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만한 실리콘밸리의 ‘빅 데이터’ 스타트업 7개

얼마 전에 스탠포드 SEED라는 모임의 초대로 스탠포드 석사, 박사과정중에 있는 학생들, 교환학생들, 그리고 실리콘밸리에 사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냥 책 이야기나 내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실리콘밸리’를 주제로 강연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특히 ‘주목할만한 스타트업들’을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동안 관심 있었던 회사 뿐 아니라 새로운 회사들을 좀 발굴하고 싶어서 조사를 해 봤다. 실리콘밸리에 워낙 실력 있는 스타트업이 많아 몇 가지만 골라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는데, 그 중 가장 흥미를 자극한 것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이었다. 내가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회사들이 유독 눈에 띄는 면도 있다. 스타트업 정보를 가장 잘 모아 놓은 웹사이트 중 하나인 엔젤리스트(Angelist)에서 ‘Big Data Analytics Startups’로 검색하면 무려 558개가 나온다. 그 중 몇몇 회사들로부터는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하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되기도 했기에, 내가 직접 써봤거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회사들 위주로 소개를 해보겠다.

글의 제목에 ‘빅 데이터(Big Data)’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눈길을 끌기 위함이고, 사실 많은 경우 ‘빅데이터’는 마케팅 유행어(Buzz Word)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는 것은 옛날에도 했던 일이고 그 자체가 새로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기는 하다. 그리고 ‘빅데이터’를 표방하는 스타트업 대부분이 맵-리듀스(Map-Reduce) 알고리즘과 함께 한 하둡(Hadoop) 기술을 사용하고 있기에 빅데이터 회사라고 부르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1. 텔어파트(TellApart)

텔어파트 창업자, 조쉬 맥파랜드(Josh McFarland)
텔어파트 창업자, 조쉬 맥파랜드(Josh McFarland)

텔어파트는 애드 리타게팅(Ad Retargeting) 회사이다. 몇달 전 빅 데이터 회사를 조사하다가 이 회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마침 얼마 전에 리크루터에게 연락이 온 덕에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스탠포드 경제학, 구글 프로덕트 매니저 출신인 조쉬 맥파랜드(Josh McFarland)가 만들었다. 그가 창업하게 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2009년,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VC인 그레이락 파트너스(GreyLock Partners)의 제임스 슬라벳(James Slavet)이 회사에 새로 영입할 파트너를 찾고 있었고, 조쉬를 영입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잘 진행된 후, 최종 합의를 하기 위해 만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는 파트너 자리를 수락하는 대신, 사실 창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당시에 아이템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자 제임스는 그에게 EIR (Entrepreneur in Residence: 벤처 투자사에서 직접 지원을 받는 창업가) 자리를 제안했고, 그는 받아들였다. 8개월간 거기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시제품을 만들었고, 2010년 4월에 그레이락 파트너스, SV 엔젤스, 딕 코스톨로(Dick Costolo), 리드 호프만(Reid Hoffman)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VC와 투자자들이 $4.75M (약 50억원)을 투자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사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11M (약 120억원)의 추가 투자를 받았으며,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멀지 않은 벌링게임(Burlingame)에 사무실을 두고 약 50명이 일하고 있으며, 지난 12월에 연 매출(run rate)이 $100M (1,100억원)을 넘었으며 흑자를 내고 있다고 발표했다. 직원 일인당 2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니, 그야말로 로켓쉽(Rocketship)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명품 백화점 체인인 니만 마커스(Neiman Marcus), 안경과 선글래스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워비 파커(Warby Parker), 주방 용품 프렌차이즈인 서 라 테이블(Sur La Table) 등을 고객으로 가지고 있다.

여기서 애드 리타게팅(Ad Retargeting)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해보자. 말 그대로 ‘광고를 다시 보낸다’는 뜻인데, 어떤 사람이 쇼핑 사이트에 방문해서 구매를 하지는 않고 구경만 하고 떠나는 경우 (98%의 경우 그냥 떠난다고 한다), 나중에 그 사람이 페이스북이나 지메일 등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 때 브랜드와 상품을 보내서 재방문과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Screen Shot 2014-02-02 at 11.59.50 PM
내 트위터 타임라인에 뜬 AdRoll 이라는 회사가 보낸 광고. “우리가 당신을 리타게팅하고 있습니다!”

애드롤(AdRoll)이라는 광고 리타게팅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본 후부터, 내 트위터 타임라인에 종종 이런 광고가 뜨고 있다. 마찬가지로, TellApart의 고객사인 헤이니들(Hayneedle.com)을 방문한 후부터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줄기차게 Hayneedle 광고가 뜨고 있다.

이렇게 나한테 광고를 보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광고를 보낼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나에게 광고를 보낼 때마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으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정확히 나에 대해 파악하느냐가 애드 리타게팅 회사의 경쟁 우위이고, 그 분석은 ‘빅 데이터’의 영역에 속한다.

한편, 내가 방문했던 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고, 그걸을 이용해서 광고를 보낸다는 사실이 좀 꺼림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민감한 정보를 이용해서 광고를 보낸다면 개인 정보 침해 소지가 있다. 캐나다에서는 이를 보다 엄격히 적용하는 것 같다. 한 캐나다인이 수면 곤란(Sleep Apnea) 치료기를 판매하는 웹사이트를 방문한 후부터 구글에서 계속 관련된고 광고가 뜨고 있다고 신고했고, 이것이 캐나다 정부는 개인 정보 보호법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구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2. 클라이밋 코퍼레이션(The Climate Corporation)

클라이밋 코퍼레이션(The Climate Corporation) 웹사이트
클라이밋 코퍼레이션(The Climate Corporation) 웹사이트

2년 전쯤, 이 회사의 창업자인 데이빗 프리드버그(David Friedberg)가 2011년에 스탠포드에서 했던 강연을 듣고 이 회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 후 회사의 리크루터에게 연락이 와서 회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몇달 전 여기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직 ‘데이터’로 만들어진 회사인데, 이 회사가 하는 일이 참 재미있다. 창업 스토리는 데이빗의 강연에서 가장 자세히 들을 수 있는데, 그가 구글에서 일하던 시절, 어느 비가 오는 날 자전거 대여점을 지나치면서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비가 오는 날 과연 누가 자전거를 빌릴까? 저 사람에게 날씨는 곧 매출과 직결되는 일인데, 누구보다도 정확한 날씨 정보를 수집해서 이를 팔면 돈이 되지 않을까?

사업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자, 구글을 나와 회사를 만들었고, 날씨 정보를 수집한 후 자전거 대여점과 같이 날씨가 사업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건축 회사, 스키 리조트, 여행사, 농부 등등… 평소에 일정액의 돈을 내다가, 매상에 큰 영향을 주는 안좋은 날씨가 닥치면 (너무 춥거나, 비가 오거나) 즉시 돈을 지급받게 된다는 아이디어였다. 일종의 보험 상품이다.

결과는 저조했다. 날씨에 관심이 많은 것과 돈을 주고 보험과 비슷한 상품을 가입한다는 것 사이엔 간극이 있었다. 고생 끝에 그는 시장을 발견한다. 바로 아이오와(Iowa) 주의 농부들이다. 작은 기후 변화에도 그들의 농작물은 큰 영향을 받았고, 그들은 이미 보험에 가입해 있었으므로 이 상품을 곧바로 이해했다. 회사는 오직 농부들만 대상으로 하기로 하고 상품을 더욱 특화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보험 상품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한 가지 큰 차이점은, 이 회사는 보험과 달리 ‘보험금 신청’의 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가 미국 전역의 모든 기후 변화를 모니터링하다가, 이상 기후가 발견되면(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거나, 일정 습도 이상으로 올라가거나) 자동으로 가입자 통장으로 돈을 입금한다. 이 편리함이 많은 고객들의 공감을 샀다.

몇달 전인 2013년 10월에 Monsanto에 $1.1B (1.2조원)의 매우 높은 가격에 인수되었고, 창업자 데이빗은 물론 갑부가 되었다.

3. 스마트집(SmartZip)

스마트집
스마트집 홈페이지

미국에서 부동산 거래를 할 때 대부분 리얼터(realtor) 또는 브로커(broker)라고 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그 역할은 나두(nadoo)에 포스팅된, ‘미국에서 집 사는 과정 한 눈에 보기‘라는 글에서 그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의 중개업자와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첫째, 집을 사거나 팔게 되기까지 시간을 훨씬 많이 쓴다. ‘삼성래미안 24평 6억 8천. 내년 3월 입주 가능합니다’ 이런 식이 아니다. 집마다 생긴 모양이 다 다르고 스타일이 다 달라, 고객이 원하는 집을 찾기까지 훨씬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집을 팔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사는 집을 그대로 보여주고 파는 일은 거의 없고, 리얼터가 사람을 고용해서 집을 그럴 듯하게 꾸민 후 ‘오픈 하우스’라는 것을 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와서 집을 보고 질문을 하는 시간이다.

둘째, 수수료가 훨씬 높다. 사는 쪽, 파는 쪽 중개인 각각 3%씩 가져간다. 관행상 집을 파는 쪽에서 6%를 지급하고, 이를 리얼터 둘이 3%씩 나누어 갖는다. 캘리포니아에서 웬만한 집은 가격이 $1M (약 11억원) 이상이고 샌프란시스코, 팔로 알토, 쿠퍼티노 지역에서는 $3M짜리 집도 흔히 볼 수 있는데, $3M 짜리 팔면 부동산 중개업자가 각각 $9K, 즉 거의 1억 원을 가져간다. 집 하나 팔고 1억을 버는 것이니 나쁘지 않은 셈이다.

집을 사는 사람을 대표하는 것보다 파는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훨씬 시간이 적게 들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리얼터들이 집을 파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매물로 나오는 집의 숫자가 리얼터 숫자보다 훨씬 적다는 것. 그래서 집을 파는 사람을 잡기 위해 리얼터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갖가지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

스마트집(Smartzip)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들은 집과,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다 모은다. 언제 얼마에 구입했는지, 방은 몇 개인지,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마당은 얼마만한지, 집 주인은 몇 식구인지, 가구 소득은 얼마인지 등등이 그러한 정보이다. 집마다 최고 2000개까지의 속성을 모았다고 한다. 이 모든 정보를 이용해서 그들이 하는 일은 ‘예상 분석(Predictive Analytics)’이다. 즉, 향후 6~12개월 이내에 매물로 나올 것 같은 집을 미리 찾아내는 것이 알고리즘의 핵심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다. 사실은 아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방법이다.

  1. 평소에 집과 가구에 관한 정보를 모아둔다.
  2. 집이 매물로 나오면 매물로 나온 집의 절반을 이용해서 6~12개월 전에 그 집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이용해 알고리즘을 ‘학습’ 시킨다.
  3. 학습된 알고리즘을 다른 절반의 집들에 대입해서 알고리즘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아본다.
  4. 학습된 결과가 꽝이면 알고리즘을 수정해서 다시 대입한다. 알고리즘이 품질이 최고가 될 때까지 반복한다.
  5. 정확도가 어느 정도 나오면, 아직 매물로 나오지 않은 집의 정보를 알고리즘에 대입한다.
  6. ‘조만간 팔릴 가능성이 높은’ 정도를 점수로 계산한 후 순위를 매긴다.

그들의 리스트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순서에서 상위 20%에 해당하는 집들은 1년 내에 40~50%의 확률로 매물로 나온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황금의 값어치를 가진 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리얼터들이 기꺼이 돈을 주고 살 것이다. 실제로 많은 리얼터들이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큰 효과를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빅데이터 회사들은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라는 기법을 사용한다. 내가 MBA에서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과목이며, 더 알고 싶어서 코세라(Coursera)에서 숙제까지 하면서 배웠던 내용이기도 하다. ‘머신 러닝’이라는 단어에서 추측할 수 있듯, 대량의 데이터를 통해 알고리즘을 ‘훈련(training)’시킨 후,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유추를 하도록 만드는 것인데,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깜짝 놀랄만큼 정확도가 높아 점차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4. C9

C9 홈페이지
C9 홈페이지

이 회사가 하는 일은 설명이 쉽지 않은데, 그들은 자신을 매출 퍼포먼스 회사(Revenue Performance Company)라고 부르고 있다.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핵심은 ‘매출 예측‘이다. 앞서 소개한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을 이용해서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진행중인 딜(deal)들이 가진 속성들을 이용해서 그 딜이 완결(closing)될 확률이 몇 퍼센트인지를 계산한 후, 이를 이용해서 분기 또는 연 매출을 추정하는 것이다. 분기 매출을 정확히 추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 영역에 속하며, 이를 얼마나 정확히 할 수 있느냐가 회사의 수준을 말해줄 만큼 중요한 일이다.

회사에 100명의 판매 사원들이 있다고 하자. 이들이 진행중인 딜(deal)이 수백개에 달한다고 하자. 딜마다 진행 상태가 모두 다를 것이다. 어떤 딜의 경우 이제 막 구매 담당자를 만났을 수도 있고, 어떤 딜은 이야기가 잘 진행되어 계약 직전인 경우도 있으며, 어떤 딜은 몇 년 전부터 구워삶았으나 진행이 잘 안되고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엔 전화 한 통으로 거래가 성사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엔 한참 정성을 들여야만 거래가 성사되기도 한다. 과거의 모든 거래에서 발생했던 역사적(historical) 정보를 모아서, 이를 분석해서 알고리즘을 만든 후, 현재 진행중인 거래에 대입시켜 미래의 매출을 추정하는 것이다.

이미 링크드인(LinkedIn), 판도라(Pandora)와 같은 회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지속적인 성장성이 보이는 회사이다.

5. 캐글(Kaggle)

캐글(Kaggle.com) 홈페이지
캐글(Kaggle.com) 홈페이지

구글(Google)과 철자와 발음이 비슷해서 외우기 쉬운 회사 캐글(Kaggle). 이 회사가 하는 일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Data Scientist)와 그들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웹사이트에 흥미로운 과제들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몇몇 과제들엔 큰 상금이 걸려 있다.

GE와 알래스카 항공(Alaska Airlines)은 가장 큰 고객 중의 하나인데, 그들이 만든 총 상금 25만 달러가 걸려 있었던 비행 퀘스트(Flight Quest) 1이 작년에 종료되었고, 총 상금 22만 달러가 걸린 두 번째 과제는 조만간 제출 마감을 앞두고 있다. 알래스카 항공이 가진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항공기 조종사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연착 없이 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과제의 목표이다. 데이터 안에는 날씨를 비롯한 수많은 변수들과, 각 상황에서 비행기가 얼마의 시간이 걸려 도착했는지, 연착이 되지는 않았는지 등의 정보가 들어 있다. 첫 번째 과제에서는 173개 팀, 236명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경쟁을 했고, 상금 5만 달러를 차지한 2등 우승자들이 등장한 비디오에 따르면, 둘이 한 팀을 이루어 총 300시간 이상을 썼다고 한다.

현재에도 다양한 재미있는 과제들이 올라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런던 왕립 대학(Imprial College London)에서 올린 ‘대출금 부도(loan default)’를 추정하는 과제이다. 20만 명의 고객 데이터가 제공되며, 데이터 안에는 그 고객들이 대출을 받을 때 상황이 어땠는지, 나중에 대출금을 잘 갚았는지, 아니면 부도(default)를 냈는지, 그 경우 손실액은 얼마나 컸는지 등의 정보가 들어 있다. 가장 추정을 잘 하는 알고리즘을 만든 팀이 이기며, 상금 1만 달러를 가져간다.

창업자인 안소니 골드블룸(Anthony Goldbloom)은 호주 출신으로 1983년생이며, 2010년에 캐글을 만들어 $11.25M(약 12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투자자들이 이익을 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둘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전 세계 데이터 사이언티스들이 모여 실력을 뽑내는 흥미 있는 장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6. 매터마크(Mattermark)

매터마크 서비스 화면
매터마크(Mattermark.com) 서비스 화면. 비상장 회사에 관한 모든 정보를 모아두었으며, 핫(hot)한 정도에 따라 점수가 매겨져 있다.

이 회사는 ‘빅데이터 회사’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데이터를 모아서 가공해서 파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가 하는 일은, 상장 전 회사들의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직원 수, VC 투자 정보, 웹사이트/모바일 앱 인기 순위, 소셜 네트워크 지수 등), 이를 이용해서 ‘핫(hot)한 회사들’ 순위를 메기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이 회사의 첫 번째 직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서 얼마간 써보기도 했다. 비상장 회사들, 즉 스타트업들에 대해 놀랄만큼 많은 정보를 모아두어서 아주 유용했다. 그들의 주 고객은 VC(벤처캐피털)들이며, 비용은 1인당 월 500달러인데, 이미 많은 VC들을 고객으로 확보한 상태이다.

VC들이라면 이런 회사 분석은 이미 하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건 규모가 큰 VC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많은 작은 규모의 회사들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 그 틈을 매터마크가 채워준다. 꼭 VC들만 고객이 되라는 법은 없다. 인수할 회사들을 찾는 프라이빗 에쿼티(Private Equity) 회사들, 또는 대기업에서 인수 합병을 담당하는 부서들이 고객이 될 수 있다.

이 회사가 서비스를 개시하자마자 유료 고객을 확보하게 된 데에는 창업자인 다니엘 모릴(Danielle Morrill)의 역할이 크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 프로필에 따르면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링크드인 프로필에 고등학교 졸업 연도가 2003년으로 되어 있으니 꽤 젊은 창업자인 셈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람이며, 특히 그녀의 블로그가 유명하다. 글을 참 잘 쓴다. 지금 회사를 창업하기 전에 리퍼리(Referly)라는 회사를 만들었었는데, 그 회사를 운영하다가 성장이 더뎌 사업을 접기로 결정하면서 쓴 블로그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매터마크 홈페이지에서 뉴스 레터를 구독하면 그녀가 읽고 나서 정리한 글들을 매주 받아볼 수 있는데, 내가 빼놓지 않고 꼭 확인하는 글 중 하나이다.

샌프란시스코 고층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팀 소개 페이지가 꽤 멋지게 꾸며져 있다. 정보를 모으고 가공하는 것으로 한 고객당 월 500달러를 꾸준히 받고 있고, 이미 고객도 많이 확보한 상태라고 하니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가 된다.

7. 루모써티(Lumosity)

역시 같은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델이다. 일정 나이가 되면 뇌의 신경망이 굳어져버려 더 이상 머리가 좋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과거의 이론과 달리, 뇌는 유연(malleable)하며 바뀔 수 있다(plastic)는 뉴로플라스티시티(Neuroplasticity) 이론을 바탕으로, 뇌를 ‘훈련’하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에 대해 최근에서야 알게 되어 돈을 내며 한 달간 써봤는데, 처음엔 무척 시시하더니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서 요즘엔 꽤 흥미가 있다. 더 써봐야 알겠지만, 두뇌 훈련에 도움도 좀 되는 것 같다.

속도(Speed), 기억력(Memory), 집중력(Attention), 유연성(Flexibility), 문제 해결력(Problem Solving)의 다섯 가지 분야로 나누어, 각 분야마다 다양한 게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억력 게임 중 하나가 핀볼 게임인데, 아래 화면처럼, 핀들이 여러 개 화면에 나타난 후에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모서리 중 한 곳에서 공을 쏘게 될 것이라는 표시가 나온다. 이제 핀들이 어디 있었는지를 기억해내어서, 공이 여러 번 튄 후 최종 어디에 도착하는지를 맞추는 것이 목표이다. 핀 수가 많아지고, 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꽤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핀볼 게임
루모써티 게임 중 하나인 핀볼 게임

테크크런치에 실린 인터뷰 비디오에 따르면, 창업자인 마이크 스캔론(Mike Scanlon)은,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돌아가신 것을 보았던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을 방지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던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뇌 과학(Neuroscience)을 공부하면서 뇌 훈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론들이 연구되어 있었지만 그것들을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돕는 서비스를 만든 사람이 없었기에 자신이 만들었다고 한다.

가족이 알츠하이머를 통해 고생하는 것을 목격한 스탠포드 출신 뇌 과학자가 만든 서비스라는 점 덕분인지 몰라도, 2007년에 시작된 이 서비스는 2013년 4월 기준으로 4천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서비스 사용료가 월 12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출이 상당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회사이다.

빅 데이터의 미래

며칠 전 아마존(Amazon)이 예측 배송(Anticipatory Shipping)이라는 제목의 특허를 등록한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고객이 주문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주문을 할 지 안할 지를 예측해서 고객 근처의 물류 센터로 배송을 시작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주문을 하는 시점에는 이미 가까이 물건이 와 있으므로 훨씬 빠르게 배송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 취향을 알아내는 것도 모자라 구매 예측까지 한다니, 아마존이 정말 세계를 지배할 모양이다. 등록된 특허를 여기에서 볼 수 있는데, 대강 읽어보니, 최종 배송 주소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근처까지 물건을 보내고, 물건이 배달되는 과정에서 주소가 정해지면 그 때 정확한 주소로 물건을 배송하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만약 근처 물류 센터까지 보냈는데 결국 고객이 주문을 안 한 경우, 그 물건을 중앙 물류 센터로 다시 가져오는 비용과, 그냥 고객에게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을 비교해서 후자가 더 쌀 경우엔 고객에게 공짜로 배송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주문도 안했는데 아마존이 예측해서 마침 필요한 걸 보내준다면 소름이 돋을 것 같다.

미래에는, 스타벅스 가는 길에 자기가 주문하려고 생각했던 커피가 만들어져 있고, 백화점 가는 길에 자기가 살 옷이 마련되어 있고, 식당에 가는 길에 자기가 시킬 메뉴가 만들어져 있지는 않을까? 그건 좀 과장이지만, 어쨌거나, 인간의 신성한 자유 의지를 자꾸 알아내어서 예측하려 하고 있다는 게 꼭 달갑지만은 않다.

히든 싱어와 전현무 아나운서

오늘은 실리콘밸리나 스타트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

늦게서야 히든 싱어 김광석 편을 봤다(미국에서는 OnDemandKorea.com을 통해 광고와 함께 무료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볼 수 있다). 김광석 노래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좋아했었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 어느 하나 빼놓기 힘들 만큼 명곡들이다. 정말 가슴을 울리는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음색.

그의 명곡들이 그를 그리워해서 그를 닮고 싶어하는 누군가에 의해 불린다고 하니 참 기대가 되었고, 디지털 음원을 따로 뽑아내어서 한 소절씩 부른다니 그것도 참 신기했다.

당시에 시청률 6.347%로, 같은 시간대의 지상파 방송까지 제쳤다고 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본 것 같다. 그럴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이 깔끔하게 잘 만들어졌고, 들으면서 구별하기 힘들만큼 모창자들이 잘 했고, 무엇보다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참에 히든 싱어2 다른 편들도 보게 됐다. 왕중왕전까지. 참가자들과 같이 기뻐하고, 같이 놀라고, 그리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의 목소리, 외모, 그리고 표정까지 흉내내고 싶어한다는 것, 정말 감동적인 일이다. 출연한 가수들이 모두 거기에 큰 감동을 느낀 것 같다. 주현미씨가 모창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안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김범수씨가 모창자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표현한 것도 신선했다. 정말 어떤 느낌일까 그런 건..

사실, 히든 싱어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전현무 아나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히든 싱어를 보면서 모창자 실력 못지 않게 나를 감탄하게 한 것은 전현무 아나운서의 실력이었다. 방송의 흐름이 엉뚱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잘 주도하는 것 뿐 아니라 어떤 순간에 어떤 사람에게 무슨 질문을 해야 재미가 더해지는지를 파악하고 질문을 참 잘 한다. 한 번은 방송 중 현미 씨가 전현무 아나운서가 진행을 깔끔하게 잘 한다며 다 같이 박수를 쳐 주자고 하기도 했다.

좋은 질문이 실력이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진행할 만한 실력 있는 아나운서들이 한국에 또 누가 있을까. 한국 방송을 본 지가 오래 되어 잘 모르지만, 잘은 모르겠다. 그냥 ‘진행’을 할 만한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감탄할 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호동과 유재석, 그리고 신동엽. 소위 ‘국민 MC’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10년 전에도 인기 있었던 세 명인데 지금도 그렇게 인기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실력이 좋으면 그렇게 장수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다른 사람들을 망가뜨려 웃기는 것 말고, 정말 감탄할 만한 실력으로 프로그램을 이끄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한때 무한 도전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참 많이 웃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냥 유치하고 개그맨들이 안쓰러울 뿐이어서 더 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리얼리티 쇼를 참 좋아한다. 드라마에는 웬지 ‘작가’의 머리 속에 담긴 단편적인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긴박감이 들지 않는다. 리얼리티 쇼는 참가자들에 의해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 누구도 어떤 결말이 나올 지 알 수 없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순간 순간 주인공들이 갈등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며 마치 내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빠져 든다.

미국 방송에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참 많다. 이전에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샤크 탱크나 언더커버 보스, 그리고 서바이버 모두 리얼리티 쇼에 해당한다. 한때는 “You’re fired!”로 유명한 도날트 트럼프의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에 푹 빠져 있었다. 넷 모두 아주 인기가 많은 쇼들인데, 재미있는 것은 샤크탱크, 서바이버, 그리고 어프렌티스 모두 ‘한 사람’이 제작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마크 버넷(Mark Burnett)이며 그가 내니(nanny)로 시작해 티셔츠 장사를 통해 전설적인 TV 프로듀서가 되게 된 스토리는 이전 블로그에서 설명했으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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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버’ 진행자 제프 프롭스트(Jeff Probst)

이런 리얼리티 쇼에서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사회자’이다. 특히 서바이버와 같은 쇼에서는 그 역할이 막중하다. 매일 한 사람씩 투표를 통해 제거되는 과정에서, 사회자가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질문하는데, 그 질문이 너무나 예리해서 어떤 질문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을 정도이다. 때로는 그의 질문으로 인해 투표되는 탈락자가 바뀌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제프 프롭스트(Jeff Probst)이며, 서바이버를 통해 대 스타가 되었다. 그의 역할 덕분인지는 몰라도, 2008년부터 에미 상(Emmy Award)에 ‘리얼리티 쇼 최고의 진행자 Outstanding Host for a Reality or Reality-Competition Program’라는 상이 추가되었고, 4년간 그가 1등을 독차지했다.

여기서 한 마디 추가. 사실 전현무 아나운서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명덕외고 영어과.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 아이들을 웃기는 것을 참 잘했다. 그 친구가 지금과 같은 MC가 될 줄은 상상을 못했던 것.

어쨌건, 한국에 실력 있는 예능 MC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스핀 잇 출간, 그 후

한국에서 책을 출간한지 약 4달이 되었다. 많은 지인들이 책이 잘 팔리느냐고 물었고, 또 책을 낸 기분이 어떻냐고 물었다. 책은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 4쇄 인쇄를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래 전부터 목표했던 일을 마무리지어서 기뻤고, 이 블로그의 독자들과 트위터 팔로워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책을 구매해주셨고, 그 책에 내가 사인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책 리뷰

책을 읽은 분들 중 소감을 보내주시거나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책 소개 페이지에 소감을 올려주신 분들이 많아 고마웠다. 아래는 ‘어느 아줌마의 리뷰’라며 카카오 스토리에 올라온 글을 출판사에서 보내준 것이다.

길가다 우연히 들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한소절에 울컥.
이불 덮어쓰고 그냥 좀 울고싶다.
이건 마음.

며칠간 숨죽여 읽은 책
스핀 잇.
실리콘밸리, IT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정말 찰지게 재밌다.
막 뛰쳐나가고 싶다.
이건 머리.

가을, 정말 알수없구나
멜랑꼴리와 갈증

블로그를 통해 닿을 수 있는 독자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사람에게 책을 통해 닿고 싶었는데, 그 목적을 이룬 것 같다. 교보문고 류영호 차장님이 ‘화제의 신간’으로 선정해 주셨고, 인터넷 교보문고에는 이런 리뷰도 올라왔다.

이 책은 IT 경제서가 아니라, 더 이상 뒤처지지 않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생존경제학 책 같다. 안 봤으면 여전히 무지몽매하게 살았겠지만 보고 나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눈 감고 귀 막고 멍하니 직장생활에만 목 맸을 것 같다. 이제라도 IT와 실리콘밸리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더불어 마음에 들었던 리뷰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의 류현정 기자님이 써주신 기사인데, 책 내용을 핵심적으로 잘 정리해주셨다.

책에는 실리콘밸리에 살아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재미난 일화도 많다. 넷플릭스 유료 회원이 될 것인가, 아마존 유료 회원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목,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부터 애플TV, 구글TV, 로쿠박스를 다 써보고 만족하지 못해 중고를 팔거나 제품을 반납하는 대목,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에서 민박을 구하고 집주인의 와인을 사며 대만족하는 대목이 깨알처럼 씹힌다.

한편, 예스24에서 만드는 온라인 잡지인 채널 예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실리콘밸리와 <슈퍼스타 K>의 공통점은…”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인터뷰 기사를 상세하면서도 깔끔하게 잘 정리한데다 사진도 잘 찍어주셔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인터뷰 기사가 되었다. 아래는 기사의 일부이다.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완전히 반했어요. 그 전부터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출장 가는 곳마다 눈여겨보기는 했었어요. 그런데 캘리포니아만큼 확신이 들었던 곳은 없었죠. ‘여기에서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물론 게임빌에서 계속 일하면서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왕이면 보통의 캘리포니아 사람들처럼, 그곳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유난히 강한 사람 중에 한 명인 것 같아요. 호기심도 많고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요. 배움을 중단하면 즉시 인생에 회의를 느끼는 스타일이에요. 게임빌에 있으면서도 많은 걸 배웠고 재미도 있었지만 더 많이 배우고 싶었어요. 미국 시장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캘리포니아, 특히 실리콘밸리는 당시에도 핫(hot)한 곳이었죠. 그런 곳에서 뭔가 괜찮은 일을 하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 끝에 먼저 학교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UCLA에서 MBA 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기업 강연 – 글로벌 창업 지원 센터, SKT, 네이버, 핸드스튜디오, …

책 출간과 함께 강연 요청도 여럿 받았다. 미래 글로벌 창업 지원 센터(Born2Global)의 초대와 함께 다양한 회사와 학교, 그리고 방송국에서 강연과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서 휴가를 내어 한국에 방문했다. 글로벌 창업 지원 센터에서는 강연 뿐 아니라 ‘멘토링 세션’이라고 해서, 현재 창업을 해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강연 내용은 플래텀에서 ‘실리콘밸리에 왜 이렇게 돈이 몰리는가‘라는 제목으로 거의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정리해 주셨다. 이 행사를 계기로 KAIST를 졸업하고 인공 위성을 개발하는 일을 하다가 Promisope라는 회사를 만든 이준호 대표를 만나게 되었는데, 회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지금 장애아 또는 희귀 난치성 질병을 가진 아이들의 보호자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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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글로벌 창업 지원 센터에서 있었던 강연과 멘토링

한편, SKT에서 연락이 와서 직원들 대상 교육 프로그램인 T클래스의 강사로 초대되어 강연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회의실을 가득 메워주셔서 놀랐다. 이야기를 마치자 예리한 질문을 많이 던졌는데, 내가 정리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김상헌 대표님의 초대로 네이버에서 강연할 기회도 가졌다. 네이버 임원들이 많이 참석한다고 해서이기도 했지만, 네이버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서 내 블로그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터라 유난히 긴장되었던 자리였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차분히 앉아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실리콘밸리 이야기’에 더해 네이버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점들, 즉, 네이버가 검색 품질을 높이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이고 디스플레이광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를 바라고, 한편 네이버 카페나 블로그 등 오래된 지식 저장 플랫폼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등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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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 그린 팩토리에서

책에 사인도 원 없이 해봤다. 스파크랩스 데모 데이에서 책 사인회를 한다기에 출판사에서 책 100권을 가져갔는데, 스파크랩스에서 모두 구입해서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로 한 덕에 두 번의 쉬는 시간에 걸쳐 정신 없이 책에 사인을 했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여쭤보면서 책에 사인을 남겼는데, 그동안 책 만드느라 했던 고생을 아깝지 않게 만든, 뿌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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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크랩스 데모 데이에서 가졌던 책 사인회

출국 직전 역삼동에 위치한 핸드스튜디오라는 스마트 TV용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연락을 받아 강연 및 책 사인회를 가졌는데, 회사 분위기가 아주 좋았던 데다, 호기심에 가득한 직원들이 쉴 새 없이 질문을 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스마트 TV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거침 없이 이야기했고, 무엇보다 예전에 게임빌이라는 회사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다가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던 핸드스튜디오 직원들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던 핸드스튜디오 직원들

끝나고 사인회도 가졌는데, 이 때 사진을 참 잘 찍어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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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스튜디오에서 강연을 마치고

학교 강연 –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강연은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고)에서였다. 책이 나온 지 얼마 안되어,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구영재고에서 연락이 왔는데, 책 내용을 바탕으로 강연을 해준다면 고등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대구에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한국에서의 일정이 빡빡했던데다, 그쪽에서 원하는 일정이 한국 방문 일정과 맞지 않아 아쉽게 거절을 했었다. 그 후에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영재고의 교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 일정에 맞추겠으니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하셨다. 대구까지 가려면 KTX로 2시간이 걸리는데다 서울역에서 출발해야 함을 감안하면 이동에만 왕복 6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많이 고민이 되었지만, 고등학생들에게 강연을 한다는 것이 매우 의미 있게 여겨져 수락했다. 고등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 가장 와닿을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강연에 참석한 대구과학고(영재고) 학생들
강연에 참석한 대구과학고(영재고) 학생들

도착하니 다음날 시험이 있는 고3을 제외한, 고1, 고2 학생 200명이 강당에 앉아 있었다. 간략하게 내 소개를 한 후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내 고민은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전국 단위로 모집하고, 매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학생들이라더니, 정말 남달랐다. 처음에는 사실 큰 기대 없이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자, 이제 ‘기업 인수’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것이 실리콘밸리를 실리콘밸리답게 하는 무척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여러분들은 기업 인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러자 몇몇 학생들이 손을 들었고, 그 중 제일 앞자리에 앉은 한 학생을 지목했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서 하나의 기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정당한 대가’. 그 얼마나 중요한 단어인가? 어찌 보면 가장 산출하기 어려운 것이고, 기업 인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도 모른다. 대가가 정당하지 않으면 기업 매각이 일어나지 않거나, 매각이 되더라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기 힘들다. 무엇보다, ‘정당한(때로는 지나친) 대가’를 지불하고 기업을 인수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는 실리콘밸리를 창의력의 원천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신이 나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렇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기업을 인수하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러자 수십명이 손을 들었다. 한 명씩 지목해서 대답을 들었다.

창업가가 부자가 되고, 유명해집니다.

창업가의 성공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집니다.

그 창업가는, 거기서 번 돈으로 다른 회사에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회사를 만들 것입니다.

대답 한 마디 한 마디에 감탄을 했다. 나는 거기에 더해 “창업가 뿐 아니라, 그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함께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강연이 끝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저는 창업을 하고 싶은데, 제 주변에는 정말 천재같이 똑똑한 친구가 있고, 천재는 아니지만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사교성이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누구와 창업을 해야 할까요?

소프트웨어가 가져올 미래에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뜁니다만, 한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3D 업종’ 중의 하나로 분류하거든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모두 깊은 생각 끝에 나온 질문들이었고, 그 질문 하나 하나에 대답하면서 너무나 신이 났다. 강연이 모두 끝나고 책에 사인을 해주었는데, 한 학생이 사인을 받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이 시간 전까지 ‘기업 인수 합병’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오늘 그 점에 대해 새로 생각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렇다. 나도 기업 인수를 부정적으로 봤었던 기억이 난다. 인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부정적인 사례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년을 바쳐 제품을 개발해온 창업자가 쫓겨나기거나, 헐값에 인수되는 바람에 부자가 되기는 커녕 가진 것을 다 빼앗겼다는 등의 기사가 있었다. 그 문화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창업자가 더 인정받고, 선견지명을 가지고 초기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부자가 되는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것이 새롭거나 신기한 일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뷰 선물

KBS 양영은 아나운서의 초대로 ‘인터뷰 선물’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양영은 아나운서가 준비를 철저하게 한 데다, 아주 편안하게 질문을 해주어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아래 그 인터뷰 영상이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스탠포드 SEED라는 모임의 초대로 강연을 할 계획이다. 책과 블로그의 내용,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투자한 회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공감을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도 내 인생을 통해 더욱 풍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영어와 컴퓨터

영어와 컴퓨터
Drawing by Haken45

1990년 2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우리는 이제 이 곳과는 이별이라는 생각, 그리고 옆에 있는 많은 친구들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아쉬움과, ‘중학교’라는 새로운 장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 우리도 이제 전보다는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 시험은 없었다. 며칠간 학교에 나와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선생님과 인사하고, 친구들과 인사하고, 졸업식을 치른 뒤 집에 가면 신나는 방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세 시쯤 되었을까. 평소에는 월요일 조회 시간에 교단 위에서만 볼 수 있었던 교장 선생님이 예고 없이 갑자기 교실에 등장했다. ‘담임선생님 대신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러 오신 걸까? 교장 선생님도 수업을 하실 수 있나?’하는 의아함으로 우리는 앞에 양복을 입고 선 그 분을 쳐다보았다.

학생 여러분, 오늘 두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딱 두 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는 지금 시점에서, 지금까지 배웠던 것은 잊어버려도 좋은데 이 두 가지만은 꼭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첫째, 오늘부터 집에 가면 이렇게 해보세요. 저녁을 먹고, 휴식을 한 후, 운동도 하고 TV도 보고 나서 책상에 앉아보세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지는 마세요. 그냥 5분만 책상에 앉아 있다가 내려오세요. 오늘 할 일은 그걸로 끝입니다. 내일 학교에 왔다가 집에 가서, 똑같이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책상에 10분간 앉아보세요. 마찬가지로 책을 읽지는 말구요. 그 다음날은 30분간 책상에 앉아 보세요. 그 때 책을 읽어도 좋고 그림 그리기를 해도 좋아요. 네번째 날, 책상에 앉거든 책을 한 권 꺼내세요. 그리고 읽어보세요. 그 다섯 번째 날에는 좋아하는 과목으로 풀고 싶은 문제집을 선택해 보세요. 그리고 한 시간동안 앉아서 풀어보세요.

집에 가서 하루에 몇 시간을 숙제하느라 책상에 앉아 있곤 하던 나에게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꿀맛처럼 들렸다. ‘오늘은 이 핑계로 5분만 책상에 앉아 있으면 되겠다!’ 그리고 그 말대로 해보았다. 하루에 5분만 책상에 앉고 나머지 시간을 놀면서 보내고 나니 이내 지루해져 이틀째부터 책을 집어 들고 말았지만.

둘째, 이제 10년 후면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가 됩니다. 학업을 마치고 여러분들이 나가서 살게 될 세상은 21세기이며, 21세기는 새로운 인재와 새로운 기술을 요구할 것입니다. 21세기에 대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는 영어입니다. 세계가 더 많이 연결될수록, 영어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입니다. 영어를 꼭 마스터하세요. 두 번째는 컴퓨터입니다. 컴퓨터 언어를 배워두세요. 컴퓨터가 지금보다 더 많이 쓰이고, 컴퓨터 없이는 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중학교에 진학하고, 대학교에 가서도 이 두 가지를 기억하세요. 영어와 컴퓨터.

30분의 짧은 강의였지만, 그 때 교장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마음에 강렬하게 남았다.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세상은 영어와 컴퓨터가 중요하겠구나.’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 살며 매일 동료들과 영어로 회의하며,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며, 인터넷과 모바일 혁신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세상을 보고 있다.

그 분의 성함은 조성선이다. 나와 이름이 비슷해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7년 전쯤, 버스 타고 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 찾아본 적이 있었다. ‘디지털 교장선생님’으로 불리고, 컴퓨터 관련 서적만 10권이 넘게 출간했다는 2002년의 중앙일보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관악구의 미성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시며, 한국의 자연을 사진에 담는 취미 활동을 하고 계셨다. 미성초등학교 홈페이지를 찾아가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그 당시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장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때 말씀대로 영어와 컴퓨터 두 가지를 공부했고, 지금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수출하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연락 고맙습니다. 멋진 삶을 살기를 바래요.

짧은 답장이 달렸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연락한건데 답장이 너무 짧아 좀 아쉽기도 했지만, 그동안 재직했던 초등학교를 통해 배출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을텐데 일일이 답장하기 힘드시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지금, 졸업하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 10년, 20년 후를 대비해서 두 가지를 꼭 익히라고 말한다면 무엇이어야 할까?

비트코인 경제학

몇 주 전부터 미국 각종 언론에 비트코인 이야기가 정말 많이 등장하더니, 계속해서 비트코인의 가격이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땡스기빙 휴가 이틀째인 엊그제(11월 29일)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1,242달러에 달해, 1온스당 1,250달러에 거래되는 금값에 가까워졌다. 비트코인의 시장 가치가 일시적으로 1,000달러를 넘은 후 단 이틀만의 일이다. 지난 4월에 비트코인 가격이 200달러로 급등하면서 언론에서 갑자기 비트코인 이야기를 많이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직후 다시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비트코인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 통화 수단인가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놓았었는데, 오랫 동안 200달러를 회복하지 못하다가 지난 한달간 갑자기 6배 이상 급등하면서 1,200달러를 넘은 것이다. 13달러였던 1년 전에 비해서는 거의 100배 상승한 가격이다.

비트코인 가격
지난 1년간 비트코인 가격 변동 추이. 1년 전 가격은 13달러에 불과했다. (출처: http://blockchain.info/charts/market-price)

이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비트코인 한 개를 소유하기 위해 1,000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 비트코인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총 통화량(Circulation)에 가격을 곱하면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market capitalization)이 나온다. 현재 통화량이 1200만개 가량 되므로, 시가 총액은 무려 15 billion USD, 즉 17조원에 달한다. 무시할 수 없는 경제 규모다.

비트코인
지난 1년간 비트코인 시가 총액 (Market Capitalization) (출처: http://blockchain.info/charts/market-price)

비트코인 가격이 급상승한 이유

지난 11월 13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해 400달러를 초과하던 시점, bitcorati라는 비트코인 사업 디렉토리 사이트에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10가지 이유‘라는 글이 올라와서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아래에 몇 가지만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1. 미국 FBI가 비트코인을 통한 불법 마약 거래를 하던 실크로드(Silk Road)라는 웹사이트를 폐쇄했다. 26,000개의 비트코인을 압수. 비트코인 상거래 사이트가 폐쇄되었는데 왜 비트코인의 가격이 올라가나 싶겠지만, 이 때 비트코인 가격이 일시적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고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이 마약 거래에만 쓸모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 중국의 거대한 수요. BTC China라는 중국의 비트코인 거래소에 거래가 몰리고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 총 거래량의 60% 이상이 BTC China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 막대한 부가 이미 축적되어 있고,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고급 주택들이 중국인들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는데, 갈 곳 없었던 돈이 비트코인으로 몰리고 있는 것 같다.)
  3. 비트코인의 미래에 베팅하고 있는 큰 투자자들이 생겨났다. 페이스북 초기 임원이었던 Chamath Palihapitiya가 이미 10월 29일 당시 시가로 $5 million (55억원) 어치의 비트코인을 사들였고, 앞으로 수백억원어치를 더 사겠다고 공언을 했다. (당시 개당 200달러이던 시장 가격으로 55억원어치니까, 가격이 6배 상승한 지금 시장 가격으로는 무려 330억원어치이다.)
  4. 비트코인 관련 회사들이 벤처캐피털들의 투자를 받고 있기 시작했다. 그 중 제레미 알레어 Jeremy Allaire 라는 사업가가 만든 Circle(도메인 확보에만도 돈이 상당히 들었을 것 같다)은 ‘비트코인 관련 사업’ 아이디어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로부터 무려 $9 million(1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5. 비트코인 마이닝(아래에 더 자세히 설명)이 어려워졌다. 전에는 비트코인 마이닝을 통해 공짜로 비트코인을 벌던 사람들이 있었으나 이게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6. 캐나다, 독일, 네덜란드 등 몇몇 국가들이 비트코인을 인정하고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뱅쿠버에 있는 한 비트코인 환전 ATM기에서는 8일간 10만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이 거래되었다. (더불어,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비트코인이란?

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영어, 한글)에 이미 잘 정리가 되어 있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읽은 글들을 바탕으로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해 보겠다.

  • 2009년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팀일 수도 있다. 그 정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가 FBI에 의해 폐쇄당한 마약 거래 사이트인 실크로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의 수학자들이 밝혀냈다고 해서 크게 회자가 되었다.
  •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운영된다. 즉, 비트코인을 운영하는 소스 코드는 GitHub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소스코드 수정 히스토리를 보면 전 세계 프로그래머들이 매일같이 소스 코드를 조금씩 수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스코드가 공개되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소스코드를 조작해서 비트코인을 가져가거나 비트코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소스코드는 커뮤니티에 의해 관리되고 있고, 누구나 받아갈 수는 있지만 누구나 업데이트할 수는 없다. 게다가 코드가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서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코인’이라고 부르지만,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코드 값으로만 존재한다. 모든 것은 복잡한 RSA 암호화 기술이 적용된 수학이다. 비트코인의 소유자만 개인키(private key)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비트코인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 공개키(public key)와 개인키(private key)를 이용한 암호화 방식은 우리나라의 ‘공인인증서’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공인인증서의 개인 암호에 해당하는 것이 이 개인키이다.
  • 비트코인을 거래할 때는 한 주소에서 다른 주소로 코인을 보내면 된다. 이 주소는 1MyhygBUrT6aakgRFDs8ECgoJMqVo9u5n2 와 같이 생겼으며, 임의로 생성할 수 있고 소유자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익명성’이 보장된다.
  • ‘중앙 은행’과 같은 기관이 없다. 비트코인 거래를 한 군데서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비트코인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그 내역이 전 세계로 전파되며, 다른 사람들이 유효한 거래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 비트코인 소유자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거래 내역은 ‘블록 체인’이라는 곳에 보관된다. 이 블록 체인을 확인함으로서 비트코인 소유자가 한 곳에만 비트코인을 보냈는지, 악의로 동시에 여러 군데에 비트코인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 블록 체인을 확인하는데는 수학적 계산과 고성능의 하드웨어가 필요하며, 확인해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주도록 알고리즘이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비트코인을 얻어내는 것을 ‘비트코인 마이닝 (bitcoin mining)’이라고 부른다.
  • 비트코인 마이닝을 위한 하드웨어를 파는 회사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ButterflyLabs인데, 성능에 따라 2500달러짜리도 있고 22500달러짜리도 있다.
  • 비트코인 수는 일정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점차 그 폭이 줄어들며, 2100만개가 되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이 제한 때문에 심각한 비트코인 디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하는데, 비트코인 하나가 수백만개로 쪼개어질 수 있으므로 상관 없다. 실제로 비트코인 거래 내역을 보면 0.0531 BTC 이런 식이다.
  • 비트코인 거래에는 수수료가 거의 없다. 특히 국제 송금을 할 때 큰 수수료가 붙게 마련인데, 비트코인은 국가 장벽이 없이 움직일 수 있으므로 (인터넷처럼) 수수료가 따로 없다.
  • 비트코인은 현금과 마찬가지 속성을 띠므로,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으면 영영히 사라지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되돌려받을 수가 없다. 이 점은 신용카드에 비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비트코인 마이닝을 해주는 하드웨어. 4,680달러 (출처: http://www.butterflylabs.com/monarch/)
비트코인 마이닝에 쓰이는 하드웨어 (ASIC 보드). 4,680달러 (출처: http://www.butterflylabs.com/monarch/)

비트코인의 원리

비트코인의 수학적 원리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쓴 “비트코인: 개인간 전자 화폐 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논문에 잘 나와 있다. 여기에서는 비트코인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We define an electronic coin as a chain of digital signatures. Each owner transfers the coin to the next by digitally signing a hash of the previous transaction and the public key of the next owner and adding these to the end of the coin. A payee can verify the signatures to verify the chain of ownership. (우리는 전자 화폐를 디지털 서명의 체인으로 정의합니다. 코인 소유자는 거래 내역에 디지털 서명을 한 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고, 이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공개 키를 코인 맨 뒤에 붙입니다. 돈을 받은 사람은 앞 사람이 유효한 소유자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도표에 그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비트코인이 거래되는 원리
비트코인이 거래되는 원리 (출처: http://bitcoin.org/bitcoin.pdf)

복잡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원리는 간단하다. ‘화폐’라는 것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속성은 1) 액수가 표시되고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2) 위조가 어려워서 주고 받았을 때 사기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 두 가지 문제를 푼 것이다. 위 도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개키와 개인키를 이용한 비대칭 암호화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질 수 있으니 간략히만 이야기하면(또는 이 문서를 참고), 공개키와 개인키는 세트로 만들어지고, 공개키를 이용해서 암호화한 것은 거기에 해당하는 개인키를 이용해서만 풀 수 있고, 반대로 개인키를 이용해서 암호화한 것은 공개키를 이용해서만 풀 수 있다. 도표 중 가운데 그림을 보자. Owner 1이 Owner 2에게 비트코인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Owner 1은, 비트코인 거래 내역과 Owner 2의 공개 키를 가져와서 해싱(hashing)을 한다. 여기서 ‘해싱’은 보안에서 등장하는 용어인데, 텍스트를 짧은 숫자와 문자열로 요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싱은 비가역적이다. 즉, 문서 A를 해싱해서 문서 B를 만들 수 있지만, 문서 B를 이용해서 문서 A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쨌든, Owner 2의 공개키를 가져와서 해싱한 후에 자신의 개인키를 사용해서 서명을 한다. 서명된 결과를 Owner 2에게 보낸다. Owner 2는, 자신의 공개키를 활용해 암호화된 문서가 도착했으므로, 자신의 개인키를 사용해서 암호를 풀 수 있다. 암호가 제대로 풀리면 비트코인의 거래가 완료된다.

비트코인이 가치를 지니는 이유

위 알고리즘은 그렇다 치고,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실체도 없는 컴퓨터 코드가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주고 사고 싶어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이 되는가?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지난 10월, 리니지에서 ‘진명황의 집행검’이라는 아이템을 인첸트(inchant)하려다 실패해서 리니지를 상대로 아이템 복구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사례가 있었다. 이 재판의 쟁점이 되었던 ‘진명황의 집행검’은 시가가 무려 3천만원이다. 게임 아이템이 뭐길래 시가 3천만원이 되는가? 그 이유는 ‘희소성’, 그리고 ‘시간과 노력’에 있다. 게임 내에서 이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시간을 써야 하고, 거기에 운도 따라야 한다. 사람의 시간이 들어가서 쓸모 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리니지에서 가장 희귀한 아이템 중 하나인 '진명황의 집행검'. 호가 2500만원~3000만원이다.
리니지에서 가장 희귀한 아이템 중 하나인 ‘진명황의 집행검’. 호가 2500~3000만원이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차이는, 리니지에서는 사람이 노가다를 해서 아이템을 획득해야 하지만, 비트코인은 사람 대신 ‘기계가 노가다를 해서’ 코인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는 공짜가 아니다. 몇 천 달러를 주고 사야 하고, 전기도 많이 든다. 이렇게 ‘투자’를 해야만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일정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가 10달러가 맞는지 1000달러가 맞는지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비트코인을 얻기 힘들고, 더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상승할 내재적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마이너(miner)’들은 하루라도 빨리 비트코인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미국 상원 의원 공청회 = 비트코인 파티

한때는 ‘아는 사람만 알던’ 비트코인이 갑자기 미국 전역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1월 19일에 있었던 미국 상원 의원 공청회가 열리면서이다. 미국 상원에서 비트코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 번 ‘들어보겠다’고 한 소식만으로 비트코인의 가격은 400달러로 솟았으며, 그 공청회를 통해 비트코인의 장단점을 상세히 알게 되자, 다시 한 번 가격이 뛰었고, 오늘날 1,000달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때 비트코인 관련 사업을 하던 사람들과 화폐 정책에 관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기에서 발표된 내용 전문을 읽을 수 있다. 그 중 BitPay의 CEO인 Anthony Gallippi가 발표한 내용이 비트코인의 장단점을 잘 요약하고 있어 트위터에 올렸었는데 142명이 Favorite으로 등록했었다. 그 중 흥미로운 문단 몇 가지를 간략히 번역한다.

Credit cards are “pull” transactions. The shopper provides their account number, and secret credentials that the business can use to pull money from their account. The problem is that the same credentials to pull money one time can be used to pull money many more times – by that same business, or by anyone who has these credentials. This is the fundamental design problem with credit cards, and it is the root cause of the identity theft and fraud that we see today. (신용카드는 ‘당기기’ 방식입니다. 즉, 고객이 신용카드 번호를 제공하면 회사는 그 계좌에서 돈을 빼갑니다. 문제는, 그 신용카드 번호를 가진 누구든 돈을 빼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명의 차용’을 이용한 사기 죄가 생겨납니다.)

Because of this design flaw, security around credit cards is massively expensive. Apple has iTunes, with over 500 million credit card numbers stored on file. The cost and risk of securing this data is enormous. Visa alone spends $200 million a year on fraud prevention. They are throwing big money at the problem and it is not working, because every year fraud remains very high. (신용카드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쓰이는 돈은 엄청납니다. 비자(Visa) 혼자 사기 검출에 쓰는 돈이 무려 2천억원 이상입니다. 어차피 되지도 않는 일에 돈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지요. 항상 사기율은 매우 높으니까요.)

Bitcoin payments are “push” transactions, which are very different than credit cards. If I want to pay someone, I push them the exact amount I want to give them. The recipient does not get my account number, they do not get my secret credentials, and they do not get any permission to ever pull money from my account. Only I can push out a payment. Bitcoin works similar to email, and text messages. Text messages are a push transaction. You cannot pull an email from me or a text message from me, only I can push the message to you. Bitcoin works the same way, for payments. (반면 비트코인은 ‘밀기’ 방식입니다. 제가 누구에게 돈을 보내고 싶다면, 딱 그만큼의 돈만 보낼 수 있습니다. 받는 사람은 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제 계좌 정보도 모르므로, 저에게서 절대로 돈을 더 빼갈 수 없습니다. 오직 저만 돈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메일이나 텍스트 메시지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단점과 한계

여기까지 보면 장점이 참 많은 것 같지만, 분명한 한계도 많이 있다.

  1.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정부가 통화량을 관리하고 돈을 찍어낼 수 있으므로 경기가 과열되거나 침체가 올 때 통제를 할 수가 있지만, 만약 세계 경제가 비트코인으로만 움직인다고 하면 그런 통제가 어려워지므로 경기 파동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
  2. 트랜젝션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비트코인이 A에서 B로 옮겨지는 데에 10~20분이 걸리는데 (아래 그래프), 그 이유는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곳 이상으로 비트코인을 보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비트코인 트랜젝션을 검사하고, 거래의 유효성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10~20분은 국가간 거래에서는 획기적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스타벅스에서 비트코인으로 커피 한 잔을 사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다.
  3. 신용카드는 잃어버려도 분실 신고 후 재발급 받으면 그만이지만, 비트코인은 현금과 같아서 잃어버리면 끝이다. 어제 아침에는, 비트코인 7500개가 들어 있는 하드 디스크를 실수로 버린 한 비트코인 마이너의 이야기가 포브스 지에 실렸다. 현재 시장 가치로 80억원~100억원에 이르는 액수다.
  4. 비트코인을 보내고 나면 되돌려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물건을 사기로 하고 비트코인을 보냈는데 상대방이 물건을 안 보내면 되돌릴 수가 없다.
  5. 당분간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주식과 같이 급상승하거나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 비트코인으로 거래를 해 놓고 누군가는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비트코인이 시장에 퍼진 후에, ‘큰 손’이 비트코인을 모두 털고 나가기로 결정하면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할 위험도 있다.
  6. 중국의 규제가 어떻게 나올 지도 위험 요소이다. 중국에서 비트코인을 많이 사서 모으고 있는데, 중국이 비트코인 구매를 막기 시작하면 (그러기는 힘들겠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비트코인 트랜젝션
비트코인 거래 확인에 걸리는 시간 (출처: blockchain.info)

결론

비트코인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고 비트코인을 사서 모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들은 페이스북 아이디어를 처음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 윙클보스 형제들이다. 비트코인이 15달러대일때부터 사기 시작했다는데, 지난 4월에 비트코인을 10만개 이상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으로 환산하면 $100 million, 즉 천억 원이 넘는 액수이다.

비트코인으로 결제 가능한 레스토랑과 카페도 늘어나고 있다. 그 중 팔로 알토의 유니버시티 거리에 위치한 쿠파 카페(Coupa Cafe)가 있다. 이 카페는 지난 7월부터 비트코인 결제를 받고 있다. 온라인에서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이미 많이 있다. 비트코인 위키에 그 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는데, 이미 비트코인 관련 웹사이트들의 수가 수천에 달해 깜짝 놀랐다.

비트코인 시장 규모가 아무리 커진다 해도, 수백년 이상 쌓아온 현재의 금융 제도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나에 1천 달러나 하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과연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비트코인에 결정적 결함이 발견되어 그 체계가 무너지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비트코인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닐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하기 시작함에 따라 비트코인 경제 규모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