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동안 한국에서 온 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학교 생활 중에 시간을 내어, 또는 회사 휴가를 내고 실리콘밸리에 온 만큼 창업에 관심이 많았고, 익숙하던 환경에서 떠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어하는 후배들이었다.
주변의 친구나 후배들이 고시에 너무 몰입해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고시가 참 유행이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5층 열람실, 6층 열람실을 줄여 “중도 5열”, “중도 6열”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들어가면 후끈한 기운과 함께 ‘고시 냄새’가 나곤 했다. 서울대 도서관 중 외부인에게 공개된 곳이기 때문에 더한 것도 있겠지만, 그 중 90%쯤은 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도 한 때 고시 공부를 하느라 거기에 앉아 있었다. 아침 8시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꺼운 헌법, 민법 책을 펼쳐들고 공부하다가 점심에는 학생 회관에 걸어가서 1200원짜리 밥을 사 먹고, 고시 공부하는 다른 형들과 함께 ‘팩차기’를 30분동안 한 후 다시 도서관에 들어오고, 저녁에는 1800원짜리 밥을 사먹고 다시 도서관에 들어와서 공부를 더 하다가 11시에 집에 가곤 했다. 6개월이 채 안가 결국 시험도 보지 않고 그만두긴 했지만, 그래도 잠깐의 공부 덕분에 ‘채권자취소권’, ‘가액 반환’, ‘사해 행위’, ‘근저당권설정계약’, ‘분묘기지권’, ‘대물변제’ 등 희안한 법률 용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는 했다. (쉬운 말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법을 쓰면 좋은데 굳이 왜 일상생활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옛날 말로, 그것도 문장을 끊지 않고 길게 이어 이해하기 어렵게 법률을 작성해 놓았는지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반면, 미국 헌법을 보면 표현이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써놓았다.)
행정고시 사랑 카페에 가보면 무려 14만명이 가입해 있다. 한편, 신림동 고시촌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현재는 로스쿨 등의 도입으로 예전과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고시 열풍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일부는 성공적으로 ‘졸업’해서 고시촌을 빠져나가지만, 다른 일부는 그 곳에서 수년, 심지어는 1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그 중에는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있었다.
2008년, 2009년 당시의 고시촌의 모습을 묘사한 몇 개의 글을 찾았다. 50회 사법 시험을 합격하고 현재는 법무법인 화평에서 일하고 있는 한 변호사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글들이다.
다음은 ‘고시촌 장수생의 비애’에서 인용한 것이다. 나도 고시 공부를 오랫동안 했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기에, 이 표현히 참 공감이 된다.
어느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말야.내가 거의 3일정도를 아무말도 안하고 지난거 같더라.정말 다시한번 생각보니까 맞는거야.하기야 뭐 하루종일 고시원에 처박혀 있으니까 정말 말없이 지내게 되는거야 밥먹으로 식당에 갈때도 혼자 식권내고 그냥 먹으면 되고.또 고시원에 와서 책보고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거야……꼭 무인도에 같혀 버린 로빈슨 크루스가 되어버린거 같은거야……이러다 정말 몇개월만 지나면 우리나라 말을 잊어버릴꺼 같더라고….가끔가다 정말 단어가 머리속에서는 맴도는데 생각이 안나는거야…참 환장하겠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벽보면서 혼자 대화해 우리말 안까먹으려고……..어떤놈이 보면 고시공부오래 해서 미쳤다고 하겠지….하하……….
이러한 고시촌의 모습, 미국에서는 참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소위 ‘고시 학원’ 같은 것도 없다. 미국에서는 판사가 되려면 로스쿨에 가면 되고, 회계사가 되려면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면 된다. 국가 공무원이 되려면 하버드, 프린스턴 등 명문대를 졸업하거나 로스쿨을 졸업한 후 들어가면 된다. 물론 BAR Exam 등 최종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이 있기는 하지만 고시와 같이 몇 년이 걸리는 형태는 아니다. 유럽 등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고시 제도는 한국과 일본에 특수하게 자리잡은 형태인 것 같다. 조선시대에 문과 선비를 뽑는 ‘급제’ 제도에서 유래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왜 대학생들 사이에서 고시가 인기일까? 후배들과 이야기하며 생각을 해 봤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의 성공 여부는 오직 ‘내신 성적’과 ‘수능 점수’, 즉 ‘공부’라는 잣대를 통해서만 결정되고, 많은 고등학생들은 공부를 통해 경쟁하는 것이 가장 익숙한 채로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대학교는 또 다른 경쟁의 터전이다. 그러면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공부’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가장 익숙하고 자신있는 길이니까. 그리고 공부라는 경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니까.
둘째, 위에서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원하는 대학에 성공적으로 들어간 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한 나머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가 없다. 너무 당연한 것이, 그런 고민을 하는 순간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나’하는 회의감을 갖게 되고, 그런 회의감이 생기면 수능 시험을 잘 볼 수가 없다. 난, 고등학교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일부러 생각을 안했다. 공부에 방해만 되니까. 일단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고민해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셋째,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또 복병이 있다. 남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군대‘이다. 사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책상에 앉아 생각한다고 찾아지지는 않는다. 뭔가 ‘해봐야’ 자신의 성격에 맞는지,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시도해 볼’시간도 없이 유럽 배낭 여행 갔다 오고 나서 군대에 갔다 오고 나면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그리고 나서 많은 남자들이 택하게 되는 길은 ‘고시’이다. 언론 고시, 행정 고시, 사법 고시, 의사 고시,..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선택이고 길일 수 있다. 사법 고시에 합격해서 판사로 일하는 너무나 훌륭한 고등학교 친구와 후배들이 있고, 고급 공무원, 회계사로 멋지게 일하고 있는 선배, 후배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고시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인위적 제한으로 인한 인위적 매력”
온갖 고시와 자격증은 결국 이미 그러한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제한의 결과이다. 소위 ‘수요’와 ‘공급’의 경제 원리에 의해 수가 정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제한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관문을 최대한 어렵게 만들고 싶어한다.
흰색 티셔츠를 200개 인쇄하고, 파란색 티셔츠를 하나 인쇄한 후 ‘한정 판매’라고 붙인 후에 이 티셔츠를 경매에 붙이니, 파란색 티셔츠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뭔가 ‘한정’해두면 가치가 높아 보이는 법이다. 고시는 그런 한정 판매가 아닐까?
다행하게도, 고시 제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17년까지 사법고시가 사라질 예정이고, 2014년까지 외무고시가 사라진다고 한다. 또한 ‘민간경력자’들이 5급 공무원으로 채용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인위적인 제한도 점차 풀리고 있다.
판사로 일하고 있는 한 친구가 그랬다.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항상 자기 앞에서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라고. 민사 문제든 형사 문제든 항상 복잡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마련이다. 범죄를 저질러서 잡혀 온 사람 중 자신의 죄를 바로 자백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작아보이게 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성격이 악하거나,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의 결과이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나서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그제서야 시인하는 경우가 있다. 진실을 말할 용기가 부족해서, 즉, 진실을 말한 이후 자신에게 다가올 피해가 두려워서 거짓말을 했겠지만, 그들을 비난하는 우리도 같은 상황에 닥치면 거짓말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죄가 없는 사람이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자 그 여인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뿔뿔이 흩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듯, 변호사와 검사가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법복을 입고 가운데에 앉아 “피고인은 죄질이 안좋으므로 징역 10년에 처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판사가 하는 전체 일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책상 위에 한 가득 쌓인 서류를 검토하는 데에 쓰인다.
변호사는 실제로 무슨 일을 할까? 마찬가지로 위에서 소개한 블로그에 아주 사실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
바로 위 블로그에서 인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뢰인을 위해 최후변론을 했다. 그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십명의 피해자들은 더욱 웅성거렸고 심지어는 ‘거짓말’이라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고 최후변론을 마쳤다. 재판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고함을 쳤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나는 법정경위와 피고인과 함께 온 교도관들의 경호??를 받으며 간신히 법정을 빠져 나왔다.
다시 나는 오후 5시에 잡힌 수원재판을 하러 차에 몸을 실었다. 이미 난 지칠때로 지쳐있었다. 운전을 하며 나는 정말 거짓말을 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말이 사실일까? 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머리속이 복잡….아니 미로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멍청이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수원지방법원에 도착했다. 이 사건 다소 논리적을 빈약한 주장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변호사로서 과연 이런 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그런 낯뜨거운 사건이랄까.
공인회계사의 경우, 하는 일의 범위가 매우 넓으므로 단순화시켜 말할 수는 없지만, 회계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기업 회계 장부의 사실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만들어진 것을 정리하는 일에 가깝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회계사는 적성에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 얼마 전, Earnst & Young의 CPA로 일하다가 현재는 Nika Water라는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Jeff Church의 스탠포드 강연을 들었는데, 그는 CPA를 다음과 같이 우스개 소리로 표현했다.
I spent 4 years in public accounting, Earnst & Young. I really learned what CPA means. It means Cut, Paste, and Attach. (저는 4년동안 Earns & Young의 공인 회계사로 일했어요. CPA가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죠. 결국 자르고(Cut), 붙이고(Paste), 첨부하는(Attach) 일이에요.)
한편, 고위 공무원의 생활은 어떨까?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경부에서 일하다가 스탠포드 MBA에 진학하고 얼마 전에 에버노트에서 여름 인턴십을 마친 백산씨를 통해 이야기를 많이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5급 이상 공무원의 일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공무원이 되면 좋은 점은 뭔지, 어떤 일이 하며 하루를 보내고 무엇이 힘이 드는지 궁금하신 분은 백산씨의 블로그, 특히 ‘한국 정부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평범한 하루 비교‘ 라는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앞서도 말했지만 공무원, 회계사, 판사, 변호사, 외교관으로서 훌륭한 일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고, 그 직업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고, 어떤 직업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혹시 고시라는 제도가 야기한 인위적 제한 때문에 직업의 단점에 비해 장점이 너무 커보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당시 나에겐, 표면 가치가 분명 실질 가치보다 커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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