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빅 씽(The Next Big Thing)

3일 전, 인터넷을 뜨게 달궜던 글 하나 소개. 에어비엔비(Airbnb)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가 쓴 7번의 거절(7 Rejections)이라는 짧은 글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회사 초기 시절이었던 2008년, 친구의 소개로 7개의 벤처캐피털과 연락이 닿아 이메일을 보냈는데, 5개 회사가 거절 이메일을 보냈고 나머지 두 개는 답장을 안했다고 한다. 당시 제시했던 조건은 $150k(약 1억 7천만원)에 회사 지분의 10%를 파는 것이었는데, 만약 그 때 이 지분을 샀다면 그 후 희석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가치가 수조원에 달한다 (Airbnb의 현재 회사 가치는 $24B, 약 27조원). 100배, 1000배도 아니고 무려 10,000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일생 일대의 기회를 놓친 것.

그리고 아래와 같이 그 때 받았던 이메일들을 공개하며,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했을 때 아래 이메일들을 기억하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다음과 같다.

답장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게에 좋은 투자 기회는 아닌 것 같아요. 잠재 시장이 크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크지가 않네요.
다시 연락줘서 고마워요. 목요일까지 자리를 비울 계획이라 오늘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네요. 지금까지 잘 해온 것 같네요. 그렇지만 투자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떤 기분이 드는지? ‘에구 멍충이들… Airbnb같은 좋은 투자 기회를 놓치다니. 게다가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다고? 이런 바보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고 투자자들을 무시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당신이라면 그 당시 Airbnb를 보고 투자하는 기회를 잡았을까?

최근 읽었던 중에 나에게 참 와닿았던 글이 있다. 현재 안드리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의 제네럴 파트너(General Partner)로 있는 크리스 딕슨(Chris Dixon)이 2010년 초에 썼던 ‘미래의 큰 물건은 처음에는 장난감처럼 보일 것이다(The next big thing will start looking like a toy)‘라는 글이다. 클레이 크리스텐슨(Clay Christensen)의 ‘파괴적 기술’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Disruptive technologies are dismissed as toys because when they are first launched they “undershoot” user needs. The first telephone could only carry voices a mile or two. The leading telco of the time, Western Union, passed on acquiring the phone because they didn’t see how it could possibly be useful to businesses and railroads – their primary customers. What they failed to anticipate was how rapidly telephone technology and infrastructure would improve (technology adoption is usually non-linear due to so-called complementary network effects). (파괴적 기술은 처음엔 장난감처럼 보일 겁니다. 이는 그런 기술들이 사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죠. 처음 나온 전화는 2~3km 정보밖에 신호를 송신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가장 컸던 회사 웨스턴 유니언은 전화 사업을 패스했죠. 어떻게 그게 쓸모가 있을지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그들이 한 가지 놓친 건 얼마나 빨리 전화 기술이 발전하고 인프라가 개선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장난감처럼 보인다고 다 미래의 ‘대박(the next big thing)’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장남감과 진짜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보아야(look at products as process)  한다고. 이 말의 의미는, 제품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을 둘러싼 주변 기술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고 의미가 있는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빌이 그랬다. 처음 내가 만들었던 모바일 게임은 스네이크(Snake)였는데, 그야말로 장난감이에 불과했다. 뱀이 하나 등장하고, 먹이를 먹으면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다. 만드는 데 일주일도 안걸렸던 것 같다. 압축한 게임 용량은 20KB쯤? (MB를 잘못쓴 것이 아니다)

내가 처음 만들었던 모바일 게임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내가 처음 만들었던 모바일 게임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그 다음에 세 명짜리 팀을 꾸려서 만든 게임인 커넥트 포(Connect 4)도 그냥 장난감 수준이었다. 그 다음에 공을 들여 ‘라스트 워리어(Last Warrior)’라는 야심작 롤플레잉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젤다의 전설’에 비하면 여전히 장난감. 다행히 그런 장난감을 사람들이 5000원씩 주고 샀고, 우리는 월 1,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리고 그 돈은 더 많은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변 기술이 끝없이 발전했다. 64KB에 불과했던 메모리와 24KB에 불과했던 저장 공간은 1년만에 10배로 커졌으며, 2년 후에는 칼라 폰이 나왔다(우리가 처음 게임을 만들 때 모바일 폰들은 모두 흑백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스피커에서 나오던 삐삐삐 하던 후진 소리도 조금 그럴듯한 소리로 바뀌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경쟁적으로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고, 거기에 따라 우리는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었고 사람들은 더 많은 게임을 즐겼다. 그 후는 역사이다. 게임빌은 시가총액 7000억원의 회사가 되었고, 한편 ‘서머너즈 워‘로 유명한 컴투스는 1조 4천억원의 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두 회사는 기존 일본의 강호들을 이길 정도의 파워를 가지게 됐다. 그야말로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이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LG전자 아이북 폰에 출시한 스네이크 게임에서 시작되었음을 생각하면 좀 웃음이 나온다.

처음으로 게임 다운로드가 가능했던 휴대폰, LG 아이북
처음으로 게임 다운로드가 가능했던 휴대폰, LG 아이북

물론, 오늘날의 게임빌 게임들은 용량이 수백 메가바이트에 달하며, 3D 그래픽과 각종 특수 효과가 화면을 가득 메운, 큰 스케일과 멋진 영상을 자랑한다.

게임빌이 최근 출시한 게임 중 하나, 'MLB 퍼펙트 이닝 15'
게임빌이 최근 출시한 게임 중 하나인 ‘MLB 퍼펙트 이닝 15’

좋은 제품을 못 알아봤던 투자자들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2008년 당시의 에어비엔비(Airbnb)도 사람들에겐 당연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절대 큰 물건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장난감. 위험 요소가 너무 많고 커진다 해도 여전히 별 게 아닐 것처럼 보이는 물건. 장난감처럼 보이는 물건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대개 창업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이다. 오랫동안 창업자들을 지켜보았고, 창업자들이 만든 물건이 지금은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뭔가 분명히 큰 일을 낼 것이라 믿는 사람들. 내가 했던 엔젤 투자들도 모두 그랬다. 물건은 장난 같았지만 창업자들의 눈빛 속에서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을 보았기 때문.

호모 크레아티부스 (Homo Creativus)

지난주, 멘로 파크 장로 교회 (Menlo Park Presbyterian Church) 예배에 애플 오프라인 스토어를 만든 전 애플 임원 론 존슨(Ron Johnson)이 등장했다. ‘God at Work’라는 주제로, 하나님이 일과 어떻게 관련이 되는가를 주제로 낸시 오트버그(Nancy Ortberg)가 네 명의 게스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게스트로 나온 것이다. 그가 한 말 중 공감 가는 인상깊은 내용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전체 비디오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가 어떤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청중 중 한 명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세 단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질문을 듣고 문득 생각난 세 개의 단어는 “In The Beginning (태초에)” 이었다고. 이는 성경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세 단어이기도 하다. 창세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God created the heavens and earth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잇는다.

The idea that we are all created in God’s image, therefore he’s this creator, we must have all born to be a creator.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므로, 우리도 창조자로 태어났음이 분명합니다)

이 말이 참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인간은 ‘창조’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됐다. 이전에 ‘창의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하여‘라는 글에서도 간략히 언급했듯, 창조하는 행위는 소비하는 행위에 비해 훨씬 오래 지속되는 보람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론은 또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I remember the first time when we opened the apple store. We created something we knew was right. It brought such joy to me personally, and the joy brought to others, which was wonderful. Connection to the creativity, with which I really feel the connection to the creator (우리가 처음 애플 스토어를 열었던 때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었어요. 저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준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주었는데, 그 기분이 끝내줬지요. 창조를 하며 저는 창조자와 연결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어 뉴욕시 5번가에 멋진 유리 피라미드가 세워진 것을 본 기분이 어땠을까? 그 후 애플 스토어는 단위 면적(스퀘어풋)당 매출이 4,800로 미국 전체 리테일러 중 1위를 차지했으며(2위는 Tiffany로, 단위 면적당 매출이 3132달러이다), 스티브 잡스가 두고 두고 자랑스러워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론 존슨은 스티브 잡스에게 반대 의견까지 내놓으며 애플 스토어를 만들고 성공시킨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LTNfIaL5YI

(스티브 잡스가 뉴욕 애플 스토어를 소개하는 장면. 2001년)

호모 크리아티부스(Homo Creativus) = 창조적 인간. 전에 ‘존 가드너의 한 단어 격언‘을 인용하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Learn(배우다)’라고 했었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단어를 꼽으라면 ‘Create(창조하다)’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사장, 이사, 부장, 대리 등의 직급, 그리고 회계사, 감독, 공무원, 군인, 교수 등 수많은 직업이 존재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타이틀은 메이커(Maker of…)가 아닐까. 다른 모든 것들은 그 역할을 마치는 순간 사라지는 타이틀이지만, 메이커는 그가 만든 제품과 함께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리니지의 메이커는 송재경, 애플 컴퓨터의 메이커는 스티브 워즈니악, 페이팔의 메이커는 맥스 레브친, 테슬라의 메이커는 엘론 머스크, 다이슨의 메이커는 제임스 다이슨, ‘프로듀사’의 메이커는 박지은/서수민.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메이커는 어머니.

아이디어의 가치

내가 투자하는 일도 한다고 하면 종종 사람들이 묻는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투자를 받을 수 있나요?” 거기에 대한 대답은 ‘없다’이다. (그 전에 회사를 만들어 매각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예외이지만, 그런 사람은 굳이 나에게 와서 투자를 묻지도 않는다. 이미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을 것이므로.) 설사 아이디어만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다 해도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투자를 받는 건 투자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한 자신만 손해보는 일이다. 아이디어로 막상 팀을 모아 프로토타입을 만들게 되기까지 온갖 문제에 부딪칠텐데 잘 안되면 어떻게 하는가? 반대로 회사가 잘 되면 그것도 문제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시작한 회사의 일부를 너무 싸게 판 것이기 때문이다.

Y컴비네이터를 만든 폴 그래험(Paul Graham)은 How to Start a Startup(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방법)이라는 글에서 아이디어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An idea for a startup, however, is only a beginning. A lot of would-be startup founders think the key to the whole process is the initial idea, and from that point all you have to do is execute. Venture capitalists know better. If you go to VC firms with a brilliant idea that you’ll tell them about if they sign a nondisclosure agreement, most will tell you to get lost. That shows how much a mere idea is worth. The market price is less than the inconvenience of signing an NDA. (스타트업에게 있어 아이디어는 시작일 뿐이다.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가장 중요한 건 아이디어라고 이야기하고, 그 다음부터는 실행만 하면 된다고 한다. 투자자들은 이보다 더 잘 안다. 당신이 VC에게 찾아가, 아이디어를 들으려면 기밀 유지 협약(NDA)에 사인부터 해야 한다고 하면 그들은 당신에게 그냥 가버리라고 할 것이다. 아이디어의 가치가 그정도 뿐이다. 아이디어의 시장 가치는 NDA에 사인하는 불편함보다도 낮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감이 많이 되는 것이, 스타트업이 만든 제품이 고객의 마음을 얻고, 그 회사가 직원들을 더 뽑아 성장하고, 기존 강자를 이기고 결국 고지에 오르기까지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닌 수백가지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므로, 맨 처음 한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는 스타트업이 성공할 지 못할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아이디어를 가지고 투자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투자를 받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단계에서는 투자를 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듯,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가 블루 오션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10년 전, 페이스북과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을까? (참고로, 페이스북 설립일은 2004년 2월 4일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허접하게나마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그것을 하버드 학생들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하버드 학생 거의 대부분이 페이스북에 계정을 만들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Derek Sivers가 쓴, Ideas are just a multiplier of execution (아이디어는 실행의 배수일 뿐이다)라는 글에 등장한 아래 숫자들이 재미있어 소개한다. 이 숫자들이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Good Idea와 Good Execution이 결합하면 회사 가치는 10 * $100,000 = $1 million이라는 뜻이다.

'아이디어 X 실행'이 회사의 가치
‘아이디어 X 실행’이 회사의 가치.

그래도 아이디어가 중요하기는 하다. 이것이 시작 지점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 멤버들을 데려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크리스 딕슨 (Chris Dixon)The Idea Maze(아이디어 미로)라는 글에서 설명했듯, 아이디어는 ‘세상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면’ 좋다.

Good startup ideas are well developed, multi-year plans that contemplate many possible paths according to how the world changes.

하지만 대부분의 초기 아이디어는 큰 의미가 없다. 이것이 프로토타입이 되면 조금 쓸모가 있어진다. 프로토타입을 유저들과 고객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 회사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투자를 유치하는 이득보다 회사의 지분을 파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게 되는 시점, 바로 그 때가 투자를 받는 적기가 아닐까.

블루 오션은 없다

한때 ‘블루 오션(Blue Ocean)’이라는 단어가 전국을 휩쓴 적이 있다. 2004년에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가 블루 오션 전략 (Blue Ocean Strategy)이라는, 세계에서 35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의 한국어판을 내놓으면서 유행했던 용어이다. 요즘 투자를 하며, 강연을 하며,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며 그 말의 의미를 많이 생각해보고 있다. 사실상 일반적인 의미의 블루 오션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란, ‘누군가가 이미 깃발을 꽂아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빈 땅으로 보이는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를 말한다. 너무나 경쟁자가 많아서 핏빛으로 보이까지 하는 레드 오션(Red Ocean)과 정반대되는 느낌의 멋진 장소.

그 때 책에서 설명했던 블루 오션 전략의 정의를 다시 찾아봤다. 이렇게 쓰여 있다.

가치혁신을 통해 경쟁이 치열한 기존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블루오션)을 창출하는 전략

반면 레드 오션 전략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기존의 한정된 수요시장(레드오션)을 대상으로 차별화나 비용절감 등의 경쟁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통적 경쟁전략

두 교수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블루 오션이라는 건 어떤 존재하는 장소나 시장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단어는 ‘새로운 시장’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가치 혁신을 통해’라는 단어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과학자들이 말하는 최초의 인간은 무려 280만년 전에 존재했다 (성경을 근거로 한 조사에 따르면 아담은 12만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그 오랜 시간동안 태어나고 죽은 수백억, 어쩌면 수천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왔는데 세상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시장이 있다고 믿는 것도 어쩌면 무모한 일이다.

몇달 전, 좋은 제품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엔젤리스트(Angelist)를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다. 이 사이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는 커녕, 이 세상에 누군가가 이미 하고 있지 않은 아이디어는 없다는 것을 느끼고 좌절하게 된다. 엔젤리스트에서 지역을 ‘실리콘밸리’로 좁혀 스타트업을 검색하면 무려 18,365개의 회사가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스타트업으로만 좁혀도 10,110개이다. 그 리스트 안에 핀터레스트(Pinterest), 우버(Uber), 에어비엔비(Airbnb) 같은 회사의 프로필이 포함되어 있다. 엔젤리스트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사이트이고, 여기에 프로필을 가진 스타트업은 적어도 어느 정도 걸러진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 중 절반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곳이라고 가정해도 실리콘밸리 지역에 1만 개의 가까운 스타트업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 스타트업의 상당수는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포드, MIT, 버클리 등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명문 회사’에서 좋은 경험을 한 경력이 있는 창업자들이 만들었고, 그 중 많은 수가 안드리센 호로위츠, SV Angels같은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엔젤리스트에서 정리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리스트
엔젤리스트에서 정리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리스트

이 1만 8천개의 스타트업들은 정말 ‘끼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구석 구석에 모두 포진해 있다. 최근 도어대시(DoorDash), EAT24 와 같은 음식 배달 서비스들이 인기를 끌면서 푸드 테크(Food Tech)라는 단어가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소위 푸드 테크에 어떤 스타트업들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검색을 했다가 아래와 같은 도표를 발견했다. 음식 배달 뿐 아니라 음식점 리뷰, 레시피 정리, 쿠폰 딜, 온라인 그로서리 등 음식과 관련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있다. 정말이지 빈틈이 있을까 싶다.

푸드 & 미디어 산업에 속한 스타트업들
푸드 & 미디어 산업에 속한 스타트업들 (http://www.foodtechconnect.com)

가끔 ‘세상을 바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며 투자를 요청하는 창업자의 이메일을 받는다.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으므로 빨리 만들어야 하며, 아이디어가 실현에 옮겨졌을 경우 잠재 시장은 1조원이 넘는다는 식이다.

만약 나에게 어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엔젤리스트같은 사이트에 찾아보니 없다면? ‘세계 최초’를 만든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겠다거나, 이미 누군가가 수없이 시도했는데 모두가 실패했던 분야에 발을 담그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할 일이다.

이보다 더 맞는 사고 방식은 피터 틸(Peter Thiel)이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정리했듯, 자신이 끼어들 수 있는 아주 작은 영역을 만들고, 그 안에 진을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들어가면 자신만의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야 한다. 브랜드 아니면 기술을 이용해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피가 튀는 전쟁터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수많은 전사자들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전사자 위에 거대한 거인들이 버티고 있고, 그 거인들의 그늘 밑에서 난장이들이 자신만의 땅을 차지하려고 뛰어다니는 모습. 그런 전쟁터에 들어가자면 먼저 칼과 창이 하나 있어야 하고, 방패를 들고 갑옷을 입고 들어가야 하고, 일단 들어가면 버텨야 한다. 이왕이면 자신과 좀 다른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 팀을 만들어서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한 명은 전사, 한 명은 마법사, 한 명은 궁사 이렇게. 물론, 팀이 클수록 몬스터를 죽이고 나서 자기가 차지할 수 있는 아이템 수가 줄어들므로 가장 적은 수로 가장 큰 몬스터를 죽일수 있다면 좋을 것이고.

온라인 게임 길드워 2(Guild Wars 2)의 한 장면.
온라인 게임 길드워 2(Guild Wars 2)의 한 장면.

블루 오션은 없다. 블루 오션을 만들어내는 전략이 있을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제품 슬랙 (Slack)

얼마전, 슬랙의 3조원짜리 비밀 소스 Slack’s $2.8 Billion Dollar Secret Sauce라는 글을 재미있게 읽고, 요즘 슬랙 없이 하루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트윗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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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ck

슬랙의 UI가 어떤 점에서 다른 제품과 차별화되어 있는지는 슬랙 디자인을 주도했던 Metalab의 대표인 앤드류 윌킨슨(Andrew Wilkinson)이 쓴 위 글에 잘 설명이 되어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슬랙을 좋아하는 이유를 언급했지만, 이전에 블로그를 통해 설명했던 왓츠앱(Whatsapp), 심플(Simple) 등과 함께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제품의 범주에 들어가는 제품이기에 블로그에 간략히 기록을 해두고 싶다.

슬랙은 기업용 메신저이다. 그런데 그냥 기업용 메신저가 아니라, 왓츠앱, 텔레그램, 라인, 카카오톡보다도 더 잘 만든 메신저이다. 데스트탑과 모바일 환경을 모두 부드럽게 지원하며 둘 사이에서 스위치할 때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푸시 알림 처리가 부드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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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chat

슬랙을 사용하기 전에 Hipchat을 먼저 써봤다. JIRA, Confluence로 유명한 Atlassian에서 만든 제품이기에 기대를 많이 했다. 써보고 나서는 실망했다. 설정이 복잡했고 (그만큼 기능이 세분화되어있기는 함) 속도도 느렸으며, 무엇보다 UI가 후졌다. 모바일 앱도 별로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나를 성가시게 한 건 메시지를 타이핑하고 엔터를 친 후에 내가 쓴 메시지가 대화창에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버로 전송되었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 후에야 나타나기 때문에 0.3초 정도의 딜레이가 있다. 서버에서 동기화(synchronization) 처리를 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동시에 메시지를 보냈을 때 순서를 정확히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느낌이 아주 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익숙해질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실험적으로 한 번 써본 것이었으므로 요즘 가장 핫하다는 Slack을 써보기로 했다. 결과는 대만족. 그냥 만족이 아니라 대만족이었고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Hipchat에서 나를 성가시게 했던 문제를 Slack은 아주 아름답게 해결했다. 메시지를 타이핑하고 엔터를 누르면 일단 내 대화창에 회색으로 조금 희미하게 나타난다. 서버와의 동기화가 끝나고 나면 비로소 내가 쓴 메시지가 검은 색으로 변한다. 이 UI가 난 너무 좋았다.

Screen Shot 2015-05-21 at 12.23.41 PM Screen Shot 2015-05-21 at 12.23.08 PM

아무리 오래 전에 했던 대화라도 바로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파일 공유도 쉽게 할 수 있으며, 원하면 이 안에서 간단하게 문서를 만들어 보낼 수 있고, URL을 공유할 경우에는 페이스북에서처럼 웹사이트의 간략한 설명과 스크린샷이 뜬다. Slack을 쓰는 것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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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Notification) 기능도 부드럽게 처리했다. 보통 메신저의 경우, 데스크탑에서 쓰다가 모바일로 옮기면 이미 읽었던 글들인데 모바일폰 알림 창에 떠있기도 하고, 메시지가 왔을 때 양쪽이 동시에 울려 성가시기도 하다. 어떤 때는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그리고 푸시 알림이 같이 와서 짜증이 날 지경을 만들기도 한다. Slack에서는, 모바일 푸시 알림이 활성화되는 순간 이메일 알림은 자동으로 꺼지고, 아래 설정 화면에서 보듯 데스크탑 앱을 사용하지 않은 후 몇 분이 지나서야 모바일 알림이 시작되도록 할 수 있다.

Notification Delay
Notification Delay

또 하나 감동적인 것은 수많은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Integration). 100여개의 앱들과 연동을 시킬 수 있는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온라인 화상 회의 앱인 appear.in이 있어서 좋았다. 대화 중에 그냥 /appear라고만 치면 아래와 같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화상 회의 방이 생성된다. Hipchat은 자체 제작한 화상 회의 기능을 유료 패키지에 포함시켰는데, 그보다 내가 좋아하는 무료 앱인 appear.in을 쓰는 것이 훨씬 낫다.

Screen Shot 2015-05-21 at 12.30.50 PM
Inte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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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wart Butterfield

이미 Slack을 쓰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 툴의 다른 장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 안해도 될 것 같고, Slack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붙인다. Slack은 Tiny Speck이라는 게임 회사에서 만들었다. 게임을 만드는 팀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돕기 위해 만든 내부 툴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 Tiny Speck을 설립한 사람이 플리커(Flickr)를 만들어 야후에 2005년에 매각했던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라는 사실이다. Slack이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일대의 회사들에게 먼저 큰 인기를 끈 후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크게 성공하자 이 회사는 아예 게임 만들기를 중단하고 Slack을 만드는 회사로 방향을 바꾸었다.

미국은 워낙 이메일 문화가 발달해 있고, 기업용 메신저는 15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마이크로소프트 메신저를 비롯해 이미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세상에 많이 나와 있었고, 최근에는 페이스북까지 가세했지만, Slack은 경험 많은 스튜어트(1973년생)의 제품 철학과 앤드류의 디자인 철학이 합쳐서 만들어낸 걸작품이었다. 이런 걸작품을 사람들이 몰라볼 리가 없다. 이게 나오기 전에는 ‘무슨 또 새로운 메신저가 필요해?’했던 사람들은, 한 번 써보고 나서 ‘왜 진작 이런 제품이 없었을까?’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시장에서 현대적인 감각과 기술을 이용해서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는 회사들도 참 멋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