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하는 넷플릭스(Netflix)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세 번째로 많이 읽힌 글이 ‘넷플릭스 성공의 비결은 우수한 기업 문화‘였다. 포스팅한 지 무려 2년이 넘게 지난 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에도 누군가가 트윗을 하거나 인용을 할 때마다 조회수가 크게 증가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표방한 기업 문화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inspiration)을 주는 것 같다. 지난 7월 15일, 로티플의 공동창업자였고, 지금은 카카오에서 일하고 있는 김동주(@mynameisdjkim)씨가 넷플릭스 본사에서 근무하는 전강훈씨를 만나 했던 인터뷰를 정리한 글을 읽었다. 넷플릭스를 ‘프로야구 팀’에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 재미있었다. 한편 넷플릭스의 ‘성과 위주’ 문화가 가진 단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내가 넷플릭스에서 일하는 다른 분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와 맥락이 비슷했고, 그들이 2년 전에 표방했던 그 기업 문화는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가 분명히 성공한 회사인 것은 맞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인해 한 시대를 호령했던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점인 블록버스터는 패망의 길을 걸었고, 미국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무려 32.7%를 넷플릭스가 차지하고 있으며, Roku Box, Google TV, 삼성 Smart TV 등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기 치고 넷플릭스 앱이 깔리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바라보는 관점은 냉정한 것 같다. 2011년 7월에 무려 300달러에 달하며 넷플릭스의 시가 총액을 무려 17조원까지 끌어올렸던 주가는 그 이후 곤두박질쳐 지금은 100달러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최근 80~90달러 근처를 멤돌던 주가는, 오늘 실적 발표 이후 무려 16.66%가 더 하락해서 장외 거래에서는 67달러까지 떨어져버렸다. 주가가 2010년 2월 수준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나도 한 때 넷플릭스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작년에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모두 처분했다 (다행히 이익을 남기고 팔았다).

넷플릭스 주가 추이 (출처: Google Finance)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첫째, 주가 자체가 너무 높았다. 주가가 거의 최고점을 찍었던 2011년 당시 P/E Ratio(Price to Earnings Ratio)가 무려 80 이상이었다. 구글의 P/E Ratio가 20 근처임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높은 수치였다. 2010년 여름부터 2011년 여름까지 무려 세 배가 오르며 애플을 비롯한 모든 고성장 기업의 주가를 초과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넷플릭스는, 어떻게 보면 ‘닷컴 버블’에 비교할 수 있는 투기성 투자로 인해 주가가 실제 회사 가치에 비해 빠르게 올라갔다. 사실 그 당시 기대치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DVD 대여 시장을 평정했고, 스트리밍 비디오 시장까지 빠르게 잠식해서 미국인들에게 ‘비디오 대여’의 대명사가 되었던 넷플릭스는 그야말로 시장의 승자였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대장’이었다. 주가 분석에 관한 한 가장 많고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Seeking Alpha에서 2011년 2월 당시 240달러 정도였던 넷플릭스 주가는 너무 올랐으니 Short 포지션을 취할 때라고 주장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가는 계속 상승했고, 2011년 7월 8일에는 300달러를 찍었다. 그 후, 주가가 약간 꺾여 7월 26일에 260달러 정도 되었을 때 쯤 또 읽은 글이 있다. Valuentum이라는 회사에서 제공한 자료였는데, DCF (Discounted Cash Flow) 모델을 이용해서 넷플릭스의 적정 주가를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넷플릭스 주가는 말도 안되게 고평가되었으며, 190달러도 아주 낙관적인 주가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몇 달간, 넷플릭스 주가는 순식간에 떨어졌고, 2011년 10월 말 경에는 100달러 미만까지 내려앉았다.

둘째, 영화와 드라마 판권을 가진 회사들이 가격을 일제히 올리면서 넷플릭스가 심한 재정적 부담을 안았다. 넷플릭스가 ‘너무’ 잘 나가던 2011년 상반기, 소니, 컬럼비아, 워더 브라더스, MTV, Starz, 디즈니 등 ‘컨텐트’를 소유한 회사들은 배가 아팠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동안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치게 싼 가격에’ 계약을 했었는데, 넷플릭스가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자, 자기들은 영화를 너무 싸게 내주었다며 후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힘은 컨텐트를 소유한 쪽에 있다. 2년의 계약이 만기되어 2011년 7월에 재계약을 할 때가 되자 그들은 가격을 10배 가까이 크게 올렸다. 그 이전에 Starz는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었다. 넷플릭스가 물론 아주 많은 고객을 보유한 힘이 센 회사이기는 했지만, 컨텐트를 가진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마존, 애플 등 스트리밍 비디오를 제공하는 많은 회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들이 컨텐트를 주지 않겠다고 하면 넷플릭스의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다. 2010년 경, 넷플릭스가 먼저 치고 올라간 스트리밍 비디오 시장이 너무 뜨거워지고, 미국인들이 갑자기 컨텐트를 소비하는 행태를 바꾸는 것을 본 경쟁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큰 자본을 가진 아마존과 애플이 공격적으로 시장에 나섰고, 구글도 진출했다. 사람들의 시간 소비 행태를 바꾼, 혜성처럼 등장한 또 하나의 서비스는 Hulu였다. 넷플릭스가 영화광들을 위한 것이라면 Hulu는 드라마광들을 위한 것이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비디오를 보는 것의 편리함을 깨닫고 인터넷 망을 더 빠른 것으로 업그레이드해둔 미국인들에게, Hulu는 아주 빠른 속도로 침투해 들어갔다. 넷플릭스와 훌루, 제공하는 컨텐트는 달랐지만 둘은 ‘결국 TV 시청 시간’을 놓고 경쟁한 것이다.

훌루(Hulu) 유료 가입자 증가 추이 (출처: Worldtvpc.com)

이런 상황에서 2011년 2월에 등장한 아마존 프라임 인스턴트 비디오는 넷플릭스에게 큰 타격이었다. 갑자기 아마존이 소니 등의 회사와 계약을 맺은 후, 무려 5000개에 달하는 영화 타이틀을 프라임 멤버들 모두에게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나도 궁금해서 그 때 바로 들어가서 봤는데 넷플릭스만큼은 되지 않았지만 볼만한 영화가 꽤 있는데다, 어차피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이나 타이틀 대부분이 옛날 영화인 건 마찬가지라서 이대로 가면 넷플릭스 가입을 해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그 이후 몇달간 넷플릭스를 해지했었다). 매달 $15씩 내는 넷플릭스는 해지할 수 있지만, 일년에 $79달러인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은 ‘이틀 무료 배송’의 이점 때문에 절대 해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아마존은 Fox, MGM, 파라마운트 등과 잇달아 계약을 하면서 가공할만한 넷플릭스의 경쟁자가 되었다. 충성도 높은 방대한 고객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던 아마존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Amazon은 옛날 영화 뿐 아니라 최신 영화도 함께 제공함으로써 (물론 이러한 영화들은 공짜가 아니다. 편당 $3.99 또는 $4.99를 내야 24시간동안 대여해서 볼 수 있다.) 넷플릭스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은 서비스로 올라섰다. 최근엔 Verizon이 Walmart가 인수한 Vudu 등도 넷플릭스와 경쟁하고 있다.

연 $79.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의 혜택.

나는 케이블 TV 가입을 하지 않은 대신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 모두 유료 회원 가입을 해서 쓰고 있다. 그 중 하나를 끊는다면? 글쎄, 일단 앞서 이야기했듯 아마존은 프라임 멤버십때문에 끊을 수가 없다. 훌루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끊을 수 없다. 결국 하나를 끊는다면 넷플릭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넷째, 갑작스럽게 상승한 컨텐트 라이센스 비용에 당황했던 것일까? 넷플릭스가 2011년에 몇 번의 무리수를 두었다. 그 중 사람들의 가장 큰 원성을 샀던 결정은 2011년 7월 12일에 DVD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분리하면서 가격을 한번에 무려 60% 가까이 올린 것이다. 당시 무제한 DVD + 스트리밍이 월 $9.9였는데, 새로운 가격 정책에 따르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무려 월 $15.98을 내야 했다. 월 $10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긴 것은 좀 무리가 아니었던가 싶다. 한 끼 점심식사 가격 정도인 $9.9는 별 것 아닌 돈으로 느껴지지만, $15.98이라고 하면 갑자기 저녁 식사 가격이 되면서 꽤 큰 돈으로 느껴진다. 그 때 사무실에서 점심 먹으며 동료들과 넷플릭스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다들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에 화가 나서 넷플릭스 없어도 산다며, 어차피 괜찮은 영화는 많이 본 상태라 질리기 시작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며 넷플릭스 멤버십을 해지하겠다고 했었다.

넷플릭스의 가격 변화. (출처: www.ipadjailbreak.com / 2011. 7. 12)

두 번째 무리수는 2011년 9월 19일에 있었던, DVD와 스트리밍을 각각 다른 웹사이트로 완전히 분리하겠다고 했던 결정이었다. DVD 렌탈만 하는 웹사이트에는 Qwikster라는 아주 어색한 이름이 붙었다. 한 곳에서 쇼핑하며 최신 영화는 DVD로, 옛날 영화는 스트리밍으로 보던 것을 즐기던 사용자들에게는 너무나 혼란을 주는 결정이었다. 사실 난 당시의 결정을 지지했었다. 넷플릭스는 굴뚝 산업인 블록버스터를 대체했지만, 그 자신이 또 커다란 혁신을 하지 않으면, 스트리밍 비디오의 시대에서 자신이 굴뚝 산업으로 되어 버릴 위험이 다분했다. 이른바 이노베이터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이다. 스스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하지 않으면 경쟁자가 결국 파괴하는 것이 숙명이다. 넷플릭스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혁신의 딜레마를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잠시 등장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브랜드, Qwikster.

그런 과감한 결정은 칭송할 만했으나,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린 것은, 넷플릭스, 그리고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자만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에 넷플릭스에서 이따금씩 충격적(?) 이메일이 날아왔던 기억이 있다. 바로 다음 달부터 가격을 60% 올리겠다고 하는가 하면, 갑자기 DVD를 분리해서 Qwikster라고 이름붙이겠다고 하더니,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Qwikster의 분리는 완전 백지화하겠다는 이메일을 또 보냈었다. 넷플릭스에 대해 대단한 충성도를 가지고 있었던 고객들이었지만, 그들은 놀라울만큼 쉽게 등을 돌렸고 (나 역시도), 그 후 2011년 10월 25일엔 무려 80만명의 미국 가입자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 가입자 수는 2,460만에서 2380만으로 다시 80만명이 감소했고, Churn rate (고객 감소율)은 3개월 전 4.2%에서 6.3%로 크게 상승했다. 해외 시장 진출에 따른 비용 때문에 다음 분기 예상 실적도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 결과로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나는 아직 넷플릭스와 그들의 문화, 그리고 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가진 비전을 믿는다. 지난 1년을 돌이켜봤을 때, 좀 더 신중했더라면 몇 가지 잘못된 결정을 막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게 했더라도 결국은 지금의 상태에 오지 않았을까? 아마존과 구글, 애플이 끝없이 노리고 공략하는 시장에서 이정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DVD 대여 시장의 빠른 쇠퇴를 예상하고 발빠르게 스트리밍 비디오 시장에서 선두가 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그건 감히 예측할 수 없다. 승자와 패자가 끝없이 오고 가는 실리콘밸리, 그 안에서 새로운 스토리가 쓰여지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다.

실리콘밸리의 파워 그룹,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

2012년 5월 22일.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또 한 번 미국 역사에 기록될 업적을 남겼다. 최근 보급형 모델인 Model X를 출시한, 혁신적인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Tesla)의 창업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돈을 무려 $100M(약 1,100억원) 투자해서 SpaceX라는 민간 우주선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 회사에서 만든 우주선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우주 기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많은 미국인들의 트위터와 방송을 통해, 그의 꿈이 실현되는 장면을 감격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는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이었다.

SpaceX의 Falcon 9/Dragon 발사 장면. SpaceX는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선 회사이다 (출처: Flickr)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 이미 언론과 책에서 여러 번 다루어졌고, 너무나 유명해진 이야기이지만, 그동안 내가 모은 정보를 직접 한 번 정리해보고 싶어 이 글을 시작한다. 그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고,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때 이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용어와 그들의 스토리는 2007년에 포춘지에서 페이팔 출신 투자자, 창업가들의 사진과 함께 그들의 성공을 다루는 기사를 실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포춘지에 처음 실렸던 ‘페이팔 마피아’들. 샌프란시스코 토스카 카페에서. 갱단 복장을 하고 있다. 맨 앞의 두 사람이 피터 씨엘과 맥스 래브친이다.

페이팔 마피아가 탄생한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처음 그들이 만나게 된 과정이다. 그 이야기는 페이팔 창업자인 맥스 래브친(Max Levchin)이 일리노이 공대를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이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Founders at Work“이라는 책에 실린 그와의 인터뷰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안(security)’ 기술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교에 있을 때 이미 세 번 창업을 했다. 1998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그는 또 다른 창업을 위해 스탠포드 옆 팔로 알토(Palo Alto)의 친구 집으로 이사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며, 그리고 그의 창업에 도움을 줄 사람이 누구일까 찾기 위한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이다. 스탠포드대에서 이런 저런 강의를 들어보던 중 그는 피터 씨엘(Peter Thiel)을 만난다. 당시 헷지펀드 매니저였던 피터는 스탠포드에서 여름 학기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수업은 별로 인기가 없어서 수강생이 겨우 6명 뿐이었다. 이 수업이 훗날 페이팔을 만든 두 공동창업자가 만나게 된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내가 즐겨 듣는 스탠포드의 Entrepreneurial Thought Leaders 강연에서 피터와 맥스가 함께 나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비디오]. 이에 따르면, 당시 피터는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하고 있는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 물결 속에 자신을 위한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시카고에서 교육받은 똑똑하고 예리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업을 위해 실리콘밸리에 이사 온 맥스 레브친이 그에게는 흥미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맥스는 피터와 몇 번 따로 만나 자신이 가진 두 개의 사업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오늘날 페이팔의 성공을 만든, 이메일을 이용해서 돈을 보내는 아이디어와는 사실 거리가 멀었다. 그는 기업용 보안 기술에 관한 두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피터에게 이야기하자 피터는 그 중 하나의 아이디어가 더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헷지 펀드를 통해 맥스의 회사에 몇 십만 달러 정도를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맥스는 용기를 얻어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CEO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피터에게 돌아가서 이야기했다.

“This investment is a great thing, but I have no one to run the company. I’m just going to write the code and recruit the coders.” And he said, “Maybe I could be your CEO.” Jessica Livingston. Founders at Work: Stories of Startups’ Early Days (Kindle Locations 121-122). Kindle Edition.

“당신이 투자해 준다니 고마운데, 이 회사를 운영할 사람이 없어요. 저는 코드를 만들고 코딩할 사람을 찾는 일만 하고 싶거든요.” 그러자 피터가 이야기했다. “내가 당신 회사의 CEO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출처: Founders at Work, Kindle Edition)

그렇게 해서 피터는, 훗날 이베이(eBay)에 무려 $1.5 billion (약 1.8조원)에 매각된 회사 ‘페이팔’의 CEO가 되었다. (설립 당시 그들의 회사 이름은 컨피니티 Confinity 였다. 훗날 엘론 머스크가 만든 인터넷 은행 X.com과 합병하면서 이름이 페이팔로 바뀌었다.)

여기서, 피터 씨엘의 백그라운드를 보면 재미있다. 소위 ‘실리콘밸리스러운 이력’은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에서 트레이더로 일했고, 스탠포드 법대를 졸업한 후에는 변호사로 일했으며, 전 교육부 장관 윌리엄 버넷의 강연 라이터(Speech Writer)로 일하기도 했다. 아마존에서 1996년에 그가 공동 저작한 책을 발견했는데, 제목이 “The Diversity Myth: Multiculturalism and the Politics of Intolerance at Stanford(다양성의 미신: 스탠포드의 다문화주의와 무관용의 정치학)”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추구했던 ‘다문화주의’가 가져 온 문제점들을 비판한 내용이었는데, 1쇄만 출판되고 만 데다 독자 리뷰가 전혀 없는 것을 봐서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었던 책인 것 같다. 그가 맥스 래브친을 만난 때는 이 책을 출판하고 2년이 지난 후였다. 똑똑하고 야심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맥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훌륭한 창업가를 만나서 기회를 얻었을 테지만, 그 순간에 맥스를 만난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둘이 공동 창업한 회사의 첫 제품은 16Mhz밖에 안되는 프로세서를 가진 팜 파일럿(Palm Pilot)에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였다. 그들은 팜 파일럿과 같은 모바일 기기가 곧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소프트웨어가 기업의 민감한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데 쓰이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들이 모바일 기기 도입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바꾸고, 또 바꾸었다. 기업 대신 소비자들이 암호나 신용 카드 번호와 같은 중요한 정보를 팜 파일럿에 저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그러자 ‘돈’을 저장할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다다랐다. “돈을 안전하게 저장하고 전송하기”. 그들의 미래를 바꾼 중대한 전환(Pivot)이었다.

그 뒤는 역사이다. 그들은 이 아이디어를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에게 설명했고, 팜 파일럿을 이용해서 돈을 주고 받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투자자들은 실제로 그들의 팜 파일럿에서 맥스와 피터의 팜 파일럿으로 $4.5 million (약 50억원)을 보냈다. 흥미롭게도, 아이폰과 페이팔 앱을 이용해서 쉽게 돈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지금에도, 이렇게 돈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어쨌든, 당시 그들은 이 돈을 이용해서 자신의 인맥 가운데 있는 똑똑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훗날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될 ‘페이팔 마피아’ 멤버들은 이렇게 해서 모였다. 특정 회사 출신들이 나와서 창업하고, 투자하고, 성공하는 케이스들은 참 많지만(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야후 출신들도 많이 나와 창업했다), 페이팔 출신 중에 유난히 눈에 띄게 성공한 사람이 많은데다, 그 성공 뒤에 페이팔 출신들끼리의 밀접한 관계가 이어졌기 때문에 이들의 스토리가 더 유명해졌다.

아래에서는 페이팔 마피아의 주요 멤버들에 대해 소개하겠다.

1. 피터 씨엘(Peter Thiel)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씨엘(Peter Thiel)

위에서 설명했듯이, 그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였다. 페이팔이 이베이에 매각되던 시점에 $68 million (약 800억원) 정도를 벌었다(이 자체는 아주 큰 액수는 아니다). 그가 한 중요한 역할 덕분에 그는 마피아의 ‘대부’라 불리기도 한다.

2004년 8월, 마크 저커버그가 투자를 받기 위해 찾아왔을 때 50만 달러를 투자해서 당시 10%의 지분을 확보했고(이 장면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도 등장한다: 유투브 비디오), 그 주식은 현재 시가로 2조원어치가 넘는다[]. 또한 파운더 펀드 The Founders Fund 라는 스타트업 투자 회사를 만들어 이 회사를 통해 Quantcast, Yelp, Slide, LinkedIn, Palantir 등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성공적인 회사에 투자했다. 지금은 또한 자산 규모가 2.2조원에 달하는 헷지 펀드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20 under 20″라는 씨엘 펠로우십 Thiel Fellowship 프로젝트이다[참고: 비즈니스 인사이더]. 대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 선정되면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하는 조건으로 무려 10만 달러(1억원)를 투자받는다. 2011년에 1기, 2012년에 2기 24명이 선정되었는데, 엊그제는 1기 중 한 명이 만든 회사가 성공적으로 엑싯(exit)했다는 기사가 테크크런치에 실렸다.

씨엘 펠로우십 2012년 최종 선정자들. 이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조건으로 각자 10만 달러를 받게 된다.

2. 맥스 레브친(Max Levchin)

맥스 레브친

페이팔의 핵심 기술을 만든 천재 엔지니어이다. 일리노이 공대 출신의, 현재 36살의 그는, 페이팔 매각 후 회사를 나와 Slide.com을 만들었고, 이를 구글에 $182 million (약 2000억원)에 매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구글의 실패한 인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옐프(Yelp)에 무려 $1 million (약 11억원)을 투자했는데, 훗날 옐프가 상장하면서 큰 이익을 거두었다. 그 외에도 핀터레스트(Pinterest), 유누들(YouNoodle), 위페이(WePay) 등 10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했다. 현재는 Kaggle이라는 대용량 데이터 분석 회사의 Chairman이다[].

3. 엘론 머스크(Elon Musk)

엘론 머스크(Elon Musk)

엘론 머스크만큼 자신의 꿈에 ‘무식할 만큼’ 매진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실 그는 페이팔에서 밀려났던 사람이다. 자신이 세웠던 인터넷 은행 X.com과 피터 씨엘과 맥스 레브친이 세운 회사 컨피니티 Confinity 가 합쳐져 새로 만들어진 회사 페이팔의 CEO가 된 이후, 페이팔이 윈도우즈 시스템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맥스와 큰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 맥스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이후 페이팔을 떠났다. 맥스 또한 그 갈등 때문에 회사를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고 회상한다(주: Founders at Work).

페이팔을 떠난 후 그가 세운 회사는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이다. 디자인이 너무나 멋진 10만 달러짜리 전기 자동차 테슬라. 누구나 그 차를 보면 군침을 흘리지만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 가격도 차 가격이지만, 전기 충전소가 많지 않아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 테슬라는 보다 저렴한 (6만 달러) 모델인 Model X를 내놓았고, 지금은 전기 충전 스테이션을 여기 저기서 흔히 찾을 수 있으며(샌프란시스코 시내 전역과 주차장에서 무료 충전 스테이션을 찾을 수 있다), 닛산에서 만든 전기 자동차, LEAF도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 자동차, Model X

경기 하강과 함께 엄청난 적자가 나는 것을 보고, 저러다 회사 망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실제로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다임러 Daimler 의 투자, 주식 상장과 미국 정부의 대출 덕분에 살아났다고 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지금 전기자동차의 대명사가 되었고, 미국 주요 도시에서 전시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된 것은 SpaceX라는 거대한 민간 우주선 프로젝트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후, 그의 프로젝트는 멋지게 성공했고, 미국 우주선 개발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한때 전 인류에게 꿈을 안겨 주었던 NASA는 이제 한 물 갔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는 트위터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 설정해 놓았는데, 마치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의미하는 듯하다.

엘론 머스크의 트위터 계정 (@elonmusk).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 놓았다.

4. 스티브 챈(Steve Chen)과 채드 헐리(Chad Hurley)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두 사람이다. 페이팔의 엔지니어였던 그들은 회사를 나가 유투브를 만들었으며, 이를 구글에 $1.6 billion에 매각했다. 페이스북 초기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페이스북 이펙트”에 따르면, 스티브 챈은 유투브를 창업하기 직전 페이스북의 엔지니어로 일했었다. 요즘은 무얼 하는지 조용한데,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나온 뉴스를 보니 딜리셔스 회생시키려 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회사를 구글에 매각한 직후 스스로 찍었던 짧은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라가 있다. 행복함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표정이다.

5. 리드 호프만 (Reid Hoffman)

리드 호프만 (Reid Hoffman)

이 사람을 빼놓고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종종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넓고 깊은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으로 인용되는데, 링크트인 창업자이기 이전에 페이팔의 고위 임원(EVP)이었고 투자가였다. 그가 지금까지 투자한 50개 이상의 회사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참고: CrunchBase 프로필). 피터 씨엘과 함께 매우 초기에 페이스북에 투자하면서 페이스북 성공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많이 했었다.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성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존경을 받는 것 같다. 최근 그가 쓴 책, ‘The Startup of You(당신이라는 스타트업)‘을 읽었는데, 거기서 자신의 네트워킹 스토리와 함께 페이스북에 투자했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2004년 당시 마크 핑커스(Mark Pincus)와 친하게 지냈었는데, 페이스북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아마 페이스북에 이미 투자했던 피터로부터 소개받았던 듯하다) 자신에게 할당된 지분의 절반을 마크에게 떼어주었다. 그래서 그와 마크가 각각 5만 달러를 투자했고, 그 가치는 현재 수천억원에 이른다(주: Who Owns Facebook). 2007년, 마크 핑커스가 징가(Zynga)를 설립하자 즉시 그 회사에 투자했고, 나중에 Zynga가 나스닥에 상장하며 또 큰 돈을 번다.

6. 제레미 스토플만(Jeremy Stoppleman)

그는 페이팔의 엔지니어였는데, 페이팔을 나와 옐프(Yelp)를 창업했고, 앞서 블로그에서 소개했듯(주), 옐프는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옐프와 제레미 스토플만에 대해서는 밸리인사이드의 글, “옐프, 미국 최대의 지역 리뷰 사이트“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7. 데이브 맥클루어(Dave McClure)

페이팔의 마케팅 디렉터였던 그는, 현재 500 Startup이라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CEO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창원님의 글 “500 스타트업 이야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의 사례

‘한국의 페이팔 마피아’로 불릴 만한 사례는 테터앤컴퍼니이다. 노정석 대표가 창업한 이 회사는, 2008년에 구글에 인수된 이후 김보경, 한영, 차경묵, 정윤호 대표 등 5명의 창업자를 배출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김창원 대표가 구글에서 나와 타파스미디어를 설립했다.

내가 있었던 게임빌에서도 창업자들이 많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당시 상황이 페이팔 초기와 비슷했다. 페이팔은 1999년 1월 1일에 만들어졌고, 게임빌은 2000년 1월 11일에 만들어졌다. 게임빌이 2000년 4월 첫 게임을 출시한 후, ‘서울대 벤처 동아리’출신 송병준 대표가 만든 회사라는 소식이 수많은 신문에 인용되었고, 서울 공대 및 경영대에 포스터를 붙인 후에 서울대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게임빌 문을 두드렸었다. 그렇게 해서 게임빌에 합류한 사람 중 몇몇은 게임빌에 남아 회사를 성장시켰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게임빌을 거쳐 다른 회사에 가거나 창업을 했다.

1) 정성은, 최영수

게임빌에서 오랜 시간 일했던 이 둘은 2009년에 위버스마인드라는 영어 교육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의 첫 작품은 워드스케치(Word Sketch)인데 그림을 이용해서 단어를 외우면 더 쉽게,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단어 하나 하나마다 그림을 그려 단어 암기용 단말기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에는 뇌새김 토크를 출시했다.

2) 문성훈

게임빌에서 초기에 모바일 마케팅을 담당했던 그는 모바일 게임 회사 엔소니를 창업한 후, 이를 보라넷에 매각했다. 엔소니는 모바일 RPG 게임 장르에서 확고한 인지도를 구축했고, 최근 스카이레이크에서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였다.

3) 박정우, 송일규

이 둘 역시 게임빌에서 기획자, 개발자로 일하다가 에버플이라는 모바일 게임 회사를 만들었는데, 최근 게임빌을 통해 퍼블리싱한 데스티니아는 출시 첫 날 앱스토어 RPG 장르 1위를 차지하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게임빌의 개발자였던 정주영씨는 훗날 로티플의 창업 멤버가 되었고, 이 회사는 2011년 말에 카카오톡에 인수되었다.

제 2, 제 3의 페이팔 마피아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비젼이 있는 사람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이 모여 역사에 남을 회사를 만든 후, 나가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는 사례는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다.

참고 링크:

백악관 브리핑 행사에 다녀 와서

지난 6월 7일, 미국내 한인들을 위한 백악관 브리핑 행사에 다녀왔다. The White House Office of Public Engagement (OPE)의 도움을 받아 마이클 양과 권율 씨등이 보드 멤버로 있는 CKA(Council of Korean Americans)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는데, 나는 이 단체의 회장인 Michael Yang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실리콘밸리 한인 커뮤니티인 베이 에어리어 케이 그룹 (Bay Area K Group)의 대표로 가게 되었다.

Bay Area K Group의 대표로 참석

미국 전역에서 170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행사에 대한 내용은 “백악관, 한인만을 위한 첫 국정 브리핑“이라는 매일경제 기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백악관에서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만을 위해 이런 브리핑을 하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번 행사의 의미가 있었다. 몇 가지 느낀 점만 간략히 정리해 본다.

1. 한국의 위상

CKA의 회장이며, 이번 행사를 주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마이클 양(Michael Yang)의 인사말에 이어, 오바마 행정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아시아인으로 인용되기도 하는 Chris Lu 대통령 보좌관의 발표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어제 밤에 말도 안되게 멋진 파티 ridiculously great party 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며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룬 업적들에 대해 간략히 발표했다. 백악관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새로운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자신은 6개월 전까지도 트위터를 몰랐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chrislu44 를 팔로우 해달라고도 했다.

이어서 미국 행정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의 방향 등을 이야기했는데, 미국 정부의 각 부처에서 일하고 있는 한인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크리스 강(Chris Kang)은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 법원 판사들을 선정하는 일을 돕고 있는데, 특히 최근 아시아인들을 많이 선정한 것이 고무적이라고 했다. 백악관 법률 고문으로 있는 고흥주(Herold Koh)씨도 패널리스트로 나왔는데, 유머 감각이 워낙 뛰어 나서 듣는 내내 즐거웠다.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인데, 최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고 했다. 예일대 법대의 학장이었고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을 고객으로 둔 그는, 200명의 변호사를 포함한 350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로펌의 대표이기도 하다.

이 날 오지는 않았지만 Lucy Koh도 유명하다. 한국인 여성으로서 최초로 미국 연방 법원의 판사 된 분인데 얼마 전 다른 행사를 통해 직접 만나고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연방 법원 판사로 선정되는 과정이 정말 길고 까다로워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권율 Yul Kwon 씨도 만났다. 지난번에 블로그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는 방송인이자 CKA의 공동 회장으로서, 미국 내 아시아인, 특히 한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날 행사에 참석한 서바이버 우승자이자 방송인 권율 Yul Kwon 씨

점심을 먹으면서 백악관에서 일하는 몇몇 직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종종 백악관에서 이런 브리핑 행사를 열어 왔지만 오늘 미국 전역에서 정말 많은 한국인들이 참석한 것이 고무적이라고 했다.

2. 실리콘밸리 vs 워싱턴 DC

두 지역의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 나에겐 인상적이었다. 백악관과 의회 주변이니 더 그렇겠지만, 27도의 더운 날씨에도 불과하고 대부분 정장을 입고 있었고, 손에 든 블랙베리를 든 사람들도 꽤 보였다. ‘기술’과 ‘정치’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면, 워싱턴 DC에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하는 일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칙을 정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다양한 회사와 이익 집단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한정된 국가 자원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조직에서 더 많이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한 집단의 이익은 다른 집단의 손해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기술과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술에도 역기능은 있지만, 대개 기술은 그것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기술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더 쉽게 다른 곳에 도달하고, 더 빨리 사람들과 소통하고, 귀찮은 일에 시간을 덜 허비하게 된다. 젊은 스티브 잡스가 전자 제품에 대해 열광하고, 그것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놓을 것인지 상상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인터넷도 결국은 전자 제품에 의해, 전자 제품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다. 워싱턴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에서 만든 제품을 이용하고,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워싱턴에서 만든 법칙 위에서 움직인다.

3. 워싱턴 DC, 매력적인 도시

잠깐 구경했지만, 워싱턴 DC가 아주 매력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모습과 현대의 모습을 모두 가졌지만 서로 조화되가 잘 되고, 전체적으로 도시가 깨끗해서 걷기에 좋다. 사진 몇 장으로 말을 대신한다.

다운타운의 모습
백악관 정면
워싱턴 마뉴먼트. 이런 탑이 도시 한 가운데 있어, 멀리서 보면 정말 멋있다.
미국 의회 건물, 즉 국회의사당.
링컨 메모리얼. 이 안에 거대한 링컨의 동상이 있다.
링컨 메모리얼에서 워싱턴 마뉴먼트쪽을 바라본 모습. 그 사이에 있는 것은 거대한 호수인데, 지금은 막혀 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곳은 백악관과 의회 건물 근처이다. 이 지역을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라고 부르는데, 그 안에는 스미소니언 Smithsonian 박물관들이 모여 있다. 미국 역사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국립 미술 갤러리, 홀로코스트 박물관, 우주항공 박물관 등이 모여 있는 이 곳은 관광객과 학생들로 항상 붐빈다. 이 박물관들은 모두 무료이다.

내셔널 몰 조감도 (출처: http://urbanplacesandspaces.blogspot.com/)

시간이 없어 박물관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자연사 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 이었다. 마침 얼마 전 ‘바다 거북의 놀라운 여행‘을 보고 나서 동물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게 된 터라 더 인상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항상 미술이나 조각 작품들만 보았지, 자연의 역사를 이렇게 잘 정리한 박물관을 구경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오래 전에 지구에 살았던 동식물의 화석이 잘 보관되어 있어 볼거리가 아주 많았다. 꼭 방문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교육이 될 듯하다.

자연사 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 의 거대한 공룡 화석

주말에 본 한 권의 책과 두 편의 영화

오늘은 메모리얼 위켄드(Memorial Weekend, 미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공휴일)의 마지막 날이다. 주말동안 읽었던 책 한 권과 봤던 다큐멘터리 두 편에서 받은 교훈과 감동을 글로 나누고자 한다.

1. Tell to Win (텔 투 윈)

피터 구버의 텔 투 윈 (이기기 위해 이야기하라)

전 소니 픽쳐스 CEO였고, 현재 만달레이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CEO인 피터 구버 (Peter Guber)가 쓴 책이다. 영화 레인맨, 배트맨 등을 연출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얼마 전에 Fast Company의 기사를 보다가, “Why Storytelling Is The Ultimate Weapon (왜 스토리텔링이 최고의 무기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거기서 자세하게 소개되었길래 알게 된 책이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이기도 하고, 아마존 리뷰가 정말 좋은데다,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추천했고,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스토리텔러 사업가이자 ‘딜리버링 해피니스’의 저자 Tony Hsieh가 추천서를 썼길래 이번 주말을 투자해서 읽기로 했었다. 사람은 데이터에 의해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에 의해 설득되고, 움직인다는 것이 책의 골자이다. 피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예와 함께 소개되고 있어,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것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블로그를 통해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이 아닌 ‘스토리’였고, 사실 전달보다는 스토리 전달이 훨씬 파급 효과가 크고 강력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책 내용에 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깨달은 점에 대해서는 다음 블로그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봤는데 한국어 번역은 안나와있는 것 같다. 2011년 3월 9일자 전자신문에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요약된 기사가 있다. 그리고 매일 경제 독서 클럽에도 내용이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

2. Out of the Wild: The Alaska Experiment (아웃 오브 더 와일드: 알래스카 실험)

아웃 오브 더 와일드: 알래스카 실험

넷플릭스에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총 8편의 리얼리티 티비 쇼이다. 디스커버리 채널을 통해 2009년에 방영되었다. 원래 픽션보다는 논픽션을 좋아해서 ‘디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같은 쇼를 좋아했었지만, 이런 서바이벌 쇼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미국에서 9명이 선발된다. 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알래스카에서 살아나와서 문명을 찾는 것이다. 비행기가 이들을 싣고 알래스카 깊은 산 속에 떨어뜨린다. 먹을 것은 제공되지 않으며 하이킹과 캠핑에 필요한 도구들 및 불을 피우는 도구 등이 제공된다. 그리고 밤을 지낼 수 있는 오두막집의 위치 등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가 제공되는데, 보통 그 사이가 서로 10~20km씩 떨어져 있는데다,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들고 가야 하고, 영하 10~20도의 추위를 견디며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아주 혹독한 환경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최종 목표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매번 캠프에 도착되면 ‘다음 목적지’까지의 지도만 있을 뿐이다. 최종 목적은 문명에 도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고, 얼마나 더 가야, 며칠을 더 견뎌야 만날 수 있는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들에게 ‘엑싯 exit 버튼’이 제공된다. 정 힘들고 참기 힘들면 언제든지 GPS 단말기의 버튼을 누를 수 있다. 그러면 구조 헬리콥터가 날아오고, 집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누르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 번 누르면 되돌릴 수 없기에 누르는 것은 옵션이 아니다. 여행을 마치면 100만 달러의 상금이 이들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한다.

아웃 오브 더 와일드 참가자들 (참가자 전체 프로필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먹을 것이 제공되지 않기에 직접 먹을 것을 구해야 한다. 사냥용 총과 낚시대 등이 있지만, 눈이 내리는 겨울에 사냥감을 찾는 것 자체가 원래 어렵고, 원래 사냥을 하는 사람들도 아닌지라 이들은 항상 배고픔에 시달린다. 3일을 굶고 나서 쥐를 한 마리 잡아서 9명이서 나누어 먹는다. 그 다음엔 다람쥐, 새, 물고기.. 생전 먹어본 적 없는 음식들이지만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는 그들에게 맛있고 맛없고는 상관이 없다.

가끔 싸우기도 한다.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감정적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9명 중 3명은 초기 단계에서 쉽게 포기하고, 나머지 두 명은 좀 더 진행되다 포기해서, 최종 목적지엔 4명만 도달하게 된다. 그들이 마침내 문명을 찾은 순간의 감격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감격이 화면으로 보고 있는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문명이 없다면 오직 ‘생존’만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드는지가 경이롭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오직 ‘생존’을 위해 사용한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불을 만들고, 불을 피우고, 나무를 베고,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사냥하고, 그 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앞으로 걷는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운 가장 큰 점은, 똑똑한사람, 경험 많은 사람, 체력 좋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험이 가장 많았던 페니 존슨은 자신이 사냥을 나가 있는 동안 자신을 위해 먹을 것을 남겨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크게 화나서 초반에 포기했고, 체력이 가장 좋고 튼튼했던 24세 뉴저지의 경찰 댄은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나머지 힘을 너무 쓰다가 완전히 지쳐버려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캐롤린은 똑똑하고 강했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끈기도 있었지만, 후반부에 가서 정신력이 약해졌고, 상황이 더 어려워지고 절망적이 되자 최종 목적지를 겨우 하루 남기고 결국 포기했다 (물론 그녀는 목적지가 가까웠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마짐막까지 성공한 네 명은 ‘긍정적인 사람들’이었다. 중간 중간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계속해서 인터뷰해서 보여주는데,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말 힘들고 배고픕니다. 집에 가고 싶고, 가족들도 그리워요. 하지만…”. 반면,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은 “힘들고 배고픕니다. 이러다가는 포기해야 할 지도 몰라요.”라고 말한다. 그 차이이다. 상황이 어려운 점은 동일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상황을 설명한 뒤에 “그러나”라고 이야기한다그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 가장 큰 차이였다.

아이튠스에서 $14.99에 시리즈 전 편을 살 수 있다. 검색을 좀 해보니 누군가가 유투브에 모두 올려놓은 듯하다. 아래가 첫 편이다.

3. Turtle: The Incredible Journey (바다 거북의 경이로운 여행)

바다 거북의 경이로운 여행

이것도 넷플릭스에서 찾았다. 위 쇼에 별점 다섯을 주었더니 넷플릭스가 나에게 추천해준 다큐멘터리이다. 그동안 동물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많이 봤지만 이것은 특별했다. 무엇보다도 난 바다 거북이 이렇게 엄청난 거리의 여행을 하는 지는 전혀 몰랐다. 태어난 곳에서 일생을 사는 줄 알았는데, 이 거북은 무려 10,000km를 여행한다. 지구 둘레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거리이다. 플로리다 해변에서 태어나, 게한테 먹힐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돌진해 이틀을 쉬지 않고 헤엄친다. 그리고 나서 거대한 해류에 도달한다. 이를 ‘바다 고속도로’라고도 하는데, 그 안에 상어, 고래를 비롯해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함께 여행한다. 그 해류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동안 수많은 위험에 처한다. 거대한 화물선을 만나는 바람에 보금자리가 산산조각나기도 하고, 폭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북쪽으로 간 후엔, 다시 남쪽으로 내려 온다. 그리고 아름다운 카리브해에 도착한다. 태어날 때 4.5cm이던 몸이 무려 1m 가까이 커진다. 거기서 15년을 지낸 후에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온다. 메이팅(mating)을 한 후 해변에 알을 낳는다. 그 엄청난 여행을 하고 돌아온 거북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고, 감격스러웠다.

미국과 유럽 사이의 대서양.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거대한 바다를 왕복 여행한다. 겨우 시간당 8km의 속도로.

더 놀라운 것은 도대체 이를 어떻게 촬영했는가이다. 수 년간 거북을 따라다니며 촬영했는데, 마치 내가 거북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 준다. 경이로운 바다 속 모습도 나오고, 오로라와 은하수의 모습도 담았다. 작은 거북 한 마리가 그 거대한 바다 속에서 방향을 찾아 가는 것도 놀랍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머리 속에 이미 모든 것이 프로그램된 것처럼, 그리고 바다 전체 지도를 머리 속에 담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다. 폭풍에 휩쓸려서 원래 경로에서 벗어날지라도 결국 다시 해류를 찾아간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헤엄쳐 간다. 말 그대로 ‘놀라운 incredible’ 생명체이다.

작년에 몰디브에서 야생 거북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거북 역시 엄청나게 먼 길을 헤엄쳐 왔을 것이라 생각하니 경외심마저 든다. 그리고 멸종되어가는 동식물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거북을 먹는다고 하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 네이버에 소개 페이지가 있는 것을 보니 한국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튠스에서 $5.99에 사거나 $2.99에 렌트할 수 있다. 아래에서 트레일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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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기업 공개(IPO)를 한 날

오늘은 실리콘밸리, 그리고 세계 IT 역사에서 오래 기억될 날이다. 페이스북이 거래 등록 기준상, 미국 증시 역사상 가장 높은 기업 가치로 나스닥(NASDAQ)에 데뷔한 날이기 때문이다. 창업 이래 계속된 투자를 통해 끝없이 오르던 기업 가치는, IPO 직전에 무려 $100B (110조원) 이상으로 올라갔으며, 기업 공개 첫 날인 오늘, 그 가치를 지켰다. 38달러로 상장한 주식은,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전 11시경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본사에서 버튼을 누름으로서 거래를 시작하자마자 10%가 뛰었으나, 오후에 하락하며 38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오늘 구글 주가가 무려 3.64퍼센트 하락하는 등 나스닥 주식 대부분이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플러스로 마감한 것만으로도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장 마감 이후 현재 회사 가치는 무려 $108.92B (약 120조원)이다. 한편, 오늘 하루 거래된 주식의 수가 무려 4.6억에 달해, 기업 가치 뿐 아니라 거래량으로도 최고 기록을 세웠다.

페이스북 오늘 하루동안의 주가 변동과 거래량 (출처: Google Finance)

거래 시작 버튼을 누르기 전 카운트다운을 하는 순간의 비디오는 유투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페이스북 직원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멘로 파크 본사에 모여 카운트다운을 누르는 순간을 기다리며 서로 기뻐하는 모습이 감격적이다.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수많은 투자자와 직원들이 백만 장자가 되었으며 마크 저커버그의 바로 옆에서 돕던 셰릴 샌드버그 역시 billionaire가 되었다.

페이스북 거래 시작 버튼을 누른 후 환호하는 장면. 마크 저커버그 바로 왼쪽, 쉐릴 샌드버그의 행복한 표정이 눈에 띈다.

한편, 2011년 1월 10일에 테크크런치에 소개되었던 아래 인포그래픽은(클릭하면 크게 보인다), 골드만삭스에서 $50B의 가치로 $500M을 투자하기까지 투자가들이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를 얼마로 메겼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에는 골드만삭스도 너무 비싸게 주고 사는 게 아닌가 했는데, 오늘 상장으로 인해 그 때보다 기업 가치가 두 배로 상승했으니 골드만삭스는 약 1년여 만에 무려 $500M (약 5천 5백억원)의 차익을 남긴 것이다. 2004년에 피터 씨엘(Peter Thiel)이 가장 먼저 $500K를 투자해서 지분의 10%를 소유한 것(그 당시 그가 샀던 6억원어치 주식의 가치는 현재 수 조원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5B 기업 가치로 $240M을 투자하면서 페이스북 회사 가치가 크게 올라갔던 것과(당시에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고 생각했다), 야후가 2006년에 $1B에 사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던 것, 그리고 홍콩 재벌 리카싱이 2007년 말 경에 $15B 기업 가치로 $60M을 투자한 것 등이 눈에 띈다.

페이스북 기업 가치 변동 그래프 (주: TechCrunch)

마크 저커버그 자신은 오늘 $1.2B 어치를 팔아 28살의 나이에 무려 1.4조원이라는 거액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120 million 개에 해당하는 옵션을 주당 6센트에 행사하게 되면 $1~$2B의 세금을 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세금을 커버하기 위해 주식을 파는 듯하다). 그리고도 아직 남은 주식의 가치가 20조원이 넘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중 한 명이 되었다. 게다가 마크 저커버그를 제외한 페이스북 직원들의 주식 가치 평균액이 무려 $4.9M (약 55억원)이라고 한다.

오늘이 페이스북 주식을 소유한 모든 사람들에게 축제의 날이지만, 페이스북에 투자할 기회를 놓친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우울한 날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정리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기사에 따르면, 팔로 알토의 사무실 건물을 소유한 Pejman Nozad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션 파커(Sean Parker)가 2005년에 그에게 접근해서, 그의 사무실을 빌리는 대신 페이스북 주식 5만 달러어치를 살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만약 받아들였더라면 그 가치는 현재 $50M(550억원) 이상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과연 그 높은 기업 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많다. 페이스북의 현재 매출로는 이 가격을 정당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 공개 후에 더 많은 매출을 낼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00B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주식 가격의 적정성을 가늠하게 해주는 P/E Ratio (Price to earnings ratio)가 무려 100:1이다. 참고로 Google 은 20:1이고, 이 시대의 가장 수익률이 높은 애플도 16:1인데 말이다. 게다가 세계 70억 인구 중 무려 9억명이 이미 이용하고 있는 있는데, 과연 얼마나 가입자가 더 증가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인터넷은 꿈도 못꾸는, 하루 1.25 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 인구가 2008년 기준으로 무려 13억명에 달한다는 것과, 아이와 노인층의 페이스북 사용 인구가 적다는 것 등을 고려하면 회원 수 증가는 얼마 가지 않아 한계에 부딪치지 않을까?

한편, 제네럴 모터스(GM)는 지난 5월 16일, 페이스북 광고를 해봤는데 별로 효과 없었다고 발표해서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의 매출 성장률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GM이라는 브랜드가 페이스북 디스플레이 광고를 통해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워서 그렇지 않았나 싶지만.

어쨌든, 마크 저커버그는 무려 9억 명의 삶을 바꿔 놓았으며 세상을 보다 투명한 곳으로 만든 ‘위인’이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위인전에는 주로 전쟁 영웅이나 대통령이 주로 등장했다. 그러고 보면, 왜 위대한 사업가는 위인전에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떻게 보면 전쟁 영웅이나 대통령보다도 세상에 더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들인데 말이다. 앞으로 자라나게 될 아이들은 마크 저커버그의 이야기를 위인전에서 찾게 되지 않을까?

참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