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CNBC가 방송한, 하이퍼루프의 첫 시험 주행을 보여주는 장면. 로켓처럼 빵 튀어나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현재는 수 초만에 300mph에 도달하는데, 이는 시속 482km/h에 해당한다. 목표는 700mph, 즉, 시속 1,200km/h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비행기(약 시속 1,000km/h)보다 높은 속도이다. 계속해서 발전한다면 비행기보다 훨씬 빨라지는 것도 가능할 지 모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30분만에 도달할 수 있을 지도 (비행기로 1시간 20분 가량 걸린다).
감동적이다. 근데 나에게 그보다 더 감동을 준 건 하이퍼루프 웹사이트에 있는 아래 사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팀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 있고, 행복해 보인다. 한계에 도전하고 그 한계를 현실로 만드는 데서 오는 자부심이 담겨있다고 할까.
하이퍼루프 팀
수년 전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이런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PandoDaily와의 인터뷰에서 꺼내놨던 아이디어인데, 이제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혼자 하면 꿈이지만 함께 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참 멋있다. 이제 나에겐 잡스(Jobs)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다.
며칠전 그루폰(Groupon)의 창업자인 앤드류 메이슨 (Andrew Mason)이 ‘왜 그루폰을 지지하는가(Why Root for Groupon)‘라는 글을 썼다. 그루폰의 새 CEO가 된 지 2주가 된 리치(Rich)가 그루폰 홈페이지에 올린 ‘왜 우리는 로컬 마켓에서 성공할 것인가(Why We’ll Win Local)‘ 라는 블로그 글을 읽고 즉시 들었던 생각을 쓴 것인데, 자신은 이미 그루폰을 떠났지만 당시 자신이 만든 제품이 분명히 가치를 생성했고, 그 덕에 많은 소상인들이 이익을 얻었고 소비자들에게도 잉여가 돌아갔기 때문에, 그리고 마케팅이라는게 뭔지도 모르는 소상인들에게는 그루폰이 쉬운 마케팅 채널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그루폰이 잘 되게 지지해달라는 내용이다. 거기까지는 뭐 따뜻한 이야기이고 좋은 게 좋은거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읽으면서 웬지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이전에도 한 번 블로그에서 언급했지만 그루폰이 만들어낸 가치가 과대평가되어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서는 티켓몬스터 등이 시도했다가 일찌감치 그만두고 달아난게 ‘로컬 딜’ 서비스인데 왜 갑자기 로컬 타령인지 싶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169달러짜리 경비행기 여행 등 몇 가지 매력적인 로컬 딜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읽은 것만으로는 굳이 블로그를 쓰겠다는 생각은 안했겠지만, 한 때 그루폰을 이용했던 상인의 글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한다.
We run a spa in 5 star hotel, so our prices are bit higher than average. Groupon brought to us thousands of clients who would usually never come, it was out of their price range. But what we noticed after few months is that numbers of complaints have risen significantly. They were complaining about so many silly things, and our conclusion was, the less you pay, the less you appreciate, let’s stick with higher end market. (우리는 5성급 호텔의 스파를 운영한다. 그래서 가격이 좀 높은 편이다. 그루폰 딜을 해보니 수천명의 새로운 고객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불평 불만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말이 안되는 것들로 트집을 잡았다. 돈을 적게 내는 사람들은 그만큼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그래서 우리는 고급 시장에 머물기로 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독일의 5성급 호텔쯤 되니 할 수 있는 불평에 불과할까. 질 좋은 고객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그 아래 한 마디 더 읽어보자.
My conclusion is that those who are lazy or have no marketing knowhow, they stick to Groupon to bring them foot traffic. Which is fine I guess, but lazy solution is never a good solution. (내 결론은, 게으른 사람들이나 마케팅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루폰이 고객을 데려다줄 수도 있겠지만, 게으른 해결책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루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30세 미만 창업자’라는 팔기 좋은 문구를 씌워서 그루폰을 마치 세기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도 되는 것처럼 소개했던 미디어들, 그리고 그 미디어들을 현혹했던 앤드류와 그루폰 팀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근본적인 기술 혁신이 아닌, UI의 혁신이었던 제품에게 기술 혁신과 동급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모두의 잘못이 아니었는지. 결국 그루폰은 쿠폰을 조금 더 예쁘게 포장해서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소상인들을 대신에 쿠폰을 만들어주는 서비스 정도에 불과한 것인데 말이다.
요즘 ‘회사의 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IPO 당시 24달러도 비싸다고 여겨졌던 페이스북의 현재 주가는 100달러가 넘어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300B, 즉 330조원에 달한다. 물론 여기에 브랜드 가치도 포함되어 있지만, 냉정하게는 이 회사가 전 인류를 위해 창조해낸, 그리고 앞으로 만들게될 가치의 총 합이 그정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과연 페이스북이 이룩한 업적이 이정도로 큰 것일까? 그 가치는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100년, 또는 1000년 후, 박물관에는 어떤 물건들이 전시되게 될까? 구글과 페이스북 홈페이지? 구글과 페이스북이 사용했던 서버? 그리고 중국이 만든 드론? 우리가 지금 만드는 모든 것들 중 1000년 후에도 기억되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얼마 전에 읽은 한 문구가 재미있어서 공유. 출처는 “The Hall of Innovation (혁신의 전당)“이라는 글이다. 1876년, 알렉산더 그래험 벨 (Alexander Graham Bell)이 자신이 만든 전화 특허를 전보(telegraph) 회사에 팔려고 했을 때 그들이 한 말:
The idea of installing ‘telephones’ in every city is idiotic… Why would any person want to use this ungainly and impractical device when he can send a messenger to the telegraph office and have a clear written message sent to any large city in the US? This ‘telephone’ has too many shortcomings to be seriously considered as a means of communication. The device is inherently of no value to us. (모든 도시에 ‘전화기’라는 걸 설치하겠다는 생각은 말도 안됩니다. 사람을 써서 전보국 가서 전보를 부치면 메시지가 미국의 어느 주요 도시로든 전달될 수 있는데, 도대체 누가 이런 실용성이 없는 장치를 사용하고 싶어하겠습니까? 이 ‘전화기’라는 건 너무 단점이 많아서 도무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그들이 쓸모 없다고 단칼에 무시했던 ‘전화’의 가능성을 믿은 벨(Bell)은 결국 자신의 이름을 따서 벨 전화 회사(Bell Telephone Company)를 만들었고, 140년이 지난 지금, 벨의 이름은 ‘전화 발명가중 한 명‘로 모든 사람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지 궁금해서 조금 더 찾아보았고, 벨의 위키피디아 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이 출처와 함께 관련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Bell and his partners, Hubbard and Sanders, offered to sell the patent outright to Western Union for $100,000. The president of Western Union balked, countering that the telephone was nothing but a toy. Two years later, he told colleagues that if he could get the patent for $25 million he would consider it a bargain. By then, the Bell company no longer wanted to sell the patent.[89] Bell’s investors would become millionaires, while he fared well from residuals and at one point had assets of nearly one million dollars.[90](벨과 그의 파트너인 허버드와 샌더스는 이 특허를 웨스턴 유니언에 10만달러에 팔려고 하자 웨스턴 유니언의 회장은 전화기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며 거절했다. 2년 후, 그는 200만달러에 전화기 특허를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 했지만 벨은 이미 팔 생각이 없었다. 벨에게 투자한 사람들은 백만장자가 될 것이었다.)
당시의 웨스턴 유니온 회장이 멍청이라고 비웃을 것인가. 지난번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이라는 블로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썼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당시 전화기는 정말로 누구에게라도 쓸모 없는 장난감으로 보였을 것이다. 짧은 거리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데다 음질도 안좋아서 알아듣기도 힘들고 아직 가격은 비싸서 쉽게 살 수도 없는 그런 물건. 게다가 확성기처럼 생긴 이상한 기계에 입을 대고 말하는 게 얼마나 어색하고 품위 없어 보였겠는가.
벨이 발명한 전화기, ‘센테니얼(Centennial)’
하지만 그 장난감같은 전화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년의 시간을 바쳤던 벨은 전혀 다른 상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미국의 모든 집의 마루 한 중심에 자신이 만든 전화기가 놓여 있는 장면을 상상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가피한 이유로 떨어져 살게 된 가족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상상했을 지도 모르겠다.
한편 아래는, 2001년 애플이 아이팟(iPod)을 처음 발표했을 때 맥 루머(Macrumors.com) 사이트에 사람들이 올렸던 반응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 부정적이다).
This isn’t revolutionary!
I still can’t believe this! All this hype for something so ridiculous! Who cares about an MP3 player? I want something new! I want them to think differently!
Why oh why would they do this?! It’s so wrong! It’s so stupid! (믿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기대하게 하더니 고작 이겁니까? 도대체 MP3 플레이어에 누가 신경이나 쓴단 말입니까? 난 뭔가 새로운 걸 원해요! 좀 다르게 생각하란 말이에요! 도대체 왜, 왜 이런 걸 만듭니까? 정말 잘못됐어요. 멍청이들!)
스티브 잡스가 1997년 Think Different 캠페인의 첫 광고에서 썼던 유명한 카피가 떠오른다: “미친 사람들, 부적응자들, 반란자들, 트러블 메이커들, 네모난 구멍에 맞지 않는 동그라미들에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고, 현상태에 대한 존경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들의 말을 인용하고, 반대하고, 찬양하거나 악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할 수 없는건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변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인류를 한 단계 앞으로 진보시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미친 사람으로 볼 뿐이겠지만, 우리에겐 천재로 보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친 사람만이 실제로 세상을 바꿉니다.”
그가 어떤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청중 중 한 명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세 단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질문을 듣고 문득 생각난 세 개의 단어는 “In The Beginning (태초에)” 이었다고. 이는 성경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세 단어이기도 하다. 창세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God created the heavens and earth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잇는다.
The idea that we are all created in God’s image, therefore he’s this creator, we must have all born to be a creator.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므로, 우리도 창조자로 태어났음이 분명합니다)
이 말이 참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인간은 ‘창조’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됐다. 이전에 ‘창의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하여‘라는 글에서도 간략히 언급했듯, 창조하는 행위는 소비하는 행위에 비해 훨씬 오래 지속되는 보람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론은 또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I remember the first time when we opened the apple store. We created something we knew was right. It brought such joy to me personally, and the joy brought to others, which was wonderful. Connection to the creativity, with which I really feel the connection to the creator (우리가 처음 애플 스토어를 열었던 때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었어요. 저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준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주었는데, 그 기분이 끝내줬지요. 창조를 하며 저는 창조자와 연결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호모 크리아티부스(Homo Creativus) = 창조적 인간. 전에 ‘존 가드너의 한 단어 격언‘을 인용하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Learn(배우다)’라고 했었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단어를 꼽으라면 ‘Create(창조하다)’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사장, 이사, 부장, 대리 등의 직급, 그리고 회계사, 감독, 공무원, 군인, 교수 등 수많은 직업이 존재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타이틀은 메이커(Maker of…)가 아닐까. 다른 모든 것들은 그 역할을 마치는 순간 사라지는 타이틀이지만, 메이커는 그가 만든 제품과 함께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위자드웍스의 표철민 대표가 오늘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1막을 마치며“라는 감동적인 글을 블로그에 올려둔 채. 그리고 그 직전에, “위자드웍스 주주님께 인사올립니다”라는 이메일을 통해 이번 IGAWorks의 위자드웍스 지분 54% 인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가 어떻게 운영될 지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
그리고 그 사이에 잠깐 통화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25분이었다.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이메일 보내고 회사 일하느라 잠을 못 자다가 아침까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는 중이라고 했다. 통화를 마치고 눈을 붙이는 대신, 그는 글을 썼다. 자신이 달려온 길을 돌아보며,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는지, 그리고 테마키보드 앱을 통해 어떻게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어떻게 IGAWorks 에 지분의 일부를 매각하고 개인 빚을 청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해 설명했고, 후배 창업자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남겼다. 2012년 1월부터 꾸준히 써 온 그의 블로그는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나처럼 남의 이야기나 주워 듣고 쓰는 글이 아닌, 철저히 자신의 고민과 고뇌, 그리고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들을 쓰며 자신의 배움을 아낌없이 전달했고, 그를 통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배움을 주었다.
그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2010년 5월의 일이다. 이미 ‘비즈니스위크 아시아 대표 젊은 기업가 25인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각종 언론을 통해 ‘미래의 빌게이츠를 꿈꾸는’ 25세의 청년 CEO로 한국에 화려하게 알려진 후였다. 김현유 선배(@mickeyk)를 통해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당시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아래는 그에게 처음 받은 이메일.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찾아뵙고 인사 올리게 된 위자드웍스의 표철민입니다.
우선 이렇게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신 성문 선배님께 감사드리고요,
평소에 뵙고 싶던 분들을 한 자리에서 뵐 수 있어서 벌써부터 너무나 설레네요. ^^
저희 일행은 저를 포함해 열심히 견문(?)을 넓히고자 동행하고 있는 저희 회사
이사 두 분이 함께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선배님들의 탁월한 경험과 식견을
많이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선배님들 금요일에 뵙고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표철민 올림
2010년 5월 8일, 샌프란시스코의 Sens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겸손한 말투와 깍듯한 예의로 사람들을 대했고, 그 날 사람들이 많아 깊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인상을 가진 채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 후 한국을 방문할 때면 연락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듬해 2월에는 책을 한 권 받았다. 그의 사진이 표지에 크게 실린 책의 제목은 ‘제발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 추석 연휴를 어떻게 하면 가장 보람있게 쓸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가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 그 기간동안 집중해서 쓴 것이라고 했다.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찬 책을 단숨에 읽었고 큰 감동을 얻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아래는 책을 읽고 나서 그에게 보낸 이메일.
책을 단숨에 읽었어. 너무 흥미진진한데다가 공감이 많이 되서. 학생들에게 공부가 아닌 다른 것 시도해보라고 말하는 내용이 과연 인기를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단순히 그런 이야기가 아니네. 진지한 이야기이고, 또 왜 관심분야를 다양하게 가지는게 중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네.
글 참 잘 쓰더라.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손익 계산하는거 하며, 이대에 중국인들 보면서 바로 사업 구상을 하는 거하며, 대학교 때 다방면에 관심 많았던 것과, 뒤에서 뭔가 기획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등, 나랑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어.
중학교 때 도메인을 대행 등록해주는 일을 하겠다고 구상했던 것도 대단하구. 세금계산서 떼어주려다보니 사업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딜리버링 해피니스’의 저자 토니를 생각나게 하는걸?
내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CEO들이 제프 베조스, 토니 셰이, 리드 헤이스팅스 등이야. 왜 그런지 알아? 네가 책에서 이야기한대로, ‘자신으로 하여금 세상이 어제보다 좋아지도록 만드는 데’ 인생을 건 사람들이거든. 실제로 그들 덕분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었고. 소위 ‘사회적 기여’를 한 거지.
한국에는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회사가 아직 많지 않은 것 같아. 정말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 말이야. 네가 지금 만들고 있는 회사가 그런 회사의 표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한국과 미국에서 만나며 연을 이어가다가 위자드웍스가 솜노트를 출시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던 2012년 말,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위자드 웍스의 투자 유치에 참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위자드 웍스의 주주가 되었다. 회사나 제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냥, 표철민 대표를 믿고 작은 액수나마 투자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그 후 사업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고, 한국에서 유틸리티 앱을 만들어 돈을 번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사용자 수도 많고 사용량도 높은데, 돈이 들어오질 않았다. 솜노트와 솜투두에 올인했는데 거기서 돈이 안들어오니 힘든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주주간담회 때마다 솜노트와 솜투두의 지표를 자세히 봤는데, 공짜로 쓰기만 원하고 대가를 지불하라고 하면 도망쳐버리는 유저들이 얄미웠다. 아래는 그의 블로그 내용 중 일부.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처음엔 사람이 가장 어려웠고 나중엔 제 능력 부족을 깨달았고 최근엔 돈이 없으면 사람이 많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돈을 제대로 못주거나 잘 못마련해오는 대표는 사업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 그들의 가족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최근 2년간 그랬습니다. 좋은 서비스 만들겠다는 naive한 생각으로 생활의 기본이 되는 돈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제가 고생하는건 괜찮았는데 직원들을 좀 힘들게 했습니다.
작년 초부터 제가 겪어본적 없는 정도의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습니다. 서비스하겠다고 외주 안하고 잘하는 일 안하고 하고싶은 일 하다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돈 꿔오고 다행히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앱이 팔려 또 연명하고 하면서 버텼습니다. 작년 가을쯤에는 드디어 제가 등록된 채무자가 되었습니다. 신용불량자로 가기 직전의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카드 한도가 80만원 정도로 줄었고 회사나 개인 계좌 모두 잔고 제로에 카드는 다 연체였습니다.
그 고뇌를 조금씩 엿보기는 했지만,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었는지 내가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그러던 2014년 가을, ‘테마키보드’를 인수하기로 했고, 그것으로 다시 한 번 일격을 해보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키보드에 광고를 붙인다는 아이디어에 나는 사실 회의적이었다. 사용자 경험을 최고로 높이고 사용자들이 고마운 마음에 기꺼이 돈을 내도록 하는 제품을 선호했던 나로서는, 사용자 경험을 해치며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낸다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유틸리티 앱 시장은, 광고가 아니면 돈을 벌기가 어려운 시장으로 굳혀져 있었다.
그는 이 새로운 사업에 온 힘을 집중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테마키보드가 출시되었다.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홍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테마키보드 출시 후,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고 했다. 그만큼 광고에 대한 사용자들의 반감은 높았다. 어떻게 하면 반감을 줄이고, 사용자 경험을 너무 해치지 않으면서도 광고 수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정말로 쉽지 않은 문제였다. 다만 어느 한 쪽으로도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 테마키보드는 안정을 찾았고, 솜노트는 유료화에 성공했고, 회사는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그를 대신해서 회사를 맡아 줄 신임 대표도 선임했다. 그는 이제야 미뤘던 군에 입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순간, 논산훈련소에서의 첫 저녁을 보내고 있다. 아마도 훈련소에서 보내는 앞으로의 한 달은 그가 10여년만에 처음 누리는 완전한 휴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최종 결정자로서의 외로움과 부담감을 잠시 잊고, 창의성과 에너지가 온전히 충전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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