나만으로 어떤 가치 전체가 전달되어야 한다.

“서기 2500년을 사는 젊은이에게 단 한 단어만 이용해서 조언해줄 수 있다면 어떤 단어가 될까?”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해 보았다고 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손꼽은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책을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도 한 번 생각을 해보았다. 하나의 단어로 교훈을 전달할 수 있다면 무슨 단어일까? Make? Inspire? Give? Trust? Lead?

가장 많은 사람들이 꼽은 단어는 다음 세 개로 좁혀졌다고 한다. 그 중 첫째는 다음 단어였다.

“Live!”

아! 이 단어를 보고 감탄했다. 이렇게 함축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에 담은 단어가 있을까? 우리가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하는 모든 활동, 결국 “Live”를 위한 것이고, “Live”를 잘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단어에 붙은 느낌표가 색다를 느낌을 준다. 마치 ‘제대로 살아라!’고 외치는 것처럼.

두 번째는 무엇이었을까?

“Learn”

이 단어가 Top 3 중 하나로 꼽혔다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난 정말 많이 공감했다. Live를 잘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Learn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배우고,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고,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모든 과정이 Learn이다. 얼마전 Bay Area K Group 정기 총회를 주최하면서 키노트 스피커로 조나단 리(Jonathan Lee)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난 26년동안 회사를 7개 만들고, 다른 회사에 투자하고, 지금 전체 직원 수가 600명에 달하는 두 개의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금 가장 집중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도 아닌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철학을 배우고, 심리학을 배우고, 인류학을 배우고. 얼마전에 또 뵈었던, 한국에서 과학계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한 의대 교수님은 ‘사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시더니, 사람은 ‘배우는 존재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인생의 목적이 배우는 것은 아니겠지만, ‘배움’이라는 것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함은 부인할 수 없다. 꼭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뭔가를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제공한다.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신문을 통해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유명한 사람의 강연을 들으며 깨달음과 용기를 얻는 것. 그 모든 것은 결국 배움의 과정이다. 아기는 태어나서 첫 몇 달동안 소위 ‘폭풍 지식 흡입’을 한다. 어린 아이가 거의 쓸모 없을 만큼 무능력한 채로 태어나는 이유는 대뇌가 더 발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적이 있다. 동물은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에 프로그램된대로 먹이를 찾아 해메고 포식자를 피해다니지만,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배운다.

가드너가 세 번째로 꼽은 것은?

“Love!”

Top 3에 충분히 들어갈 가치가 있는 단어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가족에 대한, 친구에 대한, 연인에 대한 모든 종류의 사랑. 사랑은 다른 여러 가지 행동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다음은 의견이 엇갈렸다고 하는데, 가드너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선택했다.

“Think”

“Give”

“Laugh”

“Aspire”

단순한 Try  보다는 “Try for something better (더 나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어감을 주는 Aspire를 선택했다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이 단어가 참 정감이 간다.

사람마다 우선순위는 다를 것이다. 나는 첫 번째 세 단어의 순서에 공감이 가고, 그 다음에는 Aspire, Give, Think, Laugh 순으로 중요한 것 같다.

당신이 500년 후의 누군가에게 한 단어의 교훈을 전달한다면, 어떤 단어를 선택하겠는가?

2012년 블로그 결산

오늘은 2012년의 마지막 날이다(한국 시간으로는 2013년의 시작). 어제 WordPress로부터 ‘Annual Report’를 받았다. 작년에도 비슷한 보고서를 받았는데, 올해는 훨씬 발전된 모습이다. 업데이트 속도가 더 빨라지고, 더 편리해지고, 더 기능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워드프레스가 약 2년 전부터 유료화 정책을 적극 시행해서 프리미엄 서비스를 열심히 홍보하더니, 그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나보다. 워드프레스는 기본적으로 무료 블로깅 플랫폼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료로 쓰고 있지만 나는 이런 저런 프리미엄 서비스들을 쓰다 보니 매년 100달러가 넘는 돈을 내고 있는데, 좋은 서비스에 돈을 내면 그 가치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생각이 확실히 든다 (아직 에버노트와 드랍박스를 무료로 쓰고 있는데, 항상 빚진 느낌이다).

리포트에 따르면, 올 한 해동안 36만 뷰 정도가 나왔다. 대략 그 중 3분의 2가 고유 방문자(unique visitor)이니, 24만 정도가 고유 방문이다.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방문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테니, 사람 숫자로는 8만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8만 명이라니, 생각해보면 아찔한 숫자이다. 매년 5만 5천명이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을 방문하는데, 내 블로그 방문자만큼 되려면 7년이 걸린다며 유럽의 작은 나라보다 더 방문자가 많다고 알려준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날은 2012년 11월 12일.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를 포스팅한 날.

숫자로 보는 블로그의 한 해 성과. 26개 새 글
숫자로 보는 블로그의 한 해 성과. 26개 새 글, 36만 방문.

2012년에 가장 많이 읽힌 글은 아래 다섯 개이다.

  1. 한국 인터넷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그 이름은 네이버 (NAVER)
  2. 내가 영어 공부한 방법
  3. MBA를 준비하는 분들께 드리는 글
  4.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란?
  5.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

사실 이 중 몇 개는 쓴지가 좀 된 글인데 아직도 방문 수가 높다. 첫 번째네이버‘ 글은 블로그 처음 시작할 때 즈음에 쓴 건데 아직도 이렇게 조회수가 높다는 게 좀 의아하다. 이 글을 일부러 찾아온다기 보다는 구글에서 ‘네이버’를 검색했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읽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네이버에서 ‘네이버’로 검색해서는 이 글을 찾을 수 없다).

구글에서 '네이버'로 검색하면, 네이버 관련 글 두 개가 두 번째 페이지에 뜬다'
구글에서 ‘네이버’로 검색하면, 네이버 관련 글 두 개가 두 번째 페이지에 뜬다’

어쨌든, 이 글 덕분에 새로 유입되는 방문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올해 8월에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하나 더 썼다. 나 말고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문제고, 네이버 측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지, 그 글을 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언론사들이 제목만 자극적으로 편집해서 경쟁하는 뉴스캐스트 방식을 없애고, 2013년 1월 1일 부터는 언론사 페이지를 직접 보여주는 ‘뉴스 스탠드’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오늘 들어가보니 뉴스 캐스트와 병행해서 뉴스 스탠드가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트래픽을 끌어오기 위한 ‘충격’, ‘뚝’, ‘알몸 시위’ 등의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 위주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뉴스캐스트에 비해서는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뉴스스탠드' 화면
네이버 ‘뉴스스탠드’ 화면

네이버와 언론사 이야기를 하면 또 말이 길어질 수 있으니 이 정도로 줄이기로 하자.

두 번째로 많이 읽힌 글은 ‘내가 영어 공부한 방법‘이다. 이 글을 포스팅하고 나서 ‘영어 공부’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알게 되어 ‘TED 영상으로 영어 액센트 연습하기‘란 글을 하나 더 포스팅했었다. 영어 교육 사업은 거의 망하는 일이 없다더니, 영어는 누구에게나 골치거리인가보다.

올해 세 번째로 조회수가 높았던 글은 ‘MBA를 준비하는 분들께 드리는 글‘이었는데, 그동안 후배들에게 MBA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아 한 번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쓴 글이었다. 요즈음에 한국에서도 좋은 MBA 과정이 많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MBA는 대개의 경우 유학을 의미하므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기 쉽다. 나 역시 ‘따뜻한 봄, 넓은 대학 캠퍼스의 푸른 잔디에 누워서 책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환상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MBA를 생각하기 전에 비용, 영어 말하기/듣기 실력, 졸업 후 진로 등에 대해 좀 더 비판적으로 고민을 해 보고 나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네 번째는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란?‘이다. 올해 초에 썼던 글이다. 좀 드라이(dry)한 주제라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순위에 오른 글은 지난 달에 썼던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이다. ‘Tell to Win’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감명을 받아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다. 이 글을 쓴 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고, 가장 많은 ‘Like’ (1000개 이상)를 받았다. 아마 내년에도 순위권에 오르지 않을까 한다.

워드프레스에서 보내 준 또 다른 자료는 방문한 나라별 순위인데, 총 127개국에서 방문을 했다. 물론 한국이 제일 많지만, 미국과 일본에서의 방문도 꽤 된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나라들도 약간씩 보인다.

총 127개국에서 방문했고, 한국, 미국, 일본 순으로 많았다.
총 127개국에서 방문했고, 한국, 미국, 일본 순으로 많았다.

블로그를 쓰면서 느꼈던 보람을 지난번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올 한 해도 지인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로부터 격려와 감사 메시지를 받았고, 새로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만약 지금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김창원 님이 제안하신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새 해에 블로깅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2013년에도 정성을 쏟은 글들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